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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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문식은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다. 선수 시절 포항 스틸러스, 상주 상무, 전남 드래곤즈, 오이타 트리니타, 수원 삼성 블루윙즈, 부천 SK 등에서 활약했으며, 1993년부터 1997년까지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38경기에 출전하여 9골을 기록했다. 은퇴 후에는 유소년 및 2군 코치를 거쳐 대한민국 U-17, U-20, U-23 대표팀 코치를 역임했다. 2015년에는 대전 시티즌의 감독을 맡았으며, 2017년에는 옌볜 푸더의 수석 코치로 활동했다. 선수 시절에는 K리그 우승,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 등을 경험했으며, 지도자로서 대한민국 U-20 대표팀의 AFC U-19 챔피언십 우승, U-23 대표팀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 등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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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식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최문식 |
한자 | 崔文植 |
로마자 표기 | Choe Mun-sik |
출생일 | 1971년 1월 6일 |
출생지 | 서울특별시 |
키 | 1.72m |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 |
선수 경력 | |
유소년 클럽 | 동대부속고등학교 |
클럽 | 1989–1998: 포항 스틸러스 1996–1997: → 상무 FC (군 복무) 1999–2000: 전남 드래곤즈 2001: 오이타 트리니타 2001: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2: 부천 SK |
클럽 출장 및 득점 | 포항 스틸러스: 127경기 26골 전남 드래곤즈: 48경기 8골 오이타 트리니타: 9경기 2골 수원 삼성 블루윙즈: 12경기 0골 부천 SK: 20경기 2골 |
총 출장 및 득점 | 216경기 38골 |
국가대표 경력 | |
국가대표팀 | 1988: 대한민국 U20 1991: 대한민국 U23 1993–1997: 대한민국 |
국가대표팀 출장 및 득점 | 대한민국 U23: 4경기 3골 대한민국: 38경기 9골 |
지도자 경력 | |
지도자 | 2011: 전남 드래곤즈 (수석 코치) 2012: 대한민국 U17 2012–2013: 대한민국 U20 (수석 코치) 2013–2015: 대한민국 U23 (수석 코치) 2015–2016: 대전 시티즌 2017: 옌볜 푸더 (수석 코치) 2023: 클란탄 FA |
2. 클럽 경력
최문식은 동대부고 졸업 후 1989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고졸 신인이었으며, 포항 스틸야드 개장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하고, 1989년 일화와의 경기에서 경기 종료 직전 오버헤드킥 동점골을 넣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1] 1994년 미국 월드컵과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활약 후 포항의 아디다스컵 우승에 기여하는 등 포항에서 핵심 선수로 활약하였다.
1996년부터 1997년까지는 군 복무를 위해 상무에서 뛰었다. 1998년 포항으로 복귀한 후, 1999년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하여 광양 축구 전용구장 개장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하는 등 2년간 활약했다.
2001년에는 오이타 트리니타로 이적하며 일본 무대에 진출했지만, 감독 교체 등의 이유로 2001년 6월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했다. 이후 2002년 부천 SK에서 한 시즌을 뛰고 은퇴했다.
클럽 | 시즌 | 리그 | 리그컵 | 합계 | ||||
---|---|---|---|---|---|---|---|---|
리그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포항 스틸러스 | 1989 | K리그 | 17 | 6 | — | 17 | 6 | |
1990 | K리그 | 20 | 2 | — | 20 | 2 | ||
1991 | K리그 | 18 | 1 | — | 18 | 1 | ||
1992 | K리그 | 24 | 5 | 7 | 1 | 31 | 6 | |
1993 | K리그 | 11 | 2 | 2 | 3 | 13 | 5 | |
1994 | K리그 | 19 | 6 | 0 | 0 | 19 | 6 | |
1995 | K리그 | 0 | 0 | 6 | 1 | 6 | 1 | |
1998 | K리그 | 18 | 4 | 0 | 0 | 18 | 4 | |
합계 | 127 | 26 | 7 | 5 | 134 | 31 | ||
상무 FC (병역) | 1996 | 준프로 리그 | ? | ? | ? | ? | ? | ? |
1997 | 준프로 리그 | ? | ? | ? | ? | ? | ? | |
합계 | ? | ? | ? | ? | ? | ? | ||
전남 드래곤즈 | 1999 | K리그 | 26 | 5 | 7 | 2 | 33 | 7 |
2000 | K리그 | 22 | 3 | 10 | 1 | 32 | 4 | |
합계 | 48 | 8 | 17 | 3 | 65 | 11 | ||
오이타 트리니타 | 2001 | J2리그 | 9 | 2 | 4 | 0 | 13 | 2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2001 | K리그 | 12 | 0 | 0 | 0 | 12 | 0 |
부천 SK | 2002 | 20 | 2 | 7 | 1 | 27 | 3 |
2. 1. 포항 스틸러스 (1989-1995, 1998)
동대부고를 졸업한 뒤 대학 진학 대신 1989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한 최문식은 포항 스틸야드 개장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하였다.[1] 1989년 일화와의 경기에서 경기 종료 10초 전 극적인 오버헤드킥 동점골을 기록하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군 복무 기간 2년을 제외하고 1998년까지 포항에서 활약했다. 기술력 있는 축구를 바탕으로 정확한 패스와 골 결정력을 통해 포항의 공격을 이끌었다.[1]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1994년 미국 월드컵과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하였고, 월드컵 출전 직후 합류한 첫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포항의 아디다스컵 우승을 이끌었다.[1]클럽 | 시즌 | 리그 | 리그컵 | 합계 | ||||
---|---|---|---|---|---|---|---|---|
리그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포항 스틸러스 | 1989 | K리그 | 17 | 6 | — | 17 | 6 | |
1990 | K리그 | 20 | 2 | — | 20 | 2 | ||
1991 | K리그 | 18 | 1 | — | 18 | 1 | ||
1992 | K리그 | 24 | 5 | 7 | 1 | 31 | 6 | |
1993 | K리그 | 11 | 2 | 2 | 3 | 13 | 5 | |
1994 | K리그 | 19 | 6 | 0 | 0 | 19 | 6 | |
1995 | K리그 | 0 | 0 | 6 | 1 | 6 | 1 | |
1998 | K리그 | 18 | 4 | 0 | 0 | 18 | 4 | |
합계 | 127 | 26 | 7 | 5 | 134 | 31 |
2. 2. 상주 상무 (1996-1997)
최문식은 1996년부터 1997년까지 병역 의무 이행을 위해 상무 축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다. 상무에서 준프로 리그와 대한민국 준프로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였으나, 정확한 출전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클럽 | 시즌 | 리그 | 리그컵 | 합계 | ||||
---|---|---|---|---|---|---|---|---|
리그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상무 FC (병역) | 1996 | 준프로 리그 | ? | ? | ? | ? | ? | ? |
1997 | 준프로 리그 | ? | ? | ? | ? | ? | ? | |
합계 | ? | ? | ? | ? | ? | ? |
2. 3. 전남 드래곤즈 (1999-2000)
1999년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한 최문식은 광양축구전용구장 개장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하며 포항에 이어 전남에서도 홈구장 개장 경기 첫 골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2000 시즌까지 2년 동안 65경기에 나서 11골 8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그 중 40경기를 90분 풀타임으로 뛰었다.그러나 1999 시즌 정규리그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4위 팀 부산에게 패했고, 2000 시즌 대한화재컵에서는 결승에서 부천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2000 시즌 정규리그에서도 7위의 성적으로 우승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2. 4. 오이타 트리니타 (2001)
大分トリニータ일본어로 이적한 최문식은 스카우트했던 감독이 시즌 중 그만두고, 새로 부임한 감독과 스타일이 맞지 않아 입지가 부족했다.[1] 결국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김호의 부름을 받고 2001년 6월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했다.[1]클럽 | 시즌 | 리그 | 리그컵 | 합계 | ||||
---|---|---|---|---|---|---|---|---|
리그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오이타 트리니다드 | 2001 | J2리그 | 9 | 2 | 4 | 0 | 13 | 2 |
2. 5.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1)
1994년 미국 월드컵 출전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김호의 부름을 받고 2001년 6월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하였다.[14]클럽 | 시즌 | 리그 | 리그컵 | 합계 | ||||
---|---|---|---|---|---|---|---|---|
리그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2001 | K리그 | 12 | 0 | 0 | 0 | 12 | 0 |
2. 6. 부천 SK (2002)
2001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거쳐 2002년 부천 SK로 이적하여, 한 해 동안 28경기에 출전하며 준수한 활약을 보인 뒤 은퇴를 선언하였다.[1]클럽 | 시즌 | 리그 | 리그컵 | 합계 | ||||
---|---|---|---|---|---|---|---|---|
리그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부천 SK | 2002 | 20 | 2 | 7 | 1 | 27 | 3 |
최문식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U-23 대한민국 대표로 참가했으며, 1994년 FIFA 월드컵 미국 대회에서는 대한민국 대표로 뛰었다.[8] 1993년부터 1997년까지 A매치 38경기에 출전하여 9골을 기록했다.[3]
3. 국가대표 경력
3. 1. 국가대표팀 득점 기록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전 경기 수 | 득점 |
---|---|---|---|
대한민국 | 1993 | 17 | 4 |
1994 | 3 | 0 | |
1996 | 4 | 1 | |
1997 | 14 | 4 | |
총합 | 38 | 9 |
''대한민국의 득점을 먼저 표시함.''
번호 | 날짜 | 경기장 | 상대팀 | 득점 | 경기 결과 | 대회 |
---|---|---|---|---|---|---|
1 | 1993년 5월 13일 | 베이루트, 레바논 | IND|인도영어 | 2–0 | 3–0 | 199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
2 | 1993년 5월 15일 | 베이루트, 레바논 | HKG|홍콩영어 | 3–0 | 3–0 | 199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
3 | 1993년 6월 5일 | 서울, 대한민국 | HKG|홍콩영어 | 1–0 | 4–1 | 199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
4 | 1993년 9월 27일 | 서울, 대한민국 | AUS|오스트레일리아영어 | 1–0 | 1–0 | 친선 경기 |
5 | 1996년 8월 5일 | 호찌민, 베트남 | GUM|괌영어 | 9–0 | 9–0 | 1996년 AFC 아시안컵 예선 |
6 | 1997년 2월 22일 | 홍콩 | HKG|홍콩영어 | 2–0 | 2–0 | 1998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
7 | 1997년 3월 2일 | 방콕, 태국 | THA|태국영어 | 3–1 | 3–1 | 1998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
8 | 1997년 6월 12일 | 서울, 대한민국 | EGY|이집트영어 | 3–1 | 3–1 | 1997 코리아컵 |
9 | 1997년 6월 14일 | 수원, 대한민국 | GHA|가나영어 | 3–0 | 3–0 | 1997 코리아컵 |
4. 지도자 경력
삼일공업고등학교 등에서 유소년을 지도했고, 포항 스틸러스 유소년 코치와 2군 코치를 역임했다. 전남 드래곤즈 수석 코치를 거쳐 2012년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이후 대한민국 U-20, U-23 대표팀 수석 코치를 역임했다. 2015년 대전 시티즌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2016년 성적 부진으로 사임했다. 2017년 옌볜 푸더 수석 코치를 맡았다.[20]
4. 1. 유소년 및 2군 지도 (2007-2010)
삼일공업고등학교에서 유소년 지도를 한 최문식은 2007년 포항 스틸러스 유소년 코치로 부임하며 친정팀에 복귀하였으며, 2009년부터 2010년까지는 포항의 2군 코치를 역임하였다.4. 2. 대한민국 U-17, U-20, U-23 대표팀 코치 (2011-2015)
2011년 전남 드래곤즈 수석 코치를 거쳐, 2012년 대한민국 U-17 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다. 2012년 AFC U-16 챔피언십에 참가했으나 8강에서 우즈베키스탄에 패했다.[9] 이후 이광종 감독의 부름을 받아 대한민국 U-20 대표팀 수석코치로 부임, 2012년 AFC U-19 챔피언십 우승과 2013년 FIFA U-20 월드컵 8강 진출에 기여하였다.대한민국 U-23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이광종 감독을 따라 U-20 대표팀 수석 코치를 맡았으며,[10] 2013년 AFC U-22 챔피언십 4위, 2014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에 공헌하였다. 2016년 하계 올림픽까지 이광종 감독과 함께할 예정이었으나, 2015년 킹스컵을 앞두고 이광종 감독이 백혈병으로 사임하자 감독 대행으로 2승 1무를 기록하며 우승을 이끌었다.[11] 이후 신태용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기고 수석 코치로 복귀하였다.
4. 3. 대전 시티즌 감독 시절 (2015-2016)
2015년 5월 27일, 최문식은 올림픽대표팀 코치직에서 물러나 조진호 감독의 후임으로 대전 시티즌 감독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전득배 사장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었다.[12] 최문식은 K리그 클래식 잔류라는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자신의 축구 철학을 바탕으로 짧은 패스 위주의 공격 축구를 구사하며 팀 컬러를 맞추고 선수 개개인의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장기적인 목표를 밝혔다.[13]6월 3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홈 경기에서 감독 데뷔전을 치렀으나 1:2로 패했다. 8월 15일 성남 FC전 패배로 대전은 14경기 연속 무승의 늪에 빠졌고, 8월 19일 광주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데뷔 후 첫 승과 시즌 2승을 기록했다. 10월 4일 울산 현대와의 홈 경기에서도 승리하지 못하며 K리그 스플릿 라운드 제도 도입 이후 최초로 스플릿 라운드 이전 홈 무승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10월 18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홈 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두며 리그 개막 7개월 만에 홈 첫 승을 기록했고, 이후 부산 아이파크와의 홈 경기에서도 승리하며 2연승을 달렸지만, 울산 현대와의 원정 경기에서 패하며 사실상 강등이 확정되었다. 인천과의 홈 폐막전에서 패하며 강등이 확정되자, 분노한 대전 팬들은 선수단 버스 앞에서 최문식 감독의 사퇴를 촉구하며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2015 시즌이 끝난 후에도 최문식 감독은 유임되었고, 2016 시즌을 앞두고 20명 이상의 선수를 교체하는 대대적인 선수단 개편을 단행했다. 2016 시즌에도 자신의 축구 철학인 FC 바르셀로나식 패스 위주의 축구를 통해 팀 컬러를 맞추는 데 주력할 것임을 밝혔다. 그러나 3월 26일 대구 FC와의 리그 개막전에서 2:0으로 패한 것을 시작으로 4월 9일 안산 무궁화 FC전까지 개막 이후 3경기 연속 무득점 패배를 기록했다. 4월 23일 부천 FC 1995와의 경기에서도 1:3으로 역전패하며 리그 4연패를 기록하자, 최문식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4연패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를 암시했다.[14] 이후 대전 구단이 후임 감독을 물색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윤정섭 대표이사는 이를 일축하며[15] 최문식 감독을 재신임할 것을 밝혔다.[16]
4월 24일 부산 아이파크와의 홈 경기에서 대전 서포터즈들이 사퇴를 촉구하는 항의를 했지만, 대전이 승리하며 한숨을 돌렸다. 이후 연승으로 팀 분위기를 반전시켰고, 9월 19일 부천 FC 1995와의 홈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하며 한 시즌 동안 홈 12경기 무패라는 구단 최다 홈 무패 기록을 갱신했다.[18]
하지만 대전은 원정 경기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고, 2016 시즌 동안 원정 승리는 단 4경기에 불과했으며, 그 중 3경기는 최하위였던 충주 험멜과 고양 자이크로 FC와의 경기였다. 이러한 한계로 인해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 마지노선인 5위권 진입에 실패했고, 10월 29일 성적 부진과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구와의 리그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사임했다.[19]
4. 3. 1. 긍정적 평가
최문식은 대전 시티즌 감독 재임 시절 황인범을 비롯한 젊은 선수들을 많이 기용하며 발굴해냈다.4. 3. 2. 비판

최문식은 대전 시티즌 감독 시절,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특히 가난한 시민 구단인 대전의 현실을 외면하고, 2014년 우승 및 승격 주역들을 포함한 여러 선수들을 내보내고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하는 대대적인 리빌딩을 반복하면서 팀의 조직력을 약화시켰다.[1]
당시 대전은 강등 위기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당장의 성적과 승리가 중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문식은 마치 상위권 팀처럼 경기력에만 신경 쓰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그는 당장의 승리를 위한 수비 위주의 역습 전술보다는, 자신의 축구 철학인 바르셀로나식 패스 위주의 축구를 고집하며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려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1]
또한, 최문식은 선수들 및 팬들과의 소통 능력도 부족했다. 2016 시즌 중반에는 서동현이 최문식과의 불화로 반년 만에 팀을 떠났고, 선수들은 최문식의 주입식 교육을 비판하기도 했다. 2016 시즌 중반 이후 팬들과의 간담회에서 팬들의 요구에 따라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경기 종료 후 서포터즈석을 찾아 팬들에게 인사하고, 팬들과 함께 퍼포먼스에 참여하는 등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였지만 역부족이었다.[1]
최문식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선수들을 비롯한 다른 사람이나 환경 탓을 하는 등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자주 보여 많은 팬들의 비난을 받았다. 이러한 모습은 많은 팬들이 그에게 등을 돌리게 된 주된 원인이었다. 2016 시즌 들어 "모든 것이 감독 탓이다", "4연패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라고 말하며 인터뷰에서 책임 회피를 자제하는 듯했지만, 이미 돌아선 팬심과 여론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1]
이러한 소통 부재와 책임 회피 등의 문제로 인해 최문식은 팬들과 선수들로부터 신뢰를 잃었고, 지지 기반이 매우 약했다. 그 결과, 재임 기간 내내 많은 팬들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아야만 했다.[1]
4. 4. 옌볜 푸더 수석 코치 (2017)
崔文植|최문식중국어은 2017년 옌볜 푸더의 수석 코치로 취임하였다.[20]5. 플레이 스타일
김병수, 윤정환, 고종수와 같이 1990년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플레이로 이름을 날렸으며, 기술력이 있는 축구에 능하다는 의미의 '''테크니션'''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포항 팬들 사이에서는 골 결정력이 정확하다는 의미로 '''믿을맨'''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한국의 역대 테크니션들 중 가장 성공한 테크니션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6. 수상 내역
최문식은 선수 시절과 지도자 시절 모두 다양한 대회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경험했다. 선수 시절에는 K리그1 1회 (1992), 대한민국 리그컵 2회 (1993, 2001),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2회 (1997–98, 2000–01), 아시안 슈퍼컵 1회 (2001) 우승을 차지했다. 대한민국 리그컵에서는 준우승(2000)을 한 적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대통령배 득점왕(1996[4]), 전국체육대회 최우수선수(1996[5]), K리그 올스타(2000[6])에 선정되었고, K리그 90년대 올스타팀(2003[7])에도 이름을 올렸다.
6. 1. 선수
팀 | 대회 | 우승/준우승 | 시즌 |
---|---|---|---|
-- 포항 스틸러스 | K리그 | 우승 | 1992 |
-- 포항 스틸러스 | 아디다스컵 | 우승 | 1993 |
-- 포항 스틸러스 |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 우승 | 1997–98 |
-- 전남 드래곤즈 | 대한화재컵 | 준우승 | 2000 |
-- 상무 축구단 | 한국 준프로축구리그 (가을) | 우승 | 1996, 1997 |
-- 상무 축구단 | 전국체육대회 축구 | 우승 | 1996 |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대한민국 리그컵 | 우승 | 2001 |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 우승 | 2000–01 |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아시안 슈퍼컵 | 우승 | 2001 |
'''개인'''
6. 2. 개인
6. 3. 코치
최문식은 2012년 AFC U-19 챔피언십에서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로 우승에 기여했다.[1] 2013년 AFC U-22 챔피언십에서는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로 4위를 기록했고,[1] 2014년 아시안 게임 축구에서는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로 우승을 이끌었다.[1]6. 4. 감독
참조
[1]
뉴스
https://newslibrary.[...]
The Chosun Ilbo
1988-10-11
[2]
웹사이트
https://www.kfa.or.k[...]
KFA
2009-10-20
[3]
NFT
[4]
뉴스
https://newslibrary.[...]
The Hankyor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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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表監督]韓国女子代表監督にパク・ナムヨル氏選出。男子U-16代表監督にはチェ・ムンシク監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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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식, AG 축구대표팀 코치로 합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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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킹스컵 우승 ‘감독 교체-우즈벡 폭력-편파 판정, 악재 딛고 쾌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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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주도 무시…전득배 사장 '시티즌 감독선임' 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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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식, 대전 9대 감독 취임 "대전의 색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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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연패' 최문식 감독, ''연패에 대해 책임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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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섭 대전시티즌 대표, 감독 교체설 일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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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감독교체 없다…윤정섭 사장 "최문식 감독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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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연패' 최문식 감독, ''연패에 대해 책임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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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선두 눈 앞’ 부천에 0-0 무… 홈 12경기 무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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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식 감독, 자진사퇴 "성적부진 책임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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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식 전 대전 감독, 중국 옌볜 ‘박태하 사단’ 합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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