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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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72년은 후한의 건녕 5년, 희평 원년, 신라 아달라 이사금 19년, 고구려 신대왕 8년, 백제 초고왕 7년에 해당한다. 후한은 고구려를 침공했으나 명림답부의 지휘 아래 좌원 대첩에서 고구려가 승리했고, 자화 전투에서 명림답부가 한나라 군대를 물리쳤다. 두태후의 죽음과 관련된 사건, 신라의 관직 임명 및 수도 금성의 돌림병, 그리고 한나라 연호 변경 등의 사건이 있었다. 로마 제국에서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원정을 통해 게르만족을 정복하고, 사르마티아인의 공격을 받았으며, 시리아 총독 아비디우스 카시우스가 이집트 반란을 진압했다. 문화적으로는 타티아누스가 디아테사론을 저술하고 몬타누스파가 확산되었다. 노숙, 왕릉, 여몽 등이 태어났고, 두묘, 후란, 마르쿠스 마크리니우스 빈덱스 등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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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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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 |
발생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게르마니아 침공 격퇴 |
기타 | 중국에서 한나라의 영락이 시작되다. |
2. 연호
3. 사건
- 후한이 고구려를 침공하였다.
- 좌원 대첩: 명림답부의 지휘 아래 고구려가 한나라의 침입에 맞서 대승을 거두었다.
- 교주에 귀양 가 있던 두태후의 어머니가 죽자, 이를 안 두태후도 얼마 가지 못해 병들어 죽었다. 조절은 두태후를 황후가 아닌 귀인(貴人)의 예로 장사지내려 했으나 영제의 반발로 실패했다. 조절은 다시 환제의 묘소에 합장시킬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여러 신하들이 영제를 설득하여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음력 1월, 신라는 구도를 파진찬으로 삼고, 구수혜를 일길찬으로 삼았다.
- 음력 2월, 신라는 시조묘를 섬겼다. 수도 금성에 큰 돌림병이 있었다.
3. 1. 동아시아
3. 2. 로마 제국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원정군을 이끌고 다뉴브 강을 건넜다. 그는 마르코만니족과 그들의 동맹군을 정복하고, 게르만 부족과 체결한 조약에 따라 페스트로 인구가 감소한 지역을 채우기 위해 그들을 로마 제국으로 이주시켰다.[1]
- 사르마티아인이 다뉴브 강 하류 국경을 공격했다.
- 모라비아의 기적: 혹독한 더위 속에서 로마 군대가 콰디족에게 포위당하자, 격렬한 뇌우가 쏟아져 콰디족을 물과 진흙으로 휩쓸어 버리고, 갈증에 시달리는 로마 군단병들에게 단비를 내렸다.
- 시리아 총독 아비디우스 카시우스가 이집트의 농민 반란을 진압하고 동방 로마 군대의 최고 사령관이 되었다.
4. 문화
5. 탄생
6. 사망
- 두묘 - 중국 후한 환제의 황후였다.[1]
- 후란 - 중국 후한의 환관이자 정치가였다.
- 마르쿠스 마크리니우스 빈덱스 - 로마 근위대 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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