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흥시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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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요
- 2. 일제강점기 행정 구역
- 2.1. 소화동, 동운동, 출운동 권역
- 2.2. 서윤동, 일출동, 춘일동 권역
- 2.3. 산수동, 중앙동, 조일동 권역
- 2.4. 지락동, 금동, 주길동 권역
- 2.5. 낙민동, 유락동, 만세동 권역
- 2.6. 대화동, 성천동, 황금동 권역
- 2.7. 본동, 복부동, 낙동 권역
- 2.8. 용흥동, 반룡대동, 서상동 권역
- 2.9. 신상동, 풍호동, 흥도동 권역
- 2.10. 십이동, 구억동, 회상동 권역
- 2.11. 치마동, 회양동, 상수동, 하수동 권역
- 2.12. 부평동, 경흥동, 심흥동 권역
- 2.13. 군영동, 사포동, 중보동 권역
- 2.14. 신보동, 신흥동, 하신흥동 권역
- 2.15. 서흥동, 당북동, 당흥동 권역
- 2.16. 상보동, 연봉동, 대흥동 권역
- 2.17. 풍동동, 보고동, 신산동 권역
- 3. 해방 이후 행정 구역 변화
- 4. 일제강점기 행정 구역의 특징과 영향
- 5. 해방 이후 지명 복원 노력과 의의
- 참조
1. 개요
함흥시는 일제강점기 일본식 지명이 사용되었고, 해방 이후 한국식 지명으로 변경되는 등 행정 구역 명칭 변화를 겪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소화동, 동운동 등 일본식 지명이 사용되었으며, 이는 한국인의 정체성 혼란과 민족 정체성 훼손을 야기했다. 해방 이후에는 이러한 일본식 지명을 복원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으며, 소화동은 흥덕동과 흥서동으로, 동운동은 흥남동으로 변경되는 등, 많은 동의 명칭이 바뀌었다. 이러한 지명 복원은 일제 잔재 청산과 민족 정체성 회복을 위한 노력으로, 사회적 갈등과 논쟁을 거치며 지역 사회의 통합을 이루는 과정이었다.
해방 이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함흥시 내 많은 동(洞)의 명칭이 변경되었다. 예를 들어, 소화동1~2가(昭和洞1~2街洞)는 각각 흥덕동(興德洞)과 흥서동(興西洞)으로, 동운동(東雲洞)은 흥남동(興南洞)으로, 출운동(出雲洞)은 흥안동(興安洞)으로 변경되었다. 서윤1~2가동(曙潤1~2街洞)은 연흥동(延興洞)과 연상동(延上洞)으로, 일출동(日出洞)은 해안동(海岸洞)으로 바뀌었다.
1914년 일제는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함흥 지역에 일본식 지명을 대거 도입했다. 소화동(昭和洞), 동운동(東雲洞), 출운동(出雲洞), 서윤동(曙潤洞), 일출동(日出洞) 등 일본식 지명은 기존의 한국식 지명을 대체하며 사용되었다. 이러한 일본식 지명 사용은 한국인들의 정체성 혼란을 야기하고 민족 정체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는 일제강점기에 변경된 지명을 복원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전개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단순한 지명 변경을 넘어, 일제 잔재 청산과 민족 정체성 회복이라는 역사적, 사회문화적 의미를 지닌다.
2. 일제강점기 행정 구역
2. 1. 소화동, 동운동, 출운동 권역
소화동1~2가, 동운동, 출운동은 함흥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지역이다. 소화동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식 지명으로 변경된 곳으로, 현재는 소화 1가와 소화 2가로 나뉜다. 동운동은 소화동의 동쪽에 위치하며, 출운동은 동운동의 남쪽에 위치한다. 서윤1~2가동, 일출동, 춘일동1~2가, 산수동1~3가, 중앙동1~3가, 조일동, 지락동, 금동1~2가, 주길동, 낙민동, 유락동, 만세동, 대화동1~4가, 성천동1~4가, 황금동1~4가, 본동1~5가, 복부동1~3가, 낙동, 용흥동, 반룡대동, 서상동, 신상동, 풍호동, 흥도동, 십이동, 구억동, 회상동, 치마동, 회양동, 상수동, 하수동도 이 권역에 속한다. 부평동, 경흥동, 심흥동, 군영동1~2가, 사포동1~3가, 중보동, 신보동, 신흥동, 하신흥동, 서흥동, 당북동, 당흥동, 상보동, 연봉동, 대흥동, 풍동동, 보고동, 신산동등이 있다.
2. 2. 서윤동, 일출동, 춘일동 권역
서윤1~2가동(曙潤1~2街洞), 일출동(日出洞), 춘일동1~2가(春日洞1~2街)는 함흥시의 행정동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소화동1~2가(昭和洞1~2街洞), 동운동(東雲洞), 출운동(出雲洞)등이 이 권역에 해당하였다.
2. 3. 산수동, 중앙동, 조일동 권역
산수동, 중앙동, 조일동은 함흥시의 중심부를 이루는 지역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소화동, 동운동, 출운동, 서윤동, 일출동, 춘일동, 산수동, 중앙동, 조일동, 지락동, 금동, 주길동, 낙민동, 유락동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 지역은 현재 북한 행정구역상으로는 함흥시의 중심부에 해당한다.
2. 4. 지락동, 금동, 주길동 권역
소화동1~2가, 동운동, 출운동, 서윤1~2가동, 일출동, 춘일동1~2가, 산수동1~3가, 중앙동1~3가, 조일동, 지락동, 금동1~2가, 주길동, 낙민동, 유락동, 만세동, 대화동1~4가, 성천동1~4가, 황금동1~4가, 본동1~5가, 복부동1~3가, 낙동, 용흥동, 반룡대동, 서상동, 신상동, 풍호동, 흥도동, 십이동, 구억동, 회상동, 치마동, 회양동, 상수동, 하수동이 이 권역에 포함된다.
2. 5. 낙민동, 유락동, 만세동 권역
낙민동(樂民洞), 유락동(有樂洞), 만세동(萬歲洞)은 일제강점기 함흥부의 행정구역이었다. 낙민동은 소화동1~2가(昭和洞1~2街洞), 동운동(東雲洞), 출운동(出雲洞), 서윤1~2가동(曙潤1~2街洞), 일출동(日出洞), 춘일동1~2가(春日洞1~2街), 산수동1~3가(山手洞1~3街), 중앙동1~3가(中央洞1~3街), 조일동(朝日洞), 지락동(知樂洞), 금동1~2가(錦洞1~2街), 주길동(住吉洞)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유락동은 소화동, 동운동, 출운동, 서윤동, 일출동, 춘일동, 산수동, 중앙동, 조일동, 지락동, 금동, 주길동 등을 포함한다. 만세동은 대화동1~4가(大和洞1~4街), 성천동1~4가(城川洞1~4街), 황금동1~4가(黃金洞1~4街), 본동1~5가(本洞1~5街), 복부동1~3가(福富洞1~3街), 낙동(樂洞), 용흥동(龍興洞), 반룡대동(盤龍臺洞), 서상동(西上洞), 신상동(新上洞), 풍호동(豊湖洞), 흥도동(興島洞), 십이동(十二洞), 구억동(九億洞), 회상동(會上洞), 치마동(馳馬洞), 회양동(會陽洞), 상수동(上水洞), 하수동(下水洞)을 관할했다.
2. 6. 대화동, 성천동, 황금동 권역
대화동 1~4가(大和洞1~4街), 성천동 1~4가(城川洞1~4街), 황금동 1~4가(黃金洞1~4街)는 일제강점기 함흥부의 행정구역이었다. 이 지역에는 본동 1~5가(本洞1~5街), 복부동 1~3가(福富洞1~3街), 낙동(樂洞), 용흥동(龍興洞), 반룡대동(盤龍臺洞), 서상동(西上洞), 신상동(新上洞), 풍호동(豊湖洞), 흥도동(興島洞), 십이동(十二洞), 구억동(九億洞), 회상동(會上洞), 치마동(馳馬洞), 회양동(會陽洞), 상수동(上水洞), 하수동(下水洞)이 있었다.
2. 7. 본동, 복부동, 낙동 권역
본동1~5가, 복부동1~3가, 낙동, 용흥동, 반룡대동, 서상동, 신상동, 풍호동, 흥도동, 십이동, 구억동, 회상동, 치마동, 회양동, 상수동, 하수동이 이 권역에 속한다. 만세동, 대화동1~4가, 성천동1~4가, 황금동1~4가는 본동, 복부동, 낙동 권역에 포함된다. 소화동1~2가, 동운동, 출운동, 서윤1~2가동, 일출동, 춘일동1~2가, 산수동1~3가, 중앙동1~3가, 조일동, 지락동, 금동1~2가, 주길동, 낙민동, 유락동도 이 권역에 해당한다.
2. 8. 용흥동, 반룡대동, 서상동 권역
용흥동, 반룡대동, 서상동은 현재 대한민국 함흥시의 행정 구역이다. 용흥동은 만세동, 대화동 1~4가, 성천동 1~4가, 황금동 1~4가, 본동 1~5가, 복부동 1~3가, 낙동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반룡대동은 신상동, 풍호동, 흥도동, 십이동, 구억동, 회상동, 치마동, 회양동, 상수동, 하수동을 포함한다. 서상동은 소화동 1~2가, 동운동, 출운동, 서윤 1~2가동, 일출동, 춘일동 1~2가, 산수동 1~3가, 중앙동 1~3가, 조일동, 지락동, 금동 1~2가, 주길동, 낙민동, 유락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2. 9. 신상동, 풍호동, 흥도동 권역
반룡대동(盤龍臺洞), 서상동(西上洞), 신상동(新上洞), 풍호동(豊湖洞), 흥도동(興島洞), 십이동(十二洞), 구억동(九億洞), 회상동(會上洞), 치마동(馳馬洞), 회양동(會陽洞), 상수동(上水洞), 하수동(下水洞)이 이 권역에 속한다.
2. 10. 십이동, 구억동, 회상동 권역
십이동(十二洞), 구억동(九億洞), 회상동(會上洞)은 함흥시의 행정 구역이다. 이 지역에는 치마동(馳馬洞), 회양동(會陽洞), 상수동(上水洞), 하수동(下水洞)도 포함된다.
2. 11. 치마동, 회양동, 상수동, 하수동 권역
치마동, 회양동, 상수동, 하수동은 함흥시의 행정 구역이다. 회상동, 치마동, 회양동, 상수동, 하수동이 이 권역에 속해 있다.
2. 12. 부평동, 경흥동, 심흥동 권역
부평동, 경흥동, 심흥동은 군영동1~2가, 사포동1~3가, 중보동, 신보동, 신흥동, 하신흥동, 서흥동, 당북동, 당흥동, 상보동, 연봉동, 대흥동, 풍동동, 보고동, 신산동을 포함한다.
2. 13. 군영동, 사포동, 중보동 권역
군영동1~2가(軍營洞1~2街), 사포동1~3가(沙浦洞1~3街), 중보동(中保洞), 신보동(新保洞), 신흥동(新興洞), 하신흥동(下新興洞), 서흥동(西興洞), 당북동(塘北洞), 당흥동(塘興洞), 상보동(上保洞), 연봉동(蓮峰洞), 대흥동(大興洞), 풍동동(豊東洞), 보고동(保古洞), 신산동(新山洞)이 이 권역에 속한다.
2. 14. 신보동, 신흥동, 하신흥동 권역
신보동, 신흥동, 하신흥동은 함흥시의 행정 구역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중보동(中保洞), 신보동(新保洞), 신흥동(新興洞), 하신흥동(下新興洞), 서흥동(西興洞), 당북동(塘北洞), 당흥동(塘興洞), 상보동(上保洞), 연봉동(蓮峰洞), 대흥동(大興洞), 풍동동(豊東洞), 보고동(保古洞), 신산동(新山洞)이었다.
2. 15. 서흥동, 당북동, 당흥동 권역
서흥동, 당북동, 당흥동은 함흥시의 옛 행정구역 중 일부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사포동(沙浦洞), 서흥동(西興洞), 당북동(塘北洞), 당흥동(塘興洞) 등의 지역이 이 권역에 속했다. 해방 이후, 이 지역들은 북한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여러 동으로 분리 및 통합되었다.
2. 16. 상보동, 연봉동, 대흥동 권역
상보동(上保洞), 연봉동(蓮峰洞), 대흥동(大興洞)은 함흥시의 동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사포동(沙浦洞), 중보동(中保洞), 신보동(新保洞), 신흥동(新興洞), 하신흥동(下新興洞), 서흥동(西興洞), 당북동(塘北洞), 당흥동(塘興洞), 풍동동(豊東洞), 보고동(保古洞), 신산동(新山洞) 등이 이 권역에 해당하였다.
2. 17. 풍동동, 보고동, 신산동 권역
풍동동(豊東洞), 보고동(保古洞), 신산동(新山洞)은 함흥시의 행정동이다.
3. 해방 이후 행정 구역 변화
이 외에도 춘일동1~2가(春日洞1~2街)는 각각 상흥동(尙興洞)과 흥봉동(興峰洞)으로, 산수동1~3가(山手洞1~3街)는 각각 흥성동(興成洞), 흥신동(興新洞), 흥영동(興永洞)으로 변경되었다. 중앙동1~3가(中央洞1~3街)는 각각 해오름동, 빛나라동, 새별동으로, 조일동(朝日洞)은 양지동(陽地洞)으로, 지락동(知樂洞)은 복흥동(福興洞)으로 개칭되었다. 금동1~2가(錦洞1~2街)는 각각 금강동(錦江洞)과 금릉동(錦陵洞)으로, 주길동(住吉洞)은 흥덕동(興德洞)으로, 낙민동(樂民洞)은 인흥동(仁興洞)으로, 유락동(有樂洞)은 복락동(福樂洞)으로 변경되었다.
만세동(萬歲洞)은 만흥동(萬興洞)으로, 대화동1~4가(大和洞1~4街)는 각각 덕흥동(德興洞), 덕산동(德山洞), 덕봉동(德峰洞), 덕암동(德岩洞)으로 바뀌었다. 성천동1~4가(城川洞1~4街)는 각각 성남동(城南洞), 성호동(城湖洞), 성중동(城中洞), 성북동(城北洞)으로, 황금동1~4가(黃金洞1~4街)는 각각 황남동(黃南洞), 황호동(黃湖洞), 황중동(黃中洞), 황북동(黃北洞)으로 변경되었다. 본동1~5가(本洞1~5街)는 각각 본흥동(本興洞), 본안동(本安洞), 본중동(本中洞), 본산동(本山洞), 본양동(本陽洞)으로, 복부동1~3가(福富洞1~3街)는 각각 복동동(福東洞), 복서동(福西洞), 복흥동(福興洞)으로 개칭되었다.
낙동(樂洞)은 낙민동(樂民洞)으로, 용흥동(龍興洞)은 용강동(龍江洞)으로, 반룡대동(盤龍臺洞)은 반룡동(盤龍洞)으로 변경되었다. 서상동(西上洞)은 서흥동(西興洞)으로, 신상동(新上洞)은 신흥동(新興洞)으로, 풍호동(豊湖洞)은 풍해동(豊海洞)으로, 흥도동(興島洞)은 흥양동(興陽洞)으로 개칭되었다. 십이동(十二洞)은 십이흥동(十二興洞)으로, 구억동(九億洞)은 구흥동(九興洞)으로, 회상동(會上洞)은 회흥동(會興洞)으로, 치마동(馳馬洞)은 마흥동(馬興洞)으로 바뀌었다.
회양동(會陽洞)은 양흥동(陽興洞)으로, 상수동(上水洞)은 상흥동(上興洞)으로, 하수동(下水洞)은 하흥동(下興洞)으로 변경되었다. 부평동(富坪洞)은 부흥동(富興洞)으로, 경흥동(慶興洞)은 경안동(慶安洞)으로, 심흥동(深興洞)은 심포동(深浦洞)으로 개칭되었다. 군영동1~2가(軍營洞1~2街)는 각각 영흥동(營興洞)과 영남동(營南洞)으로, 사포동1~3가(沙浦洞1~3街)는 각각 사흥동(沙興洞), 사호동(沙湖洞), 사포동(沙浦洞)으로 변경되었다.
중보동(中保洞)은 중흥동(中興洞)으로, 신보동(新保洞)은 신흥동(新興洞)으로, 하신흥동(下新興洞)은 하포동(下浦洞)으로, 서흥동(西興洞)은 서안동(西安洞)으로 바뀌었다. 당북동(塘北洞)은 당상동(塘上洞)으로, 당흥동(塘興洞)은 당중동(塘中洞)으로, 상보동(上保洞)은 상흥동(上興洞)으로, 연봉동(蓮峰洞)은 연흥동(蓮興洞)으로 개칭되었다. 대흥동(大興洞)은 대동동(大東洞)으로, 풍동동(豊東洞)은 풍호동(豊湖洞)으로, 보고동(保古洞)는 보흥동(保興洞)으로, 신산동(新山洞)은 신흥동(新興洞)으로 변경되었다. 이러한 명칭 변경은 일제 강점기의 잔재를 청산하고 우리 민족 고유의 지명을 되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4. 일제강점기 행정 구역의 특징과 영향
함흥 지역에는 만세동(萬歲洞), 대화동(大和洞), 성천동(城川洞), 황금동(黃金洞), 본동(本洞) 등과 같이 일본식 한자 지명이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이러한 지명들은 단순히 행정 구역의 명칭을 넘어,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억압하고 일본의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했다.
5. 해방 이후 지명 복원 노력과 의의
함흥시의 경우, 소화동(昭和洞), 동운동(東雲洞), 출운동(出雲洞) 등 일본식 지명이 다수 존재했다. 해방 이후 이러한 지명들은 원래의 한국식 지명으로 복원되거나 새로운 지명이 부여되었다. 예를 들어, 산수동(山手洞), 중앙동(中央洞), 조일동(朝日洞) 등은 해방 이후에도 유지되었으나, 다른 많은 지명은 한국식으로 변경되거나 새로 제정되었다.
지명 복원 과정에서는 사회적 갈등과 논쟁도 발생했다. 기존 지명에 익숙한 주민들과 새로운 지명을 사용하려는 사람들 간의 의견 충돌, 역사적 근거와 현실적 편의성 사이의 논쟁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갈등은 지역 사회의 통합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민주적인 절차와 합의를 통해 극복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지명 복원은 단순한 과거 회귀가 아니라, 미래 지향적인 가치를 담고 있다.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역 공동체의 유대감을 강화하며, 나아가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중요한 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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