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섭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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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상섭은 1937년 평양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문학평론가이다. 연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미국 에모리 대학교에서 르네상스 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세대학교 교수, 인문대학장, 한국영어영문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한국 메타비평, 신비평 도입, 한국어 코퍼스 분석 및 사전 편찬, 영한 번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다. 특히, 《문학비평용어사전》 편찬, 신비평 연구 방식 도입, 한국어 사전 편찬, 셰익스피어 작품 번역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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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섭 (문학평론가)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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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이상섭 |
원어 이름 | 李商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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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 1937년 1월 11일 |
출생지 | 일제강점기 조선 평안남도 평양 |
사망일 | 2022년 8월 |
국적 | 대한민국 |
직업 | 학자, 교수 |
학력 | |
출신 학교 | 연세대학교 |
학력 사항 | 에모리 대학교 |
경력/수상 | |
수상 | 대한민국 문학상 (1988년) 외솔상 (1999년) 보관문화훈장 (2010년) 인촌상(2018년) |
연구 활동 | |
분야 | 영문학 |
세부 분야 | 엘리자베스 시대 문학, 르네상스 문학, 윌리엄 셰익스피어 |
주요 관심사 | 문학 비평 이론, 정독, 한국어 말뭉치 분석, 사전 편찬, 한국어 번역 |
2. 생애
이상섭은 1937년 일제강점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인 평양시에서 태어났다. 해방 후 가족과 함께 대한민국으로 이주했고, 1956년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1962년 연세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교수가 되었지만, 학장은 그에게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것을 권했다. 1964년 에모리 대학교 박사 과정에 입학하여 르네상스 문학을 전공했다. 박사 학위 논문 제목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문학적 의견의 다양성에 대한 연구"였다.[11]
1967년 머레이 주립 대학교 조교수를 거쳐, 1971년 연세대학교 정교수가 되었다. 1979년부터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학과장을 맡았고, 1993년 8월부터 1995년 7월까지 연세대학교 인문대학장을 역임했다. 2002년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되었다.[12]
1976년 9월부터 1977년 6월까지 하버드 대학교 연구 교수, 1984년 9월부터 1985년 2월까지 버지니아 린치버그 대학교 객원 연구원, 1999년 9월부터 2000년 2월까지 UCLA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이 외에도 1997년부터 1999년까지 한국영어영문학회 회장,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아시아어휘학회 회장을 지냈다.[12][13] 1989년부터 1993년,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연세대학교 국어사전 편찬실장을 역임했다.[14]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이상섭은 1937년 일제강점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인 평양시에서 태어났다.[9] 1945년 해방 후, 가족과 함께 대한민국으로 이주했고, 1956년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10]1962년 연세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교수가 되었지만, 학장은 그에게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것을 권했다.[11] 1964년 에모리 대학교 박사 과정에 입학하여 르네상스 문학을 전공했다.[11] 박사 학위 논문 제목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문학적 의견의 다양성에 대한 연구"로, 시의 본질에 대한 이론, 시의 사용과 남용 문제에 대한 엘리자베스 시대의 반응, 스타일과 시적 규칙에 대한 엘리자베스 시대의 아이디어를 포함하고 있었다.
2. 2. 학자 및 교육자로서의 경력
이상섭은 1967년 머레이 주립 대학교 조교수를 거쳐, 1971년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정교수가 되었다.[12] 1979년부터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학과장을 맡았고, 1993년 8월부터 1995년 7월까지는 연세대학교 인문대학장을 역임했다. 2002년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되었다.[12]1976년 9월부터 1977년 6월까지 하버드 대학교 연구 교수, 1984년 9월부터 1985년 2월까지 버지니아 린치버그 대학교 객원 연구원, 1999년 9월부터 2000년 2월까지 UCLA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이 외에도 1997년부터 1999년까지 한국영어영문학회 회장,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아시아어휘학회 회장을 지냈다.[12][13] 1989년부터 1993년,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연세대학교 국어사전 편찬실장을 역임했다.[14]
3. 주요 업적
이상섭은 1976년 한국 학자들을 위해 현대 서구 비평 용어를 정리한 《문학비평용어사전》을 편찬하여 한국의 메타비평 발전에 기여했다.[15] 이 사전은 한국에서 꾸준히 판매되었으며, 각 용어에 대한 비평적, 이론적 재해석을 덧붙여 동아시아 문학 문화의 지역적 관점을 반영했다.[15] 예를 들어, "운율"을 설명하면서 서양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 시의 운율을 함께 언급했다.[16]
1980년대에는 신비평적 연구 방식을 한국 학계에 도입하여 문학 작품 자체에 집중하는 밀착 독서를 강조했다.[18] 이는 머레이 주립 대학교에서 조교수로 재직하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19] 그는 《영미 비평사 3: 복합성의 시학, 뉴크리티시즘 연구》(1987) 등을 저술하며 비평 이론의 목적을 "각 문학 작품의 독특한 목소리를 찾는 것"으로 정의했다.[22]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한국 문학 분야에서 윤동주[24]와 한용운[25] 두 시인의 어조를 합동 색인 형태로 정리하여 재평가하는 텍스트 기반 접근 방식을 선보였다.[25] 이를 통해 작가가 특정 단어를 어떤 맥락에서 얼마나 자주 사용했는지, 그리고 그 단어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혀냈다. 특히,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1926)에서 "기룹다"와 "그립다"라는 두 단어의 차이를 처음으로 인지하고, "기룹다"에 "존경"의 뉘앙스가 있음을 밝혔다.[26]
연세대학교 한국어사전 편찬실장으로서 ''연세 한국어 사전''(1998)과 ''연세 동아 초등 국어 사전''(2002)을 편찬하여 한국어 코퍼스를 수집하고, 전산 방법을 처음으로 사용하여 일상 언어를 생생하게 기록한 한국어 사전을 편찬했다.[29]
토머스 맬러리부터 셰익스피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가들의 영문학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일제강점기의 영향으로 인한 오역을 바로잡는 데 중점을 두었다.[30]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사느냐 죽느냐"를 "존재냐 부재냐"로 번역하고,[31] ''Measure for Measure''를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번역하여 원작의 의미와 리듬감을 살렸다.[30]
3. 1. 한국 메타비평
1976년, 이상섭은 한국 학자들을 위해 현대 서구 비평 용어를 정리하여 《문학비평용어사전》(문학비평용어사전|한국어)을 편찬했다. 이 책은 한국에서 꾸준히 판매되는 책으로, 이상섭은 각 용어에 대한 자신만의 비평적, 이론적 재해석을 덧붙여, 멀리 떨어진 동아시아 문학 문화의 지역적 관점을 고려했다.[15] 예를 들어, 그는 "운율"을 설명하면서 서양의 예와 함께 한국과 중국 시의 운율을 언급했다.[16]이상섭의 다른 초기 작품들은 다양한 비평 방법론을 비교, 대조, 종합한다. 그 예로 《문학 연구 방법론: 한국 적용을 위한 개관》(1972)이 있는데, 여기에서 이상섭은 다양한 비평적 접근 방식을 역사주의, 형식주의, 사회주의, 윤리주의, 심리학주의, 그리고 신화 비평으로 분류했으며, 문학 분석의 대상을 미메시스, 독자 반응, 표현주의, 그리고 구조주의로 분류했다. 이상섭은 문학에 관한 후자의 분류를 "초역사적" 기준으로 보았으며, 《문학이론의 역사적 전개》(1975)에서 "시스템의 불변성"을 주장했다.
3. 2. 신비평 도입과 교육
이상섭은 1980년대 한국 학계에 신비평적 연구 방식을 도입했다. 이는 문학 작품의 내용을 면밀히 읽는 방식으로, 사회·역사적 맥락보다는 작품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다.[18] 이러한 접근은 1960년대 머레이 주립 대학교에서 조교수로 재직하며 "문학 입문" 강좌를 가르쳤던 그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19] 당시 그는 《문학 연구》(1952)를 교재로 사용했는데, 2012년 인터뷰에서 이 책의 텍스트 중심 질문이 문학 이해에 효과적이라고 판단하여 한국에 도입하기로 결심했다고 회고했다.[20]1980년대 이상섭의 비평 작업은 신비평과의 인연을 통해 더욱 심화되었다. 그는 《영미 비평사 3: 복합성의 시학, 뉴크리티시즘 연구》(1987)와 《밀착 독서로서의 문학 비평: 이상섭 비평 선집》(1988) 등을 저술하며, 비평 이론의 목적을 "각 문학 작품의 독특한 목소리를 찾는 것"으로 정의했다.[22] 그는 다른 정치적, 이론적 신념보다는 저자의 텍스트에 나타난 "경험적 현실과 구체적인 역사"에 집중하는 신비평의 방법론을 채택했다.[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섭은 신비평가들의 정치·철학적 관점에 동의하기보다는 문학 교육을 위한 도구, 혹은 문학을 이해하기 위한 진정한 몰입 경험으로서 밀착 독서의 방법론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23]
3. 3. 한국어 코퍼스 분석 및 사전 편찬
이상섭은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문학 분야에서 윤동주[24]와 한용운[25] 두 시인의 어조를 합동 색인 형태로 정리하여 재평가했다.[25] 이러한 텍스트 기반 접근 방식은 작가가 특정 단어를 어떤 맥락에서 얼마나 자주 사용했는지, 그리고 그 단어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혀냈다. 예를 들어, 이상섭은 한용운의 대표적인 시 중 하나인 "님의 침묵"(1926)에서 한용운이 "기룹다"와 "그립다"라는 두 개의 비슷한 한국어 단어를 서로 다른 부분에서 사용했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지했다.[26] 이상섭에 따르면, "기룹다"는 그리움의 감정뿐만 아니라 "존경"의 뉘앙스도 담고 있다.[26] 그러나 이상섭이 이러한 서지학적 접근 방식을 사용하여 한용운의 작품을 분석하기 전에는, 많은 한국 편집자들이 한용운의 "기룹다"를 더 익숙하지만 약간 다른 한국어 단어인 "그립다"로 임의로 수정했었다.[26]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상섭은 연세대학교 한국어사전 편찬실의 실장으로서 한국어 코퍼스를 수집했다.[14] 당시, 해방된 지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의 역사는 한국인들의 일상 언어에 남아 있었다.[27] 따라서 이상섭은 진정한 한국어 문화 활성화를 위해 ''연세 한국어 사전''(1998)과 ''연세 동아 초등 국어 사전''(2002)을 포함한 한국어 사전을 편찬했다.[28] 이 과정에서 이상섭은 사전을 위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며 한국에서 처음으로 전산 방법을 사용했다.[29] 또한, 일상 언어를 생생하게 기록한 최초의 한국어 사전으로 평가받고 있다.[29]
3. 4. 영한 번역
이상섭은 토머스 맬러리부터 셰익스피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가들의 영문학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했다. 특히 이상섭은 일제강점기의 영향으로 인한 오역을 바로잡는 데 중점을 두었다.[30] 예를 들어, 한국인들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인 "사느냐 죽느냐"를 일본어 번역을 따라 "죽느냐 사느냐"로 읊어왔다. 그러나 이상섭은 햄릿이 철학을 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공부했다는 점을 들어, 이 구절을 "존재냐 부재냐"로 번역해야 한다고 지적했다.[31]더 나아가, 이상섭의 번역은 한국어 음절에 맞춰 "섬세하게 구성된 음악성"으로 유명하며, "영어의 운율을 유지"하는 특징을 보인다.[32] 일례로 2016년에 번역한 셰익스피어의 ''Measure for Measure''가 있다. 이 문제극은 일본어 제목인 "이척보척" (以尺報尺)으로 한국에 소개되었는데,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고, 원작과 다른 운율을 가지며, 성경적 함의를 전달하지 못했다.[30] 따라서 이상섭은 익숙한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셰익스피어의 말의 리듬감을 살리기 위해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번역했다.[30]
4. 비평
이상섭은 "모든 신념에서 거리를 두었다"고 하며, 특정 서구 비평 이론을 칭찬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21] 이러한 균형 감각은 학자로서 초기 및 중기 경력 동안 두드러졌으며, 때로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인 장경렬은 이상섭의 『영미 비평사 1, 2, 3』이 지나치게 "임의적 일반화"의 위험을 회피하면서 자신의 독립적인 관점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33][34]
5. 주요 저서
(2001)
Sonnets|소네트집영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