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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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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732년은 당나라의 장문휴가 당나라 등주를 공격하고, 푸아티에 전투에서 프랑크 왕국군이 우마이야 칼리파국 군을 격파한 해이다. 주요 사건으로 발해, 신라, 일본 등에서 연호가 사용되었으며, 노섬브리아의 왕 케올울프가 폐위되고, 교황 그레고리오 3세가 성 보니파시오에게 팔리움을 수여했다. 서유럽에서는 우마이야 군대가 프랑크 왕국을 침략했으나, 샤를 마르텔의 승리로 이슬람 세력의 진격을 막았다. 또한 비잔티움 제국과 카자르 칸국 간의 외교적 결합이 이루어졌으며, 문화적으로는 요크에 도서관이 설립되었다.

2. 연호

3. 주요 사건


  • 장문휴가 당나라 등주(지금의 산둥성)를 공격하였다.
  • 가을 – 노섬브리아의 케올울프 왕이 반대파에 의해 폐위되고 수도원에 들어가도록 강요받았다. 이후 지지자들에 의해 왕위에 복위되었다.
  • 6월 26일금성목성엄폐하였다.
  • 교황 그레고리오 3세가 앵글로색슨 선교사인 성 보니파시오에게 바이에른(현재 독일) 관할권을 가진 대주교로서 팔리움을 수여하였다. 또한 보니파시오에게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말고기를 먹는 것을 금하도록 명령하였다.[6]
  • 에크베르트가 사촌인 노섬브리아의 케올울프에 의해 요크주교로 임명되었다.[7] 그는 도서관을 설립하고 요크를 학문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3. 1. 서유럽


  • 732년: 투르 푸아티에 전투 발발 (프랑크 왕국 vs 우마이야 왕조)[1]
  • 가론강 전투: 압드 알-라흐만 알 가피키(Abdul Rahman Al Ghafiqi)가 이끄는 우마이야 군대(4만 명)가 알-안달루스 총독으로서 피레네 산맥의 론세바예스(Roncesvalles Pass)를 넘어 올로롱(Oloron-Sainte-Marie), 레스카르(Lescar), 바욘(Bayonne) 등을 약탈하고 생세베르 수도원(Saint-Sever abbey)을 불태웠다. 우마이야 군대는 생테밀리옹 수도원(Saint-Émilion monastery)을 파괴하고 '리부르 백작'을 패퇴시켰으며, 보르도를 약탈, 함락하고 가론강(Garonne River)에서 오도 대공(Odo the Great, Eudes of Aquitaine)의 군대를 거의 전멸시켰다.[1]
  • 여름 – 아키텐의 에우드는 샤를 마르텔에게 가울(Gaul)에 대한 우마이야의 침략을 경고하고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랭스(Reims)로 향했다. 두 지도자는 파리 근처에서 만났고, 샤를은 오스트라시아, 네우스트리아, 부르고뉴 왕국(Kingdom of Burgundy) 출신 군대를 모으기 위해 '전면 금지령'을 발표했다. 한편, 아라비아 반도(Arabian Peninsula) 출신 아랍인들은 페리그(Périgueux), 생트(Saintes, Charente-Maritime), 앙굴렘(Angoulême) 도시들을 약탈한 후 푸아티에(Poitiers) 외곽의 생힐레르레플라스 바실리카(Saint-Hilaire-les-Places basilica)를 약탈했다.[2]
  • 9월 – 샤를 마르텔은 프랑크 왕국(Francia) 군대(3만 명)를 이끌고 오를레앙(Orléans)으로 가서 루아르 강(Loire River)을 건넜다. 아키텐의 에우드가 남은 병력과 함께 동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샤를 마르텔은 생 마르탱 수도원(Saint Martin abbey)을 보호하기 위해 발랑미레(Ballan-Miré)에 진영을 설치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앵드르 강(Indre (river))과 크뢰즈 강(Creuse (river)) 사이에서 우마이야의 정찰병 또는 선봉대를 물리치거나 후퇴시켰다. 압드 알-라흐만 알 가피키는 비엔 강(Vienne (river))에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후퇴했다.[3]
  • 10월 – 프랑크 군대는 비엔 강을 건너 샤텔로(Châtellerault) 근처 '비외 푸아티에'(Vieux-Poitiers)에 진지를 구축했다. 샤를 마르텔은 로마 도로를 가로질러 방어선을 구축하고, '7일간의 대치' 동안 이슬람군의 소규모 접전(skirmish)을 막았다.[4]
  • 10월 10일 – 투르 전투: 샤를 마르텔이 이끄는 프랑크와 부르고뉴 군대가 푸아티에 근처에서 압드 알-라흐만 알 가피키의 대규모 군대를 패퇴시켜 서유럽으로의 이슬람 진격을 저지했다. 알 가피키는 전투 중 사망했다. 샤를은 프랑스 남부에 대한 권위를 확장하여 "마르텔루스"(Martellus, "망치")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승리는 서유럽과 비잔티움 제국 사이의 세력 균형을 확립하는 전환점이 되었다.[5]
  • 이슬람 세력은 남쪽의 셉티마니아(Septimania)로 후퇴했다. 아키텐의 에우드는 라 마르슈 백작령(County of La Marche)을 통해 주 이슬람 군대를 추격한 후 보르도로 돌아왔다. 샤를 마르텔은 오를레앙과 오세르(Auxerre)를 통해 프랑크 영토로 철수하면서,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한 주교들을 강등시켰다. 압드 알-말리크 이븐 카탄 알-피흐리(Abd al-Malik ibn Katan al-Fihri)가 알-안달루스의 새로운 총독('''왈리'''(Wali))이 되었고, 별도의 이슬람군이 론알프(Rhône region) 지역을 습격했다.[2]

3. 2. 비잔티움 제국

레오 3세는 비잔티움 제국과 카자르 칸국 간의 외교적 결합의 상징으로 15세의 아들 콘스탄티노스를 카자르 칸 비하르의 딸 치차크(세례명 '''이레네''')와 결혼시킨다.

4.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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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탄생

6. 사망


  • 사마정: 당나라의 사학자[8]
  • 압드 알라만 알가피키: 알안달루스 총독
  • 넥탄 맥 데어-일레이: 픽트족의 왕[8]
  • 베네벤토의 로무알도 2세: 베네벤토 공국 공작 (이탈리아)
  • 빙겐의 루퍼트: 수호성인 (Rupert of Bingen|빙겐의 루퍼트영어 출생: 712년)
  • 사마전: 중국 역사가 (司馬貞|사마전중국어 출생: 679년)

참조

[1] 서적 Poitiers AD 732, Charles Martel turns the Islamic tide
[2] 서적 Poitiers AD 732, Charles Martel turns the Islamic tide
[3] 서적 Poitiers AD 732, Charles Martel turns the Islamic tide
[4] 서적 Poitiers AD 732, Charles Martel turns the Islamic tide
[5] 서적 The Age of Faith Simon and Schuster
[6] 서적 Unmentionable Cuisine University of Virginia Press
[7] 간행물 Oxford Dictionary of National Biography
[8] 서적 The Oxford companion to Scottish history Oxford University Press 2011-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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