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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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르투갈의 역사는 선사 시대부터 시작하여 로마 제국의 지배, 게르만족의 이동, 이슬람 세력의 지배, 그리고 레콩키스타를 거쳐 포르투갈 왕국이 성립되었다. 대항해 시대를 통해 해양 제국으로 성장하며 브라질,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16세기 스페인과의 동군 연합, 18세기 폼발 후작의 개혁, 나폴레옹의 침공, 19세기 자유주의 혁명과 아프리카 식민지 확장을 거쳤다. 20세기 초 왕정 폐지와 공화정 수립, 살라자르의 독재 정권(에스타두 노부)을 겪었으며, 1974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이후 유럽 공동체 가입, 유로존 가입, 마카오 반환, 동티모르 독립을 통해 식민지 시대를 종식하고 현대 국가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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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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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사 시대
포르투갈의 초기 역사는 유럽 남서부에 위치한 이베리아 반도의 다른 지역과 공유된다. 포르투갈이라는 이름은 로마-켈트족의 이름인 포르투스 칼레에서 유래되었다. 이 지역은 켈트족과 켈트족 이전 민족이 정착하여 갈라이시, 루시타니아족[21], 켈티키 및 키네테스(코니라고도 알려짐)[22] 와 같은 민족의 기원이 되었다. 일부 해안 지역은 페니키아인-카르타고인과 고대 그리스인이 방문했다. 기원전 45년 이후부터 서기 298년까지 루시타니아와 갈라이시아의 일부로 로마 공화국의 지배하에 편입되었다.
포르투갈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인류의 흔적
오늘날 포르투갈 지역은 약 40만 년 전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가 이 지역에 들어오면서부터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포르투갈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인류 화석은 2014년 아로에이라 동굴에서 발견된 40만 년 된 ''아로에이라 3'' ''H. 하이델베르겐시스'' 두개골이다.[23] 이후 네안데르탈인이 이베리아 반도 북부를 돌아다녔으며, 에스트레마두라의 노바 다 콜럼베이라 동굴에서 이빨이 발견되었다.[24]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약 35,000년 전 포르투갈에 도착하여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국경 없는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24][25] 이들은 자급자족 사회였으며 번영하는 정착지를 건설하지는 않았지만, 조직화된 사회를 형성했다. 신석기 시대의 포르투갈은 가축의 사육, 곡물 재배, 강이나 바다에서의 어업을 실험했다.[24]
[[File:https://cdn.onul.works/wiki/source/1950842869d_3ae25bef.jpg|thumb|코아 계곡의 선사 시대 암각화]
켈트족 이전 부족들이 포르투갈에 거주하며 문화적 발자취를 남겼다. 키네테스는 문자를 개발하여 많은 스텔레를 남겼으며, 이는 주로 포르투갈 남부에서 발견된다. 기원전 첫 천 년 초에 켈트족의 물결이 중앙 유럽에서 포르투갈로 침입하여 지역 주민들과 혼인하여 다양한 부족을 형성했다.[26] 또 다른 이론에 따르면 켈트족은 중앙 유럽에서 대규모 켈트족 이동이 있기 훨씬 전에 서부 이베리아/포르투갈에 거주했다.[27] 고대 켈트어를 전공한 많은 언어학자들은 한때 스페인 남서부와 포르투갈 남서부에서 사용되었던 타르테시안어가 적어도 구조적으로는 원시 켈트어라는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제시했다.[28]
포르투갈에서 켈트족의 존재는 광범위하게 고고학적, 언어학적 증거를 통해 추적할 수 있다. 그들은 포르투갈 북부와 중부의 대부분을 지배했지만, 남부에서는 그들의 거점을 구축할 수 없었고, 로마 정복 이전까지 비인도유럽적 성격을 유지했다.[29] 포르투갈 남부에서는 페니키아-카르타고인에 의해 몇 개의 작고 반영구적인 상업 해안 정착지도 설립되었다.
현대 고고학 및 연구에 따르면 포르투갈 켈트족은 포르투갈과 다른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다.[30] 그 시기부터 로마 침략 전까지 카스트로 문화(일명 ''우르넨펠더 문화'')는 포르투갈과 현대 갈리시아에서 번성했다.[31][32] 이 문화는 대서양 거석 문화의 생존 요소[33]와 서부 지중해 문화에서 비롯된 기여와 함께 결국 문화 카스트레야 또는 카스트로 문화라고 불리게 되었다.[34][35] 이 명칭은 게일어에서 'dùn', 'dùin' 또는 'don'으로 불리고 로마인들이 연대기에 castrae라고 부른 특징적인 켈트족 집단을 지칭한다.[36]
칼라이키 민족에 대한 로마 연대기, 레보르 가발라 에렌[37] 이야기, 그리고 포르투갈 북부와 갈리시아 전역의 고고학적 유적 해석을 바탕으로, 봉건적 형태의 군사 및 종교 귀족 계층이 있는 모계 사회가 있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최고 권력자는 군사적 유형의 족장(chefe tribal)이었으며, 카스트로 또는 씨족에서 권위를 가졌고, 드루이드는 주로 여러 카스트로에서 공통될 수 있는 의료 및 종교적 기능을 언급했다.
카스트로 사회에 대한 첫 번째 문서 기록은 스트라보, 헤로도토스, 대 플리니우스 등과 같은 로마 군사 작전 연대기 작가들이 제공하며, 사회 조직에 대해 설명하고, 이 영토의 거주자, 즉 포르투갈 북부의 갈라이키를 "하루는 싸우고 밤에는 달빛 아래에서 먹고, 마시고, 춤을 추는 야만인 집단"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다른 부족들이 있었으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루시타니족이었다. 이들의 핵심 지역은 포르투갈 내륙 중부에 위치해 있었고, 알렌테주 켈티치, 알가르브 키네테스 또는 코니와 같은 수많은 다른 관련 부족들이 존재했다. 부족 또는 하위 구분에는 브라카리, 코엘레르니, 에쿠에시, 그로비이, 인테라미키, 레우니, 루안키, 리미치, 나르바시, 네메타티, 파에수리, 콰케르니, 세르비, 타마가니, 타폴리, 투르둘리, 투르둘리 베테레스, 투르둘리 오피다니, 투로디, 조엘라에가 있었다. 페니키아–카르타고인에 의해 알가르브 지역에 타비라와 같은 몇 개의 작은, 반영구적인 상업 해안 정착지도 설립되었다.
이베리아 반도에는 초기부터 인류가 진출하여, 포르투갈의 남북에 걸쳐 구석기 시대 전기의 유적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191] 구석기 시대에서 중석기 시대의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아질 문화, 소베테르 문화, 캄피니안 문화, 타르드노와 문화 등의 문화가 생겨났으며, 동시에 아프리카에서 이베리아 반도로 이주한 캅스인과 선주민과의 혼혈이 진행되어 스페인인, 포르투갈인과 공통적인 특징을 많이 가진 인종이 탄생했다.[192] 석기 시대의 이베리아 반도 서부에서는 이주 생활이 이루어졌으며, 두드러진 세력을 가진 부족은 존재하지 않았다.[193] 도루강의 지류인 코아강/Rio Coapt 유역에는 소, 말, 염소 등의 선화가 그려진 구석기 시대 후기의 거석이 점재한다.[194] 기원전 5000년대의 신석기 시대에는 정주 생활이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마제석기와 토기의 제조, 농경이 시작되고, 야생 동물의 가축화가 진행되었다.[194] 신석기 시대에 세워진 돌멘 (거석묘), 크롬레크 (환상열석)는 포르투갈 각지에 남아 있다.[194]
북쪽과 동쪽의 경계선이 비교적 느슨했던 포르투갈에는 이주자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으며, 그들에 의해 구리 세공, 청동기, 철기의 제조와 같은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었고, 금 세공의 발달은 호화로운 보석의 제조를 촉진했다.[193] 철기 시대에 지중해 연안부와 아프리카 등의 지역에서 고대 켈트족 등의 다양한 민족이 포르투갈로 이주해 왔고, 이러한 이주자들은 포르투갈 문화의 성장에 기여했다.[193] 기원전 1000년경부터 북방에 살고 있던 켈트족은 육로를 통해 이베리아 반도로 이주했고, 켈트인과 선주민인 이베로족의 혼혈이 진행된 결과, 켈트-이베로(셀티베로, 켈티베리아)족이 나타났다.[194] 고대 켈트인의 문화는 음악, 포르투갈 북부에 남아 있는 가족 구성과 집락의 조직 등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193]
켈트-이베로족의 후손으로 여겨지는 루시타니아인/Lusitanians영어은 수렵, 농업을 영위했으며, 그들이 거주하는 미뉴강 이남에서 과디아나강까지의 지역은 루시타니아라고 불렸다.[195] 기원전 8세기경 은을 구하는 페니키아인이 이베리아 반도 연안부에 도래했고, 그보다 늦게 그리스인이 식민했다.[194] 현대 포르투갈의 영토에 포함되는 이베리아 반도 북부에서의 식민 활동은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포르투갈 남부에는 페니키아인과 그리스인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으며, 알가르브에는 식민 도시가 세워졌다.[196] 멀리서 찾아온 상인들은 포르투갈에 조선 기술을 전수했으며, 그들이 가져온 와인은 포르투갈산 맥주와 함께 애음되었다.[193] 페니키아인의 도시 국가 티루스가 아시리아의 공격으로 함락된 후, 티루스가 북아프리카에 건설한 식민 도시 카르타고가 서지중해의 페니키아인의 교역 거점을 지배했고, 이베리아 반도의 식민 도시도 카르타고가 계승한다.[197]
2. 1. 고대 켈트족과 루시타니아족
켈트족의 영향으로 철기 문화가 발달했으며, 루시타니아족은 포르투갈 중남부에 거주하며 수렵과 농업을 영위했다. 3세기 기원전 고대 로마의 침략이 발생했을 때 수많은 이베리아 반도의 로마 이전 민족들이 이 지역에 거주했다. 히스파니아의 로마화는 수 세기가 걸렸으며, 현재의 포르투갈을 덮었던 로마 속주는 남쪽의 루시타니아와 북쪽의 갈라이키아였다.
현재의 포르투갈 주변에는 코님브리가와 미로브리가와 같은 큰 도시 유적을 포함하여 수많은 로마 유적이 흩어져 있다. 목욕탕, 신전, 다리, 도로, 원형 경기장, 극장 및 평민 주택과 같은 여러 공학 작품들과 동전, 석관, 도자기가 전국에 걸쳐 보존되어 있다.
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수에비 왕국과 서고트 왕국이 5세기부터 8세기 사이에 이 지역을 통치했다.
3. 로마 시대
카르타고에 맞선 제2차 포에니 전쟁 중이던 기원전 218년, 로마 제국 군대가 이베리아 반도에 도착하면서 로마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로마는 에메리타 아우구스타(현재 메리다)를 수도로 하여 오늘날 포르투갈 남부 지역과 스페인의 에스트레마두라를 포함하는 루시타니아를 정복하고자 했다.[38]
로마가 이 지역 정복에 관심을 가진 주요 요인은 광업이었다. 로마는 카르타고가 이베리아의 구리, 주석, 금, 은 광산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고자 했다. 세비야까지 뻗어 있는 이베리아 황철광 지대의 알주슈트렐(비파스카) 및 산투 도밍구 광산은 로마에 의해 집중적으로 개발되었다.[39]
오늘날 포르투갈 남부는 비교적 쉽게 로마에 점령되었으나, 북부 지역은 켈트족과 루시타니아족의 저항으로 정복이 어려웠다. 비리아투스는 수년간 로마의 팽창에 저항한 인물이다.[38] 세라 다 에스트렐라 출신으로 게릴라 전술에 능했던 비리아투스는 여러 로마 장군들을 격파하며 로마에 지속적으로 저항했지만, 기원전 140년 로마가 매수한 반역자들에게 암살당했다. 비리아투스는 오랫동안 초기 포르투갈 역사에서 영웅으로 칭송받았지만, 포르투갈 남부와 로마화된 루시타니아 지역을 습격하여 주민들을 희생시키기도 했다.[38][40]
로마의 이베리아 반도 정복은 로마군 도착 후 2세기가 지나서야 완료되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기원전 19년)에 남은 칸타브리족, 아스투르족, 갈라이키족을 칸타브리아 전쟁에서 격파하였다. 서기 74년, 베스파시아누스는 루시타니아의 대부분 자치도시에 라틴 권을 부여했다. 서기 212년, 콘스티투티오 안토니니아나는 제국의 모든 자유 시민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했고, 세기 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오늘날 포르투갈 북부를 포함하는 갈라이키아 속주를 설립했으며, 그 수도는 브라카라 아우구스타(현재 브라가)였다.[38] 로마는 광업뿐만 아니라 제국에서 가장 비옥한 농경지에서 농업도 발전시켰다. 현재 알렌테주 지역에서는 포도와 곡물을 재배했으며, 알가르브, 포보아 드 바르짐, 마토지뉴스, 트로이아 및 리스본 해안의 연안 지대에서 어업을 집중적으로 수행하여 가룸을 생산해 로마 무역로를 통해 제국 전역으로 수출했다. 통화 발행과 아쿠아에 플라비에 (현재 샤베스)의 트라야누스 다리와 같은 광범위한 도로망, 다리 및 수로 건설을 통해 상거래가 촉진되었다.[41]
로마의 지배는 포르투갈 주민들에게 지리적 이동성을 가져다주었고, 내부뿐만 아니라 세계 다른 지역과의 상호 작용을 증가시켰다. 병사들은 종종 다른 지역에서 복무하다가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정착했고, 광업의 발전은 광산 지역으로의 이주를 유발했다.[40] 로마는 올리시포(리스본), 브라카라 아우구스타(브라가), 아에미니움(코임브라), 팍스 율리아(베자) 등 많은 도시를 건설했으며,[42] 오늘날 포르투갈에 중요한 문화 유산을 남겼다. 민중 라틴어(포르투갈어의 기초)는 이 지역의 지배적인 언어가 되었고, 기독교는 3세기부터 루시타니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로마와 카르타고 간의 포에니 전쟁이 시작되면서 이베리아 반도는 카르타고의 군사 거점이 되었다. 기원전 201년에 제2차 포에니 전쟁이 종결되면서 카르타고는 해외 식민지를 모두 잃고, 로마가 이베리아 반도의 지배권을 장악했다[198]。 로마는 이미 속주로 삼았던 히스파니아에 이어, 기원전 155년에는 이베리아 반도 내륙으로의 정복 전쟁인 루시타니아 전쟁 (기원전 155년 - 기원전 139년)을 전개했다. 테주강과 도루강 사이에 살던 루시타니아인들은 족장 비리아투스/Viriathus영어의 지휘하에 모여 로마의 정복에 저항했다. 약 1세기에 걸쳐 루시타니아인들의 저항이 이어졌지만, 기원전 19년에 아우구스투스가 실시한 칸타브리아 전쟁으로 도루강 이북 지역이 정복되면서 이베리아 반도는 완전히 로마의 지배 하에 놓였다[199]。 아우구스투스는 이베리아 반도를 바이티카, 타라코넨시스, 루시타니아의 3개의 속주로 구획했으며, 후대에 타라코넨시스 서부와 루시타니아에 걸쳐 포르투갈이 건국되었다[199]。 3세기 말에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타라코넨시스를 3개로 분할하여 새롭게 카르타기넨시스, 갈라이키아가 창설되었다.
로마의 지배 하 (팍스 로마나)에서 인종적·문화적으로 다른 이베리아 반도의 선주민들의 로마화가 진전되었고, 공통 언어로서 라틴어가 사용되게 되었다[199]。 그러나, 로마 문명의 영향은 도시부에 머물렀고, 농촌부에는 정착하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200]。 이윽고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갈리시아 지방에서, 속 라틴어에서 파생된 갈리시아-포르투갈어가 사용되게 되었다[199]。
3. 1. 게르만족의 이동과 서고트 왕국
5세기 초 로마 제국이 쇠퇴하면서 게르만족이 이베리아 반도로 이동해왔다.[43] 409년, 야만인이라 불리던 게르만족은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했고,[43] 411년 호노리우스 황제와의 연방 계약을 통해 히스파니아에 정착했다.[44] 이들 중 수에비족과 반달족은 갈라이키아에 브라가를 수도로 하는 수에비 왕국을 세웠다.[44] 수에비족은 아에미니움을 지배하기도 했으며, 남쪽에는 서고트족이 있었다.[45] 암흑시대에 도시 생활은 쇠퇴했지만, 교회 조직은 게르만족 침략 이후에도 유지되었다.[46] 수에비족과 서고트족은 아리우스파와 프리스킬리아누스파를 따랐지만, 지역 주민들로부터 가톨릭교를 받아들였다. 브라가의 마르티누스는 이 시기에 영향력 있는 전도사였다.[45]
헤르메리크 왕은 갈라이키아인들과 평화 조약을 맺고 아들 레킬라에게 영토를 넘겼다.[49] 429년, 서고트족은 알란족과 반달족을 몰아내고 톨레도에 수도를 둔 왕국을 세웠다. 레킬라 사후, 레키아르는 히스파니아를 정복하려 했으나, 456년 테오도리크 2세가 이끄는 서고트족에게 패배하고 처형당했다.[50] 이후 수에비 왕국은 분열과 재통일을 반복하다가, 레미스문드가 서고트족의 영향으로 465년 아리우스파를 채택했다.
500년경 서고트 왕국이 이베리아 반도에 자리를 잡고 서쪽으로 진출하면서 수에비족의 지배에 위협이 되었다. 카리아리코의 통치로 550년 가톨릭 기독교가 재설치되었고,[51] 테오데마르 통치 기간에 제1차 브라가 공의회 (561)가 열렸다. 미로는 제2차 브라가 공의회 (572)를 개최하여 영토 조직과 이교도 인구의 기독교화를 추진했다.[51] 서고트 내전에 개입한 미로는 583년 세비야 재정복에 실패하고 사망했다. 안데카는 리우비길드가 이끄는 서고트족의 침략을 막지 못했고, 585년 수에비 왕국은 서고트 왕국에 멸망했다.[52]
이후 300년 동안 이베리아 반도 전체는 서고트족에 의해 통치되었다.[53][54][55][56] 서고트족은 귀족 계급을 형성하고 중세 시대에 큰 역할을 했다. 교회는 서고트족 통치 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가톨릭 주교들에게 의존하여 로마 통치 체제를 유지했다. 와음바와 비티차는 총독 역할을 했으며, 711년 권력 투쟁에서 로데릭 왕이 사망하면서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서고트 왕이 되었다.
수에비족은 오늘날 포르투갈, 갈리시아, 아스투리아스 서부 변두리에 강력한 문화 유산을 남겼다.[57][58][59] 브라가는 수에비족의 수도였으며,[51] 수에비족은 포르투갈과 갈리시아에 높은 게르만 유전적 기여를 남겼다.[60] 파울루스 오로시우스는 초기 정착이 평화로웠다고 기록했다.[61][62] 부리족은 카바두 강과 오멩 강 사이의 지역에 정착했다.[63]
4. 이슬람 지배와 레콩키스타
7세기에 이슬람교에 의해 결속된 아랍인이 각지로 정복 전쟁을 시작하면서 그들의 세력은 북아프리카 서부에 도달했다. 711년 이슬람 세력은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이베리아 반도로 진출하여 서고트 왕국을 멸망시켰다.[204] 755년 이베리아 반도에 상륙한 우마이야 왕조의 압드 알라흐만은 내란을 진정시키고 이듬해 756년에 이 땅에서 후우마이야 왕조를 창시했다.[204] 이슬람 세력의 영향 아래 놓이지 않았던 이베리아 반도 북부에서는 718년에 서고트계 귀족 펠라요를 왕으로 하는 아스투리아스 왕국이 건국되었다.[205]
718년, 펠라기우스는 코바동가 전투에서 무어인을 격파한 후, 기독교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건국하고 레콩키스타를 시작했다.[68] 10세기경부터 레온 왕국, 아스투리아스 왕국 등이 레콩키스타라고 불리는 "국토 회복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868년 아스투리아스 왕 알폰소 3세는 도루 강 하구의 도시 포르투칼레를 정복하고 비마라 페레스에게 이 땅을 주었다. 1064년에는 기독교 국가와 이슬람 세력의 분쟁지였던 코임브라가 레온 왕국에 정복되었고, 레온 왕페르난도 1세는 모사라베의 세즈난도에게 코임브라의 지배를 위임했다.
9세기 말, 포르투스 칼레 지역에 비마라 페레스에 의해 작은 소규모 자치구가 설립되었다. 디에고 페르난데스 백작의 통치 이후, 자치구는 규모와 중요성이 커졌고, 10세기부터 곤살루 멘데스 백작이 'Magnus Dux Portucalensium'(포르투갈의 대공)으로 불리면서 포르투갈 백작들은 더 큰 중요성과 영토를 나타내는 공작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72] 1096년 카스티야-레온 연합 왕국의 알폰소 6세는 사위이자 부르고뉴 가문의 기사 앙리 드 부르고뉴 (엔리케 데 보르고냐)에게 포르투칼레 백작령과 코임브라 백작령을 함께 주었다.[208]
11세기 말, 부르고뉴 기사 엔리케가 포르투갈 백작이 되었고, 포르투갈 백국과 코임브라 백국을 합병하여 독립을 지켰다. 1128년 6월 24일, 상 마메데 전투이후, 아폰수는 스스로를 "포르투갈 공작"이라고 선언했고, 1139년에는 "포르투갈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1139년 오리케 전투에서 알모라비 왕조에 승리한 아폰수는 남부로 세력을 넓히고 동시에 갈리시아에 침입하여 알폰소 7세에게 왕위 인정을 요구했다. 1143년에 체결된 사모라 조약에 의해 아폰수 1세를 시조로 하는 부르고뉴(보르고냐) 왕조포르투갈 왕국이 창시되었다.[211] 1147년 산타렝을 정복하고 팔레스타인으로 향하는 도중에 포르투에 기항한 십자군 병사의 지원을 받아 리스본을 정복한다. 1179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의 교황 칙서 Manifestis Probatum은 아폰수 1세를 공식적으로 왕으로 인정했다.
1249년 아폰수 3세는 알가르브 동부의 파루와 실베스를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탈환하여 포르투갈 내 레콩키스타를 완료한다.[213] 1255년, 리스본이 포르투갈 왕국의 수도 기능을 갖기 시작한다.[213] 디니스 1세의 치세에 포르투갈 왕권이 강화되고 경제 활동이 최성기를 맞이했다.[214] 1312년 템플 기사단이 폐지된 후, 디니스는 1317년에 그리스도 기사단을 신설하여 포르투갈 국내 템플 기사단의 재산을 이관하여 부의 국외 유출을 미연에 방지했다.[218] 또한, 1290년에는 코임브라 대학교의 전신이 되는 법학자 양성을 겸한 학교가 리스본에 개설되었다.[219]
1383년 포르투갈의 페르난두 1세가 사망한 후, 카스티야로 시집간 공주 베아트리스가 포르투갈 왕위에 오르고 베아트리스의 어머니 레오노르가 섭정이 되었다. 1385년 4월 코임브라에서 개최된 코르테스에서 주앙은 포르투갈 왕으로 선출되었고, 그를 창시자로 하는 아비스 왕조가 성립되었다.[225] 같은 해 8월 알주바호타 전투에서 포르투갈군은 카스티야군에게 승리하여 국가의 독립을 지켜냈다.
4. 1. 레콩키스타와 포르투갈 왕국 성립
7세기에 이슬람교에 의해 결속된 아랍인이 각지로 정복 전쟁을 시작하면서 그들의 세력은 북아프리카 서부에 도달했다. 711년 이슬람 세력은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이베리아 반도로 진출하여 서고트 왕국을 멸망시켰다.[204] 755년 이베리아 반도에 상륙한 우마이야 왕조의 압드 알라흐만은 내란을 진정시키고 이듬해 756년에 이 땅에서 후우마이야 왕조를 창시했다.[204] 이슬람 세력의 영향 아래 놓이지 않았던 이베리아 반도 북부에서는 718년에 서고트계 귀족 펠라요를 왕으로 하는 아스투리아스 왕국이 건국되었다.[205]718년, 펠라기우스는 코바동가 전투에서 무어인을 격파한 후, 기독교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건국하고 레콩키스타를 시작했다.[68] 10세기경부터 레온 왕국, 아스투리아스 왕국 등이 레콩키스타라고 불리는 "국토 회복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868년 아스투리아스 왕 알폰소 3세는 도루 강 하구의 도시 포르투칼레를 정복하고 에게 이 땅을 주었다. 1064년에는 기독교 국가와 이슬람 세력의 분쟁지였던 코임브라가 레온 왕국에 정복되었고, 레온 왕페르난도 1세는 모사라베의 세즈난도에게 코임브라의 지배를 위임했다.
9세기 말, 포르투스 칼레 지역에 비마라 페레스에 의해 작은 소규모 자치구가 설립되었다. 디에고 페르난데스 백작의 통치 이후, 자치구는 규모와 중요성이 커졌고, 10세기부터 곤살루 멘데스 백작이 'Magnus Dux Portucalensium'(포르투갈의 대공)으로 불리면서 포르투갈 백작들은 더 큰 중요성과 영토를 나타내는 공작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72] 1096년 카스티야-레온 연합 왕국의 알폰소 6세는 사위이자 부르고뉴 가문의 기사 앙리 드 부르고뉴 (엔리케 데 보르고냐)에게 포르투칼레 백작령과 코임브라 백작령을 함께 주었다.[208]
11세기 말, 부르고뉴 기사 엔리케가 포르투갈 백작이 되었고, 포르투갈 백국과 코임브라 백국을 합병하여 독립을 지켰다. 1128년 6월 24일, 상 마메데 전투이후, 아폰수는 스스로를 "포르투갈 공작"이라고 선언했고, 1139년에는 "포르투갈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1139년 오리케 전투에서 알모라비 왕조에 승리한 아폰수는 남부로 세력을 넓히고 동시에 갈리시아에 침입하여 알폰소 7세에게 왕위 인정을 요구했다. 1143년에 체결된 사모라 조약에 의해 아폰수 1세를 시조로 하는 부르고뉴(보르고냐) 왕조포르투갈 왕국이 창시되었다.[211] 1147년 산타렝을 정복하고 팔레스타인으로 향하는 도중에 포르투에 기항한 십자군 병사의 지원을 받아 리스본을 정복한다. 1179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의 교황 칙서 Manifestis Probatum은 아폰수 1세를 공식적으로 왕으로 인정했다.
1249년 아폰수 3세는 알가르브 동부의 파루와 실베스를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탈환하여 포르투갈 내 레콩키스타를 완료한다.[213] 1255년, 리스본이 포르투갈 왕국의 수도 기능을 갖기 시작한다.[213] 디니스 1세의 치세에 포르투갈 왕권이 강화되고 경제 활동이 최성기를 맞이했다.[214] 1312년 템플 기사단이 폐지된 후, 디니스는 1317년에 그리스도 기사단을 신설하여 포르투갈 국내 템플 기사단의 재산을 이관하여 부의 국외 유출을 미연에 방지했다.[218] 또한, 1290년에는 코임브라 대학교의 전신이 되는 법학자 양성을 겸한 학교가 리스본에 개설되었다.[219]
1383년 포르투갈의 페르난두 1세가 사망한 후, 카스티야로 시집간 공주 베아트리스가 포르투갈 왕위에 오르고 베아트리스의 어머니 레오노르가 섭정이 되었다. 1385년 4월 코임브라에서 개최된 코르테스에서 주앙은 포르투갈 왕으로 선출되었고, 그를 창시자로 하는 아비스 왕조가 성립되었다.[225] 같은 해 8월 알주바호타 전투에서 포르투갈군은 카스티야군에게 승리하여 국가의 독립을 지켜냈다.
5. 대항해 시대와 포르투갈 제국
15세기 초부터 항해왕자 엔히크의 후원 아래 해양 탐험이 시작되었다.[226] 질 이아네스는 보자도르 곶을 통과했고, 카라벨선의 도입 등 항해 기술도 발전했다.[226] 바르톨로메우 디아스는 희망봉을 발견했고,[87][230] 바스쿠 다 가마는 인도 항로를 개척하여[86][231] 해상 무역을 주도했다.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은 브라질을 발견했다.[232]
포르투갈은 브라질,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시아 등지에 식민지를 건설하며 세계적인 해양 제국으로 성장했다. 프란시스쿠 데 알메이다,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 등에 의해 인도양 세계에 포르투갈의 거점이 건설되었고, 1510년 구아, 1511년 말라카가 포르투갈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233][234] 1522년에는 몰루카 제도의 테르나테 섬에 요새가 건설되었다. 1515년 페르시아만의 도시 호르무즈를 정복한 포르투갈은 향료 무역을 독점했다.[235][236] 포르투갈인은 아시아 내 무역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1557년 명으로부터 마카오를 조차한 후, 중국과 일본 간의 중계 무역으로 이익을 얻었다.[237]
신항로 개척으로 베네치아 공화국 상인들은 타격을 입었다.[238][239] 리스본의 인도 상무원이 유럽-아시아 간 향료 무역을 통괄했으며, 1518년부터 1519년에는 해외 수입이 국가 세입의 63%를 차지했다.[240]
1542년 세 명의 포르투갈 상인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일본은 곧 많은 수의 상인과 선교사를 끌어들였다.
5. 1. 스페인과의 관계
1578년 국왕 세바스티앙 1세가 알카세르 키비르 전투에서 전사하고, 동 엔히크가 왕위에 올랐지만 후계자가 없었다[250]。1580년 1월 엔히크 1세 사후, 펠리페 2세와 동 안토니우가 왕위 계승권을 다투었고, 펠리페 2세가 파견한 스페인 군대가 각지에서 승리했다. 1581년 4월 토마르에서 개최된 코르테스에서 펠리페 2세는 포르투갈 국왕으로 승인되었고, 이베리아 반도에 스페인 왕이 포르투갈 왕을 겸하는 동군 연합이 성립되었다[251]。펠리페 2세는 포르투갈의 자치를 존중하고 포르투갈인을 우대했으며[252], 포르투갈 상인들은 스페인과의 국경 세관 폐지, 신대륙 진출을 통해 큰 혜택을 받았다. 포르투갈 경제는 회복되었고, 식민지 경영 상태도 개선되었다[252]。1588년 아르마다 해전에서 스페인 함대가 영국 함대에 패배하면서 포르투갈의 해운도 타격을 입었다[253]。
1598년 상투메 섬과 프린시페 섬 공격을 시작으로 아시아, 서아프리카, 브라질에서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항쟁이 일어났고, 1663년까지 이어졌다[253]。펠리페 3세 시대부터 포르투갈의 자치는 점차 준수되지 않았고, 1611년에는 증세가 실시되었다[258]。펠리페 4세의 재상 올리바레스 백작은 중앙 집권화를 시도했고, 이에 따라 민중과 귀족층은 스페인 지배에 불만을 품게 되었다[259][262]。
1640년 카탈루냐에서 폭동이 일어나자, 올리바레스 백작은 포르투갈 귀족들에게 카탈루냐 원정에 참전할 것을 명령했다[262]。1640년 12월, 포르투갈 귀족들은 리스본 왕궁을 습격하여 브라간사 공작 동 조앙을 주앙 4세로 즉위시키고 브라간사 왕조를 창시했다. 주앙 4세 치세는 스페인과의 전쟁에 대비한 군사력 증강과 군비 조달에 사용되었다[263]。
포르투갈은 재독립을 선언했지만, 영국, 네덜란드는 포르투갈과 대립했고, 프랑스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했다[267]。교황청은 스페인으로부터의 분리 독립 탄원을 계속 거부했다[268]。주앙 4세는 스페인의 동의를 얻지 않은 독립 선언을 유럽 국가에 승인받지 못한 채 사망했다[269]。
1661년 포르투갈은 영국과 우호 조약을 체결했지만, 탕헤르(탕헤르)와 봄베이(뭄바이)를 영국에 할양해야 했다. 영국은 포르투갈 본국과 식민지에서 상업상의 특권을 획득했고, 포르투갈은 영국에 대해 종속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270]。1668년 스페인은 브라간사 왕조의 정통성을 인정하여 포르투갈은 재독립을 달성하고, 세우타를 제외한 식민지가 복귀했다[270]。
6. 18세기 이후
세바스티앙 조제 드 카르발류 이 멜루(폼발 후작)는 1755년 리스본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포르투갈의 재건을 주도했다.[282] 1758년 국왕 암살 미수 사건 이후 귀족 세력을 탄압하고, 1759년에는 예수회를 추방했다.[283] 코임브라 대학교 개혁 등 교육 개혁을 실시하고, 신분 평준화를 추진했다.[284] 1777년 주제 1세 사후 실각했다.[285]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포르투갈은 쇠퇴기에 접어들었다.[118] 1807년 장-앙도슈 쥐노 장군 휘하의 프랑스군이 침공하여 리스본을 함락시켰다.[289] 주앙 6세는 브라질로 피신하여 리우데자네이루를 포르투갈 제국의 수도로 삼았다. (포르투갈 궁정의 브라질 이동)[118]
1820년 자유주의 혁명으로 자유주의 세력이 성장했고, 1822년에는 브라질이 독립하면서 국력이 약화되었다.[298] 포르투갈 내전 (1832-1834) 이후 자유주의 정권이 수립되었으나, 내분과 경제난으로 혼란이 계속되었다.[303]
19세기 후반, 베를린 회의 (1884) 이후 아프리카 식민지 확장에 주력했다.[310] 그러나 1890년 영국 최후 통첩으로 영국의 요구에 굴복하면서 대중의 반발을 샀고, 이는 1891년 1월 31일 반란의 원인이 되었다.[121][122][313][314]
1908년 카를루스 1세와 왕세자 루이스 필리페가 암살당했다.(리스본 국왕 시해 사건)[315] 마누엘 2세가 즉위했으나, 1910년 10월 5일 혁명으로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정이 수립되었다.[316]
6. 1. 한국과의 비교 (19세기)
19세기 말 포르투갈은 영국과의 외교 분쟁에서 굴욕적인 양보를 하는 등 제국주의 열강의 압력에 시달렸다.[121] 이는 1891년 1월 31일 반란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여겨진다.[122] 당시 조선이 일본을 비롯한 열강의 침략에 직면한 상황과 유사하다.7. 20세기 이후
1926년 5월 28일, 마누엘 고메스 다 코스타 장군이 브라가에서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리스본으로 진군하면서 제1공화국이 붕괴되었다.[318] 군부의 지지를 받은 이 쿠데타로 군사 정권이 수립되었고,[319] 이후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의 독재 정권(에스타두 노부)이 수립되었다.[324]
살라자르는 1932년 총리에 취임하여 1933년 신국가(Estado Novo) 체제를 확립했다.[324][325]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중립을 유지했지만,[327] 전후 식민지 독립 운동으로 어려움을 겪었다.[337]
1968년 살라자르가 사망하고 마르셀루 카에타누가 총리에 취임했으나,[340] 1974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독재 정권이 종식되고 민주화가 이루어졌다.[341] 이 혁명은 군부 독재에 저항하여 민주화를 이룩한 사건으로,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1986년 유럽 공동체(EC)에 가입했으며,[343] 1999년 유로존에 가입했다. 1999년 마카오를 중국에 반환하고,[335] 2002년 동티모르가 독립하면서 식민지 시대가 완전히 종결되었다.
7. 1. 한국-포르투갈 관계 (20세기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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