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너 게일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피너 게일(Fine Gael)은 1933년 창당된 아일랜드의 중도우파 정당이다. 자유보수주의, 기독교 민주주의, 친유럽주의를 이념으로 하며, 경제적 자유주의와 문화 보수주의를 융합한다. 영국-아일랜드 조약 지지 세력의 후예를 자처하며, 여러 차례 연립 정부를 구성했다. 2011년 총선에서 제1당이 되었으나, 2020년 총선에서는 3당으로 밀려났다. 현재 당 대표는 사이먼 해리스이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아일랜드의 보수주의 정당 - 전통 연합주의자의 목소리
전통 연합주의자의 목소리(TUV)는 2007년 설립된 북아일랜드의 정당으로, 민주연합당에 반대하며 보수주의적 정책과 브렉시트를 지지하고, 2024년 영국 총선에서 의석을 확보했으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 아일랜드의 보수주의 정당 - 북아일랜드 보수당
북아일랜드 보수당은 북아일랜드 지역 기반의 보수주의 정당으로, 과거 얼스터 연합당과의 관계를 유지했으나 현재는 독자적으로 활동하며 선거에서 낮은 득표율을 보이고 있다. - 유럽 국민당 가맹정당 - 피데스
피데스는 1988년 오르반 빅토르에 의해 헝가리에서 설립되어 반정부 활동을 하다 1990년 공산 정권 붕괴 후 정치에 참여, 보수화를 거쳐 1998년과 2010년 총선 승리로 오르반 빅토르 총리 집권을 이끌었으나, 중앙집권적 통치 강화, 언론 장악 시도, 권위주의적 성향 심화에 대한 비판을 받으며 현재 민족보수주의, 사회보수주의, 우익대중주의를 표방, 유럽 연합 내 독자 노선으로 논란의 중심에 있다. - 유럽 국민당 가맹정당 - 기독사회인민당
기독사회인민당은 1914년 창당된 우파 정당을 전신으로 하며, 룩셈부르크의 기독교 보수주의 정당으로서 2차 세계 대전 이후 룩셈부르크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여러 차례 연립 정부를 이끌었고, 유럽 의회 선거에서도 의석을 확보하며 유럽 인민당 그룹에 소속되어 활동한다. - 1933년 설립된 정당 - 칠레 사회당
칠레 사회당은 1933년 창당된 사회주의 정당으로,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출발하여 민주화 이후 사회민주주의 이념으로 경제, 사회, 외교 정책을 추진하며 한국과 관계를 맺고 있다. - 1933년 설립된 정당 - 브라질 통합주의행동
브라질 통합주의행동은 플리니우 살가두가 1932년에 창설한 파시즘 성향의 정치 운동 단체로, 이탈리아 파시즘의 영향을 받아 반공주의와 국가주의를 표방하며 준군사 조직 형태를 갖추었으나, 바르가스 정권에 의해 해산된 후 현재까지 소규모 단체를 중심으로 이념이 이어지고 있다.
피너 게일 - [정당]에 관한 문서 | |
---|---|
지도 | |
기본 정보 | |
공식 명칭 | 피너 게일 |
아일랜드어 의미 | 게일 가족당 |
설립일 | 1933년 9월 8일 |
본부 위치 | 더블린 어퍼 마운트 스트리트 51번지, 아일랜드 |
국제 연맹 | 중도민주 인터내셔널 유럽 인민당 |
유럽 의회 그룹 | 유럽 인민당 그룹 |
웹사이트 | 피너 게일 공식 웹사이트 |
정치 | |
당 대표 | 사이먼 해리스 |
부대표 | 헬렌 맥엔티 |
총무 | 존 캐롤 |
의장 | 앨런 패럴 |
상원 대표 | 숀 킨 |
창립자 | W. T. 코스그레이브 에오인 오더피 프랭크 맥더모트 제임스 딜런 |
이념 | 자유보수주의 기독교 민주주의 |
정치적 위치 | 중도우파 |
청년 조직 | 영 피너 게일 |
LGBT 조직 | 피너 게일 LGBT |
합병된 정당 | 커먼 나 응겔 군대 동지 협회 국립 중앙당 |
주요 가치 | 기회 기업 공정성 안보 통합 |
의회 의석 | |
![]() | |
![]() | |
![]() | |
![]() | |
![]() | |
당원 | |
당원 수 (2020년) | 25,000명 |
색상 | |
공식 색상 | 짙은 파란색 |
관례적 색상 | 파란색 |
2. 역사
피네 게일은 1933년 9월 8일 영국-아일랜드 조약 찬성파 정당인 쿠만 나 게일(Cumann na nGaedheal), 국민 중앙당, 그리고 블루셔츠로 알려진 내셔널 가드가 합병하여 탄생했다.[155] 아일랜드 독립 전쟁과 아일랜드 내전을 거치면서 조약 찬성파를 대표했으며, 마이클 콜린스가 이 운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156]
1948년 아일랜드 총선(1948 Irish general election)에서 피아나 파일을 누르고 존 A. 코스텔로(John A. Costello)를 총리로 하는 대연정을 구성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1954년부터 1957년까지 노동당, 클란 나 탈반과 함께 3당 연립 정부를 구성했다.[44][45][46]
1960년대에는 데클란 코스텔로가 주도한 "정의로운 사회(Just Society)" 정책 선언을 채택하며 사회민주주의적 경향을 보였다.[186] 1977년 가렛 피츠제럴드(Garret FitzGerald) 당 대표 취임 이후에는 사회자유주의적 성향이 더욱 강해졌다.[48]
1981년부터 1982년 3월까지, 그리고 1982년 12월부터 1987년까지 노동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했다.[48] 1994년부터 1997년까지는 노동당, 민주좌파와 연립 정부를 구성했다.
2002년 에이다 케니가 당 대표로 선출되었고, 2011년 총선에서 76석을 확보하며 창당 이래 최초로 제1당이 되었다.[167] 노동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엔다 케니가 총리에 취임했다.[167]
2016년 총선에서는 50석으로 의석수가 줄었지만, 피아나 파일과의 합의를 통해 소수 정부를 구성했다.[139]
2017년 5월 엔다 케니 당 대표 사퇴 후, 레오 바라드카르가 신임 당 대표 및 총리에 취임했다.[170][171]
2020년 총선에서는 35석으로 제3당으로 후퇴했다.[172] 이후 피아나 파일, 녹색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여 미셸 마틴이 총리, 레오 바라드카르가 부총리를 맡았다. 2022년 12월 레오 바라드카르가 다시 총리직을 맡게 되었다.[173]
2. 1. 창당 배경 (1930년대)
W. T. 코스그레이브가 이끄는 쿠만 나 게이덜, 프랭크 맥더멋과 제임스 딜런이 이끄는 국민 중앙당, 그리고 에오인 오더피가 이끄는 민족 수비대(블루셔츠로 더 잘 알려짐)의 세 정치 조직이 1933년에 합병하여 파인 게일이 창당되었다.[155] 영국-아일랜드 조약 찬성파로 아일랜드 내전에서 갈라져 나온 쿠만 나 게이덜은 1922년 아일랜드 자유국 수립 이후 1932년 총선까지 집권당이었으나, 새롭게 등장한 피아나 파일에게 패했다. 국민 중앙당은 1932년 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새로운 정당으로 농민들의 이익을 대변했다. 민족 수비대는 정당이 아니라, 친조약파 아일랜드 육군 출신 군인들로 구성된 급진적인 단체였으며, 이전에는 군 동지 협회로 알려져 있었다. 아일랜드 공화군의 쿠만 나 게이덜 집회 방해 사건 이후, 군 동지 협회는 그들의 행사에 경비를 제공하기 시작했다.[41] 이로 인해 군 동지 협회의 지도부는 토마스 F. 오히긴스를 포함한 여러 쿠만 나 게이덜 TDs에 의해 장악되었다.[41] 1933년 초, 에오인 오더피는 군 동지 협회를 장악하여 민족 수비대로 이름을 바꾸고 유럽 파시즘 요소들을 주입하기 시작했다.[42] 그러나 1933년 8월, 피아나 파일 정부는 더블린에서 계획된 행진이 로마 진군을 모방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고 우려하여 민족 수비대를 금지했다.[41]1933년 9월, 세 단체는 힘을 합쳐 파인 게일을 결성했다. 민족 수비대(이 시점에서는 비공식적으로 "블루셔츠"로 불림)는 새 정당의 청년 조직인 "청년 연맹"으로 활동했다. 쿠만 나 게이덜 회원들이 새 정당을 주도했지만, 파인 게일이 단순히 이름만 바뀐 쿠만 나 게이덜이라는 인식을 피하기 위해 오더피가 새 정당의 지도자가 되었다. 1934년 지방 선거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거두고 그의 점점 과격해지는 발언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당이 그의 공개 발언을 통제하려고 시도한 후 오더피는 지도자직에서 사퇴했다. 그는 W. T. 코스그레이브에게 자리를 내주었고, 제임스 딜런은 부지도자가 되었다. 오더피는 블루셔츠를 다시 장악하려고 시도했지만, 파인 게일에 남기로 선택한 대다수 블루셔츠 회원들에게 거부당했다. 코스그레이브와 딜런의 지휘 아래, 이 당은 쿠만 나 게이덜이 주장했던 전통적인 보수주의로 돌아왔고, 1936년까지 청년 연맹은 해체되었다.[41][43]
2. 2. 초기 연립 정부 (1940년대 ~ 1950년대)
1948년 아일랜드 총선(1948 Irish general election) 이후 피너 게일은 장기간 정부에서 벗어나 침체기를 겪었다. 이 선거에서 피너 게일은 피아나 파일을 축출하고 피너 게일의 존 A. 코스텔로(John A. Costello)를 총리(Taoiseach)로 임명하기 위해 다른 여러 정당과 대연정을 구성했다. 이 연정은 수명이 짧았지만, 1954년부터 1957년까지 노동당, 클란 나 탈반과 함께 3당 연립 정부를 구성하여 부활했다.[44][45][46]2. 3. "정의로운 사회"와 사회자유주의로의 전환 (1960년대 ~ 1970년대)

1948년 아일랜드 총선(1948 Irish general election) 이후 피네 게일은 장기간 정부에서 벗어나 침체기를 겪었다. 이 선거에서 피네 게일은 피아나 파일을 축출하고 피네 게일의 존 A. 코스텔로(John A. Costello)를 타오이세흐(총리)로 임명하기 위해 다른 여러 정당과 대연정을 구성했다. 이 연정은 수명이 짧았지만 1954년부터 1957년까지 다시 부활했다. 그러나 이후 피네 게일은 16년 동안 다시 야당으로 돌아갔다. 1960년대 피네 게일은 자기 성찰의 시기를 거쳤는데, 데클란 코스텔로(Declan Costello)가 이끄는 새로운 세대의 피네 게일 정치인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로 피네 게일을 활성화시키려고 노력했다. 후에 피네 게일 역사의 획기적인 순간으로 칭송받는 일에서 코스텔로는 "정의로운 사회를 향하여(Towards a Just Society)"라는 문서를 통해 당을 사회민주주의적 방향으로 좌경화할 것을 제안했다.[44][45][46] 이 문서는 1965년 아일랜드 총선(1965 Irish general election)을 위한 당의 강령의 기초로 채택되었지만, 선거에서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자 정의로운 사회 문서에 대한 추진력은 약해지고 사라졌다.
리암 코스그레이브(Liam Cosgrave) 당수가 노동당과 선거 협약을 체결한 후에야 피네 게일은 1973년에 정부에 복귀했다. 이 시기에 피네 게일은 특히 1977년 당의 지도자가 된 가렛 피츠제럴드(Garret FitzGerald) 하에서 사상적으로 점점 더 자유주의적이 되었다.[48] 이 기간 동안 피네 게일은 여러 국민투표에서 선거 운동을 벌였다. 당은 아일랜드의 유럽 경제 공동체(European Economic Community) 가입, 투표 연령을 21세에서 18세로 낮추는 것, 헌법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의 "특별한 지위"를 제거하는 제안을 지지했다. 당은 이 세 가지 캠페인 모두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 또한 아일랜드에 피임약(contraceptives)을 도입하는 데 대해 더 자유로운 접근 방식을 취하기 시작했지만, 1974년 피네 게일/노동당 연정이 피임약을 합법화하려는 시도는 타오이세흐 리암 코스그레이브를 비롯한 피네 게일 의원 6명이 정부의 법안에 반대표를 던진 후 실패했다.[47]
1960년대에 사회정의와 평등의 원칙에 기반하여 "정의로운 사회(Just Society)" 정책 선언을 채택했다. 데클란 코스텔로가 이끄는 당의 신흥 사회민주주의 계파에 의해 작성되었다. 이 정책 선언에서 표현된 사상은 그 후 당에 큰 영향을 미쳤다.[186]
2. 4. 1980년대 ~ 1990년대
1981년부터 1982년 3월까지 노동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같은 해 12월부터 1987년까지도 노동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했다.[48]1982년, 공화당 소수파 정부가 헌법상 사실상의 낙태 금지를 도입하기 위해 제출한 아일랜드 헌법 제8차 개정 국민투표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렸다. 당시 당수 가렛 피츠제럴드는 개인적으로 반대했지만, 국민투표에서 수정안이 통과되었다.
1984년, 거주하는 외국인에게도 투표권을 확대하는 헌법 개정안을 제안하고 지지했으며, 국민투표에서 통과되었다. 1986년 이혼 합헌화 헌법 개정안을 제안하고 지원했지만,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었다.[49] 이듬해 단일유럽법 비준을 인정하는 헌법 개정안을 지지하여 국민투표에서 통과되었다.
1992년, 마스트리흐트 조약 비준을 허용하는 헌법 개정안을 지지하여 국민투표에서 통과되었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 노동당, 민주좌파와 연립 정부를 구성했다.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세 가지 헌법 개정안을 제안하고 지지했다. 1995년 이혼 합헌화 개정안, 1996년 자유의 몸일 때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되는 경우 법원이 보석을 거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개정안, 각의가 절대적 기밀 사항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뒤집는 개정안이었다. 세 가지 개정안 모두 국민투표에서 통과되었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추가로 세 가지 헌법 개정안을 제안하고 지지했다. 1998년 암스테르담 조약 비준 허용 개정, 벨파스트 협정 비준 허용 개정, 1999년 지방 정부의 헌법 승인과 지방 의회 선거를 최소 5년마다 실시해야 한다는 개정이었다. 모두 국민투표에서 통과되었다.
2. 5. 쇠퇴와 재건 (2000년대)
2002년 당수 선거에서 에이다 케니가 피너 게일 당수로 선출되었다. 2001년부터 2004년 사이에 7개의 헌법 개정안 찬성 운동을 지지하고 1개의 개정안에 반대했다. 2001년에는 기존의 사형 금지법을 헌법에 확대하는 개정, 국제형사재판소 규약 비준을 인정하는 개정, 니스 조약 비준을 인정하는 개정 등 3개의 개정을 모두 지지했다. 2001년에 제안된 개정안은 니스 조약 관련 개정안을 제외하고 모두 유권자에 의해 승인되었지만, 2002년에 실시된 2차 국민투표에서 니스 조약을 승인했다. 2002년에 제안된 또 다른 개정안은 낙태를 위헌으로 규정하여 낙태 금지 헌법을 강화하려는 것이었지만, 피너 게일의 반대표로 인해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었다.[136]2004년 헌법 개정을 통해 아일랜드 국적의 무제한 출생지주의 법을 폐지하는 것을 지지했으며, 이 개정은 국민투표에서 유권자에 의해 승인되었다. 2008년에는 리스본 조약 비준을 인정하는 개정안을 지지했지만,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었고, 2009년 2차 국민투표에서 이 결정을 뒤집어 리스본 조약을 승인했다.[136]
2009년 지방 선거에서 피네 게일은 556석을 획득하여 피아나 파일(407석)을 제치고 전국적으로 가장 큰 지방 정부 정당이 되었다. 이는 2004년 결과 대비 88석 증가한 것이다. 같은 날에 열린 2009년 유럽 의회 선거(아일랜드 의석 수가 13석에서 12석으로 감소)에서 피네 게일은 4석을 획득하여 아일랜드 정당 중 유럽 의회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유지했다. 이는 2004년 결과 대비 1석 감소한 것이다.[137]
2. 6. 경제 위기와 집권 (2010년대)
2009년 지방 선거에서 피네 게일은 556석을 획득하여 피아나 파일(407석)을 제치고 전국적으로 가장 큰 지방 정부 정당이 되었다.[136] 이는 2004년 결과 대비 88석 증가한 수치였다. 같은 날에 열린 2009년 유럽 의회 선거에서는 아일랜드 의석 수가 13석에서 12석으로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피네 게일은 4석을 획득하여 아일랜드 정당 중 유럽 의회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유지했다.[137]2011년 총선거에서 피네 게일은 25석을 추가하여 총 76석을 확보, 창당 이래 최초로 제1당이 되었다.[167] 더블린 노스웨스트를 제외한 모든 선거구에서 당선자를 배출했으며, 상원에서는 19석을 획득하여 2007년 선거 대비 4석 증가했다. 피네 게일은 더글러스 하이드 대통령 후보 지명에는 참여했지만,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적은 없다. 2011년 대통령 선거에서 피네 게일 후보였던 게이 미첼은 6.4%의 득표율로 4위에 그쳤다.[138] 2004년에는 메리 맥알리스 대통령의 재선을 지지했고, 2018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마이클 D. 히긴스의 재선을 지지했다.
2011년 총선 이후 피네 게일은 노동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였고, 당수 엔다 케니가 총리에 취임하여 내각을 구성하였다.[167] 발족 당시 내각의 주요 과제는 금융 위기 수습과 경제 재건이었다. 2015년, 엔다 케니 내각의 마이클 누난 재무장관은 2016년도 예산이 2년 연속 소액 감세와 지출 증가[168]를 중심으로 할 것임을 밝혔다.
2016년 총선거에서 피네 게일은 50석을 얻는 데 그쳐 제1당 자리를 유지했지만, 연립 여당은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후 몇 달간의 협상 끝에 주요 야당이자 오랜 라이벌인 피아나 파일과의 합의를 통해 소수 피네 게일 주도 정부를 구성했다.[139]
2017년 5월 18일, 엔다 케니 당수가 사퇴했다. 총선에서 득표율이 크게 감소하고 노동당과의 연립 정부가 해체되면서 케니 당수의 구심력은 약화되었다.[169] 이후 6월 2일에 당수 선거가 실시되어 레오 바라드카르 사회보호부 장관이 신임 당수로 선출되었고,[170] 14일에는 바라드카르 당수가 신임 총리에 취임했다.[171]
2. 7. 현재 (2020년대 ~ 현재)
2009년 지방 선거에서 피너 게일은 556석을 획득하여 피아나 파일(407석)을 제치고 전국적으로 가장 큰 지방 정부 정당이 되었다.[136] 2009년 유럽 의회 선거에서는 4석을 획득하여 아일랜드 정당 중 유럽 의회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유지했다.[137]2011년 총선거에서 피너 게일은 총 76석을 확보했고,[138] 상원에서는 19석을 획득했다. 피너 게일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적은 없지만, 2011년 대통령 선거에서 게이 미첼 후보는 4위를 차지했다.[138] 2004년에는 메리 맥알리스 대통령의 재선을 지지했고, 2018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마이클 D. 히긴스의 재선을 지지했다.
2016년 총선거에서 피너 게일은 노동당과의 연립 정부를 구성했지만 패배했다. 이후 몇 달간의 협상 끝에 피아나 파일과의 합의를 통해 소수 피너 게일 주도 정부를 구성했다.[139] 피너 게일은 2020년까지 다일의 무소속 의원 8명과 함께 아일랜드를 단독으로 통치했다.[139]
2017년 5월 18일, 엔다 케니 당수가 사퇴하고, 레오 바라드카르 사회보호부 장관이 신임 당수로 선출되었다.[170] 6월 14일에는 바라드카르 당수가 신임 총리에 취임했다.[171]
2020년 2월 8일 실시된 2020년 아일랜드 총선거에서는 35석으로 의석이 크게 줄어 제3당으로 후퇴했다.[172] 2020년 6월, 피아나 파일, 녹색당과의 3당 연립정부가 출범하여, 미셸 마틴이 타오이세흐(총리), 레오 바라드카르가 타나이스테(부총리)를 역임했다. 2022년 12월 17일, 정부 합의 프로그램에 따라 레오 바라드카르가 타오이세흐로 복귀하고 미셸 마틴이 타나이스테를 맡았다.[173] 2024년 아일랜드 총선거에서는 38석으로 소폭 증가했지만 신 페인당이 39석을 획득했기 때문에 제3당에 머물렀다.[174]
3. 이념 및 정책
피너 게일은 자유보수주의,[1][2][66][67] 기독교 민주주의,[68][69][70] 자유주의,[8] 보수적 자유주의,[71] 보수주의,[72][73] 그리고 친유럽주의[74] 정당으로 묘사되며, 문화 보수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 요소를 결합한 이념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75] 아일랜드 내전에서 친조약파의 후예로서, 마이클 콜린스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고 그의 유산을 주장한다.[77][32][78]
1960년대에는 데클란 코스텔로가 이끈 당내 신흥 사회민주주의 계파에 의해 "정의로운 사회" 정책 선언을 채택하여, 사회 정의와 평등이라는 원칙이 당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82]
20세기 대부분 기간 동안 아일랜드 사회의 보수적인 기독교 윤리 때문에 전통적으로 사회적으로 보수적이었지만, 당원들은 사회 정책 문제에 있어 사회 자유주의, 사회 민주주의, 기독교 민주주의의 영향을 다양하게 받고 있다. 개럿 피츠제럴드 정권 하에서 당의 사회적으로 더 자유로운, 또는 다원적인 계파가 두각을 나타냈다. 현대 피너 게일 지지자들은 탈물질주의적 가치에 대한 선호도를 보여주고 있다.[85][86][87]
3. 1. 경제 정책
피너 게일은 전통적으로 재정적 공정성과 정부 개입 최소화를 추구하는 친기업 정책을 표방해 왔다. 이는 최소한의 국가 개입, 저세금, 사회 지출을 강조했던 이전 친조약 정부의 노선을 계승한 것이다.[204]하원에서 새롭게 선출된 피너 게일 정치인들은 경제적 자유주의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특히 루신다 크레이튼(이후 탈당)과 레오 버라드카는 아일랜드의 경제 위기와 실업 문제에 대해 신자유주의적 접근 방식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205] 버라드카는 소규모 토착 기업을 적극 지지하며, 이들 기업이 정부의 자본 재구성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206] 리처드 버튼 전 재무 보고관의 제안은 기업 보호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1년 공정한 예산 웹사이트에서는 그의 해결책이 "엄격하지만 공정하다"고 평가했다.[207] 다른 해결책들은 인프라 투자를 유지하면서 공공 부문 인력 감축에 초점을 맞춘 유럽 전역의 보수적인 정부 정책과 대체로 유사하다.
피너 게일의 경제 정책 제안은 때때로 아일랜드의 소규모 정치 단체나 노동 조합 일부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들은 당의 해결책이 노동자의 이익보다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SIPTU(서비스·산업·전문가·기술) 노동 조합은 엔다 케니 총리가 아일랜드 경제 위기에 대응하여 전국 임금 협약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케니의 발언은 지지를 얻었고, 2008년 여론 조사에서 큰 상승세를 보였다.[208]
피너 게일의 사이먼 코브니는 아일랜드의 반국영 기업 부문의 전면적인 재편을 추진했다. 신경제회복청(New Economy and Recovery Authority; NewERA)이라고 명명된 이 계획은 "21세기 과제를 향해 아일랜드 경제를 재건하는" 경기 부양책으로 제시되었다.[209] 4년 동안 182억유로 규모의 에너지·통신·수자원 인프라 투자를 통해 아일랜드의 에너지 안보와 디지털 명성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 계획은 반국가적 자산의 통합 관리와 기타 불필요한 서비스의 매각을 제안했다. 전력 회사인 ESB, 보드 나 모나, 보드 가슈에 속한 발전 서비스를 포함한 다양한 국가 자원을 매각하여 주식을 발행하고, 국민연금준비기금의 자금을 활용하여 재원을 마련했다.[210]
피너 게일의 경제 정책 제안에 대해 에디 호브스와 데이비드 맥윌리엄스를 포함한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으며, 이러한 제안들이 상당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후 노동당은 피너 게일과 광범위하게 유사한 정책을 발표했다.[211]
2015년, 엔다 케니 내각의 누난 재무상은 2016년도 예산이 2년 연속 소액 감세와 지출 증가[168]를 중심으로 할 것임을 밝혔다. 2016년 총선에서 피너 게일은 50석을 얻어 제1당을 유지했지만, 연립 여당은 과반수 확보에 실패했다.
2017년 5월, 엔다 케니 당수가 사퇴했다. 총선 득표율 감소와 노동당과의 연립 정부 해체로 인해 케니 당수의 구심력은 약화되었다.[169] 6월 2일 당수 선거에서 레오 버라드카 사회보호부 장관이 신임 당수로 선출되었고,[170] 14일에는 버라드카 당수가 신임 총리에 취임했다.[171]
3. 2. 사회 정책
켈트 호랑이의 붕괴 이후 2008년 이후 아일랜드 경제 침체로 인해 아일랜드는 경제적, 정치적 격변을 겪었다. 2011년 아일랜드 총선에서 집권당인 피아나 파일은 참패했고,[53] 피너 게일과 노동당은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53][54] 아일랜드 역사상 처음으로 피너 게일이 하원에서 최대 정당이 되었다. 피너 게일과 노동당은 다시 연립 정부를 구성했고, 이들의 임기는 아일랜드를 경제 회복으로 이끌기 위한 노력으로 특징지어졌다. 2013년, 루신다 크레이턴을 포함한 여러 피너 게일 의원들이 낙태 반대를 이유로 당의 방침에 반하여 임신 중 생명 보호 법안에 반대표를 던져 당에서 제명되었다.[55] 이들은 이후 레누아라는 정당을 결성했다.[55]2015년, 피너 게일/노동당 연립 정부는 헌법에 따른 동성 결혼을 허용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정부는 찬성 투표를 위해 캠페인을 벌였고 성공했다.[56] 2016년 총선 이후, 피너 게일은 피아나 파일과의 신뢰 및 공급 협약을 통해 소수 정부로 정부를 유지했다. 피아나 파일은 신임 투표에서 기권하기로 합의했다.[57] 엔다 케니는 2017년 당 대표직에서 사임했다.[58] 대표 선거 이후, 리오 바라드카르가 그의 후임이자 총리가 되었다.[59] 이로써 바라드카르는 세계 최초의 공개적으로 LGBT인 정부 수반 중 한 명이 되었다.[60] 2018년 피너 게일 정부는 제8차 수정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제8차 수정안은 아일랜드 헌법에 있는 낙태를 금지하는 조항이었다. 피너 게일은 수정안 폐지를 위해 캠페인을 벌였고 성공했다.[61]
2020년 총선 이후, 피너 게일은 역사상 처음으로 전통적인 라이벌인 피아나 파일과 녹색당과 연정을 구성했으며, 리오 바라드카르는 정부의 5년 임기 중 첫 2년 동안 부총리를 역임하고 2022년 12월 총리가 되었다.[62] 리오 바라드카르는 2024년 3월 20일 피너 게일 대표직에서 사임했고, 3월 24일 사이먼 해리스가 무투표로 그의 후임이 되었다.[63][64]
중도우파 정당으로서,[65][8][9][10][11] 피너 게일은 자유보수주의,[1][2][66][67] 기독교 민주주의,[68][69][70] 자유주의,[8] 보수적 자유주의,[71] 보수주의,[72][73] 그리고 친유럽주의[74]로 묘사되어 왔으며, 문화적 보수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 요소를 결합한 이념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75]

피너 게일은 1960년대에 데클란 코스텔로가 이끈 당내 신흥 사회민주주의 계파에 의해 만들어진 "정의로운 사회" 정책 선언을 채택했다. 이 정책 선언에 담긴 사회 정의와 평등이라는 원칙은 향후 수년간 당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82]
피너 게일은 20세기 대부분 기간 동안 아일랜드 사회의 보수적인 기독교 윤리 때문에 전통적으로 사회적으로 보수적이었지만, 당원들은 사회 정책 문제에 있어 사회 자유주의, 사회 민주주의, 기독교 민주주의의 영향을 다양하게 받고 있다. 개럿 피츠제럴드 정권 하에서 당의 사회적으로 더 자유로운, 또는 다원적인 계파가 두각을 나타냈다. 이혼을 허용하는 제안은 피츠제럴드 정권 하의 1986년[83]과 존 브루턴 정권 하의 1995년 두 차례에 걸쳐 피너 게일이 이끄는 정부에 의해 국민투표에 부쳐졌으며, 두 번째 시도에서 간신히 통과되었다.[84] 현대 피너 게일 지지자들은 탈물질주의적 가치에 대한 선호도를 보여주고 있다.[85][86][87]

피너 게일은 2003년부터 동성 커플을 위한 민법상의 결합을 지지하며, 2010년 민법상 동반자 관계 및 특정 권리와 의무에 관한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2012년, 이 당은 아르드페이스(Ard fheis)에서 다가오는 헌법 협약에서 동성 결혼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을 결의했다. 2013년, 당 대표이자 총리인 엔다 케니는 동성 결혼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피너 게일이 이끄는 정부는 2015년 5월 22일 이 문제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했고, 찬성 62.1%, 반대 37.9%로 통과되어 동성 커플에게 완전한 결혼 권리를 부여하게 되었다.
2015년, 결혼 평등 국민투표 몇 달 전 리오 바라드카르는 게이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최초의 아일랜드 정부 장관이 되었다.[88] 2019년 5월, 전 트랄리의 장미 출신인 마리아 월시는 2019년 유럽 의회 선거에서 미들랜드-노스웨스트 선거구의 피너 게일 유럽 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메어레드 맥기니스와 함께 출마했다. 월시는 피너 게일의 첫 공개적으로 레즈비언인 후보였다.[89][90] 피너 게일에는 피너 게일 LGBT라는 LGBT+ 부서가 있으며, 2017년 리오 바라드카르는 더블린 프라이드에 참가한 최초의 총리가 되었다.[91]
1983년,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제안된 헌법 제8차 수정 조항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피너 게일은 처음에는 이 제안을 지지했지만, 이후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당시 당수이자 총리였던 가렛 피츠제럴드 하에, 이 당은 '반대' 투표를 위한 선거운동을 벌였다. 법무장관 피터 서덜랜드의 자문에 따라, 이전 정부에서 초안된 조항의 문구가 모호하고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쳤다.[92] 이러한 입장은 생명보호 수정 운동과 가톨릭 주교, 그리고 당시 최대 정당이었으나 야당이었던 피아나 파일의 입장과 상충되었다. 이 수정 조항은 헌법 제40조 3항 3°에 태아에게 어머니와 동등한 자격을 갖춘[93] 생명권을 부여하는 내용이 추가되었다.[94]
1992년, X 사건에서 대법원은 여성의 자살 위험이 헌법 제40조 3항 3°에 따라 낙태를 허용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판결했다. 2002년, 피너 게일은 임신 중절의 근거로 자살을 제거하려는 헌법 제25차 수정 조항에 반대하는 선거운동을 벌였다. 이 수정 조항은 아일랜드 유권자들에게 거부되었다.[95]
2013년, 피너 게일은 대법원의 ''X 사건'' 판결을 법으로 이행한 2013년 임신 중 생명 보호법의 제정을 제안하고 지지했다. 이 법은 어머니의 건강이 아닌 생명에 대한 실질적이고 상당한 위험(자살 위협 포함)이 있는 경우 임신 중절에 대한 접근을 허용한다. 국무장관 루신다 크레이턴을 포함한 5명의 하원의원과 2명의 상원의원은 이 법안에 반대표를 던져 피너 게일 당의원직을 상실했다. 크레이턴은 이후 피너 게일을 떠나 레누아를 창당했다.[96][97] 이 법은 여러 반낙태 단체[98] 와 가톨릭 주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지만 여론조사에서 유권자 대다수의 지지를 받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더 자유로운 낙태법을 원한다고 밝혔다.[99]
엔다 케니의 피네 게일 주도 소수 정부는 2016년 선거 후 취임하여 제8차 수정 조항에 대한 변경 가능성을 보고하는 무작위로 선정된 시민회의를 약속하는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아일랜드 국회(오이레아크타스) 위원회에서 검토되고, 정부는 국회 양원의 토론에서 공식적으로 보고서에 답변할 것이었다. 피너 게일 국회의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자유 투표를 약속받았다. 리오 버라드카는 2017년 6월 14일 엔다 케니의 뒤를 이어 총리가 되었고, 2018년 낙태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약속했다.[100] 보건부 장관 사이먼 해리스와 케이트 오코넬 등 여러 피너 게일 하원의원들은 국민투표 전후로 낙태 허용 측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당내 의견이 분분했지만, 대부분의 피너 게일 하원의원과 상원의원, 그리고 대다수 당원들은 제8차 수정 조항 폐지를 지지했다. 제8차 수정 조항 폐지 국민투표는 2018년 5월 25일에 실시되어 유권자의 66.4%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3. 3. 외교 및 안보 정책
피너 게일은 아일랜드에서 가장 친유럽 통합적인 정당 중 하나로, 유럽 헌법과[118] 리스본 조약을 지지하고 유럽 공동 방위 참여를 주장해 왔다.[119] 이 당은 NATO를 지지해 왔으며, 1998년 당 대표 존 브루턴은 아일랜드가 NATO 주도의 평화를 위한 파트너십에 가입할 것을 촉구했다.[120] 피너 게일의 청년 조직인 젊은 피너 게일은 2016년 정부에 NATO 가입 신청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121]엔다 케니 당 대표 시절, 피너 게일은 아일랜드의 중립을 종식하고 유럽 방위 체계에 참여할 것을 촉구했으며,[122] 케니는 "사실 아일랜드는 중립적이지 않다. 단지 비동맹일 뿐이다"라고 주장했다.[118]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피너 게일은 국방비 증액을 촉구했으며,[123] 사이먼 코브니 외무장관은 연간 5억유로 증액을 제안했고,[124] 아일랜드가 안보 접근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시사했다.[125]
브렉시트 이후 피너 게일은 강력한 친유럽적 입장을 취하며 아일랜드의 자리는 "유럽의 중심"에 있다고 밝혔다.[126] 정부에서는 유럽과 세계의 다른 소국들과 동맹을 발전시키기 위한 "글로벌 아일랜드" 계획을 발표했다.[127]
피너 게일은 유럽 최대의 정당으로 자유보수주의 및 기독교 민주주의 성향의 국가 정당들을 포함하는 유럽 인민당(EPP)의 창립 회원이다. 피너 게일의 MEPs들은 유럽 의회에서 EPP 그룹에 속하며, 피너 게일 의원들은 유럽 평의회 의회 의회와 지역위원회에서도 EPP 그룹에 속한다. 청년 피너 게일은 유럽 인민당 청년(YEPP)의 회원이다.[128]
유럽 인민당 회원 자격을 통해 유럽의 다른 정당들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피너 게일은 중도우파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된다.[129][130][131] 이 정당은 일반적으로 기독교 민주주의 성향으로 자처하는 유럽 정당들과 일치한다.[132]
3. 4. 기타 정책
피너 게일은 낙태, 정치 개혁, 의료 시스템 등 다양한 정책 분야에서 입장을 밝혀왔다.1983년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헌법 제8차 수정 조항 국민투표에서 당초 찬성 입장이었으나, 가렛 피츠제럴드 총리 하에서 반대로 선회했다. 피터 서덜랜드 법무장관의 자문에 따라 조항 문구의 모호성을 지적하며 반대 운동을 펼쳤다.[92] 이는 생명보호 수정 운동 및 가톨릭 주교, 피아나 파일과 대립하는 입장이었다.[93] 수정 조항은 태아에게 어머니와 동등한 생명권을 부여하는 내용이었다.[94]
X 사건 판결 이후, 2002년 임신 중절의 근거로 자살을 제거하려는 헌법 제25차 수정 조항에 반대했다.[95] 2013년에는 2013년 임신 중 생명 보호법 제정을 지지하여, 어머니의 생명에 실질적인 위험(자살 위협 포함)이 있는 경우 임신 중절을 허용했다. 이 과정에서 루신다 크레이턴 등 일부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져 당원직을 상실했다.[96][97]
엔다 케니 정부는 시민회의를 통해 제8차 수정 조항 변경 가능성을 검토했고, 리오 버라드카 총리는 2018년 낙태 국민투표를 약속했다.[100] 사이먼 해리스 보건부 장관 등은 낙태 허용을 지지했으며, 제8차 수정 조항 폐지 국민투표는 2018년 5월 25일 66.4%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2010년 필 호건은 하원 의원 수 20명 감축, 상원 폐지 등을 포함하는 정치 개혁안을 발표했다.[112] 상원 폐지안은 2013년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었다.[113]
피너 게일은 보건서비스위원회(HSE)에 의해 중앙 관리되는 아일랜드 의료 시스템이 유럽 다른 국가에 비해 열악하다고 평가하며,[114] 민간 의료 보험과 공공 의료 카드, 양극화 체제를 벗어나 보편적 건강 보험 도입을 주장해왔다.[115] 제임스 릴리 당시 보건 대변인은 "지난 10년 동안 보건 서비스는 엉망이 되었다"고 비판했다.[115] 2009년 FairCare 캠페인을 통해 의무적인 보편적 건강 보험 시스템으로의 개혁을 제안했다.[116] 현재는 Sláintecare 이행을 중심으로 의료 시스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117]
아일랜드 내전의 역사로 인해 정치적 스펙트럼은 유럽식 좌파·우파와는 다르게 형성되었지만, 피너 게일은 중도우파 정당으로 분류되며, 법과 질서, 기업, 재정적 정직성을 중시한다.[202] 마이클 콜린스의 유산을 중요하게 여기며,[203] 헌법 정당으로서 국가 제도에 대한 존중을 강조한다.
4. 역대 총선 결과
피너 게일-노동당-민주 좌파 정부 (1994–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