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1식 중기관총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1식 중기관총은 1942년 일본 육군에 채용된 중기관총으로, 92식 중기관총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99식 실포를 사용하도록 설계되었으며, 92식 중기관총보다 경량화되고 부품이 간소화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쟁 발발로 인한 장비 개편 및 훈련의 어려움, 92식 중기관총의 증산 우선 정책 등으로 인해 소수만 생산되어 중대 배치 계획은 실패하고 92식 중기관총의 대체용으로 사용되었으며, 전장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일본의 기관총 - 99식 경기관총
    99식 경기관총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이 사용한 경기관총으로, 96식 경기관총을 기반으로 7.7mm 탄약에 맞게 개발되었으나 기술적 문제로 생산량이 제한적이었고, 태평양 전쟁 후반기, 한국 전쟁, 인도차이나 전쟁 등에서 사용되었다.
  • 일본의 기관총 - 62식 기관총
    62식 기관총은 일본에서 개발되어 일본 육상자위대에서 M1919 브라우닝 기관총을 대체하기 위해 닛토쿠 금속 공업에서 설계, 1962년에 제식 채용되었으나 잦은 고장과 품질 문제로 '말을 듣지 않는 총'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으며, 이후 파생형이 개발되고 미니미 경기관총으로 대체되기 시작했으나 일부 장갑차량에서는 여전히 사용된다.
  • 중기관총 - DShK
    DShK는 바실리 데그탸료프가 개발하고 게오르기 슈파긴이 개량한 12.7×108mm 탄을 사용하는 벨트 급탄식 기관총으로, 제2차 세계 대전부터 현재까지 보병 지원, 대공전, 차량 탑재 등 다양한 용도로 널리 사용된다.
  • 중기관총 - K6 기관총
    K6 기관총은 M2 브라우닝 기관총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신속한 총열 교환이 가능하도록 개발되어 대한민국에서 기존 M2를 대체하여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기관총이다.
  • 제2차 세계 대전의 일본 화기 - 30년식 보병총
    30년식 보병총은 무라타 소총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아리스카 소총 계열의 첫 번째 소총으로, 6.5×50mm 아리스카 탄약을 사용하는 볼트액션 소총이며, 제2차 세계 대전까지 일본 제국 육군의 주력 소총으로 사용되었고, 다양한 전쟁에서 활용되었으며, 신뢰성 문제로 38년식 소총으로 대체되었으나, 수출 및 파생형 모델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었고, 일본 제국주의 침략 전쟁과 관련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 제2차 세계 대전의 일본 화기 - 38식 보병총
    38식 보병총은 30년식 보병총의 문제점을 개선하여 일본군이 1906년부터 1944년까지 주력으로 사용한 6.5×50mm 아리스카 탄을 사용하는 볼트액션 소총으로, 기관부 구조 간소화, 볼트 강화, 추출기 개량 등의 개선을 거쳐 약 300만 정이 생산되었으며, 99식 소총 도입 후에도 군수 문제로 인해 계속 사용되었고, 다양한 파생형과 개량형이 존재하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여러 국가에서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일부가 수집되거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식 중기관총
개요
1식 중기관총
종류중기관총
원산지일본 제국
설계 시기1940년–1941년
생산 시기1942년–1945년
사용 시기1942년–1945년
사용 국가일본 제국 육군
인도네시아군
전쟁제2차 세계 대전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
제원
구경7.7mm
탄약7.7×58mm 아리사카
급탄 방식금속 30발 급탄 트레이
작동 방식가스 작동식
발사 속도400–450발/분
총구 속도770m/s
무게36.8kg (총 & 삼각대)
전체 길이1077mm
총열 길이589mm
유효 사거리1.4km
최대 사거리4.1km
조준 장치블레이드 전방 조준기와 후방 가늠쇠, 100~2,200미터까지 조절 가능, 망원경 장착 가능
기타 정보
변형없음
생산량불명
설계히타치 병기

2. 개발 경위

일본 육군92식 중기관총을 주력 중기관총으로 사용하고, 92식 실포를 탄약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1939년99식 경기관총99식 소총이 채용되면서 99식 실포를 사용하게 되었다. 99식 실포는 92식 실포와 외형상 호환되었지만, 장약량이 적어 위력이 약하고 탄도 특성이 달라 92식 중기관총에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또한, 탄약 생산 및 보급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일본 육군의 전투 단위가 대대 중심에서 보병 중대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중기관총 운용 방식도 변화해야 했다. 기존에는 대대에서 중기관총 중대에 밀도 높은 화력 지원을 제공했지만, 중대 단위로 운용하면 이러한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각 중대에 중기관총을 직접 배치하는 방안이 고려되었다.

기존의 92식 중기관총은 생산 공정이 복잡하여 대량 생산에 부적합했고, 중대급 운용에 필요한 기동성도 부족했다. 또한, 99식 실포에 맞춰 92식 중기관총을 새로 생산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며 운용상 혼란을 야기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일본 육군은 99식 실포에 적합하고, 92식 중기관총보다 가볍고 저렴하며 대량 생산에 용이한 새로운 중기관총 개발을 시작했다. 1940년 3월에 첫 번째 시제품이 완성되었으나 총가 안정성 부족으로 작동 불량이 잦았다. 같은 해 6월에는 개량된 두 번째 시제품이 테스트되었지만, 92식과 다른 운용 방식 때문에 불만이 제기되었다. 최종적으로 1942년에 92식 중기관총과 호환 가능한 삼각대와 그립을 채용한 시제품이 완성되어 1식 중기관총으로 채택되었다.[5]

2. 1. 99식 실포 채용과 탄약 문제

1939년(쇼와 14년)에 일본 육군이 채용한 99식 경기관총99식 소총92식 중기관총에서 사용하던 92식 실포와 다른 99식 실포를 사용했다. 99식 실포는 92식 실포와 외형상 완전한 호환성을 가졌지만, 경기관총용으로 반동을 줄이기 위해 장약을 줄여 위력이 낮았다. 탄도 특성이 달라져 조준기도 부적합했기에, 99식 실포는 92식 중기관총에 최적의 탄약이 아니었고, 탄약 생산 및 보급에 문제가 발생했다.[5]

2. 2. 중대 중심 화력 운용으로의 변화

일본 육군92식 중기관총을 주력으로 사용했지만, 1939년에 채용된 99식 경기관총99식 소총은 92식 실포와 호환은 되지만 장약이 적은 99식 실포를 사용했기 때문에, 92식 중기관총에 사용하면 위력과 탄도 특성이 달라지는 문제가 있었다.[5]

일본 육군의 전투 단위가 대대 중심에서 보병 중대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대대 화력의 핵심이었던 중기관총은 중대와 함께 기동해야 했다. 기존에는 대대에서 중기관총 중대에 밀도 높은 후방 지원을 제공했지만, 중대 단위로 운용하면 이러한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워 각 중대에 중기관총을 배치하는 방안이 필요하게 되었다.[5]

2. 3. 92식 중기관총의 문제점

1939년에 채용된 99식 경기관총99식 소총은 99식 실포를 사용했는데, 이는 92식 실포와 외형은 호환되었지만 장약이 적어 위력이 낮았다. 탄도 특성 변화로 92식 중기관총에 사용하기 부적합했고, 탄약 생산 및 보급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5]

일본 육군의 전투 단위가 대대 중심에서 보병 중대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중기관총은 중대급 화력으로 운용되기 시작했다. 기존에는 대대급에서 중기관총에 밀도 높은 후방 지원을 제공했지만, 중대 단위로 운용되면 이러한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각 중대에 중기관총을 배치하는 방안이 나왔다.[5]

이러한 변화에 따라 기존의 92식 중기관총은 생산 공정이 복잡하여 대량 생산에 부적합하고, 중대급 운용에 필요한 기동성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99식 실포에 맞춰 92식 중기관총을 새로 생산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운용상 혼란을 야기할 수 있었다.[5]

2. 4. 신형 중기관총 개발 시작

1939년에 채용된 99식 경기관총99식 소총은 92식 실포와 다른 99식 실포를 사용했다. 99식 실포는 92식 실포와 외형상 호환되었지만, 장약이 적어 위력이 약했고 탄도 특성 변화로 92식 중기관총에 부적합했다. 또한, 일본 육군의 전투 단위가 중대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중기관총 운용 방식도 바뀌었다.[5]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 육군은 99식 실포에 적합하고, 92식 중기관총보다 가볍고 저렴하며 대량 생산에 용이한 신형 중기관총 개발을 시작했다. 1940년 3월, 첫 번째 시제품은 MG08 중기관총과 유사한 썰매형 총가와 피스톨 그립, 직총상, 두 다리를 가졌으며, '''시제 3식 경기관총'''과 흡사했다. 그러나 총가 안정성 부족으로 작동 불량이 발생하여, 같은 해 6월 개량된 썰매형 총가와 스페이드 그립을 가진 두 번째 시제품이 테스트되었다. 이 시제품은 99식 경기관총과 비슷한 나팔형 플래시 하이더를 장착했지만, 썰매형 총가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었다.[5]

결국 1942년, 92식 중기관총과 공용 가능한 삼각대와 접이식 八자형 그립을 채용한 시제품이 완성되어 1식 중기관총으로 채택되었다. 채용 시기는 황기 2602년이었지만, 1식으로 명명되었다.[5]

2. 5. 시제 중기관총 개발 과정

일본 육군은 92식 중기관총을 주력으로 사용했지만, 1939년에 채용된 99식 경기관총99식 소총은 92식 실포와 다른 99식 실포를 사용하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99식 실포는 92식 실포와 호환되었지만, 장약이 적어 위력이 약했고 탄도 특성도 달라 92식 중기관총에 적합하지 않았다. 또한, 일본 육군의 전투 단위가 대대 중심에서 중대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중기관총에 대한 후방 지원이 약화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 육군은 99식 실포를 사용하고, 92식 중기관총보다 가볍고 저렴하며 대량 생산에 적합한 새로운 중기관총 개발을 시작했다. 1940년 3월에 첫 번째 시제품이 완성되었는데, 피스톨 그립, 직총상, 두 다리, MG08 중기관총과 유사한 썰매형 총가를 갖추고 있었다. 이 시제품은 총가의 안정성이 부족하여 작동 불량이 자주 발생했다.[5]

같은 해 6월, 개량된 썰매형 총가, 스페이드 그립, 99식 경기관총과 비슷한 나팔형 플래시 하이더를 갖춘 두 번째 시제품이 테스트되었다. 그러나 92식과 다른 운용법을 가진 썰매형 총가는 불만을 샀다.

결국 1942년에 92식 중기관총과 공용 가능한 삼각대, 접이식 八자형 그립을 채용한 최종 시제품이 완성되었고, 1식 중기관총으로 육군에 정식 채용되었다.

3. 구조

1식 중기관총은 92식 중기관총을 소형화, 경량화한 버전이다. 작동 방식은 동일하며, 부품이 축소되었다. 야전에서 과열을 방지하기 위해 총열을 신속하게 교체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총열 냉각 링의 크기가 줄어들고 총열 자켓은 완전히 제거되었다.[3] 30발들이 황동 급탄 스트립을 사용했다.

3. 1. 92식 중기관총과의 비교

1식 중기관총은 92식 중기관총을 소형화, 경량화한 버전이다. 작동 방식은 동일하며, 30발들이 황동 급탄 스트립을 사용했다. 전체 발사 속도는 92식 중기관총보다 높았으며, 이전 일본 중기관총 모델과 마찬가지로 대대급 기관총 중대에 배치되었다.[4]

3. 1. 1. 경량화

1식 중기관총은 92식 중기관총을 기반으로 소형화 및 경량화한 모델이다. 작동 방식은 동일하지만, 부품이 축소되었다. 야전에서 과열 방지를 위해 총열을 신속하게 교체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총열 냉각 링의 크기가 줄어들고 총열 자켓은 완전히 제거되었다.[3]

1식 중기관총은 92식 중기관총을 참고하여 외형은 큰 변화가 없지만, 주 사용 탄약을 99식 실포로 변경하고 각 부품을 간략화했다. 총열의 방열 핀을 대폭 줄여 경량화했으며, 탄약 급탄대 주변의 가이드 롤러나 탄약 윤활 장치 등이 생략되었다. 그 결과, 92식에 비해 총 본체는 약 10kg, 삼각대를 포함한 총 전체 무게는 20kg 이상 경량화되었다.

방열 핀 감소로 총열이 과열되기 쉬워졌기 때문에, 전용 공구를 사용하여 92식보다 쉽게 총열을 교체할 수 있는 구조가 채택되었다. 그러나 96식 경기관총처럼 독립된 래치 레버로 고정하거나, 62식 7.62mm 기관총처럼 총열 휴대 손잡이를 겸한 퀵 릴리스를 사용하는 구조가 아니어서, 숙련된 병사도 총열 교체에 약 1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총가대는 운동성을 고려하여 사각대도 시도되었으나, 최종적으로 92식과 유사한 삼각식이 선택되었다. 삼각대 자체도 경량화 및 개량이 이루어져, 수평 선회 각도가 92식의 33.5도에서 45도로 향상되었다. 간접 사격과 대공 사격을 고려한 앙각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이전과 동일했다.

안전 장치는 92식의 압철 자체를 오른쪽으로 회전시켜 거는 방식에서, 기관부 좌측 하부의 독립된 조작 레버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그 외 구성은 92식과 동일하게 탄약 급탄대에 의한 급탄 기구를 사용했다. 조준경은 92식과 같은 것을 사용할 수 있었고, 대공용 조준환(고사 조문)(스파이더 사이트)도 장착 가능했다.

기존의 92식 실포도 사격할 수 있지만, 이 경우 반동이 강해 명중률이 কিছুটা 나빠지고, 본총에 장착된 거리 조준자와 탄도가 달랐다.

3. 1. 2. 부품 간략화

1식 중기관총은 92식 중기관총을 참고하여 외형은 큰 변화가 없지만, 주 사용 탄약을 99식 실포로 변경하고 각 부품을 간략화했다. 탄약 급탄대 주변의 가이드 롤러나 탄약 윤활 장치 등이 생략되었다. 그 결과, 92식에 비해 총 본체는 10kg 정도, 삼각대를 포함한 총 전체는 20kg 이상 경량화되었다.[3]

3. 1. 3. 총열 교체 용이성

1식 중기관총은 총열 방열 핀을 대폭 줄여 경량화했지만, 이 때문에 총열이 쉽게 과열되었다. 따라서 92식 중기관총보다 쉽게 총열을 교체할 수 있도록 전용 공구를 사용하는 방식을 채택했다.[3] 그러나 96식 경기관총처럼 별도의 래치 레버를 사용하거나, 62식 7.62mm 기관총처럼 총열 손잡이를 겸한 퀵 릴리즈를 사용하는 방식은 아니었기 때문에, 숙련된 병사라도 총열 교체에 약 1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4]

3. 1. 4. 총가대 개선

1식 중기관총의 총가대는 운동성을 고려하여 사각대도 시도되었으나, 최종적으로는 92식 중기관총과 유사한 삼각식이 선택되었다. 삼각대 자체도 경량화와 개량이 이루어져, 수평 선회 각도가 92식의 33.5도에서 45도로 향상되었다.[4] 간접 사격과 대공 사격을 고려한 앙각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이전과 같았다.

3. 1. 5. 안전 장치 변경

92식 중기관총의 안전 장치는 압철 자체를 오른쪽으로 회전시켜 작동하는 방식이었으나, 1식 중기관총에서는 기관부 좌측 하부에 독립된 조작 레버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3]

3. 1. 6. 조준경

92식 중기관총과 같은 조준경을 사용할 수 있었고, 대공용 조준환(고사 조문) (스파이더 사이트)도 장착 가능했다.[3]

3. 2. 92식 실포 사용 문제

1식 중기관총은 기존의 92식 실포도 사격할 수 있었지만, 이 경우 반동이 강해져 명중률이 다소 떨어지고, 1식 중기관총에 장착된 거리 조준자와 탄도가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1]

4. 생산과 운용

1식 중기관총은 중대 운용을 목적으로 개발되었으나, 실제로는 개전으로 인한 장비 개편 및 훈련 시간 부족, 전쟁 확대에 따른 부대 증설로 인한 중기관총 수요 증가 등의 문제로 92식 중기관총 대체에 실패했다. 또한, 기존 설비로 생산 가능한 92식 중기관총의 증산이 우선시되어 극소수만 제조 및 전선에 보급되었고, 그 결과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1]

4. 1. 중대 배치 계획의 좌절

1식 중기관총은 원래 중대에서 운용할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면서 장비 개편과 훈련을 할 시간이 부족해졌다. 또한 전쟁이 확대되면서 부대가 증설되어 중기관총 수요가 늘어났다. 이 때문에 중대에 중기관총을 배치하려던 계획은 포기되었다. 결국 1식 중기관총은 92식 중기관총을 대체하는 용도로만 중기관총 중대에서 사용되는 데 그쳤다. 게다가 손이 많이 가는 제조 라인을 변경하는 것보다 기존 설비로 만들 수 있는 92식 중기관총의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 우선시되었다. 따라서 1식 중기관총은 극소수만 제조되었고, 각 전선에도 극소수만 보급되었다. 그 결과, 1식 중기관총은 눈에 띄는 활약을 남기지 못했다.[1]

4. 2. 92식 중기관총 대체 실패

1식 중기관총은 중대 운용을 목적으로 개발되었으나, 실제로는 개전으로 인해 장비 개편 및 훈련의 시간적 여유가 없어졌다. 전쟁 확대에 따른 부대 증설로 중기관총 수요가 증가하면서 중대에 중기관총을 배치하는 것을 포기하고, 단순히 92식 중기관총의 대체용으로 중기관총 중대에서 사용되는 데 그쳤다.[1] 또한 기존 설비로 제조할 수 있는 92식 중기관총의 증산이 우선시되었기 때문에 1식 중기관총은 극소수만 제조되었고, 각 전선에 극소수만 보급되었다.[1] 그 결과 그다지 두드러진 활약도 남기지 못했다.[1]

4. 3. 전장에서의 활약 부족

1식 중기관총은 중대 운용을 목적으로 개발되었으나, 실제로는 개전으로 인해 장비 개편 및 훈련의 시간적 여유가 없어졌다. 전쟁 확대에 따른 부대 증설로 중기관총 수요가 증가하면서 중대에 중기관총을 배치하는 것을 포기하고, 단순히 92식 중기관총의 대체용으로 중기관총 중대에서 사용되는 데 그쳤다. 또한 기존 설비로 제조할 수 있는 92식 중기관총의 증산이 우선시되었기 때문에 1식 중기관총은 극소수만 제조되었고, 각 전선에 극소수만 보급되었다. 그 결과 1식 중기관총은 두드러진 활약을 남기지 못했다.[1]

참조

[1] 서적 The Control of local conflict : a design study on arms control and limited war in the developing areas https://apps.dtic.mi[...]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Center for International Studies 1967-06-30
[2] 웹사이트 Japanese Type 1 HMG https://www.forgotte[...] Forgotten Weapons
[3] 간행물 The New Juki http://www.lonesentr[...] U.S. War Department 1945-06
[4] 웹사이트 TYPE 01 MACHINE GUN - Quartermaster Section https://www.quarterm[...]
[5] 웹사이트 陸奥屋>「日本軍の兵器4-2」(軽機関銃2~試製一式軽機関銃各型、三式軽機関銃、智式軽機関銃) http://wowow262.fini[...] 2024-03-31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