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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노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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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히메노마에는 가마쿠라 시대의 인물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오오쿠라 고쇼에서 근무하는 여관이었다. 호조 요시토키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으나, 히키 요시카즈의 변으로 친정이 멸망한 후 요시토키와 이혼하고 미나모토노 토모치카와 재혼하여 스케미치를 낳았다. 1207년 교토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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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노마에
지도 정보
기본 정보
국가일본
지역기나이
위치가와치 국 시부카와 군
현재 위치오사카부 야오시 히메노마에
상세 정보
지리센고쿠 시대의 지리적 조건상, 오사카 전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
역사적 중요성히메노마에 지역은 오사카 전투에서 사나다 마사유키의 부대가 진을 쳤던 곳으로 유명함.
전설지역에는 고마쓰 내친왕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짐.
지명 유래
어원"히메노마에"라는 이름은 고마쓰 내친왕이 이 지역을 방문했을 때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음.

2. 생애

히메노마에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오쿠라 고쇼에서 일하던 여관으로, 『아즈마카가미』에 따르면 "히키 토나이 토모무네의 딸로, 당시에 권세가 대단한 뇨보였다. 특히 요리토모의 마음에 들었으며, 얼굴이 매우 아름다웠다"라고 기록되어 있다.[1] 요시토키는 1년 넘게 히메노마에에게 연애 편지를 보냈으나, 히메노마에는 전혀 마음을 열지 않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요리토모가 요시토키에게 "절대로 이혼하지 않겠습니다"라는 기청문을 쓰게 하여 두 사람의 관계를 주선하였다.[1]

겐큐 3년 (1192년) 9월 25일, 히메노마에는 요시토키와 결혼하여 겐큐 4년 (1193년)에는 토모토키를, 겐큐 9년 (1198년)에는 시게토키를 낳았다.

겐닌 3년 (1203년) 9월, 히키 요시카즈의 변이 일어나 친정인 히키씨가 남편 요시토키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멸망당했다. 이후 히메노마에의 소식은 『아즈마카가미』에서는 알 수 없으나, 『메이게츠키』 가로쿠 2년 (1226년) 11월 5일조에 따르면 스케미치는 토모토키의 동복동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스케미치는 겐큐 원년 (1204년) 출생이므로, 히메노마에는 히키의 난 직후 요시토키와 이혼하고, 미나모토노 토모치카와 재혼해 스케미치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 덴푸쿠 원년 (1233년)에 토모토키의 유자가 된 토모치카의 차남 미나모토노 스케토키도 히메노마에의 소생으로 보인다.

쇼지 2년 (1200년 5월 25일)에는 요시토키의 인 이사 아사마사의 딸이 아리토키를 낳았을 때 정황상 그 이전에 요시토키와 히메노마에가 이혼했을 가능성을 지적하는 견해도 있다.[2]

『메이게츠키』 조겐 원년 (1207년) 3월 30일조에 전날 미나모토노 토모치카 소장의 아내가 사망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히메노마에는 재혼 후 3년 정도 만에 교토에서 사망한 것이다.

2. 1. 결혼 전

히메노마에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오쿠라 고쇼에서 일하던 여관이었다. 『아즈마카가미』에는 "히키 토나이 토모무네의 딸로, 당시에 권세가 대단한 뇨보였다. 특히 요리토모의 마음에 들었으며, 얼굴이 매우 아름다웠다"라고 기록되어 있다.[1]

요시토키는 1년 넘게 히메노마에에게 연애 편지를 보냈으나, 히메노마에는 전혀 마음을 열지 않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요리토모가 요시토키에게 "절대로 이혼하지 않겠습니다"라는 기청문을 쓰게 하여 두 사람의 관계를 주선하였다고 한다.[1]

2. 2. 호조 요시토키와의 결혼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오오쿠라 고쇼에서 근무하는 여관이었던 히메노마에는 『아즈마카가미(吾妻鏡)』에 "'''히키 토나이 토모무네의 딸, 당시 권위무쌍한 뇨보였다. 특히 어의(御意)에 맞서다. 얼굴이 매우 아름답다'''"라고 쓰여 있으며, 요리토모가 마음에 들어 하는 아름다운 사람이었으며, 줄을 설 사람이 없는 권세의 뇨보였다.[1] 요시토키는 1년여 동안 히메노마에에게 연서를 보냈으나, 히메노마에는 전혀 휘둘리지 않았고, 이를 보다 못한 요리토모가 요시토키에게 "절대 이혼하지 않겠습니다"라는 기청문을 쓰게 하여, 두 사람 사이를 주선하였다고 한다.[1]

이렇게 해서 겐큐 3년 (1192년 9월 25일) 히메노마에는 요시토키에게 시집갔고, 겐큐 4년 (1193년)에는 요시토키의 차남 토모토키를, 겐큐 9년 (1198년)에는 3남 시게토키를 낳았다.

겐닌 3년 (1203년) 9월, 히키 요시카즈의 변이 일어나, 친정인 히키씨가 남편 요시토키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멸망당한다.

2. 3. 히키 요시카즈의 변과 이혼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오쿠라 고쇼에서 근무하는 여관이었던 히메노마에는 호죠 요시토키와 결혼하였다. 겐큐 3년 (1192년) 9월 25일, 히메노마에는 요시토키에게 시집갔으며, 겐큐 4년 (1193년)에는 요시토키의 차남 토모토키를, 겐큐 9년 (1198년)에는 3남 시게토키를 낳았다.[1]

겐닌 3년 (1203년) 9월, 히키 요시카즈의 변이 일어나, 친정인 히키씨가 남편 요시토키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멸망당했다.[1] 이후 히메노마에의 소식은 『아즈마카가미(吾妻鏡)』에서는 알 수 없으나, 『메이게츠키(明月記)』 가로쿠 2년 (1226년) 11월 5일조에 따르면, "미나모토노 토모치카의 자식 (미나모토노 스케미치)은 토모토키의 동복동생으로, 막부로부터 임관 추거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스케미치는 겐큐 원년 (1204년) 출생이므로, 히메노마에는 히키의 난 직후 요시토키와 이혼하고, 상락하여 미나모토노 토모치카와 재혼해 스케미치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1] 덴푸쿠 원년 (1233년)에 토모토키의 유자가 된 토모치카의 차남 미나모토노 스케토키도 히메노마에의 소생으로 보인다.[1]

쇼지 2년 (1200년 5월 25일)에는 요시토키의 인 이사 아사마사의 딸이 아리토키를 낳았는데, 히메노마에가 오쿠라테이에 동거하고 있었다면 이 같은 대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하여, 그 이전에 요시토키와 히메노마에가 이혼했을 가능성을 지적하는 견해도 있다.[2]

2. 4. 사망

겐닌 3년 (1203년) 히키 요시카즈의 변으로 친정인 히키씨가 멸망한 후, 히메노마에의 행적은 『아즈마카가미(吾妻鏡)』에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메이게츠키(明月記)』 가로쿠 2년 (1226년) 11월 5일조에 따르면, "미나모토노 토모치카의 자식 (미나모토노 스케미치)은 호조 도모토키의 동복동생으로, 막부로부터 임관 추거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스케미치는 겐큐 원년 (1204년) 출생이므로, 히메노마에는 히키의 난 직후 요시토키와 이혼하고 교토로 상경하여 미나모토노 토모치카와 재혼해 스케미치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 덴푸쿠 원년 (1233년)에 호조 도모토키의 유자가 된 도모치카의 차남 미나모토노 스케토키도 히메노마에의 소생으로 보인다.[1]

『메이게츠키(明月記)』 조겐 원년 (1207년) 3월 30일조에 전날 미나모토노 토모치카 소장의 아내가 사망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2] 즉, 히메노마에는 재혼 후 3년 정도 만에 교토에서 사망한 것이다.

3. 관련 작품

풀이 타오르다(1979년, NHK 대하드라마)에서 사카구치 료코가 노하기 역을 연기하였고, 가마쿠라도노의 13인(2022년, NHK 대하드라마)에서는 홋타 마유가 히나 역을 연기하였다.

3. 1. TV 드라마

참조

[1] 서적 吾妻鏡 1192-09-25
[2] 서적 執権 北条義時 三笠書房 知的生きかた文庫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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