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물 경주 (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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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애물 경주는 육상 트랙 경기의 한 종목으로, 3,000m 또는 2,000m 거리를 달리며 정해진 수의 장벽과 물웅덩이를 넘는 경기이다. 이 경기는 19세기 초 영국에서 사냥에서 유래되었으며, 1900년 파리 올림픽에서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3,000m 경기는 28개의 장벽과 7개의 물웅덩이를, 2,000m 경기는 18개의 장벽과 5개의 물웅덩이를 넘어야 한다. 장애물은 규격에 맞춰 설치되며, 선수들은 장애물을 넘거나 물웅덩이를 통과해야 한다. 여성 경기는 1980년대 소련에서 시작되었으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여자 3000m 경기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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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물 경주 (육상) - 3000미터 장애물
3000미터 장애물은 올림픽과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육상 트랙 경기 종목으로, 트랙을 돌며 일반 장애물 4개와 물 웅덩이 1개를 넘어야 하며, 남자부 장애물 높이는 91.4 cm, 여자부 장애물 높이는 76.2 cm이다. - 중거리달리기 - 중거리 달리기
중거리 달리기는 육상에서 단거리와 장거리의 중간 거리를 달리는 경주로, 800m, 1500m, 1마일, 3000m 등 다양한 종목이 있으며, 특히 1500m 달리기는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어 있다. - 중거리달리기 - 1500미터 달리기
1500미터 달리기는 육상 트랙 경기이며, 선수들이 400미터 트랙을 3바퀴 300미터 달려 기록을 경쟁하고, 마지막 바퀴에서 속도를 높여 순위를 결정하는 전략적인 레이스가 펼쳐지며, 남자 세계 기록은 히샴 엘 게루즈가, 여자 세계 기록은 페이스 키피에곤이 보유하고 있다.
장애물 경주 (육상) | |
---|---|
장애물 경주 | |
![]() | |
다른 이름 | 스티플체이스 |
종류 | 육상 |
특징 | 허들과 물웅덩이를 포함한 장애물이 있는 경주 |
상세 정보 | |
성별 | 남녀 |
올림픽 데뷔 | 1900년 (남자), 2008년 (여자) |
장애물 높이 | 남자 91.4cm, 여자 76.2cm |
물웅덩이 길이 | 3.66m |
남자 거리 | 3000m |
여자 거리 | 3000m |
장애물 수 | 30개 (물웅덩이 7개 포함) |
트랙 | 400m 트랙 |
역사 | |
기원 | 영국 크로스컨트리 경주 |
초기 형태 | 교회 첨탑(steeple)을 목표로 삼아 장애물을 넘는 경주 |
공식화 |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육상 경기로 공식화 |
올림픽 도입 | 1900년 하계 올림픽 (남자), 2008년 하계 올림픽 (여자) |
규칙 | |
장애물 통과 | 장애물은 반드시 넘어야 함 |
물웅덩이 통과 | 물웅덩이는 뛰어넘거나 밟고 건너갈 수 있음 |
파울 | 고의로 장애물을 넘어뜨리거나, 다른 선수 방해 시 실격 |
기술 | |
허들 넘기 | 최소한의 높이로 빠르게 넘는 기술 |
물웅덩이 넘기 | 도약 거리와 착지 지점 조절 능력 |
착지 | 착지 후 균형 유지 및 속도 유지 |
달리기 기술 | 코너링, 스퍼트 능력 |
기타 | |
인기 | 유럽, 아프리카에서 인기 |
주요 선수 | 다양한 국가의 육상 선수들이 활약 |
훈련 | 허들, 점프, 달리기 훈련 병행 |
2. 역사
장애물 경주는 원래 개와 함께 사냥하는 데서 유래한 승마 경기였다. 19세기 초 영국에서는 여우, 토끼, 수사슴 사냥이 매우 흔했다.[1][2] 기수들은 "스테이플 사냥" 또는 "교회 첨탑 사냥"이라 불리는 경기에 참여했는데, 눈에 잘 띄는 첫 번째 교회 첨탑을 향해 달려가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이기는 방식이었다.[3][4][5] 이 경주는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1796년 11월 잉글랜드에 전해졌다. "스테이플 체이스"라는 용어는 1802년 3월 20일 영국 신문 기록 보관소에 처음 등장했다.[9]
1827년 5월 에든버러의 한 술집 뒷마당에서 열린 헌터스 트라이스트에서 에든버러 식스 풋 클럽의 첫 공개 모임 때 발 경주가 스테이플체이스라고 불린 최초의 기록이 있다.[12] 1829년 7월 24일, 레이턴 강 유역에서 열린 세인트 로난 보더 게임에서 물 장애물이 있는 최초의 스테이플체이스 발 경주가 열렸다.[16]
몇 년 동안 거친 크로스컨트리 경주로 남아 있다가, 경주가 달리기 트랙에서 시작하거나 끝날 수 있으며, 결국 완전히 트랙에서 개최될 수 있다는 것이 확립되었다. 크로스컨트리 달리기는 헤어 앤 하운드로 알려지면서 발전했고, 크로스컨트리와 스테이플체이스의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초로 스테이플체이스를 개최한 학교는 1834년 4월 럭비였다.[17][18] 같은 달 말, 리데스데일 체조 협회는 뉴캐슬턴 근처 망거턴 홀름에서 첫 번째 모임을 열었는데, 스테이플체이스가 육상 스포츠의 다른 경기와 함께 열린 최초의 대회였다.[20][21] 1840년까지 스테이플체이스는 인기를 얻어 한 달 만에 전국 각지에서 10개의 경주가 열렸다. 스테이플체이스는 약 9m~10m 이상 달릴 필요가 없는 더 짧은 경주였고, 크로스컨트리는 일반적으로 약 9.66km 이상에서 약 16.09km까지였다. 스테이플체이스는 점점 더 관람 스포츠로 여겨졌으며, 관중이 경주를 볼 수 있는 곳을 고려한 코스 계획을 세웠고, 신문과 경기장 베팅에서 배당률이 인용되면서 관중에게 추가적인 흥분을 더했다.
최초로 인공 물 점프를 설치한 장소는 샌드허스트 왕립 육군 사관학교였다.[52] 달리기 트랙에서 완전히 열린 최초의 스테이플체이스는 1868년 5월 보퍼트 하우스에서 열린 공무원 스포츠 경기였다.[53]
아마추어 육상 협회 선수권 대회(AAA)는 IAAF(현재 월드 육상) 세계 선수권 대회가 1980년대에 시작될 때까지 육상의 사실상 세계 선수권 대회였다. 1880년 첫 AAA 선수권 대회에서 스테이플체이스는 약 1.61km 1,440야드로 달렸고, 1913년부터 약 3.22km로 표준화되었다.[54] 스테이플체이스는 1900년까지 현대 올림픽에서 열리지 않았다. 1920년 앤트워프에서 3000m 경주가 처음 개최되었다.[57]
스테이플체이스는 1934년 토리노에서 열린 최초의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에 포함되지 않았고, 최초의 유럽 챔피언은 1938년 파리에서 열린 두 번째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나왔다.[58]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는 처음 두 번은 그 해 올림픽에서 제외된 제한된 수의 경기로 구성되었다. 남녀 모든 경기가 포함된 최초의 세계 선수권 대회는 1983년 헬싱키에서 열렸다.[59]
전미 대학 체육 협회(NCAA)는 1948년에 약 3.22km 스테이플체이스를 도입했으며, 1959년부터 연례 행사가 되었다. 1954년 이전의 기록은 비교할 수 없지만, 10m 미만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는 스웨덴의 요세프 테른스트룀이고, 9m 미만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는 스웨덴의 에릭 엘름세테르였다. 1954년 경기가 표준화되고 세계 기록이 처음 인정되었을 때 핀란드 국가 기록은 올라비 린테엔패가 기록했다.
최초의 세계 기록은 헝가리의 샨도르 로즈니이가 공인받았다. 벨기에의 가스통 로엘란츠는 8m 30초 미만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고, 케냐의 모세스 킵타누이는 8m 벽을 처음으로 깼다. 다른 주목할 만한 선수로는 핀란드의 볼마리 이소-홀로, 스웨덴의 안데르스 가르데루드, 케냐의 헨리 로노와 피터 코에치가 있다.
시니어 레벨에서 여성 스테이플체이스는 1980년대 소련에서 시작되었고, 초기 2000m 경주가 열렸다. 여성 스테이플체이스의 첫 번째 주요 경기는 1987년 멜버른에서 열린 세계 베테랑 게임이었다.[60] 1988년부터 소련은 여성 2000m 스테이플체이스 선수권 대회를 개최했다.[62] 1991년부터 미국은 자국 선수권 대회에서 여성 2000m 비선수권 경주를 개최했으며, 1995년에는 3000m 비선수권 경주가 되었고, 1998년 코트니 멜드럼은 3000m 스테이플체이스에서 전국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아르헨티나, 호주, 캐나다, 폴란드, 러시아는 모두 1999년에 여자 3000m 스테이플체이스 선수권 대회를 가졌다. 루마니아의 다니엘라 페트레스쿠는 10m 미만을 기록한 최초의 여성 선수였고, 세기말에는 러시아의 옐레나 모탈로바가 기록을 세웠다.
핀란드, 프랑스, 뉴질랜드 및 노르웨이는 모두 2000년에 여자 3000m 선수권 대회를 개최했다. 최초의 영국 챔피언은 티나 브라운이었고, 마리아 맥캠브리지는 2007년 첫 스코틀랜드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고, 같은 해 로신 맥게티건은 아일랜드 최초의 여성 스테이플체이스 챔피언이 되었다.
전미 대학 체육 협회(NCAA)는 2001년에 여성 경기를 채택했고, 최초의 우승자는 엘리자베스 잭슨이었다. 2005년 도르쿠스 인지쿠루는 헬싱키에서 열린 여자 경기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했고, 2008년 베이징 국립 경기장에서 러시아의 굴나라 사미토바-갈키나는 이 경기에서 최초의 올림픽 챔피언이 되었고, 3000m 스테이플체이스에서 9m 미만을 기록한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2. 1. 초기 기원 (영국)
장애물 경주는 원래 개와 함께 사냥을 하는 데서 유래한 승마 경기였다. 19세기 초, 영국에서는 여우, 토끼, 수사슴 사냥이 매우 흔했다.[1][2]기수들은 "스테이플 사냥" 또는 "교회 첨탑 사냥" 경기에 참여했는데, 첫 번째 보이는 교회 첨탑을 향해 달려가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이기는 방식이었다.[3][4][5] 이 경주는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1796년 11월 잉글랜드에 도착했다. 세 명의 남자가 빌스던 콥로에서 레스터셔까지 약 14.48km(약 14.5km)를 26분에 달리는 경주를 했고, 100 기니를 걸었다.[6][7][8] "스테이플 체이스"라는 용어는 1802년에 처음 등장했다.[9]
1827년 5월, 에든버러의 한 술집 뒷마당에서 열린 헌터스 트라이스트에서 에든버러 식스 풋 클럽의 첫 공개 모임 때 발 경주가 스테이플체이스라고 불린 최초의 기록이 있다. 이 경주는 코이츠, 소총 사격과 함께 진행되었으며, 우승자에게는 은메달이 수여되었다.[12] 1829년에는 6분 만에 주파하는 기록이 나왔다.[15]
1829년 7월 24일, 레이턴 강 유역에서 열린 세인트 로난 보더 게임에서 물 장애물이 있는 최초의 스테이플체이스 발 경주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숲에서 출발하여 물과 밭, 둑과 도랑을 건너 자신만의 길을 택했다.[16]
스테이플체이스는 몇 년 동안 거친 크로스컨트리 경주로 남아 있다가, 점차 달리기 트랙에서 시작하거나 끝날 수 있게 되었고, 결국 완전히 트랙에서 개최되었다. 크로스컨트리 달리기는 헤어 앤 하운드로 발전하면서 스테이플체이스와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테이플체이스는 출발점과 도착점이 주어지고, 지역 규칙을 준수하며 자신만의 길을 찾는 방식이었다.
1834년 4월, 럭비에서 최초로 스테이플체이스를 개최했다. 학생들은 약 약 6.44km(약 6.4km) 떨어진 바비 언덕 꼭대기까지 달리며 울타리와 개울을 만났다.[17][18]
2. 2. 트랙 경기로의 발전
장애물 경주는 초기에 크로스컨트리 형태로 진행되다가 점차 트랙 경기로 발전하였다. 크로스컨트리와 달리 장애물 경주는 출발점과 도착점이 주어지고, 정해진 코스 없이 울타리, 도랑 등을 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17]1834년 4월 럭비에서 최초로 장애물 경주가 개최되었다. 학생들은 약 4마일 거리의 들판을 달렸으며, 울타리와 개울을 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18]
1868년 5월에는 보퍼트 하우스에서 공무원 스포츠 경기의 일환으로 트랙에서 완전히 진행되는 최초의 장애물 경주가 열렸다. 선수들은 700야드 코스에서 허들과 물 점프를 두 번씩 넘어야 했으며, 대영 박물관의 시드니 애보트가 우승했다.[53]
아마추어 육상 협회 선수권 대회(AAA)는 1880년 첫 대회에서 1마일 1,440야드 장애물 경주를 포함시켰고, 위드네스 축구 클럽의 제임스 콘캐넌이 우승했다. 1913년부터 거리는 2마일로 표준화되었으며, 하이게이트 해리어스의 찰스 러펠이 우승했다.[54]
1900년 파리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장애물 경주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2,500미터와 4,000미터 두 종목이 진행되었다.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부터는 3,000미터 경주가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57]
2. 3. 국제 대회 채택
1900년 하계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장애물 경주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당시에는 2500m와 4000m 두 가지 경주가 열렸다.[55][56] 2500m 경주에서는 캐나다의 조지 오턴이, 4000m 경주에서는 영국의 존 리머가 우승했다.[55][56] 이후 1904년과 1908년 올림픽에서도 다양한 거리의 장애물 경주가 열렸으며, 1920년 하계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3000m 장애물 경주가 개최되었다.[57] 이 경주에서는 영국의 퍼시 호지가 10분 00초 4의 기록으로 우승했다.[57]
1934년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는 장애물 경주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지 않았지만, 1938년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처음으로 3000m 장애물 경주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58] 스웨덴의 라르스 라르손이 9분 16초 2의 기록으로 우승했다.[58]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는 1983년에 처음으로 남녀 모든 종목을 포함하여 개최되었으며, 3000m 장애물 경주에서는 서독의 파트리츠 일그가 8분 15초 06의 기록으로 우승했다.[59]

여자 3000m 장애물 경주는 2005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60][61] 우간다의 도르쿠스 인지쿠루가 우승했다.[62] 2008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러시아의 굴나라 사미토바-갈키나가 8분 58초 81의 기록으로 여자 선수 최초로 9분 벽을 깨며 우승했다.
2. 4. 여성 장애물 경주
Steeplechase영어는 원래 개와 함께 사냥하는 데서 유래한 승마 경기였다. 19세기 초 영국에서 여우, 토끼, 수사슴 사냥이 매우 흔해졌고, 왕도 사냥개 떼를 길렀다.[1][2] 기수들은 "스테이플 사냥" 또는 "교회 첨탑 사냥" 경기에 참여했는데, 눈에 띄는 교회 첨탑을 향해 달려가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이기는 방식이었다.[3][4][5] 이 경주는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1796년 잉글랜드에 도착했다. "스테이플 체이스"라는 용어는 1802년에 처음 등장했다.[9]1827년 에든버러의 한 술집 뒷마당에서 스테이플체이스라고 불린 최초의 발 경주가 언급되었다.[12] 1829년에는 물 장애물이 있는 최초의 발 경주가 레이턴 강 유역에서 열렸다.[16] 스테이플체이스는 몇 년 동안 거친 크로스컨트리 경주로 남아 있다가, 경주가 달리기 트랙에서 시작하거나 끝날 수 있으며, 결국 완전히 트랙에서 개최될 수 있다는 것이 확립되었다. 크로스컨트리 달리기는 종이 추격전 또는 헤어 앤 하운드로 알려지면서 발전하기 시작했고, 크로스컨트리와 스테이플체이스의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초로 스테이플체이스를 개최한 학교는 1834년 럭비였다.[17][18] 같은 해, 리데스데일 체조 협회는 첫 번째 모임을 가졌는데, 스테이플체이스가 육상 스포츠의 다른 경기와 함께 열린 최초의 대회였다.[20][21] 1840년까지 스테이플체이스는 충분히 인기를 얻었다. 스테이플체이스는 더 짧은 경주로, 관람 스포츠로 여겨졌으며, 코스 계획을 세웠고, 베팅에서 배당률이 인용되면서 관중에게 흥분을 더했다.
최초로 인공 물 점프를 설치한 장소는 샌드허스트 왕립 육군 사관학교였다.[52] 달리기 트랙에서 완전히 열린 최초의 스테이플체이스는 1868년 보퍼트 하우스에서 열린 공무원 스포츠 경기였다.[53]
아마추어 육상 협회 선수권 대회 (AAA)는 사실상 세계 선수권 대회였다. 1880년 첫 AAA 선수권 대회에서 스테이플체이스는 1마일 1,440야드로 달렸고, 거리는 1913년부터 2마일로 표준화되었다. 스테이플체이스는 1900년 올림픽에서 열리지 않았으며, 1920년 앤트워프에서 3000미터 경주가 처음 개최되었다.[57]
스테이플체이스는 1934년 토리노에서 열린 최초의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 프로그램에 포함되지 않았고, 최초의 유럽 챔피언은 1938년 파리에서 열린 두 번째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나왔다.[58]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의 처음 두 번의 반복은 제한된 수의 경기로 구성되었다. 남녀 모든 경기가 포함된 최초의 세계 선수권 대회는 1983년 헬싱키에서 열렸다.[59]
전미 대학 체육 협회 (NCAA)는 1948년에 2마일 스테이플체이스를 도입했으며, 1959년부터 연례 행사가 되었다. 1954년 이전의 기록은 비교할 수 없지만, 10분 미만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는 스웨덴의 요세프 테른스트룀이고, 9분 미만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는 스웨덴의 에릭 엘름세테르였다. 1954년 경기가 표준화되고 세계 기록이 처음 인정되었을 때 핀란드 국가 기록은 올라비 린테엔패가 기록했다.
최초의 세계 기록은 헝가리의 샨도르 로즈니이가 공인받았다. 벨기에의 가스통 로엘란츠는 8:30 미만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고, 케냐의 모세스 킵타누이는 8분 벽을 처음으로 깼다. 다른 주목할 만한 선수로는 핀란드의 볼마리 이소-홀로, 스웨덴의 안데르스 가르데루드, 케냐의 헨리 로노와 피터 코에치가 있다.
시니어 레벨에서 여성 스테이플체이스는 1980년대 소련에서 시작되었고, 초기 2000미터 경주가 열렸다. 여성 스테이플체이스의 첫 번째 주요 경기는 1987년 멜버른에서 열린 세계 베테랑 게임이었다.[60] 1988년부터 소련은 여성 2000미터 스테이플체이스 선수권 대회를 개최했다.[62] 1991년부터 미국은 자국 선수권 대회에서 여성 2000미터 비선수권 경주를 개최했으며, 1995년에는 3000미터 비선수권 경주가 되었고, 1998년 코트니 멜드럼은 3000미터 스테이플체이스에서 전국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아르헨티나, 호주, 캐나다, 폴란드, 러시아는 모두 1999년에 여자 3000미터 스테이플체이스 선수권 대회를 가졌다. 루마니아의 다니엘라 페트레스쿠는 10분 미만을 기록한 최초의 여성 선수였고, 세기말에는 러시아의 옐레나 모탈로바가 기록을 세웠다.
핀란드, 프랑스, 뉴질랜드 및 노르웨이는 모두 2000년에 여자 3000미터 선수권 대회를 개최했다. 최초의 영국 챔피언은 티나 브라운이었고, 마리아 맥캠브리지는 2007년 첫 스코틀랜드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고, 같은 해 로신 맥게티건은 아일랜드 최초의 여성 스테이플체이스 챔피언이 되었다.
전미 대학 체육 협회 (NCAA)는 2001년에 여성 경기를 채택했고, 최초의 우승자는 엘리자베스 잭슨이었다. 2005년 도르쿠스 인지쿠루는 헬싱키에서 열린 여자 경기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했고, 2008년 베이징 국립 경기장에서 러시아의 굴나라 사미토바-갈키나는 이 경기에서 최초의 올림픽 챔피언이 되었고, 3000미터 스테이플체이스에서 9분 미만을 기록한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3. 경기 방식
3000m 장애물 경주는 규칙상 28개의 장벽과 7개의 물웅덩이를 통과해야 한다. 2000m 장애물 경주는 18개의 장벽과 5개의 물웅덩이를 통과해야 한다.[63] 물웅덩이는 트랙의 타원형 코스에 설치되지 않기 때문에 장애물 경주 코스는 400m의 정확한 원주를 갖지 않는다. 대신 물웅덩이는 코너 안쪽이나 바깥쪽에 배치되어 랩 길이를 짧게 하거나 길게 한다. 출발선은 랩 길이의 차이를 보상하기 위해 기존 출발 지점에서 이동한다. 물웅덩이가 안쪽에 있을 경우, 3000m 출발선은 백 스트레치에 위치한다(장애물 경주 결승선을 기준으로). 물웅덩이가 바깥쪽에 있을 경우, 3000m 출발선은 홈 스트레치에 위치한다.[63] 2000m 출발선은 이러한 패턴을 반대로 적용하며, 보상량의 5/7를 사용한다.
3. 1. 거리
장애물 경주의 표준 거리는 2000m와 3000m이다.[64]- 3000m 경주(3000m 장애물, 3000mSC): 장애물 28회, 물웅덩이 7회 통과.[64]
- 2000m 경주(2000m 장애물, 2000mSC): 장애물 18회, 물웅덩이 5회 통과.[64]
물웅덩이는 트랙의 타원형 코스에 설치되지 않기 때문에 장애물 경주 코스는 400m의 정확한 원주를 갖지 않는다. 대신 물웅덩이는 코너 안쪽에 배치되어 랩 길이를 짧게 하거나, 코너 바깥쪽에 배치되어 랩 길이를 길게 한다. 출발선은 랩 길이의 차이를 보상하기 위해 기존 출발 지점에서 이동한다. 물웅덩이가 안쪽에 있을 경우, 3000m 출발선은 백 스트레치에 위치한다(장애물 경주 결승선을 기준으로). 물웅덩이가 바깥쪽에 있을 경우, 3000m 출발선은 홈 스트레치에 위치한다.[63] 2000m 출발선은 이러한 패턴을 반대로 적용하며, 보상량의 5/7를 사용한다.
3. 2. 장애물 규격
장애물 표준 높이는 남자 914mm(±3mm), 여자 762mm(±3mm)이며, 폭은 최소 3.94m이다.[64] 장애물 최상단 바와 물웅덩이에 접한 장애물 최상단 바는 127mm 정사각형이다.[64]3. 3. 물웅덩이 규격
물웅덩이는 장애물을 포함하여 길이 3.66m(±20mm), 폭 3.66m(±20mm)이다.[64] 도랑의 수심은 국제 기준상 장애물에 접하는 쪽에서 진행 방향으로 약 1.2m에 걸쳐 500mm(±50mm)이다.[64] 새로운 규칙에서는 수심이 700mm에서 500mm로 줄었다.[64][67]3. 4. 통과 방법 및 실격 규정
경기자는 수로나 물웅덩이에 들어가서 진행하며, 모든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격된다.[64] 단거리 허들과는 달리, 장애물은 발을 걸어도 넘어지지 않는다.[65] 특히 수로에 접한 장애물의 폭은 3.66m이며, 수평으로 이동하지 않도록 지면에 견고하게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64]다음의 경우도 실격된다.[64]
- 수로가 있는 장소에서, 수로의 좌우를 불문하고, 수로 이외의 지면을 밟았을 때 (TR23.7.1).
- 장애물을 통과할 때, 발 또는 다리가 장애물의 바깥쪽 바 수평면보다 낮은 위치에 있을 때 (TR23.7.2).
4. 주요 선수 (국제)
대회 | 선수 | 국적 | 종목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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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파리 올림픽 | 조지 오턴 | {{lang|en|캐나다|} | } || 2500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