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카와 미쓰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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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호소카와 미쓰나오는 히고 구마모토번 초대 번주 호소카와 타다토시의 장남으로, 1619년에 태어나 1649년에 사망한 인물이다. 그는 아버지의 사망으로 가독을 상속받아 이름을 미쓰나오로 바꾸고, 시마바라의 난에 참전했다. 또한, 조부의 유언에 따라 사촌 동생에게 영지를 분여하고, 가신을 등용하는 등 번정 개혁을 추진했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으며, 그의 뒤는 어린 아들 쓰나토시가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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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카와 미쓰나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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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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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호소카와 미쓰나오 (細川 光尚) |
시대 | 에도 시대 전기 |
출생 | 1619년 10월 26일 |
사망 | 1650년 1월 28일 |
어릴 적 이름 | 로쿠마루 (六丸) |
개명 | 미쓰토시 (光利), 미쓰나오 (光尚) |
시호 | (정보 없음) |
신호 | (정보 없음) |
계명 | (정보 없음) |
묘소 |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 묘카이지, 교토부 교토시 다이토쿠지 고토인 |
관위 | 종4위하 시종, 히고노카미 |
막부 | 에도 막부 |
섬긴 주인 | 도쿠가와 이에미쓰 |
가문 | 히고 호소카와 가문 |
아버지 | 호소카와 다다토시 |
어머니 | 호주인 (保寿院) |
형제자매 | 호소카와 미쓰나오, 후지히메, 소겐, 아리요시 히데나가 실, 나오후사, 난조 모토토모 |
배우자 | 가라스마쓰 미쓰히로 딸 네네, 우쓰미 씨, 시미즈 씨 |
자녀 | 쓰나토시, 도시시게 |
특기 사항 | 외가 쪽으로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현손, 아케치 미쓰히데의 증손에 해당함. |
정치 | |
번 | 히고구마모토번 번주 |
구마모토 번주 대수 | 2대 |
재임 기간 | 1641년 ~ 1649년 |
전임 | 호소카와 다다토시 |
후임 | 호소카와 쓰나토시 |
가문 수장 | 구마모토-호소카와 가문 |
수장 임기 시작 | 1641년 |
수장 임기 종료 | 1650년 |
이전 수장 | 호소카와 다다토시 |
다음 수장 | 호소카와 쓰나토시 |
군사 | |
전투 | 시마바라의 난(1637) |
2. 생애
간에이 14년(1637년), 아버지 타다토시와 함께 시마바라의 난에 참전하여 무공을 세웠다. 간에이 18년(1641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가독을 상속받아, 휘(이름)를 미쓰나오(光尚)로 고쳤다. 이듬해인 1642년, 아베 야이치에몬 유족의 반란을 진압했다. 이 사건은 후에 모리 오가이의 소설 『아베 일족』의 소재가 된 『아베 차사담』으로 각색되었다.
쇼호 2년(1645년) 말, 조부 타다오키의 유언에 따라 사촌 동생 호소카와 유키타카에게 3만 석을 분여하여 우토번을 세웠다. 게이안 원년(1648년), 백부 나가오카 타다타카의 일족을 구마모토번의 문벌 가신으로 삼았다. 또한, 가로 제도나 관리 등의 관제 개혁도 적극적으로 실시하여 번정의 기초를 다졌다.
게이안 2년(1649년) 12월 26일, 3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뒤를 장남 쓰나토시가 이었지만 7세로 어렸기 때문에, 가독 상속을 막부에 인정받기 위해 호소카와 가신들이 분주하게 움직여 영지 몰수를 면했다.
2. 1. 출생과 유년기
겐나 5년(1619년) 9월 19일, 히고 구마모토번 초대 번주 호소카와 타다토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오가사와라 히데마사의 차녀(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양녀) 치요히메(호쥬인)이다. 어릴 적 이름은 로쿠마루였다. 에도 막부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로부터 편휘를 받아 '''미쓰토시'''(光利)라는 이름을 사용했다.2. 2. 시마바라의 난 참전
간에이 14년(1637년), 아버지 타다토시와 함께 시마바라의 난에 참전하여 무공을 세웠다.2. 3. 가독 상속과 번정 개혁
겐나 5년(1619년) 9월 19일, 히고 구마모토번 초대 번주 호소카와 타다토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간에이 14년(1637년), 아버지와 함께 시마바라의 난에 참전하여 무공을 세웠다. 1641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가독을 상속받아, 휘(이름)를 '''미쓰나오'''(光尚)로 고쳤다. 이듬해, 아베 야이치에몬 유족의 반란을 2월 21일까지 진압했다. 이 사건은 후에 모리 오가이의 소설 『아베 일족』의 소재가 된 『아베 차사담』으로 각색되었다.쇼호 2년(1645년) 말, 조부 타다오키의 유언에 따라 사촌 동생 호소카와 유키타카에게 3만 석을 분여하여 우토번을 세웠다. 게이안 원년(1648년), 백부 나가오카 타다타카의 일족을 구마모토번의 문벌 가신으로 삼았다. 또한, 가로 제도나 관리 등의 관제 개혁도 적극적으로 실시하여 번정의 기초를 다졌다.
2. 4. 사망
게이안 2년(1649년) 12월 26일, 미쓰나오는 3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장남 쓰나토시가 뒤를 이었지만, 당시 7세로 어렸기 때문에 호소카와 가신들은 가독 상속을 막부에 인정받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고, 그 결과 영지 몰수를 면할 수 있었다. 또한, 병상에 있던 미쓰나오는 어린 아들 쓰나토시가 전봉, 감봉, 개역될 우려가 있다며 막부에 문의를 제출, "저의 아들은 어리므로 출사에 견딜 수 없으며, 어떻게 되든 공의의 뜻대로 따르겠습니다"라는 내용의 원서를 제출했다. 이것이 공의의 호감을 얻어 쓰나토시의 상속이 결정되었다고 한다.3. 가족 관계
아버지 | 호소카와 타다토시 |
---|---|
어머니 | 호주인 (1597년 - 1649년), 센요히메,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양녀 - 오가사와라 히데마사의 차녀 |
정실 | 쇼주인 - 가라스마 미츠카타의 딸 |
측실 | 세이코인 - 시미즈 씨, 우츠미 씨 |
장남 | 호소카와 츠나토시 (1643년 - 1714년, 세이코인 소생) |
차남 | 호소카와 토시시게 (1647년 - 1687년, 세이코인 소생) |
4. 가계도
系図일본어
관계 | 이름 |
---|---|
아버지 | 호소카와 타다토시 |
어머니 | 호주인 (오가사와라 히데마사의 차녀,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양녀) |
정실 | 쇼주인 (중납언 가라스마 미츠카타의 딸) |
측실 | 세이코인 (시미즈 씨) |
장남 | 호소카와 츠나토시 |
측실 | 세이코인 (우츠미 씨) |
차남 | 호소카와 토시시게 |
5. 구마모토번주 계승
겐나 5년(1619년) 9월 19일, 히고 구마모토번 초대 번주 호소카와 타다토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오가사와라 히데마사의 차녀(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양녀) 치요히메(호쥬인)이다. 어릴 적 이름은 로쿠마루였다. 에도 막부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에게서 편휘를 받아 '''미쓰토시'''(光利)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간에이 14년(1637년), 아버지 타다토시와 함께 시마바라의 난에 참전하여 무공을 세웠다. 간에이 18년(1641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가독을 상속받아 휘(이름)를 '''미쓰나오'''(光尚)로 고쳤다. 이듬해 아베 야이치에몬 유족의 반란을 2월 21일까지 진압했다. 이 사건은 후에 『아베 차사담』으로 각색되었고, 모리 오가이의 소설 『아베 일족』의 소재가 되었다.
쇼호 2년(1645년) 말, 조부 타다오키가 사망하자 타다오키의 유언에 따라 사촌 동생 호소카와 유키타카에게 3만 석을 분여하여 우토번을 세웠다. 게이안 원년(1648년), 백부 나가오카 타다타카의 일족을 구마모토번의 문벌 가신으로 삼았다. 또한, 가로 제도나 관리 등 관제 개혁도 적극적으로 실시하여 번정의 기초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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