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이용악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이용악은 1914년 함경북도 경성군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 시기를 거치며 활동한 시인이다. 그는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하여 일본 유학을 거쳐 시인으로 활동했으며, 1937년 첫 시집 《분수령》을 출간했다. 해방 후 좌익 계열에서 활동하다가 한국 전쟁 중 북한으로 귀순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활동했으며, 1971년 결핵으로 사망했다. 그의 작품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현실과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주로 다루었으며, 월북 이후에는 북한 체제를 옹호하는 시를 쓰기도 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한국의 시인 - 이호우
    일제강점기부터 활동한 시조 시인 이호우는 현대적인 감각과 일상적인 정서를 담아낸 새로운 시조를 창작하고 언론인으로서 지방 문화 창달에 기여했으며, 그의 업적을 기리는 문학상이 제정되고 시비가 세워졌다.
  • 한국의 시인 - 정도전
    정도전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자 성리학자로서, 조선 건국에 기여하고 통치 체제를 정비했으며, 《조선경국전》 등을 저술했으나, 왕권 중심의 정치를 견제하다가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이방원에게 살해당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시인 - 박태원 (1909년)
    박태원은 일제 강점기와 북한에서 활동한 소설가로, 모더니즘 소설을 주로 썼으며, 해방 후 월북하여 북한에서 활동하다 사망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시인 - 김책
    일제강점기 항일 무장 투쟁가이자 북한의 군인, 정치인인 김책은 만주에서 항일 투쟁 후 소련에서 김일성과 함께 활동했으며, 해방 후 북한 건국에 참여하여 부수상 겸 산업상, 한국 전쟁 전선사령관을 역임했고 사후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았다.
  • 함경북도 출신 - 오극렬
    오극렬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에 걸쳐 북한 핵심 요직을 역임한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군사 및 정치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불법 활동 의혹으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 함경북도 출신 - 김동하 (1918년)
    김동하는 일제강점기 만주군 장교이자 대한민국 해병대 창설에 참여한 군인, 정치인으로, 5·16 군사정변에 가담하여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을 역임했으나 반혁명사건에 연루되었고, 만주군 복무 경력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이용악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한자李庸岳
로마자 표기I Yong-ak
매큔-라이샤워 표기Lee Yong-Ak
작가 정보
이름이용악
별칭호는 편파월(片破月)
직업시인
국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장르
출생일1914년 11월 23일
출생지일제강점기 조선 함경북도 경성군

2. 생애

이용악은 1914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경성군에서 태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을 겪었으며, 경성농업학교 재학 중 일본으로 건너가 학업을 이어갔다.[2] 1935년 "패배자의 소원"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했다. 상지대학교 언론학과에 입학하여 학비를 벌기 위해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며 문학 활동을 병행했다.[3] 1937년 첫 시집 ''분수령''을 출간하고, 이듬해 ''낡은 집''을 발표하며 시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대학 졸업 후 귀국하여 ''인문평론'' 편집자로 활동하다가, 일제강점기 말에는 ''청진일보'' 기자와 경성 군청 서기로 일했다.[5] 해방 후에는 조선문학건설본부조선문화단체총연맹에서 활동하며 좌익 문학 운동에 참여했고, 남조선로동당에 가입하기도 했다. 1949년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한국 전쟁 중 조선인민군에 의해 석방된 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넘어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조선문화단체총연맹 중앙위원 등으로 활동했다.[6] 1956년 "평남관개시초", 1963년 중국 시 번역집 ''풍요선집''을 출간했다. 1971년 결핵으로 사망했다.[7]

2. 1. 유년 시절과 초기 문학 활동 (1914년 ~ 1939년)

이용악은 1914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경성군에서 소금 밀매업을 하던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극심한 가난 속에서 자랐다.[2] 1932년 경성농업학교 4학년 재학 중 일본 히로시마의 중학교로 전학했다. 1935년 ''신인문학''에 발표된 "패배자의 소원"이 이용악의 첫 출판 작품이었다.

1936년 4월 상지대학교 언론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다.[3] 김종한과 함께 문학 동인지 ''2인''을 발행했다.[4] 1937년 첫 시집 ''분수령''이 출판되었고, 이듬해에는 ''낡은 집''이 나왔다.

1939년 대학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와 ''인문평론''의 편집자로 일했다.

2. 2. 귀국과 해방 전후 활동 (1939년 ~ 1950년)

1939년 대학 졸업 후, 이용악은 한국으로 돌아와 ''인문평론''의 편집자로 일했다.[5] 1941년 이 평론이 중단되자 1943년까지 일본 신문인 ''청진일보''의 기자로 일했다. 그 후 경성의 군청에서 서기로 일했지만, 1943년에 사임했다.[5]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이용악은 서울로 돌아와 조선문학건설본부의 회원이 되었다. 1945년 11월부터 1년 동안 ''중앙신문''의 기자로 일했다. 1947년 남조선로동당에 가입한 후, 조선문화단체총연맹 서울지부의 핵심 인물이 되었다. 1949년 체포되어 1950년 2월 서울에서 열린 로동당 문화 행사에 연루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5]

한국 전쟁 발발 당시 조선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면서, 이용악은 서대문형무소에서 풀려났다. 그 후 남조선문학가동맹의 선전부장을 지내다 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귀순했다.[6]

2. 3. 월북 이후 (1950년 ~ 1971년)

한국 전쟁 발발 당시 조선인민군서울을 점령하자, 이용악은 서대문형무소에서 풀려났다. 이후 남조선문학가동맹 선전부장을 지내다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갔다.[6]

1951년부터 1952년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조선문화단체총연맹 중앙위원으로 활동했다. 1956년 "평남관개시초"를 발표했고, 1963년 김상훈과 함께 중국 시와 악부 시를 번역한 ''풍요선집''을 출판했다.

1971년 결핵으로 사망했다.[7]

3. 작품 세계

이용악의 시는 주로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묘사하며, 개인적인 고통을 넘어 식민지 조선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장시키는 특징을 보인다. 그의 시는 서사적인 특징을 띠고 있어 서사시로 불리기도 한다.

대표작 중 하나인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는 아버지의 죽음을 배경으로, 가난과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text


  • <풀벌렛 소리 가득 차 있었다> -


우리 집도 아니고

일가집도 아닌 집

고향은 더욱 아닌 곳에서

아버지의 침상 없는 마지막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노령을 다니면서까지

애써 자래운 아들과 딸에게

한마디 남겨두는 말도 없었고

아무울만의 파선도

설룽한 니코리스크의 밤도 완전히 잊으셨다

목침을 반듯이 벤 채

다시 뜨잖는 두 눈에

피지 못한 꿈의 꽃봉오리가 가라앉고

얼음장에 누우신 듯 손발은 식어갈 뿐

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를 가리켰다

때늦은 의원이 아무 말없이 돌아간 뒤

이웃 늙은이 손으로

눈빛 미명은 고요히

낯을 덮었다.

우리는 머리맡에 엎디어

있는 대로의 울음을 다 울었고

아버지의 침상 없는 마지막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

이 시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는 가족들의 슬픔과 절망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풀벌레 소리'는 아버지의 죽음과 대비되어 더욱 비극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3. 1. 일제강점기 (1930년대 ~ 1945년)

이용악은 1937년 시집 『분수령』과 1938년 시집 『폐가』를 통해 주로 한반도 북부 지역에 거주하는 식민지 시대의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묘사했다. 화자의 고통은 개인적인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이웃들의 경험과 연결되었으며, 더 나아가 식민지 조선 사회 전체로 확장되었다.[9] 그의 시는 서사성을 띄고 있어 서사시로 불린다.[10]

그의 첫 시집 『분수령』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북부 국경 지역에서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해야 했던 자신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2] 이는 그가 굶주림과 고독 속에서도 역경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나타낸다.[11]

『분수령』의 연장선상에 있는 『폐가』는 식민지 시대의 빈곤과 이주 문제를 다루고 있다. 『분수령』에 비해 덜 추상적인 언어로 쓰였으며, 한자 사용도 줄었다. 더욱 세련된 시어로 인해, 이 시집은 그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되었다.[12]

3. 2. 해방 이후 ~ 월북 이전 (1945년 ~ 1950년)

이용악은 광복 이후에도 시작(詩作) 활동을 이어갔다. 1947년 시집 《오랑캐꽃》을 출간했는데, 이 시집에 실린 대부분의 시는 일제 강점기에 쓰여진 것들이다. 표제작인 "오랑캐꽃"은 일제 강점기 북부 국경 지역으로 내몰려 박해받은 한국인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13] 《오랑캐꽃》은 시대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시인의 내면을 부각하는데, 이는 일제 말 억압이 심해졌을 때 쓰여졌기 때문으로 보인다.[13] 초기 시에서 보여주었던 공동체 의식은 서정적인 서술과 세련된 스타일로 대체되었다.[14]

3. 3. 월북 이후 (1950년 ~ 1971년)

이용악은 북한으로 귀순한 후, 선전을 위해 북한의 정치 체제와 문학 정책을 옹호하는 시를 썼다.[15] 한국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수행된 평남 관개 공사의 완공을 낭만적인 어조로 묘사한 일련의 "평남 관개 시선"은 북한 문학계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15]

4. 평가 및 영향

이용악은 섬세한 시어와 향토적인 서정으로 민족의 비극적인 현실을 형상화한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일제 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고향을 떠나 낯선 곳을 떠돌아야 했던 유이민의 삶과 애환을 탁월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1]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는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가족 공동체의 상실과 비극적인 민족의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시는 화자가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며 느낀 슬픔과 상실감을 절제된 언어로 표현하고 있으며, '풀벌레 소리'라는 감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비극성을 심화시킨다.[1]

이용악의 시는 1956년 조선인민군 창설 5주년 기념 문학예술상 시 부문에서 1등("평남 관개 시선")을 수상하기도 했다.

5. 작품 목록

이용악한국어의 작품 목록은 다음과 같다.

; 전집

출판 연도제목출판사비고
1988이용악 시전집한국어창작과비평사윤영천 편
2015이용악 전집한국어소명출판이경수, 곽효환, 이현승 편
2018이용악 시전집한국어문학과지성사윤영천 편



; 시집

이용악한국어은 여러 권의 시집을 출간하였다. 대표적인 시집으로는 분수령, 낡은 집, 오랑캐꽃 등이 있다.

5. 1. 시집

제목출판사출판 연도
분수령삼문사1937년
낡은 집삼문사1938년
오랑캐꽃아문각1947년
리용악시선집조선작가동맹출판사1957년
당이 부르는 길로조선작가동맹출판사1960년
그날을 위하여조선작가동맹출판사1960년
뜨거운 포옹조선작가동맹출판사1960년
당에 영광을조선작가동맹출판사1961년
초국이여 번영하라문예출판사1968년
철벽의 요새조선문학예술총동맹출판사1968년
판가리싸움에문예출판사1968년


5. 2. 전집

출판 연도제목출판사비고
1988李庸岳詩全集|이용악 시전집한국어창작과비평사윤영천 편
2015李庸岳全集|이용악 전집한국어소명출판이경수, 곽효환, 이현승 편
2018李庸岳詩全集|이용악 시전집한국어문학과지성사윤영천 편


참조

[1] 웹사이트 암울했던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다 "시인 이용악, 지금 그가 그립다" http://news.khan.co.[...] 2019-11-18
[2] 웹사이트 Yi Yongak https://terms.naver.[...]
[3] 서적 The Poet I Read – Jeong Jiyong and Yi Yongak Moonji 2018
[4] 서적 Chronological Listing of Authors’ Works Moonji 2018
[5] 웹사이트 이용악 시인 월북 후 작품까지 집대성한 시전집 출간 https://www.yna.co.k[...] 2019-11-18
[6] 웹사이트 시의 천재에서 김일성 찬양까지…북방시인 이용악의 모든 것 https://www.yna.co.k[...] 2019-11-18
[7] 서적 Chronological Listing of Authors’ Works Moonji 2018
[8] 뉴스 Poet Kim Yeongseung, The First Winner of Yi Yongak Literary Award https://www.yna.co.k[...] Yonhap News 2019-08-21
[9] 웹사이트 Yi Yongak’s Poems https://terms.naver.[...]
[10] 웹사이트 Yi Yongak http://ko.kliteratur[...]
[11] 웹사이트 Watershed http://encykorea.aks[...]
[12] 웹사이트 Shabby House http://encykorea.aks[...]
[13] 웹사이트 오랑캐꽃 https://terms.naver.[...] Dictionary of Modern Korean Literature
[14] 웹사이트 Yi Yongak’s Poems https://terms.naver.[...]
[15] 논문 A Study of Lee Yong Ak’s Selected Poem of Phyeongnam Irrigation 2015
[16] 웹사이트 Digital Library of Korean Literature https://library.ltik[...] Literature Translation Institute of Korea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