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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경영권 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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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현대그룹 경영권 다툼은 2000년 정주영 명예회장의 장남 정몽구와 4남 정몽헌 간에 벌어진 그룹의 패권 다툼을 의미한다. 정몽구는 동생 정몽헌의 측근인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기습적으로 교체하며 금융 부문 장악을 시도했으나, 정몽헌의 반격으로 실패했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개입 이후 정몽헌 단독 회장 체제가 승인되었고, 정몽구는 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현대자동차그룹을 분리했다. 이후 현대건설과 현대전자의 위기, 정몽헌 회장의 사망, 현대건설 인수전 등을 거치며 현대그룹은 쇠퇴하고 현대자동차그룹은 성장했다.

2. 사건의 발단

현대그룹 경영권 승계를 둘러싸고 정주영 회장의 장남 정몽구와 4남 정몽헌이 벌인 싸움을 가리키며, 언론에서는 '현대그룹 왕자의 난'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한때 재계 1위에 올랐던 굴지의 대기업인 범 현대가가 해체되어 여러 그룹으로 나뉘는 사태가 초래되었다.[1]

2. 1. 경영권 분쟁의 시작

2000년, 정주영 명예회장의 장남 정몽구 당시 현대그룹 공동 회장과 4남 정몽헌 당시 현대그룹 공동 회장이 그룹의 패권을 놓고 다투게 된다. 정몽구 회장은 정몽헌 회장이 해외 출장을 간 사이 3월 14일 밤 기습적으로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고려산업개발로 전보시켰다. 이익치 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의 최측근이었다.[1]

당시 정몽구 회장은 현대그룹의 자동차 부문을, 정몽헌 회장은 건설·전자 부문을 가져갈 예정이었다. 당시 현대차의 위상은 지금처럼 높지 않았던 반면 현대건설현대전자는 국내 최고 기업들이었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처음부터 경영 능력이 두드러졌던 정몽헌 회장을 특히 아꼈다고 한다. 이에 자동차만으로는 향후 성장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던 정몽구 회장 측은 현대증권으로 대표되는 그룹의 금융 부문을 노리고 동생의 측근인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배제하려 했던 것이다.

2. 2. 이익치 회장 인사 발령

2000년, 정주영 명예회장의 장남인 정몽구 당시 현대그룹 공동 회장과 4남인 정몽헌 당시 현대그룹 공동 회장이 그룹의 패권을 놓고 다투었다. 정몽구 회장은 정몽헌 회장이 해외 출장을 간 사이 3월 14일 밤 기습적으로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고려산업개발로 전보시켰다. 이익치 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의 최측근이었다.[1]

당시 정몽구 회장은 현대그룹의 자동차 부문을, 정몽헌 회장은 건설·전자 부문을 가져갈 예정이었다. 당시는 현대차의 위상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던 반면 현대건설과 현대전자는 국내 최고 기업들이었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처음부터 경영 능력이 두드러졌던 정몽헌 회장을 특히 아꼈다고 한다. 이에 자동차만으로는 향후 성장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던 정몽구 회장 측은 현대증권으로 대표되는 그룹의 금융 부문을 노리고 동생의 측근인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배제하려 했던 것이다.

3. 사건의 전개

2000년 3월 24일, 정몽헌 회장은 귀국하여 정주영 명예회장의 측근들을 모아 정몽구 회장의 현대그룹 공동회장직을 박탈했다.[2] 3월 26일, 정몽구 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을 만나 회장직 복귀 명령을 받아냈으나, 몇 시간 후 정몽헌 회장 측이 다시 이 명령을 무효화시켰다.[2]

3. 1. 정몽헌 회장의 반격

정몽헌 회장은 2000년 3월 24일 귀국하여 자신과 정주영의 측근인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 김재수 현대그룹 구조조정본부장 등을 모아 이익치 회장의 인사 발령을 무효화하고 정몽구 회장의 현대그룹 공동회장직을 박탈하였다.[2] 정몽구 회장은 3월 26일 아버지인 정주영 명예회장을 만나 회장직 복귀 명령을 받아내지만, 몇 시간 뒤 정몽헌 회장과 그의 측근들이 정주영 명예회장을 만나 다시 그 명령을 무효화시켰다. 당시 정주영 명예회장은 고령으로 판단력이 흐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2]

3. 2. 정주영 명예회장의 개입

정몽헌 회장은 2000년 3월 24일 귀국하여, 자신과 아버지 정주영 명예회장의 측근인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 김재수 현대그룹 구조조정본부장 등을 모아 이익치 회장의 인사 발령을 무효화하고 정몽구 회장의 현대그룹 공동회장직을 박탈한다.[2] 3월 26일 정몽구 회장은 아버지 정주영 명예회장을 만나 회장직 복귀 명령을 받아내지만, 몇 시간 뒤 정몽헌 회장과 그의 측근들이 정주영 명예회장을 만나 다시 그 명령을 무효화시킨다.[2] 당시 정주영 명예회장은 고령으로 판단력이 흐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2]

4. 사건의 결말

2000년 3월 27일 정주영 명예회장이 현대경영자협의회에서 ‘정몽헌 단독 회장 체제’를 공식 승인하면서 왕자의 난은 정몽헌 회장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2] 이후 정몽구 회장은 현대자동차를 포함한 자동차 관련 계열사들을 이끌고 현대그룹에서 독립하여 현대자동차그룹을 설립하였다.

4. 1. 정몽헌 회장 단독 체제

정주영 명예회장이 2000년 3월 27일 현대경영자협의회에서 ‘정몽헌 단독 회장 체제’를 공식 승인하면서 왕자의 난은 정몽헌 회장의 승리로 마무리되고,[2] 정몽구 회장은 8월 현대자동차와 기타 자동차 관련 계열사들을 가지고 현대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를 실시해 현대자동차그룹을 만든다.

4. 2. 현대자동차그룹의 분리

정주영 명예회장이 2000년 3월 27일 현대경영자협의회에서 ‘정몽헌 단독 회장 체제’를 공식 승인하면서 왕자의 난은 정몽헌 회장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2] 정몽구 회장은 2000년 8월 현대자동차와 기타 자동차 관련 계열사들을 가지고 현대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를 실시해 현대자동차그룹을 만들었다.

5. 사건 이후

현대그룹 경영권 다툼 이후, 현대그룹은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다.

2000년대 초, 주력 계열사였던 현대건설과 현대전자가 부도 위기를 겪으며 채권단에 넘어갔다. 2003년에는 정몽헌 회장이 대북 송금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투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정몽헌 회장의 배우자인 현정은 회장이 그룹 회장직을 맡게 되었다.

2010년에는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범 현대가 기업들이 다시 충돌했다. 현대그룹현대건설 인수를 통해 그룹의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했으나, 자금 조달 능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며 인수전에서 실패했다.[3]

결과적으로 현대건설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되었고, 현대그룹은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마저 채권단에 넘어가면서 중견기업으로 전락했다.

5. 1. 현대그룹의 위기

경영권 다툼은 4남 정몽헌 회장의 승리로 일단락되는 듯 보였으나, 현대그룹의 모기업이자 상징인 현대건설이 2000년 10월 1차 부도를 맞고 휘청거리다 결국 2001년 8월 채권단으로 넘어갔다. 현대전자도 외환위기 당시 LG반도체를 무리하게 인수했다가 2000~2001년 반도체 시장이 불황을 맞자 10조의 빚을 지고 결국 채권단으로 넘어가 버렸다. 정몽헌 회장 본인도 아버지의 숙원사업이었던 대북사업과 관련해 4.5억달러(약 5000억)를 북한에 은밀히 송금한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되는 등 여러 악재가 겹치자 2003년 8월 4일 서울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사옥 12층 회장실에서 투신 자살하고 만다. 현재 현대그룹의 회장은 정몽헌 회장의 배우자인 현정은 회장이다.

5. 2. 정몽헌 회장의 사망

경영권 다툼은 4남 정몽헌 회장의 승리로 일단락되는 듯 보였으나, 현대그룹의 모기업이자 상징인 현대건설이 2000년 10월 1차 부도를 맞고 휘청거리다 결국 2001년 8월 채권단으로 넘어갔다. 현대전자도 외환위기 당시 LG반도체를 무리하게 인수했다가 2000~2001년 반도체 시장이 불황을 맞자 빚 10조을 지고 결국 채권단으로 넘어가 버렸다. 심지어 정몽헌 회장 본인도 아버지의 숙원사업이었던 대북사업과 관련해 4.5억달러(약 5000억)를 북한에 은밀히 송금한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되는 등 여러 악재가 겹치자 2003년 8월 4일 서울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사옥 12층 회장실에서 투신 자살하고 만다. 현재 현대그룹의 회장은 정몽헌 회장의 배우자인 현정은 회장이다.

5. 3. 현대건설 인수전

2010년, 범 현대가의 기업들은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다시 충돌했다. 현대건설정주영 회장 생전 범 현대그룹의 모기업이었기에, 현대그룹현대자동차그룹은 정통성 확보를 위해 인수를 원했다.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이 높은 입찰가를 제시하여 우선 협상 대상자가 되었으나, 자금 조달 능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며 지위를 박탈당했다.[3]

5. 3. 1. 인수전 결과

현대건설 인수전은 정주영 회장 생전 범 현대그룹의 모기업이었던 현대건설을 인수하기 위한 경쟁이었다. 현대그룹현대자동차그룹은 범 현대그룹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서로 인수하고자 했다.[3]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이 자금력에서 열세였음에도 더 높은 입찰가를 제시해 우선 협상 대상자가 되었으나, 언론과 정치권에서 자금 조달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등 석연치 않은 이유로 우선 협상 대상자 지위가 박탈되었다.[3] 결국 현대건설정몽구 회장의 현대자동차그룹이 인수하게 되었다.

2016년 10월 기준으로 현대자동차는 재계 2위, 현대중공업은 8위였다. 현대그룹은 핵심 계열사 현대상선이 채권단으로 넘어가면서 재계 30위로, 공정거래법상 대규모기업집단의 기준인 자산가치 5조 원에도 들지 못하는 중견기업으로 전락하였다.

참조

[1] 뉴스 "[재벌 경영권 골육상쟁]정몽구vs정몽헌 현대 '형제의난' 계열분리로" http://m.news.naver.[...] 에너지경제 2015-10-15
[2] 뉴스 "[정몽구 현대 회장이 물러나...정몽헌회장 체제로" https://news.naver.c[...] 한국경제 2000-03-24
[3] 뉴스 현대그룹, 현대건설 인수 무산 https://n.news.naver[...] 2010-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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