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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고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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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소성은 지리산 형제봉 중턱에 위치한 산성이다. 신라가 군사적 목적으로 축조했거나,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왜병 섬진강 통로를 차단하기 위해 구축했다는 견해가 있으며, 고구려 광개토왕 남하 시기에 축조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둘레 800m, 높이 3.5~4.5m의 사다리꼴 성벽으로, 남쪽과 북쪽에 성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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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고소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하동 고소성
하동 고소성
유형사적
지정 번호151
지정일1966년 9월 6일
주소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산31번지
시대신라
면적29,291m²

2. 역사

신라 때 돌로 쌓은 산성으로 능선을 따라 5각형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다. 성벽은 네모나게 다듬은 돌과 자연석을 사용하여 견고하게 쌓았다. 산성의 동·북·서·남면은 성벽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있으나, 서남쪽 섬진강을 굽어보는 구간은 거의 허물어져서 돌무더기만 남아있다. 지리산의 험한 산줄기를 뒤에 두고 섬진강이 앞을 가로막는 천연의 요새로서 남해에서 호남 지방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길목이다. 이러한 지형을 이용하여 크고 견고하게 지은 산성이다.

현재 성 안의 특별한 시설물들은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성의 내력에 대해서는 『하동군읍지』가 유일한 자료이다. 이 기록과 성의 위치 및 규모로 보아 신라가 군사적 목적으로 쌓은 것으로 보인다. 600년대 신라백제를 공격할 때 나·당 연합군이 백제의 원군인 왜병의 섬진강 통로를 차단하기 위하여 구축한 성이라는 견해도 있다.[1]

2. 1. 고구려 축성설

최근에는 5세기 전반 고구려 광개토왕이 신라를 거쳐 왜군을 토벌하면서 남하했을 때 쌓은 고구려 계통의 성으로 보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1]

3. 구조

신라 때 돌로 쌓은 산성으로 능선을 따라 5각형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다. 성벽은 네모나게 다듬은 돌과 자연석을 사용하여 견고하게 쌓았다. 산성의 동·북·서·남면은 성벽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있으나, 서남쪽 섬진강을 굽어보는 구간은 거의 허물어져서 돌무더기만 남아있다.

지리산의 험한 산줄기를 뒤에 두고 섬진강이 앞을 가로막는 천연의 요새로서 남해에서 호남지방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길목이다. 이러한 지형을 이용하여 크고 견고하게 지은 산성이다. 성 안의 특별한 시설물들은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성의 내력에 대해서는 『하동군읍지』가 유일한 자료이다. 이 기록과 성의 위치 및 규모로 보아 신라가 군사적 목적으로 쌓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5세기 전반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거쳐 군을 토벌하면서 남하했을 때 쌓은 고구려 계통의 성으로 보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3. 1. 성벽

지리산이 뻗어 내려온 산줄기의 형제봉 중턱 해발 300m 고지에 있다. 성벽 둘레는 약 800m, 높이는 3.5m~4.5m이며, 단면은 사다리형으로 밑면 폭은 6m, 윗면 폭은 2m이다. 가공한 장방형 석재를 써서 견고하게 쌓았고 쪽에 성문 두 개를 설치하였다.

참조

[1] 간행물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지정명칭 변경 및 지정·해제 고시 http://gwanbo.mois.g[...] 문화재청장 2011-07-28
[2] 보고서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 1185번지 일원 내 梁山 架山里遺蹟 Ⅴ. 고찰 https://www.cha.go.k[...] 양산시 2015-09-01
[2] 보고서 대한주택공사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양산석산지구 文化遺蹟 地表調査 報告書 http://www.feaci.or.[...] 대한주택공사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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