오 (십국)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오(吳)는 당나라 말기 혼란기에 양행밀이 건국한 십국 시대의 국가이다. 양행밀은 군벌로 성장하여 892년 양저우를 점령하고 회남절도사가 되었으며, 902년에는 오왕에 봉해졌다. 양행밀 사후, 그의 아들 양악과 동생 양융연이 옹립되었으나 실권은 서온에게 있었다. 서온은 양융연을 오왕으로 세우고, 자신의 양자인 서지고를 통해 937년 선양을 받아 남당을 건국하면서 오나라는 멸망했다. 오나라는 현재의 안후이, 장쑤, 장시, 후베이 지역을 관할했으며, 수도는 광릉(양저우)이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장시성의 역사 - 남당
남당은 오대십국 시대 강남을 중심으로 서지고(이병)가 건국하여 당을 계승했다는 명분으로 성립되었으나, 이경과 이유 시대에 문화적,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음에도 후주와 송의 압력으로 쇠퇴하여 송에 멸망, 문화적 유산과 역사적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 장시성의 역사 - 강남도 (당)
강남도는 당나라 시대 중국 남부의 광대한 지역을 관할했던 행정구역으로, 733년 강남동도와 강남서도로 분할되었으며, 당나라 말기에는 절도사와 관찰사들이 등장하여 후대 봉건 체제에 영향을 미쳤다. - 후베이성의 역사 - 촉한
촉한은 유비가 세력을 확장하여 건국한 국가로, 한나라의 정통 계승을 명분으로 건국되었으나, 제갈량 사후 쇠퇴하여 위나라에 멸망하였으며, 국력의 약세와 내부 문제로 멸망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는다. - 후베이성의 역사 - 남당
남당은 오대십국 시대 강남을 중심으로 서지고(이병)가 건국하여 당을 계승했다는 명분으로 성립되었으나, 이경과 이유 시대에 문화적,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음에도 후주와 송의 압력으로 쇠퇴하여 송에 멸망, 문화적 유산과 역사적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 안후이성의 역사 - 남당
남당은 오대십국 시대 강남을 중심으로 서지고(이병)가 건국하여 당을 계승했다는 명분으로 성립되었으나, 이경과 이유 시대에 문화적,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음에도 후주와 송의 압력으로 쇠퇴하여 송에 멸망, 문화적 유산과 역사적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 안후이성의 역사 - 강남도 (당)
강남도는 당나라 시대 중국 남부의 광대한 지역을 관할했던 행정구역으로, 733년 강남동도와 강남서도로 분할되었으며, 당나라 말기에는 절도사와 관찰사들이 등장하여 후대 봉건 체제에 영향을 미쳤다.
오 (십국) - [옛 나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국명 | 오(吳) |
다른 표기 | 회남 홍농 남오 강도 |
존속 기간 | 907년 ~ 937년 |
정치 체제 | 군주제 |
역사 | |
성립 | 당나라 멸망 |
주요 사건 | 양융연, 왕 즉위 및 연호 제정 (919년) |
멸망 | 남당에 의해 멸망 |
이전 | 당나라의 통치 하에 오나라 건국 (902년) |
이후 | 남당 |
영토 | |
![]() | |
수도 | |
수도 | 광릉 (강도) |
통치자 | |
군주 칭호 | 왕, 황제 |
양행밀 | 902년 ~ 905년 (무충왕) |
양악 | 905년 ~ 908년 (경왕) |
양융연 | 908년 ~ 920년 (선왕) |
양부 | 920년 ~ 937년 (예제) |
양워 | 907년 ~ 908년 (왕자) |
양룽옌 | 908년 ~ 921년 (왕) |
양푸 | 921년 ~ 937년 (황제) |
언어 및 화폐 | |
공용어 | 중국어 (중세 중국어) |
화폐 | 중국 주화 중국 동전 |
현재 국가 | |
현재 국가 | 중국 |
2. 역사
당나라 말기의 혼란 속에서 성장한 양행밀은 902년 당나라로부터 오왕에 봉해지면서 오나라를 건국했다. 양행밀은 당나라의 신하로서의 입장을 고수하며 당나라의 연호를 사용했지만, 실제로는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했다. 양행밀 사후, 권력은 그의 친위 군단이었던 흑운도의 지휘관 서온에게 넘어갔다. 서온은 양행밀의 아들들을 차례로 옹립하고 제거하며 권력을 장악했고, 937년 그의 양자 서지고(후의 이변)가 양보로부터 선양을 받아 제(齊)나라를 건국하면서 오나라는 멸망했다.[1] 이후 제나라는 국호를 당(남당)으로 고쳤다.[1]
2. 1. 건국 배경
당나라 말 혼란기에 양행밀은 군도에서 시작하여 군에 들어가 무뢰한들을 규합하여 고향인 노주 합비현(현재의 안후이성 합비시 창펑현)을 점령했다. 당나라는 회유책으로 그를 노주 자사로 임명하였다. 892년 양행밀은 양주를 점령하고 회남 절도사가 되었다.이후 장강 중류 지역을 장악하여 세력을 키웠고, 남하하는 주전충 (후량 건국 이전)과 회하를 경계로 대립했다. 절강을 근거지로 한 오월과 소주를 두고 다투었으나 패배하여 소주는 오월의 것이 되었다.
902년, 당나라는 양행밀을 '''오왕'''으로 봉했다. 양행밀은 자립했지만, 당나라 신하로서의 입장을 고수하며 죽을 때까지 당나라 연호를 사용했다.
양행밀의 주요 군사력은 '흑운도'라는 친위 군단이었다. 흑운도는 군도 세력과 당나라 잔존병으로 구성되었으며, 검은 갑옷을 입었다. 흑운도의 지휘관 서온과 장호가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2. 2. 양행밀 사후 권력 투쟁
905년 양행밀이 사망하자 장남 양악이 뒤를 이었다.[1] 양악은 오왕이었으나 실제로는 서온의 완전한 괴뢰였으며, 괴뢰 상태에서 벗어나려다가 908년에 암살당했다.[1]908년, 서온은 흑운도의 동료인 장호를 제거하고 오나라의 권력을 혼자 장악한 뒤, 양악의 동생 양융연을 다음 오왕으로 즉위시켰다. 이때 양융연도 괴뢰 오왕으로서 서온에게 조종당했다.[1] 920년 양융연이 죽자 서온은 동생 양보를 다음 오왕으로 옹립했다. 서온은 양보로부터 오왕의 지위를 선양받을 생각이었지만, 927년에 야망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했다.[1]
2. 3. 서온의 집권과 오나라 멸망
905년 양행밀이 죽자 장남 양악이 옹립되었으나, 실권은 서온과 장호에게 있었다.[1] 양악은 괴뢰에서 벗어나려다 908년 암살당했고, 동생 양융연이 옹립되었다.[1]그해 서온은 장호를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 918년 양융연을 오국왕으로 삼고 자신은 태사가 되었다.[1] 919년 양융연은 스스로 오의 왕을 선포하고 새로운 연호를 제정하여, 처음으로 오가 공식적으로 주권 국가임을 선언했다.[1] 920년 양융연이 죽자 동생 양부가 옹립되었고, 서온은 선양을 준비했으나 927년 사망했다.[1]
서온의 양자 서지고가 권력을 계승, 937년 양부를 황제로 즉위시킨 후 선양받아 제(齊)나라를 건국했다.[1] 이후 국호를 당(남당)으로 고쳤다.[1]
3. 역대 군주
대수 | 시호 | 추존호 | 이름 | 자 | 생몰년도 | 재위 기간 | 비고 |
---|---|---|---|---|---|---|---|
1 | 무충왕 | 태조 무제 | 양행밀 | 화원 | 852년 - 905년 | 902년 - 905년 | |
2 | 경왕 | 열조 경제 | 양악 | 승천 | 886년 - 908년 | 905년 - 908년 | 양행밀의 장남 |
3 | 선왕 | 고조 선제 | 양륭연 | 홍원 | 897년 - 920년 | 908년 - 920년 | 양행밀의 차남 |
4 | 예제 | 양보 | 901년 - 938년 | 920년 - 937년 | 양행밀의 4남 |
4. 오나라 및 남당 가계도
5. 영역
오(吳)는 광릉(현재의 양저우)을 수도로 삼았으며, 현재의 안후이 중부 및 남부, 장쑤 중부 및 남부, 장시 대부분, 후베이 동부를 관할했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