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마이야 왕조의 히스파니아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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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마이야 왕조의 히스파니아 정복은 8세기 초에 일어난 이베리아 반도 정복 사건이다. 서고트 왕국은 내부 분열로 인해 정복에 취약한 상태였고, 탕헤르의 총독 타리크 이븐 지야드가 이끄는 무슬림 군대는 711년 과달레테 전투에서 로데릭 왕의 서고트족 군대를 격파했다. 이후 무사 이븐 누사이르의 군대가 합류하여 이베리아 반도를 빠르게 점령해 나갔다. 정복 이후 우마이야 왕조는 알-안달루스라는 이름으로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했으며, 756년 압드 알-라흐만 1세가 코르도바에 독립적인 에미르국을 세우면서 아바스 왕조로부터 사실상 독립했다. 알-안달루스는 중앙 집권화와 동질화를 겪었지만, 11세기에 여러 타이파로 분열되었고, 알모라비드 왕조와 알모하드 왕조의 지배를 받다가 1492년 그라나다 에미레이트가 카스티야와 아라곤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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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이야 왕조의 히스파니아 정복 - [전쟁]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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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분쟁 | 우마이야 칼리파조의 이베리아 반도 정복 |
일부 | 초기 이슬람 정복 |
시기 | 711년 – 720년대 |
장소 | 이베리아 반도 |
결과 | 무슬림의 승리, 알안달루스의 건립 |
교전 세력 | |
교전 세력 1 | 우마이야 칼리파조 |
교전 세력 2 | 서고트 왕국, 아스투리아스 왕국 |
지휘관 및 지도자 | |
우마이야 칼리파조 | 알왈리드 1세, 무사 이븐 누사이르, 타리크 이븐 지야드, 타리프 이븐 말리크, 압드 알아지즈 이븐 무사, 우스만 이븐 나이사, 율리아누스 |
서고트 왕국, 아스투리아스 왕국 | 로데리크(사망), 테오데미르(항복), 아킬라 2세(사망), 오파스(실종), 아르도, 펠라기우스, 페드로 |
기타 정보 |
2. 우마이야 왕조의 이베리아 반도 정복 (711년 ~ 756년)
우마이야 왕조의 히스파니아 정복은 8세기 초 이베리아 반도에서 일어난 일련의 군사적, 정치적 사건이다. 이 정복의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알 타바리는 칼리프 우트만이 히스파니아를 거쳐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가는 길을 언급했다고 전한다.[5] 월터 케기는 타바리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며, 지중해 서쪽 지역 정복 동기는 군사적, 정치적, 종교적 기회 때문이라고 주장했다.[5]
서고트 왕국은 약 300년 동안 히스파니아를 통치했으나,[17] 정복 당시 상류층은 분열되기 시작했고[6] 권력 승계와 유지에 많은 문제를 겪었다.[6] 이는 서고트족이 인구의 1~2%에 불과하여[6] 반란을 통제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당시 통치자는 로데릭 왕이었지만,[11] 왕위 계승 과정은 불분명하다. 754년 연대기는 로데릭을 속임수로 다른 고트족의 충성을 얻은 찬탈자로 묘사한다. 전임자 비티자의 아들 아킬라 2세와의 분쟁 기록과, 아킬라 2세를 언급하고 로데릭을 생략한 후기 왕조 목록은 당시 내전 상황을 보여준다. 화폐학 증거는 여러 주화가 주조되면서 왕권의 분열을 시사하며, 아킬라 2세는 713년경까지 타라코넨세(에브로 분지)와 셉티마니아의 왕으로 남아 있었다.
세우타 백작 율리아누스의 아내 또는 딸이 로데릭에게 강간당했고, 탕헤르로부터 도움을 구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초기 기록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7] 무사 이븐 누사이르의 히스파니아에 대한 첫 번째 정찰 임무는 "훌륭하고 아름다운" 보고를 가져왔고, 이는 무슬림의 히스파니아 침략 욕구를 높였다.[8] 710년 여러 차례의 습격 중 하나에서 무슬림은 "본토로 여러 차례 침입하여 풍부한 전리품과 여러 포로를 얻었는데, 그들이 너무 잘생겨서 무사와 그의 동료들은 그들을 본 적이 없었다".[8]
900년 후에 쓰여진 아흐마드 알-마카리의 연대기에 따르면, 히스파니아 원주민들은 베르베르족을 야만인으로 여겼고, 그들의 침략을 두려워했다.[8][9]
2. 1. 정복 배경
우마이야 왕조의 히스파니아 정복은 8세기 초 이베리아 반도에서 일어난 일련의 군사적, 정치적 사건이다. 이 정복의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알 타바리는 칼리프 우트만이 히스파니아를 거쳐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가는 길을 언급했다고 전한다.[5] 월터 케기는 타바리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며, 지중해 서쪽 지역 정복 동기는 군사적, 정치적, 종교적 기회 때문이라고 주장했다.[5]서고트 왕국은 약 300년 동안 히스파니아를 통치했으나,[17] 정복 당시 상류층은 분열되기 시작했고[6] 권력 승계와 유지에 많은 문제를 겪었다.[6] 이는 서고트족이 인구의 1~2%에 불과하여[6] 반란을 통제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당시 통치자는 로데릭 왕이었지만,[11] 왕위 계승 과정은 불분명하다. 754년 연대기는 로데릭을 속임수로 다른 고트족의 충성을 얻은 찬탈자로 묘사한다. 전임자 비티자의 아들 아킬라 2세와의 분쟁 기록과, 아킬라 2세를 언급하고 로데릭을 생략한 후기 왕조 목록은 당시 내전 상황을 보여준다. 화폐학 증거는 여러 주화가 주조되면서 왕권의 분열을 시사하며, 아킬라 2세는 713년경까지 타라코넨세(에브로 분지)와 셉티마니아의 왕으로 남아 있었다.
세우타 백작 율리아누스의 아내 또는 딸이 로데릭에게 강간당했고, 탕헤르로부터 도움을 구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초기 기록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7] 무사 이븐 누사이르의 히스파니아에 대한 첫 번째 정찰 임무는 "훌륭하고 아름다운" 보고를 가져왔고, 이는 무슬림의 히스파니아 침략 욕구를 높였다.[8] 710년 여러 차례의 습격 중 하나에서 무슬림은 "본토로 여러 차례 침입하여 풍부한 전리품과 여러 포로를 얻었는데, 그들이 너무 잘생겨서 무사와 그의 동료들은 그들을 본 적이 없었다".[8]
900년 후에 쓰여진 아흐마드 알-마카리의 연대기에 따르면, 히스파니아 원주민들은 베르베르족을 야만인으로 여겼고, 그들의 침략을 두려워했다.[8][9]
2. 2. 정복 과정
탕헤르의 총독 타리크 이븐 지야드는 711년에 북아프리카에서 약 7,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스페인 남부로 진군했다.[10][11] 이븐 압드 알-하캄은 150년 후에, "안달루스의 사람들은 그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았는데, 그들이 건너고 다시 건너는 배들이 그들을 위해 앞뒤로 운항하는 무역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보고한다. 그들은 그해 7월에 과달레테 전투에서 로데릭왕의 비시고트족 군대를 결정적으로 격파했다.[12][13] 이 전투에 대한 유일한 동시대 기록인 ''754년 연대기''는 "그[로데릭]와 함께 왕위를 희망하며 사기적으로 경쟁심에서 나온 고트족의 모든 군대가 도망쳤다"고 언급했다. 전투의 위치는 명확하지 않지만, 아마도 과달레테 강이었을 것이다. 로데릭은 이 전투에서 사망한 것으로 여겨지며, 이 치명적인 패배는 비시고트족을 혼란에 빠뜨렸다.[19]712년, 타리크의 군대는 그의 상관이자 왈리인 무사 이븐 누사이어의 병력에 의해 보강되었고, 그는 두 번째 침공을 계획했다. 두 번째 침공은 주로 아랍 군인 18,000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이들은 신속하게 세비야를 점령한 다음 메리다에서 로데릭의 지지자들을 격파하고 탈라베라에서 타리크의 군대와 합류했다. 이듬해 연합군은 갈리시아와 북동쪽으로 진격하여 레온, 아스토르가 및 사라고사를 점령했다.[12][13] 714년, 무사 이븐 누사이어는 에브로 강을 따라 북서쪽으로 진군하여 서부 바스크 지역과 칸타브리아 산맥을 갈라시아까지 정복했으며, 이렇다 할 반대나 증언은 없었다.
무슬림 역사가 알-타바리에 따르면,[14] 이베리아는 약 60년 전에 우트만 (라시둔 시대)의 칼리파 시대에 처음 침략받았다. 13세기 또 다른 저명한 무슬림 역사가인 이븐 카시르는[15] 같은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32 AH (654 CE)에 압드 알라 빈 나피 알 후세인과 압드 알라 빈 나피 알 압드 알 카이스[16]가 이끄는 원정을 지적했지만, 이 원정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다.
타리크가 이끈 첫 번째 원정은 주로 무슬림의 영향을 받은 지 얼마 안 된 베르베르인들로 구성되었다. ''754년 연대기''와 후대의 무슬림 자료는 이전 해의 습격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며, 타리크의 군대는 결정적인 전투 전에 얼마 동안 주둔했을 수 있다. 754년 연대기는 많은 마을 사람들이 도시를 방어하기보다는 언덕으로 도망쳤다고 하는데, 이는 이것이 정부의 영구적인 변화가 아닌 임시 습격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음을 뒷받침할 수 있다.
이 무렵, 우마이야 군대는 팜플로나에 도착했고, 바스크 마을은 아랍 사령관들과 마을과 그 주민들을 존중하기로 한 타협안이 체결된 후 항복했는데, 이는 이베리아 반도의 많은 마을에서 흔한 관행이었다.[24]


2. 3. 초기 통치와 조약
713년, 압드 알-아지즈 이븐 무사는 무르시아를 거점으로 이베리아 남동부를 장악한 테오데미르 백작의 군대를 제압했다.[6] 테오데미르는 로데릭 왕이 패배한 후 권력 공백이 발생한 후 이 지역을 장악했고, 자신의 영토가 우마이야 왕조의 지배를 받는 자치 속국이 되는 조건부 항복에 서명했다.[6] 이 조약에 따르면 현지 통치자인 테오데미르는 무슬림 종주권을 인정하고 압드 알-아지즈에게 금전적 공물을 바치는 한 계속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6] 압드 알-아지즈는 자신의 군대가 테오데미르의 도시나 백성을 약탈하거나 "괴롭히지" 않겠다고 동의했으며, 이 합의는 7개의 도시로 확대되었다.[6]테오데미르와 맺은 조약은 이베리아 전체의 선례가 되었으며, 우마이야 군대에 항복한 도시들은 에브로 계곡에 근거지를 둔 무왈라드 바누 카시와 다른 백작과 지주들을 포함하여 비슷한 운명을 겪었다. 많은 주민들의 삶은 타리크와 무사의 원정 이전과 거의 같았다. 기독교 신념은 존중받았으며, 그 대가로 세금(''지즈야'')을 지불하고 우마이야 통치나 이슬람교에 반대하는 반역자들을 넘겨줄 것을 약속했다.

일부 도시(코르도바, 톨레도 등)는 우마이야 왕조에 의해 무조건적으로 공격받아 정복되었으며, 아랍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았다. 메리다는 우마이야의 진격에 오랫동안 저항했지만, 결국 712년 한여름에 정복되었다. 713년(또는 714년) 마지막 서고트 왕인 아르도는 셉티마니아와 아마도 동부 피레네 산맥과 타라코넨세 해안 지역을 실질적으로 통제했다.
이슬람 법은 새로운 통치자들의 모든 백성에게 적용되지 않았다. 기독교인들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자신들만의 서고트 법전(''포룸 유디쿰'')에 따라 계속 통치받았다. 대부분의 도시에서 민족 공동체는 분리된 상태로 유지되었으며, 새로 도착한 민족 집단(시리아인, 예멘인, 베르베르인 등)은 기존 도시 지역 외곽에 새로운 자치구를 건설했다. 그러나 이것은 우마이야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는 도시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코르도바에서는 대성당이 분할되어 기독교인과 무슬림의 종교적 요구를 충족시켰다. 이 상황은 압드 아르-라흐만의 남부 스페인 정복(756년)까지 약 40년 동안 지속되었다.
알 안달루스의 초기 총독(왈리)인 알-후르 이븐 압드 알-라흐만 알-사카피는 우마이야 칼리파조의 지배를 에브로 계곡과 이베리아 반도의 북동쪽 국경까지 확장하여 대부분의 영토를 평정하고 717년에 최초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셉티마니아로 진격했다. 그는 정복된 도시와 인구 중심지 근처에 주둔지를 설치하여 군대를 주둔시키고 민간 행정 관리(판관)를 파견함으로써 이베리아 반도에 우마이야 왕조의 민간 행정의 기초를 닦았다.
알-후르는 이전의 기독교 토지 소유주들에게 토지를 돌려주었는데, 이는 과거에 특정 지역이나 토지에 적용되었고 인두세(지즈야)가 아닌 세금인 베크티갈리아를 점점 더 부과함으로써 우마이야 총독과 다마스쿠스 칼리프의 수입을 크게 늘렸을 것이다. 의무적인 희사를 제외하고는 비무슬림만이 과세 대상이었다. 알-후르의 재임 이후 기간에는 알-삼 이븐 말리크 알-카울라니가 왈리로 재임하면서 아랍인들이 남부 셉티마니아에 정착했다. 나르본이 함락(720)되었고, 그가 이곳에 주둔하자마자 아랍 사령관은 툴루즈에 대한 공세를 이끌었다. 이 우마이야의 공세 또는 그 여파로 아르도 왕이 사망했다(721).
3. 알-안달루스의 성립과 발전 (756년 ~ 1031년)
3. 1. 우마이야 토후국 (756년 ~ 929년)

침략 초기, 군대는 북아프리카 북부 지역의 베르베르족과 서아시아 출신의 다양한 아랍인들로 구성되었다.[6] 이들은 우마이야 왕조의 깃발 아래 모였지만, 서로 섞이지 않고 별도의 도시와 자치구에 머물렀다. 베르베르족은 갈리시아(아스투리아스 포함 가능성)와 상부 변경(에브로 분지)에 주둔했지만, 아랍 통치자 하의 불만 (무슬림 베르베르족에게 세금을 부과하려는 시도 등)은 이베리아로 확산된 북아프리카에서의 반란을 촉발시켰다.[6] 730년에는 우트만 이븐 나이사 (무누자)가 동 피레네 산맥 (세레타냐)의 지배자로, 아키텐 공작 오도와 동맹을 맺어 코르도바에서 이탈하기도 했다.
내부 갈등은 알-안달루스에서 끊임없이 확장되는 우마이야 군사적 노력을 위협하거나 때로는 자극했다. 739년경, 프로방스에 대한 샤를 마르텔의 두 번째 개입 소식을 들은 우크바 이븐 알-하지는 남부의 베르베르족 반란을 처리하기 위해 하부 론으로의 원정을 취소해야 했다. 다음 해, 레온, 아스토르가 및 기타 북서부 전초 기지에 주둔한 베르베르족 수비대는 그들의 위치를 포기했고, 그들 중 일부는 심지어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베르베르족의 반란은 알-안달루스 전체를 휩쓸었고, "시리아" 준드(실제로는 예멘 아랍인)의 증원군이 소집되어 유혈 사태로 진압되었다. 742년 이후 아랍 사령관들은 강화되었고, 여러 아랍 파벌들이 번갈아 가며 직책을 수행하기로 합의했지만, 유수프 이븐 압드 알-라흐만 알-피흐리 (우마이야 왕조에 반대)가 756년 압드 알-라흐만 1세에게 패배하고 독립적인 우마이야 코르도바 토후국이 수립될 때까지 권력을 유지했다. 이 시기에 프랑크 왕 피핀이 안달루시아인으로부터 나르본을 점령했다 (759년).
알-안달루스에서 유수프와 압드 알-라흐만의 권력 다툼에서 우마이야 칼리파국의 주축이었던 "시리아" 군대가 분열되었다. 무다르와 카이스 부족 출신의 아랍인들은 유수프의 편을 들었고, 북아프리카 출신의 토착 아랍인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예멘 부대와 일부 베르베르족은 압드 알-라흐만의 편을 들었다. 756년까지 남부 및 중부 알-안달루스 (코르도바, 세비야)는 압드 알-라흐만의 손에 있었지만, 그가 상부 변경 (팜플로나, 사라고사 및 북동부 전체)을 지배하는 데는 25년이 더 걸렸다.
3. 2. 우마이야 칼리파국 (929년 ~ 1031년)
4. 분열과 쇠퇴 (1031년 ~ 1492년)
756년, 우마이야 왕조의 생존자 압드 알-라흐만 1세는 알-안달루스에 상륙하여 코르도바와 세비야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스스로를 "에미르" 또는 "말리크"라고 선포했다.[28] 이 사건 이후 남부 이베리아는 아바스 왕조 칼리파조로부터 ''법적으로'' 그리고 ''사실상'' 독립하게 되었다.[28] 압드 알-라흐만 1세는 11세기까지 존속된 독립 왕조를 창건했으나,[17] 이 왕조는 북부 기독교 왕국들의 확장에 맞서지 못하는 다양한 짧고 작은 에미레이트(''타이파'')에 의해 계승되었다. 알모라비드 왕조 (1086–1094)와 알모하드 왕조 (1146–1173)가 알-안달루스를 점령했고, 1269년에는 마린 왕조가 뒤를 이었지만, 무슬림 통치 영토의 분열을 막을 수 없었다.
압드 알-라흐만 시대 (788년 사망 전) 알-안달루스는 중앙 집권화와 느리지만 꾸준한 동질화를 겪었다. 정복 초기에 협상된 많은 도시와 지역의 자율적 지위는 778년까지 더 일찍 역전되었다.[29] 알-안달루스의 인구, 특히 권력 분점을 열망하는 지역 귀족들은 이슬람교와 아랍어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29] 그러나 인구의 대다수는 모사라베 의식을 사용하는 기독교인으로 남아 있었고, 라틴어 (모사라베어)는 11세기까지 주요 언어로 남아 있었다.
마지막 무슬림 에미레이트인 그라나다 에미레이트는 1492년 카스티야 (아스투리아스의 후계자)와 아라곤의 군대에 의해 이사벨과 페르난도에 의해 패배했다. 마지막 무슬림계 스페인인들의 추방은 1614년에 일어났다.
4. 1. 타이파 시대 (1031년 ~ 1086년)
4. 2. 알모라비드 왕조와 알모하드 왕조 (1086년 ~ 1238년)
4. 3. 그라나다 왕국 (1238년 ~ 1492년)
5. 알-안달루스의 유산
우마이야 칼리파조의 지배를 받던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은 알-안달루스로 알려졌다.[17] 756년, 압드 알-라흐만 1세는 코르도바와 세비야를 중심으로 독립적인 에미르국을 세웠다.[28] 압드 알-라흐만 1세와 그의 후계자들은 아바스 왕조보다 자신들이 우마이야 칼리파조의 정당한 후계자라고 생각했다.[28]
압드 알-라흐만 1세 시대에 알-안달루스는 중앙 집권화와 동질화를 겪었다. 많은 도시와 지역의 자율적 지위는 778년까지 더 일찍 역전되었다. 스페인 채용설 논쟁 (8세기 후반) 동안 히스파니아 교회는 로마 교회와 갈등을 겪었다. 알-안달루스의 인구는 이슬람교와 아랍어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지만,[29] 대다수는 모사라베 의식을 사용하는 기독교인으로 남아 있었고, 모사라베어는 11세기까지 주요 언어로 남아 있었다.
압드 알-라흐만 1세가 세운 왕조는 11세기까지 존속했지만,[17] 북부 기독교 왕국들의 확장에 맞서지 못하고 여러 타이파로 분열되었다. 알모라비드 왕조와 알모하드 왕조가 알-안달루스를 점령했지만, 무슬림 통치 영토의 분열은 막을 수 없었다. 1492년 그라나다 에미레이트가 카스티야와 아라곤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고, 1614년 무슬림계 스페인인들이 추방되면서 알-안달루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6. 연표
알 안달루스의 역사의 주요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 710년 - 타리크 이븐 지야드가 이끄는 무슬림 군대가 지브롤터에 상륙했다.
- 711년 - 무사 이븐 누사르가 타리크를 이베리아 반도로 파견했다.
- 711년 7월 19일 - 과달레테 전투에서 로데릭 왕의 서고트 군대가 패배하고, 로데릭 왕이 전사했다.
- 712년 - 과달레테 전투 이후 무사 이븐 누사르가 타리크와 합류하여 여러 도시를 공격했다. 아부 조라 타리프가 알헤시라스에 상륙했다.
- 713년 - 테우디미르가 조건부 항복하여 무르시아 지역의 영주로 남게 되었다.
- 715년 - 압드 알-아지즈 이븐 무사가 안달루스의 첫 번째 왈리로 임명되고 에길로나와 결혼했다. 세비야가 수도가 되었다.
- 717~718년 - 알-후르 이븐 압드 알-라흐만 알-사카피가 셉티마니아로 첫 군사 작전을 시작했다.
- 719년 - 알-삼흐 이븐 말리크 알-카울라니가 총독의 자리를 세비야에서 코르도바로 옮겼다. 바르셀로나와 나르본이 함락되었다.
- 721년 - 툴루즈 전투에서 우마이야 군대가 오도의 아키타니아 군대에게 패배했다.
- 722년 - 코바동가 전투에서 우마이야 순찰대가 펠라기우스에게 패배했다.
- 725년 - 안바사 이븐 수하임 알-칼비가 셉티마니아를 정복하고 로 아래쪽을 습격했다.
- 731년 - 무누자가 체르다냐에서 압둘 라흐만 알 가피키에게 패배했다.
- 732년 봄 - 가론 강 전투에서 알 가피키가 이끄는 원정대가 오도 공작을 격파했다.
- 732년 10월 - 투르 전투에서 알 가피키가 샤를 마르텔에게 패배했다.
- 734년 - 마우론투스 백작이 우마이야 군대를 아를르, 아비뇽, 마르세유로 소환했다.
- 740–742년 - 이베리아 북부의 베르베르족이 베르베르 반란에 가담했다.
- 743–757년 - 아스투리아스의 알폰소 1세가 두에로 강과 에브로 강 사이의 영토를 습격했다.
- 743년 - 무다리족과 예멘족이 번갈아 가며 알-안달루스를 통치하기로 합의했다.
- 747년 - 우크바 이븐 나피아의 후손인 유수프 이븐 압드 알-라흐만 알-피흐리 총독이 자율적으로 통치했다.
- 755년 - 사라고사의 반란이 진압되었고, 유수프의 분견대가 바스크족에게 팜플로나 근처에서 전멸했다.
- 755년 - 압드 알-라흐만 알 다켈이 남부 해안에 상륙하여 그라나다, 세비야, 코르도바를 점령했다.
- 756년 - 압드 알-라흐만 1세가 코르도바의 독립적인 우마이야 에미르가 되었다.
- 759년 - 나르본이 피핀 3세에게 함락되었다.
- 763년 - 친 아바스 군대가 카르모나에서 압드 알-라흐만 1세에게 패배했다.
- 778년 - 샤를마뉴가 사라고사에서 격퇴되었다.
- 779년 - 압드 알-라흐만 1세가 상부 변경 지역으로 원정을 가서 사라고사를 정복했다.
- 781년 - 팜플로나와 피레네 산맥 남쪽의 바스크 영주들이 정복되었다. 알 안달루스가 통일되었다.
- 788년 - 압드 알-라흐만 1세가 사망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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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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