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이카이노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이카이노는 오사카부 이쿠노구에 위치했던 지역으로, 멧돼지를 사육하던 부락에서 유래했다. 고대에는 도래인들이 정착했고, 백제인들이 이주해 "백제노"라고 불리기도 했다. 근세에는 에도 막부 직할령이었으며, 메이지 시대 이후에는 농촌 지역으로 남아있었으나, 다이쇼 시대에 시가지화가 진행되었다. 특히 제주도 출신 조선인들이 공장 노동자로 유입되면서 코리아 타운이 형성되었다. 현재는 철도 노선과 주요 도로가 지나가며, 상점가와 공원, 학교 등의 시설이 위치해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일본의 코리아타운 - 오쿠보 (신주쿠구)
    신주쿠구 북부 오쿠보는 신오쿠보역을 중심으로 코리아타운이 형성되어 있고, 철쭉 명소로 발전 후 재일 한국인들이 모여 살면서 한국 문화 중심지가 되었으며, 현재는 다문화 지역으로 변화하고 있고 와세다 대학 캠퍼스 등 교육 시설이 위치한다.
  • 일본의 코리아타운 - 우토로
    우토로는 일본 교토부 우지시에 위치한,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과 그 후손들이 집단 거주하며 형성된 마을로, 오랜 기간 토지 소유권 분쟁과 강제 퇴거 위기를 겪었으나, 현재는 주거 환경 개선 사업이 진행되고 평화 기념관이 건립되었지만, 여전히 차별 및 혐오 범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 히가시나리구의 역사 - 마쓰시타 고노스케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파나소닉의 창업자로서, 독창적인 디자인과 경영철학으로 일본 전기 제조 및 소매업계에 큰 영향을 미치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고, 인재 육성에도 기여했다.
  • 히가시나리구의 역사 - 쓰루하시정
    쓰루하시정은 오사카부에 위치했던 행정 구역으로, '학의 다리'라는 지명에서 유래했으며, 메이지 시대에 형성되어 1925년 오사카시에 편입되기 전 교통 요충지이자 코리아타운이 형성된 지역이다.
  • 이쿠노구의 역사 - 오사카부 제1구
    오사카부 제1구는 오사카시 중심부에 위치한 중의원 의원 선거구로, 니시구, 미나토구, 주오구, 덴노지구, 나니와구, 히가시나리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도심 회귀 현상과 선거구 획정 변화를 거치며 정치적 지형이 변화하여 현재는 일본유신회의 이노우에 히데타카가 지역구 의원을 맡고 있다.
  • 이쿠노구의 역사 - 다쓰미정
    다쓰미정은 1948년 출범하여 1955년 오사카시에 편입된 일본의 행정 구역으로, 지방자치법 시행에 따라 정으로 승격되었으며, 오사카성에서 동남쪽에 위치한 교통 요충지였다.
이카이노

2. 역사

이카이노는 고대 인덕천황 시대에 많은 도래인이 정착하면서 돼지 사육 풍습이 있었고, '이노이노'라고 불렸다. 문헌상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가 '백제강'(현재 히라노강)에 놓였으며, 에도 시대에는 '쓰루하시'라고 불렸고, 현재 '쓰루하시(학다리)' 지명의 기원이 되었다.

근세에는 초기를 제외하고 천령으로서 에도 막부가 직할 지배했다. 게이초 연간에 행해진 검지에서는 1,660석의 이고쿠가 나왔다. 야마토강의 물길이 바뀐 후 이로가와 수로가 된 히라노강 연안의 마을 용수 조합에 가입했지만, 가장 말단이었기 때문에 물 부족 시에는 물이 제대로 돌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메이지 시대 이후에도 이카이노는 벼농사나 면화를 재배하는 농가가 수십 채 모여 있는 전형적인 농촌이었지만, 다이쇼 시대의 다이오사카 시대에 시가지화・공업화가 진행되었다. 1919년경 지역 내 토지 소유자에 의해 "쓰루하시 경지 정리 조합"이 결성되어 민간 주도로 농지 정리와 하수도 정비가 이루어졌다. 이때 히라노강을 곧게 바꾸는 개수 공사가 이루어졌으나, 농지로 이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1925년 오사카시 편입과 맞물려 급속하게 주택・공장 밀집 지대로 변모했다.

1922년 오사카-제주도 간 정기 직행선 "군가요마루" 취항으로 제주도에서 조선 민족이 대량으로 도항하여 공장 노동자로 정착하면서 인구가 급증했다.[2] 1945년 일본 패전 후, 제주도 출신자 약 3분의 2는 제주도로 돌아갔지만, 1948년 제주 4·3 사건 이후 다시 일본으로 대량 이주해왔다. 이후 재일한국·조선인으로서 이 지역에 정착한 사람들에 의해 코리아타운이 형성되었다. '''제법건친회'''는 제주도 법환리(현재 서귀포시 법환동) 출신자 단체로, 1929년 강흥옥이 조직한 제법청년회의 후계 단체이다.[8]

2. 1. 고대 ~ 중세

인덕천황 시대에 많은 도래인이 이곳에 왔으며, 그 도래인들이 돼지를 기르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을 '이노이노'라고 불렀다. 문헌상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는 이곳을 흐르는 '백제강'(현재 히라노강)에 놓인 이카이노진 다리였으며, 시대가 흘러 에도 시대에는 "쓰루노하시"라고 불리면서 현재 "쓰루하시(鶴橋)"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1]

츠루노 가시터 공원 (공원 입구 앞의 도로 위에 다리가 있었다.)


니시슌토쿠 지조 (이쿠노구 카츠야마 키타 4초메). 이 근처가 구 대자 이노기리노의 코지 마을이다. 촬영자가 서 있는 위치·왼쪽 일방통행 표지판이 있는 도로 부분에 한때 구 히라노 강이 흐르고 있었다.


이 지역은 이카이베(猪甘部, 멧돼지 사육 부)로서 조정에 멧돼지(여기서는 대륙에서 건너온 돼지로 여겨짐)를 헌상하던 곳으로 전해지며, "이카이노(猪飼野)"라고 불렸다.[1] 고분 시대부터 아스카 시대 초기에는 모노노베 씨의 세력 하에 있었으나, 소가 씨와의 항쟁에서 패배한 후에는 시텐노지의 영지가 되었다.

백제 멸망과 백촌강 전투 이후, 우에마치 대지의 동쪽 기슭 일대에 다수의 백제인이 이주해 오면서, 일대는 "백제노"라고 불리게 되었다. 아스카 시대 이후,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의 보급으로 이카이베는 폐지되었고, 나라 시대부터 헤이안 시대에 걸쳐 이 지역을 포함한 우에마치 대지 동쪽 기슭 일대에 백제군이 설치되어 이카이노도 백제군(비정지)에 포함되었다. 이후 백제왕 씨는 나라 시대 말기에는 가와치(현재의 히라카타시 주변)로 이봉되었고, 백제군도 헤이안 시대 말기에는 해소되었으며, 중세에 걸쳐서는 시텐노지의 장원지가 되어 이카이노쇼(猪養野荘)라고 불렸다.

2. 2. 근세 ~ 현대

인덕천황 시대에 많은 도래인이 이곳에 왔는데, 그들이 돼지를 기르는 풍습이 있어 이 지역을 '이노이노'라고 불렀다. 문헌상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는 이곳을 흐르는 '백제강'(현재 히라노강)에 놓였으며, 에도 시대에는 쯔루바시라고 불렸고, 현재의 '쓰루하시(학다리)' 지명의 기원이 되었다.

1922년 오사카- 제주도 간 정기 직행선 "군가요마루"가 취항하면서 제주도에서 조선 민족이 대량으로 도항하게 되자, 이 지역은 공장 노동자의 최대 수용지가 되어, 조선 민족(대부분은 제주도 출신)의 인구가 급증했다[2]. 1945년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한 후, 제주도 출신자의 약 3분의 2 정도는 제주도로 돌아갔지만, 1948년 제주 4·3 사건 이후 다시 일본으로 대량 이주해왔다. 이후 재일한국·조선인으로서 이곳에 뿌리를 둔 사람들에 의해 코리아타운이 형성되어 갔다. '''제법건친회'''는 제주도 법환리(법환리, 현재 서귀포시 법환동) 출신자 단체로 1929년 삼익고무를 경영하던 강흥옥이 조직했다. 제법청년회의 후계단체이다[8].

2. 3. 연혁

인덕천황 시대에 많은 도래인이 이 지역에 왔으며, 그들이 돼지를 기르는 풍습이 있어 '이노이노'라고 불렸다. 문헌상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가 이곳을 흐르는 '백제강'(현재 히라노강)에 놓였으며, 에도 시대에는 쯔루바시라고 불렸고, 현재의 「쓰루하시」(학다리) 지명의 기원이 되었다.[1]

고분 시대부터 아스카 시대 초기에는 모노노베 씨의 세력 하에 있었으나, 소가 씨와의 항쟁에서 패배한 후에는 시텐노지의 영지가 되었다. 백제 멸망과 백촌강 전투 이후, 우에마치 대지의 동쪽 기슭 일대에 다수의 백제인이 이주해 오면서, 일대는 "백제노"라고 불리게 되었다. 아스카 시대 이후,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의 보급으로 이카이베는 폐지되었고, 나라 시대부터 헤이안 시대에 걸쳐 이 지역을 포함한 우에마치 대지 동쪽 기슭 일대에 백제군이 설치되어 이카이노도 백제군(비정지)에 포함되었다. 이후 백제왕씨는 나라 시대 말기에는 가와치(현재의 히라카타시 주변)로 이봉되었고, 백제군도 헤이안 시대 말기에는 해소되었으며, 중세에 걸쳐서는 시텐노지의 장원지가 되어 이카이노쇼(猪養野荘)라고 불렸다.

근세에는 초기를 제외하고 천령으로서 에도 막부가 직할 지배했다. 게이초 연간에 행해진 검지에서는 1,660석의 이고쿠가 나왔다. 야마토강의 물길을 바꾼 후 이로가와 수로가 된 히라노강 연안의 마을이 가입하는 용수 조합에 가입했지만, 가장 말단이었기 때문에 물 부족 시에는 물이 제대로 돌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메이지 시대 이후에도 이카이노는 벼농사나 면화를 재배하는 농가가 수십 채 모여 있는, 오사카 근교의 전형적인 농촌 중 하나에 불과했지만, 다이쇼 시대의 다이오사카 시대에 접어들면서 시가지화・공업화의 물결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농지를 주택지로 전환하는 지주나, 농사를 그만두고 직장 생활을 하는 소작인도 늘어나는 가운데, 1919년경에 지역 내 토지 소유자에 의해 "쓰루하시 경지 정리 조합"이 결성되어, 민간 주도로 농지의 정리와 하수도의 정비가 이루어졌다. 이때까지 구불구불하게 흐르던 히라노강을 곧게 바꾸는 개수 공사가 이루어졌다. 경지 정리라는 명목으로 신 히라노강 수로를 중심으로 구획 정리가 이루어졌지만, 농지로 이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1925년 오사카시 편입과 맞물려 급속하게 주택・공장 밀집 지대로 변모했다.

1922년 오사카 - 제주도 간 정기 직행선 "군가요마루"가 취항하면서 제주도에서 조선 민족이 대량으로 도항하게 되자, 이 지역은 공장 노동자의 최대 수용지가 되어, 조선 민족(대부분은 제주도 출신)의 인구가 급증했다.[2]

1945년 일본의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후, 제주도 출신자의 약 3분의 2 정도는 제주도로 돌아갔지만, 1948년에 일어난 제주 4·3 사건 이후 다시 일본으로 대량 도항해 왔다. 이후, 재일 한국·조선인으로서 이 지역에 정착한 사람들에 의해 코리아 타운이 형성되었다. '''제법건친회'''는 제주도 법환리(법환리, 포파니, 현재의 서귀포시법환동) 출신자 단체로, 1929년에 삼익 고무를 경영하던 강흥옥이 조직한 제법청년회의 후계 단체이다.[2]

시대연혁
고대~중세물부씨 지배지 → 시텐노지 영지
근세1615년~1619년 - 오사카번 소령
1619년~1684년경 - 오사카 서정 봉행 역지
1684년~1867년 - 막부 직할령
근대 이후1868년 - 오사카 재판소 사농국 외
1870년~ - 오사카부
1889년 4월 1일 - 히가시나리군 고바시촌, 히가시코바시촌, 기노촌, 오카촌과 합병하여 정촌제를 시행, 쓰루하시촌 대자 이카이노가 됨.
1912년 10월 1일 - 쓰루하시촌이 정제를 시행, 쓰루하시정 대자 이카이노가 됨.
1925년 4월 1일 - 오사카시에 편입되어, 히가시나리구 이카이노정이 됨.
1932년 - 히가시나리구 이카이노오도리, 이카이노니시, 이카이노나카, 이카이노히가시의 새로운 정명이 기립.
1943년 4월 1일 - 구획으로 이쿠노구가 신설되어, 간큐선 (현 긴테쓰선)을 경계로 북쪽이 히가시나리구 이카이노오도리, 남쪽이 이쿠노구 이카이노오도리, 이카이노니시, 이카이노나카, 이카이노히가시가 됨.
1944년 - 히가시나리구 이카이노오도리가 다이세이도리로 개칭.
1973년 2월 1일 - 주소 표기 변경으로 이카이노의 지명이 소멸[3]


3. 경제

平野川 연안을 중심으로 고무 제품, 금속 가공 관련 제조업이 많으며, 중소 규모의 공장이 많다. 히가시 오사카시와 함께 오사카의 공장 밀집 지역이다.

이쿠노 코리아 타운으로 불리는 지역의 중심인 "미유키도리 상점가"가 있으며, 코리아 타운이 형성되어 있다. 지역 내에 불고기집이나 한국 요리 식당, 김치를 판매하는 반찬 가게가 많다.

4. 지리

이카이노는 1973년까지 히가시나리군 쓰루하시정에 속했던 지역으로, 이노사키노 오도리, 이노키노니시, 이노키노노우치, 이노키노 히가시 등의 마을 이름이 있었다. 현재는 히가시나리구 타마즈·오이마리 니시의 각 일부, 이쿠노구 나카가와니시 전역 및 쓰루하시·모모타니·카츠야마 북·카츠야마 미나미·샤리지·나카가와·타지마의 각 일부에 해당한다.

구 이카이노 지역은 동쪽으로는 옛 코지촌, 타츠미정의 경계까지, 서쪽으로는 개수 전 히라노강의 옛 유역(모모다니 3초메의 대부분을 포함, 카츠야마키타 5초메에서 동쪽)이 지역이었다. 구체적으로 북쪽은 긴테츠선을 넘어, 현재의 센니치마에 거리의 조금 북쪽, 타마츠 2초메의 일부, 오이마자토 3초메의 일부 지역까지, 남쪽은 현재의 타지마 2초메와 3초메의 경계 부근까지의 범위이다.[2]


  • 히라노강
  • * 현재 이카이노 지역의 중앙을 남북으로 곧게 흐르는 굴착 하천이지만, 과거에는 지역의 서쪽 경계를 구불구불 흐르고 있었다. 현재는 옛 유역은 매립되었고, 일부 지역은 구획 정리되었기 때문에 그 흔적을 식별하기 어렵다. 1997년에는 '쓰루노하시'의 흔적 근처에 쓰루노하시 흔적 공원이 조성되었고, 현창비가 세워졌다.[2]
  • * 옛 쓰루노하시 위치: [2]


과거 지역 북동쪽에 니시노강이 흐르고 있었지만, 1965년대(쇼와 40년대)에 매립되어 소멸되었다. 이마자토 거리긴테쓰 오사카선의 교차부 바로 남쪽에 이카이노 다리 교차로가 있으며, 시도가 동남-북서 방향으로 비스듬히 교차하고 있는데, 그 시도가 하천의 흔적에 따라 건설된 것이다. 교차로 위치에 이카이노 다리가 있었다.[2]

5. 교통

JR 오사카 순환선, 긴테쓰 오사카 선, 오사카 메트로 센니치마에 선 쓰루하시역이 근처에 있다. 또한, 긴테쓰 오사카 선 이마자토역, 지하철 센니치마에 선 이마자토역, JR 오사카 순환선 모모다니역도 근처에 있으나, 이카이노 지역에서는 약간 떨어져 있다.

주요 도로로는 센니치마에도리, 가쓰야마도리, 이마자토스지가 있다.

6. 시설 및 유적


  • 미유키모리 텐진구
  • 오사카부 경찰 이쿠노 경찰서
  • 오사카 시립 이쿠노 도서관
  • 오사카 시립 오이케 중학교
  • 오사카 시립 히가시나리 도서관
  • 오사카 시립 미유키모리 초등학교
  • 오사카 시립 샤리데라 초등학교
  • 미유키도리 상점가 (미유키도리 히가시 상점가, 미유키도리 중앙 상점회, 미유키도리 상점가)
  • 오사카 시영 이쿠노 실내 수영장


7. 출신 및 연고 인물


  • 기무라 곤에몬 - 가와치의 면포상 기무라 가문의 후손. 쓰루하시 정 의원, 경지정리조합 부조합장, 요도가와 좌안 수해 예방 의원을 지냈으며, 중의원 의원 (1기)을 역임했다.
  • 나카야마 후쿠조[6] - 변호사이자 정치인으로, 참의원 의원과 중의원 의원을 역임했다. 이카이노 정에 거주했다.[6] 나카야마 타로, 나카야마 마사키의 아버지이다.
  • 마쓰시타 고노스케 - 실업가. 새로운 전구용 소켓을 고안하여 당시 근무하던 오사카 전등에 채용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회사를 퇴직했다. 1917년(다이쇼 6년) 6월, 이카이노의 셋집에서 아내 무메와 의동생 이우에 토시오 등과 함께 전구 소켓 제조·판매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소켓이 팔리지 않아 곤궁했지만, 가와키타 전기 기업사로부터의 선풍기 풍량 전환 부품 발주와 어태치먼트 플러그, 두 등용 꽂이 플러그의 히트로 경영이 궤도에 올랐다. 어태치먼트 플러그와 두 등용 꽂이 플러그 발매 전후인 1918년(다이쇼 7년)에는 이카이노를 떠나 기타구 니시노다 다이카이초(현: 후쿠시마구 오히라키 2쵸메)에 주거 겸 공장을 세워 마쓰시타 전기 기구 제작소(파나소닉의 전신)를 창업했다[7]
  • 양석일 - 소설가. 이카이노 출신이다.

참조

[1] 논문 猪甘部考 吉川弘文館
[2] 간행물 前期の鶴橋署と朝鮮人−ゴム工労働者の7回のゼネスト計画をめぐる闘争を中心にして− http://www.ksyc.jp/s[...] 2011-09-01
[3] 웹사이트 京都仁丹樂會:仁丹町名表示板 大阪市の場合 http://jintan.kyo2.j[...]
[4] 간행물 日本紳士録 第33版 http://dl.ndl.go.jp/[...] 国立国会図書館デジタルコレクション 2021-04-05
[5] 간행물 日本紳士録 第32版 http://dl.ndl.go.jp/[...] 国立国会図書館デジタルコレクション 2021-04-06
[6] 간행물 人事興信録 第11版 下 http://dl.ndl.go.jp/[...] 国立国会図書館デジタルコレクション 2021-04-05
[7] 서적 血族の王 松下幸之助とナショナルの世紀 新潮社
[8] 간행물 前期の鶴橋署と朝鮮人−ゴム工労働者の7回のゼネスト計画をめぐる闘争を中心にして− http://www.ksyc.jp/s[...] 2011-09-01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