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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경상좌도병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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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울산 경상좌도병영성은 조선 태종 17년(1417년)에 축조된 타원형의 성으로,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의 영성이었다. 세종 때 국방력 강화를 위해 옹성, 적대, 해자 등 방어시설이 설치되었으며,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성의 둘레는 약 1.2km, 높이는 약 3.7m였다. 2011년 울산병영성에서 울산 경상좌도병영성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서문지 일대 발굴 조사를 통해 성벽 축조 방법의 변화와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으며, 2015년 서문지 정비공사를 통해 성곽과 치성, 주변 환경이 정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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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경상좌도병영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위치 정보
기본 정보
이름울산 경상좌도병영성
영어 이름Military Headquarters of Gyeongsangjwa-do Province, Ulsan
발굴조사전상태(동문지주변)
발굴조사전상태(동문지주변)
유형사적
지정 번호320
지정일1987년 7월 18일
주소울산광역시 중구 서동 149-8번지 외
시대조선시대(1417)
관리중구
면적72,895.9m²
문화재청 ID13,03200000,26
꼬리표울산 서동

2. 역사

울산 경상좌도병영성은 조선시대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의 영성(營城)으로, 조선시대 성곽 연구에 중요한 유적이다.[1] 1987년 울산병영성에서 2011년 7월 28일 울산 경상좌도병영성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1]

2. 1. 축성 및 초기 역사

경상좌도 병마절도사가 머물던 성으로, 조선 태종 17년(1417년)에 쌓았다. 해발 45m 이하의 낮은 구릉을 이용해 골짜기를 두른 타원형의 성이다.[1]

초기에는 성벽 위에서 담처럼 생겨 몸을 숨긴 채 총이나 활을 쏘는 시설인 여장을 비롯한 기본적인 시설만 갖추었다. 그 후 세종 때에 이르러 국방력 강화를 위해 성을 보호하고 공격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옹성, 적대, 해자 등 여러 방어시설을 설치했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당시 성의 둘레는 3,723척(약 1.2km)이고, 높이는 12척(약 3.7m)이며, 성 안에는 우물, 도랑, 창고 등이 있었다고 한다.[1]

3. 구조

울산 경상좌도병영성은 조선 태종 17년(1417)에 쌓은, 해발 45m 이하의 낮은 구릉을 이용해 골짜기를 두른 타원형의 성이다.[1]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당시 성의 둘레는 3,723척(약 1.2㎞)이고, 높이는 12척(약 3.7m)이었다.[1] 조선시대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의 영성(營城)이며, 조선시대 성곽 연구에 중요한 유적이다.[1]

3. 1. 주요 시설

경상좌도 병마절도사가 머물던 성에는 여러 방어 시설이 설치되었다. 초기에는 성벽 위에서 몸을 숨긴 채 총이나 활을 쏘는 시설인 여장 등 기본적인 시설만 갖추었다. 이후 세종 때 국방력 강화를 위해 성을 보호하고 공격력을 강화하기 위한 옹성, 적대, 해자 등 여러 방어 시설을 설치했다.[1]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당시 성 안에는 우물, 도랑, 창고 등이 있었다고 한다.[1]

4. 발굴 조사

울산 경상좌도병영성 서문지 일원에 대하여 2012년 6월부터 2013년 1월까지 약 400m 구간, 19796m2의 면적에 대한 시굴·발굴조사가 시행되었다. 조사 결과, 시기별로 성벽의 축조 방법이 달랐고 여러 차례 축조가 이루어진 것이 확인되었다. 또한 체성, 옹성[2], 치성[3] 3개소, 해자[4], 수혈 주거지, 긴 도랑(구상 유구) 등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5][6][7][8][9]

4. 1. 발굴 결과

2012년 6월부터 2013년 1월까지 약 400m 구간, 19796m2의 면적에 대하여 울산 경상좌도병영성 서문지 일원에 대한 시굴·발굴조사를 시행하였다. 조사 결과 시기별로 성벽의 축조 방법이 다르고, 여러 차례 축조가 이루어진 것이 확인되었다. 또 체성, 옹성[2], 치성[3] 3개소, 해자[4], 수혈 주거지, 긴 도랑(구상 유구) 등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5][6][7][8][9]

5. 정비 사업

서문지 정비공사에는 국비와 지방비를 포함 10억을 투입하여, 서문지에서 북문지 방향으로 162m 구간의 성곽과 치성 1개소를 정비하고, 주변 환경을 2015년 3월까지 완료할 예정이었다.[5]

5. 1. 정비 내용

서문지 정비공사에는 국비와 지방비를 포함 10억을 투입하여, 서문지에서 북문지 방향으로 162m 구간의 성곽과 치성 1개소를 정비하고, 마사토[10] 포장, 잔디 식재, 소목 정비 등 주변 환경을 2015년 3월까지 완료할 예정이었다.[5]

참조

[1] 문서 현지 안내문 인용
[2] 문서 "옹성"은 중요한 성문 밖이나 안쪽을 둘러막은 시설물로서 적이 직접 성문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할 목적으로 설치한다.
[3] 문서 "치성"은 성의 구조물의 일부로, 성벽 바깥으로 덧붙여서 쌓은 벽이다.
[4] 문서 "해자"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밖으로 둘러 파서 연못을 만든 곳이다.
[5] 뉴스 울산 경상좌도병영성 서문지 일원 정비공사 착수 문화재청 2014-09-25
[6] 간행물 '[제89집] 울산 경상좌도병영성 동문지 -울산 병영성 월성개나리아파트~동문지 정비사업구간 내 유적 발굴조사 보고서' https://www.udi.re.k[...]
[7] 문서 제80집+울산+경상좌도병영성+서문지_부분7
[8] 웹사이트 '[제101집] 울산 경상좌도병영성 동문지 주변 성곽Ⅱ' https://www.udi.re.k[...] 2019-09-23
[9] 웹사이트 '[제102집] 울산 경상좌도병영성 동문지Ⅱ' https://www.udi.re.k[...] 2019-09-23
[10] 문서 "마사토"는 일반적으로 화강암이 풍화되면서 흙으로 되어가는 과정의 풍화토로서 운동 공간 또는 산책로 등의 공간에 폭넓게 사용하는 포장재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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