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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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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봉건은 1928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난 시인으로, 1950년 《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그는 릴케와 보들레르를 존경하며, 1950년대에는 전쟁의 비극과 휴머니즘을, 1960년대에는 초현실주의와 내면 탐구를, 1970년대에는 동화적 순수성과 물질주의 비판을, 1980년대에는 자아와 세계의 조화를 시에 담았다. 1957년 한국시인협회 설립에 참여하고, 잡지 《현대문학》 등을 편집, 발행했으며, 1959년 한국시인협회상, 1980년 한국문학상, 198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수상했다. 1964년 김수영과의 문학적 논쟁을 벌이기도 했으며, 1988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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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건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전봉건
출생일1928년 10월 5일
출생지평안남도 안주
사망일1988년 6월 13일
직업시인

2. 생애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났다. 1945년 평양 숭인중학교를 졸업하고 1946년 월남하여 시인이었던 형 전봉래의 영향으로 문학 수업을 시작했다. 1950년 《문예》지에 시가 추천됨으로써 시단에 등단했다.[4][5] 1957년 김광림, 김종삼 등과 3인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를 발표했다.[4] 1959년 제3회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했다. 시집에 《사랑을 위한 되풀이》(1955), 시론집 《시를 찾아서》(1961) 등이 있다.

전봉건은 1928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났다. 중학생 시절 형 전봉래의 권유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고통》(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de)을 읽고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2]

전봉건은 가장 감명 깊었던 작가로 릴케보들레르를 꼽았다. 소설가가 되기를 원했지만, 10대 초반부터 앓았던 질병 때문에 쇠약해져서 대신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일본어를 배웠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독립된 직후 한국어로 글을 쓰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3] 서정주김영랑의 도움으로 1950년 《문예》를 통해 등단했다.[4][5]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12월에 군에 입대[6]하여 1951년 중동 전선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제대했다. 제대 후 대구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7] 그는 유명한 클래식 음악 감상실 "르네상스"[8]에서 황헌헌을 도와 기록을 정리하면서 문학인들과 교류했다.[6] 1953년 한국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왔다.[4]

1957년 한국시인협회 설립에 참여했고, 잡지 《현대시》의 창간호를 편집하고 발행했다. 같은 해 김광림, 김종삼과 함께 공동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를 출간했다.[4] 김광림, 김종삼, 전봉건은 각각 "전쟁과 함께", "음악과 함께", "희망과 함께"를 썼다. 1959년 그의 첫 시집 《사랑을 위한 되풀이》가 출간되었다. 1962년 문학 동인인 현대시에 참여하여 그 잡지를 편집했다. 1964년 창간된 《문학춘추》의 주간을 맡았다. 또한, 라디오 드라마 대본과 역사극 《꽃소라》를 쓰기 시작했고, 이는 1964년에 출판되었다. 1969년 잡지 《현대시학》을 창간하여 사망할 때까지 편집장을 맡았다. 1987년에 악화된 당뇨병을 앓았고, 1988년 6월 13일에 사망했다.[4]

2015년 10월, 《현대시학》은 전봉건문학상을 제정했다.[9]

3. 작품 세계

전봉건의 작품 세계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며, 전쟁의 비극, 초현실주의적 내면 탐구, 동화적 순수성, 자아와 세계의 조화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1950년대 시는 전쟁의 비인간성과 평화에 대한 갈망을 묘사하면서도, 반공주의 이념이나 피상적인 휴머니즘 대신 사물이 되어버린 인간[13],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14]

1960년대에는 초현실주의적 묘사로 내면세계를 탐구했으며,[7] ''춘향연가''와 ''속의 바다''에서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표현했다. ''춘향연가''는 에로티시즘[15]을 통해 사랑의 힘을 강조하고, ''속의 바다''는 상반된 주제의 반복과 신화적 세계와 현실 세계의 갈등을 다룬다.[16][17]

1970년대에는 《피리》에서 동화적 순수성과 정신성을 추구했고,[7] "마카로니 웨스턴"(마카로니 웨스턴)에서는 물질주의와 빈곤한 정신적 삶을 비판했다.[18]

1980년대에는 자아와 세계의 조화로운 소통을 추구했다. "돌" 연작시는 남한강 수석 수집 경험을 바탕으로 돌을 살아있는 존재로 묘사했다. 한국 전쟁을 소재로 한 "6.25" 연작시는 미완성으로 남았다.

전봉건은 뛰어난 언어 감각으로 "언어 기술자", "언어 스타일리스트"라는 별명을 얻었으며,[10] 생생한 이미지와 역동적인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피아노 (Piano)"[12]는 음악을 다양한 감각으로 변환하여 표현한 대표작이다.

그는 수정을 즐겨,[24] 문예지 발표작, 시집 수록작, 선집 수록작 등 자신의 작품을 끊임없이 다듬었다.[25]

3. 1. 1950년대: 전쟁의 비극과 휴머니즘

1950년대 그의 시는 전쟁의 비인간적이고 비합리적인 모습과 평화에 대한 갈망을 묘사한다.[7] 전쟁을 바탕으로 쓰인 그의 시는 반공주의 이념이나 피상적인 휴머니즘을 드러내지 않는다. 잔혹성을 과장하기보다는, 사물이 되어버린 인간[13]을 묘사하거나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의지를 전달한다.[14]

3. 2. 1960년대: 초현실주의와 내면 탐구

1960년대에 발표된 전봉건의 시는 초현실주의적 묘사를 통해 내면세계를 묘사하고 있다.[7] 1967년에 발표된 장시 ''춘향연가''와 1970년에 발표된 연작시 ''속의 바다''는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춘향연가''는 고전 ''춘향전''에서 옥에 갇힌 춘향의 상황을 빌려왔다. 이 시는 에로티시즘[15]을 강조하며, 사랑은 현실의 비합리성을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고 말한다.

그는 ''속의 바다''에서 에로스의 힘을 계속 탐구하며, 남성과 여성, 다산과 불임, 삶과 죽음과 같은 상반된 주제가 반복된다.[16] 신화적이고 원형적인 세계와 척박한 현실 세계 사이의 갈등이 있으며, 서술자는 신화적인 세계를 꿈꾼다.[17]

3. 3. 1970년대: 동화적 순수성과 물질주의 비판

한국문학상을 수상한 《피리》는 1970년대 전봉건 시인이 추구했던 동화적 순수성과 정신성을 잘 보여준다.[7] 그의 연작시 "마카로니 웨스턴"(마카로니 웨스턴)은 1970년대에 만연했던 물질주의 가치관과 빈곤한 정신적 삶을 묘사하고 있다.[18] 죽음의 반복적인 이미지를 통해 삶이 죽음에 굴복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19] 그러나 그에게 굳건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것은 시인의 과제였고,[20] 그런 점에서 《피리》는 희망, 생명, 탄생을 나타낸다.[19]

3. 4. 1980년대: 자아와 세계의 조화

1980년대 전봉건은 자아와 세계 간의 조화로운 소통을 추구했다. 1981년부터 발표된 연작시 "돌"은 그가 남한강 일대에서 수석을 수집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돌" (1984)에 나오는 돌은 단순히 수동적인 대상이 아닌, 스스로를 표현하려는 살아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그는 한국 전쟁을 소재로 한 연작시 "6.25"를 발표했으나, 완성하지는 못했다. 이 시는 이념적인 틀에서 벗어나 북한과 대한민국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3. 5. 시어와 문체

그는 1950년대 시에서는 드물었던 생생한 이미지와 역동적인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뛰어난 언어 감각으로 인해 "언어 기술자", "언어 스타일리스트"와 같은 별명을 얻었다.[10] 그의 비범한 언어 감각은 이미지를 구성하는 방식과 연관되었다.[11] 대표작 중 하나인 "피아노 (Piano)"[12]에서는 "싱싱한 생선", "칼날"과 같은 단어를 통해 음악이 다양한 감각으로 변환된다.

3. 6. 수정에 대한 태도

전봉건은 한 번에 시를 쓰는 법이 없었다. 그에게 있어 수정은 즐거움이었고, 그는 수정을 반복했다.[24] 그는 문예지에 발표한 자신의 작품을 단행본으로 출간하기 위해 수정했고, 심지어 시집에 수록된 시를 선집에 다시 싣기 위해 수정했다. 또한 그는 잡지에 실었던 평론을 책으로 출간하기 위해 수정했다.[25]

4. [[김수영]]과의 논쟁

1965년 2월, 전봉건은 《세대》(Sedae)에 실린 "사기론(詐欺論, Fraud)"을 통해 1964년 12월 김수영이 《사상계》(思想界, The World of Thoughts)에 기고한 평론을 비판했다.[26] 전봉건은 김수영에게 공감하는 부분이 있지만, 그의 이론은 전봉건 자신의 시에는 적용될 수 없으며, 김수영이 옹호하는 시는 무의미하다고 말했다.[27] 이에 김수영은 《세대》 3월호에 "문맥을 모르는 시인들(Poets Who Don't Know Context)"을 발표하며 반박했다. 이후, 전봉건은 1966년 11월 《현대문학》(現代文學, Modern Literature)에 "참여라는 것(What It Means To Participate)"을 발표하여 사회·정치적 문제를 다루는 시의 모순을 지적했다.[28]

5. 저서

전봉건 시인은 시집, 시론집, 대담시론집을 출간하고, 여러 외국어로 번역된 시집을 출판했다.


  • 김광림, 김종삼과 함께 3인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를 자유세계사에서 1957년에 출간하였다.[4]
  • 1961년 청운출판사에서 시론집 《시를 찾아서》를 출간했다.[4]
  • 2015년 문학선에서 《전봉건 시론선: 시를 찾아서/체험적 시론과 단상들/시 월평과 시론, 시집 서문과 후기, 편지글·기타/생애 및 작품연보》를 출간했다.[5]
  • 전봉건한국어, 이승훈한국어 대담시론집으로 《문학 선》을 2011년에 출간했다.[1]
  • 전봉건의 시는 다음과 같이 번역 출판되었다.[25]
  • The Colors of Dawn: Twentieth-Century Korean Poetry|새벽의 색: 20세기 한국 시영어, 하와이 대학교 출판부, 2016.
  • Hundert Sonnen|백 개의 태양de, Wha Seon Roske-Cho 역, 깊은 샘, 2008.

5. 1. 시집

제목출판사출판 연도
《사랑을 위한 되풀이》춘조사1959
춘향연가성문각1967
《속의 바다》문원사1970
《피리》문학예술가1979
《꿈속의 뼈》근역서제1980
《북의 고향》명지사1982
《새들에게》고려원1983
《돌》현대문학사1984
《전봉건시선》탐구당1985
《사랑을 위한 되풀이》혜진서관1985
《트럼펫 천사》어문각1986
《아지랭이 그리고 아픔》혜원출판사1987
《기다리기》문학사상사1987
《백 개의 태양》깊은샘2008
《전봉건문학선: 고독한 안개/꽃소라/모래와 산소/무영탑》문학선2013


5. 2. 3인 시집

김광림, 김종삼과 함께 3인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를 자유세계사에서 1957년에 출간하였다.[4]

5. 3. 시론집


  • 1961년 청운출판사에서 《시를 찾아서》를 출간했다.[4]
  • 2015년 문학선에서 《전봉건 시론선: 시를 찾아서/체험적 시론과 단상들/시 월평과 시론, 시집 서문과 후기, 편지글·기타/생애 및 작품연보》를 출간했다.[5]

5. 4. 대담시론

전봉건한국어, 이승훈한국어 대담시론, 《문학 선》, 2011[1]

5. 5. 번역

전봉건의 시는 다음과 같이 번역 출판되었다.[25]

  • The Colors of Dawn: Twentieth-Century Korean Poetry|새벽의 색: 20세기 한국 시영어, 하와이 대학교 출판부, 2016.
  • Hundert Sonnen|백 개의 태양de, Wha Seon Roske-Cho 역, 깊은 샘, 2008.

6. 수상

참조

[1] 간행물 Commentary: The Poetics of Eros – Jeon Bonggeon's Narrative Status Munhakdongne
[2] 간행물 In Pursuit of Jeon Bonggeon Munji
[3] 간행물 Note for Writing Poems Singu
[4] 문서
[5] 문서 Commentary: Orpheus Has His Harp Back Kipeunsaem
[6] 문서
[7] 간행물 Jeon Bonggeon http://encykorea.aks[...]
[8] 문서 Melody of Autumn in 1951 http://www.daesan.or[...]
[9] 웹사이트 The Contemporary Poetry http://blog.daum.net[...]
[10] 문서
[11] 간행물 Jeon Bonggeon's Life and Literature Geulnurim
[12] 문서 Published in the May issue of Generation in 1959
[13] 문서
[14] 문서
[15] 문서
[16] 문서
[17] 문서
[18] 웹사이트 Jeon Bonggeon https://terms.naver.[...]
[19] 문서
[20] 문서 A Poet Speaks – The Language of Dream and Pain
[21] 문서
[22] 문서
[23] 문서
[24] 문서
[25] 간행물 Fraud Munhakseon
[26] 문서 Selected Reviews ("Fraud")
[27] 문서
[28] 문서 What It Means to Participate Munhakseon
[29] 웹사이트 전봉건 https://www.doopedia[...] 2020-09-16
[30] 웹사이트 전봉건 http://10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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