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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원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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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추원 (조선)은 조선 시대의 관청으로, 초기에는 군사 기밀과 왕명 전달을 담당했다. 1400년 삼군부로 개칭되었다가 중추원으로 환원되었으며, 1466년 중추부로 이름이 바뀌어 문무 당상관 중 임직이 없는 자를 우대하는 기관으로 기능했다. 중추부는 영사, 판사, 지사, 동지사, 첨지사 등의 관직으로 구성되었으며, 왕명 출납 기능은 승정원으로, 병력 관련 행정 업무는 삼군부와 병조로 이관되었다. 중추부 청사는 경복궁 광화문 앞에 위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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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원 (조선)
중추원 정보
유형관청
한자 표기中樞院
로마자 표기Jungchuwon
조선 시대 중추원
설립 시기1392년
폐지 시기1894년
성격왕명 출납 및 군기(軍機)·기밀(機密)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기관
주요 기능왕명 출납, 군기 및 기밀 담당
관직영사
판사
지사
동지사
경력
도사
대한제국 중추원
존속 기간1894년 ~ 1910년
성격의정부에 속한 자문기관
정원의장 1명, 부의장 1명, 고문 약간 명, 찬의 45명, 부찬의 20명
주요 기능법률안 및 규칙 제정 자문
관직의장
부의장
고문
찬의
부찬의
서기관
주사
일제강점기 중추원
존속 기간1910년 ~ 1945년
성격조선총독부의 자문기관
구성총 65명 ~ 80명의 친일파 인사
주요 역할조선총독의 자문, 일제강점기 통치에 협력
관직의장
부의장
고문
참의

2. 역사

1400년(정종 2) 삼군부로 고쳤다가 1409년(태종 9) 중추원으로 다시 변경하였다. 1436년에는 정1품 영중추를 신설하였다. 1466년(세조 12) 중추부로 고치면서 실질적인 업무 없이 문무 당상관 중 임직이 없는 자를 우대하는 기관이 되었다. 왕명 출납 기능은 승정원으로, 병력 관련 행정 업무는 삼군부병조 등으로 이관되었다.[1]

2. 1. 조선 시대

1400년(정종 2) 삼군부로 고치고 중추원 녹관(祿官)에 따라 좌·우복야(左右僕射)를 좌우사(左右使), 중추원승지를 승정원 승지, 도평의사사 녹사를 의정부 녹사, 중추원 당후를 승정원 당후로 고쳤으며, 1409년(태종 9) 중추원으로 고치고, 1436년에는 정1품의 영중추를 신설하였다. 문종실록의 기록에 2명의 판중추원사가 임명되고 3명의 중추원사가 임명된 것을 보면 처음 영중추원사를 신설하고 관제가 정비가 되면서 세종 후반대에 중추부와 같은 관제에 이르고 관직명은 추후 정비된 것으로 보인다.[1] 1466년(세조 12) '''중추부'''로 고치어 일정한 사무없이 문무 당상관으로 임직이 없는 자를 우대하는 의미로 두게 되었다. 왕명 출납기능은 승정원으로, 병력 관련 행정 업무는 삼군부병조, 각 위로 이관되었다.

3. 구성

조선 초기 중추원은 판사(정2품) 1인, 사(종2품) 1인, 지사(종2품) 1인, 동지사(종2품) 4인, 첨사(종2품) 1인, 부사(종2품) 6인, 학사(종2품) 1인, 상의원사(종2품) 3인, 도승지(정3품) 1인, 좌·우승지(정3품) 각 1인, 좌·우부승지(정3품) 각 1인, 당후관(정7품) 2인, 연리(정7품 거관) 6인으로 구성되었다. 1436년(세종 18년)에는 정1품 영중추원사가 신설되었고, 정렬공 최윤덕이 최초로 임명되었다.

조선 후기 중추부는 영사(정1품) 1인, 판사(종1품) 2인, 지사(정2품) 2인, 동지사(종2품) 7인, 첨지사(정3품) 8인, 경력(종4품) 1인, 도사(종5품) 1인으로 구성되었으며, 경아전의 녹사 4인, 서리 6인이 이에 속하였다.

3. 1. 중추원 (조선 초기)

지사(知事)
동지사
첨사(僉事)
부사(副使)
학사(學士)
상의원사(商議院事)1명
1명
4명
1명
6명
1명
3명정3품도승지
좌승지
우승지
좌부승지
우부승지각 1명정7품당후관(堂後官)
연리(椽吏)2명
6명
거관



1436년(세종 18년) 정렬공 최윤덕이 최초의 정1품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로 임명되었다. 영중추원사는 좌의정을 지낸 인물이 임명되었으며, 오늘날의 국방원로자문회의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1]

3. 2. 중추부 (조선 후기)

조선 후기 중추부의 관직과 정원은 다음과 같다.

중추부(中樞府)
품계관직정원비고
정1품영사(領事)1명
종1품판사(判事)2명
정2품지사(知事)2명
종2품동지사(同知事)7명
정3품첨지사(僉知事) (당상)8명
종4품경력(經歷)1명
종5품도사(都事)1명



경아전(京衙前) 소속 녹사(綠事) 4인, 서리(書吏) 6인이 중추부에 속하였다.

이후 지사, 동지사, 첨지사 등에 빈자리가 있으면 승전(承傳)한 의관(醫官), 역관(譯官)으로 보충하였다. 이들은 30개월 근무 후 교체(遞)되었고, 노인직(老人職)으로 승진(陞資)하여 임명된 동지사, 첨지사는 3개월로 제한되었다. 대신 이외에는 영사에 임명될 수 없었다.

또한 총재(冢宰, 이조판서)·종백(宗伯, 예조판서) 또는 사마를 거치지 않은 자는 판사에 임명될 수 없었고, 노인직 자헌대부는 문관, 음관, 무관을 막론하고 4품 실직을 거치지 않으면 지사에 임명될 수 없었다.

백세 이상인 자는 정원 외로 동지사에 추천, 임명될 수 있었다. 지사, 동지사, 첨지사 등에 정원 외로 임시 가설된 직석은 재직 1개월 후 파면되었고, 운대관(雲臺官)은 의관, 역관과 함께 후보자로 추천되었다.

4. 청사

경복궁 광화문 앞 세종대로 서편에 있었으며,[2] 두 동의 대청 건물을 중심으로 후원, 연못, 대문 등이 존재하였다.

참조

[1] 서적 문종실록 1450(문종 즉위년) 7월 6일 1번째기사
[2] 문서 정부서울청사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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