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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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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원수부는 1899년 대한제국 선포 후 황제가 육해군을 통솔하기 위해 황궁 내에 설치한 기관이다. 대원수가 국방, 용병, 군령을 장악하고 군부와 각 부대를 지휘·감독하여 모든 군권을 직속으로 두었으나,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에 의해 명목상의 관제로 격하된 후 폐지되었다. 원수부에는 친위대, 시위대가 소속되었으며, 군무국, 검사국, 기록국, 회계국 등의 부서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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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부 - [정부기관]에 관한 문서
기관 정보
기관 명칭원수부
한자 표기元帥府
로마자 표기Wonsubu
대한제국 고종 황제
고종 황제, 원수부 수장
설립일1897년 2월
해체일1904년 9월
관할 국가대한제국
본부 위치서울
주요 관계자
수장고종 황제
기타
관련 법령대한제국 원수부 관제

2. 설치 배경 및 목적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 선포 후, 황제대원수가 되고 황태자는 원수가 되어 육군과 해군을 통솔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1899년 황궁 내에 원수부를 설치하여 군권을 황제에게 집중시키려 했다. 그러나 1904년 일제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군제개혁을 통해 원수부를 격하시키고 폐지했다.

2. 1. 대한제국 군사력 강화 노력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 선포 후 근대적 개혁을 추진하면서 황제대원수로, 황태자는 원수로서 육·해군을 통솔하기 위해 1899년 황궁 내에 원수부를 설치했다. 대원수는 국방·용병·군령을 장악하고 군부와 경외(京外) 각 대를 지휘·감독하게 하여 모든 군권을 직속에 두는 것이었다. 원수부의 설치로 군부대신의 실권이 없어지고, 군대편성·교육기관·충원계획 등 군부의 권한이 원수부로 이관되었다. 원수부 아래에는 2개 연대 병력의 친위대시위대를 두어 도성을 방어하게 했고, 경호대는 궁궐 안에 배치해 임금의 경호 임무를 맡겼다. 그와 함께 헌병, 포병, 공병, 치중병, 군악대를 창설해 완전한 신식 군대 편제를 갖추었다.

그러나 1904년 일제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그해 9월 24일 군제개혁을 통해 원수부를 명목상의 관제로 격하시켰고, 같은 해 말 완전히 폐지해버렸다. 이후 일제는 원수부가 장악했던 모든 군령·군정권을 군부로 넘긴 데 이어, 군부의 각 국보다 대신관방(大臣官房)의 비서과에 권한을 더 많이 부여하여 고문관의 군권 장악을 쉽게 했다.

2. 2. 황제 중심의 군권 장악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 선포 후 근대적 개혁을 추진하면서 황제대원수로, 황태자는 원수로서 육군과 해군을 통솔하기 위해 1899년 황궁 내에 원수부를 설치했다. 대원수는 국방, 용병, 군령을 장악하고 군부와 경외(京外) 각 대를 지휘·감독하여 모든 군권을 직속으로 두었다. 원수부의 설치로 군부대신의 실권이 없어지고, 군대 편성, 교육 기관, 충원 계획 등 군부의 권한이 원수부로 이관되었다. 원수부 아래에는 2개 연대 병력의 친위대시위대를 두어 도성을 방어하게 했고, 경호대는 궁궐 안에 배치해 임금의 경호 임무를 맡겼다. 그와 함께 헌병, 포병, 공병, 치중병, 군악대를 창설해 완전한 신식 군대 편제를 갖추었다.

그러나 1904년 일제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그해 9월 24일 군제개혁을 통해 원수부를 명목상의 관제로 격하시켰고, 같은 해 말 완전히 폐지해버렸다. 이후 일제는 원수부가 장악했던 모든 군령·군정권을 군부로 넘긴 데 이어, 군부의 각 국보다 대신관방(大臣官房)의 비서과에 권한을 더 많이 부여하여 고문관의 군권 장악을 쉽게 했다.

3. 연혁

1899년 대한제국은 황제 중심의 군사 제도 개혁을 위해 원수부를 설치했다. 황제대원수로서, 황태자는 원수로서 육군과 해군을 통솔하고, 국방, 용병, 군령을 장악했다. 원수부 설치로 군부대신의 권한은 축소되고 군사 관련 권한은 원수부로 이관되었다.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원수부를 명목상의 관제로 격하시키고, 같은 해 말 완전히 폐지했다.

3. 1. 설치와 운영 (1899-1904)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 선포 후, 고종은 근대적 개혁의 일환으로 황제는 대원수로, 황태자는 원수로서 육군과 해군을 통솔하는 원수부를 1899년 황궁 내에 설치했다. 대원수는 국방, 용병, 군령을 장악하고 군부와 경외(京外) 각 부대를 지휘·감독하며 모든 군권을 직속으로 두었다. 원수부 설치로 군부대신의 실권은 없어지고, 군대 편성, 교육 기관, 충원 계획 등 군부의 권한이 원수부로 이관되었다. 원수부 아래에는 2개 연대 병력의 친위대시위대를 두어 도성을 방어하게 했고, 경호대는 궁궐 안에 배치해 임금의 경호 임무를 맡겼다. 또한 헌병, 포병, 공병, 치중병, 군악대를 창설해 신식 군대 편제를 갖추었다.

그러나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그해 9월 24일 군제개혁을 통해 원수부를 명목상의 관제로 격하시켰고, 같은 해 말 완전히 폐지했다. 이후 일제는 원수부가 장악했던 모든 군령·군정권을 군부로 넘기고, 군부의 각 국보다 대신관방(大臣官房)의 비서과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여 고문관이 군권을 장악하기 쉽게 만들었다.

3. 2. 일제에 의한 강제 폐지 (1904)

1904년 일제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그해 9월 24일 군제개혁을 통해 원수부를 명목상의 관제로 격하시켰고, 같은 해 말 완전히 폐지하였다.[1] 이후 일제는 원수부가 장악했던 모든 군령·군정권을 군부로 넘겼으며, 군부의 각 국보다 대신관방(大臣官房)의 비서과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여 고문관이 군권을 쉽게 장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1]

4. 조직 및 기능

원수부 산하 마샬 위원회는 다음 4개의 부서로 구성되었다.[2]

부서명역할
군사부전투 준비
검찰부인원 처벌
기록부기록
회계부예산 관리


4. 1. 군무국

군무국은 장관을 총장에 위임하여 군막의 군기를 돕고 기획하며 다음의 사무를 관장한다.[3]

  • 인보상장에 관한 사항.
  • 군사에 관한 조칙과 공문을 군부와 각 부대에 발포하는 사항.
  • 국방과 군사 동원, 그리고 평화 및 전쟁 시기의 군대 편성에 관한 사항.
  • 전투 준비와 군비 지급에 관한 사항.
  • 육해공군 대학교와 육지 및 바다의 측량에 관한 사항.
  • 군부와 각 부대의 일기와 보고를 접수하여 개략을 초록하여 아뢰는 사항.


속원은 부장 2명, 영관 국원 6명, 위관 하사 10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샬 위원회는 다음 네 개의 부서로 구성되었다.[2]

  • 군사부(Military Affairs Section): 전투 준비를 담당했다.
  • 검찰부(Prosecuting Section): 인원에 대한 처벌을 담당했다.
  • 기록부(Recording Section): 기록을 담당했다.
  • 회계부(Accounting Section): 예산 관리를 담당했다.

4. 2. 검사국

검사국은 장관을 국장에 위임하여 군막의 군기를 돕고 계획하며 다음의 사무를 관장한다.[3]

  • 군사에 관한 상사, 승서, 천전과 징계에 관한 사항이다.
  • 각 병학교의 교육에 관한 사항이다.
  • 각 부대 소속 장교의 근만을 심사하는 사항이다.


검사국의 속원은 부장 1명, 영관 국원 4명, 위관 하사 8명으로 구성되어 있다.[2]

4. 3. 기록국

기록국은 장관을 국장에 위임하여 다음의 사무를 관장한다.[3]

  • 군사에 관한 조칙과 문부, 도서 등 보존에 관한 사항이다.


속원은 국원 2원, 위관 하사 4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4. 4. 회계국

회계국은 국장(장관) 아래 군사 경비 예산 결산, 회계, 조사, 인가, 퇴환 관련 사무를 관장했다.[3]

부장 1명, 영관 국원 3명, 위관 및 하사 8명으로 구성되었다.[3]

마샬 위원회는 4개 부서로 구성되었는데, 그 중 회계부는 예산 관리를 담당했다.[2]

5. 복장

대원수로서 예복을 입은 고종과 원수로서 예복을 입은 황태자 시절의 순종


원수부에 속한 무관의 복장 규정은 다음과 같다.[3]

  • 모자는 어용 모자와 동일한 양식으로 하되 품계 표지만 계급에 따른다.
  • 견장은 어용 견장과 동일 양식으로 하되 위관은 수가 없다.
  • 식대는 장관은 황색에 은사로 이화를 가식하고 영위관은 황색만 쓴다.
  • 식서는 장관, 영관, 위관이 일체 패용한다.
  • 본조에 규정한 것 외에는 육군 복장 규칙에 의한다.

6. 역대 대원수


  • 대한제국 고종
  • 대한제국 순종

7. 역사적 의의와 평가

원수부는 대한제국이 자주 국방을 위해 설치했지만,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지되면서 군사 주권을 상실하게 된 아픈 역사를 보여준다.

7. 1. 대한제국의 자주 국방 노력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 선포 후, 황제는 대원수로서, 황태자는 원수로서 육·해군을 통솔하기 위해 1899년 황궁 내에 원수부를 설치하여 근대적 개혁을 추진했다. 대원수는 국방, 용병, 군령을 장악하고 군부와 경외(京外) 각 부대를 지휘·감독하여 모든 군권을 직속으로 두었다. 원수부 설치로 군부대신의 실권은 없어지고, 군대 편성, 교육 기관, 충원 계획 등 군부의 권한이 원수부로 이관되었다. 원수부 아래에는 2개 연대 병력의 친위대시위대를 두어 도성을 방어하게 했고, 경호대는 궁궐 안에 배치해 임금 경호 임무를 맡겼다. 또한 헌병, 포병, 공병, 치중병, 군악대를 창설하여 완전한 신식 군대 편제를 갖추었다.

그러나 1904년 일제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그해 9월 24일 군제개혁을 통해 원수부를 명목상의 관제로 격하시켰고, 같은 해 말 완전히 폐지했다. 이후 일제는 원수부가 장악했던 모든 군령·군정권을 군부로 넘기고, 군부의 각 국보다 대신관방(大臣官房)의 비서과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여 고문관이 군권을 쉽게 장악하도록 했다.

7. 2. 일제 강점기 군사 주권 상실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 선포 후 근대적 개혁을 추진하면서 황제대원수로, 황태자는 원수로서 육군과 해군을 통솔하기 위해 1899년 황궁 내에 원수부를 설치했다. 대원수는 국방, 용병, 군령을 장악하고 군부와 경외(京外) 각 대를 지휘·감독하게 하여 모든 군권을 직속으로 두었다. 원수부 설치로 군부대신의 실권이 없어지고, 군대 편성, 교육 기관, 충원 계획 등 군부의 권한이 원수부로 이관되었다. 원수부 아래에는 2개 연대 병력의 친위대시위대를 두어 도성을 방어하게 했고, 경호대는 궁궐 안에 배치해 임금의 경호 임무를 맡겼다. 그와 함께 헌병, 포병, 공병, 치중병, 군악대를 창설해 완전한 신식 군대 편제를 갖추었다.

그러나 1904년 일제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그해 9월 24일 군제개혁을 통해 원수부를 명목상의 관제로 격하시켰고, 같은 해 말 완전히 폐지했다. 이후 일제는 원수부가 장악했던 모든 군령·군정권을 군부로 넘긴 데 이어, 군부의 각 국보다 대신관방(大臣官房)의 비서과에 권한을 더 많이 부여하여 고문관의 군권 장악을 쉽게 했다.[1]

참조

[1] 웹사이트 대한제국 원수부 관제 - 위키문헌, 우리 모두의 도서관 https://ko.wikisourc[...] 2021-12-13
[2] 웹사이트 원수부(元帥府) http://encykorea.aks[...] 2022-05-01
[3] 웹인용 대한제국 원수부 관제 - 위키문헌, 우리 모두의 도서관 https://ko.wikisourc[...] 202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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