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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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휴먼 리그는 1977년 영국 셰필드에서 결성된 신스팝 밴드이다. 1970년대 후반 뉴 웨이브 시기에 신시사이저를 활용한 음악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1981년 앨범 『Dare』를 통해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Don't You Want Me"는 영국과 미국에서 1위를 차지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에도 "Human" 등의 히트곡을 발표하며 일렉트로팝 음악에 영향을 미쳤으며, 여러 차례 투어와 앨범 발매를 통해 활동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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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리그 - [음악 그룹]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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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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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셰필드, 사우스요크셔 주, 잉글랜드 |
장르 | 신스팝 뉴 웨이브 전자 음악 뉴 팝 |
활동 기간 | 1977년 – 현재 |
레이블 | Fast Product Wall of Sound Virgin A&M East West Papillon |
관련 그룹 | Heaven 17 |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이전 이름 | The Future (1977년) The Men the League the League Unlimited Orchestra (1982년) |
구성원 | |
현재 구성원 | 필립 오키 조안 캐더럴 수잔 앤 설리 |
이전 구성원 | 이언 크레이그 마쉬 마틴 웨어 필립 에이드리언 라이트 이언 버든 조 칼리스 짐 러셀 |
2. 역사
1977년, 영국 셰필드에서 더 퓨처(The Future)를 해산한 이안 크레이그 마시와 마틴 웨어가 당시 병원에서 근무하던 음악 경험이 없는 필립 오키를 설득하여 밴드를 결성했다. 이후 오키의 친구이자 영상 담당인 에이드리언 라이트를 영입하여 휴먼 리그라는 이름으로 1979년에 데뷔했다[57]. 뉴 웨이브 붐 속에서 신시사이저와 시퀀서를 이용한 신스팝 유닛으로 활동하며 초기 두 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음악적 갈등으로 마시와 웨어가 탈퇴하여 헤븐 17을 결성하자, 남은 오키와 라이트는 새로운 멤버를 영입하여 밴드를 재편했다. 신시사이저 연주자 이안 버든과 조 칼리스, 그리고 셰필드의 나이트클럽에서 발굴한 가수 경험이 없는 두 여학생 조앤 캐트럴과 수잔 앤 샐리를 보컬리스트로 영입하여 1981년에 앨범 『데어(Dare!)』를 발표했다[57].
이 앨범의 싱글 '''「사랑의 불꽃 (Don't You Want Me)」'''는 1981년 영국 싱글 차트 1위, 이듬해 미국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하며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어 발매된 「미러 맨(Mirror Man)」, 「패시네이션((Keep Feeling) Fascination)」은 모두 영국 싱글 차트 2위를 기록했다. 뮤직 비디오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프로모션 전략은 제2차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선구적인 역할을 하는 데 기여했다. 1986년에는 잼 & 루이스를 프로듀서로 영입하여 발표한 「휴먼(Human)」이 다시 미국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 1995년에 발매된 「텔 미 웬(Tell Me When)」은 영국 싱글 차트 6위에 오르는 등 꾸준한 활동을 이어갔다[58][59].
2. 1. 1970년대: 초기

휴먼 리그라는 이름 이전에는 두 가지 다른 형태의 밴드를 거쳤다.[7] 1977년 초, 마틴 웨어와 이안 크레이그 마시는 청소년 예술 프로젝트 '미트휘슬(Meatwhistle)'에서 만나 컴퓨터 운영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글램 록, 탐라 모타운 같은 팝 음악과 아방가르드 전자 음악을 결합한 음악을 추구했다. 1970년대 중반 전자 부품 가격 하락으로 장비 구매가 용이해지자, 웨어와 마시는 Korg 700S 신시사이저를 구입해 연주법을 익혔다. 친구의 21번째 생일 파티 초대를 계기로 비공식 밴드 '데드 도터스(The Dead Daughters)'를 결성했고, 영국 TV 시리즈 닥터 후의 주제곡 연주가 주요 레퍼토리였다.[7]
몇 차례 비공식 공연 후, 웨어와 마시는 공식 밴드 결성을 결정했다. 친구 아디 뉴턴과 Roland System-100 신시사이저를 추가하여 '더 퓨처(The Future)'를 결성, 셰필드 중심가의 폐쇄된 식기 공장에 리허설 공간을 마련했다. 더 퓨처는 당시 계약이나 상업적 음반 발매는 하지 못했으나, 이 시기 데모는 2002년 리처드 X가 믹싱하여 ''The Golden Hour of the Future''라는 제목의 CD로 발매되었다.[7] 아디 뉴턴은 오래지 않아 밴드를 떠나 Clock DVA를 결성했다. 웨어는 키보디스트 대신 보컬리스트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음반사들이 '판매 가능한' 곡이 없다는 이유로 더 퓨처와의 계약을 꺼렸고, 상업적 성공을 위해 재능 있는 보컬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한, 밴드는 신시사이저 두 대만 보유하고 있어 세 번째 신시사이저를 구매할 여력이 없었다.[7]
웨어와 마시는 보컬리스트를 물색했으나 첫 번째 후보였던 글렌 그레고리는 합류하지 못했다(그는 후에 Heaven 17의 리드 싱어가 되었다). 웨어는 학창 시절 친구였던 필립 오키에게 합류를 제안하기로 했다. 당시 병원 운반원으로 일하던 오키는 독특한 옷차림으로 셰필드 사교계에서 알려져 있었다. 음악적 경험은 전무했지만, 웨어는 "이미 팝스타처럼 보였다"며 그가 더 퓨처의 리드 싱어로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8] 웨어가 연락했을 때 오키는 부재중이었고, 현관문에 더 퓨처 합류를 요청하는 쪽지를 남겼다.[7] 오키는 제안을 수락했지만 초기 연습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관객 앞에서 노래한 경험이 없었고, 키보드를 연주할 줄 몰랐으며, 거의 연주하지 못하는 색소폰만 가지고 있었다. 웨어와 마시의 데모를 듣던 중 영감을 받아 가사를 썼는데, 이것이 훗날 싱글 "Being Boiled"가 되었다.
새로운 라인업, 사운드, 보컬리스트를 갖추게 되자 웨어는 밴드에 새 이름이 필요하다고 결정했다. 이는 음반사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기회이기도 했다. 웨어는 공상 과학 보드 게임 ''스타포스: 알파 센타우리''에 등장하는 그룹 이름에서 따온 "더 휴먼 리그(The Human League)"를 제안했다. 게임 속 휴먼 리그는 서기 2415년에 등장하며 지구로부터 더 많은 독립을 원하는 개척 지향 사회였다. 오키와 마시가 동의하여 1978년 초, 더 퓨처는 더 휴먼 리그가 되었다.[7]
더 퓨처 시절의 자료를 활용하여 휴먼 리그는 새 이름으로 음반사에 데모 테이프를 보냈다. 테이프에는 "Being Boiled", "Toyota City", "Circus of Death" 버전이 포함되어 있었다. 셰필드의 뉴 웨이브 밴드 "2.3" 소속이자 웨어의 친구인 폴 바우어는 밥 라스트의 에든버러 기반 독립 레이블 Fast Product를 위해 싱글을 녹음한 경험이 있었는데, 그가 휴먼 리그의 데모를 라스트에게 전달했고, 라스트는 밴드와 계약했다.
밴드는 1978년 6월 첫 싱글 "Being Boiled"를 발매했다. 이는 Fast Product 레이블의 세 번째 발매작이었다. 독특하고 당시 시장의 다른 음악들과 차별화되어 한정 발매되었지만, 밴드를 지지했던 음악 잡지 ''NME''에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게스트 리뷰어였던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의 존 라이든은 밴드를 "유행을 좇는 히피"라고 비난했다.[9]

비평가들의 호평에 힘입어 밴드는 1978년 6월 12일, 셰필드의 Psalter Lane Art College(후에 셰필드 할람 대학교) Bar 2에서 첫 라이브 공연을 가졌다. 기술과 테이프 기계에 의존했던 밴드는 라이브 공연에 대해 불안감을 느꼈고, Psalter Lane 공연 이후 자신들의 무대가 정적이고 영감을 주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오키의 친구이자 예술 및 사진 배경을 가진 필립 애드리안 라이트가 슬라이드, 영상 클립, 조명을 통해 무대 공연에 활기를 불어넣는 밴드의 비주얼 디렉터로 합류하게 되었다.
1978년 8월, 밴드는 존 필 세션을 녹음했으며, 여기에는 "Being Boiled"의 재작업 버전이 포함되었다.[10]
밴드의 라이브 공연은 점차 인기를 얻었고, 1978년 9월 초부터 더 레질로스(미래의 밴드 멤버 조 칼리스가 속해 있던)와 수지 앤 더 밴시즈의 서포트 공연 요청을 받았다. 1978년 12월에는 데이비드 보위가 관객으로 참석하여 후에 ''NME''에 "팝 음악의 미래를 보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7][11]
1979년 4월, 휴먼 리그는 Fast Product 레이블에서 4개의 실험적인 기악곡이 담긴 첫 EP ''The Dignity of Labour''를 발매했다. EP는 차트 진입에 실패했지만, 메이저 음반사들이 Fast 레이블에서 그들을 영입하기 위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1979년 5월, 밴드는 리처드 브랜슨의 Virgin Records의 제안을 수락했다. 레이블의 초기 지원에 힘입어 밴드는 밥 라스트에게 밴드 매니저직을 제안했다.[7]
1979년 6월, 휴먼 리그는 이기 팝의 유럽 투어를 지원한 후 Virgin 레이블에서의 첫 싱글 녹음을 시작했다. Virgin은 창작의 자유를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첫 싱글에 대해 더 상업적인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밴드 스타일에 큰 변화를 요구했다. 레이블은 밴드가 신시사이저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악기와 보컬을 사용할 것을 주장했다. 상당한 계약금을 받은 웨어는 이를 거절할 입장이 아니었지만, 이 스타일의 모든 발매는 가명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7]
Virgin Records에서 발매된 밴드의 첫 싱글은 디스코 영향을 받은 "I Don't Depend on You"로, 1979년 7월 "'''더 멘(The Men)'''"이라는 가명으로 발매되었다. 싱글은 차트에 오르지 못했고 휴먼 리그의 이전 작업과는 거의 관련이 없었다. 하지만 이 싱글에는 게스트로 참여한 리사 스트라이크(Liza Strike)와 케이티 키슨(Katie Kissoon)의 여성 보컬이 포함되어 있어, 훗날 1981년의 휴먼 리그 사운드를 예견하는 듯했다.[12]
강요된 스타일이 효과가 없자 Virgin은 밴드가 원래 스타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했고, 밴드는 1979년 8월 첫 정규 스튜디오 앨범 ''Reproduction''을 녹음하여 발매했다. 앨범과 싱글 "Empire State Human"은 차트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러한 실패 이후 Virgin은 1979년 12월 밴드의 투어를 취소했다. 이 시점에서 휴먼 리그는 영국 전자 음악의 선구자로서의 입지를 게리 뉴먼에게 빼앗긴 상태였다. 뉴먼의 싱글 "Are 'Friends' Electric?"은 1979년 중반 영국에서 큰 히트를 기록했다.[13]
이 기간 동안 사용된 장비는 Roland Jupiter 4, Korg 770, Roland System 100 (101 키보드 1개, 102 익스팬더 2개, 104 시퀀서 2개, 103 믹서 1개 포함) 및 리듬/드럼 파트를 위한 테이프 백킹이었다.
2. 2. 1980년대: 라인업 변화와 인기 상승

1980년대 초, 필립 오키와 마틴 웨어의 관계는 창작 및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 불안정했다. 당시 게리 뉴먼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부족한 성공도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웨어는 순수한 전자 사운드를 고수하려 했지만, 오키는 더 대중적인 팝 사운드를 원했다. 결국 1980년, 웨어는 밴드를 떠났고, 그를 지지했던 이언 크레이그 마시도 함께 탈퇴했다.[16] 매니저 밥 라스트의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오키가 휴먼 리그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고 웨어와 마시는 새로운 밴드 Heaven 17을 결성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영국/유럽 투어를 불과 2주 앞두고 일어난 일이었다.[7]
휴먼 리그 이름을 지키는 대가로 오키는 밴드의 모든 부채와 계약 이행 책임을 떠안게 되었다. 또한, 버진 레코드와의 계약에 따라 다음 앨범 로열티의 1%를 웨어와 마시에게 지급해야 했다. 예정된 투어는 취소 위기에 놓였고, 음악 언론은 재능 있는 멤버들이 떠났기에 휴먼 리그는 끝났다고 보도했으며, 프로모터들은 계약 불이행 시 오키를 고소하겠다고 위협했다.
투어를 성사시키기 위해 오키는 며칠 안에 새로운 멤버를 구해야 했다. 그는 고음 백 보컬을 담당했던 웨어를 대체할 여성 보컬리스트를 찾기 위해 여자친구와 함께 셰필드 시내의 크레이지 데이지 나이트클럽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춤을 추고 있던 17세 여학생 수잔 앤 설리와 조앤 캐더럴을 발견하고 즉석에서 투어 합류를 제안했다. 두 사람은 전문적인 가수나 댄서 경험이 전혀 없었다.[17] 오키는 두 사람이 친구 사이이므로 투어 중 서로 의지할 수 있고, 여성 멤버 두 명이 밴드에 화려함을 더할 것이라 생각했다. 오키와 애드리안 라이트는 설리와 캐더럴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했고, 안전을 책임지겠다는 약속 하에 승낙을 얻었다. 또한 투어 경험이 교육적일 수 있다는 점을 학교 측에 설득하기도 했다.[18] 오키는 키보디스트 웨어와 마시를 대체하기 위해 셰필드 신스 밴드 그래프 출신의 전문 음악가 이언 버든을 투어 세션 연주자로 고용했다.
투어는 예정대로 진행되었으나, 음악 언론은 "오키와 그의 댄스 걸"이라며 새로운 라인업을 조롱했다. 투어가 끝난 후 버든은 다른 활동을 위해 잠시 떠났고, 오키는 설리와 캐더럴의 전문성을 인정하여 정식 멤버로 영입하고 급여를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1981년 초, 밴드는 여전히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버진 레코드의 압박 속에 결과를 내야 했다. 2월에는 싱글 "Boys and Girls"를 서둘러 발매했다. 설리와 캐더럴은 녹음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싱글 표지에는 등장했다. 이 싱글은 영국 차트 47위를 기록하며 당시 밴드의 최고 성적을 거두었다. 오키는 전문 음악가의 필요성을 느끼고 이언 버든에게 다시 연락하여 시험 멤버로 합류를 제안했다.
버진 레코드는 밴드에 전문 프로듀싱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3월에 베테랑 프로듀서 마틴 루셴트를 소개했다. 루셴트는 밴드를 셰필드의 스튜디오에서 벗어나 리딩의 제네틱 스튜디오로 옮겼다. 이곳에서 작업한 첫 결과물인 싱글 "The Sound of the Crowd"는 영국 차트 12위에 오르며 밴드 최초의 톱 40 히트곡이 되었다.
밥 라스트는 전문 음악가를 더 보강할 필요성을 느껴 1981년 4월, 자신의 동료이자 The Rezillos 출신인 조 캘리스를 영입하여 최종 라인업을 완성했다. 이후 발매된 싱글 "Love Action (I Believe in Love)"는 1981년 8월 영국 차트 3위를 기록했다. 밴드는 루셴트의 프로듀싱 하에 기존 자료와 데모를 정리하여 앨범 작업에 착수했고, 학교를 막 졸업한 설리와 캐더럴은 대학 진학 계획을 미루고 앨범 작업에 합류했다.
이 시기 밴드의 상업적 성공으로 인해 초기 앨범 ''Reproduction''과 ''Travelogue''가 다시 차트에 진입하여 각각 34위와 30위권에 올랐고, 두 앨범 모두 골드 인증을 받았다. 1981년 10월에는 싱글 "Open Your Heart"를 발매하여 또 다른 톱 10 히트를 기록했다. 같은 달 발매된 새 앨범 ''Dare''는 영국 앨범 차트 1위에 올랐고, 총 4주간 1위를 지키며 77주 동안 차트에 머물러 트리플 플래티넘을 달성했다.
''Dare''의 성공에 힘입어 버진 레코드의 임원 사이먼 드레이퍼는 1981년 말 네 번째 싱글 발매를 지시했다. 그가 선택한 곡은 "Don't You Want Me"였는데, 오키는 이 곡을 앨범에서 가장 약한 트랙이라고 생각하며 발매를 반대했다. 그러나 드레이퍼의 결정으로 1981년 11월 싱글은 발매되었고, 영화 제작자 스티브 배런이 감독한 고가의 뮤직 비디오(당시로서는 드문 시도)와 MTV의 영향력에 힘입어 1981년 크리스마스 시즌 동안 5주간 영국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오키는 나중에 인터뷰에서 MTV가 없었다면 1위를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19] "Don't You Want Me"는 영국에서 약 150만 장이 팔리며 밴드의 가장 큰 히트곡이 되었다.[20] ''Dare''는 이후 팝 음악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앨범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21] AllMusic의 스티븐 토마스 얼와인은 이 앨범에 별 다섯 개를 부여하며 "기술은 구식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토록 감정적으로 효과적인 방식으로 기술을 조작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평했다.
비록 후대에 뉴 로맨틱 운동과 연관되기도 하지만,[22] 밴드 자신은 이러한 분류를 일관되게 거부했다.[23] 휴먼 리그가 형성된 셰필드 씬은 뉴 로맨티시즘보다 앞섰으며 크라프트베르크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당시 셰필드 씬의 밴드들은 퓨처리스트라고도 불렸으나,[24] 오키는 "우리는 셰필드에서 가장 펑키한 밴드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25]
앨범과 싱글의 성공에 힘입어 초기 곡 "Being Boiled"가 재발매되어 1982년 초 영국 톱 10에 진입했다. 밴드는 처음으로 함께 해외 투어를 진행했다. 동시에 ''Dare''(미국에서는 ''Dare!''로 발매)가 A&M 레코드를 통해 미국에 발매되었고, "Don't You Want Me"는 1982년 여름 미국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Dare''의 리믹스 앨범인 ''Love and Dancing''은 '''The League Unlimited Orchestra'''라는 이름(배리 화이트의 Love Unlimited Orchestra에 대한 오마주)으로 발매되어 영국 앨범 차트 3위에 올랐다.
1982년, 밴드는 브릿 어워드에서 최우수 영국 신인상을 수상했고, 루셴트는 ''Dare'' 작업으로 최우수 프로듀서상을 받았다. 1982년 11월, 모타운의 영향을 받은 일렉트로팝 싱글 "Mirror Man"은 영국 차트 2위를 기록했다.[20]
1983년 2월, 밴드는 제25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신인 아티스트 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은 Men at Work에게 돌아갔다.[26] 후속 싱글 "(Keep Feeling) Fascination"은 1983년 4월 발매되어 영국 2위, 미국 빌보드 차트 8위를 기록했다. 이후 밴드는 ''Dare''의 후속 앨범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Mirror Man", "Fascination"과 신곡 "I Love You Too Much"를 포함한 6곡짜리 EP ''Fascination!''이 미국에서 임시방편으로 발매되었고, 영국에서도 수입반으로 인기를 끌었다.[20]
1983년 8월, 밴드는 VCR 보급에 발맞춰 "영국 최초의 비디오테이프 싱글"인 ''The Human League Video Single (1983)''을 발매했다.[27] VHS 또는 베타맥스 테이프에 "Mirror Man", "Love Action (I Believe in Love)", "Don't You Want Me" 세 곡의 뮤직 비디오를 담았다.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1983년 12인치 비닐 싱글의 평균 가격인 1.99GBP에 비해 10.99GBP에 판매), 그 형식은 인기를 얻었고 다른 아티스트들도 자체적으로 비디오 싱글/EP를 발매하기 시작했다.
''Dare''의 후속작 제작은 난항을 겪었고, 스트레스가 심해지면서 프로듀서 마틴 루셴트가 프로젝트에서 하차했다. 밴드는 기존 녹음 자료 대부분을 폐기하고 새로운 프로듀서 Hugh Padgham과 Chris Thomas와 함께 다시 시작했다(일부 트랙에는 루셴트의 기여가 포함됨).
마침내 1984년 5월, 레바논 내전을 다룬 싱글 "The Lebanon"을 발매하여 영국 차트 11위를 기록했다. 곧이어 발매된 앨범 ''Hysteria''는 길고 힘들었던 녹음 과정을 반영하여 이름 붙여졌다. 앨범은 영국 앨범 차트 3위로 데뷔했지만 더 이상 순위가 오르지 못했고, 밴드의 새로운 방향에 대해 비평가와 팬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두 번째 싱글 "Life on Your Own"은 1984년 중반에 발매되어 16위를 기록했다.
같은 해 말, 오키는 그의 우상 중 한 명인 신스 개척자 조르조 모로더와 협력하여 영화 ''일렉트릭 드림스''의 사운드트랙에 참여했고, 싱글 "Together in Electric Dreams"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곡은 휴먼 리그의 곡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하지만, 밴드는 이후 라이브 공연 레퍼토리에 포함시켰고 히트곡 컴필레이션 앨범에도 수록된다. 오키와 모로더는 버진 레코드를 통해 ''Philip Oakey & Giorgio Moroder'' 앨범을 함께 녹음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Together in Electric Dreams"의 성공에 힘입어 버진 레코드는 1984년 11월 ''Hysteria''의 마지막 싱글로 발라드 "Louise"를 발매했고, 영국 차트 13위를 기록했다.
''Hysteria'' 이후 그룹은 창작적인 정체기에 들어섰다. 주요 작곡가였던 조 캘리스가 떠났고, 드러머 짐 러셀이 합류했다. 매니저 밥 라스트도 사임했다. 1985년, 밴드는 프로듀서 콜린 서스턴과 함께 새 앨범 작업을 몇 달간 진행했지만, 또다시 스튜디오 내 갈등으로 인해 1985년 9월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28]
밴드의 부진에 우려를 느낀 버진 레코드는 미국의 유명 컨템포러리 R&B 프로듀서 듀오 지미 잼 & 테리 루이스와의 협업을 주선했다. 잼과 루이스는 재닛 잭슨, S.O.S. 밴드 등과의 작업으로 성공을 거둔 상태였고, 휴먼 리그의 미국 발매 음반을 듣고 협업에 관심을 보였다. 밴드 전체가 미니애폴리스로 가서 4개월간 녹음 세션을 진행했지만, 잼과 루이스가 원하는 사운드에 대한 확고한 생각 때문에 밴드가 준비한 곡 대부분이 거절당하는 등 창작적인 충돌이 많았다.
그 결과물인 앨범 ''Crash''는 1986년에 발매되었다. 앨범에는 잼과 루이스 팀이 작곡한 곡이 다수 포함되었고, 그들의 특징적인 야마하 DX7 사운드가 두드러졌다. 싱글 "Human"은 미국 차트 1위, 영국 차트 8위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다른 싱글들은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앨범 자체는 영국 톱 10에 진입했지만 이전 앨범만큼의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미니애폴리스 작업 과정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밴드의 방향에 실망한 애드리안 라이트는 밴드를 떠나 영화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Crash''는 영국보다 미국 등 해외에서 더 큰 인기를 얻었고, 밴드는 1986년과 1987년에 영국 및 해외 투어를 진행했다.
1987년에는 이언 버든도 밴드를 떠났다. 1988년 11월, 최고 히트곡 컴필레이션 앨범이 발매되어 영국 차트 3위에 올랐다. 이 앨범 발매에 앞서 ''Crash'' 앨범의 싱글이었던 "Love Is All That Matters"가 싱글로 다시 발매되었다.
1989년, 밴드는 오키와 셰필드 시의회의 사업 개발 대출 공동 투자로 셰필드에 자체 스튜디오를 건설했다.
2. 3. 1990년대: 추가적인 녹음
1990년, 밴드는 버진 레코드에서 ''Romantic?'' 앨범을 발매했다. 이는 버진 레코드에서의 마지막 앨범이 되었다. 이 시기 오랜 멤버였던 에이드리언 라이트와 이안 버든, 그리고 새로운 멤버였던 짐 러셀이 밴드를 떠났다. 반면, 전 멤버 조 칼리스는 일부 세션에 참여하여 "Heart Like a Wheel" 등 두 곡을 공동 작곡했다. 1986년 Crash 투어에 참여했던 키보디스트 닐 서튼과 기타리스트 겸 키보디스트 러셀 데넷이 새롭게 합류했다. 당시 음악계는 미국의 그런지와 맨체스터 씬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와 다른 스타일의 ''Romantic?'' 앨범은 1980년대 밴드의 큰 상업적 성공을 재현하지 못했다. 두 번째 싱글 "Soundtrack to a Generation" 역시 차트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다.1992년, 버진 레코드는 갑작스럽게 밴드와의 음반 계약을 해지했다. 앨범의 실패, 음반사와의 결별, 언론의 비판, 재정적 어려움 등으로 인해 오키와 설리의 정신 건강이 크게 나빠졌다.
몇 년 후, 밴드는 자신감을 회복하고 다른 음반사에 데모를 보내기 시작했다. 1993년에는 일본의 베테랑 일렉트로팝 밴드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MO)와 협력하여 EP "YMO Versus The Human League"를 발매했다. 이 EP는 1993년 4월 주로 일본과 아시아 지역에서 발매되었으며, YMO의 곡 "Behind the Mask"와 "Kimi Ni Mune Kyun" (''"I Love You"'')의 커버 버전을 담고 있다. 이 곡들에서는 설리와 캐서럴이 보컬을 맡았다.[29]
1994년, 타임 워너의 자회사인 이스트웨스트 레코드가 밴드의 데모와 버진 레코드에서 거절당했던 자료에 관심을 보였다. 이스트웨스트는 밴드와 계약을 맺고, 테어스 포 피어스 출신의 프로듀서 이안 스탠리와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이스트웨스트는 고가의 뮤직 비디오 제작을 지원하고 앨범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첫 결과물은 1994년 성탄절에 발매된 싱글 "Tell Me When"이었다. 이 곡은 1986년 "Human" 이후 밴드에게 첫 영국 10위권 히트를 안겨주었으며, 영국 에어플레이 차트에서도 여러 주 동안 1위를 차지했다. 뒤이어 발매된 앨범 ''Octopus'' 역시 영국 앨범 차트 10위권에 다시 진입했고, 골드 디스크 인증을 받았다.
이 시기 앨범 커버 아트워크와 뮤직 비디오에서는 오키, 캐서럴, 설리 세 명의 멤버만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실제 녹음에는 프로듀서 이안 스탠리를 비롯한 다른 음악가들도 참여했으며, 닐 서튼과 러셀 데넷은 계속해서 연주와 작곡에 기여했고, 오키는 조 칼리스와 한 곡을 공동 작곡하기도 했다.
''Octopus'' 앨범의 다음 싱글은 설리가 리드 보컬을 맡은 발라드 "One Man in My Heart"였다. 이 곡은 영국 싱글 차트 13위를 기록했으며, 2011년 "Never Let Me Go"가 발매되기 전까지 여성 보컬만으로 이루어진 유일한 휴먼 리그 싱글이라는 특징을 가졌다.
새로운 성공에 힘입어 밴드는 1987년 이후 처음으로 투어를 재개하여 1995년 미국과 영국에서 공연을 펼쳤다. 이후 싱글 "Filling Up with Heaven"과 앨범 미수록 싱글 "Stay with Me Tonight"도 영국 40위권에 진입했다. 밴드의 인기가 다시 높아지자, 이를 활용하기 위해 1995년에는 "Don't You Want Me"의 새로운 리믹스가 발매되었고, 1996년에는 두 번째 베스트 앨범 ''Greatest Hits''가 출시되었으나 1988년의 첫 번째 베스트 앨범만큼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1998년, 이스트웨스트 레코드의 경영진 교체로 인해 밴드의 계약은 또다시 해지되었다. 이후 밴드는 컬처 클럽, 하워드 존스와 함께 VH1이 주최한 1980년대 음악 중심의 "Big Rewind" 투어에 공동 헤드라이너로 참여했으며[30], 1997년부터 2000년까지 다른 콘서트와 공개 활동을 이어갔다.
2. 4. 2000년대: 《Secrets》와 투어

2000년 5월, 밴드는 크리설리스 그룹의 자회사인 파피용 레코드와 계약하고 새 앨범 녹음을 시작했다.[31] 다음 앨범 ''Secrets''는 2001년 8월 발매되었다. 이전 앨범 ''Octopus''처럼 오키, 설리, 캐서럴 트리오로 소개되었지만, 닐 서튼이 키보드를 맡고 오키와 함께 대부분의 곡을 공동 작사, 작곡했다. 앨범은 평론가들에게 대체로 호평을 받았으나, 상업적으로는 영국 앨범 차트 44위에 그치고 다음 주 차트에서 벗어나며 실패했다. 설상가상으로 음반사인 파피용 레코드가 재정 문제를 겪다 모회사가 폐쇄되면서 앨범 발매 직후 홍보와 판매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BBC 라디오 1은 밴드 멤버들이 40대가 되었다는 이유로 방송국의 주 청취자층과 맞지 않는다며 싱글 "All I Ever Wanted"의 방송을 거부하기도 했다.
수잔 설리는 ''Secrets''의 실패를 "1992년 이후 밴드가 겪은 최악의 시기"라고 회고하며,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앨범이 실패하자 밴드 해체까지 고려했다고 밝혔다.[32]
앨범 홍보를 위해 밴드는 2001년 'Secrets Tour'를 진행했다. 설리, 캐서럴과 함께 닐 서튼이 키보드를 담당했다. 오랜 스튜디오 엔지니어였던 데이비드 비버스는 그의 이중 애플 Mac 컴퓨터 덱 뒤에서 시퀀서 제어를 위해 무대에 합류했고, 필립 오키는 셰필드 출신의 젊은 멀티 악기 연주자 닉 버크를 발탁하여 일렉트릭 기타와 키타를 연주하게 했다. 2002년에는 타악기 연주자 에롤 롤린스가 전자 드럼으로 합류했으며, 2004년 롭 바튼으로 교체되었다.
밴드는 립싱크를 하지 않고 항상 라이브로 연주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이는 2002년 영국 전국 TV 채널 GMTV 출연 당시 명확히 드러났다. 제작진은 밴드가 리허설을 위해 (3시간 일찍) 새벽 5시에 도착하자 놀랐는데, 립싱크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조앤 캐서럴은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는 20년 전과 같은 소리를 내지 않아요. 테이프를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을 라이브로 합니다."[33]
2003년, ''Secrets''의 두 번째 싱글인 "Love Me Madly?"가 휴먼 리그의 자료 발매를 위해 특별히 설립된 독립 레이블 누코브를 통해 개인적으로 출시되었으나, 홍보 자금 부족으로 차트 진입에는 실패했다.[34] 같은 해 버진 레코드는 과거 뮤직 비디오 대부분을 담은 DVD ''The Very Best of The Human League''를 발매했고, 이는 영국과 미국에서 좋은 판매를 기록했다. 동명의 컴필레이션 앨범도 함께 발매되었다.
이후 수년간 밴드는 꾸준히 투어를 이어가며 라이브 공연으로서의 성공과 인기를 유지했다. 2004년에는 브라이튼 돔 공연 실황을 담은 DVD The Human League ''Live at the Dome''을 발매했으며, Live at the Dome이라는 라이브 앨범 CD가 함께 제공되었다.
2005년 말, EMI와 함께 밴드는 리믹스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했다. ''The Human League Original Remixes and Rarities''라는 제목의 이 앨범은 미국과 영국의 DJ/댄스 시장을 겨냥했다.
전담 투어 외에도 밴드는 전 세계 많은 독립 콘서트와 페스티벌에 출연했다. 그들은 2004년과 2009년 V Festival에서, 2005년 Homelands에서, 2005년 브라질 Nokia Trends에서, 2007년 Festival Internacional de Benicàssim에서 공연했다.[35]
2006년 9월 22일, 밴드는 미국 네트워크 텔레비전 쇼 ''Jimmy Kimmel Live!''에서 공연했다. 밴드의 2006년 하이라이트는 2006년 10월 24일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보울에서 18,000명의 관객 앞에서 공연한 것으로, 현재까지 가장 큰 콘서트 중 하나였다. 이어서 2006년 11월과 12월에는 11개 도시 유럽 투어를 진행했다.

밴드는 채널 4의 ''Made in Sheffield''와 BBC의 ''Young Guns: The Bands of the Early 1980s''를 포함하여 다양한 TV 다큐멘터리와 특집 프로그램의 주제가 되었고 출연하기도 했다. 2007년 6월, 설리와 캐서럴은 VH1을 위해 셰필드의 팝 음악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The Nation's Music Cities"를 진행했다.
2007년 11월과 12월, 밴드 결성 30주년(1977-2007)을 기념하여 밴드는 2001년 Secrets 투어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의 투어를 진행했다. 'Dare! 2007' 투어는 런던에서 스톡홀름까지 20개 유럽 도시를 포함했으며, 대부분 매진되었다. 그들의 세트리스트에는 (사상 처음으로) ''Dare'' 앨범 전곡을 순서대로 연주하는 공연이 포함되었다. 여기에는 필립 오키가 1981년 오리지널 Casio VL-Tone으로 "Get Carter"의 테마를 휴먼 리그의 기악 편곡으로 연주하는 것이 포함되었다. 콘서트의 나머지 부분은 밴드의 다른 앨범의 노래에 할애되었으며, 오키/모로더의 노래 "Together in Electric Dreams"도 포함되었다. 밴드는 투어를 위해 무대 세트와 조명에 많은 투자를 했으며, 세트 디자이너 롭 싱클레어가 제공한 정교한 고화질 비디오 배경을 포함했다.[36]
"Things That Dreams Are Made Of"(원래 ''Dare!'' 앨범 수록곡)의 12인치 싱글 리믹스는 2008년 1월 영국에서 Hooj Choons에 의해 발매되었다. 이 싱글은 영국 댄스 차트에서 2위를 기록했다.
2008년 8월과 9월, 밴드는 ABC, A Flock of Seagulls, Naked Eyes, 그리고 일부 공연에서는 벨린다 칼라일의 지원을 받아 미국 Regeneration Tour의 헤드라이너를 맡았다.
2008년 11월과 12월, 휴먼 리그는 마틴 프라이의 ABC와 Heaven 17과 함께 영국에서 'The Steel City Tour'를 진행했다. 이는 1980년대 초 셰필드 (제목의 Steel City)의 오리지널 전자 음악을 기념하는 세 밴드의 공동 투어에 대한 필립 오키의 컨셉이었다. 영국 언론에서는 1980년의 원래 사건과 현재 함께 작업하고 있다는 사실, Heaven 17과 휴먼 리그 사이의 역사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오키와 마틴 웨어는 그 시대의 어떤 앙금도 오래 전에 잊혀졌다고 말했다.[37]
휴먼 리그는 2009년 5월 30일 뉴캐슬/게이츠헤드 에볼루션 페스티벌에서 스필러스 워프 라인업의 헤드라인 아티스트 중 하나였으며, 2009년 11월 5일부터 7일까지 두바이에서 열린 첫 뮤직 페스티벌 '두바이 사운드 시티'의 헤드라인 밴드 중 하나였다.
2009년 12월 11일, 휴먼 리그는 영국 기반 레이블 Wall of Sound와 새로운 음반 계약을 체결했다.[38] 그들은 또한 셰필드에 자체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으며[39], 매니지먼트는 Sidewinder Management Ltd.가 담당하고 있다. 밴드는 계속해서 음반을 녹음하고 라이브 공연을 하며 전 세계 음악 페스티벌에 정기적으로 출연하고 있으며, 많은 페스티벌에서 헤드라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은퇴에 대한 질문이 인터뷰에서 자주 나오지만, 오키, 설리, 캐서럴은 모두 여전히 공연을 즐기며 "콘서트가 매진되고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싶어하는 한" 계속 활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설리는 "다른 방법은 모른다"며 농담했다.[40]
2. 5. 2010년대: 《Credo》와 추가 투어

새 앨범, ''크레도''가 2011년 3월에 발매되었다.[41] 이 앨범은 영국 음반 차트에서 44위를 기록했다.
이 앨범의 첫 번째 싱글 "나이트 피플"은 2010년 11월 22일에 발매되었지만, 영국 주류 차트에는 진입하지 못했다. 하지만, 영국 인디 차트에서는 25위를 기록했다. 후속 싱글 "Never Let Me Go"는 2011년 3월 1일에 영국에서 발매되었고,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에서는 "Egomaniac"이 두 번째 싱글로 선정되었다. ''크레도''의 더블 바이닐 에디션은 2011년 7월 25일에 발매되었고, 앨범의 세 번째 싱글 "Sky"는 다운로드 형태로 공개되었다.
2012년 말, 밴드는 3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유럽과 영국에서 'XXXV 투어'를 진행했다. 이 공연들은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지구상 어디에서든 찾을 수 있는 최고의 밤의 엔터테인먼트"라고 평했다.[42]
2014년 3월, "Don't You Want Me"는 애버딘 FC 팬들의 소셜 미디어 캠페인 덕분에 영국 싱글 차트 20위권에 재진입했다. 애버딘 FC는 바로 전 주말에 스코틀랜드 리그 컵에서 우승했다. 그들은 이 곡을 응원가로 채택했으며, 미드필더 피터 파울렛의 이름을 따 가사를 "피터 파울렛 베이비"로 바꾸었다.[43]
2016년, 밴드는 같은 이름의 멀티 디스크 앤솔로지 발매에 맞춰 'A Very British Synthesizer Group' 유럽 및 영국 투어를 진행했다.[44] 2018년 겨울, 그들은 유럽과 영국에서 광범위한 'Red Tour'를 진행했다.
2019년, 2001년 앨범 ''시크릿''의 '디럭스' 버전이 발매되었다.
2. 6. 2020년대: 추가 발매와 기념 투어
2020년에는 1995년 앨범 ''Octopus'' 발매 25주년을 기념하여 디럭스 에디션이 발매되었다. 같은 해, 버진 레코드 시절의 곡들을 모은 3 디스크 'Essential' 컬렉션이 발매되어 영국 앨범 차트 13위에 올랐다. 이 컴필레이션은 세 번째 디스크가 처음 두 트랙을 제외하고 밴드의 ''Dare'' 앨범 이전 자료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2021년, 밴드는 'Dare 40' 유럽 및 영국 투어를 시작했다. 이 투어에서는 ''Dare'' 앨범 전체와 이전 앨범의 다른 곡들을 연주했다.[45]
2023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서 열린 크루얼 월드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 중 하나로 참여했으나, 폭풍으로 인해 공연을 중단해야 했다.[46]
2024년 3월, 그룹은 호주에서 9회 투어를 진행했으며, 같은 해 여름 페스티벌 추가 일정과 11월 및 12월에 유럽과 영국에서 열릴 'Generations 2024' 아레나 투어를 발표했다.
3. 멤버
휴먼 리그는 여러 차례 멤버 변화를 겪었다. 밴드는 1977년 이안 크레이그 마시, 마틴 웨어, 필립 오키의 3인조로 시작했으며, 곧이어 필립 애드리안 라이트가 비주얼 담당으로 합류했다.[7] 초기 라인업은 두 개의 정규 앨범 ''Reproduction''(1979)과 ''Travelogue''(1980)을 발매했다.
1980년 10월, 음악적 방향에 대한 내부 갈등으로 마틴 웨어와 이안 크레이그 마시가 밴드를 탈퇴하여 Heaven 17을 결성했다.[16][7] 필립 오키와 필립 애드리안 라이트만 남게 된 상황에서, 예정된 투어를 위해 오키는 급히 새로운 멤버를 영입해야 했다. 이때 셰필드의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10대 학생 수잔 앤 설리와 조앤 캐더럴을 백 보컬 및 댄서로 영입했고, 세션 키보디스트로 이안 버든을 추가했다.[17]
이후 기타리스트이자 키보디스트인 조 칼리스가 1981년에 합류하면서 밴드는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시기를 맞이했다. 이 라인업은 ''Dare''(1981)와 ''Hysteria''(1984) 앨범을 발매했다. 1980년대 중반, 조 칼리스(1985년), 필립 애드리안 라이트(1986년), 이안 버든(1987년), 그리고 잠시 활동했던 드러머 짐 러셀(1987년)이 차례로 밴드를 떠났다.[28]
1987년 이후 밴드는 핵심 멤버인 필립 오키, 조앤 캐더럴, 수잔 앤 설리의 3인조 체제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라이브 공연 및 앨범 작업을 위해 세션 및 투어 뮤지션들과 협력하고 있다.
아래는 시간대별 밴드 멤버 구성과 참여 앨범 목록이다.
활동 기간 | 구성원 | 발매 음반 |
---|---|---|
1977년 초 – 1977년 중반 (The Future) | ||
1977년 중반 – 1978년 4월 | ||
1978년 5월 – 1980년 10월 | ||
1980년 11월 – 1981년 4월 | ||
1981년 4월 – 1984년 12월 | ||
1984년 12월 – 1986년 8월 | ||
1986년 8월 – 1987년 5월 | ||
1987년 5월 – 현재 |
3. 1. 현재 멤버
현재 휴먼 리그의 핵심 멤버는 다음과 같다.- 필 오키 (Philip Oakey) – 리드 보컬, 키보드 (1977년–현재)
- 조앤 캐더럴 (Joanne Catherall) – 보컬 (1980년–현재)
- 수잔 앤 설리 (Susan Ann Sulley) – 보컬 (1980년–현재)
필 오키는 밴드의 창립 멤버이며, 조앤 캐더럴과 수잔 앤 설리는 1980년 이언 크레이그 마쉬와 마틴 웨어가 탈퇴한 후 합류하여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17] 2001년 앨범 ''Secrets'' 발매 이후, 밴드는 공식적으로 오키, 캐더럴, 설리 3인조 체제로 활동하고 있다.[32]
라이브 공연 시에는 다음과 같은 투어 멤버들이 함께한다.
- 닐 서튼 (Neil Sutton) – 키보드 (1986년–현재)
- 닉 버크 (Nic Burke) – 기타, 키타르 (2001년–현재)
- 롭 바튼 (Rob Barton) – 전자 드럼 (2004년–현재)
밴드는 라이브 공연에서 립싱크를 하지 않고 항상 라이브로 연주하며, 매 공연 전에 리허설을 진행한다.[33] 오키, 설리, 캐더럴은 인터뷰를 통해 "콘서트가 매진되고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한" 계속 활동할 의사를 밝혀왔다.[40]
3. 2. 현재 세션 / 투어 뮤지션
2001년 앨범 ''Secrets'' 발매 이후, 밴드는 라이브 공연을 위해 투어 멤버를 보강했다. 핵심 멤버인 필 오키, 수잔 앤 설리, 조앤 캐서럴 외에 다음과 같은 뮤지션들이 세션 및 투어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닐 서튼(Neil Sutton): 키보드. 1986년 Crash 투어부터 밴드와 함께 작업했으며, ''Romantic?'' 앨범부터 작곡과 연주에 참여했다. ''Secrets'' 앨범 작업 및 이후 투어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31][32]
- 닉 버크(Nic Burke): 일렉트릭 기타, 키타. 필 오키가 2001년 Secrets 투어를 앞두고 영입한 셰필드 출신의 멀티 악기 연주자이다.[32]
- 롭 바튼(Rob Barton): 전자 드럼. 2004년부터 참여하여 에롤 롤린스(Errol Rollins)를 대신했다. 에롤 롤린스는 2002년에 합류했었다.[32]
- 데이비드 비버스(David Beevers): 시퀀서 프로그래밍. 오랫동안 밴드의 스튜디오 엔지니어로 일했으며, 2001년부터 무대 라인업에 합류하여 애플(Apple Inc.) Mac 기반의 시퀀서를 제어한다.[32]
이 라인업은 2004년 이후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휴먼 리그의 라이브 공연을 뒷받침하고 있다. 밴드는 라이브 공연 시 립싱크를 하지 않고 모든 연주를 직접 소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33]
3. 3. 전 멤버
다음은 휴먼 리그에서 활동했던 전 멤버들의 목록이다.이름 | 활동 기간 | 주요 역할 | 비고 |
---|---|---|---|
이안 크레이그 마시 | 1977년 ~ 1980년 | 키보드 | 창립 멤버, 1980년 탈퇴 후 Heaven 17 결성[16][7] |
마틴 웨어 | 1977년 ~ 1980년 | 키보드 | 창립 멤버, 1980년 탈퇴 후 Heaven 17 결성[16][7] |
필립 애드리안 라이트 | 1978년 ~ 1986년 | 비주얼 디렉터, 키보드 | 1986년 Crash 앨범 이후 밴드의 음악적 방향에 대한 실망으로 탈퇴[28] |
이안 버든 | 1980년 ~ 1987년 | 키보드, 베이스 기타 | 1987년 탈퇴[28] |
조 칼리스 | 1981년 ~ 1985년 | 키보드, 기타, 보컬 | 1985년 탈퇴, 이후 앨범 작곡 참여[28] |
짐 러셀 | 1983년 ~ 1987년 | 드럼, 기타 | 1987년 탈퇴 |
밴드의 창립 멤버였던 마틴 웨어와 이안 크레이그 마시는 1980년 11월, 필립 오키와의 음악적 방향 및 창작적 갈등으로 인해 밴드를 떠나 Heaven 17을 결성했다.[16][7] 초기 비주얼 디렉터이자 키보디스트였던 필립 애드리안 라이트는 1986년 ''Crash'' 앨범 작업 이후 밴드의 음악적 방향에 실망하여 탈퇴했다.[28] 1980년대 초반에 합류했던 이안 버든(베이스, 키보드)과 조 칼리스(기타, 키보드)는 각각 1987년과 1985년에 밴드를 떠났으며, 드러머 짐 러셀 역시 1987년에 탈퇴했다.[28] 이들의 탈퇴 이후 밴드는 필립 오키, 수잔 앤 설리, 조앤 캐더럴의 3인 체제를 중심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3. 4. 전 세션 / 투어 뮤지션
휴먼 리그는 공식 멤버 외에도 여러 세션 및 투어 뮤지션들과 협력해왔다.- 1979년, 'The Men'이라는 가명으로 발매된 싱글 "I Don't Depend on You" 녹음에는 여성 보컬리스트 리사 스트라이크(Liza Strike)와 케이티 키슨(Katie Kissoon)이 게스트로 참여했다.[12]
- 1980년 마틴 웨어와 이안 크레이그 마시 탈퇴 후 진행된 투어에서는 셰필드 신스 밴드 그래프(Graph) 출신의 이언 버든(Ian Burden)이 세션 키보디스트로 참여했다. 버든은 이후 밴드의 정식 멤버가 되었다.
- 1986년 Crash 앨범 투어에는 키보디스트 닐 서튼(Neil Sutton)과 기타리스트/키보디스트 러셀 데넷(Russell Dennett)이 합류했다. 이들은 이후 1990년 앨범 ''Romantic?'' 작업에도 참여했으며, 서튼은 현재까지 밴드의 핵심적인 라이브 멤버이자 작곡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데넷 역시 1995년 앨범 ''Octopus'' 작업에 참여했다.
- 1985년 밴드를 떠났던 기타리스트 조 칼리스(Jo Callis)는 1990년 앨범 ''Romantic?''의 일부 세션에 참여하여 기타를 연주하고 "Heart Like a Wheel" 등 두 곡을 공동 작곡했다.
- 2001년 Secrets 앨범 발매 이후 투어 라인업에는 새로운 뮤지션들이 합류했다. 오랜 스튜디오 엔지니어였던 데이비드 비버스(David Beevers)가 무대에서 시퀀서를 담당했으며, 멀티 악기 연주자 닉 버크(Nic Burke)가 일렉트릭 기타와 키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33]
- 2002년에는 라이브 퍼포먼스 강화를 위해 타악기 연주자 에롤 롤린스(Errol Rollins)가 전자 드럼 키트로 합류했으며, 2004년에는 롭 바튼(Rob Barton)으로 교체되어 활동하고 있다.[33]
4. 음반 목록
연도 | 제목 | 차트 | 수록 앨범 | |
---|---|---|---|---|
영국 [58] | 미국 [59] | |||
1978 | "Being Boiled" (Fast Product 발매) | - | - | 싱글 전용 |
1979 | "I Don't Depend on You" (The Men 명의) | - | - | |
"Empire State Human" († 1980년 재발매) | 62† | - | Reproduction | |
1980 | "Only After Dark" | - | - | Travelogue |
1981 | "Boys and Girls" | 48 | - | 싱글 전용 |
"The Sound of the Crowd" | 12 | - | Dare! | |
"Love Action (I Believe in Love)" | 3 | - | ||
"Open Your Heart" | 6 | - | ||
"Don't You Want Me" | 1 | 1 | ||
1982 | "Being Boiled" (재발매) | 6 | - | 싱글 전용 |
"Mirror Man" | 2 | 30 | Fascination! | |
1983 | " (Keep Feeling) Fascination" | 2 | 8 | |
1984 | "The Lebanon" | 11 | 64 | Hysteria |
"Life on Your Own" | 16 | - | ||
"Louise" | 13 | - | ||
1986 | "Human" | 8 | 1 | Crash |
"I Need Your Loving" | 72 | 44 | ||
1988 | "Love Is All That Matters" | 41 | - | |
1990 | "Heart Like a Wheel" | 29 | 32 | Romantic? |
"Soundtrack to a Generation" | 77 | - | ||
1995 | "Tell Me When" | 6 | 31 | Octopus |
"One Man in My Heart" | 13 | - | ||
"Filling Up with Heaven" | 36 | - | ||
"Don't You Want Me" (리믹스) | 16 | - | Greatest Hits | |
1996 | "Stay with Me Tonight" | 40 | - | |
2001 | "All I Ever Wanted" | 47 | - | Secrets |
2003 | "Love Me Madly?" | - | - | |
2008 | "The Things That Dreams Are Made Of" (리믹스) | - | - | Dare! |
2010 | "Night People" | - | - | Credo |
2011 | "Never Let Me Go" | - | - | |
"Sky" | - | - | ||
2014 | "Don't You Want Me" (재진입) | 19 | - | Dare! |
4. 1. 정규 앨범
wikitext년도 | 제목 | 차트 | 비고 | |
---|---|---|---|---|
UK [58] | US [59] | |||
1979 | Reproduction | 34 | - | |
1980 | Travelogue | 16 | - | |
1981 | Dare! | 1 | 3 | |
1982 | Love and Dancing | 3 | 135 | 「League Unlimited Orchestra」 명의로 발매된 Dare! 수록곡의 덥 믹스를 모은 리믹스 앨범 |
1984 | Hysteria | 3 | 62 | |
1986 | Crash | 7 | 24 | |
1990 | Romantic? | 24 | - | |
1995 | Octopus | 6 | - | |
2001 | Secrets | 44 | - | 일본반에는 3곡의 보너스 트랙이 있음 |
2011 | Credo | 44 | - | |
5. 유산과 영향
휴먼 리그는 일렉트로팝, 다른 신스팝 및 펫 샵 보이즈를 포함한 주류 음악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모비와 리틀 부츠는 이 그룹의 오랜 팬이다.[47][48] 그들은 레이디트론, 유타 세인츠, 조지 마이클, 로비 윌리엄스 및 LCD 사운드시스템을 포함한 다양한 아티스트들에 의해 샘플링되거나 커버되었다.
2000년에는 트리뷰트 앨범 ''Reproductions: Songs of The Human League''가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는 레이디트론, 라리 푸나, 모머스, 퓨처 바이블 히어로즈, 스테핀 메리트, The Aluminum Group 등이 참여하여 휴먼 리그의 16곡을 커버한 버전이 수록되었다.[49]
''나이트시프트''는 휴먼 리그와 1970년대 후반 데뷔한 게리 뉴먼, 오케스트랄 매뉴버스 인 더 다크(OMD)를 "신스팝의 삼위일체"로 평가했다.[50] 밴드의 Fast Product 레이블 시절 역사는 2015년 다큐멘터리 ''Big Gold Dream''에서 다루어진다.[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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