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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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윤경완은 1860년 한성부에서 태어났으며, 갑신정변에 가담했다가 처형된 인물이다. 1884년 조련국 훈련교관과 소대장을 겸임했으며, 형 윤경순의 영향으로 갑신정변에 참여하여 고종 내외를 경우궁으로 옮기는 역할을 맡았다. 갑신정변 실패 후 체포되어 1885년 참형당했으며, 아버지, 형제, 조부 등 가족 대부분이 연좌제로 희생되었다.
윤경완은 1884년(고종 21) 갑신정변에 가담했다가 실패한 후 처형된 인물이다.
[1]
문서
승정원일기, 갑신일록(甲申日錄), 서재필박사자서전
2. 생애
갑신정변 실패 후 패주하였으나 곧 체포되었다.[2] 1885년 의금부에 투옥되었다가 그해 12월 23일 추국청에서 참형당하였다.
함께 정변에 가담한 동생 윤계완은 같이 처형되었고, 누나 윤조이는 출가외인이라 하여 목숨을 건졌다. 어머니 한조이는 1886년 초에 사망했고, 아버지 윤광운은 연좌제로 1886년 5월 22일 참수형을 당했다. 할아버지 윤흥진과 외할아버지 한치복은 이미 사망하였으므로 부관참시를 당했다.[2]
2. 1. 초기 생애
1860년(철종 11년) 한성부 동부(東部) 동문 밖 홍수동(紅樹洞)에서 윤흥진(尹興鎭)의 손자이며, 윤광운(尹光運)과 한치복(韓致福)의 딸 한조이(韓召史)의 아들로 태어났다. 생일은 미상이다. 10년 연상이었던 그의 누나 윤조이는 부평군 서면에 사는 박사경(朴士京)에게 출가하였고, 이름이 알려진 형제로는 함께 갑신정변에 행동대원으로 참여한 5년 연상의 형 윤경순이 있었다.
1884년(고종 21) 7월 병조에 조련국이 창설되자, 훈련 교관의 한 사람이 되었고, 조련국 전영(前營)의 소대장을 겸하였다.
당초 갑신정변 계획에는 나이가 어려 참여하지 않다가 형 윤경순으로 인해 참여하게 되었다. 갑신정변 직전 거사에 참여하여, 12월 5일 조련국 사관장 서재필, 조련국 소속 병사 이응호(李應浩), 민창수(閔昌洙), 전흥룡(全興龍), 김창기(金昌基), 최성욱(崔聖郁), 이점돌(李點乭) 등 부하 50명과 이규완, 형 윤경순과 함께 갑신정변 때 행동대원으로 가담하여 군사를 지휘, 고종 내외를 창덕궁에서 경우궁으로 옮기는 일과 경우궁의 수비 책임을 맡았다.[2]
2. 2. 갑신정변 가담과 최후
1884년(고종 21) 7월 병조에 조련국이 창설되자, 훈련교관의 한 사람이 되었고, 조련국 전영(前營)의 소대장을 겸하였다.[2]
당초 갑신정변 계획에는 나이가 어려 참여하지 않다가 형 윤경순으로 인해 참여하게 되었다. 갑신정변 직전 거사에 참여하여, 12월 5일 조련국 사관장 서재필, 조련국 소속 병사 이응호(李應浩), 민창수(閔昌洙), 전흥룡(全興龍), 김창기(金昌基), 최성욱(崔聖郁), 이점돌(李點乭) 등 부하 50명과 이규완, 형 윤경순과 함께 행동대원으로 가담하여 군사를 지휘, 고종 내외를 창덕궁에서 경우궁으로 모시는 일과 경우궁의 수비를 맡았다.[2]
그러나 갑신정변 실패 후 패주하였으나 곧 체포되었다.[2] 1885년 의금부에 투옥되었다가 그해 12월 23일 추국청에서 참형당하였다.[2]
최종 판결 당시 함께 정변에 가담한 동생 윤계완은 함께 처형당했다. 누나 윤 조이(尹召史)는 이미 시집간 지 오래되어 출가외인이라 하여 목숨을 건졌고, 어머니 한 조이(韓召史)는 1886년 초에 사망했다. 그때까지 살아있던 아버지 윤광운은 계속 연좌제로 다스려야 한다는 사헌부, 의금부의 거듭된 탄핵으로 1886년 5월 22일 참수형을 당했다. 연좌제는 할아버지 윤흥진과 외할아버지 한치복에게까지 적용되었으나 이들은 이미 사망하였으므로 부관참시를 당했다.[2]
3. 가족 관계
관계 이름 출생 사망 할아버지 윤흥진(尹興鎭) 아버지 윤광운(尹光運) 1817년 1886년 5월 22일 어머니 한조이(韓召史) 1886년 누이 윤조이(尹召史) 1850년 매부 박사경(朴士京) 형 윤경순(尹景純) 1855년 1885년 12월 23일 형수 이름 미상 (연좌제로 노비가 됨) 부인 이름 미상 (연좌제로 노비가 됨) 외할아버지 한치복(韓致福)
아버지 윤광운과 형 윤경순 등 가족 대부분이 연좌제로 희생되었다. 누나 윤조이는 출가외인으로 연좌제에서 벗어났다. 할아버지, 아버지, 형, 동생, 본인 모두 참수 또는 부관참시를 당했는데, 이는 갑신정변 가담자에 대한 당시 조선 왕조의 가혹한 처벌을 보여준다.
참조
[2]
서적
한국사 이야기 18:민중의 함성 동학농민전쟁
한길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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