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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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휴가국은 일본 규슈 남동부에 위치했던 옛 행정 구역으로, 현재의 미야자키현 대부분과 가고시마현 일부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명칭은 신무 천황과 관련된 설화에서 유래되었으며, 율령제 하에 사이카이도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고대에는 구석기 시대 유적과 조몬 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었으며,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신화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중세 시대에는 시마즈 씨, 이토 씨 등 여러 세력의 각축장이었고, 전국 시대에는 이토 씨가 지배했으나 시마즈 씨에게 패배하여 몰락했다. 근세에는 여러 번으로 분할되어 소규모 번과 막부 직할령으로 나뉘어 통치되었으며, 메이지 유신 이후 미야자키현으로 재편되었다. 휴가국은 고대 신화와 역사적 사건의 배경으로서, 문화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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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가국 - 1498년 휴가나다 지진
1498년 휴가나다 지진은 오이타현 사이키시 앞바다에서 발생한 규모 7.0~7.5의 지진으로, 규슈 지역을 중심으로 피해가 발생했으며 난카이 해곡 지진일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기록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도 있다. - 휴가국 - 우스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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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코군은 후쿠오카현에 위치하며, 고대 지명 유래와 지쿠호 탄전 관련 시설 설치를 거쳐 현재 간다정과 미야코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 게이코 천황 - 야사카이리비메노미코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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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즈 도요히사는 1570년에 태어나 규슈 정벌 이후 사도와라성의 성주가 되었으며, 임진왜란과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전하여 용맹하게 싸우다 전사한 무장이다. - 미야자키현의 역사 - 사도와라번
사도와라번은 에도 시대 휴가국 나카군에 시마즈 씨족이 다스린 번으로, 1603년 시마즈 이사히사가 3만 석을 하사받아 사도와라성을 거점으로 독립하여 성립되었으며, 이후 고쿠다카 변화와 번 내 소동 등을 거쳐 메이지 유신을 맞이했다.
휴가국 | |
---|---|
지도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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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공식 명칭 | 히유가 국 (日向国) |
다른 이름 | 고슈 (向州) 닛슈 (日州) |
관습적 긴 이름 | 히유가 국 (Hyūga Province) |
상태 | 메이지 시대 이전 일본 |
수도 | 사이토 |
오늘날 | 미야자키현 |
소속 | 사이카이도 |
영역 | 미야자키현 |
국력 | 주코쿠 |
거리 | 엔코쿠 |
군 | 5군 28향 |
국부 | 미야자키현 사이토시 (히유가 국부 유적) |
국분사 | 미야자키현 사이토시 (히유가 국분사 유적) |
국분니사 | 미야자키현 사이토시 |
이치노미야 | 쓰노 신사 (미야자키현 고유 군쓰노 정) |
역사 | |
시작 연도 | 7세기 |
종료 연도 | 1871년 |
사쓰마 국 분리 | 사쓰마 국이 히유가 국에서 분리됨 |
사쓰마 국 분리 날짜 | 702년 |
오스미 국 분리 | 오스미 국이 히유가 국에서 분리됨 |
오스미 국 분리 날짜 | 713년 |
이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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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
로마자 표기 | Hyūga-no kuni |
일본어 표기 | 日向国 |
한자 표기 | 日向國 |
한국어 표기 | 휴가노쿠니 |
닛슈 | 日州 |
고슈 | 向州 |
2. 명칭 유래
日向|휴가일본어라는 명칭은 일본서기에 따르면 경행 천황이 이 지역을 두고 "해가 뜨는 쪽을 바로 향하고 있다"라고 말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4]
휴가국은 규슈 남동부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분고국, 서쪽으로는 히고국, 남쪽으로는 오스미국, 사쓰마국과 접해 있었다. 현재의 미야자키현 대부분과 가고시마현 일부(시부시시, 소오군 오사키정 등)를 포함하는 영역이었다.
초기에는 '히무카(ひむか)'로 불렸으나, 율령제 이후 '휴가(ひゅうが)'로 불리게 되었다.[5]
3. 지리
고사기에는 고대 규슈를 筑紫島(쓰쿠시시마) 또는 筑紫洲(쓰쿠시시마)라 불렀고[6] 백일별, 풍일별, 建日向日豊久士比泥別, 건일별의 4면이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日向国(히무카국)이 이 4면 중 어디에 있었는지는 여러 설이 있다.[7]
국부는 고유군에 있었다. 니시토시 오우마쓰의 테라사키 유적이 국부 터로 추정되었으나, 국가도 발견되었고, 고유군 내에서 국청의 건물이 조사되고 있다.
히무카 국부 터.
메이지 유신 직전의 영역은 현재의 미야자키현에서 니시토시의 일부(가미야게, 긴쿄, 야에, 나카오, 오야에, 사무카와), 고유군 기조정의 일부(나카노마타), 고유군 니시메라촌 전역을 제외하고, 가고시마현의 일부(아래)를 더한 지역에 해당한다.
미야자키현 내의 예외 지역은 히고국이었지만, 1872년 (메이지 5년)에 휴가국에 편입되었다. 가고시마현 내 지역 중 소오시 자이부정 시모자이부는 1871년 (메이지 4년)에, 그 외는 1897년 (메이지 30년)에 오스미국으로 이관되었다.
3. 1. 행정 구역
702년 하야토의 난의 단서가 된 사쓰마·다치의 반란으로, 현재의 가고시마현 서부는 분할되어 쇼코국(후의 사쓰마국)이 되었다.[9][5] 713년 4월 3일에는 기모츠쿠군, 아와군, 오스미군, 아이라군의 4군이 분할되어 오스미국이 되었다.[10][11]
8세기 후반, 휴가국은 5개 군과 8개 원으로 구성되었다.[12] 휴가국에는 '5군 8원'이라는 호칭이 있으며, 5개 군에 의한 행정 구획과 마사키인, 미마타인, 무사인, 신나인, 오비인, 도모치인, 쿠시마인, 구진인의 8원에 의한 조세 구획으로 나뉘어 통치되었다.
에도 시대 번에 대해서는 후술하지만, 미요라·시이바 지역이 히고와의 사이에서 근세 초기까지 애매했던 등의 영역 변화는 있었다.[5] 단, 군 구성은 메이지 초기까지 변화가 없었다.
3. 1. 1. 군
우스키군(臼杵郡), 고유군(児湯郡), 나카군, 미야자키군(宮崎郡), 쇼켄군이 휴가국에 속해 있었다.[12]
군 | 향 |
---|---|
우스키군 | 고히향, 하야히향, 고치호향, 도노향, 타카나베향 |
고유군 | 아미하라향, 기리시마향, 타치코도향, 사토하라향, 라이리시마향 |
나카군 | 나카가와향, 요시다향, 아케향, 세리모토향, 고헤이향 |
미야자키군 | 히데노향, 타이구향, 마쓰바라향, 아키야마향, 다니향, 미우라향 |
쇼켄군 | 켄향, 타카야향, 오리모토향, 타마야향, 사카모토향, 에다향 |
휴가국에는 '5군 8원'이라는 호칭이 있으며, 위의 5개 군에 의한 행정 구획과 마사키인, 미마타인, 무사인, 신나인, 오비인, 도모치인, 쿠시마인, 구진인의 8원에 의한 조세 구획으로 나뉘어 통치되었다.
1883년(메이지 16년) 미야자키현 재설치 시, 쇼켄군은 미야자키현에 속하는 키타쇼켄군과 가고시마현의 미나미쇼켄군(시부시향, 오사키향, 마쓰야마향의 3향)으로 분할되었다. 다음 해에 미야자키현의 키타쇼켄군으로부터 니시쇼켄군·히가시쇼켄군이 분립되었고, 나카군은 기타나카군·미나미나카군, 우스키군은 히가시우스키군·니시우스키군으로 각각 분할되었다.
4. 역사
메이지 유신 직전 휴가국 영역은 오늘날 미야자키현에서 니시토시 일부, 고유군 기조정 일부, 고유군 니시메라촌을 제외한 지역과 가고시마현 소오시, 시부시시, 소오군 오사키정을 포함했다.
1872년 (메이지 5년) 히고국이었던 미야자키현 내 일부 지역이 휴가국에 편입되었다. 가고시마현 내 지역 중 소오시 자이부정 시모자이부는 1871년 (메이지 4년), 그 외 지역은 1897년 (메이지 30년) 오스미국으로 이관되었다.
4. 1. 고대
일본 구석기 시대 유적이 발견되었으며, 조몬 시대에는 주홍색 안료로 만든 붉은색 토기가 제작되었다.[14] 야요이 시대에는 청동기 유물은 적지만, 철기가 출토되었다.[16]『고사기』와 『일본서기』에는 천손강림 신화 등 휴가국을 배경으로 하는 많은 이야기가 등장한다. 아마테라스오미카미와 스사노오의 손자인 니니기가 다카치호 봉우리에 강림했다는 천손강림 일화, 니기하야히가 십종의 신보를 받아 긴키 지방에 벼농사를 전했다는 일화, 히코호호데미노미코토(산幸彦)가 형 히코호호데미노미코토(해幸彦)를 벌했다는 산幸彦과 해幸彦 일화 등이 있다.
짐무 천황은 휴가국에서 동쪽으로 원정을 떠나 야마토를 정복하고 야마토 왕조를 세웠다고 전해진다.[17] 그러나 짐무 천황이 원래 휴가의 지배자였는지 여부는 고대 기록과 신화에서 불분명하다.
고분 시대에는 사이토바루 고분군 등 기내 양식의 고분이 축조되었다.[18] 『고사기』와 『일본서기』에서 휴가는 구마소의 땅이라고 불리며, 야마토타케루 또는 그의 아버지 경행 천황이 구마소 세력을 정벌했다는 기록이 있다.[17]
7세기 말 율령제 하에서 휴가국이 설치되었으며, 초기에는 사쓰마국과 오스미국을 포함하는 넓은 지역이었다. 702년 사쓰마국,[9] 713년 오스미국이 분리되었다.[10] 하야토족의 반란이 여러 차례 일어났으며, 720년에서 721년에 걸쳐 하야토의 난이 발생했다.[17] 8세기 전반에는 후지와라노 우마카이에 의해 『휴가 국 풍토기』가 편찬되었다.
나라 시대와 헤이안 시대의 국부는 고유군에 있었지만, 정확한 위치는 불확실하다. 현재 사이토시에 있는 테라사키 유적이라고 추정되지만, 이 확인은 불확실하다. 이 국의 국분사는 사이토에 있던 휴가 국분사였다.
4. 2. 중세
1185년(문치(文治) 원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서자였을 가능성이 있는 다다히사 고레무네는 규슈 남부에 위치한 큰 쇼엔 영지인 시마즈 장원의 ''지토''로 임명되었다.[2] 그는 "시마즈"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그의 씨족은 이후 800년 동안 규슈 남부를 지배하게 된다. 1197년, 다다히사는 사쓰마, 오스미와 함께 휴가의 ''슈고''로 임명되었다.[2] 그러나 1203년에 다다히사는 사쓰마 국으로 축소되었고, 휴가는 호조 씨에게 넘어갔지만, 우사 하치만구가 휴가의 북부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가마쿠라 시대 고케닌(御家人)인 이토 씨가 지두직을 얻어 기존의 세력과 대립하면서 지배를 확립해 나갔다.
남북조 시대에는 이 지역은 수많은 반독립적인 봉건 영지로 분열되어, 북조와 남조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충성심을 보였다. 휴가는 북쪽의 분고 출신의 오토모 씨, 남쪽의 시마즈 씨, 그리고 중앙의 오비에서 지배하는 이토 씨 사이의 격전장이 되었다.[2] 규슈 탐제가 남큐슈에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마침내 휴가 국의 슈고직은 시마즈 씨가 세습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국적인 예와 다름없이, 휴가 국도 군웅할거의 상황이 되었다.
무로마치 시대 중기까지 북부는 쓰치모치 씨, 중부는 이토 씨, 남서부는 기타하라 씨, 남동부는 호슈 시마즈 씨, 기타고 씨, 니이나 씨 등 시마즈 일족을 중심으로 각지의 국인 영주를 흡수하면서 세력 다툼이 전개되었다.
전국 시대가 되면 니이나 씨는 사쓰슈 시마즈 씨에 의해 영토를 빼앗기고, 기타하라 씨는 인척 관계에 있던 이토 요스케에 의해 선종과 진종으로 가중이 이분된 가운데 가독 문제에 이용당하여 오스미 국까지 미치던 전 영토를 빼앗긴다. 더욱이 요스케에 의해 호슈 시마즈 씨가 오비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이토 씨가 휴가 국의 주요 부분을 지배하게 되었으나, 1572년의 기자키하라 전투에 의해 이토 씨의 주요 신하가 다수 사망하였다. 멸망의 위기에 놓인 요스케는 분고의 오토모 요시시게에게 의지하였으나, 시마즈 씨가 1578년의 미미가와 전투에서 오토모 씨를 대파하고, 휴가 국 일대를 지배하게 되었다.[2]
4. 3. 근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규슈 정벌 이후, 휴가국은 여러 번으로 분할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노베오카 번, 다카나베 번, 사도와라 번, 오비 번 등 소규모 번들과 막부 직할령(천령)으로 나뉘어 통치되었다. 사쓰마 번과 히토요시 번도 휴가국 내에 영지를 소유하고 있었다.[2]
4. 4. 근대
메이지 유신 이후, 각 봉건 영지는 잠시 현(県)이 되었다. 1871년 12월, 오요도 강 북쪽 지역은 미미즈 현(美々須県)이 되었고, 남쪽 지역은 미야코노조 현(都城県)이 되었다. 1873년 1월 15일, 두 현을 합쳐 미야자키 현(제1차)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미야자키 현은 1876년 8월 21일 가고시마 현에 합병되었다.[3] 1883년 5월 9일, 가고시마 현에 남은 일부 국경 지역을 제외하고 다시 미야자키 현(제2차)으로 재편되었다.[3]이름 | 씨족 | 유형 | 고쿠다카(石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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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베오카 번 | 나이토 | 후다이(譜代) | 7만 석 |
다카나베 번 | 아키즈키 | 도자마(外様) | 2만 7천 석 |
사도와라 번 | 시마즈 | 도자마(外様) | 2만 7천 석 |
오비 번 | 이토 | 후다이(譜代) | 5만 1천 석 |
5. 문화
휴가국은 고사기, 일본서기 등에 등장하는 신화와 전설의 무대로서, 니니기노미코토의 천손강림 전설, 야마사치히코와 우미사치히코 이야기 등 다양한 신화가 전해진다.
연희식신명장에는 소사 4좌 4사가 기재되어 있는데, 이들은 '휴가 4사'라고 불리며 휴가국 내에서 특히 격식이 높은 신사로 여겨진다.
총사는 도만신사이며, 도농신사가 이치노미야(一宮)이다. 이궁 이하는 불명이지만, 도만신사가 이궁이라는 설도 있다.
휴가 국분사는 나라 시대에 건립된 사찰로, 미야자키현 니시토시 메카도마치 미야케코쿠분에 위치한다.
6. 주요 인물
- 시마즈 다다히사 : 가마쿠라 시대 초기의 무장으로, 시마즈 씨의 시조이다. 1197년 사쓰마(薩摩)・오스미(大隅) 및 히우가의 초대 수호직에 임명되었으나, 1203년 비키 요시카즈의 난에 연좌되어 삼주(三州) 수호직과 사쓰마국을 제외한 지두직을 박탈당했다.[1]
- 이토 스케히요 : 1587년부터 1600년까지 오비성(飫肥城)을 중심으로 5만 7천 석을 다스렸다. 세키가하라 전투 후에도 영지를 지켜 오비번(飫肥藩)으로 이어졌다.[1]
- 아케치 미쓰히데 : 1575년 (덴쇼 3년) 관직에 임명되었다.[1]
- 오토모 소린 : 1580년 쓰치모치 씨를 멸망시켰다.[1]
참조
[1]
서적
Japan Encyclopedia
https://books.google[...]
(Google Books)
[2]
서적
Annales des empereurs du japon
https://books.google[...]
(Google Books)
[3]
서적
Provinces and prefe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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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서적
宮崎県の歴史
山川出版社
[5]
서적
日本歴史地名大系 宮崎県の地名
平凡社
[6]
문서
국생미 비교표
[7]
서적
先代旧事本紀
[8]
문서
고사기·국생미 신화
[9]
서적
続日本紀
신일본고전문학대계
[10]
서적
続日本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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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日向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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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문서
향일국풍토기
[13]
웹사이트
遺跡で見る宮崎の歩み(旧石器~弥生)
https://www.miyaza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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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塚原遺跡(宮崎市国富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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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宮崎県の地名
山川出版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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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https://www.miyaza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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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日本歴史地名大系 宮崎県の地名
平凡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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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国史大辞典
吉川弘文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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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日本歴史地名大系 宮崎県の地名
[20]
서적
日本歴史地名大系 宮崎県の地名
平凡社
[21]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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