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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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대는 군대의 기본 전술 및 행정 단위로, 역사적으로 다양한 규모와 구성을 거쳐왔다. 스웨덴 군대에서 시작되어 로마의 센투리아와 같은 고대 부대를 거쳐, 현대에는 100~250명 규모로 유지되며 소대, 중대 본부 등으로 구성된다. 중대장은 보통 대위가 맡으며, 부대 지휘 및 관리를 담당한다. 중대는 일반적으로 대대 또는 연대에 편성되지만, 독립 중대로 운영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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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 | |
---|---|
중대 정보 | |
유형 | 군사 단위 |
규모 | 대략 60명에서 250명 사이의 병력 |
지휘관 | 대위 또는 소령 (일부 국가의 경우) |
상위 부대 | 대대 또는 연대 |
하위 부대 | 소대, 분대 등 |
역할 및 구성 | |
일반적인 구성 | 본부 소대 2개에서 4개의 소총 소대 (보병 중대의 경우) 기타 지원 소대 또는 분대 |
보병 중대 | 전투 임무 수행 |
지원 중대 | 중화기 지원 공병 지원 정비 지원 |
기갑 중대 | 전차 또는 장갑차 운영 |
포병 중대 | 포병 지원 |
기타 유형 | 공병 중대 통신 중대 헌병 중대 |
국가별 중대 | |
대한민국 국군 | 육군의 기본적인 전술 제대이며, 중대장의 지휘를 받음 |
미군 | 대위 또는 소령이 지휘하며, 소대로 구성됨 |
영국군 | 소령이 지휘하며, 소대로 구성됨 |
일본 자위대 | 중대는 자위대의 편제 단위이며, 육상자위대에서는 중대본부, 소총소대, 기관총소대, 박격포소대, 대전차소대 등으로 구성됨 |
기타 국가 | 중대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국가별로 고유한 편제와 역할을 가짐 |
기타 | |
동의어 | 대 련 |
2. 역사
현대 군대에서 중대는 1631년 구스타브 2세 아돌프 국왕 치하 스웨덴 군대의 재편성 과정에서 대중화되었다. 보병은 행정상 150명으로 구성된 중대로 나뉘었고, 8개 중대로 구성된 연대로 편성되었다. 전술적으로 보병 중대는 대대로 조직되어 기병대와 포병대와 함께 여단을 형성했다.
연발 소총, 기관총의 출현과 정확한 장거리 소총 사격, 그리고 무선 통신은 고도로 분산된 전투 편대를 필요로 했다. 이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병력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훨씬 더 큰 화력과 전투 효과를 가질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중대는 여전히 일반적으로 100~250명의 범위 내에 있으며, 인간은 150명 정도의 조직에서 가장 잘 싸우고 있다는 전제를 입증하는 것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중대는 일반적으로 대대나 연대로 편성되었지만, 독립 중대처럼 특정 대대나 연대에 속하지 않은 특정 하부 부대도 있었다. 예를 들어 미합중국 남부 연합 주 지역 민병대 중대가 그러하다. 그러나 군대에 편입되고 동화되면서, 이러한 "독립" 중대 중 여러 개가 참여한 중대의 수에 따라 대대 또는 연대를 형성하기 위해 함께 편성되었다.
최근의 "독립된" 중대의 예로는 미 육군 한국 전쟁 시대 보병 사단의 사단 지원 중대(통신, 헌병, 무기 정비, 쿼터마스터, 정찰 및 교체 중대)[2]와 미 육군 "펜토믹" 보병 사단의 사단 항공 중대가 있다. 이러한 중대는 중간 지휘부에 속하지 않고, 사단 사령부에 직접 보고했다.
2. 1. 고대 및 중세
성경의 신약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에는 백인대장과 천인대장이 나온다. 백인대장은 현재 군 편제상 중대장, 천인대장은 연대장급이다. 천인대 6개 전후로 구성되는 군단(군단장)이 있다. 동양에서는 천호(1,000戶), 만호(10,000戶)라는 계급이 있었다. 지휘관이 거느리는 가(家) 수에서 비롯된 직책인데, 대표적으로 이성계의 의동생 이지란이 여진족의 천호였다.이는 휘하에 대한 기준이 달랐기 때문인데, 고대 사회에는 현세와는 달리 인구가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다. 백인대장과 천인대장은 순수하게 휘하 병력만으로 계산해서 병력이 100명이면 백인대장, 1,000명이면 천인대장이라 했다. 반면 천호나 만호는 병력은 물론이고 휘하 백성들까지 머릿수를 계산해서 부하로 칭했다.
고대부터 일부 군대는 100명 정도의 기본 행정 및 전술 부대를 일반적으로 사용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로마의 센투리아일 것이다. 원래는 100명의 부대로 의도되었지만, 시대에 따라 약 60명에서 80명까지 다양했다. 십진법(즉, 십, 백, 천, 만 단위)을 기반으로 한 조직은 직관적으로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로마인들에게는 100명의 부대가 수천 명에 달하는 대규모 병력을 효율적으로 조직하기에 충분히 큰 규모로 보였지만, 한 사람이 자신의 목소리와 신체적 존재감을 사용하여, 음악적 신호(예: 북소리, 나팔이나 트럼펫 소리 등)와 시각적 신호(예: 군기, 군기와 기수기 등)를 보완하여 하나의 응집력 있는 부대로 지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작은 규모였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100명에서 250명 사이의 응집력 있는 그룹에서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데 가장 능숙하며, 150명이 일반적인 수치이다(던바의 수 참조). 최대 100명, 이상적으로는 그보다 적은 수의 군사 부대는 스트레스, 위험, 공포, 소음, 혼란, 그리고 "전쟁의 안개"로 알려진 상황이 사투에 참여하는 병사 집단을 지휘하는 장교에게 가장 큰 어려움을 제시하는 전장에서 통제의 효율성과 효과를 가장 크게 보여줄 것이다. 19세기 후반까지 보병 부대가 정규적으로 근접전을 벌이고, 적을 향해 어깨를 맞대고 줄지어 행군하고 사격했을 때, 중대는 약 100명 또는 그 이하로 유지되었다.
2. 2. 근대
1631년 구스타브 2세 아돌프 국왕 치하에서 스웨덴 군대가 재편성되는 과정에서 중대가 대중화되었다. 보병은 행정상의 목적으로 150명으로 구성된 중대로 나뉘었고, 8개 중대로 구성된 연대로 편성되었다. 전술적으로 보병 중대는 대대로 조직되어 기병대와 포병대와 함께 여단을 형성했다.[2]고대부터 일부 군대는 100명 정도의 기본 행정 및 전술 부대를 사용했다. 로마의 센투리아는 원래 100명의 부대로 의도되었지만, 시대에 따라 약 60명에서 80명까지 다양했다. 십진법 기반 조직은 직관적으로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로마인들에게 100명의 부대는 대규모 병력을 효율적으로 조직하기에 충분히 컸지만, 한 사람이 자신의 목소리와 신체적 존재감을 사용하여 지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작았다.[2]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100명에서 250명 사이의 응집력 있는 그룹에서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데 가장 능숙하며, 150명이 일반적인 수치이다(던바의 수 참조). 19세기 후반까지 보병 부대가 정규적으로 근접전을 벌이고, 적을 향해 어깨를 맞대고 줄지어 행군하고 사격했을 때, 중대는 약 100명 또는 그 이하로 유지되었다.[2]
정확한 장거리 소총 사격, 연발 소총, 기관총의 출현은 고도로 분산된 전투 편대를 필요로 했다. 이것은 무선 통신과 결합되어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병력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훨씬 더 큰 화력과 전투 효과를 가질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중대는 여전히 일반적으로 100~250명의 범위 내에 있다.[2]
역사적으로 중대는 일반적으로 대대나 연대로 편성되었지만, 독립 중대로 편성되어 특정 대대나 연대에 속하지 않은 특정 하부 부대도 있었다. 예를 들어 미합중국 남부 연합 주 지역 민병대 중대가 그러하다. 그러나 군대에 편입되고 동화되면서, 이러한 "독립" 중대 중 여러 개가 참여한 중대의 수에 따라 대대 또는 연대를 형성하기 위해 함께 편성되었다.[2]
초기 근대 육군에서는 부하 병사 전원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닿는 범위 내에서 지휘하는 최상위 지휘관인 대위가 중대장이었다. 전장에서의 직접적인 전술 지휘는 중대장이 담당했고, 공격할 적(부대) 선택, 전진·후퇴 속도와 방향 조정 명령은 중대장이 직접 내렸다. 소대장 이하는 스스로 전술 판단을 하지 않고, 집단 행동만을 요구받았다.[2]
19세기부터 20세기에 들어 포병의 발전과 함께 보병의 산병화가 진행되면서 부대의 행동 단위는 세분화되었고, 한 명의 중대장이 모든 것을 장악하는 방식은 자연스럽게 폐기되었다. 반면, 포병에서는 중대 단위의 사격 통제가 그 이후에도 유지되었다.[2]
이처럼 역할은 변화해 왔지만, 중대의 구성 인원은 대략 100명에서 230명의 범위이다. 이는 인간이 안정적인 사회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인원의 상한으로 여겨지는 던바 수에 가깝다.[2]
2. 3. 조선시대
조선시대에는 종9품 권관(權管)과 초관(哨官)이 현대 군편제상 중대장에 상당한다. 이들은 약 100명의 병력을 거느렸으며, 권관은 주로 지방 진보(鎭堡) 소속이었고 초관은 중앙 군영 소속이었다.[1] 권관, 초관 위에 있던 종4품 만호는 대대장급이다.[1]2. 4. 구 일본 육군
초기 근대 육군에서 중대장은 부하 병사 전원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닿는 범위 내에서 지휘하는 최상위 지휘관인 대위가 맡는 직책이었다. 전장에서의 직접적인 전술 지휘는 중대장이 담당했고, 구체적으로 어떤 적(부대)을 공격할지 선택하거나, 전진·후퇴 속도와 방향을 조정하는 명령은 중대장 자신이 직접 내렸다. 그 휘하에 있는 소대장 이하는 스스로 전술 판단을 하지 않고, 단지 하나가 되어 집단 행동만을 요구받았다.19세기부터 20세기에 들어 포병의 발전과 함께 보병의 산병화가 진행되면서 부대의 행동 단위는 세분화되었고, 한 명의 중대장이 모든 것을 장악하는 방식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반면, 포병에서는 중대 단위의 사격 통제가 그 이후에도 유지되었다.
이처럼 역할은 변화해 왔지만, 중대의 구성 인원은 대략 100명에서 230명의 범위이다. 이는 인간이 안정적인 사회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인원의 상한으로 여겨지는 던바 수에 가깝다.
1890년(메이지 23년) 11월 1일 제정된 「육군정원령」(메이지 23년 11월 1일 칙령 제267호)에 따르면, 당시 각 병과의 연대 및 대대에서 중대의 평시 정원은 다음과 같았다.
- 보병: 136명
- 기병: 159명
- 야전포병·근위포병: 111명
- 요새포병: 134명
- 공병·근위포병: 126명
- 수송병: 290명(수졸을 제외하면 110명)
- 근위수송병: 220명(수졸을 제외하면 100명)
- 둔전보병: 221명
1890년(메이지 23년) 11월 1일 제정된 「육군정원령」(메이지 23년 11월 1일 칙령 제267호)에 따르면, 당시 보병연대의 중대 평시 정원은 다음과 같았다. 보병연대 중대장에게는 승마가 배정되지 않았다. 보병중대는 장교 5명, 하사 10명, 병사 120명, 의무병 1명으로 총 136명으로 구성되었다.
구분 | 직책 | 인원 | 비고 |
---|---|---|---|
장교 | 대위 (중대장) | 1명 | |
중위 | 2명 | ||
소위 | 2명 | ||
하사관 | 조장 | 1명 | |
일등군조 | 5명 | 이 중 1명은 급양 담당 | |
이등군조 | 4명 | ||
병사 | 상등병 | 16명 | |
일등병 | 36명 | ||
이등병 | 68명 | 이 중 4명은 나팔수, 봉공병 2명, 구두수선병 2명 포함 | |
의무병 | 의무병 | 1명 |
태평양 전쟁 중 국내에 있던 평시 편성 보병 중대의 간부 구성은 다음과 같았다.
- 중대장(소좌): 본부의 여러 위원(병기·경리 등)을 겸임하는 경우가 있다.
- 중대 부속 장교(중위·소위 3명 또는 4명): 초년병 교육 담당·고참병 교육 담당·본부 근무·여러 위원 등 적절히 분담
- 인사 담당(준위, 이전에는 특무조장): 내무 담당이라고도 한다.
- 경리 담당 또는 급양 담당(조장): 서무 담당이라고도 한다.
- 병기 담당(군조)
- 피복 담당(군조)
- 진영구 담당(군조 또는 하사)
- 내무반장(군조): 수명(평시 정원이 150명 정도이므로 1반에서 5반 정도로 생각된다)
- 내무반 부속(하사): 1반에 1명 또는 2명 정도
- 주번 하사관(군조 또는 하사): 중대 부속 하사관이 순번으로 맡으며, 부대의 주번 사령관(좌관급의 당직 주임 장교)의 지휘하에 있다.
준위·조장이 여러 명 있는 경우에는 인사 담당 이외의 준위에게 마필 담당·연습 담당·교육 담당 등을 적절히 담당시키고, 병기 담당이 조장인 경우도 있었다. 준위·조장이 여러 명 있는 것은 동원 부대용으로 간부를 증원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대 부속 장교가 부족한 경우에는 수습 장교에게 소위의 대리를 시켰다. 수습 장교는 사관학교·예비사관학교에서 부대에 파견되어 오는 장교 대우의 학생(계급은 조장으로 하사관 중 선임으로 여겨진다)으로, 말 그대로 중대에서 간부의 실무를 수습하는 것이 직무이다. 수습 장교는 부대 실습 기간 중부터 장교 근무가 되고, 계급은 조장이지만 준위의 상급자가 된다. 또 중대 내에는 소년학교 학생(하사관 또는 상등병 대우)이 파견되어 와서 부대 하사관의 실무를 실습하는 경우가 있다.
간부는 장교·준사관·하사관의 총칭이다. 하사관 중 중대 부속 여러 관에 거론되는 것은 경리 담당(또는 급양 담당)과 병기 담당이며, 다른 담당이나 내무반장은 중대 부속 여러 관이라고 하지 않는다. 중대의 담당이나 반에 속하지 않는 하사관도 있으며, 대대 본부나 연대 본부 또는 부대 외부의 여러 기관에 근무하거나, 학교·교도 부대에 파견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도 소속은 어디까지나 중대 소속이다.
집무 장소는, 중대장이 중대장실(개인실), 장교는 중대의 장교실(1개 방 합숙), 준사관·하사관은 중대 사무실, 준위는 인사를 다루므로 면접 등에 사용하는 개인실을 따로 가지는 경우가 있다. 병기 담당은 중대 병기고, 피복 담당은 중대 피복고에서 조수나 사역의 병사를 지휘 감독하는 경우가 많다. 내무반장·반 부속 하사관은 내무반 옆에 하사관실을 가지고, 하사관만으로 합숙하고 있다. 중대에는 식사부터 급여·피복·병기·진영구와 금전·물품 회계의 사무가 있으며, 준위·조장은 전적으로 책상에 매달려 이것들에 필요한 서류·계산을 정확히 처리해야 하며, 여기에 동원 명령이 있으면 처리량은 배증하여 매우 번잡해졌다. 각 담당에는 조수인 상등병이 붙지만, 독서, 주판에 능숙한 일등병 이하를 사역병으로서 사무실 근무로 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또, 차를 따르는 일로 중대장실·사무실에는 당번이 배치되었다.
평시의 간부는 모두 현역 군인인 것이 원칙이지만, 전시가 되어 동원령이 내려지면 예비역의 장교, 준사관, 하사관이 다량으로 응소하여 와서, 현역 간부가 차지하는 비율은 급격히 감소한다. 쇼와 12년(1937년) 이후는 동원 부대가 급격히 팽창했기 때문에, 오히려 국내의 유수 부대에서는 현역 장교가 드문 존재가 되어 간다. 종전 가까이 되면 간부 부족으로 대대장을 소좌, 중대장을 중위가 맡는 경우가 많아진다. 위관의 진급은 연공서열이므로, 중대장은 30세를 넘고 있는 경우가 많고, 소좌가 되어도 좌관은 발탁 진급이므로, 육군대학교를 나오지 않은 자는 중소좌로 현역 정년 연령(소위 정년)을 맞이하여 예비역 편입(퇴직)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대로 하사관에서 진급해 온 준사관의 현역 준위가 되면 30대 후반의 노련한 사람(예비역 편입은 40세)이 많았다.
하사관도 예비역 응소의 하사관 적임 증을 가진 상등병이 「지원이 아닌 하사관」으로 하사를 명령받고, 그대로 복원·응소를 여러 번 되풀이하여 진급해 가는 예가 많아진다. 평시는 상급자가 있으므로 30세를 넘지 않으면 준위까지 진급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전시에는 현역 우수자로 29세 정도에 준위로 진급하는 경우가 있었다.
생활은 현역 군인의 급여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지 못하고, 쇼와 시대에 들어와서는 전체적으로 가난했으며, 관청의 문관의 급여에 대입하면, 대략 중대장이 본청 계장(경찰에 있어서의 경부), 장교·준사관은 본고용의 계원(총괄 경부보), 하사관은 고용원(경부보·순경장)의 수준으로 생각된다. 특히 하사관은 임기제로, 임기마다 현역 지원을 되풀이하는 방식이었다. 임기가 끝났을 때 민간에 취직하는 자도 많이 있어서, 세상의 경기가 좋을 때는 하사관이 부족하다고 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하사관은 원칙적으로 영내 거주이며, 조장·고참 군조에게는 중대 병영 내에 개인실이 주어졌다. 고참 조장은 신청하면 영외 거주가 인정되었다. 그 주거는 하숙이나 전세가 많고, 준위가 되어 급여가 오르면, 겨우 단독 주택의 전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중소위는 역시 하숙이나 전세가 많고, 소좌가 되면 체면상으로도 전세로 이사하는 자가 많다. 이것은 우스갯소리로 「가난한 소위, 꾸려나가는 중위, 겨우 소좌」라고 말해졌다. 장교의 피복·개인 휴대 병기(장도·권총·쌍안경 등)는 소위가 되었을 때의 임관 수당을 제외하고, 그 이후는 자비이며, 가계를 꾸려서 조달해야만 했다.
장교에게는 전근이 있으며, 다른 사관구로 이동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사관이 원대에서 이동하는 것은 드물고, 다른 부대로 이동하는 것은 있어도, 동일 사관구 내 또는 전시에 편성되는 동원 부대로 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관동군의 만주 사변 이전의 철도 수비대의 하사관 병은 전국 각지의 예비역 중에서 지원한 자로 이루어져 있어 예외이다.
「사적 제재」이지만, 간부는 이것에 관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없고, 전적으로 고참병이 초년병을 괴롭히는 것과, 내무반의 초년병 담당(상등병 또는 병장)이 임무의 필요로 신병에게 교육적 지도를 하는 것이 있었다. 사적 제재 금지의 지시는 상층부로부터 여러 번 나오고 있지만, 준위나 내무반장이 제대로 통제하지 않으면 철저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또, 준위 자신이 「요즘 초년병은 흐물흐물하다」라고 말하고, 암암리에 엄하게 하도록 시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 지역에 따라서는 사적 제재의 전통이 전혀 없는 부대도 있다. 지역별 젊은이들의 숙소의 전통적인 괴롭힘 의식이 그대로 병영에 도입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3. 현대의 중대
현대에 들어서면서 중대의 역할과 구성은 변화했지만, 그 인원은 대략 100명에서 230명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인간이 안정적인 사회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인원 수의 상한으로 여겨지는 던바 수와 유사하다.
육군에서는 초기 근대에 대위가 지휘하는 중대가 최상위 부대였다. 중대장은 전장에서 직접적인 전술 지휘를 담당했고, 공격 대상, 전진 및 후퇴 속도와 방향을 결정했다. 그러나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포병의 발전과 보병의 산병화가 진행되면서, 중대장의 역할은 변화했다. 한 명의 중대장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방식은 사라졌지만, 포병에서는 중대 단위의 사격 통제가 유지되었다.
육상자위대의 경우, 보병연대에는 대대가 없고, 보병연대 바로 아래에 보병중대 등이 있다. 상황에 따라 중대전투군(제병협동부대이며, 규모는 대대에 필적한다)을 편성하기도 한다. 따라서 3등육좌(소좌 상당)와 같이 비교적 높은 계급의 자위관이 중대장으로 임명되는 경우도 있다. 특과대대 예하 사격중대에서는 중대가 최소 부대 단위이며, 지휘관직인 중대장 및 중대기(乙)도 배치되어 있지만, 그 규모는 보병 소대급이다.
해군(해상자위대)에서는 하사관병(조사)의 지도 감독 및 신상 취급에 관하여 분대장이 육군(육상자위대)에서 말하는 중대장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중대장은 다음과 같은 다양한 권한을 가진다.[30]
- 근무 지도: 중대장은 영내 근무에 있어서 부하와 진정으로 하나 되어 솔선수범하고, 대원 상호 간의 친목을 도모하여 중대장을 중심으로 굳게 결합된 중대를 만들어야 한다.
- 징계권: 자신이 지휘·감독하는 자위관에 대해 징계처분을 할 수 있는 최소 단위의 부대장이다. 간부 자위관에 대해서는 견책, 준위·하사관 또는 병에 대해서는 경징계를 할 수 있다.[31]
- 외출 허가권: 중대에 근무하는 자위관에 대한 외출 허가권을 가지고 있다. (단, 이 허가권은 명목상의 것이며 실무적으로는 중대 부속 준위나 선임 하사관에게 위임하고 있다.) 자동차 운전교습소 교육 입교나 예하 소대가 다른 주둔지로 이동하는 경우에 한하여, 해당 부대장 또는 예하 소대장에게 외출 관련 권한을 위임하는 경우도 있다.[32]
;중대 관련 직책
- 중대장
- 보통과·전차 등 편성 상 연대 또는 1사(佐) 직책의 대(隊) 편성 예하의 중대장: 3등육사(陸佐) 또는 1등육위(陸尉)가 임명된다.
- 특과연대(군) 등의 대대 및 통신·시설 등의 군(대대) 직할 예하의 중대장: 1등육위 또는 2등육위(陸尉)가 임명된다.
- 후방지원대(연대)의 중대장: 원칙적으로 3등육사 또는 1등육위가 임명된다.
- 전차대대의 중대장: 원칙적으로 1등육위가 임명된다.
- 方面수송대의 예하 중대장의 일부: 편성상 1등육위가 임명되고 소총 장비가 된다.
- 기타: 일부 부대는 지휘 운용의 형편에 의해 2등육사(陸佐)가 임명된다.
- 부중대장(임의적): 육위(陸尉)(준육위를 포함하지 않음)가 임명된다. 중대장의 보좌·부재시의 대행 등이 직무이다.
- 계 간부: 중대에 근무하는 간부 또는 준육위가 중대의 업무를 할당받는다.
- 상급조장(上級曹長)(구 중대 부준위(付准尉)): 준육위 - 1등육조가 임명된다. 통상은 「선임」이라고 불린다.
3. 1. 대한민국 국군
대한민국 국군의 중대 편제는 다음과 같다.[36][37][38]
3. 2. 서구권 군대
유럽 군대의 중대는 다음과 같은 구조이다.[39]- 중대장: 대위
- 중대장 보좌관: 준위 또는 소위[40] 또는 중위[41]
- 행정보급관: 상사
- 1소대장: 중위
- 1소대장 대리자: 소위[42]
- 2소대장, 3소대장: 상사
- 부소대장: 중사
- 분대장: 하사
소총 중대는 세 개의 소대와 중대 본부로 구성된다. 기마 부대의 유산을 가진 부대(예: 근위기병대, 왕립기갑병과, 왕립공병대, 왕립통신병과, 육군항공대, 특수공중정찰대, 명예포병대, 왕립후방지원병과)는 중대 규모 부대에 '중대' 대신 소대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왕립포병대에서는 '포대'라고 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까지 왕립공병대와 왕립통신병과는 부대가 기마 부대 또는 보병 부대를 지원하는지에 따라 소대와 중대를 모두 운용했다.
영국 육군 보병은 일반적으로 대대 내에서 소총 중대를 문자(보통 A, B, C)로 구분하며, 본부 중대와 지원/중화기 중대가 추가된다. 일부 부대는 연대 전투 명예 훈장을 따서 중대 이름을 짓기도 한다. (예: 런던 연대의 솜, 메시네, 캉브레 중대). 근위 보병 연대는 여왕 중대, 좌익, 웨일스 왕자 중대 등 일부 중대에 전통적인 이름을 사용한다.
왕립 해병대 중대는 군단 전체에서 고유한 문자로 지정되며, 사령부 내에서만 고유한 것이 아니다. 정보병과, 왕립군사경찰, 왕립전기기계공병대는 모두 군단 전체에서 고유하게 번호가 매겨진 중대를 가지고 있다. 폐지된 왕립군수병과, 왕립개척병과, 왕립군무기병과는 중대를, 왕립수송병과는 소대를 운용했다.
영국 중대는 보통 소령인 지휘관(OC)이 지휘하며, 대위 또는 상급 중위가 2인자(2i/c)를 맡는다. 중대 본부에는 중대상사(CSM)(상사 계급)와 중대주임상사(CQMS)(하사관 계급)가 포함된다.
명예포병대는 조직 및 규모 면에서 실제로는 중대가 아니라 연대이다.
캐나다 육군에서 중대는 영국군을 모델로 한 보병과 전투지원의 표준 하위 부대 편제이다. 캐나다 보병 대대는 3~4개의 소총 중대(A 중대, B 중대 등), 전투 지원 중대, 행정 지원 중대로 구성된다. 로열 캐나다 연대는 예외적으로 제1대대의 에든버러 공작 중대(A 중대 대신)부터 제4대대의 T 중대까지 연대 전체에 걸쳐 중대 이름을 순차적으로 붙인다. 많은 연대는 전투 명예나 현재 연대를 구성하는 이전 부대의 이름을 따서 중대 이름을 짓는다. (예: 토론토 스코티시 연대(퀸 엘리자베스 퀸 마더 소유)(75중대), 캐나다 여왕 소유 라이플 연대(빅토리아 중대), 캐나다 왕실 연대(그레나디어 중대), 캐나다 그레나디어 근위대(제2(웨일스 공) 중대))
전투 지원 중대는 정찰, 개척, 본부 및 통신, 대전차, 박격포와 같은 특수 소대를, 행정 지원 중대는 요리사, 차량 정비사, 보급, 의무병 등 대대에 필요한 지원 병과를 포함한다. 영국 육군과 마찬가지로 기갑 유산을 가진 중대 규모 부대는 '비행중대(squadron)'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포병에서는 '포대(battery)'라고 부른다.

보병 야전 교범 「INFANTRY FIELD MANUAL(2 JUN 1941)」에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군의 보병 중대는 소총 소대 3개와 화기 소대 1개를 기본으로 편성되었다. 중대 단위에서도 박격포와 기관총에 의한 화력 지원을 갖추고 있었다.
3. 3. NATO
NATO는 중대를 "소대보다 크고 대대보다 작은" 단위로 정의하며, "일반적으로 동일한 유형의 두 개 이상의 소대로 구성되며, 사령부와 제한적인 자체 지원 능력을 갖춘 부대"라고 설명한다.[4] 표준 NATO 중대 기호는 프레임으로 둘러싸인 부대 아이콘 위에 단일 수직선을 배치한 것이다.[4] 회원국들은 이러한 규모의 조직에 사용할 서로 다른 명칭을 규정했다.
3. 4. 러시아 군대

소련 기계화 소총 중대는 BTR 장갑차 또는 BMP 보병전투차에 탑승할 수 있었으며, 1980년대 후반까지는 전자가 더 많았다. BTR 소총 중대는 중대 본부, 3개의 기계화 소총 소대, 3정의 PK 기관총과 3문의 AT-7 삭스혼 발사기를 장비한 기관총/대전차 소대로 구성되어 총 110명의 인원과 12대의 BTR로 이루어졌다. BMP 소총 중대는 인원과 차량 수가 동일했으며, 중대 본부, 3개의 기계화 소총 소대, 6정의 RPK-74로 무장한 기관총 소대로 구성되었다. 화력이 적어 보이지만, 미군 지휘관들은 BMP의 더 무거운 무기를 계산에 포함하라는 지시를 받았다.[26]
1980년대 후반 이전, 기계화보병연대 소속의 소련 전차 중대는 중대 본부와 T-64, T-72 또는 T-80 전차 3개 소대로 구성되었으며, 총 39명의 인원과 13대의 전차를 보유했다. T-54, T-55 또는 T-62 전차를 운용하는 중대는 13명의 병사가 추가되었다. 전차연대 또는 독립 전차대대 소속 중대는 규모가 약간 작아 10대의 전차와 30명의 인원(구형 전차의 경우 40명)을 보유했다.[27][28]
2013년에는 고등교육을 받은 징집병들이 과학 및 연구 업무를 수행하며 복무할 수 있도록 연구 중대(научная рота|nauchnaya rotaru)가 설립되었다. 총 7개의 연구 중대가 있다.
3. 5. 미군

18세기 영국군, 미국 식민지 민병대, 주 정규군(예: 버지니아 연대) 및 이후 미국 육군 보병 연대는 장교와 사병을 합쳐 100명 남짓한 중대 규모로 편성되었으나, 실제 인원은 매우 다양했다. 1775년 전형적인 영국군 보병 중대는 47명(장교 3명, 부사관 5명, 드러머 1명, 사병 38명)이었으나, 1792년 미국 보병 중대는 98명(장교 3명, 부사관 9명, 드러머 1명, 피퍼 1명, 사병 84명)이었다.[29]
1775년부터 미국군은 프랑스-프로이센 모델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조직 교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1776년 대륙군 보병 중대는 대위 1명, 소위 1명, 중위 1명, 깃발수호병 1명, 상사 4명, 하사 4명, 음악병 2명, 사병 76명으로 구성되었다. 중대는 2개 소대로 편성되었고, 각 소대는 상사 1명, 하사 1명, 사병 19명으로 구성된 2개 분대/소대로 편성되었다.[29]
18세기 후반~19세기 후반 미국 보병 중대는 대위가 지휘하고 상사가 보좌했으며, 중위가 지휘하는 2개 소대로 구성되었다. 1898년 스페인-미국 전쟁 동원 과정에서 육군 확장에 따라 중대 부관과 3번째 소대장 직책이 승인되었다. 19세기 보병 중대 승인 병력은 증감을 반복했다.
18세기~19세기 후반 중대는 행정 및 전술 부대였으며, 대부분 집결 부대로 사용되었다. 지휘관(대위)은 전투를 지휘하며 공격 시 선두, 방어 시 측면에서 지휘했다. 부관은 중대장 보좌 및 후방 관리를 담당했다. 상사는 "열 닫는 사람"으로 사상자 대체, 사격/재장전/전진 독려 등을 수행했다. 하사는 사병과 함께 전열에 참여, 전투 모범을 보였다.
1775년~1808년 중대 최하위 장교 깃발수호병은 깃발 관리 임무를 맡았다. 19세기 초 깃발수호병 계급/직책은 폐지, 담당자는 소위로 전환되었다.
음악병은 지휘관과 함께 소리로 명령을 전달했다. 연대장은 음악병을 연대 군악대로 모아 드러머를 통해 연대 북소리로 여러 중대에 명령을 내렸다.
1898년 스페인-미국 전쟁 동원 과정에서 소총 중대는 3개 소대로 확장, 장교 2명이 추가되었다. 분대장/소대장 복무 부사관(NCO) 수도 증가했다. 1905년 중대 고참 부사관 참모에 급양하사 추가, 중대 주급수하사는 보급하사로 개명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동원으로 육군은 "사각 편제" 조직 구조를 채택, 소대부터 부대 규모를 대폭 늘렸다. 1917년 중대에 4번째 소대가 추가되어 규모가 확대되었다.

미국 육군 보병 중대는 보통 3개 소총 소대와 1개 중화기 소대로 구성된다. 기계화보병 중대는 보통 4대 보병전투장갑차(IFV)로 구성된 3개 소총 소대, 2대 IFV 포함 지휘 요소로 구성된다. 전차 중대는 보통 4대 전차로 구성된 3개 전차 소대, 2대 전차 포함 지휘 요소로 구성된다. 지원 중대는 특수화 소대로 나뉜다. 중대는 보통 대위가 지휘하나, 중위/소령 지휘도 가능하다. 구성 소대와 달리 중대는 행정장교(XO), 상사, 준비/훈련 하사관 등 추가 지원 인원이 있다. 포병 해당 부대는 '포대(battery)', 기병 부대는 '분대(troop)' 용어를 사용한다.
모부대 대대와 분리되지 않은 중대는 문자로 식별된다. 예: "제15보병연대 제1대대 A중대"(문서상 "A/1-15 INF", 구두 표현은 다름). "1-15" 하이픈은 부대 역사가 육군 제15보병연대 계보에서 유래함을 나타낸다. 중대는 자체 상부 조직 없이 모부대 상부 조직을 공유한다.
공식 명칭은 아니나, NATO 음성 문자를 사용한 "GI 속어"로 "브라보 중대", "에코 중대" 등으로 발음된다. 별도 편제/장비표(TO&E) 보유 중대는 번호로 식별, 타 부대 지원 없이 독립 운영 가능하다.
중대 규모 부대는 보통 중위가 이끄는 4~6개 소대로 구성되나, 7개 이상 소대 보유 전투 지원/전투 지원 중대도 있다.
중대는 보통 대위가 지휘하나, 특수 작전 능력 중대는 소령 지휘, 소대는 대위 지휘도 가능하다. 대위는 보통 대대장(중령)에게 보고하나, 대대 이상(여단/사단) 일부 행정/기타 임무도 대위가 처리한다.
중대 최고 하사관은 상사다. 직책 담당 하사관은 실제 계급 무관 "상사"로 호칭된다.
4. 중대장
중대의 최고 지휘관이다. 중대장부터 지휘관을 상징하는 지휘관 휘장을 가슴에 착용한다.[30]
대체로 위관장교가 이 직책을 담당하며, 중대는 보통 100명 안팎의 병력을 보유한다. 보통 대위가 담당한다. 중대보다 더 규모가 작은 부대의 지휘자인 소대장도 장교로 임명한다. 육군 기준으로 육군훈련소와 사단 신병교육대의 중대장은 부사관인 상사나 원사가 보임된다. 사단이나 여단 직할중대는 소령(진)이나 소령이 보임된다.
서구권 국가에서는 중대장이 되기 위해서 인수인계 차원으로 중대장 보좌관을 역임한 뒤 임무가 익숙해지면 중대장으로 보직하는 제도를 하는 나라도 있다. 또한 서구권 국가의 군대에서는 소대장은 장교와 부사관을 섞어서 임명하지만 중대장부터는 장교만 임명한다.
초기 근대 육군에서는 부하 병사 전원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닿는 범위 내에서 지휘하는 최상위 지휘관이 대위가 맡는 중대장이었다. 전장에서의 직접적인 전술 지휘는 중대장이 담당했고, 구체적으로 어떤 적(부대)을 공격할지 선택하거나, 전진·후퇴 속도와 방향을 조정하는 명령은 중대장 자신이 직접 내렸다. 그 휘하에 있는 소대장 이하는 스스로 전술 판단을 하지 않고, 단지 하나가 되어 집단 행동만을 요구받았다.
19세기부터 20세기에 들어 포병의 발전과 함께 보병의 산병화가 진행되면서 부대의 행동 단위는 세분화되었고, 한 명의 중대장이 모든 것을 장악하는 방식은 저절로 폐기되었다. 반면, 포병에서는 중대 단위의 사격 통제가 그 이후에도 유지되었다.
이처럼 역할은 변화해 왔지만, 중대의 구성 인원은 대략 100명에서 230명의 범위이다. 이는 인간이 안정적인 사회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인원의 상한으로 여겨지는 던바 수에 가깝다.
해군(해상자위대)에서는 하사관병(조사)의 지도 감독 및 신상 취급에 관하여 분대장이 육군(육상자위대)에서 말하는 중대장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중대는 부대 구성 단위에서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중대장에는 간부 임관 후 수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자가 임명되므로 다양한 권한이 부여된다.
- 근무 지도: 중대장은 영내 근무에 있어서는 부하와 진정으로 하나 되어 솔선수범하고, 대원 상호 간의 친목을 도모하여 중대장을 중심으로 굳게 결합된 중대를 만들어야 한다.[30]
- 징계권: 자신이 지휘·감독하는 자위관에 대해 징계처분을 할 수 있는 최소 단위의 부대장이다. 간부 자위관에 대해서는 견책, 준위·하사관 또는 병에 대해서는 경징계를 할 수 있다.[31]
- 외출 허가권: 중대에 근무하는 자위관에 대한 외출 허가권을 가지고 있다. (단, 이 허가권은 명목상의 것이며 실무적으로는 중대 부속 준위나 선임 하사관에게 위임하고 있다.) 자동차 운전교습소 교육 입교나 예하 소대가 다른 주둔지로 이동하는 경우에 한하여, 해당 부대장 또는 예하 소대장에게 외출 관련 권한을 위임하는 경우도 있다. 부대가 중대에 준하는 대 편성이거나 부대 예하에 중대가 설치되지 않은 1사령관 직책의 대장이 지휘관인 부대에서는 해당 부대장이 그 허가권을 가진다.[3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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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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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britanni[...]
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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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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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O Standardization Off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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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간행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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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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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6D B-5
[7]
간행물
APP-6D B-6
[8]
간행물
APP-6D B-7
[9]
간행물
APP-6D B-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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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6D B-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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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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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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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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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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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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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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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6D B-2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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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6D B-2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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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6D B-26
[21]
간행물
APP-6D B-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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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_6D B-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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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6D B-3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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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6D B-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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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 of Military History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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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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任命権に関する訓令
1961-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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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규
陸上自衛隊服務細則
1960-04-30
[33]
기타
중대장은 지휘관이며, 중대장 이하 소대장, 분대장 등은 지휘자이다.
[34]
기타
구 일본제국 육군 항공부대, 영연방 국가 육군 Squadron, Troop, Regiment에 대한 설명
[35]
기타
일본 해상자위대 항공집단, 구 일본제국 해군 항공부대의 '항공대'에 대한 설명
[36]
일반텍스트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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