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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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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종건은 일제강점기 3·1 운동 참여 후 체포되었으며, 일본 유학 후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조선총독부 경시, 황해도 경찰부 보안과장 등을 역임하며 중일 전쟁에 협력한 공로로 훈장을 받았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 시기 경찰 간부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경찰 및 정치 활동을 했으며, 제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친일 행적으로 인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2. 일제강점기 활동

한종건은 경성부 출신으로, 1919년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일본 유학을 통해 1932년1933년에는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조선총독부 관료 및 경찰 간부로 근무했다. 중일 전쟁 당시 황해도 경찰부 보안과장으로 근무하면서 자경단 조직을 주도하는 등 전쟁에 협력했으며, 조선총독부 세무감독국 사무관, 평안북도 재무부장 등을 역임하며 일제 식민 통치에 기여했다.

2. 1. 3.1 운동 참여와 체포

1919년 3·1 운동에 참여했으며, 중앙중학교 2학년 재학 중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해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고 출소했다.

2. 2. 일본 유학 및 고등문관시험 합격

1919년 3·1 운동에 참가했다가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고 출소했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가나자와 제4고등학교와 교토 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1932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 1933년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했다.

2. 3. 조선총독부 관료 및 경찰 간부 근무

1930년부터 1932년까지 경기도 재무부 세무과 속(屬)으로, 1933년 평안남도 내무부 산업과 속(屬)으로 근무했고, 1934년 평안남도 내무부 산업과 및 지방과에서 근무했다. 1934년 11월 27일 조선총독부 경시로 임명되었으며, 1935년부터 1936년까지 전라북도 경찰부 경무과 및 순사교습소에서 경시로 근무했다. 1936년 10월 16일 황해도 경찰부 보안과장 겸 경시, 순사징계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었고, 1938년 3월 26일 황해도 방공위원회 간사로 임명되었다.

황해도 경찰부 보안과장 겸 경시로 재직 중 중일 전쟁 당시 각종 경제 관련 위반 사건 총 62건을 검거하는 한편, 황해도 내에서 자경단을 조직하고 강화하는 데에 주력했다. 당시 황해도 내에서 결성된 자경단은 총 25,656단, 총 단원 수 196,122명에 달하는 큰 규모였다고 전해진다. 1940년 4월 29일 중일 전쟁에 적극 협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공로(功勞)에 상신되었으며, 1944년 3월 18일 일본 정부로부터 훈6등 서보장을 받았다.

2. 4. 일제 식민 통치 기여

1941년 3월 31일부터 1941년 5월 30일까지 평안남도 경찰부 보안과장, 순사부장 시험위원, 도순사징계위원회 예비위원을 역임했고, 1941년 5월 31일부터 1943년 9월 29일까지 조선총독부 세무감독국 사무관으로 재직하면서 대구세무감독국 서무부장(1941년 4월 31일 임명)과 직세부장(1943년 3월 15일 임명), 소매 및 소득 심사위원회 위원(1943년 4월 12일 임명), 평양세무감독국 직세부장(1943년 9월 30일 임명)을 역임했다.

1943년 12월 1일 평안북도 재무부장으로 임명되었고, 1943년 12월 9일 조선금융조합연합회 평안북도 지부 감리관으로 임명되었다. 1944년 1월 4일 평안북도 자금위원회 위원, 1944년 5월 23일 평안북도 소매 및 소득 심사위원회 위원, 1944년 12월 18일 조선 철도간선 긴급 증강 경성지방연락부 간사, 1945년 2월 4일 전시손해보험 조사위원을 역임했다.

3. 해방 이후 활동

1945년 광복 이후 한종건은 경무국 수사국장, 미군정 경무국 보안국장 등을 역임하며 경찰 간부로 활동했다. 1947년에는 미군정 경무부 차장, 전북경찰청장, 경찰부 공안국장 등을 지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경찰부 공안국장, 전북경찰청장 등을 역임했다. 1950년 제2대, 1957년 제3대,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모두 낙선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남도 함안군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3. 1. 미군정 시기 경찰 간부 활동

1945년 광복 이후 경무국 수사국장, 미군 주둔 후 미군정 경무국 보안국장을 역임했다. 경찰 징계 심의위원이 되어 인천경찰서장 박명제 등의 강등 심의에 참여했고, 1947년 11월 미군정 경무부 차장, 전북경찰청장, 경찰부 공안국장을 역임했다.

3. 2.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경찰 및 정치 활동

광복 이후 경무국 수사국장, 1945년 9월 2일 미군 주둔 후 미군정 경무국 보안국장을 역임했다. 구계운동경기 심의위원, 경찰 징계 심의위원이 되었으며 인천경찰서장 박명제 등의 강등 심의에 참여했다. 1947년 11월 미군정 경무부 차장, 전북경찰청장, 경찰부 공안국장을 역임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총선거함안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1957년 국회의원 총선거에도 입후보했으나 낙선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되어 1960년 7월 29일부터 1961년 5월 16일까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3. 3. 감사원 감사위원 및 변호사 활동

1964년부터 1967년까지 대한민국 감사원 감사위원을 역임했고, 이후 변호사로 활동했다.

4. 친일 행적 논란

조선총독부 사무관, 경시 등으로 근무한 이력으로 인해 친일 논란이 있다. 친일파 708인 명단의 조선총독부 사무관 및 경시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경찰 및 관료 부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5. 역대 선거 결과

연도선거 종류소속 정당득표수 (득표율)순위당락비고
1950년총선무소속자료 없음낙선
1954년총선무소속9,293 (21.96%)2위낙선
1958년총선민주당13,662 (30.42%)2위낙선
1960년총선민주당24,662 (52.86%)1위당선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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