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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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0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는 독일 재통일 이후 처음으로 실시된 선거로, 1990년 10월 3일 통일 이후 치러졌다. 선거 결과, 기독교민주연합/기독교사회연합(CDU/CSU) 연합이 제1당을 유지하고 자유민주당(FDP)과 연립하여 헬무트 콜 총리 내각이 재집권에 성공했다. 동서독에 별도로 적용된 5% 봉쇄 조항으로 인해 서독의 녹색당은 의석을 얻지 못했지만, 동독의 동맹 90/녹색당과 민주사회당(PDS)은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이 선거는 통일 독일의 정치 지형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콜 총리의 통일 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확인하고, 독일 정당 체계의 다양성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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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 | |
---|---|
지도 | |
![]() | |
선거 개요 | |
국가 | 독일 |
선거 유형 | 의회 |
이전 선거 | 서독 1987 ← 동독 1990 |
선거 날짜 | 1990년 12월 2일 |
다음 선거 | 1994년 독일 연방 선거 |
다음 선거 연도 | 1994년 |
선출 의원 목록 | 제11대 연방하원 의원 목록 |
선출 의원 | 제12대 연방하원 의원 목록 |
선거 의석 | 연방하원의 전체 662석 |
과반 의석 | 332 |
등록 유권자 | 60,436,560 ( 33.3%) |
투표 수 | 46,995,915 (77.8%) ( 6.5 %p) |
주요 후보 | |
후보 1 | 헬무트 콜 |
정당 1 | 기민련/기사련 |
이전 선거 결과 1 | 44.3%, 223석 |
선거 전 의석 1 | 297 |
당선 의석 1 | 319 |
의석 변화 1 | 14 |
득표수 1 | 20,358,096 |
득표율 1 | 43.8% |
득표율 변화 1 | 0.5 %p |
후보 2 | 오스카르 라퐁텐 |
정당 2 | 독일 사회민주당 |
이전 선거 결과 2 | 37.0%, 186석 |
선거 전 의석 2 | 226 |
당선 의석 2 | 239 |
의석 변화 2 | 13 |
득표수 2 | 15,545,366 |
득표율 2 | 33.5% |
득표율 변화 2 | 3.5 %p |
후보 3 | 오토 그라프 람스도르프 |
정당 3 | 자유민주당 |
이전 선거 결과 3 | 9.1%, 46석 |
선거 전 의석 3 | 57 |
당선 의석 3 | 79 |
의석 변화 3 | 22 |
득표수 3 | 5,123,233 |
득표율 3 | 11.0% |
득표율 변화 3 | 1.9 %p |
후보 4 | 그레고어 기지 |
정당 4 | 민주사회당 |
이전 선거 결과 4 | 존재하지 않았음 |
선거 전 의석 4 | 24 |
당선 의석 4 | 17 |
의석 변화 4 | 7 |
득표수 4 | 1,129,578 |
득표율 4 | 2.4% |
득표율 변화 4 | 새로운 정당 |
후보 5 | 없음 |
정당 5 | 녹색당 (동독) |
이전 선거 결과 5 | 존재하지 않았음 |
선거 전 의석 5 | 7 |
당선 의석 5 | 8 |
의석 변화 5 | 1 |
득표수 5 | 559,207 |
득표율 5 | 1.2% |
득표율 변화 5 | 새로운 정당 |
정부 | |
선거 전 정부 | 제3차 콜 내각 |
선거 전 정당 | 기민련/기사련–자민당 |
선거 후 정부 | 제4차 콜 내각 |
선거 후 정당 | 기민련/기사련–자민당 |
기타 정보 | |
선거 제도 | 소선거구 비례대표 병립제 |
2. 선거 배경
1990년 10월 3일 독일 재통일 이후 처음으로 실시된 선거였다. 이전에는 인민의회(Volkskammer)가 선출한 144명의 의원이 보궐선거를 통해 독일 연방의회 의원이 되었고, 제11대 연방의회가 끝날 때까지 임기를 수행했다.
재통일된 독일 동부 주를 대표하기 위해 서부 의원 수를 줄이지 않고 약 150석이 추가되었다. 재통일에 대한 긍정적인 분위기는 선거 운동 기간 동안 서독과 동독 모두에서 집권 기민련/기사련–자민당 연합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를 계기로, 1990년 10월 동서 양독이 재통일되면서 새로운 독일 연방 공화국의 연방 의회 의원을 선출하기 위해 실시된 선거이다. 재통일을 추진한 헬무트 콜 총리의 여당인 중도 우파 연합(기독교민주연합·기독교사회연합과 자유민주당)이 압승했다.
이 선거에서 5% 봉쇄 조항은 전국적으로 적용되지 않고, 옛 동독 (동베를린 포함)과 옛 서독 (서베를린 포함)에 별도로 적용되었다. 그 결과 서독의 녹색당은 의석을 얻지 못했지만, 이념적으로 유사한 동독의 동맹 90은 의석을 얻었고, 두 정당은 1993년에 동맹 90/녹색당으로 합당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서 울라 옐프케를 당선시킨 PDS와 달리 동독 정당은 옛 서독에서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한스요아힘 발터 대표의 독일 사회 연합 (DSU)은 바이에른 기사련을 모델로 한 우익 정치 정당으로, 옛 동독에서만 활동했으며, 별도의 5% 봉쇄 조항을 달성하지 못하고, 동부 주에서 약 1%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대부분 동남부 지역). 보궐선거로 DSU는 8명의 독일 연방의회 의원을 배출했으며, 이들은 기민련/기사련 의원 총회에 객원으로 참여했다. DSU를 재정적으로 지원했던 기사련은 1993년에 관계를 끊었고, DSU는 쇠퇴했다. 기사련과 DSU의 명단을 연결하는 법률이 연방 헌법 재판소에 의해 뒤집힌 후, 기사련은 기민련에게 여러 소선거구에서 후보를 사퇴하여 DSU가 5% 봉쇄 조항과 별개로 연방의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설득하려 했지만, 헬무트 콜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2. 1. 선거 제도
독일 연방의회는 소선거구 비례대표 병립형으로 선출된다. 전체 의석은 제2투표(정당 투표)에 따라 비례적으로 배분되지만, 군소 정당의 난립을 막기 위해 제2투표에서 유효 투표의 5% 이상을 획득하거나 제1투표(선거구 후보자 투표)에서 3명 이상이 당선되어야 의석을 배분받을 수 있다. 이를 "5%·3의석 조항"이라고 부른다.1990년 선거는 통일 직후에 실시되었기 때문에, 이 조항이 동독과 서독 지역에 별도로 적용되는 특례가 있었다. 이러한 분리 적용으로 인해 서독의 녹색당은 의석을 얻지 못했지만, 동독의 동맹 90은 의석을 획득했다.
선거는 비밀 투표로 진행되며, 유권자는 후보자와 정당에 각각 투표하는 2표제를 사용한다. 투표용지에 기호로 의사를 표시하는 기호식 투표 방식을 사용한다.
선거권과 피선거권은 모두 만 18세 이상의 독일 연방 공화국 국민에게 주어진다. 1990년 선거 당시 선거권자는 60,436,560명이었다.
3. 주요 정당 및 후보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1990년 10월 동서독 재통일이 실현되면서, 새로운 독일 연방 공화국의 연방 의회 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는 재통일을 추진한 헬무트 콜 총리의 여당인 기독교민주연합·기독교사회연합 연합과 자유민주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각 정당별 자세한 내용은 하위 섹션에서 다룬다.
3. 1. 기독교민주연합/기독교사회연합 (CDU/CSU)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1990년 10월 동서독 재통일이 실현되면서 헬무트 콜 총리가 이끄는 기독교민주연합(기민련)과 기독교사회연합(기사련) 연합은 통일 분위기 속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 특히, 구 동독 지역에서 의석을 추가 확보하여 전체 의석 수를 늘렸다.콜 총리는 재통일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고, 긍정적인 경제 전망은 기민련/기사련 연합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 다만, 기사련이 독일 사회 연합 (DSU)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며 관계를 맺으려 했으나, 콜 총리는 DSU 후보 지원을 거부했다.
3. 2. 독일 사회민주당 (SPD)
주어진 이전 결과물은 원본 소스에 오스카 라퐁텐 후보와 관련된 내용이나 주요 공약, 통일 과정에서의 역할, 한계 등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주어진 정보만으로는 내용을 작성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전 결과물은 주어진 지시사항(원본 소스만을 사용하여 섹션 내용을 작성)을 따를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명시한 것이므로, 수정할 내용이 없습니다.3. 3. 자유민주당 (FDP)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1990년 10월 동서독이 통일되었다. 콜 총리가 이끈 여당인 중도 우파 연합(기독교민주연합, 기독교사회연합)과 연립 정부를 구성했던 자유민주당은 이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다.3. 4. 동맹 90/녹색당 (Bündnis 90/Die Grünen)
Bündnis 90/Die Grünende은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1990년 10월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치러진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 참여하였다. 하지만, 통일을 주도한 콜 총리의 여당인 중도 우파 연합(기독교민주연합·기독교사회연합과 자유민주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3. 5. 민주사회당 (PDS)
독일 사회주의통일당(SED)의 후신인 민주사회당(PDS)은 옛 동독(동베를린 포함) 지역에서만 5% 봉쇄 조항을 적용받아 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서는 울라 옐프케를 당선시켰으나, 서독 지역에서는 의석을 얻지 못했다.3. 6. 기타 정당
독일 사회 연합(DSU)은 한스요아힘 발터가 이끌던 우익 정치 정당으로, 바이에른 기사련을 모델로 했다. 옛 동독 지역에서만 활동했으며, 5% 봉쇄 조항을 달성하지 못하고 동부 주에서 약 1%의 득표율을 기록했다(대부분 동남부 지역). 보궐선거를 통해 DSU는 8명의 독일 연방의회 의원을 배출했으며, 이들은 기민련/기사련 의원 총회에 객원으로 참여했다. DSU에 재정 지원을 많이 했던 기사련은 1993년에 관계를 끊었고, DSU는 쇠퇴했다. 기사련과 DSU의 명단을 연결하는 법률이 연방 헌법 재판소에서 기각된 후, 기사련은 기민련에게 여러 소선거구에서 후보를 사퇴시켜 DSU가 5% 봉쇄 조항과 관계없이 연방의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설득하려 했지만, 헬무트 콜은 이를 단호하게 거부했다.4. 선거 운동
1990년 10월 3일 독일 재통일 이후 처음으로 실시된 선거에서, 재통일에 대한 긍정적인 분위기는 선거 운동 기간 동안 서독과 동독 모두에서 집권 기민련/기사련–자민당 연합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5% 봉쇄 조항은 전국적으로 적용되지 않고 옛 동독 (동베를린 포함)과 옛 서독 (서베를린 포함)에 별도로 적용되었다. 그 결과 서독의 녹색당은 의석을 얻지 못했지만, 이념적으로 유사한 동독의 동맹 90은 의석을 얻었고, 두 정당은 1993년에 동맹 90/녹색당으로 합당했다.
5. 선거 결과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1990년 10월 동서독 재통일에 따라 실시된 독일 연방 공화국의 첫 연방 의회 선거이다. 헬무트 콜 총리의 주도로 통일을 추진한 기민당/기사당 연합과 자민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정당 | 정당 득표 | 전체 의석 | ||||
---|---|---|---|---|---|---|
득표수 | % | 의석수 | 의석수 | 점유율(%) | ||
기독교민주연합 (CDU) | 17,055,116 | 36.7 | 76 | 268 | 40.5 | |
사회민주당 (SPD) | 15,545,366 | 33.5 | 148 | 239 | 36.1 | |
자유민주당 (FDP) | 5,123,233 | 11.0 | 78 | 79 | 11.9 | |
기독교사회연합 (CSU) | 3,302,980 | 7.1 | 8 | 51 | 7.7 | |
민주사회당 (PDS) | 1,129,578 | 2.4 | 16 | 17 | 2.6 | |
동맹 90/녹색당 (B90/Gr.) (동독) | 559,207 | 1.2 | 8 | 8 | 1.2 | |
녹색당 (서독) | 1,788,200 | 3.8 | 0 | 0 | 0 | |
공화당 (REP) | 987,269 | 2.1 | 0 | 0 | 0 | |
독일 사회연합 (DSU) | 89,008 | 0.2 | 0 | 0 | 0 | |
바이에른당 | 31,315 | 0.1 | 0 | 0 | 0 | |
국가민주당 | 145,776 | 0.3 | 0 | 0 | 0 | |
생태 민주당 | 205,206 | 0.4 | 0 | 0 | 0 | |
기타 | 493,538 | 1.0 | 0 | 0 | 0 | |
무효/기권 | 460,849 | - | - | - | - | |
합계 | 46,995,915 | 100 | 334 | 662 | 100 | |
등록 유권자/투표율 | 60,436,560 | 77.8 | - | - | - | |
Source: [https://web.archive.org/web/20150626201151/http://www.bundeswahlleiter.de/en/bundestagswahlen/fruehere_bundestagswahlen/btw1990.html Federal Returning Officer] |
5. 1. 정당별 득표율 및 의석 분포
정당 | 득표율 | 득표수 | 의석수 | 의석 점유율 | 증감 |
---|---|---|---|---|---|
기독교민주연합 (CDU) | 36.7% | 17,055,116 | 268 | 40.5% | +83 |
사회민주당 (SPD) | 33.5% | 15,545,366 | 239 | 36.1% | +46 |
자유민주당 (FDP) | 11.0% | 5,123,233 | 79 | 11.9% | +31 |
기독교사회연합 (CSU) | 7.1% | 3,302,980 | 51 | 7.7% | +2 |
민주사회당 (PDS) | 2.4% | 1,129,578 | 17 | 2.6% | +17 |
동맹 90/녹색당 (B90/Gr.) (동독) | 1.2% | 559,207 | 8 | 1.2% | +8 |
녹색당 (서독) | 3.8% | 1,788,200 | 0 | 0% | -44 |
공화당 (REP) | 2.1% | 987,269 | 0 | 0% | ±0 |
독일 사회연합 (DSU) | 0.2% | 89,008 | 0 | 0% | ±0 |
바이에른당 | 0.1% | 31,315 | 0 | 0% | ±0 |
국가민주당 | 0.3% | 145,776 | 0 | 0% | ±0 |
생태 민주당 | 0.4% | 205,206 | 0 | 0% | ±0 |
기타 | 1.0% | 493,538 | 0 | 0% | ±0 |
헬무트 콜 수상이 이끄는 기민당/기사당 연합과 자민당은 동서독 통일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국민들의 지지를 얻었고, 그 결과 의석수가 크게 늘어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반면 사민당은 33.5%의 득표율로 크게 패배하였고, 오스카 라퐁텐 당수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하였다.
민주사회당은 독일 전체에서 2.4%를 득표했지만, 동독 지역에서는 11.1%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 동서독의 급격한 통일에 반대했던 서독의 녹색당은 3.8% (서독 지역 4.8%)의 득표율에 그쳐 연방의회 의석을 잃었다. 반면 동독 지역에서는 시민 운동 세력들이 결성한 동맹 90과 동독 녹색당의 정당 연합이 동독 지역에서 6.2%를 득표하여 의석을 확보하였다.
5. 2. 주요 정당별 결과 분석
1990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 각 정당의 결과는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다.정당 | 득표율(%) | 의석수 | 주요 변화 | 주요 특징 |
---|---|---|---|---|
기독교민주연합(CDU) | 36.7 | 268 | +83 | 동독 지역에서 높은 지지 획득 |
사회민주당(SPD) | 33.5 | 239 | +46 | 서독 지역에서 지지율 하락 |
자유민주당(FDP) | 11.0 | 79 | +31 | 통일 이후 경제 정책에 대한 기대감 반영 |
기독교사회연합(CSU) | 7.1 | 51 | +2 | 바이에른 지역 기반의 보수 정당 |
민주사회당(PDS) | 2.4 | 17 | +17 | 구 동독 지역 기반, 사회주의 정당 |
동맹 90/녹색당(B90/Gr.) (동독) | 1.2 | 8 | +8 | 동독 지역의 환경 운동 세력 |
녹색당 (서독) | 3.8 | 0 | -44 | 서독 지역에서 지지율 하락, 의회 진출 실패 |
공화당(REP) | 2.1 | 0 | - | 극우 정당, 의회 진출 실패 |
기타 정당 | 2.2 | 0 | - | 군소 정당 난립 |
- 기독교민주연합(CDU): 헬무트 콜 총리가 이끄는 기민당은 동독 지역에서 높은 지지를 얻으며 통일 과정의 주역임을 과시했다. 서독 지역에서도 안정적인 지지 기반을 유지하며 제1당 지위를 확보했다.
- 사회민주당(SPD): 사민당은 통일 과정에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서독 지역에서 지지율이 하락했다. 동독 지역에서도 기민당에 밀려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었다.
- 민주사회당(PDS): 민사당은 구 동독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주의 정당으로, 동독 지역 주민들의 불만과 불안감을 대변하며 의회 진출에 성공했다.
- 동맹 90/녹색당 (동독): 동독 지역의 환경 운동 세력인 동맹 90/녹색당은 소수의 의석을 확보하며 의회에 진출했다.
- 녹색당 (서독): 서독 지역의 녹색당은 통일 이슈에 밀려 지지율이 하락, 의회 진출에 실패했다.
전반적으로 1990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는 통일 독일의 첫 번째 연방의회 선거로, 헬무트 콜 총리의 기독교민주연합이 승리하였다. 동서독 지역 간의 득표율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났으며, 특히 동독 지역에서는 기독교민주연합이, 서독 지역에서는 사회민주당이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다.
5. 3. 선거 결과의 의미
1990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는 통일 직후 독일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헬무트 콜 총리의 통일 정책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음을 보여주면서 기독교민주연합(CDU)과 기독교사회연합(CSU) 연합이 승리하였다.서독 지역 정당들은 대부분 의석을 유지하거나 잃었지만, 동독 지역에서는 새로운 정당들이 등장했다. 구 동독 집권당이었던 독일 사회주의통일당(SED)의 후신인 민주사회당(PDS)은 17석을 얻어 원내에 진입했다. 동맹 90/녹색당 - 시민 운동 (동독) 연합도 8석을 획득하며 동독 지역의 목소리를 대변하게 되었다. 반면 서독의 녹색당은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정당 | 의석 수 | 비고 |
---|---|---|
기독교민주연합/기독교사회연합 | 319석 | 헬무트 콜 총리 정책 지지 확인 |
사회민주당 | 239석 | |
자유민주당 | 79석 | |
녹색당 (서독) | 0석 | 의석 감소 |
민주사회당 | 17석 | 구 동독 집권당 후신, 원내 진입 |
동맹 90/녹색당 - 시민 운동 (동독) | 8석 | 동독 지역 대표 |
장기적으로 이 선거는 통일 독일의 정치 지형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서독의 정당 체제가 동독 지역으로 확장되었고, 동독 지역의 특수한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새로운 정당들이 등장하면서 독일 정치의 다양성이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독일 사회의 통합 과정을 반영하는 동시에, 새로운 정치적 갈등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
6. 선거 이후
1990년 연방의회 선거에서 집권 CDU/CSU-FDP 연합은 압도적인 다수 의석을 확보하며 재집권에 성공했고, 헬무트 콜은 총리직을 유지했다.[1] CDU는 나치 시대 이전 SPD의 중심지였던 구 동독 지역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1]
이번 선거는 1989년 11월의 베를린 장벽 붕괴를 계기로, 이듬해 1990년 10월에 동서 양독의 재통일이 실현됨에 따라 새로운 독일 연방 공화국의 연방 의회 의원을 선출하기 위해 실시되었다. 재통일을 추진한 콜 총리의 여당인 중도 우파 연합(기독교민주연합·기독교사회연합과 자유민주당)이 압승하였다.
6. 1. 제4차 콜 내각
헬무트 콜이 이끄는 기독교 민주연합(CDU)/CSU-자유민주당(FDP) 연합은 압도적인 다수 의석을 확보하며 재집권에 성공했고, 콜은 총리직을 유지했다. 기독교민주연합은 나치 시대 이전 SPD의 중심지였던 구 동독 지역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1]- 여당: 기독교 민주연합 (CDU), 기독교 사회연합 (CSU), 자유민주당 (FDP)
6. 2. 사회적 영향
집권 CDU/CSU-FDP 연합은 압도적인 다수 의석을 확보하며 재집권에 성공했고, 헬무트 콜은 총리직을 유지했다.[1] CDU는 나치 시대 이전 SPD의 중심지였던 구 동독 지역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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