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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덕 (종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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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영덕 막달레나는 1811년 한양의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한국 천주교 신자이다. 천주교에 귀의하여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고문과 형벌을 겪었다. 1839년 28세의 나이로 순교하였고, 1925년 복자, 1984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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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덕 (종교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영덕 막달레나
이영덕 막달레나
이름이영덕 막달레나
축일9월 20일
교파로마 가톨릭교회
생애
출생1811년
출생지서울
사망1839년 12월 29일
사망지서울 서소문
직업순교자
시성 및 시복
시복일1925년 7월 5일
시복자교황 비오 11세
시성일1984년 5월 6일
시성자교황 요한 바오로 2세

2. 생애

이영덕은 1811년 한양의 한 가난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1] 행실이 점잖고 온화한 성품이었으며, 할머니에게서 천주교에 대해 배웠다. 할머니의 권유로 어머니 조 바르바라와 동생 이인덕과 함께 입교하였으나, 아버지는 천주교에 매우 적대적이었으므로, 어머니와 딸들은 그가 지방으로 여행 간 동안에 세례를 받았다.

20세에 아버지가 비천주교인과 혼인시키려 하자, 꾀병으로 거부했다. 혈서를 썼으나 아버지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27세에 앵베르 주교에게 집을 떠날 허락을 구했지만, 주교는 만류했다. 몇 달 후,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집을 나와 교우 집에 숨었다. 주교는 귀가를 권했지만, 당시 조선 풍습에 부녀자 가출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였기에, 아버지에게 돌아가는 것은 위험했다. 결국 주교는 교리 선생들에게 처신을 요청했고, 이영덕은 한양에 머물며 신앙생활을 했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어머니, 동생, 이 카타리나와 함께 순교를 준비하다 6월체포되었다. 주뢰형을 받고, 감옥에서 배고픔, 목마름, 비위생적인 환경으로 고통받았다. 어머니가 열병으로 숨을 거두는 것을 보았다. 수 차례 태형에도 신앙 고백을 멈추지 않았다.

포도청형조에서 6개월간 고문형벌을 견디고, 1839년 12월 29일 28세로 서소문 밖 형장에서 여섯 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2. 1. 출생과 가족

1811년 한양의 한 가난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1] 행실이 점잖았고 온화한 성품을 지녔다.[1] 할머니에게서 천주교에 대해 배웠으며, 할머니의 권유로 어머니 조 바르바라와 동생 이인덕과 함께 천주교에 입교하였다.[1] 그러나 이영덕의 아버지는 천주교에 매우 적대적이었으므로, 어머니와 딸들은 아버지가 지방으로 여행 간 동안에 세례를 받았다.[1]

2. 2. 천주교 입교와 신앙 생활

이영덕은 할머니에게서 천주교에 대해 배웠으며, 할머니의 권유로 어머니 조 바르바라와 동생 이인덕과 함께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그러나 이영덕의 아버지는 천주교에 매우 적대적이었으므로, 어머니와 딸들은 아버지가 지방으로 여행 간 사이에 세례를 받았다.

20세가 되던 해, 아버지는 그녀를 비천주교인 남성과 혼인시키려 하였다. 그녀는 꾀병을 부리며 결혼을 거부했다. 아버지는 그녀의 구실을 인정하지 않고 심하게 몰아붙였다. 하루는 그녀가 아버지를 이해시키기 위해 혈서를 써서 주었지만, 아버지는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 27세가 되던 해, 집을 떠나고자 앵베르 주교에게 허락을 구했지만, 주교는 그녀에게 집에 머물라고 말했다. 그러나 수 달이 지나고, 더 이상 참지 못한 그녀는 어머니, 동생과 함께 집을 빠져나와 친한 교우의 집에 숨어 살았다. 주교는 그들에게 집에 돌아갈 것을 부탁했지만, 당시 조선의 풍습에 부녀자의 가출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였으므로, 그들이 아버지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결국 주교는 교리 선생들에게 그 일에 대한 처신을 요청하였다. 이영덕은 한양에 머무를 수 있게 되었고 가난함 속에서도 덕행과 선행 그리고 기도에 매진하며 독실한 신앙을 지켰다.

2. 3. 혼인 거부와 가출

1811년 한양의 가난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난 이영덕은 온화한 성품과 점잖은 행실을 지녔다. 할머니에게서 천주교에 대해 배우고, 어머니 조 바르바라와 동생 이인덕과 함께 입교했다. 그러나 이영덕의 아버지는 천주교에 매우 적대적이었기에, 가족들은 아버지가 지방으로 여행 간 틈을 타 세례를 받았다.

20세가 되던 해, 아버지는 이영덕을 비천주교인 남성과 혼인시키려 했다. 이영덕은 꾀병을 부리며 결혼을 거부했으나, 아버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영덕은 혈서를 써서 아버지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려 했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27세가 된 이영덕은 집을 떠나고자 앵베르 주교에게 허락을 구했지만, 주교는 만류했다. 그러나 몇 달 후, 이영덕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어머니, 동생과 함께 집을 나와 친한 교우의 집에 숨었다. 앵베르 주교는 이들에게 돌아갈 것을 권했지만, 당시 조선의 풍습에 따르면 부녀자의 가출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였기에, 아버지에게 돌아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결국 주교는 교리 선생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결정을 요청했다. 이영덕은 한양에 머무를 수 있게 되었고, 가난 속에서도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2. 4. 체포와 순교

1839년 기해박해 때 이영덕은 어머니, 동생, 이 카타리나와 함께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순교를 준비하다가 자수하기로 결심했지만, 그해 6월에 체포되었다.

이영덕은 먼저 주뢰형을 받았고, 감옥에서 배고픔, 목마름, 비위생적인 환경으로 고통받았다. 그녀는 어머니가 열병으로 숨을 거두는 것을 보아야 했다. 여러 차례 태형을 받으면서도 신앙을 고백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포도청형조에서 6개월 동안 혹독한 고문형벌을 견뎌낸 이영덕은 1839년 12월 29일 28세의 나이로 서소문 밖 형장에서 여섯 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3. 시복 및 시성

이영덕 막달레나는 1925년 7월 5일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79위 시복식을 통해 복자가 되었고, 1984년 5월 6일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103위 시성식을 통해 성인이 되었다.[2][3]

3. 1. 시복

이영덕 막달레나는 1925년 7월 5일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79위[2] 시복식을 통해 복자가 되었다.[3]

3. 2. 시성

1984년 5월 6일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에서 이영덕은 103위와 함께 시성식을 통해 성인으로 선포되었다.[3]

참조

[1] 웹사이트 http://newsaints.fai[...]
[2] 백과사전 103위 성인 (百三位聖人) http://preview.brita[...] 2014-12-07
[3] 뉴스 교황, 화해와 평화..8월의 크리스마스되길 https://web.archive.[...] 평화방송 2014-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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