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남고산성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전주 남고산성은 전라북도 전주시에 위치한 산성으로, 후백제 시대에 축조되었다는 설이 전해지며, 조선 순조 13년(1813)에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거쳐 '남고산성'으로 명명되었다. 전주의 남쪽 고덕산을 중심으로 여러 봉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며, 남원과 고창으로 통하는 교통로를 방어하고 전주를 조망하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한다. 성 안에는 4개의 연못, 25개의 우물, 100여 채의 민가가 있었으며, 동·서 문, 포루, 장대, 관청, 창고 등의 시설을 갖추었다. 현재는 성벽이 많이 허물어졌으며, 남고사, 관성묘, 남고진 사적비 등이 남아있고, 전주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전주시의 문화유산 - 한량무
한량무는 조선 후기 남사당패에서 유래하여 진주 교방에서 전승되는 7인의 춤으로, 한량, 별감, 승려, 색시 등의 등장인물을 통해 당시 사회상을 풍자하며, 북, 장구 등 악기 반주에 맞춰 춤사위를 펼친다. - 전주시의 문화유산 - 전주 경기전
전주 경기전은 태종 때 어용전으로 시작하여 세종 때 개칭되었고, 임진왜란 후 재건되었으며, 태조 어진을 모신 정전, 조경묘, 전주사고 등의 유적이 있는 곳이다. - 전북특별자치도의 사적 - 익산 토성
익산 토성은 오금산 정상에 흙과 돌로 쌓은 산성으로,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에 축조되었으며 백제, 통일신라, 고려 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다. - 전북특별자치도의 사적 - 익산 쌍릉
익산 쌍릉은 백제 무왕의 능으로 추정되는 익산시 왕궁면 소재의 백제 후기 왕릉으로, 대왕릉에서 발견된 유골 분석 결과가 무왕의 기록과 일부 일치하나, 무왕릉 확정 여부 및 소왕릉 주인공에 대한 추가 연구와 익산 천도설 관련 논쟁이 남아있다. - 전북특별자치도의 성 - 익산 토성
익산 토성은 오금산 정상에 흙과 돌로 쌓은 산성으로,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에 축조되었으며 백제, 통일신라, 고려 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다. - 전북특별자치도의 성 - 익산 왕궁리 유적
익산 왕궁리 유적은 백제 무왕의 천도 설화가 전해지는 전라북도 익산의 유적으로, 백제 후기부터 통일신라 후기까지 형성되었으며 왕궁리 오층석탑과 기와 가마 등이 발굴되어 백제역사유적지구로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전주 남고산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개요 | |
이름 | 전주 남고산성 |
한자 표기 | 全州 南固山城 |
유형 | 사적 |
지정 번호 | 294 |
지정일 | 1981년 12월 10일 |
주소 |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 산228번지 |
시대 | 백제 |
면적 | 163,970m2 |
2. 역사
남고산성은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이곳에 고덕산성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며, 조선 순조 13년(1813)에 성을 고쳐 쌓고 남고산성이라 했다. 이 성은 유래가 매우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이 보인다.
남고산성은 전주 남쪽에 있는 고덕산과 천경대, 만경대, 억경대로 불리는 봉우리를 둘러 쌓은 산성이다. 남동쪽으로는 남원·고창으로 통하는 교통상의 중요한 곳을 지키고, 북쪽으로는 전주를 내려다 보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순조 13년에 보수공사가 있을 때 성 안에는 4군데의 연못과 25개의 우물이 있었으며, 민가 100여 채가 있었다고 한다. 성문은 동·서에 있었으며 각기 3칸, 6칸 규모의 누각형 문이 있었다. 서쪽에 비밀문이 하나 있었으며 동·서·남·북에 각각 하나씩 포루가 설치되어 있고, 관청, 창고, 화약고, 무기고를 비롯한 각종 건물이 즐비하게 있었다. 지휘소인 장대는 남·북에 각각 설치되었으며, ‘남고사’란 절이 있다. 현재 성의 둘레는 약 5.3km이다.
지금은 성벽이 많이 허물어졌고 ‘남고진사적비’가 산성의 내력을 말해주고 있다.
2. 1. 후백제 시대
남고산성은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전주 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했다고 전해진다. 견훤은 전주를 도읍으로 삼고, 남고산성을 비롯한 여러 방어 시설을 구축하여 후백제의 안정을 도모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이 보인다.남고산성은 전주 남쪽에 있는 고덕산과 천경대, 만경대, 억경대로 불리는 봉우리를 둘러 쌓은 산성이다. 남동쪽으로는 남원·고창으로 통하는 교통상의 중요한 곳을 지키고, 북쪽으로는 전주를 내려다 보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2. 2. 조선 시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막기 위해 남고산성이 활용되었다. 조선 순조 13년(1813)에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통해 성의 규모가 확장되고, '남고산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성 안에는 4군데의 연못과 25개의 우물이 있었으며, 민가 100여 채가 있었다고 한다. 동, 서에 성문을 두고, 관아, 창고, 화약고, 군기고 등 각종 건물이 설치되었다. 남장대와 북장대를 설치하여 산성 방어를 지휘하고, 남고사의 승려들을 산성 수호에 활용했다. 지금은 성벽이 많이 허물어졌고 ‘남고진사적비’가 산성의 내력을 말해주고 있다.3. 구조
3. 1. 성곽
3. 2. 시설물
전주 남고산성에는 동문과 서문이 있었으며, 각각 3칸, 6칸 규모의 누각형 문이었다. 서쪽에는 비밀문이 있었다.[2] 동, 서, 남, 북에는 각각 하나씩 포루가 설치되어 있었다. 지휘소 역할을 했던 남장대와 북장대가 설치되어 있었다.[2] 관청, 창고, 화약고, 무기고 등 각종 건물이 성 안에 존재했다.[2] 현재 성안에는 남고사와 관성묘 그리고 산성의 시설과 규모와 그 연혁을 기록한 남고진 사적비가 있다.[2]4. 현황
현재 성벽은 많이 허물어진 상태이며, 성의 둘레는 약 3km이다.[2] 성 안에는 남고사, 삼국지의 영웅 관우를 모신 관성묘, 그리고 산성의 시설과 규모 및 연혁을 기록한 남고진 사적비가 남아있다.[2] 전주시민들의 등산로 및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5. 기타
참조
[1]
간행물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지정명칭 변경 및 지정·해제 고시
문화재청장
2011-07-28
[2]
문서
현지 안내문 인용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