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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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국항공은 1924년 3월 31일, 햄블링 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다임러 항공, 핸들리 페이지 트랜스포트 등 4개 항공사를 통합하여 설립되었다. 대영 제국의 해외 항공 서비스 발전을 목표로 런던-파리 노선 운항을 시작했으며, 이후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호주 등지로 노선을 확장했다. 1930년대에는 쇼트 엠파이어 비행정을 도입하여 대서양 횡단 노선을 개척했고, 항공 우편 서비스를 제공하며 제국 항공 우편 계획을 추진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 영국 정부의 통제로 영국해외항공(BOAC)에 통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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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항공 - [회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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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정보 | |
회사명 | 임페리얼 항공 |
원어명 | Imperial Airway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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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유형 | 사기업 |
전신 | 브리티시 마린 항공 다임러 항공 핸들리 페이지 트랜스포트 인스톤 항공 |
후신 | 영국해외항공 |
설립일 | 1924년 3월 31일 |
해체일 | 1939년 11월 24일 |
본사 위치 | 크로이던, 잉글랜드, 영국 |
산업 분야 | 항공 운송 |
2. 설립 배경 및 초기 역사
1923년 허버트 햄블링(Herbert Hambling) 경이 이끌었던 햄블링 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기존의 영국 4개 항공사를 통합하여 1924년 3월 31일 제국항공(Imperial Airways)이 설립되었다.[4] 이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 제국에서 이루어진 일련의 항공 노선 조사와 제국의 변두리 지역으로의 실험적인 장거리 비행 이후의 일이었다.[1]
제국항공의 설립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프랑스와 독일 항공사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었다. 당시 프랑스와 독일 항공사들은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 항공사들은 경쟁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둘째, 영국 해외 항공 서비스를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제국항공은 영국 본토와 식민지 간의 왕래를 더 빠르게 함으로써 식민 통치를 용이하게 하고, 식민 정부와 무역을 가속화하는 역할을 수행했다.[1]
이를 위해 영국 정부는 합병을 장려하고자 10년에 걸쳐 1000000GBP의 보조금을 제공하기로 했다.[5] 1923년 12월 3일, 항공 위원회(Air Council) 의장과 영국, 외국 및 식민지 회사는 '제국 항공 운송 회사'라는 명칭으로 영국 내 기존 항공 운송 서비스를 인수하는 데 합의했다. 이 합의는 새로운 회사에 대한 정부 보조금을 설정했는데, 첫 해에 137000GBP에서 10년째 32000GBP로 감소하며, 달성해야 할 최소 운행 거리와 이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의 벌칙이 포함되었다.[5] 에릭 캠벨 게데스(Eric Campbell Geddes) 경이 이사회 의장으로 임명되었다.[4]
제국항공은 설립 이후, 1924년 한 해 동안 11,395명의 승객과 212,380통의 우편물을 운송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2. 1. 전신 회사
1923년 허버트 햄블링(Herbert Hambling) 경이 이끌었던 정부의 햄블링 위원회(공식적으로 C.A.T. 보조금 위원회)는 기존의 4개 주요 항공사를 합병할 것을 권고했다.[2] 이는 프랑스 및 독일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영국의 해외 항공 서비스를 개발하기에 충분히 강력하며 중복 서비스에 대한 정부 보조금을 최소화할 수 있는 회사를 설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합병을 장려하기 위해 10년에 걸쳐 100만 파운드의 보조금이 제공되었다.[5]1923년 1월 2일에 설립된 위원회는 1923년 2월 15일에 보고서를 발표하여 다음의 4개 항공사를 통합할 것을 권고 하였다.[3][4]
항공사명 | 설립일 | 비고 |
---|---|---|
핸들리 페이지 트랜스포트(Handley Page Transport) | 1919년 | 1919년 10월 런던-파리 노선 운항 시, 세계 최초로 기내식을 제공하였다.[54][55] 당시 기내식은 샌드위치와 과일이었다.[54] |
다임러 항공(Daimler Airway) | 1921년 | 항공 운송 및 여행(Air Transport and Travel) (1916-1921)을 전신으로 한다. 항공 운송 및 여행은 1919년 8월 25일, 런던-파리 노선에 세계 최초의 국제선 정기편을 취항시켰다.[57] |
인스톤 항공(Instone Air Line Company) | 1919년 | 해운 거물 사무엘 인스톤(Samuel Instone)이 소유 |
영국 해양 항공 항법(British Marine Air Navigation Co Ltd) | 1923년 | 노엘 펨버턴 빌링(Noel Pemberton Billing)의 슈퍼마린(Supermarine) 비행정 회사의 일부 |
1924년 3월 31일, 제국항공 유한회사가 설립되었고, 위의 4개 항공사로부터 장비를 넘겨받았다.
2. 2. 초기 서비스
제국항공은 1924년 4월, 런던-파리 노선을 시작으로 서비스를 개시했다.[6] 이 노선에는 드 하빌랜드 DH.34 항공기가 투입되었다. 같은 해 5월 1일에는 사우스햄튼-건지 노선, 5월 3일에는 런던-브뤼셀-쾰른 노선, 6월 2일에는 런던-암스테르담 노선, 6월 17일에는 런던-파리-바젤-취리히 하계 노선이 차례로 개설되었다. 제국항공이 주문한 첫 번째 신형 항공기는 핸들리 페이지 W8f ''City of Washington''으로, 1924년 11월 3일에 인도되었다.[7]1924년 한 해 동안 제국항공은 11,395명의 승객과 212,380통의 우편물을 운송했다. 1925년 4월에는 런던-파리 노선에서 영화 ''잃어버린 세계 (1925년 영화)''가 상영되어, 정기 여객기 비행에서 승객을 위해 상영된 최초의 영화가 되었다.[8] 초기에는 런던 남쪽에 있는 크로이든 공항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3. 제국 노선 확장 (1925년 ~ 1939년)
1920년대 후반, 제국항공은 쇼트 캘커타 비행정과 핸들리 페이지 H.P.42 등의 항공기 도입과 콴타스와의 협력을 통해 대영제국 전역으로 노선을 확장했다. 1934년부터는 우편물 배송 횟수를 늘리고 크로이던과 사우스햄튼에 우편 비행정 터미널을 설치했다.[1]
제국항공의 설립 목적은 식민지와의 왕래를 빠르게 하여 영국의 식민 통치를 용이하게 하는 것이었다. 항공 여행은 식민지 정부와 무역을 가속화했다.[1]
1931년 4월, 런던에서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시험적인 항공 우편 비행이 이루어졌으나, 티모르에 불시착하여 시드니까지 총 26일이 소요되었다.
1933년 5월 29일, 암스트롱 휘트워스 아탈란타 G-ABTL ''아스트라에아''가 영국에서 오스트레일리아까지 탐사 비행을 시작했다. ''아스트라에아''는 크로이든-파리-리옹-로마-브린디시-아테네-알렉산드리아-카이로를 거쳐 카라치까지 정상 노선을 비행한 후, 조드푸르-델리-캘커타-아키아브-랑군-방콕-프라추압-알로 세타-싱가포르-팔렘방-바타비아-수라바야-비마-코에팡-배서스트 섬-다윈-뉴캐슬 워터스-카무윌-클론커리-롱리치-로마-투움바를 거쳐 6월 23일 브리즈번에 도착했다.
3. 1. 노선 개척
앨런 코밤은 1925년 11월 16일부터 1926년 3월 13일까지 암스트롱 시들리 재규어 엔진을 장착한 드 하빌랜드 DH.50J 수상기 ''G-EBFO''를 타고 영국에서 케이프타운까지 제국 항공 노선 조사를 수행했다. 왕복 노선은 런던–파리–마르세유–피사–타란토–아테네–소룸–카이로–룩소르–아스완–와디 할파–아트바라–하르툼–말라칼–몽갈라–진자–키수무–타보라–애버콘–은돌라–브로큰 힐–리빙스턴–불라와요–프레토리아–요하네스버그–킴벌리–블룸폰테인–케이프타운이었다. 귀국 후 코밤은 항공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공군 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1]1926년 6월 30일, 코밤은 멜버른행 노선 조사를 위해 ''G-EBFO''를 타고 로체스터의 메드웨이 강에서 이륙하여 1926년 8월 15일에 도착했다. 1926년 8월 29일에 멜버른을 출발하여 78일 동안 총 비행 시간 320시간에 걸쳐 28000nmi를 비행한 후 1926년 10월 1일 웨스트민스터의 템스 강에 착륙했다. 코밤은 항공부 장관 경 사무엘 호어의 영접을 받았으며, 이후 조지 5세 국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1]
1926년 12월 27일, 제국 항공의 드 하빌랜드 DH.66 허큘리스 ''G-EBMX 델리 시티''가 인도 노선 조사를 위해 크로이든을 출발했다. 이 비행은 1927년 1월 6일에 카라치에, 1927년 1월 8일에 델리에 도착했다. 이 비행기는 1927년 1월 10일 총독 부인인 레이디 어윈에 의해 명명되었다. 귀국 비행은 1927년 2월 1일에 출발하여 1927년 2월 7일에 카이로의 헬리오폴리스에 도착했다. 크로이든에서 델리까지의 비행 시간은 62시간 27분이었고, 델리에서 헬리오폴리스까지는 32시간 50분이었다.[1]

3. 2. 동부 노선 (The Eastern Route)
카이로에서 바스라 노선 정기 운항은 1927년 1월 12일 DH.66 항공기를 사용하여 시작되었으며, 이전의 RAF 우편 비행을 대체했다.[11] 1929년 3월 30일, 런던에서 카라치까지 운항이 시작되었는데, 페르시아 당국과의 영공 통과 권한 협상이 2년 동안 진행된 후였다. 런던에서 바젤까지 비행, 제노바까지 기차, Short S.8 캘커타 비행정을 이용하여 알렉산드리아까지 이동, 카이로까지 기차, 마지막으로 DH.66 항공기를 이용하여 카라치까지 운항하는 일정으로 총 7일이 소요되었다. 1929년 12월 29일에는 노선이 델리까지 연장되었다. 유럽과 지중해를 가로지르는 노선은 다음 몇 년 동안 여러 번 변경되었지만 거의 항상 기차 여행이 포함되었다.1932년 10월 1일, 동부 노선은 페르시아에서 아라비아 쪽으로 변경되었으며, 핸들리 페이지 HP 42 여객기가 카이로-카라치 구간에 투입되었다. 이로 인해 현재 아랍 에미리트 연합의 일부인 샤르자 트루셜 스테이트에 마하타 요새라는 공항과 휴게소가 세워졌다.
이후 동쪽으로의 빠른 노선 확대가 이루어졌다. 1933년 7월 1일, 런던-캘커타 운항이 시작되었고, 1933년 9월 23일에는 런던-랑군 운항이, 1933년 12월 9일에는 런던-싱가포르 운항이 시작되었다. 1934년 12월 8일에는 런던-브리즈번 운항이 시작되었으며, 콴타스가 싱가포르-브리즈번 구간을 담당했다. (1934년 시작은 우편 운송을 위한 것이었고, 브리즈번행 여객 비행은 다음 해 4월에 시작되었다.) 1936년 3월 14일, 페낭에서 홍콩으로 지선이 개설되면서 런던-홍콩 여객 운항이 시작되었다.
3. 3. 아프리카 노선 (The Africa Route)
1931년, 런던과 탕가니카(현 탄자니아) 므완자 간 주간 운항이 시작되었으며, 이는 케이프타운행 노선의 일부였다. 1932년 런던-케이프타운 간 우편 전용 노선이 개설되었고, 이후 여객 운송으로 확대되었다.3. 4. 쇼트 엠파이어 비행정 도입
쇼트 형제에서 제작된 쇼트 엠파이어 비행정이 1937년에 도입되면서, 제국항공은 사우스햄튼에서 대영제국까지 직항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13] 케이프타운까지의 여정은 마르세유, 로마, 브린디시, 아테네, 알렉산드리아, 하르툼을 경유했고, 이후 육상 교통 수단을 이용하여 나이로비를 거쳐 최종적으로 케이프타운에 도착했다. 1938년부터 엠파이어 비행정은 인도와 중동을 경유하여 영국과 호주 사이에도 운항했다.[13]1939년 3월에는 쇼트 비행정 3대가 매주 사우스햄튼을 출발하여 10일간의 비행 끝에 시드니에 도착했다. 다른 3대는 남아프리카로 출발하여 6일간의 비행 끝에 더반에 도착했다.[14]
4. 항공 우편 서비스
1934년, 영국 정부는 제국항공과 제국 항공 우편 계획(Empire Air Mail Scheme) 협상을 시작했다. 이 계획은 제국 항공 노선을 통해 항공 우편을 저렴한 가격으로 운송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17] 이 협상은 간접적으로 1936년 공군부의 상임 차관인 크리스토퍼 불록 경의 해고로 이어졌다. 조사 위원회는 그가 협상 진행 중 회사의 이사직을 구하면서 그의 지위를 남용했다고 결론 내렸다. 총리를 포함한 정부는 해고 결정을 후회했고, 나중에 부패 혐의가 없음을 알고 크리스토퍼 불록의 복직을 요구했지만, 그는 거절했다.[17]
제국 항공 우편 프로그램은 1937년 7월에 시작되어 어디든 1½d./oz.로 배송되었다. 1938년 중반까지 100톤의 우편물이 인도에, 비슷한 양이 아프리카에 배송되었다.[18] 같은 해, A. 레이크먼이 설계하고 에릭 브로드벤트의 조각상인 ''세계를 넘어서는 속도의 날개''가 주 출입구 위의 포털을 장식한 런던 빅토리아 역의 제국 터미널 건설이 시작되었다. 터미널에서는 사우스햄턴에 있는 제국 항공의 비행정과 크로이든 공항에 있는 육상 비행기 기지로 가는 코치 연결편이 있었다. 터미널은 1980년까지 운영되었다.[18]
1939년 6월과 7월, 제국 항공은 항공 우편 서비스 이용을 촉진하기 위해 범아메리카 항공과 함께 특별한 "세계 일주" 서비스를 제공했다. 제국 항공은 아일랜드 포인스에서 홍콩까지, 동쪽으로 향하는 뉴욕에서 뉴욕 노선으로 기념 우편물을 운송했다. 팬 아메리칸 항공은 뉴욕에서 포인스까지(6월 24일 출발, 북부 FAM 18의 첫 비행 경유)와 홍콩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FAM 14 경유) 서비스를 제공했으며, 유나이티드 항공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까지 마지막 구간을 운송하여 7월 28일에 도착했다.
H. W. C. 알제 선장은 1937년 제국 항공의 제국 항공 노선을 위해 쇼트 제국 비행정 ''캐스터''를 타고 영국에서 호주로 처음으로 우편물을 운송하는 취항 항공 우편 비행의 조종사였다.[4]
5. 제2차 세계 대전과 합병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정부는 1939년 항공 항행 (전시 제한) 명령을 시행하여 민간 항공을 통제했다. 같은 해, 제국항공과 영국 항공 유한회사는 브리스톨 (화이트처치) 공항으로 이전되어 국가 항공 통신국(NAC)에 의해 공동 운영되었다.[1] 1940년, 두 회사는 공식적으로 영국해외항공(BOAC)으로 합병되었다.[1]
6. 사고 및 사건
- 1924년 12월 24일: 드 하빌랜드 DH.34 G-EBBX ''델리 시티''가 크로이든 공항을 이륙한 직후 추락 및 화재로 조종사 1명과 승객 7명 전원이 사망했다.[6][21]
- 1928년 7월 13일: 비커스 벌컨 G-EBLB가 시험 비행 중 런던 펄리에서 추락하여 탑승자 6명 중 4명이 사망했다.[22] 이 사고로 제국항공은 시험 비행 중 직원의 비행을 중단했다.
- 1929년 6월 17일: 핸들리 페이지 W.10 G-EBMT ''오타와 시티''가 크로이든에서 파리로 비행하던 중 엔진 고장으로 영국 해협에 불시착하여 7명이 사망했다.[38]
- 1929년 9월 6일: 드 하빌랜드 허큘리스 G-EBMZ ''예루살렘 시티''가 어두운 밤에 이란 자스크에 착륙하다가 조종사가 고도를 잘못 판단하여 추락 및 화재로 탑승자 5명 중 3명이 사망했다.[23]
- 1929년 10월 26일: 쇼트 캘커타 G-AADN ''로마 시티''가 악천후 속에서 이탈리아 라스페치아 해안에서 불시착했다. 수상기는 해안으로 예인하려던 중 밤에 침몰하여 탑승자 7명 전원이 사망했다.[24][25]
- 1930년 10월 30일: 핸들리 페이지 W.8g G-EBIX "워싱턴 시티"호가 프랑스 파리 불로뉴빌랑쿠르에서 안개 속에서 높은 지형에 충돌하여 탑승자 6명 중 3명이 사망했다.[38][26]
- 1933년 3월 28일: 암스트롱 휘트워스 아르고시 G-AACI "리버풀 시티"호가 비행 중 화재로 벨기에 딕스뮈데에서 추락했다. 이는 항공기 사고의 첫 번째 사보타주 사건으로 의심된다. 탑승자 15명 전원이 사망했다.[27]
- 1933년 12월 30일: 아브로 텐 G-ABLU "아폴로"호가 벨기에 뤼슬레데에서 전파탑과 충돌하여 추락했다. 탑승자 10명 전원이 사망했다.[28]
- 1935년 12월 31일: 쇼트 칼커타 G-AASJ "카르툼 시티"호가 접근 중 4개의 엔진 고장으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해안에서 추락했다. 연료 부족이 원인일 가능성이 있으며, 비행정이 침몰하면서 탑승자 13명 중 12명이 익사했다.[25][29]
- 1936년 8월 22일: 쇼트 켄트 G-ABFA "스키피오"호가 과도한 착륙 후 크레타 미라벨로 만에서 침몰하여 탑승자 11명 중 2명이 사망했다.[25][30]
- 1937년 3월 24일: 쇼트 엠파이어 G-ADVA "카프리코르누스"호가 항법 오류로 프랑스 우루 근처 보졸레 산에서 추락하여 5명이 사망했다.[31]
- 1937년 10월 1일: 쇼트 엠파이어 G-ADVC "코르티에"호가 시계 불량으로 그리스 팔레론 만에 착륙 중 추락하여 탑승자 15명 중 2명이 사망했다.[32]
- 1937년 12월 5일: 쇼트 엠파이어 G-ADUZ "시그너스"호가 이탈리아 브린디시에서 잘못된 플랩 설정으로 이륙 중 추락하여 2명이 사망했다.[33]
- 1938년 7월 27일: 암스트롱 휘트워스 아탈란타 G-ABTG "아말테아"호가 이륙 직후 케냐 키수무 근처 언덕에 충돌하여 탑승자 4명 전원이 사망했다.[34]
- 1938년 11월 27일: 쇼트 엠파이어 G-AETW "칼푸르니아"호가 시계 불량으로 조종사가 지면과의 시각적 접촉을 유지하기 위해 강하하면서 이라크 하바니야 호수에 추락하여 승무원 4명 전원이 사망했다.[35]
- 1939년 1월 21일: 쇼트 엠파이어 G-ADUU "카발리에"호가 대서양 뉴욕주에서 약 458.66km 떨어진 해상에서 기화기 결빙 및 엔진 출력 손실로 불시착했다. 3명이 익사했으며 생존자 10명은 유조선 "에소 베이타운"에 의해 구조되었다.
- 1939년 5월 1일: 쇼트 엠파이어 G-ADVD "챌린저"호가 룸보 공항 착륙을 시도하다가 룸보 석호에 추락하여 탑승자 6명 중 2명이 사망했다.[36]
- 1940년 3월 1일: 핸들리 페이지 H.P.42 G-AAGX "한니발"이 탑승자 8명을 태우고 오만만 상공에서 실종되었다. 잔해, 화물, 탑승자 모두 발견되지 않았다. 추락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37]
- 1926년 10월 21일: 핸들리 페이지 W.10 G-EBMS ''멜버른 시''가 엔진 고장으로 영국 해안에서 18nmi 떨어진 영국 해협에 불시착했다. 탑승한 12명은 구조되었다.[38][39]
- 1931년 4월 19일: 드 해빌랜드 DH.66 헤라클레스 G-EBMW 등록 항공기가 수라바야에서 연료 부족으로 불시착하여 수리 불가능한 손상을 입었다.
- 1931년 8월 8일: 핸들리 페이지 H.P.42 G-AAGX ''한니발''이 크로이던에서 파리로 가는 정기 여객 비행 중 엔진 고장으로 켄트의 파이브 오크 그린에 불시착하여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부상자는 없었다.[40]
- 1935년 11월 9일: 숏 켄트 G-ABFB ''실바누스''가 브린디시 항구에서 급유 중 화재가 발생하여 전소되었다. 급유 승무원들은 불타는 항공기에서 뛰어내어 생존했다.
- 1936년 9월 29일: 암스트롱 휘트워스 아탈란타 G-ABTK가 인도 델리의 격납고 화재로 전소되었다.
- 1937년 5월 31일: 핸들리 페이지 H.P.45 (구 H.P.42) G-AAXE ''헨지스트''가 인도 카라치의 격납고 화재로 파괴되었다.[42]
- 1938년 12월 3일: 드 해빌랜드 익스프레스 G-ADCN이 방콕에서 전소되었다.
- 1939년 3월 12일: 숏 S.23 엠파이어 비행정 Mk 1 ''G-ADUY''가 바타비아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탄종에서 수리 불가능한 손상을 입었다.[43]
- 1939년 11월 7일: 핸들리 페이지 H.P.42 G-AXXD ''호라티우스''가 데번의 티버턴의 골프 코스에 불시착한 후 폐기되었다.
- 1940년 3월 19일: 핸들리 페이지 H.P.45 G-AAXC ''헤라클레스''와 H.P.42 G-AAUD ''한노''가 위치처치 공항에 주차되어 있던 중 강풍으로 인해 전복되어 폐기되었다.
7. 운용한 항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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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alanta 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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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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