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래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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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리 래퍼티는 스코틀랜드의 싱어송라이터로, 1947년 4월 16일에 태어나 2011년 1월 4일에 사망했다. 그는 더 험블범스, 스틸러스 휠과 같은 밴드에서 활동했으며, 솔로 활동을 통해 "베이커 스트리트"와 "시티 투 시티"와 같은 히트곡을 발표했다. 래퍼티는 음악 산업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으며, 알코올 중독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2011년 사망 이후에도 그의 음악은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고향 페이즐리에서는 그를 기리는 행사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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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래퍼티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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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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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Gerald Rafferty 제럴드 래퍼티 |
출생 | 1947년 4월 16일 |
출생지 | 페이즐리, 렌프루셔, 스코틀랜드 |
사망 | 2011년 1월 4일 (향년 63세) |
사망지 | 스트라우드, 글로스터셔주, 잉글랜드 |
직업 | 음악가, 가수, 작곡가, 음반 프로듀서 |
악기 | 보컬, 기타, 피아노, 베이스 기타 |
활동 기간 | 1965년–2011년 |
장르 | 록 팝 록 포크 록 소프트 록 블루스 록 |
레이블 | 트랜스애틀랜틱 레코드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레코드 리버티 레코드 런던 레코드 Avalanche Records 애벌랜치 레코드 Hypertension 하이퍼텐션 |
관련 활동 | 더 험블범스 스틸러스 휠 조 이건 |
2. 초기 생애
래퍼티는 스코틀랜드 렌프루셔 주 페이즐리에서 아일랜드 가톨릭 출신 노동자 계급 가정에서 태어났다.[71]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모두 석탄 광부였다.[1] 세인트 미린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았으며,[3] 어릴 때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민요를 배웠고, 비틀즈와 밥 딜런의 음악에 영향을 받아 곡을 쓰기 시작했다.[3]
2. 1. 어린 시절 및 가족
래퍼티는 1947년 4월 16일 아일랜드 가톨릭 출신의 노동자 계급 가정에서 스코틀랜드 렌프루셔 주 페이즐리의 언더우드 레인에서 태어났으며,[71]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모두 석탄 광부였다.[1] 조셉과 메리(스케핑턴) 래퍼티의 아들이었던[2] 그는 두 형제 짐과 조(1988년 사망)가 있었다.[3]래퍼티는 페이즐리의 시영 주택인 언더우드 레인과 타운의 퍼거슬리 공원에서 자랐으며, 세인트 미린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았다.[3] 아일랜드 출신인 그의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는 광부이자 트럭 운전사였으며, 래퍼티가 16세 때 사망했다.[2] 래퍼티는 어릴 때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민요를 배웠다. 그는 "아버지가 아일랜드 사람이어서 페이즐리에서 자라면서 두세 살 때부터 이 모든 노래를 들었어요. 어머니가 아름답게 부르시는 '그녀는 박람회를 거쳐갔네'와 같은 노래들이죠. 그리고 아일랜드 전통 노래와 스코틀랜드 전통 노래가 한 무더기 있었어요."라고 회상했다.[46][75] 민속 음악과 비틀즈, 밥 딜런의 음악에 큰 영향을 받은 래퍼티는 자신의 곡을 쓰기 시작했다.[3]
2. 2. 학창 시절 및 음악 활동 시작
래퍼티는 1947년 4월 16일 아일랜드 가톨릭 출신 노동자 계급 가정에서 스코틀랜드 렌프루셔 주 페이즐리의 언더우드 레인에서 태어났으며,[71]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모두 석탄 광부였다.[1] 그는 조셉과 메리(스케핑턴) 래퍼티의 아들이었으며,[2] 두 형제 짐과 조(1988년 사망)가 있었다.[3]래퍼티는 페이즐리의 시영 주택인 언더우드 레인과 타운의 퍼거슬리 공원에서 자랐으며, 세인트 미린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았다.[3] 아일랜드 출신인 그의 아버지(알코올 중독자)는 광부이자 트럭 운전사였으며, 래퍼티가 16세 때 사망했다.[2] 래퍼티는 어릴 때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민요를 배웠다. 그는 "아버지가 아일랜드 사람이어서 페이즐리에서 자라면서 두세 살 때부터 이 모든 노래를 들었어요. 어머니가 아름답게 부르시는 '그녀는 박람회를 거쳐갔네'와 같은 노래들이죠. 그리고 아일랜드 전통 노래와 스코틀랜드 전통 노래가 한 무더기 있었어요."라고 회상했다.[46][75] 그는 민속 음악과 비틀즈, 밥 딜런의 음악에 큰 영향을 받아 자신의 곡을 쓰기 시작했다.[3]
3. 음악 경력
래퍼티는 1963년 세인트 미린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정육점, 공무원 사무원, 신발 가게 등에서 일했지만, 음악 외의 다른 직업은 고려하지 않았다.[41] 주말에는 스틸러스 휠의 조 이간과 함께 매버릭스라는 지역 그룹에서 활동하며 비틀즈와 롤링 스톤스 등의 노래를 불렀다.[4] 1960년대 중반에는 런던 지하철에서 버스킹으로 돈을 벌기도 했다. 1966년에는 조 이간과 함께 더 피프스 컬럼이라는 밴드에서 활동했으나, 싱글 "Benjamin Day"/"There's Nobody Here"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3. 1. 더 험블범스 (The Humblebums)
1969년, 래퍼티는 코미디언 빌리 코놀리와 탐 하비와 함께 포크 팝 그룹 더 험블범스의 세 번째 멤버가 되었다. 하비는 얼마 지나지 않아 탈퇴했고, 래퍼티와 코놀리는 2인조로 활동하며 트랜스아틀란틱 레코드에서 앨범 두 장을 더 녹음했다.[5] 1970년, 닉 드레이크와 함께 포더링게이를 지원하기 위해 로열 페스티벌 홀에 출연했는데, 비평가 칼 댈러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댈러스는 세 출연자 모두 "만족보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언급하며, "제리 래퍼티의 노래는 '예스터데이' 분위기의 폴 매카트니처럼 감미롭고 부드럽다"고 평했다.[5] 코놀리는 자신의 스탠드업 쇼에서 종종 이 시기를 회상하며, 래퍼티가 자신을 웃게 했던 방법과 그들이 투어 중에 했던 이상한 일들을 이야기했다. 래퍼티는 베를린 전화번호부에서 히틀러가 있는지 찾아보기로 결심한 적도 있었다.[6]1971년 듀오가 해체된 후, 트랜스아틀란틱의 소유주 네이선 조셉은 래퍼티와 솔로 계약을 맺었다.[7]
3. 2. 스틸러스 휠 (Stealers Wheel)
1972년, Signpost 레코드에서 발매한 "Make You, Break You"가 어느 정도 인기를 얻은 후, 래퍼티는 이간과 함께 스틸러스 휠을 결성하고, 미국의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라이버 앤 스톨러와 함께 세 개의 앨범을 녹음했다.[13] 이 그룹은 법적 분쟁에 시달렸지만, "Stuck in the Middle with You"로 큰 히트를 쳤으며, 비평적 찬사와 상업적 성공을 모두 거두었다. 1975년 ''사운즈'' 기사에서는 이 곡을 "백인 비틀즈와 펑크 딜런의 교배, 하지만 그들의 모든 작품을 특징짓는 독특한 켈트 풍미가 있다"고 묘사했다.[11] 20년 후, 이 노래는 1992년 영화 ''저수지의 개들''에서 두드러지게 사용되었지만, 래퍼티는 재발매에 대한 허가를 거부했다.[12] 스틸러스 휠은 또한 50위권 히트곡인 "Everyone's Agreed That Everything Will Turn Out Fine"과 "Star"를 제작했으며, "Outside Looking In"과 "Who Cares"와 같은 곡에서는 래퍼티의 점점 커져가는 소외감을 시사하는 내용을 담았다.[13] 듀오는 1975년에 해체되었다.[13]
3. 3. 솔로 활동: 《City to City》와 《Night Owl》
스테얼스 휠 해체 이후, 래퍼티는 법적 문제로 3년간 음반을 발표할 수 없었다.[13] 1978년 분쟁이 해결된 후, 프로듀서 휴 머피와 함께 두 번째 솔로 앨범 ''시티 투 시티''를 녹음했다. 이 앨범에는 래퍼티의 대표곡인 "베이커 스트리트"가 수록되어 있었다. 머피는 1993년 ''빌보드''와의 인터뷰에서 음반사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에게 "베이커 스트리트"를 싱글로 발매해 달라고 간청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음반사는 이 곡이 대중에게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7] 이 싱글은 영국에서 3위, 미국에서 2위를 기록했다.[14] 앨범은 550만 장 이상 판매되어 1978년 7월 8일 미국에서 ''토요일 밤의 열기'' 사운드트랙을 넘어섰다.[15] 래퍼티는 이 앨범을 통해 처음으로 진정한 성공을 맛보았다고 말했다.[16]"베이커 스트리트"는 라파엘 레이븐스크로프트가 연주한 색소폰 리프가 특징이지만, 이 솔로의 기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다.[16][17][18] 래퍼티는 1988년 인터뷰에서 곡을 썼을 때 기악 파트를 생각했지만, 무엇을 연주해야 할지 몰랐다고 회상했다. 여러 시도 끝에 휴 머피가 색소폰을 제안했다고 한다.[46] 2006년 ''더 타임스'' 인터뷰에서 레이븐스크로프트는 자신에게 "몇 개의 공백"이 있는 곡이 주어졌으며, 자신이 연주한 것 대부분은 오래된 블루스 리프였다고 주장했다.[19][20]
래퍼티는 인터뷰에서 이를 반박하며, 레이븐스크로프트는 피트 조른에 이어 두 번째 선택이었고, 자신이 그에게 색소폰 라인을 불러줬다고 말했다.[46] 2011년 ''시티 투 시티'' 리마스터 버전에 수록된 오리지널 일렉트릭 기타 데모 버전은 래퍼티가 리프의 작곡자임을 확인해 주었다. 앨범 라이너 노트에서 래퍼티의 오랜 친구 랍 노크스는 베이커 스트리트 데모가 색소폰 연주자가 멜로디 라인을 생각해 냈다는 주장을 잠재우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18] 래퍼티의 전 매니저 마이클 그레이도 동의했다.[21]
"베이커 스트리트"는 2010년 10월 BMI로부터 전 세계적으로 500만 번 이상 재생된 것을 인정받았다.[22] 래퍼티는 "베이커 스트리트"로 연간 약 8만 파운드의 수익을 얻는다고 밝혔다.[2][3] 1992년 언더커버의 "베이커 스트리트" 커버 버전을 끔찍하다고 묘사했지만,[23] 이 곡으로 150만 파운드를 더 벌었고, 유럽과 미국에서 약 300만 장이 팔렸다. 그는 "베이커 스트리트"를 광고에 사용하도록 허락한 적이 없었다.[24]
''시티 투 시티''의 두 번째 싱글 "Right Down the Line"은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12위, 미국 핫 어덜트 컨템포러리 트랙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 곡은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에서 4주 동안 1위를 지켰다. 앨범의 세 번째 싱글인 "Home and Dry"는 1979년 초 미국 40위권에 28위로 진입했다.[25] "베이커 스트리트"의 가사는 음악 산업에 대한 래퍼티의 환멸을 반영했다.[26]
래퍼티의 다음 앨범 ''나이트 아울''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기타리스트 리처드 톰슨이 참여한 동명의 곡은 1979년 영국에서 5위를 기록했다. "Days Gone Down"은 미국에서 17위에 올랐다. 후속 싱글 "Get It Right Next Time"은 영국과 미국의 40위권에 진입했다.
3. 4. 이후 솔로 앨범: 《Snakes and Ladders》, 《Sleepwalking》, 《North and South》
이후 앨범인 ''Snakes and Ladders''(1980), ''Sleepwalking''(1982), ''North and South''(1988)는 래퍼티가 라이브 공연을 꺼리는 성향 때문에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래퍼티는 라이브 공연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다.[16]다음 앨범인 ''Sleepwalking''(1982)에서 래퍼티는 이전과 다른 작업 방식을 택했다. 크리스토퍼 닐이 휴 머피를 대신하여 프로듀서를 맡았고, 신시사이저와 드럼 머신을 도입하여 앨범에 더 강하고 덜 어쿠스틱한 사운드를 부여했다. 이전 세 앨범에서 두드러졌던 풍부하고 섬세한 편곡은 사라졌다. 머피는 10년 후 인터뷰에서 "제리는 세 개의 앨범을 연속으로 만들었고, 그 당시 그는 꽤 지쳐서 압박감을 느끼고 '다른 방향을 시도해 보겠다'라고 생각한 것 같다. 이해할 만하다"라고 말했다.[7] 이전 래퍼티와 스틸러스 휠 앨범의 삽화를 맡았던 존 패트릭 번의 그림과 손글씨 대신, ''Sleepwalking''은 하늘로 뻗은 텅 빈 도로의 단순하고 삭막한 사진을 사용했다. 노래 가사에도 변화가 있었다. ''Sleepwalking''의 깊이 있는 내성적인 가사는 래퍼티가 성공에 대한 환멸감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Standing at the Gates", "Change of Heart", "The Right Moment"와 같은 트랙은 가수가 지치고 소진되어 새로운 방향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며, 오랫동안 지속된 소외라는 주제를 이어갔다.
래퍼티는 마크 노플러가 작곡한 "The Way It Always Starts"(1983)를 영화 ''Local Hero''의 사운드트랙에 불렀다.[29]
그의 다음 앨범인 ''North and South''는 1988년에 발매되었다. 앨범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The Times''의 비평가 데이비드 싱클레어는 "North and South에서 그는 고향 스코틀랜드 어딘가에 있는 가짜 텍사스 바까지 차를 얻어 탄 것 같다. 로코코 뿌리 베니어 뒤에는 대서양 횡단적인 밋밋함이 숨어 있다"라며 혹평했다.[34]
3. 5. 《On a Wing and a Prayer》와 《Over My Head》
래퍼티는 1990년대에 두 개의 앨범을 더 발매했는데, 음악가 톰 로빈슨은 이를 "획기적인 재기"라고 묘사했다.[36] 1992년에 발매된 ''온 어 윙 앤 어 프레이어(On a Wing and a Prayer)''에는 스틸러스 휠의 파트너 이건이 여러 트랙에 참여했다. 이 앨범에는 래퍼티의 형이자 1970년대 데카 레코드와 계약했던 싱어송라이터 짐 래퍼티와 공동 작곡한 세 곡이 수록되었다. 래퍼티는 앨범 ''오버 마이 헤드''(1994)에 자신의 험블범스 노래 "Her Father Didn't Like Me Anyway"를 새롭게 녹음했다. 이 두 앨범은 래퍼티가 1998년에 사망한 휴 머피와 함께 제작한 마지막 음반이었다. 기타리스트 휴 번스에 따르면, 머피의 죽음은 "제리에게 큰 타격"이었으며[36], 거의 30년 동안 지속된 창작 파트너십의 종말을 의미했다.3. 6. 《Another World》
1990년대 말, 새로운 기술 덕분에 래퍼티는 음악 산업의 일반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업할 수 있게 되었다. 런던에 거주하면서, 그는 사운드 엔지니어 자일스 트위그를 고용하여 디지디자인 모바일 녹음 스튜디오를 구축했다. 트위그의 도움으로 런던, 스코틀랜드, 바베이도스,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휴 번스, 마크 노플러, 케니 크래독, 모 포스터 등 이전 앨범 협력자들과 함께 ''Another World''를 녹음했다.[37][38] 래퍼티는 자신의 회사 아이콘 뮤직(Icon Music)을 통해 이 앨범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웹사이트에서 독립적으로 홍보하고 판매했다.[39]2000년에 발매된 ''Another World''는 원래 그의 웹사이트에서 직접 주문해야만 구입할 수 있었지만,[40] 2003년부터는 하이퍼텐션(Hypertension) 레이블을 통해 판매되었다. 마크 노플러와 이간의 도움을 받아 거의 난해한 작품이 된 ''Another World''는 존 번이 삽화를 그린 앨범 커버를 특징으로 했다. 번은 ''Can I Have My Money Back?'', ''City to City'', ''Night Owl'', ''Snakes and Ladders'' 및 세 개의 스틸러스 휠 앨범 커버도 그렸다. 번은 또한 래퍼티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마틴 어쿠스틱 기타를 디자인했는데, 이 기타에는 그의 초상화와 "제리 래퍼티"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이는 가수의 많은 사진에 등장한다.[41][49]
''Another World''는 가수의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그는 2000년 11월 새 음반을 알리는 보도 자료에서 "내 마음과 영혼이 이 앨범에 담겨 있으며, 이런 방식으로 발매함으로써 나의 창의적인 영향력이 어떤 식으로든 희석되지 않았습니다."라고 설명했다.[42] 인터넷 덕분에 래퍼티는 더 이상 음악 산업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기술은 그가 그의 음악을 감사하는 청중의 손에 직접 전달할 수 있게 해주고 있었다. 래퍼티는 자신이 예술가로서 성숙했다고 느꼈으며, 발매 당시 ''Evening Standard''와의 인터뷰에서 "내 나이에, 19세의 청소년에게 제품을 팔려고 하는 23세의 음반 경영진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더 나이가 들었고, 제 청중도 더 나이가 들었습니다. 그들은 나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알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이 앨범 전체를 대략 200000GBP에 만들었으며, 그 중 절반은 여행에, 녹음 시스템은 75000GBP, 웹사이트와 마케팅에 25000GBP를 사용했다고 말했다.[43]
래퍼티는 다음 3년 동안 녹음에 대한 이 새로운 접근 방식에 대한 열정을 유지했다. 2004년 3월 31일의 블로그 게시물에서 그는 "음악으로 돌아갑시다. 결국 그것이 이 웹사이트가 설정된 유일한 이유입니다."라고 썼다. 또 다른 게시물에서는 래퍼티가 정기적으로 무료 다운로드 형식으로 음악을 발매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사실, 제리는 거의 2주마다 새로운 트랙을 출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행 상황이 발생하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44] 그러나 소수의 트랙만 발매되었고, 웹사이트는 결국 아무런 설명 없이 폐쇄되었다.
3. 7. 《Life Goes On》
2009년 11월, 래퍼티는 마지막 앨범이 될 Life Goes On을 발매했다. 이 앨범은 하이퍼텐션(Hypertension) 음반사에서 발매되었다. 18개의 트랙이 수록된 이 앨범에는 6개의 신곡, 크리스마스 캐럴 커버곡, 그리고 이전에 제리 래퍼티 웹사이트에서 제공되었던 전통적인 노래들이 포함되어 있다. 나머지 트랙들은 그의 이전 3개 앨범에서 리마스터된 곡들이다.[64]3. 8. 사후 앨범 발매
2011년 1월 래퍼티의 사망으로 그의 작품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 그의 딸 마사는 래퍼티의 옛 웹사이트(gerryrafferty.com)를 재개설하여 전체 음반 목록, 희귀 사진, 존 번(John Byrne)의 새로운 삽화를 공개했다. 그녀는 아버지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직업 윤리"와 책에 대한 열정을 가진 독학가로 묘사했다. ("집에는 말 그대로 책장이 벽 전체를 채우고 있었고 그는 모든 단어를 다 읽었다. 주로 철학, 예술, 종교, 심리학, 그리고 많은 전기를 읽었다.").[9]2011년 9월, EMI는 "Baker Street", "Mattie's Rag", "City to City"의 이전 미공개 데모 버전과 앨범의 다른 트랙을 담은 리마스터링된 ''City to City'' 컬렉터스 에디션을 발매했다.
다른 아티스트들도 래퍼티의 작품에서 계속 영감을 받았다. 2012년, Cuillin Recordings는 켈트 퓨전 아티스트 마틴 베넷(Martyn Bennett)이 ''Can I Have My Money Back?''에 수록된 세 곡을 리믹스한 ''Paisley Spin''을 발매했다. 보니 레이트(Bonnie Raitt)는 2012년 4월 10일에 발매된 앨범 ''Slipstream''에 "Right Down the Line"의 레게 편곡 버전을 녹음했다. 바바라 딕슨(Barbara Dickson)은 2013년 9월 "Baker Street", "The Ark", "Steamboat Row"의 커버 버전을 포함한 13곡의 래퍼티 노래를 담은 트리뷰트 앨범 ''To Each and Everyone: The Songs of Gerry Rafferty''를 발매했다.[45]
2021년 9월 3일, Parlophone UK는 마사 래퍼티가 래퍼티가 남긴 데모로 시작한 프로젝트를 완성한 앨범 ''Rest in Blue''를 발매했다. 블루스, 록, 포크 데모 모음은 그가 사망하기 전 새 앨범으로 계획되었던 것이다.
4. 음악 산업에 대한 태도
래퍼티는 음악가의 예술적 정체성과 음악 산업의 상업적 요구 사이의 차이점을 명확히 구분했다. 1988년 인터뷰에서 그는 "작곡가이자 가수로서 활동하는 것과 인격체로 활동하는 것 사이에는 얇은 경계선이 있다... 나에게는 맞지 않는다. 너무 많은 모순이 내재되어 있다."라고 말했다.[46] 20년 후, 래퍼티의 장례식 후 인터뷰에서 찰리 리드는 래퍼티가 유명세를 싫어했으며, 명성이 그에게 맞지 않았다고 말했다.[47][48] 빌리 코놀리 또한 래퍼티는 성공과 명성보다 자신의 재능과 노래에 대한 존경을 원했다고 말했다.[36]
래퍼티는 "Stuck in the Middle With You", "Good Businessman", "Take the Money and Run", "Welcome to Hollywood", "Sleepwalking" 등의 노래에서 음악 산업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미국 투어를 거부하고 "일반적으로 '업계 게임'을 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49] 우상 파괴자였던[49] 래퍼티는 자신의 출판사 중 하나를 "아이콘 뮤직"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50] 그의 매니저였던 마이클 그레이는 래퍼티가 음악 산업뿐만 아니라 사회, 돈, 정치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태도를 유지했으며, 성공에 현혹되지 않았다고 말했다.[52]
래퍼티는 음악 사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2000년 인터뷰에서 그는 스틸러스 휠의 두 번째 앨범 제목을 ''페이즐리''의 빈곤한[53] 지역인 ''퍼거슬리 파크''로 정한 이유가 "런던 음악 산업의 모든 허튼 소리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41] 래퍼티의 장례 미사를 집전한 몬시뇰 존 토르미는 래퍼티의 명성에 대한 태도가 그의 영적인 정체성을 나타낸다고 말했다.[47]
5. 사생활
래퍼티는 1970년에 클라이드뱅크 출신의 이탈리아계 미용사 칼라 벤틸라와 결혼하여 딸 마사 메리를 낳았다. 이들은 스코틀랜드에서 살다가 1970년대 후반 잉글랜드 남부로 이주했으며, 1990년에 이혼했다.[16]
2000년 ''Another World'' 앨범 완성 후, 래퍼티는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지방 스트래스페퍼 마을의 이글스톤 하우스를 구입했지만,[55] 2년 후 매각하고 이사하지는 않았다.[56]
5. 1. 결혼과 이혼
1965년, 18세의 래퍼티는 클라이드뱅크의 무도회장에서 이탈리아계 가족 출신인 15세의 견습 미용사 칼라 벤틸라를 만났다. 래퍼티는 훗날 ''North and South'' 앨범의 "Shipyard Town"이라는 곡에서 이들의 만남을 이야기했다. 1970년에 결혼한 두 사람은 딸 마사 메리와 함께 스코틀랜드에서 살다가 1970년대 후반에 잉글랜드 남부로 이사했다.[16]켄트–서식스 경계 근처의 농장과 런던 햄스테드에 있는 집을 오가며 생활하던 중, 래퍼티가 런던에서 스코틀랜드까지 장거리 통근을 한 경험은 ''City to City'' 앨범의 수록곡(타이틀곡과 딸과 재회한 기쁨을 묘사한 "Mattie's Rag" 포함)에 영감을 주었다. 이후 남쪽으로의 이주는 ''Snakes and Ladders'' 앨범의 "The Garden of England"와 ''North and South'' 앨범의 일부 곡에 영감을 주었다. 래퍼티와 벤틸라는 1990년에 이혼했다.
5. 2. 알코올 중독
제리 래퍼티는 어릴 때부터 술을 즐겼고,[16][32][36][66] "One Drink Down", "베이커 가", "Night Owl"과 같은 초기 노래에서도 술에 대한 언급을 자유롭게 하였다. 1980년대 초, 래퍼티의 개인 매니저였던 마이클 그레이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를 아는 동안 그가 알코올 중독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깨달았어야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가 그랬는지 확신하지 못합니다."[52] 1980년대가 진행되면서 래퍼티의 심화된 음주 문제는 그의 결혼 생활에 돌이킬 수 없는 부담을 주었고,[51] 1990년에 그의 아내는 그와 이혼했지만,[57] 여전히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51] 1980년대 후반, 래퍼티는 언론인 콜린 어윈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항상 낮은 자세를 유지하는 것을 매우 의식했는데, 그게 내가 하고 싶은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대중의 시선에 너무 많이 노출될 계획은 없습니다."[46]1995년, 래퍼티는 그의 형인 조셉의 죽음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가족과 친구들은 그가 이 사건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66]
음악적 성취와 함께 따라온 명성과 유명세를 피하려고 애썼던 그의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래퍼티는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 그리고 그것들이 초래한 점점 더 예측 불가능한 행동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다시 한번 헤드라인을 장식하게 되었다.[58] 뉴스 기사들이 래퍼티의 폭음에 초점을 맞추는 동안, 그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밝히지 않았다. 그의 여자친구인 엔지나 푸스키니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어떤 종류의 사악한 마법에 걸린 것 같았어요. 그는 그것 때문에 괴로워했어요... 저는 절망에 빠진 남자를 보았어요."[66] 래퍼티의 전 부인 칼라는 "희망이 없었어요. 그가 회복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를 떠나지 않았을 거예요."라고 말했다.[51]
5. 3. 실종 사건
2008년, 래퍼티는 캘리포니아를 떠나 잠시 아일랜드에서 집을 임대했는데, 그곳에서 그의 음주 문제가 다시 시작되었다.[51] 그해 7월, 그는 런던으로 가서 메이페어의 5성급 웨스트버리 호텔에 머물렀고, 4일간의 음주로 방을 심하게 훼손했다. 이후 ''인디펜던트''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호텔 이사는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래퍼티 씨는 정말 좋은 분이었고, 다른 투숙객들에게 방해를 주지 않고 조용히 지냈지만, 분명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멸 모드에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59][60]그 다음 상황에 대해서는 상반된 보도가 있었다. ''스코틀랜드 온 선데이'' 신문은 래퍼티가 호텔에서 나가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심각한 간 질환으로 세인트 토마스 병원에 입원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고서는 2008년 8월 1일, 래퍼티가 소지품을 남겨두고 실종되었으며, 병원에서 실종 신고를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러한 실종 신고는 존재하지 않았다.[59]
2009년 2월 17일, ''가디언''은 래퍼티가 잉글랜드 남부에 숨어 친구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61] 이후, 래퍼티의 대변인 폴 찰스는 ''인디펜던트''에 그가 2주 전에 래퍼티와 연락을 취했으며, 그는 살아있고 건강하지만, 녹음이나 투어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61] 이는 다음 날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보도와 상반되었는데, 래퍼티의 변호사가 채널 4 뉴스에 보낸 성명을 인용했다: "보도와 달리, 제리는 매우 건강하며 지난 6개월 동안 토스카나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새로운 노래와 음악을 작곡하고 녹음하고 있으며... 올해 여름 [2009년]에 그의 최근 작품을 담은 새 앨범을 발매할 예정입니다."[62][63] 이 앨범은 ''Life Goes On''이라는 제목으로 2009년 11월에 발매되었다.[64]
세인트 토마스 병원을 나온 후, 그가 토스카나에 있다고 주장하는 동안, 그는 런던의 여러 호텔을 옮겨 다녔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도싯에 거주하는 이탈리아 예술가 엔지나 푸스키니를 만났다. 래퍼티와 푸스키니는 풀 근처 업턴에 있는 큰 집을 함께 임대했다.[65] 푸스키니는 2009년 동안 가수를 돌보며 그의 알코올 중독을 극복하도록 도우려 노력했으며,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파리의 리츠 호텔에서 그가 자신에게 청혼했다고 말했다.[66]
6. 사망
2010년 11월, 래퍼티는 로열 본머스 병원에 입원하여 다발성 장기 부전 치료를 받으며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하게 되었다. 생명 유지 장치 제거 후 잠시 회복되는 듯했으나, 2011년 1월 4일 글로스터셔주 스트라우드에 있는 딸 마사의 집에서 간부전으로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67][68][69]
2011년 1월 21일, 래퍼티의 고향인 렌프루셔주 페이즐리의 세인트 미린 대성당에서 장례 미사가 거행되었으며, 인터넷으로 생중계되었다. 스코틀랜드 자치 정부 수반 알렉스 샐먼드를 비롯한 여러 정치인과 더 프로클레이머스의 크레이그와 찰리 리드, 전 밴드 동료 조 이건과 랍 노크스, 바바라 딕슨, 그레이엄 라일 등 음악가들이 참석했다. 오랜 친구인 존 번이 추도사를 낭독했다. 유해는 페이즐리의 우드사이드 화장터에서 화장된 후 아이오나에 뿌려졌다.[70][71] 유족으로는 딸 마사, 손녀 셀리아, 형제 짐이 있다.[2]
7. 유산 및 평가
가디언지에서 마이클 그레이는 래퍼티가 알코올 중독으로 오랜 기간 쇠퇴한 과정을 기록했고,[51] 더 타임스에 실린 한 페이지짜리 부고 기사에서는 그의 경력을 보다 긍정적으로 요약했다. "한때 팝 음악계를 발아래 두었던 상당한 재능을 가진 가수로, 제리 래퍼티는 또한 뛰어난 작곡가였으며, 그의 최고 작품에서 폴 매카트니를 연상시킬 만큼 섬세함과 부러움을 살 만한 멜로디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73]
다른 연예인들도 래퍼티에게 경의를 표했다. 코미디언이자 전 밴드 동료인 빌리 코놀리는 그를 "매우 재능있는 작곡가이자 가수로, 많은 이들이 그리워할 것"이라고 불렀고, 뮤지션 톰 로빈슨은 "그의 스틸러스 휠(Stealers Wheel)에서의 초기 작품은 70년대에 저를 포함한 모든 세대의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라고 말했다.[74] 장례식 이후, 프로클레이머스(The Proclaimers)의 찰리 리드는 "제리 래퍼티는 포크 음악과 대중 음악의 세계를 성공적으로 넘나든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정말 훌륭하게 해냈고, 두 진영 모두에서 존경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48] 바바라 딕슨 또한 그녀의 친구이자 "빛나고 영광스러운 스코틀랜드 음악가"라고 묘사한 래퍼티에게 경의를 표했다.[75] 40년 넘게 래퍼티를 알고 지낸 핀바 퓨리는 "그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지 몰랐습니다. 그는 제가 아는 가장 재능있는 음악가이자 가수 중 한 명이었지만, 자신의 재능을 완전히 과소평가했습니다. 그는 매우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76]
가수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직후, 릴리 앨런은 "편히 잠드세요 제리 x"라는 메시지와 함께 "Right Down the Line"이라는 노래의 비디오 링크를 트윗했는데, 이 노래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 트랙 중 하나라고 한다.[77] 일렉트로팝 스타 엘리 잭슨은 "Right Down the Line"을 "제가 가장 좋아하는 트랙입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 고향, 향수, 행복이 떠오릅니다."라고 묘사했다.[77]
2012년 11월, 래퍼티의 고향인 페이즐리는 쇼트로즈 지역의 거리를 "제리 래퍼티 드라이브"로 명명하여 가수를 기렸다. 이 프로젝트를 추진한 주택 협회의 이사인 고든 로리는 "음악을 통해 살아있는 훌륭한 음악가에게 적합한 헌사입니다."라고 말했다.[78]
2013년 1월, BBC 라디오 2는 2012년 글래스고의 켈틱 커넥션에서 라이브로 녹음되었고 리키 로스(음악가)가 진행한 프로그램인 "Bring It All Home – Gerry Rafferty Remembered"를 재방송했다. 출연 아티스트로는 그의 친구 랍 노아크스, 프로클레이머스, 바바라 딕슨, 론 섹스미스, 잭 브루스, 폴 브래디, 엠마 폴락, 제임스 빈센트 맥머로, 베치 쿡이 참여했다. 래퍼티의 기타리스트 휴 번스, 멀티 악기 연주자 그레이엄 프레스켓, 색소폰 연주자 멜 콜린스도 출연했다.[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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