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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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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혁주는 대구 출신의 소설가로, 아나키즘 단체에서 활동하다가 일본 문단에 등단했다. 초기에는 식민지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을 발표했으나, 이후 통속적인 경향의 소설과 친일 작품을 집필했다. 친일 문학인 명단과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광복 후 일본으로 귀화하여 일본어로 소설을 썼다. 그의 작품과 생애는 다양한 연구의 대상이 되었으며, 긍정적, 부정적 평가가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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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혁주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한글장혁주
한자張赫宙
가타카나チャン ヒョクチュ
히라가나ちょう かくちゅう
장혁주 작가
작가 정보
이름장혁주
출생지대한제국 경상북도 대구
사망일1998년 2월
사망지일본 사이타마현 히다카시
직업작가, 문학평론가
장르소설, 문학평론

2. 생애

대구 출신으로, 1926년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아나키즘 단체인 진우연맹(眞友聯盟) 회원으로 활동했다.[3] 1929년 이후 대구 희도(喜道)소학교 훈도로 근무했고, 1932년 소설 〈아귀도(餓鬼道)〉를 발표하여 일본 문단에 등단했다.[3] 1933년 장편 《무지개》로 한국 문단에도 등단했으며, 이후 통속적인 경향의 소설을 발표하며 평론가로도 활동했다.[3]

1938년 각본을 쓴 「춘향전」이 무라야마 토모요시의 신협극단(新協劇団)에 의해 일본과 조선에서 순회 공연되었다.[1] 임진왜란조선을 침공한 일본인 장수 가토 기요마사를 다룬 〈가등청정〉(1939)을 시작으로 친일 작품을 집필했다.[3] 1939년 대륙 개척 문예 간담회에 참가하면서 일본 전시 체제에 협력했으며, 1943년 황도 조선 연구 위원회 위원이 되었다.[1]

광복 후 일본에서 활동하며 일본에 귀화했고, 사이타마현 히다카시에서 거주하다가 사망했다.[3]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1905년 10월 7일 조선 경상북도 대구부(현 대구광역시)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장은중(張殷重)이다. 경주의 계림보통학교 및 간이농업학교에서 오사카 로쿠손의 영향을 받아 역사와 일본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4, 5세 무렵 결혼했다.[1] 1926년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20세 무렵 아나키스트 단체인 진우연맹(眞友聯盟)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29년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1932년 4월 잡지 『개조(改造)』의 현상 소설에 「아귀도(餓鬼道)」가 입선했고, 호코 도쿠조의 『문예수도(文芸首都)』 동인이 되었다. 1934년 개조사(改造社)에서 소설집 『권(權)이라는 남자』를 출판했다. 이때는 한국어로도 글을 써서 동아일보 등에 발표하기도 했다. 1937년 초여름, 병상에 있는 동안 간병해 준 노구치 하나코(통칭 "게이코")와 친해져 이후 결혼했다.

2. 2. 문단 활동

1926년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아나키즘 단체인 진우연맹(眞友聯盟) 회원으로 활동했다.[3] 1929년 이후부터 대구 희도(喜道)소학교 훈도로 근무했고, 1932년 소설 〈아귀도(餓鬼道)〉를 발표하여 일본 문단에 등단했다.[3] 일본어로 쓰인 소설이지만, 식민지의 참혹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당시 계급문학에서 유행하던 농민소설에 못지않은 현실 비판 의식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3]

1933년 장편 《무지개》로 한국 문단에 등단했다.[3] 도시를 배경으로 한 《무지개》는 초기의 사실주의적 작풍이 살아있는 작품이나, 이후 남녀간의 복잡하게 얽힌 애정 관계가 묘사된 《삼곡선(三曲線)》(1934~1935) 등 점차 통속적인 경향의 소설을 발표했다.[3] 이 무렵 평론가로도 활동했다.[3]

임진왜란조선을 침공한 일본인 장수 가토 기요마사를 다룬 〈가등청정〉(1939)을 시작으로 전시 체제에 협력하는 친일 작품을 집필했다.[3]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 수록되었고,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문학 부문에 선정되었다.[3]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3]

2002년까지 발견된 친일 저작물 수는 신라의 화랑도 정신을 들어 태평양 전쟁에 용감히 참전할 것을 권유하는 〈화랑도 정신의 재현 - 젊은 학도의 갈길은 하나〉 (1943) 등 8편이고[2], 이 시기에 황도조선연구회, 대륙개척문학위원회 등의 친일단체에 가담한 바 있다.[2]

1932년 4월 잡지 『개조(改造)』의 현상 소설에 「아귀도(餓鬼道)」가 입선했고, 호코 도쿠조의 『문예수도(文芸首都)』 동인이 되었다.[1] 1934년, 개조사(改造社)에서 소설집 『권(權)이라는 남자』를 출판했다.[1] 이때는 한국어로도 글을 써서 동아일보 등에 발표하기도 했다.[1]

1938년, 장혁주가 각본을 쓴 「춘향전」이 무라야마 토모요시의 신협극단(新協劇団)에 의해 일본과 조선에서 순회 공연되었다.[1]

1939년에 대륙 개척 문예 간담회에 참가하면서 서서히 일본의 전시 체제에 편입되는 형태로, 수많은 조선인 만주 개척 소설을 간행했다.[1] 장혁주는 전시기를 일본 작가들이 반 강제적으로, 혹은 주체적으로 참가했던 종군 작가나 보도반원, 황군 위문에 참여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어디까지나 조선인 만주 개척 소설로 한정했던 면이 있다.[1] 1943년에는 황도 조선 연구 위원회 위원이 되었다.[1] 1944년에는 국책에 따른 소설집 『이와모토 지원병(岩本志願兵)』을 출판했다.[1]

2. 3. 친일 행적

임진왜란조선을 침공한 일본인 장수 가토 기요마사를 다룬 〈가등청정〉(1939)을 시작으로 전시 체제에 협력하는 친일 작품을 집필했다.[2]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 수록되었고,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문학 부문에 선정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2002년까지 발견된 친일 저작물 수는 신라의 화랑도 정신을 들어 태평양 전쟁에 용감히 참전할 것을 권유하는 〈화랑도 정신의 재현 - 젊은 학도의 갈길은 하나〉 (1943) 등 8편이다.[2] 이 시기에 황도조선연구회, 대륙개척문학위원회 등의 친일단체에 가담했다. 1939년에 대륙 개척 문예 간담회에 참가하면서 서서히 일본의 전시 체제에 편입되는 형태로, 수많은 조선인 만주 개척 소설을 간행했다. 장혁주는 전시기에 일본 작가들이 반 강제적으로, 혹은 주체적으로 참가했던 종군 작가나 보도반원, 황군 위문에 참여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어디까지나 조선인 만주 개척 소설로 한정했던 면이 있다. 1943년에는 황도 조선 연구 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1944년에는 국책에 따른 소설집 『이와모토 지원병(岩本志願兵)』을 출판했다.[1]

2. 4. 광복 이후

광복 후 일본에서 활동하며 일본에 귀화했다. 사이타마현 히다카시에서 거주하다가 사망했다.[3] 종전 직전에 만주 취재에서 일본으로 도망쳐 돌아왔다. 1952년에는 귀화 신청을 하여 "노구치 미노루"(1944년에 경성에서 간행한 『이와모토 지원병』의 판권 페이지에는 "저자 노구치 미노루(장혁주)"[1])가 되었다.

1952년에 출판한 『아! 조선(嗚呼朝鮮)』이 장혁주 명의로 쓴 마지막 작품이 되었고, 차기작 『무궁화(無窮花)』에서는 노구치 혁주(野口赫宙)라는 이름으로 출판했다. 그 후에도 자전 작품, 역사 소설, 미스터리,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린 『검은 지대(黒い地帯)』(결핵), 『암 병동(ガン病棟)』(말기 암), 『검은 한낮(黒い真昼)』(나병)을 간행했다. 만년에는 남미와 중동 취재 여행을 떠나 영문으로 장편 소설을 썼다.

3. 주요 작품

장혁주는 소설, 역사 소설, 전기 소설, 르포르타주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했다. 초기에는 단편 소설을 통해 사회 현실과 인간 내면을 묘사했으며, 일제 강점기 조선인의 삶을 그린 작품들은 문학사적 의미를 지닌다. 그의 작품은 한국과 일본 문학계에 영향을 미쳤고, 일부는 영어로 번역되었다.

3. 1. 일본어 작품

출판 연도제목출판사
1933년권이라는 남자개조사
1935년인왕동 시대카와이데 서방
1938년춘향전신초샤
1939년골목길아카츠카 서방
1939년치인 정토아카츠카 서방
1939년가토 기요마사개조사
1939년개척 지대슌요도 서점
1940년애증의 기록카와이데 서방
1940년전원의 뇌명라쿠요 서원
1941년인간의 유대카와이데 서방
1941년조선 고전 이야기 - 심청전・춘향전아카츠카 서방
1941년칠 년의 폭풍라쿠요 서원
1941년아름다운 억제카와이데 서방
1941년춘향전신초 문고
1941년녹색 북국카와이데 서방
1942년화전 어느 쪽도 사양하지 않음다이칸도
1942년나의 풍토기아카츠카 서방
1943년행복의 백성남방 서원
1943년개척주오코론사
1943년부침카와이데 서방
1944년이와모토 지원병흥아 문화 출판
1946년고아들반리각
1947년사람의 선함과 악함단초 서방
1948년산천어를 낚는 아이다이 니혼 유벤카이 고단샤
1948년우열한부국 출판사
1950년비원의 꽃세계사 (2014년 쿄에이 서방에서 재판)
1952년아아 조선신초샤
1954년무궁화다이 니혼 유벤카이 고단샤
1954년편력의 조서신초샤
1956년젊은 여자토호샤
1956년햇볕 가리운 아이신초샤
1957년아름다운 저항카도카와 서점
1958년검은 지대신세이사
1959년암 병동고단샤
1959년검은 한낮토토 서방
1961년무사시 진야셋카샤
1962년호상의 불사조토토 서방
1975년폭풍의 시고단샤
1977년한과 왜고단샤
1980년도와 검고단샤
1989년마야・잉카에 조몬인을 쫓다신게이쥬츠샤
1991년Forlorn JourneyChansun International (인도 뉴델리)
1992년Rajagriha: A Tale of Gautama BuddhaAllied Publishers (인도 뉴델리)


4. 평가 및 연구

장혁주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어로 작품 활동을 한 작가로, 그의 작품과 생애에 대한 평가는 복합적이다.

권영민은 『한국현대문학대사전』에서 장혁주를 다루고 있으며,[1] 정영진매일신문의 기사에서 장혁주를 친일 문인으로 언급했다.[2]

4. 1. 연구 현황

장혁주에 대한 연구는 다음과 같이 진행되어 왔다.

연구자연구 제목 및 내용
임전혜「장혁주론」(『문학』 1965년 11월)
임호치「장혁주론」(『재일 조선인 일본어 문학론』, 신간사, 1991년 7월)
백천풍「장혁주 연구」(동국대학교 대학원 박사 학위 논문, 1989년 12월)
「장혁주의 일본어 소설 고찰」, 「전기 일본 문학계의 상황과 장혁주」, 「장혁주 작 희곡 <춘향전>과 그 상연(1938년)」 (『식민지기 조선의 작가와 일본』, 대학 교육 출판, 1995년 7월)
「장혁주의 초기 장편 작품에 대하여」(규슈 대학 문학부 『사연』 제123집, 1986년 2월)
「장혁주의 조선어 작품 고찰」(『조선학보』 제119·120호, 1986년 7월)
「장혁주 작·장편 <아! 조선>을 둘러싸고」(동국대학교 일본학 연구소 『일본학』 제19집, 2000년 12월)
남부진「해설 — 일본어에 대한 욕망과 근대로의 방향」(남부진·백천풍 편 『장혁주 일본어 작품선』, 면성출판, 2003년 10월)
양희숙『장혁주 전후 연구 — 종전부터 귀화까지』(사이타마 대학 박사 논문, 2014년 3월)
조은미『장혁주의 일본어 문학 — 식민지 조선/제국 일본의 틈새에서』 (아카시 서점, 2021년 2월)
남부진·백천풍『장혁주 일본어 문학선집 인왕동 시대』 (작품사, 2022년 1월)


참조

[1] 서적 岩本志願兵 ゆまに書房 2001-09-25
[2] 저널 친일문학 작품목록 http://www.artnstudy[...] 2007-10-02
[3] 뉴스 テイクオフ:野口稔(本名・張ヒョククジュ) http://news.nna.jp/f[...] NNA.ASIA 2008-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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