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도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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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토 도요오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활동한 건축가이다. 도쿄 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기쿠타케 기요노리 설계 사무소에서 근무 후, 1971년 독립하여 아반 로봇(현 이토 토요오 건축 설계 사무소)을 설립했다. 개인 주택 설계를 시작으로, 저렴하고 미니멀한 건축 양식으로 주목받았으며, 버블 경제 시대의 도시 유목민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를 발표하기도 했다. 1986년 요코하마역 서쪽에 '바람의 탑'을 설계하며 공공 건축 분야로 진출했고, '센다이 미디어테크'를 통해 실험적인 건축으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2006년 RIBA 골드 메달, 2013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교육 활동과 사회 참여에도 적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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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도요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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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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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이토 도요오 (伊東 豊雄) |
출생일 | 1941년 6월 1일 |
출생지 | 일제 강점기 조선 경성부 (현재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국적 | 일본 |
웹사이트 | 이토 도요 & 어소시에이츠 |
학력 | |
출신 대학 | 도쿄 대학 |
학위 | 공학부 졸업 |
기타 | 다마 미술대학 대학원 미술연구과 |
경력 | |
주요 경력 | (주)이토 도요오 건축 설계 사무소 |
주요 작품 | |
주요 건축물 | White U 실버 헛 센다이 미디어테크 다마 미술대학 도서관 타이중 국가 가극원 |
주요 프로젝트 | 해당 사항 없음 |
주요 디자인 | 해당 사항 없음 |
수상 | |
수상 내역 | 일본 건축 학회상 작품상 (1986년, 2003년) 무라노 도고 상 (1990년, 2017년) 일본 예술원상 (1999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금사자상 (2002년) RIBA 골드 메달 (2006년) 다카마쓰노미야 전하 기념 세계 문화상 (2010년) 프리츠커상 (2013년) 일본 건축 학회상 대상 (2016년) 문화 공로자 (2018년) 욱일중광장 (2021년) 일본 예술원 회원 (2022년) |
2. 생애 및 경력
이토 도요오는 1941년 일제강점기 조선 경성부(현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25] 2세부터 중학생 때까지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고향인 나가노현 스와군 시모스와정에서 자랐다.[4] 도쿄도립 히비야 고등학교와 도쿄 대학 공학부를 졸업하고, 기쿠타케 기요노리 설계 사무소에서 근무하였다.
1971년 독립하여 어번로봇(アーバンロボット|아반 로봇일본어, 현 이토 도요오 건축 설계 사무소)을 설립하였다.[29][30] 초기에는 "White U", "실버햇" 등 개인 주택을 중심으로 작업하며 저렴하고 금욕적이며 미니멀한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또한 소비 사회 속 도시 유목민(노마드)을 테마로 "도쿄 유목 소녀의 포(파오)"와 같은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도시를 비평하는 활동을 했다.[32]
1986년 요코하마역 서쪽 출구에 만든 심볼 타워 겸 지하 환기탑 "바람의 탑"은, 무수한 구멍을 뚫은 금속판(펀치 메탈)과 다수의 조명으로 구성된 반투명 탑이었다. 이는 바람 등 주변 기상 조건에 따라 표면에 다채로운 빛이 나타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금속판의 참신한 사용 방법과 환경과의 상호작용성으로 주목받았다.[35]
1990년대 들어 센다이 미디어테크를 대표로 점차 구조적으로도 실험적이고, 관능적인 외관과 내부 공간이 있는 작품 경향으로 옮겨갔다.[36]
2006년 영국 왕립 건축가 협회에서 골드 메달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중요한 건축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32] 다마 미술 대학 객원 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0년에는 에히메현 이마바리시 오미시마정에 이마바리시 이토 도요오 건축박물관을 개관하였다. 2013년에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하였고, 자신이 설계하는 건축을 위한 가구 디자인도 하고 있다.
2. 1. 초기 생애 (1941-1965)
이토 도요오는 1941년 일제강점기 조선 경기도 경성부(현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4][25] 2세부터 중학생 때까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고향인 나가노현 스와군 시모스와정에서 자랐다.[4] 4살 때 처음 도쿄에 가면서 고등학교는 도쿄에서 다니기로 결심했다.도쿄도립 히비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4] 도쿄 대학 공학부 건축학과에 진학했다.[4][27] 대학 진학 당시 건축가를 지망하지는 않았으나, 대학교에서 건축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27]
1965년 도쿄 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4] 기쿠타케 기요노리 설계 사무소에서 근무했다.[28]
2. 2. 초기 경력 (1965-1971)
1965년 도쿄 대학 공학부를 졸업한 후 기쿠타케 기요노리 설계 사무소에 근무하였다.[27] 1971년에는 독립하여 어번로봇(アーバンロボット|아반 로봇일본어)을 설립하였다.[29][30] 이는 현재 이토 도요오 건축 설계 사무소의 전신이다.초기에는 "White U", "실버햇" 등 개인 주택을 중심으로 작업했다.[1][31] 이 시기 이토는 저렴하면서도 금욕적이고 미니멀한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또한, 소비 사회에 사는 도시 유목민(노마드)을 테마로 "도쿄 유목 소녀의 포(파오)"와 같은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도시를 비판하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5][32]
1986년에는 요코하마역 서쪽 출구에 심볼 타워 겸 지하 환기탑인 "바람의 탑"을 만들었다.[35] 이 탑은 무수한 구멍이 뚫린 금속판(펀치 메탈)과 다수의 조명으로 구성된 단순한 반투명 탑처럼 보이지만, 바람 등 주변 기상 조건에 따라 표면에 화려한 빛이 뜨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어 주목을 받았다.[1]
2. 3. 독립 및 초기 작품 활동 (1971-1980년대)
이토 도요오는 1971년 자신의 회사인 어번로봇(アーバンロボット, 현 이토 도요오 건축 설계 사무소)을 설립했다.[4] 초기에는 "White U", "실버햇" 등 개인 주택을 중심으로 설계하며, 저렴하면서도 금욕적이고 미니멀한 작품으로 주목받았다.[1] 1976년 작품인 '화이트 U'와 1984년 작품인 '실버 헛'은 그의 초기 대표작으로 꼽힌다.[1]또한, 소비 사회 속에서 물건뿐만 아니라 생활 공간까지 소비하는 젊은 여성 도시 유목민(노마드)을 주제로 "도쿄 유목 소녀의 포(파오)"라는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등 도시를 비판하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5] 1985년과 1989년에 발표된 "도쿄 유목 소녀를 위한 파오" 프로젝트는 버블 경제 시대 도시 유목민의 삶을 보여주는 비전을 제시했다.[5]
1986년에는 요코하마역 서쪽 출구에 심볼 타워 겸 지하 환기탑인 "바람의 탑"을 만들었다. 이 탑은 구멍 뚫린 금속판(펀치 메탈)과 다수의 조명으로 구성된 반투명한 탑으로, 바람 등 주변 기상 조건에 따라 표면에 화려한 빛이 나타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었다.[35] 이는 금속판의 참신한 사용 방법과 환경과의 상호작용성으로 주목받았다. "바람의 탑"(1986)과 "바람의 알"(1991)은 공공 공간의 상호작용적인 랜드마크로, 현대 기술의 가능성을 창의적으로 해석한 결과물이다.[1]
2. 4. 전환점: 바람의 탑 (1986)
1986년 요코하마역 서쪽 출구에 세워진 심볼 타워 겸 지하 환기탑인 "바람의 탑"은 수많은 구멍을 뚫은 금속판(펀칭 메탈)과 다수의 조명으로 구성되어, 단순하고 반투명한 탑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람 등 주변 기상 조건에 따라 표면에 다채로운 빛이 나타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어, 금속판의 참신한 사용 방법과 환경과의 상호작용성으로 주목받았다.[35] 이 작품은 이토 도요오가 공공 건축 분야에서 처음으로 주목받은 계기가 되었다.2. 5. 1990년대 이후: 실험적 건축으로의 확장
1990년대 들어 센다이 미디어테크를 대표로 하여 점차 구조적으로도 실험적이며, 관능적인 외관과 내부 공간을 가진 작품 경향으로 옮겨갔다.[36] 센다이 미디어테크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2. 6. 센다이 미디어테크와 건축 철학의 확립 (2001)
1990년대에 들어 이토 도요오는 센다이 미디어테크를 대표작으로 하여, 구조적으로 실험적이면서도 관능적인 외관과 내부 공간을 가진 작품 스타일로 변화해갔다.[36] 센다이 미디어테크는 그의 건축 철학이 확립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이토는 1986년 요코하마역 서쪽 출구에 심볼 타워 겸 지하 환기탑인 "바람의 탑"을 설계했다. 이 타워는 수많은 구멍이 뚫린 금속판(펀칭 메탈)과 다수의 조명으로 구성되어 단순한 반투명 탑처럼 보이지만, 바람 등 주변 기상 조건에 따라 표면에 화려한 빛이 나타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었다. 이러한 금속판의 참신한 사용 방법과 환경과의 상호작용성은 큰 주목을 받았다.
2. 7. 국제적 명성과 수상 (2000년대 이후)
2006년 영국 왕립 건축가 협회에서 골드 메달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중요한 건축가 중 한 명으로 간주되고 있다.[32] 건축가를 많이 배출하는 교육자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다마 미술 대학 객원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2010년에는 에히메현 이마바리시 오미시마정에 이마바리시 이토 도요오 건축박물관을 개관하였다. 2013년에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자신이 설계하는 건축을 위한 가구 디자인도 하고 있다.2. 8. 사회 참여와 '모두의 집' 프로젝트 (2011년 이후)
2011년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이토 도요오는 건축가로서 사회적 역할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그는 피해 지역 주민들과 함께 '모두의 집'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모두의 집'은 지진과 쓰나미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공동체를 회복하는 공간이다.[34]이토는 '모두의 집'을 설계하면서,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을 넘어 사람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는 주민들과의 대화를 통해, '모두의 집'이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라, 함께 모여 식사하고, 이야기하며, 슬픔을 나누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모두의 집' 프로젝트는 이토 도요오의 건축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건축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2. 9. 교육 활동
이토 도요오는 건축가를 많이 배출하는 교육자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22] 다마 미술 대학 객원 교수이며, 일본 여자 대학교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노던 런던 대학교 명예 교수이자, 컬럼비아 대학교 객원 교수를 지냈다.[22] 2010년에는 에히메현 이마바리시 오미시마정(大三島町) 우라도(浦戸)에 이마바리시 이토 도요오 건축박물관(今治市伊東豊雄建築ミュージアム)을 설치하였다.3. 주요 작품
오카와바타 리버시티21 타운 게이트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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