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거리 카보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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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캘거리 카보이스는 1975년부터 1977년까지 존재했던 월드 하키 협회(WHA)의 아이스하키 팀이다. 이 팀은 원래 마이애미 스크리밍 이글스로 창단될 예정이었으나, 재정 문제로 인해 필라델피아 블레이저스로, 이후 밴쿠버 블레이저스로 연고지를 옮겼다. 1975년 캘거리로 이전하여 카보이스가 되었지만, 낮은 관람객 수와 NHL과의 합병 실패로 인해 1977년 해체되었다. 캘거리 카보이스는 스탬피드 코랄을 홈 경기장으로 사용했으며, 팀의 주요 선수로는 대니 로슨과 론 치퍼필드가 있었다. 팀 해체 이후, 애틀랜타 플레임스가 1980-81 시즌에 캘거리로 이전하여 캘거리 플레임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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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거리 카보이스 - [스포츠팀]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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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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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 앨버타주 캘거리 |
경기장 | 스템피드 코랄 |
언론 | CFAC-TV CFAC |
팀 색상 | 빨강, 하양 |
리그 | 월드 하키 협회 |
운영 기간 | 1975–1977 |
역사 | |
이전 이름 | 마이애미 스크리밍 이글스 (1972, 미출전) 필라델피아 블레이저스 (1972–1973) 벤쿠버 블레이저스 (1973–1975) |
팀 이름 | 캘거리 카보이스 (1975–1977) |
WHA 팀 정보 | |
색상 1 | 하양 |
색상 2 | 빨강 |
디비전 | 캐나디안 디비전 (1975년~1976년) 웨스트 디비전 (1976년~1977년) |
설립 연도 | 1975년 |
해체 연도 | 1977년 |
경기장 | 스템피드 코랄 |
연고지 | 앨버타주 캘거리 |
상징색 | 빨강, 하양 |
애브코 월드 트로피 | - |
시즌 우승 | - |
디비전 우승 | - |
영구 결번 | - |
2. 역사
1972년, 신생 월드 하키 협회(WHA)는 에드먼턴과 오일러스와의 라이벌 관계를 기대하며 브롱코스라는 이름으로 캘거리에 팀을 유치하려 했다.[1] 그러나 팀 소유주 밥 브라운리지가 WHA 창립 시즌 전에 갑자기 사망하면서 팀은 캘거리 브롱코스로 단 한 경기도 치르지 못하고 클리블랜드로 급히 이전하여 크루세이더스가 되었다.[2]
1975년, 밴쿠버 블레이저스가 로키 산맥을 넘어 캘거리로 이전해 오면서 캘거리는 WHA에서 두 번째 기회를 얻었다. 이는 소유주 짐 패티슨이 NHL의 밴쿠버 캐넉스로부터 밴쿠버 시장을 빼앗아 오려는 목표에 실패했기 때문이었다.[3] 카우보이스는 6,500석 규모의 스탬피드 코랄에서 경기를 치렀는데, 이는 작은 규모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수익을 내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었다.[5]
1976–77 시즌 동안 관람객 수는 경기당 4,500명 미만으로 감소했다.[12] 짐 패티슨은 1977–78 시즌에도 카보이스를 유지하려 했으나, 내셔널 하키 리그와의 합병이 무산되고 새로운 경기장에 대한 희망도 없어지자 1977년 8월 18일에 프랜차이즈를 해체했다.[13]
이후 1980–81 시즌에 애틀랜타 플레임스가 캘거리 플레임스로 캘거리로 이전했다.
2. 1. 창단 배경 (마이애미, 필라델피아, 밴쿠버)
원래 이 프랜차이즈는 1972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기반을 두고 마이애미 스크리밍 이글스라고 불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자금 문제와 적절한 경기장 부족으로 인해 마이애미에서 경기를 한 번도 치르지 못했다. 대신 필라델피아로 이전하여 같은 해에 필라델피아 블레이저스로 데뷔했다. 필라델피아에서 한 시즌을 보낸 후, 팀은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밴쿠버로 이전하여 1973-74년에 밴쿠버 블레이저스가 되었고, 2년 후 1975-76년에 캘거리로 이전하여 카보이스가 되었다.[1]2. 2. 캘거리 정착
1972년, 신생 월드 하키 협회(WHA)는 에드먼턴과 오일러스와의 라이벌 관계를 기대하며 브롱코스라는 이름으로 캘거리에 팀을 유치하려 했다.[1] 팀 소유주 밥 브라운리지가 WHA 창립 시즌 전에 갑자기 사망하면서 팀은 캘거리 브롱코스로 단 한 경기도 치르지 못하고 클리블랜드로 급히 이전하여 크루세이더스가 되었다. 이로 인해 오일러스는 두 도시에서 홈 경기를 분산 개최할 의도로 팀 이름을 앨버타 오일러스로 변경했다.[2] 그러나 이 계획 역시 실현되지 못했고, 오일러스는 한 시즌 만에 앨버타라는 이름을 버리고 에드먼턴을 독점적인 홈으로 삼았다. 1975년 캘거리는 WHA에서 두 번째 기회를 얻었는데, 이는 밴쿠버 블레이저스가 로키 산맥을 넘어 이전해 오면서였다. 소유주 짐 패티슨은 NHL의 밴쿠버 캐넉스로부터 밴쿠버 시장을 빼앗아 오려는 목표에 실패하자 캘거리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3] 하지만 WHA가 캘거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리그가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리그에 고디 하우와 바비 헐과 같은 노장 슈퍼스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팀은 마이너 리그로 여겨졌다.[4]카우보이스는 6,500석 규모의 스탬피드 코랄에서 경기를 치렀는데, 작은 규모 때문에 처음에는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코랄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캘거리 전시회 및 스탬피드 이사회가 시설을 15,000석으로 확장하도록 장려할 수 있는 높은 관람객 수를 기대했다. 이러한 확장은 스탬피드 이사회에 의해 계획되었지만, 시간 계획이나 자금 지원에 대한 약속은 없었다.[5]
2. 3. 짧았던 전성기와 해체
월드 하키 협회(WHA)는 1972년에 오일러스와의 라이벌 관계를 기대하며 브롱코스라는 이름으로 캘거리에 팀을 유치하려 했다.[1] 그러나 팀 소유주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캘거리 브롱코스는 한 경기도 치르지 못하고 클리블랜드로 이전했다.[2] 1975년, 밴쿠버 블레이저스가 캘거리로 이전해 오면서 캘거리는 WHA에서 두 번째 기회를 얻었다. 이는 소유주 짐 패티슨이 NHL의 밴쿠버 캐넉스로부터 밴쿠버 시장을 빼앗아 오려는 목표에 실패했기 때문이었다.[3]카우보이스는 6,500석 규모의 스탬피드 코랄에서 경기를 치렀는데, 이는 작은 규모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수익을 내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었다.[5] 첫 시즌에 카우보이스는 41승 35패 4무를 기록하며 캐나다 디비전에서 3위를 차지했다.[8]
1976년 플레이오프에서 카우보이스는 퀘벡 노르디크를 꺾었지만, 2라운드에서 위니펙 제츠에게 패했다. 당시 제츠와의 플레이오프 경기에는 평균 5,000명 미만의 팬들이 참석하여 캘거리 시민들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했다.[12]
1976–77 시즌 동안 관람객 수는 경기당 4,500명 미만으로 더욱 감소했다.[12] 짐 패티슨은 1977–78 시즌에도 카우보이스를 유지하려 했으나, 내셔널 하키 리그와의 합병이 무산되고 새로운 경기장에 대한 희망도 없어지자 1977년 8월 18일에 프랜차이즈를 해체했다.[13]
2. 4. 캘거리 플레임스의 등장
1972년, 월드 하키 협회(WHA)는 에드먼턴과 오일러스와의 라이벌 관계를 기대하며 브롱코스라는 이름으로 캘거리에 팀을 유치하려 했다.[1] 그러나 팀 소유주 밥 브라운리지가 WHA 창립 시즌 전에 갑자기 사망하면서 캘거리 브롱코스는 단 한 경기도 치르지 못하고 클리블랜드로 급히 이전하여 크루세이더스가 되었다.[2] 캘거리는 1975년 WHA에서 두 번째 기회를 얻었는데, 밴쿠버 블레이저스가 로키 산맥을 넘어 이전해 오면서였다. 소유주 짐 패티슨은 NHL의 밴쿠버 캐넉스로부터 밴쿠버 시장을 빼앗아 오려는 목표에 실패하자 캘거리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3]1976–77 시즌 동안 카보이스의 관람객 수는 경기당 4,500명 미만으로 감소했다.[12] 짐 패티슨은 1977–78 시즌에 카보이스를 유지하려 했으며, 궁극적으로 내셔널 하키 리그와의 합병에 참여하려는 희망을 품었다.[13] 그러나 당시 NHL 최소 수용 인원인 12,500석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스탬피드 코랄의 수용 인원 때문에 NHL은 합병에 난색을 표했다.[14] 결국 1977–78 시즌에는 단 2,000명의 팬만이 시즌 티켓을 구매했고,[4] 새로운 경기장에 대한 희망이 없자 패티슨은 1977년 8월 18일에 프랜차이즈를 해체하기로 결정했다.[13]
하지만 캘거리는 NHL이 도착하기까지 단 3년만 기다리면 되었다. 애틀랜타 플레임스는 1980–81 시즌에 캘거리 플레임스로 캘거리로 이전했다. 이 이적은 WHA가 마침내 NHL과 합병된 후 이루어졌으며, 남아 있던 캐나다 팀 3개 모두가 살아남아 NHL에 합류했다. 1980년 1988년 동계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한 캘거리의 성공적인 입찰과 새로운 NHL 규모의 경기장 건설 계획은 NHL의 이적 허용에 중요한 요인이었다. 플레임스는 1983년 새들돔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코랄에서 임시 홈으로 경기를 치렀다.
3. 역대 홈경기장
3. 1. 스탬피드 코랄 (1975년~1977년)
캘거리의 스템피드 코랄을 1975년부터 1977년까지 홈구장으로 사용했으며, 스템피드 코랄은 6,450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4. 팀 기록
캘거리 카보이스의 시즌별 기록은 1975-76 시즌과 1976-77 시즌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