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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요스 콘딜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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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요르요스 콘딜리스는 그리스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군 경력을 시작하여 여러 전쟁에 참전하고 베니젤로스파를 지지했다. 1920년 망명 후 1922년 혁명 이후 소장으로 복귀했으며, 정치에 입문하여 급진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그는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고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전복했으며, 우경화와 함께 군주제 복고를 추진했다. 1935년 섭정으로 공화국을 폐지하고 국민 투표를 통해 요르요스 2세의 왕정 복고를 이끌었지만, 국왕과의 갈등으로 사임하고 1936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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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요스 콘딜리스
기본 정보
게오르기오스 콘딜리스, 1919년경
게오르기오스 콘딜리스, 1919년경
이름게오르기오스 콘딜리스
원어 이름(게오르기오스 콘딜리스)
별칭'천둥 (케라우노스)'
국적그리스
출생일1878년 8월 14일
출생지프루소스, 그리스 왕국
사망일1936년 2월 1일 (57세)
사망지아테네, 그리스 왕국
정치 경력
정당국가 민주당
군사 경력
소속그리스 왕국
복무 기간1896년–1923년
계급[[File:GR-Army-OF8-1912.svg|15px]] 중장
참전그리스-튀르크 전쟁 (1897년)
크레타 반란 (1897-1898)
마케도니아 투쟁
발칸 전쟁
제1차 발칸 전쟁
사란타포로 전투
예니제 전투
제2차 발칸 전쟁
킬키스-라하나스 전투
크레스나 협곡 전투
제1차 세계 대전
마케도니아 전선
스크라디레겐 전투
러시아 내전
러시아 내전 연합군 개입
남부 전선
남러시아 개입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침공
그리스-튀르크 전쟁 (1919-1922)
레오나르도풀로스-가르갈리디스 쿠데타 시도
훈장[[File:Order of the Redeemer Ribbon bar.svg|30px]] 구원자 훈장
[[File:GRE Order of George I - Member or Silver Cross BAR.png|30px]] 게오르기오스 1세 훈장
[[File:GRE War Cross 1917 1st class ribbon.svg|30px]] 전쟁 십자훈장
[[File:Greek Medal of Military merit ribbon.png|30px]] 군사 공로 훈장
[[File:Legion Honneur Chevalier ribbon.svg|30px]] 레지옹 도뇌르 훈장
[[File:Croix de Guerre 1914-1918 ribbon.svg|30px]] 크루아 드 게르
[[File:Dso-ribbon.svg|30px]] 수훈 근무 훈장
[[File:SRB-SHS-YUG Orden Belog Orla sa macevima Kavalir BAR.svg|30px]] 백수리 훈장
[[File:Bravery Medal Milos Obilic, 1913 rib.png|30px]] 용맹 훈장
정치 직책
그리스 섭정임기 시작: 1935년 10월 10일
임기 종료: 1935년 11월 25일
총리본인
전임알렉산드로스 제미스 (그리스 대통령으로서)
후임요르요스 2세 (헬라스 국왕으로서)
그리스의 총리임기 시작: 1935년 10월 10일
임기 종료: 1935년 11월 30일
군주요르요스 2세 (1935년 11월)
섭정본인 (1935년 10월 - 11월)
전임파나이스 찰다리스
후임콘스탄티노스 데메르치스
대통령파블로스 쿤투리오티스
전임아타나시오스 에프탁시아스
후임알렉산드로스 제미스
임기 시작1926년 8월 23일
임기 종료1926년 12월 4일
그리스의 부총리임기 시작: 1935년 4월 5일
임기 종료: 1935년 10월 10일
대통령알렉산드로스 제미스
총리파나이스 찰다리스
전임안드레아스 미할라코풀로스
후임요안니스 테오토키스
해군 장관임기 시작: 1935년 10월 10일
임기 종료: 1935년 10월 16일
군주요르요스 2세
총리본인
전임소포클리스 두스마니스
후임요르요스 랄리스
임기 시작1926년 8월 26일
임기 종료1926년 12월 4일
대통령파블로스 쿤투리오티스
총리본인
전임요안니스 레오니다스
후임알렉산드로스 카나리스
국방부 장관임기 시작: 1933년 3월 10일
임기 종료: 1935년 10월 10일
대통령알렉산드로스 제미스
총리파나이스 찰다리스
전임알렉산드로스 오토네오스
후임알렉산드로스 파파고스
임기 시작1932년 11월 4일
임기 종료1933년 1월 16일
대통령알렉산드로스 제미스
총리파나이스 찰다리스
전임테오도로스 차비니스
후임게오르기오스 카테차키스
임기 시작1926년 8월 26일
임기 종료1926년 12월 4일
대통령파블로스 쿤투리오티스
총리본인
전임하라람보스 체룰리스
후임알렉산드로스 마자라키스-아이니안
임기 시작1924년 3월 12일
임기 종료1924년 6월 9일
대통령파블로스 쿤투리오티스
총리알렉산드로스 파파나스타시우
전임콘스탄티노스 곤디카스
후임테오도로스 팡갈로스
내무부 장관임기 시작: 1924년 10월 7일
임기 종료: 1925년 6월 15일
대통령파블로스 쿤투리오티스
총리안드레아스 미할라코풀로스
전임게오르기오스 루소스
후임게오르기오스 마리스

2. 군사 경력

콘딜리스는 1896년 크레타 원정군에 자원 입대하면서 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1] 이후 장교로 임관하여 그리스 마케도니아 투쟁 (1904–1908)에 참여했으며, 발칸 전쟁 (1912–1913) 중 대위로 진급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국가 방위 운동을 지지했으며, 할키디키에서 친 왕당파 반란을 잔혹하게 진압하여(1916년 9월) 중령으로 진급했다.[1] 베니젤로스파였던 그는 1920년 콘스탄티노스 1세 국왕의 복귀에 반대하여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도망쳐 "민주 방위" (Δημοκρατική Άμυνα)를 조직했다. 1922년 혁명 이후 소장으로 복귀하여 1923년 레오나르도풀로스-가르갈리디스 쿠데타 시도를 진압했다.

2. 1. 초기 군 경력

콘딜리스는 프루소스에서 태어났다. 1896년 크레타에서 벌어진 봉기에 자원 입대하여 오스만 제국에 맞서 그리스 원정군과 함께 싸웠다.[1] 이후 장교로 임관하여 그리스 마케도니아 투쟁 (1904–1908) 기간 동안 자신의 게릴라 부대를 이끌고 활약했으며, 발칸 전쟁 (1912–1913)에서는 대위로 참전했다.

마케도니아 투쟁 중의 게오르요스 콘딜리스

2. 2. 제1차 세계 대전과 그 이후

콘딜리스는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국가 방위 운동을 지지했다. 그는 할키디키에서 친 왕당파 반란을 잔혹하게 진압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으며(1916년 9월),[1] 중령으로 진급했다. 확고한 베니젤로스파였던 그는 1920년 콘스탄티노스 1세 국왕의 복귀에 반대하여 다른 베니젤로스파 장교들과 함께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민주 방위" (Δημοκρατική Άμυνα)를 조직했다. 그는 1922년 혁명 이후 소장으로 복귀하여 1923년 레오나르도풀로스-가르갈리디스 쿠데타 시도를 진압하고 군에서 은퇴한 후 정치에 참여했다.

3. 정치 경력

콘딜리스는 군에서 은퇴한 후 정치에 입문하여 급진적인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1932년 인민당 정부를 지지하는 대가로 국방 장관이 되었고, 1933년 인민당이 재선된 후에도 이 자리를 유지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1935년 3월 베니젤로스파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2] 반란 직후 콘딜리스는 그리스의 실세가 되어 공화주의 성향의 많은 군인과 공무원을 해고했으며, 베니젤로스에게는 부재 중에 사형을 선고했다.[2]

3. 1. 초기 정치 활동

그는 1923년 선거에서 로도페 선거구의 의원으로 처음에는 민주 연합 소속으로 선출되었으며, 이후 국민 공화당(Εθνικό Δημοκρατικό Κόμμα)을 창당했고, 1928년 국민 급진당(Εθνικό Ριζοσπαστικό Κόμμα)으로 이름을 변경했다.[2] 1924년 3월부터 6월까지 국방 장관을 지냈다.[2] 1926년 8월 24일, 무혈 쿠데타로 테오도로스 판갈로스의 독재 정권을 전복하고 정부를 구성했으며, 11월에 선거를 실시한다고 발표했으나, 그의 정당은 이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2] 1928년 8월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그의 정당 후보 9명을 의원으로 선출했고, 그는 카발라에서 당선되었다.[2]

3. 2. 판갈로스 독재 정권 전복

1926년 8월 24일, 요르요스 콘딜리스는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테오도로스 판갈로스의 독재 정권을 무너뜨렸다.[2] 콘딜리스는 정부를 구성하고 11월에 총선을 실시한다고 발표했지만, 자신의 정당은 이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2]

3. 3. 우경화와 군주제 복고

1930년대에 콘딜리스는 점차 우익으로 이동했다. 1932년 인민당 정부를 지지하는 대가로 국방 장관이 되었고, 1933년 인민당이 재선된 후에도 그 자리를 유지했다.[2] 그는 국방 장관으로서 1935년 3월 베니젤로스파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2] 반란 직후 콘딜리스는 그리스의 실세가 되었다. 그는 공화주의 성향의 많은 군인과 공무원을 해고했으며, 베니젤로스에게는 부재 중에 사형을 선고했다.[2]

이 무렵 콘딜리스는 군주제 복원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총리 파나기스 차르다리스의 국민 투표 실시 요구에 반대했다.[2] 1935년 10월 10일, 콘딜리스는 다른 여러 장교들과 함께 차르다리스를 불러 사임을 강요했다. 콘딜리스는 알렉산드로스 자이미스 대통령에게 자신을 새로운 총리로 임명하도록 강요했다. 그날 늦게 콘딜리스는 자이미스에게 사임을 강요하고, 스스로 섭정을 선언하고, 공화국을 폐지했으며, 군주제 복귀를 위한 11월 3일 국민 투표를 실시했다.[2]

공식 집계에 따르면 유권자의 98%가 요르요스 2세의 복귀를 지지했는데, 이는 부정행위로 얻었을 가능성이 높은 의심스러울 정도로 높은 수치였다.[2] 실제로 투표는 비밀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유권자들은 군주제를 지지하면 파란색 종이를 투표함에 넣고, 공화국을 지지하면 빨간색 종이를 넣도록 했다. 공화국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구타당할 위험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반대" 투표를 하는 것은 용감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2] 이 무렵 콘딜리스는 극우로 돌아서서 파시즘에 대한 공개적인 동조를 표명했다.[2]

3. 4. 왕정 복고 이후와 사망

요르요스 2세는 1935년 11월 25일 그리스로 돌아와 콘딜리스를 총리로 유임시켰다. 그러나 콘딜리스는 국왕과 갈등을 빚고 5일 후에 사임했다.[2] 1936년 1월 총선에서 요안니스 랄리스와 협력하여 15명의 의원을 당선시켰으나,[2] 얼마 지나지 않아 1936년 2월 1일 아테네에서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2] 그의 조카인 요르요스 콘딜리스 주니어는 그리스 육군 장군이 되어 독일의 그리스 침공 당시 추축국에 대항하여 싸웠다.

4. 유산

요르요스 콘딜리스는 그리스 근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친 군인이자 정치인이었다. 1926년 쿠데타를 통해 테오도로스 판갈로스의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1935년에는 왕정 복고를 주도했다. 그러나 그의 쿠데타와 왕정 복고는 그리스 정치의 불안정성을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는다.[2]

그는 베니토 무솔리니를 모델로 삼아 요르요스 2세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자신이 실권을 쥐려고 했으나, 국왕과의 갈등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2] 그는 1936년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조카 요르요스 콘딜리스 주니어는 그리스 육군 장군으로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독일의 그리스 침공에 맞서 싸웠다. 콘딜리스는 세르비아 백색 독수리 훈장을 수여받았다.[3]

참조

[1] 서적 1915, Ο ΕΘΝΙΚΟΣ ΔΙΧΑΣΜΟΣ Παττάκη
[2] 뉴스 By the Grace of God https://web.archive.[...] Time (magazine) 1935-11-18
[3] 서적 Slava i čast: Odlikovanja među Srbima, Srbi među odlikovanjima Službeni Glasnik
[4] 문서 섭정이나 임시 대통령
[5] 문서 군사 정권이 임명한 사람
[6] 문서 1967년에 그리스를 떠났다. 1973년에 파파도풀로스가 왕정을 폐지할 때까지 법적으로 국가 원수였다.
[7] 문서 1973~1974년에 군사 정권이 선포한 공화국은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8] 문서 아테네를 장악하지 못한 대립 정부의 수반
[9] 문서 군사/독재 정권 수반
[10] 문서 비상시 또는 과도 정부 수반
[11] 문서 "[[추축국 점령기의 그리스|제2차 세계 대전 때 추축국이 그리스를 점령할 당시]](1941~1944) 점령군에 협조한 [[그리스국]]의 수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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