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현 (국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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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상현은 1939년 전라남도 보성 출신의 국악인으로, 판소리 명창이다. 정응민에게 강산제를 사사하고, 박록주의 수제자가 되어 3년간 가르침을 받았다. 1974년 전국판소리 명인명창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으며, 《심청가》에 능하여 임방울 이후 최고의 남성 명창으로 평가받았다. 국립창극단 단원, 한국판소리보존회 이사장, 전남대학교 국악과 교수 등을 역임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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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현 (국악인)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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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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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조상현 |
출생일 | 1939년 11월 07일 |
출생지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보성군 겸백면 평호리 오호마을 |
활동 시기 | 1950년 ~ 현재 |
직업 | 판소리 국악인, 대학교수 |
거주지 | 대한민국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 마륜리 |
장르 | 한국 전통 음악 |
가족 | 아버지 조기원(별세)과 어머니 문향지(별세)의 3남 1녀(4남매) 가운데 막내(삼남) |
관련 활동 | 전남대학교 국악학과 대우교수 |
학력 | 전남목포고등학교 졸업(1956년 2월) |
웹사이트 | 마니아 데이터 베이스 - 판소리 대명창 조상현 선생 |
2. 발자취
조상현은 1939년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태어나 전남보성율포중학교와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어린 시절부터 한학을 공부하여 사서에 능통했고, 국악계에서도 드문 한문 학자로 알려져 있다.[1]
1950년부터 정응민에게 판소리(강산제)를 배우기 시작하여, 1958년까지 8년간 혹독한 수련을 받았다. 이후 광주에서 박봉술, 임방울 등 당대 명창들과 교류하며 기량을 쌓았고, 1965년부터는 박록주의 수제자가 되어 3년간 가르침을 받았다.
1974년 제1회 전국판소리 명인명창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며 명창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2] 《심청가》에 능하고 웅대한 성량으로 임방울 이후 최고의 남성 명창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국립창극단 단원, (사)한국판소리보존회 이사장, 전남대학교 국악학과 전임강사 및 대우교수, 광주시립국극단 단장 등을 역임하며 판소리 보존과 후진 양성에 힘썼다. 특히 (사)한국판소리보존회 이사장을 30여 년간 맡아 판소리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1961년부터 1964년까지 군 복무를 마친 후, 1968년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지원으로 전성기를 맞이했다. 국립창극단에서 주역으로 활동하며 정·재계 인사들과 교류했다.[1]
염경애, 주소연, 박춘맹, 윤상호, 마미숙, 이숙영 등 여러 제자를 길러냈다. 1958년부터 현재까지도 국창으로서 활동하며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2. 1. 유년 시절 및 교육
趙尙鉉중국어은 1939년 11월 7일, 전라남도 보성군 겸백면 오호리에서 아버지 조기원(趙基元, 본명 조성관(趙聖觀)에서 조성원(趙聖元)으로, 최종 조기원으로 개명)과 어머니 문향지(文香枝, 남평 문씨) 사이의 3남 1녀 중 막내(넷째)로 태어났다. 전남보성율포중학교와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했다.[1]6세 때(1944년)부터 집에서 한학을 배워 사서(四書)에 능통하였으며, 현재까지도 국악계에서 보기 드문 한문 학자로 알려져 있다.[1]
1950년부터 7년간 정응민에게 판소리(강산제)를 배웠다. 율포중학교와 목포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방학 때에는 정응민 선생 집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혹독한 소리 학습을 1958년 1월까지 8년여간 받았다. 20세(1958년)부터는 광주의 호남국악원(1958년)과 광주국악원(1959년)에서 생활하면서 박봉술 명창을 만났고, 임방울 명창과도 교류했다. 1965년 5월 당시 명창 박녹주 선생의 수제자(首弟子, 또는 수양아들)가 되어 1968년 5월까지 3년간 독공했다.[2]
2. 2. 판소리 입문 및 수련
조상현은 전라남도 보성군 겸백면 오호리에서 태어났다. 전남보성율포중학교와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50년부터 7년간[1] 정응민에게 판소리(강산제)를 배웠다. 그의 창제는 '보성소리'로 분류되는 강산제에 해당한다. 우람장중하고도 묵직한 철성을 단전에서 끌어올리는 동편제와도 다르고 계면조에다가, 애원성과 감칠맛이 넘실대는 서편제와도 다르다. 1950년에 정응민(1896년~1964년) 선생을 찾아가 소리를 배웠고, 율포중학교와 목포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방학 때에는 정응민 선생 집에서 하루 10시간 이상의 혹독한 소리 학습을 1958년 1월까지 8년여간 하였다.[1]1958년부터는 광주의 호남국악원과 광주국악원에서 생활하면서 박봉술 명창을 만났고, 임방울 명창과도 교류했다. 1965년 5월 박녹주 선생의 수제자가 되어 1968년 5월까지 3년간 독공했다.
2. 3. 명창으로서의 활동 및 업적
조상현은 1974년 문공부 장관 주최 제1회 전국판소리 명인명창대회(남원, 현재는 춘향국악대전)에서 1등을 차지했다.[2] 《심청가》에 장하며 웅대한 성량으로 임방울 이후 당대 최고의 남성 명창이라는 찬사를 받았다.1950년부터 7년간[1] 정응민에게 판소리(강산제)를 배웠다. 20세(1958년)부터는 광주의 호남국악원(1958년)과 광주국악원(1959년)에서 생활하면서 박봉술 명창을 만났고, 임방울 명창과도 교류했다. 1965년 5월 당시 명창 박녹주 선생의 수제자(首弟子, 또는 수양아들)가 되어 1968년 5월까지 3년간 독공했다.
국립창극단 단원, (사)한국판소리보존회 이사장을 지냈다. 전남대학교 국악학과에서 전임강사, 대우교수 등을 지냈고 광주시립국극단 단장을 지냈다. (사) 한국판소리보존회 이사장을 30여년간 지냈다.
1961년 1월부터 1964년 1월까지 군 복무 이후, 1968년 3월 TBC 동양방송 공연장에서 우연히 만난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배려와 관심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국립창극단에서도 모든 주역을 맡아 오며 정계와 재계 등 각계 최고위 지도층 인사들과 많은 교류를 했다.[1]
1958년 1월 이후부터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최고의 국창으로 활동하며 후진 양성에도 힘을 쓰고 있다. 제자로는 염경애, 주소연, 박춘맹, 윤상호, 마미숙, 이숙영 등이 있다.
3. 주요 작품
음반명 | 발매 연도 | 발매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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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가 | 1976년 | 오아시스레코드사 |
4. 기타
조상현은 1974년 문공부 장관 주최 제1회 전국판소리 명인명창대회(남원, 현재는 춘향국악대전)에서 1등을 차지했다.[2] 《심청가》에 능하며 웅대한 성량으로 임방울 이후 당대 최고의 남성 명창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국립창극단 단원, (사)한국판소리보존회 이사장을 지냈으며, 전남대학교 국악학과 전임강사, 대우교수, 광주시립국극단 단장 등을 역임했다.
1958년 1월 이후 현재까지 대한민국 최고의 국창으로 활동하며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4. 1. 특이 사항
- 조상현이 태어난 전라남도 보성군 겸백면 오호리는, '보성소리'의 원가인 회천면 영천리와는 오히려 거리가 있는 면계 지역이다.[1]
- 6세 때(1944년)부터 한학을 읽어 사서(四書)에 능통하였으며, 현재까지도 국악계의 보기 드문 한문 학자에 속한다.[1]
- 태권도 3단이다.[1]
- 1961년 1월부터 1964년 1월까지 군 복무 이후, 1968년 3월 TBC 동양방송 공연장에서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배려와 관심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국립창극단에서도 모든 주역을 맡아 오며 정계와 재계 등 각계 최고위 지도층 인사들과 많은 교류를 했다.[1]
- 제자로는 염경애, 주소연, 박춘맹, 윤상호, 마미숙, 이숙영 등이 있다.
4. 2. 삼성과의 인연
1968년 3월 TBC 동양방송 공연장에서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을 우연히 만나, 그의 배려와 관심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국립창극단에서도 모든 주역을 맡으며 정계와 재계 등 각계 최고위 지도층 인사들과 교류했다.[1]4. 3. 제자 양성
염경애, 주소연, 박춘맹, 윤상호, 마미숙, 이숙영 등이 조상현의 제자이다.[1]참조
[1]
서적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전통 예인 백사람
현암사
1995
[2]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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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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