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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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집권(執権)은 일본 역사에서 유래한 직책으로, 가마쿠라 막부 시대에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1203년 호조 도키마사가 3대 쇼군 미나모토노 사네토모를 옹립하고 만도코로 벳토와 함께 싯켄에 임명된 것이 시초이다. 싯켄은 처음에는 쇼군을 보좌하는 역할이었으나, 호조 씨의 권력 강화와 함께 막부의 실질적인 최고 직책으로 자리 잡았다. 싯켄은 고케닌 간의 소송을 관장하고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역할을 수행하며 막부의 안정에 기여했지만, 호조 씨의 권력 독점으로 인해 도쿠소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싯켄은 점차 명목상의 직책으로 전락했다. 1922년 류 스스무에 의해 싯켄정치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으며, 이후 도쿠소 전제 정치와 구분하여 사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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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 |
---|---|
기본 정보 | |
명칭 | 집권 |
원어명 | 執權 (싯켄) |
지위 유형 | 가마쿠라 막부의 국가 원수 |
존속 기간 | 1203년 ~ 1333년 |
임기 | 종신직 |
역할 | 정이대장군 보좌 가마쿠라 막부 통치 |
가몬 | Japanese_Crest_mitu_Uroko.svg |
로마자 표기 | Shikken |
직위 관련 정보 | |
최초 집권 | 호조 도키마사 |
마지막 집권 | 호조 모리토키 |
임명 방식 | 지명 |
관련 정치 체제 | 집권정치 (싯켄 세이지) |
권한 및 책임 | |
상관 | 정이대장군 |
기타 | 집권은 만도코로의 장관인 벳토를 겸임하는 경우가 많았음. 집권은 렌쇼와 협력하여 막부의 정치적 결정을 내림. |
역사적 맥락 | |
배경 |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사후, 미나모토 가의 권력 약화 호조 씨의 권력 강화 |
주요 사건 | 조큐의 난 진압 이후 권력 기반 강화 몽골의 일본 침공 격퇴 |
종말 | 겐코의 난으로 인한 가마쿠라 막부 멸망 |
2. 유래
고산조 천황이 설치했던 기록소의 구당(勾当)의 별칭으로 '싯켄(執権)'이라는 직책명이 처음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문헌상으로는 1186년 이후에 확인된다.[4] 인세이 시기 인초(院庁)에서도 벳토(別当) 중 능력 있는 자를 싯켄으로 임명하여 잡무를 담당하게 했는데, 이는 고토바 상황이 하무로 미쓰치카를 임명한 것이 최초이다.
1203년(겐닌 3년), 호조 도키마사가 외손자인 3대 쇼군 미나모토노 사네토모를 옹립하고 만도코로벳토(정소별당)에 임명된 것이 싯켄의 시초이다.[11] 도키마사는 호조 씨 권력 확립의 발판을 마련했고, 2대 싯켄 호조 요시토키는 사무라이도코로의 벳토(별당)를 겸임하면서 싯켄을 막부 최고 직책으로 만들었다.
가마쿠라 막부에서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가정기관인 만도코로(政所)의 게시(家司) 필두에게 '싯켄'이라는 직책명이 주어졌다.[4] 호조 마사코의 아버지 호조 도키마사가 싯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무로마치 막부에서는 간레이(管領)를 싯켄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여러 다이묘(大名) 가문에서도 중신을 싯켄이라 칭하는 경우가 있었다.[4]
3. 연혁
겐지 쇼군이 3대 미나모토노 사네토모를 끝으로 단절된 후, 셋칸케(섭관가)나 황족에서 명목상 가마쿠라도노를 맞이하고 그 휘하에서 싯켄이 막부의 사실상 최고책임자가 되는 체제가 되었다. 싯켄은 정적이 되는 유력 고케닌을 제거하고 막부 요직을 호조 씨가 독점하며 권력을 강화했다.
셋케 쇼군(섭가 쇼군) ・ 미야 쇼군(궁 장군) 아래에서 막부 소송 재결은 쇼군의 게몬이 아닌 싯켄의 게치조에 의해 시행되었고, 싯켄은 소송 최고책임자가 되어 쇼군은 소송에서 배제되었다. 이는 막부 유지 필요성에 의한 것으로, 싯켄의 공정한 소송은 고케닌들에게도 바람직한 바였다.[12] 호조 야스토키는 효조슈(평정중)를 설치, 합의제 소송 제도를 확립하고 쇼군 후견인으로서 쇼군을 대신해 재결을 행하는 싯켄의 역할을 강화했다.[13]
호조 씨 권력 증대에 따라 막부 공적 지위인 싯켄보다 호조 일문 소료(惣領)인 도쿠소에게 실제 권력이 이동했다.
1922년 류 스스무(龍粛)가 『비구니 쇼군 마사코』에서 미나모토노 사네토모 사후 싯켄의 막부 장악을 싯켄정치(執権政治)로 표현한 이래 이 용어가 널리 쓰였다. 최근에는 호조 마사코 실권 장악 후 싯켄정치로 이행했다는 견해와, 8대 싯켄 호조 도키무네 급사 후 9대 싯켄 사다토키가 도쿠소와 싯켄을 겸임한 뒤의 체제를 도쿠소 전제로 구분하는 방법도 있다.
가마쿠라 막부 싯켄 대부분은 사가미노카미에 임관되었고, 무사시노카미에 임관된 부집권(副執権) 렌쇼와 함께 「양국사」(両国司)[14]로 불렸다.[15]
3. 1. 싯켄 정치의 확립 (1203년 ~ 1256년)
1203년, 호조 도키마사가 외손자이자 3대 쇼군인 미나모토노 사네토모를 옹립하고 만도코로 벳토(政所別当)와 함께 싯켄(執権)에 임명된 것이 최초였다고 한다.[11] 2대 싯켄 호조 요시토키는 사무라이도코로 벳토를 겸임하면서 싯켄의 권력을 강화하여 사실상 막부 최고 직책으로 만들었다.
겐지 쇼군이 3대 미나모토노 사네토모를 끝으로 단절된 후, 셋칸케(摂関家)나 황족에서 명목상의 쇼군을 맞이하고 싯켄이 실질적인 최고 책임자가 되는 체제가 확립되었다. 싯켄은 정적이 되는 유력 고케닌들을 제거하고 막부 요직을 호조 씨가 독점하면서 권력을 강화했다.
싯켄은 쇼군 대신 소송의 최고 책임자가 되어 고케닌 간의 영지 분쟁을 조정하고 공정한 판결을 내렸다.[12] 이는 쇼군과 고케닌 사이의 주종 관계를 유지하고 막부 소송 제도를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호조 야스토키는 효조슈(評定衆)를 설치하여 합의제 소송 제도를 확립하고, 쇼군을 대신하여 재결을 행하는 싯켄의 역할을 강화했다.[13]
3. 2. 도쿠소 전제 정치 (1256년 ~ 1333년)
6대 싯켄 나가토키 시대에, 출가한 도쿠소(得宗) 도키요리가 막부 권력을 장악하면서 도쿠소에게 권력이 집중되기 시작했다.[7] 이후 싯켄은 명목상의 직책으로 전락하고, 실질적인 권력은 도쿠소가 가지게 되었다. 9대 싯켄 사다토키는 어린 나이에 도쿠소와 싯켄을 겸임하면서, 도쿠소 가신인 어내인(御内人)이 정치에 관여하게 되었다.
사다토키는 다이라 젠몬의 난(平禅門の乱)으로 나이간레이(内管領) 다이라노 요리쓰나(平頼綱)를 제거하고 스스로 정무를 맡아보게 되었으나, 가겐의 난(嘉元の乱) 이후 정무를 방기하다시피 하게 되었고, 최고 권력자가 정무를 방기한 상태에서 나가사키 씨 등의 어내인과 외척인 아다치 씨(安達氏), 호조 씨 서류 가문 등의 요리아이슈(寄合衆) 등이 주도하는 요리아이(寄合)에 의해 막부는 기능하였으며, 도쿠소도 황족 출신의 쇼군처럼 장식적인 지위로 전락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7] 사다토키의 아들인 다카토키 대에 이르러 싯켄도 도쿠소도 껍데기뿐인 지위로 남아 있었고, 호조 가문의 집사(執事)라고도 할 수 있는 나이간레이(内管領)를 맡은 나가사키 씨가 권력을 쥐다시피 하였다.
4. 싯켄 목록
대수 | 이름 | 출생-사망 | 재임 기간 |
---|---|---|---|
1 | 호조 도키마사 | 1138년-1215년 | 1203년-1205년 |
2 | 호조 요시토키 | 1163년-1224년 | 1205년-1224년 |
3 | 호조 야스토키 | 1183년-1242년 | 1224년-1242년 |
4 | 호조 쓰네토키 | 1224년-1246년 | 1242년-1246년 |
5 | 호조 도키요리 | 1227년-1263년 | 1246년-1256년 |
6 | 호조 나가토키 | 1229년-1264년 | 1256년-1264년 |
7 | 호조 마사무라 | 1205년-1273년 | 1264년-1268년 |
8 | 호조 도키무네 | 1251년-1284년 | 1268년-1284년 |
9 | 호조 사다토키 | 1271년-1311년 | 1284년-1301년 |
10 | 호조 모로토키 | 1275년-1311년 | 1301년-1311년 |
11 | 호조 무네노부 | 1259년-1312년 | 1311년-1312년 |
12 | 호조 히로토키 | 1279년-1315년 | 1312년-1315년 |
13 | 호조 모토토키 | ?-1333년 | 1315년 |
14 | 호조 다카토키 | 1303년-1333년 | 1316년-1326년 |
15 | 호조 사다아키 | 1278년-1333년 | 1326년 |
16 | 호조 모리토키 | ?-1333년 | 1327년-1333년 |
5.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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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서적
The Cambridge history of Japa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8-01-01
[2]
서적
執権 (一)
吉川弘文館
1985-01-01
[3]
서적
御成敗式目編纂の基礎的研究
汲古書院
2017-01-01
[4]
웹사이트
2021-08-29
[5]
서적
鎌倉時代政治構造の研究
校倉書房
2016-01-01
[6]
서적
御成敗式目編纂の基礎的研究
汲古書院
2017-01-01
[7]
서적
鎌倉幕府の滅亡
吉川弘文館
2011-01-01
[8]
간행물
書評 細川重男著『鎌倉政権得宗専制論』
慶應義塾大学法学研究会
2002-01-01
[9]
서적
将軍・執権・連署 鎌倉幕府権力を考える
吉川弘文館
2018-01-01
[10]
서적
御成敗式目編纂の基礎的研究
汲古書院
2017-01-01
[11]
문서
다른 설
[12]
서적
鎌倉時代政治構造の研究
校倉書房
2016-01-01
[13]
서적
御成敗式目編纂の基礎的研究
汲古書院
2017-01-01
[14]
문서
사태미련서(沙汰未練書)
[15]
서적
将軍・執権・連署 鎌倉幕府権力を考える
吉川弘文館
201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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