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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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영방은 철령 출신으로, 명나라 무순 유격 출신이었으나 후금에 투항하여 청나라에 항복한 첫 번째 명나라 장수가 되었다. 그는 사르후 전투에서 계책을 바쳐 누르하치의 신임을 얻었으며, 정묘호란에도 참전했다. 1621년 삼등총병관에 제수되었고, 1634년에 사망했다. 이영방은 변발한 한인 고관의 시초였으며, 그의 후손 중에는 강희제의 안빈과 이시요 등이 있다.
이영방은 철령 출신으로, 일설에는 이성량의 손자이자 이여백의 아들이라고 한다.[1] 명나라 무순의 유격이었으나, 1618년 후금(청나라)에 투항하여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숭정 7년(1634년) 사망하였으며, 아들 9명을 두었다. 차남 이솔태, 삼남 강아타이(剛阿泰), 오남 바얀(巴顏) 등이 유명하다. 이영방의 딸은 아바타이의 손자 보국공 옹고와 결혼하였고, 손녀는 강희제의 안빈(安嬪)이 되었다. 후손으로는 이시요가 있다.[1] 이영방은 최초의 변발 한인 고관이었으며, 이사충과 인근 기의 동족이다.
이영방은 철령 출신으로, 일설에는 이성량의 손자이자 이여백의 아들이다.[1] 명나라 무순의 유격 출신이었으나,[2] 후금 군대에 투항하여 누르하치의 손녀와 결혼하였다.[3] 이후 사르후 전투와 정묘호란에 참전하는 등 청나라에 협력하였다.[4][5]
2. 생애
2. 1. 명나라 장수 시절
이영방은 철령 출신으로, 일설에는 이성량의 손자이자 이여백의 아들이다.[1] 원래 명나라 무순 유격 출신이나,[2] 1618년, 후금 군대가 무순을 공격하여 함락하였고, 이영방은 누르하치에게 투항하여 삼등부장(三等副將)에 임명되었으며, 누르하치의 손녀이자 아바타이의 딸과 결혼하였다. 이영방은 청에 항복한 첫 번째 명나라 장수였다.[3] 이후 사르후 전투에서 '네가 몇몇 길로 오는 것에 의하여 나는 오직 한 길로만 간다(憑爾幾路來, 我只一路去)'라는 계책을 바쳤고, 누르하치는 이 계책을 채택하여 병력을 집중하고 각개격파하여 많은 병사로 적은 적군과 싸워 명군을 격파하기로 결정하였다.[4] 이영방은 정묘호란에도 참전하였다.[5] 천명 6년(1621년)에는 공적으로 삼등총병관(三等總兵官)에 임명되었다.
2. 2. 후금(청나라)에 투항
이영방은 철령 출신으로, 일설에는 이성량의 손자이자 이여백의 아들이라고 한다.[1] 원래 명나라 무순 유격 출신이었으나,[2] 만력 46년(1618년), 후금 군대가 무순을 공격하여 함락시키자 누르하치에게 투항하여 삼등부장(三等副將)에 임명되었으며, 누르하치의 손녀이자 아바타이의 딸과 결혼하였다. 이영방은 청나라에 항복한 첫 번째 명나라 장수였다.[3] 이후 사르후 전투에서 '네가 몇몇 길로 오는 것에 의하여 나는 오직 한 길로만 간다(憑爾幾路來, 我只一路去)'라는 계책을 바쳤고, 누르하치는 이 계책을 채택하여 병력을 집중하고 각개격파하여 많은 병사로 적은 적군과 싸워 명군을 격파하기로 결정하였다.[4] 또한 이영방은 1627년 정묘호란에도 참전하였다.[5] 천명 6년(1621년), 공적으로 삼등총병관(三等總兵官)에 임명되었다. 이영방은 최초의 변발 한인 고관이었다. 이영방과 이사충은 인근 기의 동족이다.
2. 3. 사르후 전투와 정묘호란
이영방은 철령 출신으로, 일설에는 이성량의 손자이자 이여백의 아들이라고 한다.[1] 원래는 명나라 무순의 유격 출신이었으나,[2] 1618년 후금 군대가 무순을 공격하여 함락하자 누르하치에게 투항하여 삼등부장(三等副將)에 임명되었으며, 누르하치의 손녀이자 아바타이의 딸과 결혼하였다. 이영방은 청나라에 항복한 첫 번째 명나라 장수였다.[3] 이후 사르후 전투에서 '네가 몇몇 길로 오는 것에 의하여 나는 오직 한 길로만 간다(憑爾幾路來, 我只一路去)'라는 계책을 바쳤고, 누르하치는 이 계책을 채택하여 병력을 집중하고 각개격파하여 명군을 격파하였다.[4] 또한 이영방은 1627년 정묘호란에도 참전하였다.[5]
2. 4. 청나라에서의 관직 생활과 사망
이영방은 철령 출신으로, 일설에는 이성량의 손자이자 이여백의 아들이라고 한다.[1] 원래 명나라 무순의 유격 출신이었으나,[2] 1618년 후금 군대가 무순을 공격하여 함락시키자 누르하치에게 투항하여 삼등부장(三等副將)에 임명되었으며, 누르하치의 손녀이자 아바타이의 딸과 결혼하였다. 이영방은 청나라에 항복한 첫 번째 명나라 장수였다.[3] 이후 사르후 전투에서 '네가 몇몇 길로 오는 것에 의하여 나는 오직 한 길로만 간다(憑爾幾路來, 我只一路去)'라는 계책을 바쳤고, 누르하치는 이 계책을 채택하여 병력을 집중하고 각개격파하여 많은 병사로 적은 적군과 싸워 명군을 격파하기로 결정하였다.[4] 또한 이영방은 1627년 정묘호란에도 참전하였다.[5]
천명 6년(1621년), 공적으로 삼등총병관(三等總兵官)에 임명되었다. 숭정 7년(1634년) 사망하였다. 아들은 9명이었다. 유명한 아들은 차남 이솔태, 삼남 강아타이(剛阿泰), 오남 바얀(巴顏)이다. 이영방의 딸은 아바타이의 손자 보국공(輔國公) 옹고와 결혼하였다. 손녀는 강희제의 안빈(安嬪)이다. 후손에 이시요도 있다.
이영방은 최초의 변발 한인 고관이었다. 이영방과 이사충은 인근 기의 동족이다.
3. 가계 및 후손
이영방은 청에 항복한 첫 번째 명나라 장수로, 최초로 변발을 한 한인 고관이기도 했다. 그의 아들은 9명이었는데, 그 중 유명한 아들은 차남 이솔태(李率泰), 삼남 강아태(剛阿泰), 오남 바얀(巴顏)이다. 이영방의 딸은 아바타이의 손자 보국공(輔國公) 옹고(翁古)와 결혼하였다. 손녀는 강희제(康熙帝)의 안빈(安嬪)이며, 후손으로는 이시요(李侍堯)가 있다. 이영방과 이사충은 인근 기의 동족이다.
3. 1. 가계도
이영방 가계도 | ||
---|---|---|
삼등자(三等子) 이영방 | ||
일등남(一等男) 이솔태 | 일등백(一等伯) 바얀 | 강아태 |
일등남(一等男) 이정종 | 일등백(一等伯) 이승종 | 일등백(一等伯) 석가보 |
일등남(一等男) 이숙덕 | 일등남(一等男) 이숙명 | 일등소신백(一等昭信伯) 이숙충 |
일등백(一等伯) 장생 | 일등백(一等伯) 기천보 | 이원량 |
일등남(一等男) 영보 | 일등소신백(一等昭信伯) 이시요 | 일등소신백(一等昭信伯) 이봉요 |
일등남(一等男) 이인원 | 이등소신백(二等昭信伯) 육수 | 육대 |
이등소신백(二等昭信伯) 육문 | 일등남(一等男) 이서증 | 석령 |
석순 | 이등소신백(二等昭信伯) 승수 | 일등남(一等男) 합풍아 |
일등남(一等男) 덕영액 |
3. 2. 작위 세습
참조
[1]
서적
요이략(遼夷略)
[2]
서적
명계북략(明季北略)
[3]
서적
청사고(淸史稿)
[4]
서적
명계북략(明季北略)
[5]
서적
명계북략(明季北略)
[6]
서적
청사고(清史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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