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산케이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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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지산케이 그룹은 1967년 후지 텔레비전, 산케이 신문, 니혼 방송, 분카 방송의 합의로 결성된 일본의 미디어 그룹이다. 후지 텔레비전과 산케이 신문이 핵심이며, 1950년대부터 이어진 여러 회사의 연계와 구조 개편을 거쳐 현재 후지 미디어 홀딩스를 중심으로 방송, 신문, 출판, 이벤트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닛폰 방송의 자회사 편입, 지주회사 체제 전환 등을 통해 그룹 구조를 재편했으며, 현재 후지 TV 그룹, 산케이 신문 그룹, 닛폰 방송 그룹, 산케이 빌딩 그룹, 포니캐년 그룹, 분카 방송 그룹, 공익 법인 그룹 등 다양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스포츠 분야 후원 및 이벤트 개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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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산케이 그룹 | |
---|---|
기본 정보 | |
회사 이름 | 후지산케이 커뮤니케이션 그룹 |
로마자 표기 | Fujisankei Gurūpu |
영문 표기 | Fujisankei Communications Group |
이전 이름 | 후지 산케이 그룹 (1967-1985) |
설립일 | 1967년 |
창립자 | 시카나이 노부타카 (초대 회장) |
본사 위치 | FCG 빌딩, 2-4-8, 오다이바, 미나토구, 도쿄 137-8088, 일본 |
핵심 인물 | 히에다 히사시 (회장) |
산업 분야 | 매스 미디어, 재벌 |
유형 | 계열사 |
홈페이지 | fujisankei-g.co.jp |
직원수 | 13,000명 |
핵심 시설 | FCG 빌딩 |
주요 업무 | 텔레비전 신문 라디오 출판 영화 음악 콘텐츠 제작/판매/배급 종합 통신 판매 도시 개발/관광 |
표장 | 눈알 마크 |
이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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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계열사 | |
핵심 기업 | 후지 미디어 홀딩스 후지 TV 산케이 신문 닛폰 방송 산케이 빌딩 포니 캐년 분카 방송 |
2. 역사
1967년 니혼 방송, 일본문화방송, 후지 TV, 산케이 신문의 합의로 후지산케이 커뮤니케이션즈 그룹(후지산케이 그룹)이 설립되었다.[5] [6] [7] "후지산케이"는 '''후지''' 텔레비전과 '''산케이''' 신문의 합성어이며, 미디어 재벌인 이 그룹은 시카나이 노부타카가 설립했다.[8]
1985년 시카나이 하루오가 회장 겸 CEO를 맡아 후지 텔레비전을 일본 최고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1983년 영화 ''남극 이야기''는 일본에서 1200만 명 관객을 동원하며 당시 일본 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고, 1986년 영화 ''밀로와 오티스의 모험''는 그해 일본 국내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다.[9]
1989년 10월 후지산케이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에게 200만달러를 지불하고 홍보 업무를 의뢰, 레이건은 9일간 일본을 순방하며 두 차례 연설했다.[4] [10] [11] 1991년에는 북미에 "후지산케이 캘리포니아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는 데 5000만달러를 투자했다.[12]
1997년 8월 8일 후지 텔레비전은 도쿄 증권거래소 1부에 상장되었다. 2005년 니혼 방송 주식 공개 매수를 시작, 리브도어의 적대적 인수 시도를 물리치고 니혼 방송을 완전 자회사로 만들었다. 2006년 1월 호리에 다카후미는 리브도어 분식회계 혐의로 체포,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2008년 후지 텔레비전은 순수 지주회사로 전환, "후지 미디어 홀딩스"로 이름을 변경하고 기존 사업 부문은 새로 설립된 "후지 텔레비전 네트워크"가 계승했다. 2012년 산케이 빌딩을 완전 자회사로 만들었고, 2015년 그랜비스타 호텔 & 리조트를 인수해 호텔, 리조트 사업으로 확장했다. 2018년 후지 미디어 홀딩스는 산케이 리빙 신문을 리자프 그룹에 매각했다.
2. 1. 전사(前史)
1951년, 성 바오로 수도회 등의 주도로 재단법인 일본문화방송협회가 설립되어 이듬해 개국했으나, 경영 위기에 봉착한다. 1956년, 국책펄프공업 사장 수노 나리오가 초대 사장에 취임하며 "'''주식회사 문화방송'''"으로 개편되었다.[21]1954년, 재계 주도로 "'''주식회사 니혼방송'''"이 설립되었고, 닛케이렌 초대 전무이사 시카나이 노부타카가 대표이사 전무로서 실무를 담당했다.
1957년, 니혼방송과 문화방송을 중심으로, 도호, 쇼치쿠, 다이에이가 출자하여 "'''주식회사 후지텔레비전'''"(1958년에 상호를 "'''주식회사 후지텔레비전'''"으로 변경, 현: 후지 미디어 홀딩스)이 설립되었고, 수노 나리오가 사장, 시카나이 노부타카가 전무에 취임하여 니혼방송과 마찬가지로 시카나이 노부타카가 실무를 담당했다.
1958년, 수노 나리오가 산케이신문사 사장에 취임함으로써, 후지 텔레비전, 니혼방송, 문화방송, 산케이신문사 4사의 연계 체제가 시작되었다.
1957년 11월 18일, 일본방송과 문화방송 두 회사를 중심으로, 영화 3사(도호, 쇼치쿠, 다이에이)의 출자를 통해 "'''주식회사 후지텔레비전'''"이 설립되었다.[36] 회장에는 일본방송 사장이자 경단련 부회장인 우에무라 코고로가, 사장에는 문화방송 사장인 미즈노 시게오가, 실무를 담당하는 대표이사 전무에는 일본방송 대표이사 전무[37]인 시카나이 노부타카가 취임했다. 설립 직후, 미즈노 시게오가 산케이 신문사 사장에 취임하면서 후지 텔레비전, 산케이 신문사, 일본방송, 문화방송의 연계 체제가 시작되었다. 개국 5년 후인 1964년, 시카나이 노부타카는 후지 텔레비전 사장에 취임했다.[38]
1968년 4월, 미즈노 시게오가 뇌출혈로 쓰러져 재기 불능이 되었다. 후지 텔레비전과 일본방송 사장인 시카나이 노부타카가 산케이 신문사의 경영을 이어받아 3개 회사의 사장을 겸임했다. 한편, 문화방송의 신임 사장에는 시카나이 노부타카의 와세다 시대 동창이자 후지 텔레비전에 설립 시부터 출향해 있던 토모다 신이 취임했다. 후지 텔레비전의 지배권 확립을 목표로 했던 시카나이 노부타카는 간부직에 일본방송 출신자를 우선적으로 등용했다. 이러한 상황에 위기감을 느낀 토모다 신은 문화방송으로서 대표이사 지위를 요구하여 스스로 취임했다.
토모다 신이 사장을 맡은 문화방송에서는, 와분샤의 아카오 요시오가 비밀리에 주식 취득을 진행하고 있었다. 와분샤는 최대 주주 지위를 확보하고 있었지만, 과반수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 점에 착안한 시카나이 노부타카는 동급과 노무라 증권 등이 보유한 문화방송 주식을 "후지산케이 그룹의 연계 강화"라는 명목으로 비밀리에 정리하여 약 20%를 아카오 요시오에게 제공했다. 일련의 결과, 아카오 요시오·와분샤는 문화방송 주식의 과반수를 넘게 확보했고, 토모다 신은 후지 텔레비전 대표이사, 문화방송 사장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토모다 신 실각 후, 시카나이 노부타카는 후지 텔레비전의 증자를 실시하여 일본방송이 51%를 보유하는 모회사가 되었다. 한편, 문화방송은 후지 텔레비전의 경영 집행에서 점차 멀어지고, 주주로서의 지위는 남아 있지만, 후지산케이 그룹에 형식적으로 속해 있는 존재에 그치게 되었다.[38][39]
2. 2. 후지산케이 그룹 발족 (1967년)
1967년 12월, 후지TV, 산케이 신문사, 닛폰 방송, 분카 방송을 중심으로 '''후지산케이 그룹'''이 결성되었다.[5][6][7] "후지산케이"는 '''후지''' 텔레비전과 '''산케이''' 신문의 합성어이다.1968년, 시카나이 노부타카가 그룹의 실권을 장악하고, 각 사의 코퍼레이트 기능을 총괄하는 후지산케이 그룹 회의를 설립하여 그룹 경영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다.[22]
2. 3. 리빙 작전 (1970년대)
1970년 10월, 후지 TV가 실험적인 생활 정보 프로그램인 《도쿄 홈 조키》를 시작했다. 닛폰 방송 출신의 다카사키 이치로가 진행한 이 프로그램은 큰 인기를 얻었다. 세계 최초의 TV 쇼핑과 무도관에서의 대바겐 이벤트 등, 프로그램에서 시작된 인기 기획이 다수 탄생했다. 같은 시기인 1971년 6월, 산케이 신문사 광고국이 무료 신문 《후지산케이 리빙 뉴스》(현 산케이 리빙 신문)를 창간하여 주오선 연선에서 처음 배포했다. 《도쿄 홈 조키》의 인기를 본 시카우치 노부타카는 TV 프로그램과 무료 신문 사업의 연동을 구상하고, 《도쿄 홈 조키》의 프로그램명을 《리빙 4》, 《후지산케이 리빙 뉴스》의 제호를 《후지산케이 리빙 4》로 각각 변경했다. 프로그램에서 시작된 기획을 지면에서 다루는 등의 연동을 실시했다.[23]1972년 1월에는 본격적인 TV 쇼핑 프로그램 《리빙 11》(후지TV 평일 오전 TV 쇼핑 시간대)을 시작했다. 또한 방송 개시 직전인 1971년 12월에는 프로그램 내 통신 판매 기획에 수반되는 조사, 선정, 검사, 발송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전문 회사로서 주식회사 디노스(현 DINOS CORPORATION)가 설립되었다.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신문·텔레비전의 공동 사업은 무료 신문, TV 쇼핑, 통신 판매 회사라는 세 가지를 낳았다. 이 일련의 사업 전개를 「리빙 작전」이라고 한다.[23]
2. 4. "즐겁지 않으면 TV가 아니다!" (1980년대)
1985년, 시카나이 하루오가 후지산케이 그룹 회장 및 후지 텔레비전, 산케이신문사, 닛폰 방송의 회장에 취임하면서, 심볼 마크인 "눈알 마크(目ん玉マーク)"를 제정했다. 히에다 히사시와 함께 후지 TV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며, 대규모 미디어 믹스 전개를 통해 다양한 영화와 이벤트를 성공시켰다.시카나이 하루오가 제작한 영화와 이벤트는 다음과 같다.
제목 | 역할 | 개봉/개최 연도 | 비고 |
---|---|---|---|
남극 이야기 | 제작 총괄 | 1983년 | 일본에서 1200만 명의 관객을 동원, 당시 일본 영화 최고 흥행 기록. 1997년 원령공주에 의해 기록이 깨짐. |
버마의 하프 | 1985년 | ||
새끼 고양이 이야기 | 책임 프로듀서 | 1986년 (일본), 1989년 (북미) | 일본에서 약 7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그 해 일본 국내 영화 흥행 1위. 북미에서 약 13290000USD의 수익을 올림. 2023년 고질라 미너스 원에 의해 기록이 깨짐. |
꿈 공장 87 | 1987년 7월 18일 ~ 8월 30일 | 도쿄와 오사카에서 동시 개최. 예산 15000000000JPY, 관람객 570만 명, 2000000000JPY 흑자.[24] |
이러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시카나이 하루오는 1988년 4월 16일, 42세의 나이로 급성 간부전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24]
2. 5.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부부 초청과 시카나이 히로아키 해임 (1989년 ~ 1992년)
1989년 10월, 후지산케이 그룹은 일본 정부와 공동으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낸시 레이건 여사를 일본에 초청했다.[26] 같은 해 12월, 시카나이 노부타카는 장남 시카나이 하루오를 잃은 후, 차녀의 남편이자 일본흥업은행에서 근무했던 시카나이 히로아키를 양자로 입적하고 그룹의 3대 회장으로 취임시켰다. 히로아키는 후지 텔레비전, 산케이 신문, 니혼 방송의 회장직도 겸임했다.1990년 10월 28일, 시카나이 노부타카가 사망했다. 이후 히에다 히사시 당시 후지 텔레비전 사장 등은 그룹의 거버넌스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1992년 7월 21일, 산케이 신문 이사회에서 시카나이 히로아키는 회장직에서 해임되었고,[21] 다음 날, 그는 후지산케이 그룹 회의 의장, 후지 텔레비전, 니혼 방송 회장직을 사임했다.
이후에도 시카나이 히로아키 가문은 니혼 방송의 최대 주주로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니혼 방송의 상장으로 지분율이 낮아졌다. 2005년 1월, 시카나이 히로아키 부부는 보유하고 있던 250만 주 이상의 니혼 방송 주식을 다이와증권 SMBC에 매각하면서, 시카나이 히로아키 가문과 후지산케이 그룹의 관계는 완전히 종료되었다.[21]
2. 6. 후지산케이 그룹 구조 재편 (2000년대 ~ 현재)
2005년, 후지 텔레비전은 닛폰 방송 주식에 대한 공개 공개 매수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호리에 다카후미의 리브도어가 닛폰 방송의 적대적 인수를 시도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이후 후지 텔레비전은 닛폰 방송을 완전 자회사로 만들었다.[27] 2006년 1월, 호리에 다카후미는 리브도어의 분식회계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2008년, 후지 텔레비전은 순수 지주회사로 전환하고 이름을 "'''후지 미디어 홀딩스'''"로 변경했다. 기존 후지 텔레비전의 사업 부문은 새로 설립된 "'''후지 텔레비전 네트워크'''"가 계승했다. 인정 방송 지주회사가 된 후지 미디어 홀딩스는 여러 방송사를 자회사로 둘 수 있게 되었다.
2012년, 후지 미디어 홀딩스는 계열사인 산케이 빌딩을 완전 자회사로 만들었다. 산케이 빌딩은 부동산 개발업체로 성장했으며, 호텔과 리조트 사업으로도 확장했다.
2018년, 후지 미디어 홀딩스는 산케이 리빙 신문사를 리자프 그룹에 매각했다.[28][29][30]
3. 주요 그룹
후지산케이 그룹은 1967년 니혼 방송, 일본문화방송, 후지 텔레비전 네트워크, 산케이 신문 간의 합의로 설립되었다.[5] [6] [7] "후지산케이"라는 이름은 '''후지''' 텔레비전과 '''산케이''' 신문의 합성어이다.
1988년 6월 7일, FCG는 그룹 97개사를 5개의 주요 그룹으로 나누었다.[21]
이후 “포니캐니언 그룹”, “리빙 그룹”이 신설되었고, 의장 직할 그룹은 “공익법인 그룹” 등으로 재편되었다.[21]
2008년, 후지산케이의 지주회사였던 후지 텔레비전은 순수 지주회사로 전환하고 이름을 "후지 미디어 홀딩스"로 변경했다. 기존 후지 텔레비전의 사업 부문은 새로 설립된 "후지 텔레비전 네트워크"가 계승했다.[21]
현재는 후지 미디어 홀딩스의 사업 구분에 따라 그룹을 나누고 있으며, 주요 그룹은 다음과 같다.
3. 1. 후지 미디어 홀딩스 (Fuji Media Holdings, Inc.)
주식회사 후지 미디어 홀딩스(FMH)는 후지산케이 그룹을 총괄하는 인정 방송 지주회사이다. "미디어 콘텐츠 사업", "도시 개발·관광 사업", "기타 사업"[31]의 3개 사업 부문으로 구성된다.
2008년 10월 1일, 후지 텔레비전은 순수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회사 이름을 "'''주식회사 후지 미디어 홀딩스'''"로 변경했다. 기존 후지 텔레비전의 사업 부문은 새로 설립된 "'''후지 텔레비전 네트워크'''"가 이어받았다. 이로써 일본 최초의 인정 방송 지주회사가 된 후지 미디어 홀딩스는 여러 방송사를 자회사로 둘 수 있게 되었다.
이에 앞서 2005년 호리에 다카후미가 이끄는 리브도어가 닛폰방송의 적대적 인수를 시도했으나, 후지 텔레비전은 닛폰방송을 완전 자회사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2006년 호리에 다카후미는 리브도어의 분식회계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2012년에는 계열사인 산케이빌을 완전 자회사로 만들었다. 산케이빌은 이후 부동산 개발업체로 성장했으며, 2015년에는 호텔과 리조트 사업으로 확장했다.
2018년, 후지 미디어 홀딩스는 산케이리빙신문사를 RIZAP그룹에 매각하고, 리빙 신문 그룹 부문을 중단했다.[28][29][30]
3. 2. 후지 TV 그룹 (Fuji Television Group)
후지텔레비전을 중심으로 방송, 영상 제작, 출판, 음악 출판, 광고, IT, 외식 서비스 등을 전개하는 기업들로 구성되어 있다.[13]
회사명 | 사업 내용 | 비고 |
---|---|---|
후지텔레비전 | 미디어·콘텐츠 사업 | |
합동회사 후지·컨슈머·프로덕츠 | 2024년 10월 1일 설립 | |
BS후지 | 미디어·콘텐츠 사업 | |
공동텔레비전 | 미디어·콘텐츠 사업 | |
주식회사 반에이트 | FMH(후지미디어홀딩스)와 공동텔레비전의 합작회사 | |
공동에디트 | 공동텔레비전 자회사 | |
베이시스 | 공동텔레비전 자회사 | |
바스크 | 공동텔레비전 자회사 | |
※주식회사 포닉스 | 공동텔레비전 자회사, 세인트 포스와 합작회사 | |
후지크리에이티브코퍼레이션 | 미디어·콘텐츠 사업 | |
넥스텝 | 미디어·콘텐츠 사업 | |
후지알 | 미디어·콘텐츠 사업 | |
후지·미디어·테크놀로지 | 미디어·콘텐츠 사업 | 2023년 10월 1일 도쿄필름메이트를 흡수합병 |
방영서비스 주식회사 | 미디어·콘텐츠 사업 | |
다이노스 코퍼레이션 | 미디어·콘텐츠 사업 | |
다이노스콜센터 | 다이노스 코퍼레이션 자회사 | |
이미니면역약장 주식회사 | 다이노스 코퍼레이션 자회사 | |
코마이누 | 다이노스 코퍼레이션 자회사 | |
후지아철다매체유한공사 | FMH 그룹과 아철국제개발유한공사의 합작 사업[14] | |
쿠오라스 | 미디어·콘텐츠 사업 | |
후지믹 | 기타 사업 | |
후지 컬처 엑스 | 후지믹 자회사. 구 상호는 「후지게임즈」 | |
픽시스 테크놀로지스 | 후지믹 자회사. 2024년 4월 1일 후지믹 니가타가 후지믹 사이타마를 흡수합병하여 상호 변경 | |
※핀즈 | 후지믹 자회사 | |
※후지시스템즈 | 후지믹 자회사 | |
※미디어네트워크 | 후지믹 관계회사 | |
부상사 | 미디어·콘텐츠 사업 | |
※육봉사 | 부상사 자회사, 교과서 출판 사업 전개 | |
후지퍼시픽뮤직 | 미디어·콘텐츠 사업 | |
제일음향 | FPM 자회사 | |
Fuji Music Group, Inc. | 미디어·콘텐츠 사업 | FMH와 FPM의 합작회사 |
후지랜드 | 기타 사업 | FMH의 관계회사 |
후지플러스 | 후지랜드 자회사 | |
후지캐리어디자인 | 기타 사업 | |
후지스마트워크 | ||
에프시지종합연구소 | 기타 사업 | |
새털라이트 서비스 | 미디어·콘텐츠 사업 | |
Fujisankei Communications International, Inc. | 기타 사업 |
1957년 11월 18일, 일본방송과 문화방송을 중심으로, 영화 3사(도호, 쇼치쿠, 다이에이)의 출자를 받아 주식회사 후지텔레비전 (1958년 12월 1일 '''주식회사 후지텔레비전'''으로 변경, 현 후지미디어홀딩스)이 설립되었다. 출자 비율 약 80%를 차지한 일본방송과 문화방송은 명목상 대등하게 여겨졌다.[36] 회장에는 일본방송 사장이자 경단련 부회장인 우에무라 코고로가, 사장에는 문화방송 사장 미즈노 시게오가, 실무를 담당하는 대표이사 전무에는 일본방송 대표이사 전무[37]인 시카이치 신타쿠가 취임했다. 설립 직후, 미즈노 시게오가 산케이 신문사 사장에 취임하면서 후지텔레비전, 산케이 신문사, 일본방송, 문화방송의 연계 체제가 시작되었다. 개국 5년 후인 1964년, 시카이치 신타쿠는 후지텔레비전 사장에 취임했다.[38]
1968년 4월, 미즈노 시게오가 뇌출혈로 쓰러져 재기 불능이 되었다. 시카이치 신타쿠는 후지텔레비전과 일본방송 사장직을 이어받아 산케이 신문사 경영까지 맡으며 3개 회사 사장을 겸임했다. 한편, 문화방송의 신임 사장에는 시카이치 신타쿠의 와세다 대학 동창이자 후지텔레비전에 설립 시부터 출향해 있던 토모다 신이 취임했다. 시카이치 신타쿠는 후지텔레비전 지배권 확립을 위해 간부직에 일본방송 출신자를 우선 등용했다. 이러한 상황에 위기감을 느낀 토모다 신은 문화방송 대표이사 지위를 요구하며 스스로 취임했다.
토모다 신이 사장을 맡은 문화방송에서는 와분샤의 아카오 요시오가 비밀리에 주식 취득을 진행하여 지배권 확립을 모의하고 있었다. 와분샤는 최대 주주였지만 과반수에 미치지 못했다. 시카이치 신타쿠는 동급과 노무라 증권 등이 보유한 문화방송 주식을 "후지산케이 그룹 연계 강화" 명목으로 비밀리에 정리하여 약 20%를 아카오 요시오에게 제공했다. 그 결과, 아카오 요시오와 와분샤는 문화방송 주식 과반수를 확보했고, 토모다 신은 후지텔레비전 대표이사 및 문화방송 사장에서 물러났다.
토모다 신 실각 후, 시카이치 신타쿠는 후지텔레비전 증자를 실시하여 일본방송이 51%를 보유하는 모회사가 되도록 했다. 문화방송은 후지텔레비전 경영 집행에서 점차 멀어졌지만 주주 지위는 유지하며 후지산케이 그룹에 형식적으로 속하게 되었다.[38][39] 2024년 6월 현재, 문화방송은 후지미디어홀딩스(구 후지텔레비전) 및 후지텔레비전(2대째)에 비상임 이사 1명을 파견하고 있다.
3. 3. 산케이 신문 그룹 (Sankei Shimbun Group)
산케이 신문사를 중심으로, 그 자회사 및 관련 회사 등으로 구성된다. 산케이 신문사는 후지 미디어 홀딩스의 미디어 콘텐츠 사업에 속하는 지분법 적용 관련 회사이다(간접 보유를 포함한 출자 비율은 45.4%).[32]- 주식회사 산케이 신문사[32] (FMH의 관련회사)
- * 주식회사 일본공업신문사
- * 주식회사 산케이 디지털
- * 주식회사 산케이 편집 센터
- * 주식회사 산케이 신문 출판
- ** 주식회사 조방서광인신사
- * 주식회사 산케이 리서치 & 데이터
- * 주식회사 산케이 광고 회사
- * 주식회사 산케이 애즈
- * 주식회사 산케이 아이
- * 산케이 신문 개발 주식회사(도쿄)
- * 산케이 신문 개발 주식회사(오사카)
- * 주식회사 간소쿠 - 간사이 지역의 신문 직판 사업
- * ※산케이 신문 도쿄 판매 주식회사
- * ※산케이 신문 오사카 판매 주식회사
- * 주식회사 산케이 신문 제작
- * 주식회사 산케이 신문 인쇄
- * ※산케이 종합 인쇄 주식회사
- * 주식회사 산케이 시스템 개발 - 후지믹과의 합작 회사
- * 오사카 방송 주식회사(라디오 오사카) - 2021년 10월부터 DONUTS가 최대 주주이다.
3. 4. 닛폰 방송 그룹 (Nippon Hoso Group)
닛폰 방송을 중심으로 라디오 방송, 정보, 이벤트 사업 등을 전개한다.[13] 주요 계열사는 다음과 같다.- '''닛폰 방송(닛폰 방송)''' (미디어·콘텐츠 사업)
- '''닛폰 방송 프로젝트(닛폰 방송 프로젝트)''' (기타 사업)
- '''후지산케이 에이전시(후지산케이 에이전시)''' (기타 사업)
- '''믹스존(믹스존)''' (미디어·콘텐츠 사업)
- '''그레이프(그레이프)''' (미디어·콘텐츠 사업)
3. 5. 산케이 빌딩 그룹 (Sankei Building Group)
산케이빌(サンケイビル)을 중심으로, 빌딩 사업, 루폰(ルフォン) 브랜드 주택 사업, 시니어 사업, 호텔 리조트 사업, 외식 사업, 건축 내장 사업, 빌딩 유지보수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후지 미디어 홀딩스의 "'''도시 개발・관광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21]- '''주식회사 산케이빌''' (도시 개발・관광 사업)
- * 주식회사 산케이카이칸
- * 주식회사 산케이빌테크노
- * 주식회사 산케이빌매니지먼트
- ** 주식회사 산케이빌메인테넌스서비스
- ** 신와서비스 주식회사
- ** ※ VISAHO JOINT STOCK COMPANY Co.,Ltd. - 관계회사
- * 주식회사 브리제아츠
- * 주식회사 산케이빌웰케어
- * '''주식회사 그랑비스타 호텔 & 리조트'''
- * '''주식회사 산케이빌・애셋매니지먼트'''
- ** ※ 산케이리얼에스테이트투자법인 - J-REIT(공모 리츠)
3. 6. 포니캐년 그룹 (Pony Canyon Group)
포니캐년을 중심으로 그 자회사 및 관련 회사로 구성된다.[13]- '''주식회사 포니캐년'''
- * 포니캐년 음악출판 (주식회사)
- * PONYCANYON USA INC.
- * EMP (주식회사)
- * PCI 뮤직 (주식회사)
- * Styrism (주식회사)
- * 드림스튜디오 (주식회사)
- * 파리佳音娛樂股份有限公司 - FMH와의 합작
- * ※메모리텍 홀딩스 (주식회사) - 포니캐년이 25.2% 출자하는 관련회사

3. 7. 분카 방송 그룹 (QR Group, Bunka Hoso Group)
문화방송을 중심으로 라디오 방송 사업 등을 전개한다. 문화방송은 후지 미디어 홀딩스 주식의 3.33%를 보유한 대주주이다.
주요 계열사는 다음과 같다.
- 주식회사 문화방송
- * 주식회사 센트럴뮤직
- * 주식회사 문화방송개발센터
- * 주식회사 문화방송미디어브리지
3. 8. 공익 법인 그룹 (Art & Culture Group)
하코네 야외 박물관과 우쓰쿠시가하라 야외 박물관을 운영하는 초코쿠노모리 미술재단, 우에노 황실 박물관과 프레미움 임페리알레를 운영하는 일본 미술 협회, 산케이 신문 공익재단이 공익 법인 그룹에 속한다.[5]4. 스포츠 및 이벤트
- 1987년 커뮤니케이션 카니발 꿈 공장
- 후지산케이 클래식 (남자 골프)
- 후지산케이 레이디스 클래식 (여자 골프)
- 전일본 배구 고등학교 선수권 대회
- 리틀리그
- 리틀시니어
: ※미쓰이물산과 함께 소년 야구 보급에 힘쓰고 있다.
: 1962년 8월 (당시 "국철 스왈로스")부터 후지산케이 그룹이 자금 지원을 하였고, 1965년 5월부터 1968년까지는 "산케이 스왈로스" (1965년만) → "산케이 아톰즈" (1966년 - 1968년)로서 최대 스폰서였다. 이후 야쿠르트 본사에 경영권을 양도하였지만, "아톰즈" (1969년만) → "야쿠르트 아톰즈" (1970년 - 1973년) → "야쿠르트 스왈로스" (1974년 - 2005년)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2006년 - 현재)의 경영을 측면 지원하고 있다.
5. 비고
문화방송은 후지 미디어 홀딩스 주식의 3.33%를 보유한 대주주이다.
5. 1. 문화방송과 후지산케이 그룹의 관계
1957년 11월 18일, 일본방송과 문화방송을 중심으로, 도호, 쇼치쿠, 다이에이 등 영화 3사의 출자를 받아 "'''주식회사 후지 텔레비전'''"(1958년 12월 1일 "'''주식회사 후지 텔레비전'''"으로 변경, 현 후지 미디어 홀딩스)이 설립되었다. 일본방송과 문화방송 두 라디오 방송국은 출자 비율의 약 8할을 차지하며 명목상 대등하게 여겨졌다.[36] 우에무라 코고로가 회장에, 문화방송 사장 미즈노 시게오가 사장에, 시카이치 신타쿠가 실무 담당 대표이사 전무[37]에 취임했다. 설립 직후, 미즈노 시게오가 산케이 신문사 사장에 취임하면서 후지 텔레비전, 산케이 신문사, 일본방송, 문화방송의 연계 체제가 시작되었다. 1964년, 시카이치는 후지 텔레비전 사장에 취임했다.[38]
1968년 4월, 미즈노가 뇌출혈로 쓰러져 재기 불능이 되자, 후지 텔레비전과 일본방송 사장인 시카이치가 산케이 신문사의 경영을 이어받아 3개 회사 사장을 겸임했다. 한편, 문화방송의 신임 사장에는 시카이치의 와세다 대학 동창이자 후지 텔레비전에 설립 시부터 출향해 있던 토모다 신이 취임했다. 시카이치는 후지 텔레비전의 지배권 확립을 목표로 일본방송 출신자를 간부직에 우선 등용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토모다는 문화방송으로서 대표이사 지위를 요구하여 스스로 취임했다.
토모다가 사장을 맡은 문화방송에서는, 와분샤의 아카오 요시오가 회사 지배권 확립을 위해 비밀리에 주식 취득을 진행하고 있었다. 와분샤는 최대 주주였지만 과반수에 미치지 못했다. 시카이치는 동급과 노무라 증권 등이 보유한 문화방송 주식을 "후지산케이 그룹의 연계 강화" 명목으로 비밀리에 정리하여 약 20%를 아카오에게 제공했다. 그 결과, 아카오·와분샤는 문화방송 주식 과반수를 확보했고, 토모다는 후지 텔레비전 대표이사 및 문화방송 사장에서 물러났다.
토모다 실각 후, 시카이치는 후지 텔레비전의 증자를 실시, 일본방송이 51%를 보유하는 모회사가 되었다. 한편, 문화방송은 후지 텔레비전 경영에서 점차 멀어지고 주주로서의 지위는 유지했지만, 후지산케이 그룹에 형식적으로 속한 존재에 그치게 되었다.[38][39] 2024년 6월 현재, 문화방송은 후지 미디어 홀딩스(구 후지 텔레비전) 및 후지 텔레비전(2대째)에 비상임 이사 1명을 파견하고 있다.
문화방송은 후지 미디어 홀딩스 주식의 3.33%를 보유한 대주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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