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헤 기옌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호르헤 기옌은 스페인의 시인, 문학 평론가, 번역가로, 1893년 바야돌리드에서 태어나 1984년 말라가에서 사망했다. 마드리드 대학교에서 철학 학위를, 파리 대학교 소르본에서 강사직을, 옥스퍼드 대학교와 세비야 대학교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스페인 내전 이후 미국으로 망명하여 웰즐리 칼리지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1976년 미겔 데 세르반테스 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시집 《칸티코》, 《클라모르》, 《오마주》 등이 있으며, 폴 발레리의 《바다 묘지》 등을 번역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웰즐리 대학교 교수 - 애니 점프 캐넌
애니 점프 캐넌은 미국의 천문학자로, 하버드 천문대에서 별의 스펙트럼을 분류하고 하버드 분류 체계 개발에 기여했으며, 헨리 드레이퍼 목록 완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수많은 변광성과 신성을 발견하여 천문학 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다. - 웰즐리 대학교 교수 - 앨리스 워커
앨리스 워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의 삶과 인종, 성차별 문제를 다룬 작품과 '우먼니즘' 창안, 사회 운동 참여로 알려진 미국의 소설가, 시인, 여성주의 운동가이며, 소설 《컬러 퍼플》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최초의 흑인 여성이다. - 미겔 데 세르반테스 상 수상자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페루 출신의 소설가이자 정치인, 에세이스트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영웅의 시대』, 『녹색 저택』, 『대성당에서의 대화』 등의 작품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부흥을 이끌었으며 페루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자유주의적 견해를 피력하며 201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 미겔 데 세르반테스 상 수상자 - 후안 카를로스 오네티
우루과이 소설가이자 언론인인 후안 카를로스 오네티는 절망, 고독, 부조리한 인간 존재를 탐구하는 작품 세계로 알려져 있으며, 우루과이 국가 문학상과 세르반테스 상을 수상했고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몬테비데오에서 운영되고 있다. - 스페인의 시인 - 파블로 피카소
파블로 피카소는 스페인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입체파 화가이자 조각가로서 조르주 브라크와 함께 입체주의 미술 양식을 창시했으며 《아비뇽의 처녀들》, 《게르니카》 등의 대표작과 함께 회화, 조각, 판화, 도자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방대한 작품을 남긴 20세기 최고의 예술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 스페인의 시인 - 미겔 데 우나무노
미겔 데 우나무노는 1864년 스페인에서 태어나 소설 『안개』 등을 통해 실존주의적 사상을 표현하고 살라망카 대학교 총장을 역임했으며, 스페인 내전 발발 초기 프랑코를 지지했으나 이후 반대하여 가택 연금 상태에서 사망했다.
호르헤 기옌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본명 | 호르헤 기옌 알바레스 |
출생지 | 스페인 바야돌리드 |
사망지 | 스페인 말라가 |
![]() | |
가족 | |
배우자 | – |
자녀 | 클라우디오 기옌, 테레사 길먼 (결혼 전 성은 기옌) |
경력 | |
직업 | 시인 |
국적 | 스페인 |
수상 | |
수상 내역 | 미겔 데 세르반테스 상 국제 알폰소 레예스 상 안달루시아가 가장 좋아하는 아들 올린 욜리츠틀리 상 |
2. 생애
호르헤 기옌은 페드로 살리나스와 비슷한 삶을 살았다. 1917년부터 1923년까지 파리 대학교에서 스페인어 강사로 일하며 살리나스의 뒤를 이었다. 1921년 파리에서 제르멘 카헨을 만나 결혼했고, 두 자녀를 두었다. 아들 클라우디오는 저명한 비평가이자 비교 문학 학자가 되었고, 딸 테레사는 하버드 대학교 교수 스티븐 길먼과 결혼했다.
1936년 7월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바야돌리드로 돌아왔으나, 정치적인 이유로 팜플로나에 잠시 수감되었다.[10][11] 1938년 7월까지 세비야에 머물다가, 아내와 두 자녀와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 스페인의 혼란과 더불어 아내가 유대인이었다는 사실도 망명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12]
1941년부터 1957년 은퇴할 때까지 웰즐리 칼리지에서 살리나스와 함께 스페인어 교수로 재직했다.[13] 은퇴 후 이탈리아로 이주했고, 1958년 피렌체에서 1947년 사망한 첫 번째 아내 대신 이레네 모치-시스몬디와 결혼했다. 하버드, 프린스턴, 푸에르토리코에서 강연을 계속했고, 1970년 엉덩이 부상 전까지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스페인어 멜론 교수로 잠시 재직했다. 1976년 말라가로 이주했다.
1976년 스페인어 작가에게 수여되는 가장 권위 있는 상인 미겔 데 세르반테스 상을 수상했고, 1977년 알폰소 레이예스 국제상을 수상했다. 1984년 말라가에서 91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세인트 조지 영국 묘지에 안장되었다.
2. 1. 유년 시절과 교육
호르헤 기옌은 바야돌리드에서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냈다. 1909년부터 1911년까지 스위스에서 살았으며, 마드리드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레시덴시아 데 에스투디안테스에 기거했다. 그라나다 대학교에서 1913년 철학 학위를 취득했다.[2] 1917년부터 1923년까지 파리 대학교의 소르본 대학교에서 스페인어 강사로 일했으며, 1921년 그곳에서 제르멘 카헨과 만나 결혼했다. 슬하에 두 자녀를 두었는데, 아들 클라우디오는 저명한 비평가이자 비교 문학 학자가 되었고, 딸 테레사는 하버드 대학교 교수 스티븐 길먼과 결혼했다.1924년, 공고라의 장시 폴리페모에 관한 논문으로 마드리드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3] 이 시기에 그의 첫 시가 ''에스파냐''와 ''라 플루마''에 게재되기 시작했다.[4] 1925년부터 1929년까지 무르시아 대학교에서 스페인 문학 교수로 재직하며, ''베르소 이 프로사''라는 문예 잡지를 창간하고 편집했다.
라파엘 알베르티,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와 같은 세대의 젊은 작가들과 교류했다. 특히 로르카와는 정기적으로 서신을 주고받았으며, 1926년 4월 바야돌리드 예술 클럽에서 로르카의 시 낭송을 소개하기도 했다.[5] 또한 공고라 삼백주년 기념 행사에 참여하여 자신의 시를 낭송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6] 1929년부터 1931년까지 옥스퍼드 대학교 강사를 역임했고, 1932년 세비야 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2. 2. 프랑스에서의 활동과 결혼
호르헤 기옌은 1917년부터 1923년까지 파리에 있는 파리 대학교에서 스페인어 강사로 일했다.[2] 1921년 파리에서 제르멘 카헨을 만나 결혼했다.[2] 이들 부부는 두 자녀를 두었는데, 아들 클라우디오는 1924년에 태어나 저명한 비평가이자 비교 문학 학자가 되었고, 딸 테레사는 하버드 대학교 교수 스티븐 길먼과 결혼했다.[2]2. 3. 스페인에서의 교수 생활과 문단 활동
바야돌리드에서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낸 기옌은 1913년 그라나다 대학교에서 철학 학위를 취득했다.[2] 1917년부터 1923년까지 파리 대학교의 소르본 대학교에서 스페인어 강사로 근무했다. 1924년에는 공고라의 장시 폴리페모에 관한 논문으로 마드리드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3] 이 시기에 그의 첫 시가 ''에스파냐''와 ''라 플루마''에 게재되기 시작했다.[4]1925년부터 1929년까지 무르시아 대학교의 스페인 문학 교수로 재직하며, 문예 잡지 ''베르소 이 프로사''를 창간하고 편집했다. 그는 레시덴시아 데 에스투디안테스를 방문하며 라파엘 알베르티,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등 젊은 세대 문인들과 교류했다. 특히 로르카와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그의 시 낭송회에서 소개를 맡기도 했다.[5]
1929년부터 1931년까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강사로 활동했고, 1932년 세비야 대학교 교수로 임명되었다. 1933년에는 로르카의 연극 ''피의 결혼'' 초연과 로르카가 이끄는 극단 ''라 바라카''의 공연에 참석했다.[7][8] 1936년 7월에는 로르카가 살해되기 직전 마지막으로 만난 파티에 참석하여 로르카의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낭독을 들었다.[9]
1936년 스페인 내전 발발 직후, 기옌은 정치적인 이유로 팜플로나에 잠시 수감되었다.[10][11]
2. 4. 스페인 내전과 망명
스페인 내전이 발발한 1936년 7월, 기옌은 바야돌리드로 돌아왔으나 정치적인 이유로 팜플로나에 잠시 수감되었다.[10][11] 그는 세비야로 돌아와 1938년 7월까지 머물렀다. 이후 스페인 내 혼란스러운 상황과 아내가 유대인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아내 및 두 자녀와 함께 미국으로 망명하기로 결정했다.[12]2. 5. 미국에서의 활동과 말년
1936년 스페인 내전 발발 이후, 기옌은 웰즐리 칼리지에서 페드로 살리나스와 합류하여 1941년부터 1957년 은퇴할 때까지 스페인어 교수로 재직했다.[13] 이탈리아로 은퇴한 후, 1958년 피렌체에서 1947년에 사망한 첫 번째 아내 제르멘 카헨 대신 이레네 모치-시스몬디와 결혼했다. 그는 하버드, 프린스턴, 푸에르토리코에서 계속 강연을 했고, 1970년에 엉덩이를 다쳐 쓰러지기 전까지 피츠버그 대학교의 스페인어 멜론 교수로 잠시 재직했다. 1976년 말라가로 이주했다.1976년, 기옌은 스페인어 작가에게 수여되는 가장 권위 있는 상인 미겔 데 세르반테스 상을 수상했고, 1977년에는 알폰소 레이예스 국제상을 수상했다. 그는 1984년 말라가에서 91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세인트 조지 영국 묘지에 묻혔다.
3. 주요 작품 분석
호르헤 기옌의 주요 작품은 그의 시적 세계관과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는 중요한 문학적 성취로 평가받는다. 그의 대표작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칸티코(Cántico)》'''(1928-1950): 현실에 대한 긍정과 조화로운 세계관을 담은 시집으로, 1928년 초판(75편)부터 1950년 최종판(334편)까지 네 번에 걸쳐 증보되었다. 초기에는 순수시의 영향을 받아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경향을 보였으나, 점차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을 담아내며 세계와의 교감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클라모르(Clamor)》'''(1957-1963): 《칸티코》와는 대조적으로, 불안과 고독, 죽음에 대한 성찰 등 어두운 현실 인식을 담은 시집이다. 《마레마그눔》(1957), 《바다에 이르게 될 것이다》(1960), 《상황에 맞춰》(1963) 세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마주(Homenaje)》'''(1967): 다양한 인물, 사건, 예술 작품에 대한 헌사를 담은 시집으로, 기옌의 폭넓은 관심사와 문학적 교류를 보여준다.
'''기타 작품''':
제목 | 출판 연도 | 출판사 및 장소 |
---|---|---|
멜리베아의 과수원 | 1954년 | Ínsula, M. |
새벽과 깨어남에 관하여 | 1956년 | 바야돌리드 |
라사로의 장소 | 1957년 | Col. A quien conmigo va, 말라가 |
자연사 | 1960년 | Papeles de Sons Armadans, 팔마 데 마요르카 |
안토니오의 유혹 | 1962년 | Graf. Hermanos Bedia, 피렌체/산탄데르 |
시간에 따라서 | 1962년 | Editorial Universitaria, 푸에르토리코 |
우리들의 공기: 칸티코, 클라모르, 오마주 | 1968년 | AllInsegna del Pesce doro, 밀라노 |
시민 화환 | 1970년 | Halty Eferguson, 캠브리지 |
여백에서 | 1972년 | Visor, M. |
그리고 다른 시들 | 1973년 | Muchnik, Bs. As. |
공존 | 1975년 | Turner, M. |
결말 | 1981년 | Barral, B. |
표현 | 1981년 | Sociedad de Cultura Valle-Inclán, 페롤 |
공중의 말과 다른 시들 | 1999 |
3. 1. 《칸티코(Cántico)》
기옌의 시집 《칸티코(Cántico)》는 1928년 초판(75편)을 시작으로 1936년 판(125편), 1945년 판(270편), 1950년 최종판(334편)까지 총 네 번에 걸쳐 증보되며 완성되었다. 이 시집은 현실에 대한 긍정과 탐구를 바탕으로 점차 확장되고 심화되는 세계관을 보여준다.기옌은 파리에서 폴 발레리의 영향을 받아 순수시의 이상을 추구했지만, 동시에 현실과의 교감을 중시하는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현상학적 관점을 받아들였다.[17][18][22][23] 이는 《칸티코》에서 현실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그 속에서 보편적인 의미를 발견하려는 시도로 나타난다. 초기 시들은 비인격적이고 추상적인 경향을 보였으나, 후기 시로 갈수록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이 드러나며, 도시, 역사, 인간관계 등 다양한 주제를 포괄한다.
《칸티코》는 기옌의 시적 여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20세기 스페인 문학의 중요한 성취로 평가받는다.
3. 1. 1. 1928년 초판
기옌은 25세였던 1919년 파리에 있을 때 시를 쓰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10년 동안 그는 당시 소규모 잡지에 자주 시를 게재했고, 다마소 알론소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를 포함한 동시대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14] 1923년 초 페드로 살리나스는 그에게 시집 출판을 권했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오랜 준비 기간을 통해 완벽을 추구하는 열망과 타고난 신중함이라는 그의 두 가지 주요 특징이 드러난다. 그는 이 세대 주요 인물 중 마지막으로 시집을 낸 사람이었는데, 1928년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편집한 ''레비스타 데 오시덴테''(Revista de Occidente)에 75편의 시를 모은 초판 ''칸티코''가 출판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5세였다.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와의 서신을 보면 그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는데, 이미 쓰고 출판한 시를 몇 달 동안 다듬고, 수정하고, 교정하여 처음 대중에게 공개되었을 때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15] 명확성과 일관성이 그의 주요 목표였지만, 노골적인 자기 노출과 어떤 종류의 감상주의도 피하고 싶어하는 듯했다. 1928년 12월 27일 기옌에게 보낸 로르카의 엽서는 그의 시에 대한 대부분의 비평적 반응을 지배하는 요소, 즉 그의 시가 포착하려는 현실에 대한 환희에 찬 육체적인 찬미와 극도로 기술적인 순수함 사이의 대립(이는 차갑고 지나치게 지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을 포착한다.[16]
3. 1. 2. 1936년 판
호세 베르가민이 편집한 잡지 ''크루스 이 라야''는 1936년에 125편의 시를 담은 ''칸티코'' 다음 판을 출판했다. 알베르티, 가르시아 로르카, 알레익산드레, 세르누다 등 기옌 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1920년대 말에 어떤 형태의 위기를 겪었지만, 기옌의 시에 대한 접근 방식에는 개인적인 격변이나 급진적인 변화의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초판에 담긴 현실에 대한 접근 방식이 더 심화되었다. 현실은 잠재적으로 완벽하며, 오르테가가 ''명상''에서 설명했듯이, 현실이 요구하는 것은 그것을 완전한 효능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관찰자의 적극적인 참여뿐이다.[3]새로운 시들 중 일부는 길이가 길다는 점에서 스타일적 발전이 있었다. "봄의 구원"은 55개의 4행 연구(220행)에 달하고, 이 컬렉션의 첫 번째 책이 된 "그 너머"는 50개의 4행 연구로 구성되어 있다. "날아오르는 바람"과 "추방자"와 같이 길이가 40-50행 정도 되는 중간 길이의 시도 더 많으며, 이 시들의 대부분은 기옌이 옥스퍼드에 거주하는 동안 쓰여지거나 시작되었다. 이 컬렉션은 5개의 섹션으로 그룹화되어 있으며, 종종 이러한 긴 시로 시작하고 끝나므로 형식적으로 더 만족스러운 형태를 갖추고 있다. 운율도 더욱 다양해졌다. ''로망스''가 훨씬 많아졌고(짝수 행에 유사성을 가진 8음절 행), 기옌은 소네트를 쓰기 시작했으며, 더 긴 행과 긴 시의 유사 4행 연구를 도입했다.[3]
더 긴 시는 불가피하게 덜 추상적이고 비인격적이지만, 시에 대한 그의 접근 방식과 실제로 단절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나의 대상이나 소수의 대상에 집중하는 대신, 더 긴 시는 외부 현실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다. 황홀경의 섬광 대신, 충만과 본질에 대한 추구는 계속되는 탐구이다. 시는 일화적인 내러티브를 계속해서 피하지만, 더 긴 시의 더 큰 상황적, 시간적 정의는 이 판에 현실 세계와의 인간적인 접촉에 대한 향상된 인식을 제공한다. 사랑("봄의 구원")과 죽음("멀리서의 죽음")과 같은 큰 주제에 대한 훨씬 더 자세한 검토가 이루어지지만, 시인은 죽음에 대해 매우 초연한 관점을 취한다. 언젠가는 죽음이 찾아올 것이고, 그때까지는 현재의 삶을 즐길 수 있다.[3]
"추방자"와 같은 새로운 시 중 일부에는 월트 휘트먼의 제사가 있다. 그는 프랑스에서 지내는 동안 휘트먼을 접했을 수 있지만, 그의 관심은 옥스퍼드 시절에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휘트먼의 시와 오르테가의 사상은 ''명상''에서 나온 그의 유명한 공식 ''나는 나 자신과 내 환경이다''에서 구체화된다. 즉, ''나는 내 개별적인 자아와 나를 둘러싼 것/내가 인식하는 것의 합이다''. 이것은 아마도 그가 1931년 옥스퍼드에서 시작한 "날아오르는 바람"에서 가장 완벽하게 설명될 것이다. 그것은 기옌의 스타일적 특징 중 하나인 감탄문의 사용에 대한 명확한 예이다. 시의 모든 것이 감탄문이며, 그는 강한 바람에 시달리는 것에 거의 어린아이 같은 기쁨을 보여준다.[3]
3. 1. 3. 1945년 판
기옌의 삶에는 1945년 멕시코에서 다음 판의 《칸티코(Cántico)》를 출판하기 전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 책은 270편의 시로 크기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독자들은 친구 가르시아 로르카의 의문스러운 죽음, 스페인 내전, 미국으로의 망명, 제2차 세계 대전과 같은 사건들이 기옌의 시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예상할 것이다. 특히 망명은 그에게 큰 타격을 준 것으로 보이는데, 그는 영어를 잘 못했고, 스페인적 배경에 매우 애착을 가졌기 때문이다.[28] 그러나 그의 시에 나타나는 자전적 언급은 여전히 파악하기 어렵다. 이 판본에는 고통과 죽음을 다루는 시의 수가 증가했다. 그는 또한 새롭고 다른 방식으로 극단을 오간다. 어떤 시는 그의 가치를 강력하게 긍정하는 반면, 다른 시는 이전보다 훨씬 더 명상적이고 평온하다. 초기 판본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 집, 가족 생활, 우정, 부모됨과 같은 단순한 가정적 즐거움을 다루는 시도 있다.스타일상의 혁신도 있다. 《언어와 시(Language and Poetry)》에서 강의 중 하나는 기옌이 그의 겸손함과 신앙심을 존경했던 중세 시인 곤살로 데 베르세오의 산문적인 언어에 관한 것이다. "균형(Equilibrio)"이라는 시에는 이전 시에 비해 간결한 구문이 나타나는데, 이는 그가 이를 모방하려 함을 암시하는 듯하다. "도시 생활(Vida urbana)"과 같이 기옌이 현재 이질적인 환경에서 살고 있다고 느끼는 것을 시사하는 시도 있다.[29]
고통과 고뇌라는 주제도 나타난다. "정말 고마워요, 안녕(Muchas gracias, adiós)"과 같이 때로는 고통이 충만함을 깨닫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때로는 고통과 죽음에 대한 인식이 시인에게 삶을 위해 싸우는 것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줄 수 있다. 《칸티코(Cántico)》에는 자전적인 언급이 거의 없지만, 이 판본에서는 1947년 아내의 죽음 전 그녀의 장기적인 질병과 잦은 병원 방문, 그리고 시인 자신의 건강 악화에 대한 언급을 엿볼 수 있다. "그녀의 인격(Su persona)"에서 그는 외로움은 함께 나눴던 기쁨의 기억에 의존해서 극복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단지 환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신, 현실에 직면하여 그 안에 존재하는 좋은 점을 찾아야 한다. 이 판본에서 기옌은 현실에는 어두운 면이 있지만, 이에 저항할 수 있으며 저항해야 한다고 단언한다.[30]
3. 1. 4. 1950년 최종판
1950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출판된 최종판은 334편의 시를 담고 있다. 새로 추가된 시 중에는 기옌의 명료함과 일관성 탐구를 보여주는 10편의 매우 긴 시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A vista de hombre"는 뉴욕의 한 호텔에서 시작되었으며, 마천루에서 바라본 이름 없는 대도시의 풍경을 다룬다. 이 시는 시인이 이 도시에 살고 일하는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켜, 시인이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가르시아 로르카가 쓴 ''뉴욕의 시인''이나 다른 시들과 달리, 이 도시는 비인간적이고, 차갑고, 추상적이지 않다. 강조점은 이 도시가 품고 있는 인간의 대중에 있다.[31] 이 도시는 선과 악, 인간의 영웅적인 노력과 야만성의 혼합체이며, 이해할 수 없을 때조차 전체적으로 포용해야 하는 현실이다. 시인은 호텔 방의 고립된 개인인 동시에 이 사회의 구성원이기도 하다.새로운 시의 다른 작품들도 이 주제를 반영하여, 기옌이 현대 도시 생활을 거부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자신의 긍정적인 계획에 통합하는 방법을 찾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양한 시들이 무르시아, 옥스퍼드, 맨해튼을 떠올리게 하지만, "Luz natal"에는 ''Cántico'' 전체에서 유일한 지명인 바야돌리드 외곽의 언덕인 엘 세로 데 산 크리스토발이 등장하는데, 그는 1949년 병든 아버지를 뵙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 그것은 그가 현실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고 여전히 방향을 잡는 이 장소의 중요성에 대한 성찰이다. 그것은 기옌의 시에 새로운 차원, 즉 역사를 더한다. 주인공 또한 역사의 산물이며, 그는 자신의 문화 역사의 좋고 나쁜 측면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가 직면한 현실의 좋고 나쁜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32]
이 최종판에서 기옌은 인간의 삶이 우리가 모든 충만함 속에서 탐구해야 할 구조와 의미로 충전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과제를 완수한다.[33] ''언어와 시''의 한 구절이 이 시집의 시학을 요약하는 듯하다.
: 현실은 시에서 묘사되지만, 외형적인 유사성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현실, 즉 리얼리즘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시가 없는 감정은 몸짓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 감정 표현의 이러한 자제력은 그들의 격렬함을 유지하고, 실제로 그 강도를 두 배로 증가시킨다. 그러나 듣지 못하는 귀에는 이러한 조화가 침묵과 거의 혼동될 정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시인들 중 일부는 세상을 향한 열정, 삶에 대한 열정, 사랑에 대한 사랑을 선언하는 데 헌신했음에도 불구하고, 냉정함 때문에 시험을 받고 부족함이 발견되었다.[34]
3. 2. 《클라모르(Clamor)》
기옌은 1957년에 시집 ''Maremágnum''을 출판했다. 이는 그의 두 번째 포트맨토 시집인 ''Clamor''의 시작이었다. ''Clamor''의 나머지 두 부분은 1960년에 출판된 호르헤 만리케의 ''Coplas por la muerte de su padre''에서 인용한 구절인 ''Que van a dar en la mar''와 1963년에 출판된 ''A la altura de las circunstancias''였다. 그가 언제 이 시집 작업을 시작했는지는 불분명하다. ''Cántico''의 최종판과 ''Clamor''의 첫 번째 시집 사이의 긴 간격은, 특히 ''Cántico''의 두 후기 판에 많은 시가 추가된 점을 고려할 때, 1950년대에 작업의 대부분이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35]이 시집은 ''Cántico''와는 상반된 분위기를 가진다. 시인의 개인적인 삶과 세계 정세의 혼란 속에서도 지속적인 낙관주의와 삶에 대한 기쁨을 보여주었던 ''Cántico''와는 달리, ''Clamor''에서는 불안감, 불만, 불확실성을 전달하는 시들이 주를 이룬다. "Los intranquilos"와 같은 시들은 단순하고 직설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이러한 감정을 표현하며, 술이나 텔레비전이 제공하는 망각만이 유일한 탈출구로 제시된다.[35]
''Cántico''에서 새벽은 깨어남과 의식의 복귀를 의미했지만, ''Clamor''에서 새벽은 다시 잠들고 싶은 욕망, 즉 망각을 찾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Del trascurso"는 ''Cántico''의 "Muerte a lo lejos"와 비교되는데, 전자가 미래의 죽음과 현재의 삶을 긍정하는 반면, 후자는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에 매달리지만 줄어드는 미래를 인식하는 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Viviendo"에서 시인은 도시의 교통 소음 속에서 황혼을 걷는 자신의 모습을 묘사한다. 그는 자신이 시간을 갉아먹는 기계의 일부라고 느끼며, 개인의 노력과 관계없이 기계는 멈추지 않고 죽음에 이른다는 것을 깨닫는다. 카페 테라스의 테이블을 보며 인간적인 요소를 발견하지만, 결국 죽음의 불가피성에 체념하고 무(無)에서 무(無)로의 여행이라는 스토아주의적 태도를 보인다.[36] 이는 "A vista de hombre"와는 매우 다른 느낌이다.
"Modo paterno"에서 시인은 신이나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 없이, 자신의 일부가 자녀들을 통해 미래에 구원받고 투영될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위안을 준다. 이는 시집의 전반적인 슬픔과 비관주의에 대한 균형추 역할을 한다.
제목 | 출판년도 |
---|---|
마레마그눔(Maremágnum) | 1957년 |
바다에 이르게 될 것이다(Que van a dar en la mar) | 1960년 |
상황에 맞춰(A la altura de las circunstancias) | 1963년 |
3. 3. 《오마주(Homenaje)》
《오마주(Homenaje)》는 1967년에 출판되었지만, 1949년부터 1966년 사이에 쓰인 시들을 모아 놓은 시집이다. 이 시집은 기옌의 작품인 ''칸티코''의 마지막 단계와 ''클라모르''의 집필 시기와 겹친다. 이 시집에는 기옌의 강연, 친구, 방문한 장소, 좋아하는 화가 등을 기록한 'occasional' 시가 많이 수록되어 있으며,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영어, 포르투갈어 시 번역도 포함되어 있다.[37]하지만, 보다 개인적인 성찰을 담은 시도 있다. 예를 들어, "Al márgen de un Cántico"는 그를 추상적인 글쓰기를 한다고 비판했던 비평가들, 특히 후안 라몬 히메네스 등에 대한 그의 반응을 보여준다. "Historia inconclusa"는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들을 회상하며, 가르시아 로르카에 대한 미묘한 헌사를 담고 있다. 또한 "Viviendo"의 모호함과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삶에 대한 새로운 체념이나 수용을 보여주는 시들도 있다.[37]
3. 4. 기타 작품
제목 | 출판 연도 | 출판사 및 장소 |
---|---|---|
칸티코(75편의 시) | 1928년 | Revista de Occidente, M. |
칸티코(125편의 시) | 1936년 | Cruz y Raya, M. |
칸티코(270편의 시) | 1945년 | Litoral, 멕시코 |
칸티코(334편의 시) | 1950년 | Sudamericana, Bs. As. |
멜리베아의 과수원 | 1954년 | Ínsula, M. |
새벽과 깨어남에 관하여 | 1956년 | 바야돌리드 |
클라모르. 마레마그눔 | 1957년 | Sudamericana, Bs. As. |
라사로의 장소 | 1957년 | Col. A quien conmigo va, 말라가 |
클라모르... 그들은 바다에 도달할 것이다 | 1960년 | Sudamericana, Bs. As. |
자연사 | 1960년 | Papeles de Sons Armadans, 팔마 데 마요르카 |
안토니오의 유혹 | 1962년 | Graf. Hermanos Bedia, 피렌체/산탄데르 |
시간에 따라서 | 1962년 | Editorial Universitaria, 푸에르토리코 |
클라모르. 상황에 맞춰 | 1963년 | Sudamericana, Bs. As. |
오마주. 삶의 만남 | 1967년 | AllInsegna del Pesce doro, 밀라노 |
우리들의 공기: 칸티코, 클라모르, 오마주 | 1968년 | AllInsegna del Pesce doro, 밀라노 |
시민 화환 | 1970년 | Halty Eferguson, 캠브리지 |
여백에서 | 1972년 | Visor, M. |
그리고 다른 시들 | 1973년 | Muchnik, Bs. As. |
공존 | 1975년 | Turner, M. |
결말 | 1981년 | Barral, B. |
표현 | 1981년 | Sociedad de Cultura Valle-Inclán, 페롤 |
공중의 말과 다른 시들 | 1999 |
4. 기옌과 살리나스
이 두 시인은 종종 서로 비교되어 왔다.[38] 어느 정도는 그들이 좋은 친구였고, 동시대 다른 주요 구성원들보다 나이가 약간 많았으며, 비슷한 경력을 공유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에 대한 접근 방식도 유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시는 종종 고상한 특징을 가지며, 쉽게 식별할 수 있는 사람이나 장소와 같은 "세부 사항"을 다루는 경향이 적다. 그러나 그들은 스페인 시에 대한 출판된 강의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여러 면에서 달랐다.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살리나스는 ''스페인 시에서의 현실과 시인''이라는 제목의 강연집을 출판했고, 기옌의 노턴 강연은 ''언어와 시''였다. 두 사람 모두 루이스 데 공고라와 십자가의 성 요한에 대한 단독 강연을 할애했으며, 그들 간의 비교는 유익하다. 살리나스는 우리에게 겉모습 뒤 또는 그 너머의 시적 현실을 보여주고, 보는 법을 교육하려는 듯한 반면, 기옌은 자신의 마음속을 거쳐가는 생각과 감각 인상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 독자는 이 과정의 참여자가 아니라 관찰자이다.[39] 비센테 알레익산드레는 살리나스를 방문했을 때, 그가 책상에 앉아 한쪽 무릎에 딸을, 다른 쪽 무릎에 아들을 앉히고 펜을 쥔 손을 뻗어 방문객과 악수를 하는 모습을 기억했다. 기옌 역시 가족에게 헌신했지만, 아마도 외딴 서재에서 작업했을 것이다.
5. 번역
참조
[1]
웹사이트
Nomination Database
https://www.nobelpri[...]
2017-04-19
[2]
서적
Connell
[3]
서적
Havard
[4]
서적
Connell
[5]
서적
Gibson
[6]
서적
Alberti
[7]
서적
Gibson
[8]
서적
Gibson
[9]
서적
Gibson
[10]
웹사이트
Centre for Study of Hispanic Exile
https://archive.toda[...]
2012-11-27
[11]
서적
Havard
[12]
서적
Havard
[13]
뉴스
Jorge Guillen Is Dead at 91; A Spanish Poet and Teacher - New York Times
https://query.nytime[...]
[14]
서적
Havard
[15]
서적
Havard
[16]
서적
Havard
[17]
서적
Havard
[18]
서적
Valéry Oeuvres vol 1
[19]
서적
Havard
[20]
서적
Guillen L and P
[21]
서적
Guillen L and P
[22]
서적
Guillen L and P
[23]
서적
Havard
[24]
서적
Havard
[25]
서적
Havard
[26]
서적
Havard
[27]
서적
Havard
[28]
서적
Havard
[29]
서적
Havard
[30]
서적
Havard
[31]
서적
Havard
[32]
서적
Havard
[33]
서적
Havard
[34]
서적
Guillen L and P
[35]
서적
Connell
[36]
서적
Connell
[37]
서적
Connell
[38]
문서
Morris
[39]
서적
Connell
[40]
서적
Poets, philosophers, lovers : on the writings of Giannina Braschi
https://www.worldcat[...]
2020-10-27
[41]
웹사이트
Stamp Shows Jorge Guillen Alvarez Editorial Stock Photo - Image of portrait, jorge: 145374633
https://web.archive.[...]
2020-10-23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