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 무장 탈영병 총격 난동사건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혜화동 무장 탈영병 총격 난동 사건은 1993년 4월 19일, 육군 일병 임채성이 K1A 기관단총과 수류탄으로 무장 탈영하여 서울 종로구 혜화동 일대에서 총기를 난사한 사건이다. 임채성은 군부대에서 탈영 후 시민을 납치하고 총격을 가해 1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인질극을 벌이다가 수도방위사령부 헌병특수임무대에 의해 검거되었다. 이 사건으로 군 및 경찰 지휘부가 문책되었으며, 임채성은 과거에도 문제 소지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1993년 4월 19일, 임채성 일병은 강원도 철원군 육군 모 부대에서 K1A 기관단총, 실탄, 수류탄 등으로 무장 탈영하여 서울로 잠입했다.[1] 혜화동에서 경찰의 정차 명령에 불응, 총기를 난사하여 민간인과 경찰에게 피해를 입혔고, 민가에 수류탄을 투척하기도 했다.[1] 이후 수도방위사령부 특별경호대에 의해 검거되었다.[1]
이 사건으로 군과 경찰은 관련자들에게 징계 및 인사 조치를 내렸다.[3] [4] [5] 임채성 일병은 군 복무 부적응자로, 이전에도 탈영 및 금품 갈취 등의 전과가 있었다.[2]
2. 사건 개요
2. 1. 탈영 및 초기 범행
범인 '''임채성 일병'''은 1993년 4월 19일 새벽 3시 40분쯤 강원도 철원군 육군 모 부대에서 K1A 기관단총과 실탄 130발, 수류탄 22발을 갖고 무장탈영을 감행하였다.[1] 이후 철원군 근남면에서 주민 1명을 납치, 피해주민 소유의 봉고 승합차로 경기도 남양주군과 중부고속도로를 경유하여 서울로 잠입하였다.[1] 같은 날 오전 11시 35분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잠입한 '''임채성 일병'''은 경찰의 정차 명령에 불응, 사방에 총기를 난사하여 3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1]
2. 2. 서울 진입 및 총기 난사
범인 '''임채성 일병'''은 1993년 4월 19일 새벽 3시 40분쯤 강원도 철원군 육군 모 부대에서 K1A 기관단총과 실탄 130발, 수류탄 22발을 갖고 무장 탈영했다. 철원군 근남면에서 주민 1명을 납치, 피해주민 소유의 봉고 승합차로 경기도 남양주군과 중부고속도로를 거쳐 서울로 잠입했다. 이날 오전 11시 35분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잠입한 '''임채성 일병'''은 경찰의 정차 명령에 불응, 사방에 총기를 난사하여 3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그 후 차를 버린 '''임채성 일병'''은 지나가던 행인을 인질로 잡아 협박하면서 주변에 총기를 난사했고, 이 가운데 오토바이를 타고 야채 배달을 가던 시민을 총기로 살해했다. 또 명륜동 1가에 있던 민가에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하여 가정부를 다치게 했다. 결국 군경 합동팀에 쫓기던 '''임채성 일병'''은 살려달라며 애원하는 인질 피해자의 가슴에 총을 쏘고 지나가던 승합차를 납치하여 인질을 태우고 도주하려다 오후 12시 4분쯤 수도방위사령부 특별경호대 요원들의 사격을 받아 검거되었다.[1]
2. 3. 검거 과정
1993년 4월 19일 새벽 3시 40분쯤, 강원도 철원군 육군 모 부대에서 '''임채성 일병'''이 K1A 기관단총과 실탄 130발, 수류탄 22발을 갖고 무장 탈영했다.[1] 임 일병은 철원군 근남면에서 주민 1명을 납치, 피해 주민 소유의 봉고 승합차로 경기도 남양주군과 중부고속도로를 경유하여 서울로 잠입했다.[1]
같은 날 오전 11시 35분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잠입한 임 일병은 경찰의 정차 명령에 불응하고 사방에 총기를 난사하여 3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1] 차를 버린 임 일병은 지나가던 행인을 인질로 잡아 협박하면서 주변에 총기를 난사했고, 오토바이로 야채 배달을 가던 시민을 총으로 살해했다.[1] 또한 명륜동 1가에 있던 민가에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하여 가정부를 다치게 했다.[1]
군경 합동팀에 쫓기던 임 일병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인질의 가슴에 총을 쏘고, 지나가던 승합차를 납치하여 인질을 태우고 도주하려다 오후 12시 4분쯤 수도방위사령부 특별경호대 요원들의 사격을 받고 검거되었다.[1]
3. 사건 여파
3. 1. 군의 대응 및 징계
임채성 일병은 군 복무 부적응자로, 단기부사관 장학생으로 육군부사관학교에서 부사관후보생 교육 중 탈영하여 자수, 육군 병으로 재입대 조건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다. 학창 시절에는 금품 갈취 비행도 저질렀다.[2]
이 사건으로 해당 사단장과 군단 군사경찰대장이 보직 해임되었고, 소속 중대장 등 4명은 구속되어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3]
3. 2. 경찰의 대응 및 징계
경찰청은 이 사건과 관련하여 당시 서울경찰청장에게 서면 경고 처분을 내렸으며, 근무 태만자에 대한 엄중 처벌 방침을 밝혔다.[4] 총경급 경찰 간부 역시 이 책임을 물어 인사 조치를 받았다.[5]
4. 인명 피해
이 사고로 피해 지역 근처에서 야채상을 하던 50대 가장이 사망하고 7명의 시민들이 총상을 입었다.[1] 사망자는 5남매를 둔 가장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1]
참조
[1]
뉴스
행인(행인)에 마구 총질 「狂亂(광란) 30분」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93-04-20
[2]
뉴스
지난해 탈영뒤 자수하기도…입대직전 학생금품 뜯어 임 일병 과거행적
http://newslibrary.n[...]
한겨레신문
1993-04-20
[3]
뉴스
15사단장-5군단 헌병대장 보직해임 탈영병 난동 문책…중대장등 4명구속
http://newslibrary.n[...]
한겨레신문
1993-04-21
[4]
뉴스
서울경찰청장 경고 총기난동,8명문책
http://newslibrary.n[...]
경향신문
1993-04-22
[5]
뉴스
탈영병 총기난동 문책 총경급7명 전보-징계
http://newslibrary.n[...]
경향신문
1993-05-01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