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V4201 치프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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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FV4201 치프틴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에서 개발된 주력 전차(MBT)로, 센추리온 전차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1950년대에 개발이 시작되어, 120mm 주포와 경사진 차체 및 포탑을 통해 방어력을 강화했다. 1960년대 초 설계가 승인되었으며, 영국과 이스라엘이 공동 개발을 추진했으나 이스라엘 판매가 무산되었다. 치프틴은 영국군 외에도 이란, 요르단, 오만 등 여러 국가에서 운용되었으며, 이란-이라크 전쟁 등 실전 경험을 거쳤다. 다양한 개량형과 파생형이 존재하며, 1990년대 초 챌린저 1 전차로 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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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V4201 치프틴 | |
---|---|
개요 | |
![]() | |
종류 | 주력 전차 |
원산지 | 영국 |
사용 기간 | 1960년대–1990년대 |
사용 국가 | 영국 이란 이라크 요르단 쿠웨이트 오만 |
참전 | 이란-이라크 전쟁 페르시아만 전쟁 1991년 이라크 봉기 |
제조사 | 레일랜드 모터스 |
대당 가격 | 90,000–100,000 파운드 (1967년) |
생산 대수 | 1896대 (영국 900대, 수출 996대) |
제원 | |
전장 | 10.8 미터 (주포 전방) |
차체 길이 | 7.5 미터 |
전폭 | 3.5 미터 |
전고 | 2.9 미터 |
중량 | 55 영국 톤 |
현가 장치 | 홀스트만 서스펜션: 수평 코일 스프링 서스펜션 보기 |
변속기 | TN 12 |
속도 | 도로: 40 km/h (Mk. 1- Mk. 3) 도로: 43 km/h (Mk. 5) |
항속 거리 | 500 km (도로) |
지상고 | 0.56 미터 |
무장 | |
주무장 | L11A5 120 mm 강선포 |
부무장 | 2 × L7 기관총 |
장갑 | |
경사장갑 | 127 mm (72°) |
차체 측면 | 50 mm (10°) |
포탑 | 350 mm (60°) |
구동 | |
엔진 | 레일랜드 L60 (다중 연료 2행정 대향 피스톤 디젤 엔진) |
엔진 출력 | 750 마력 6기통, 19리터 |
연료 용량 | 886 리터 |
마력 대 중량비 | 11.1 마력/톤 (스프로킷) |
승무원 | 4명 |
2. 개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은 센츄리온 전차를 대체할 새로운 주력 전차 개발에 착수했다. 1950년대 초부터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1956년 레이랜드 모터스는 새로운 전차 설계의 프로토타입을 제작했다. 이 프로토타입은 FV4202 "40톤 센추리온"을 통해 시험되었으며, 기울어진 운전수 위치와 포탑 포방패가 없는 포탑이 특징이었다.[12]
육군성은 한국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전차의 사양을 제시했다. 이 사양에는 장거리 교전 능력, 중구경 포탄 방호 능력, 높은 포각, 우수한 정면 장갑, 그리고 빠른 발사 속도가 포함되었다.
1959년부터 프로토타입 부대 시험이 시작되었고, 엔진 진동 및 냉각 문제 해결을 위해 후방 차체가 재설계되었다. 설계 중량 증가로 현가장치가 강화되었고, 도로 손상 방지를 위해 트랙 패드가 장착되었으며, 지상고가 증가했다. 이러한 개선을 거쳐 1960년대 초반에 치프틴 전차 설계가 최종 승인되었다.
영국은 이스라엘과 치프틴 전차 공동 개발 및 생산을 협의했으나,[13] 1960년대 후반 당시 영국이 아랍 국가들과 더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대한 판매는 결국 무산되었다.[14]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독자적인 전차 개발 프로그램(메르카바 전차)을 추진하게 되었다.[15]
NATO의 다중 연료 엔진 사용 요구에 따라, 초기 레이랜드 엔진은 450bhp의 출력을 제공했다. 호르스트만 현가장치는 토션 바 현가장치에 비해 온로드 주행 품질이 떨어졌지만, 험지에서는 레오파르트 1보다 우수한 성능을 보였다.[16] 1970년대 후반, 엔진 설계 개선과 함께 출력이 850bhp로 향상되었지만, 야지 기동 성능은 여전히 제한적이었다.
2. 1. 개발 배경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 등장한 센츄리온 계열 전차는 혁명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영국은 전쟁 기간 동안 그들의 전차가 적군에 비교하여 방어력과 화력이 충분하지 않아 당시의 우수한 독일 전차와 대면했을 때 많은 사상자를 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센츄리온 개발에 참여했던 레일랜드(Leyland)는 1956년 새로운 전차의 설계 원형을 만들어 내었고, 새 전차를 위한 국방성 설명서를 제작하게 되었다. 설계는 1960년대 초반에 받아들여졌다. 치프틴은 가능한 만큼 방어되도록 하였으며, 강력한 120mm 강선포를 장착하였다. 무거운 장갑은 기동력을 감소시켰으며, 특히 엔진 출력은 제한되어 치프틴의 단점이 되었다. 선택된 엔진은 예상보다 출력이 좋지 않았다.
치프틴은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 등장한 성공적인 순항전차 계열의 전차의 진화적 발전이었다. 치프틴의 전신인 센추리온 전차는 전후 가장 성공적인 주력 전차(MBT) 설계 중 하나로 널리 여겨진다.[5][6][7][8][9][10] 그러나 소련의 IS-3/IS-4 중전차와 T-54/55의 등장은 120mm 포를 장착한 컨커러 전차의 등장을 이끌었다. 컨커러의 120mm 포의 화력과 센추리온의 기동성 및 일반적인 유용성을 결합한 단일 설계는 이상적인 조합으로 여겨졌다.

1950년부터 "센추리온을 대체할 설계를 찾기 위해" 일련의 컨셉 연구가 수행되었다.[11] 여기에는 기존 센추리온 중(重)순항 전차 설계의 개발뿐만 아니라 대전차 미사일 또는 자동 장전 및 액체 추진 포탄을 장착한 소형 1인 및 2인 전차와 같은 다양한 파격적인 컨셉이 포함되었다. 1954년에 "다음 영국 전차는 HV 포를 휴대하도록 설계된 진화적 전차여야 하며, 자루에 담긴 장약 탄약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11]
센추리온 전차에 참여했던 레이랜드 모터스(Leyland)는 1956년에 새로운 전차 설계의 자체 프로토타입을 제작했다. 이 설계의 여러 측면은 기울어진 운전수 위치와 포탑 포방패가 없는 포탑을 가진 FV4202 "40톤 센추리온"의 생산으로 시험되었다. 실제로 FV4202는 치프틴 포탑의 프로토타입을 갖춘 짧은 센추리온 섀시였지만 20파운드 포를 장착했다.[12]
이러한 작업은 새로운 전차에 대한 육군성의 사양으로 이어졌다. 참모총장의 사양은 한국 전쟁에서 센추리온 전차의 경험과 컨커러 전차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이 전차는 방어 위치에서 장거리에서 적과 교전할 수 있어야 하며, 중(中)구경 포탄에도 견딜 수 있어야 했다. 이를 위해 포는 컨커러의 8도보다 더 큰 포각을 가져야 하며, 더 나은 정면 장갑을 갖추어야 했다. 전차는 첫 1분 동안 분당 10발, 그 후 4분 동안 분당 6발의 발사 속도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1959년부터 몇 대의 프로토타입이 부대 시험을 위해 제공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변경 사항이 식별되었다. 엔진 진동 및 냉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선으로 인해 후방 차체가 재설계되었다. 이로 인해 설계 중량이 거의 50톤으로 증가했고, 이에 따라 (45톤을 위해 설계된) 현가장치가 강화되었다. 도로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트랙 패드를 장착해야 했으며, 지상고가 증가했다. 설계는 1960년대 초에 승인되었다.
영국과 이스라엘은 이 차량의 구매 및 국내 생산을 위해 개발의 후반 단계에서 협력했다.[13] 4년 동안의 시험의 일환으로 두 대의 프로토타입이 인도되었다. 그러나 결국 이스라엘에 이 기종을 판매하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1960년대 후반 당시 영국은 이스라엘보다 아랍 국가와 요르단에 더 우호적이었기 때문),[14]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자체 개발 프로그램을 따르게 되었다.[15]

1957년, NATO는 자국군이 다중 연료 엔진을 사용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초기 레이랜드 엔진은 스프로킷에 약 450bhp의 출력을 제공했는데, 이는 최고 속도가 약 25mph이고 야지 기동 성능이 제한적임을 의미했다. 호르스트만 현가장치는 토션 바 현가장치를 갖춘 전차에 비해 온로드 주행 품질을 감소시켰지만, 제11 흉기병연대의 피터 해머 대령은 "정말 험한 지형에서는 레오파르트 1을 저만치 따돌릴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16] 실린더 라이닝이 압착되어 장착되었기 때문에, 실린더 블록 내에서 냉각수 누출이 흔했으며, 배기 가스에서 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1970년대 후반, 엔진 설계는 라이닝 씰을 개선하는 데 사용된 벨조나의 도입과 함께 변경되었다. 엔진 출력도 증가하여, 후기 엔진은 스프로킷에 약 850bhp의 출력을 제공했다. 이는 더 나은 성능과 증가된 속도를 의미했다. 그러나 야지 기동 성능은 여전히 제한적이었다.
2. 2. 개발 과정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 등장한 센츄리온 계열 전차는 혁명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영국은 전쟁 기간 동안 자국 전차의 방어력과 화력이 부족하여 독일 전차에 많은 피해를 입었다.센츄리온 개발에 참여했던 레일랜드(Leyland)는 1956년 새로운 전차 설계 원형을 만들었고, 국방성 설명서를 제작했다. 이 설계는 1960년대 초반에 승인되었다. 치프틴은 방어력을 강화하고 120mm 강선포를 장착했지만, 무거운 장갑으로 인해 기동력이 감소했으며, 엔진 출력 문제로 단점이 되었다.
치프틴은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 등장한 순항전차 계열 전차의 발전형이었다. 치프틴의 전신인 센추리온 전차는 전후 성공적인 주력 전차(MBT) 설계 중 하나였다.[5][6][7][8][9][10] 그러나 소련의 IS-3/IS-4 중전차와 T-54/55의 등장은 컨커러 전차의 등장을 이끌었다. 컨커러의 120mm 강선포 화력과 센추리온의 기동성을 결합하는 것이 이상적인 조합으로 여겨졌다.
1950년부터 센추리온 대체 설계를 위한 컨셉 연구가 수행되었다.[11] 여기에는 대전차 미사일, 자동 장전, 액체 추진 포탄을 장착한 소형 전차 등 다양한 컨셉이 포함되었다. 1954년에는 "HV 포를 휴대하고 자루에 담긴 장약 탄약 시스템을 갖춘 진화적 전차"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11]
레이랜드 모터스(Leyland)는 1956년에 새로운 전차 설계의 자체 프로토타입을 제작했다. 이 설계는 기울어진 운전수 위치와 포탑 포방패가 없는 포탑을 가진 FV4202 "40톤 센추리온"으로 시험되었다. FV4202는 치프틴 포탑의 프로토타입을 갖춘 짧은 센추리온 섀시였지만 20파운드 포를 장착했다.[12]
이러한 작업은 육군성의 새로운 전차 사양으로 이어졌다. 참모총장의 사양은 한국 전쟁에서 센추리온 전차와 컨커러 전차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전차는 장거리에서 적과 교전하고, 중(中)구경 포탄에도 견딜 수 있어야 했다. 포는 컨커러보다 더 큰 포각을 가져야 했고, 더 나은 정면 장갑을 갖추어야 했다. 전차는 첫 1분 동안 분당 10발, 그 후 4분 동안 분당 6발의 발사 속도를 달성해야 했다.
1959년부터 몇 대의 프로토타입이 부대 시험을 위해 제공되었고, 여러 변경 사항이 있었다. 엔진 진동 및 냉각 문제 해결을 위해 후방 차체가 재설계되었다. 설계 중량이 거의 50톤으로 증가하여 현가장치가 강화되었다. 도로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트랙 패드를 장착하고, 지상고가 증가했다. 설계는 1960년대 초에 승인되었다.
영국과 이스라엘은 차량 구매 및 국내 생산을 위해 개발 후반 단계에서 협력했다.[13] 4년 동안의 시험의 일환으로 두 대의 프로토타입이 인도되었다. 그러나 결국 이스라엘에 판매하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1960년대 후반 당시 영국은 이스라엘보다 아랍 국가와 요르단에 더 우호적이었기 때문이다.[14]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자체 개발 프로그램을 따르게 되었다.[15]
1957년, NATO는 다중 연료 엔진 사용을 명시했다. 초기 레이랜드 엔진은 약 450bhp의 출력을 제공했는데, 이는 최고 속도가 약 25mph이고 야지 기동 성능이 제한적임을 의미했다. 호르스트만 현가장치는 토션 바 현가장치를 갖춘 전차에 비해 온로드 주행 품질을 감소시켰지만, 제11 흉기병연대의 피터 해머 대령은 "정말 험한 지형에서는 레오파르트 1을 저만치 따돌릴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16] 실린더 라이닝 압착으로 인해 냉각수 누출이 흔했고, 배기 가스에서 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1970년대 후반, 엔진 설계는 라이닝 씰을 개선하는 데 사용된 벨조나의 도입과 함께 변경되었다. 엔진 출력도 증가하여, 후기 엔진은 약 850bhp의 출력을 제공했다. 이는 더 나은 성능과 증가된 속도를 의미했다. 그러나 야지 기동 성능은 여전히 제한적이었다.
3. 설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은 센츄리온을 대체하고 중전차 컨커러를 보완할 새로운 주력 전차 개발에 착수했다. 1956년 레일랜드는 새로운 전차 설계 원형을 제작했고, 1960년대 초반 영국 국방성은 이 설계를 채택했다.
치프틴 설계의 핵심은 방어력 강화와 화력 증강이었다. 차체와 포탑은 경사 장갑을 채택하여 방호력을 높였고, 120mm L11A5 강선포를 주무장으로 탑재하여 화력을 강화했다. 또한, 1970년대 초부터는 레이저 거리 측정기를 도입하여 명중률을 향상시켰다.
치프틴은 다음과 같은 주요 특징을 가진다.
- 경사 장갑: 차체와 포탑에 경사 장갑을 적용하여 포탄의 관통력을 감소시키고, 유효 방호 두께를 증가시켰다.
- 120mm 강선포: L11A5 강선포를 주무장으로 채택하여 당대 최고 수준의 화력을 확보했다.
- 분리 장전 방식: 포탄과 장약을 분리하여 장전하는 방식으로, 장전 속도를 높이고 승무원의 피로도를 줄였다.
- NBC 방호 시스템: NBC (화생방) 공격으로부터 승무원을 보호하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하지만 치프틴은 엔진 문제와 중량 증가로 인한 기동성 저하라는 단점도 가지고 있었다. 초기 레이랜드 L60 엔진은 잦은 고장과 출력 부족 문제를 겪었고, 이는 지속적인 개량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3. 1. 특징
치프틴은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 등장한 센츄리온 계열 전차를 혁명적으로 발전시킨 전차이다. 영국은 전쟁 기간 동안 자국 전차의 방어력과 화력이 부족하여 우수한 독일 전차에 맞서 많은 사상자를 냈다.1956년 레일랜드는 새로운 전차 설계 원형을 만들었고, 1960년대 초반에 설계가 채택되었다. 치프틴은 방어력을 극대화하고 120mm 강선포를 장착했지만, 무거운 장갑으로 인해 기동성이 떨어졌고 엔진 출력도 제한적이었다.
치프틴의 설계는 크게 경사진 차체와 포탑을 포함하며, 현가장치는 '홀스트만 보기'형이었다. 엔진은 2행정 대향 피스톤 엔진으로, 가솔린과 디젤 모두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이 초기 개발에 참여했지만, 영국에 의해 합작이 취소되어 이스라엘은 독자적으로 메르카바 전차를 개발하게 되었다.

치프틴의 차체와 포탑은 매우 경사져 정면 장갑의 유효 두께를 크게 증가시켰다. 경사면에서 실제 두께 120mm는 유효 두께 388mm로, 포탑에서는 실제 두께 195mm가 유효 두께 390mm로 증가했다.[17] 또한 차체를 엎드린 자세에서 최대 10도까지 기울여도 장점을 활용할 수 있도록 포신 덮개가 없는 포탑을 채택했다.
초기 프로토타입은 포신 덮개를 덮는 캔버스 스크린과 경사판 위에 장착된 금속 상자를 통해 차량 구성을 위장했다.[18]
운전자는 해치가 닫히면 차체에 반쯤 누워 전방 경사판의 프로파일을 줄였다. 전차장, 포수, 탄약수는 포탑에 위치했으며, 포탑 왼쪽에는 적외선 기능을 갖춘 대형 탐조등이 있었다.[19]
원래 설계는 휘발유 "V8 롤스 로이스 엔진"을 요구했지만,[16] 개발 지연으로 인해 다중 연료 엔진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20]

레이랜드 L60 엔진은 다중 연료용 2행정 대향 피스톤 설계였지만, 예상 출력을 제공하지 못하고 신뢰성이 낮았다. 고장률이 90%로 추정되었지만, 실린더 라이너 고장, 팬 드라이브 문제, 진동 및 누출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선이 이루어졌다. 엔진 출력이 향상됨에 따라 전차 자체도 무거워졌다.[19]
전차는 외부 브레이크 디스크에 유압식으로 작동하는 틸러로 조종되었고, 디스크는 유성 기어 박스를 통해 작동하여 "재생" 조향을 제공했다. 메리트-브라운 TN12 3중 차동 기어 박스는 오토바이 스타일로 작동하여 기어 박스에서 전기 유압 장치를 작동시켰다. 포탑에서 탄약수는 포신 왼쪽에, 포수는 오른쪽에, 지휘관은 포수 뒤에 있었다. 현가 장치는 호르스트만 보기 유형으로, 궤도를 보호하고 중공 장약 공격으로부터 안전 거리를 제공하는 대형 측면 강판이 있었다.[19]

주요 무장은 120mm L11A5 강선포였으며, 대부분의 동시대 전차와 달리 별도로 장전되는 발사체와 장약을 사용했다. 액체 추진제 포탄 프로젝트가 실패한 후 자루형 장약 시스템 설계가 시작되었고,[11] 장약은 가연성 자루에 넣었다. 컨커러의 120mm L1 포와 달리 포탄 케이스를 저장하거나 배출할 필요가 없었다. 가연성 장약은 "습식 저장" 방식으로 36개의 움푹 들어간 곳에 보관되었다. 전투실을 관통하는 피격 시 재킷이 파열되어 장약을 적셔 추진제 폭발을 방지했다. 장약 발사는 포구에서 10발들이 탄창에서 자동으로 장전되는 통풍관에 의해 이루어졌다.[3] 포탑은 포신의 길이 때문에 균형을 맞추고 저장 공간이 필요해 뒤쪽으로 크게 튀어나왔으며, 여기에는 무전기, 탄약, 사격 통제 장비 등이 포함되었다.[3]
이 포는 고폭탄, 철갑 분리철갑탄 (APDS) 또는 연습탄 등 다양한 탄약을 발사할 수 있었고, 최대 64발의 발사체를 저장할 수 있었다. 포는 완전히 전산화된 통합 제어 시스템으로 안정화되었다. 보조 무장은 동축 L8A1 7.62 mm 기관총과 지휘관 큐폴라에 장착된 7.62 mm 기관총이었다.[19] 2부 탄약 사용은 장전수가 다음 탄을 준비하고 포수가 표적을 획득 및 발사하는 동안 장전에 대비할 수 있어 발사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21]
치프틴은 센추리온과 달리 NBC 방호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으며,[19] 보병 전화가 후면에 장착되어 보병과의 통신을 용이하게 했다.
초기 사격 통제 시스템 (FCS)은 Marconi FV/GCE Mk 4였다. .50인치 (12.7 mm) 사격 조준포가 주포 위에 장착되어 최대 약 2377.44m까지 사격 조준탄을 발사했다. 전차 지휘관은 9개의 시야 블록이 있는 회전식 큐폴라를 통해 전방위 시야를 확보하고, 무기와 동축인 7.62 mm 기관총과 적외선 (IR) 기능을 갖춘 프로젝터를 사용했다. 조준 시스템은 포수와 전차 지휘관 모두에게 제공되었으며, 1배 또는 10배(Mk5 이후 15배) 배율을 선택할 수 있었고, 야간에는 IR 시야 시스템(3배율)으로 교체 가능했다. 지휘관은 큐폴라를 회전시켜 시야를 표적으로 가져온 후 포수가 조준을 완료하도록 포탑을 정확한 방위로 가져오는 메커니즘을 작동시킬 수 있었다.[19] 지휘관은 포수의 제어 장치에 대한 우선 제어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19]

포탑 왼쪽에는 전기적으로 제어되는 적외선 필터가 있는 대형 탐조등이 있어 비교적 긴 사거리(최대 1km 에서 1.5km)를 가졌다.[22]
1970년대 초부터 Mk 3/3 버전은 사격 조준포를 10km 사거리의 바 & 스트라우드 LF-2 레이저 거리 측정기로 대체하여 더 먼 거리에서 교전이 가능해졌고, 사격 통제 시스템에 연결하여 교전 및 표적 변경 속도를 높였다.[19]
후기 모델에서는 디지털 탄도 컴퓨터를 사용하는 Marconi IFCS (개선된 사격 통제 시스템)가 사격 통제를 제공했다. 이 업그레이드는 1980년 말에 완료되었으며, 일부는 IR 탐조등을 TOGS로 교체했다. 많은 후기 모델에는 소련 125mm 전차포와 대형 대전차 미사일을 격파하기 위한 스틸브루 장갑이 장착되었고, 이는 Mark 10, Mk 11 버전이 되었다.[22] 치프틴은 1980년대 초에 개발되어 나중에 영국 공군 팬텀 항공기에 사용하기 위해 잉여로 판매된 TESS (TElescopic Sighting System)를 사용했다.[23][24]
치프틴은 주력 전차인 센츄리온과 중전차 컨커러를 통합할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냉전이 격화되면서 서방 국가의 전차는 대전차 미사일과 보병용 휴대 대전차 화기의 발달로 인해 "장갑 방어력을 강화하는 것보다 기동성을 높여 공격을 회피하는 것이 더 낫다"라는 설계 사상을 바탕으로 개발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한 흐름 속에서 영국 육군은 장갑 방어력을 희생하여 기동성을 강화하는 사상에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치프틴은 승무원 보호를 위해 상당한 중장갑을 갖추었다. 주포는 컨커러의 120mm 전차포를 탑재하려 했으나, 너무 커서 신형 L11 120mm 전차포를 탑재했다. 이 포는 분리 탄약 방식을 채택하여 탄두와 장약이 분리되어 장전수의 부담을 줄였지만, 포탄 발사 속도가 분당 6발로 감소했다.
서스펜션은 센츄리온과 같은 호르스트만 방식을 채택하여 정비성과 실용성을 중시했다. 엔진은 L60 대향 피스톤식 6기통 다연료 액체 냉각디젤 엔진이었지만, 구조가 복잡하여 신뢰성이 부족해 후기 개량에서 일반적인 디젤 엔진으로 교체되었다.
치프틴은 1963년부터 생산되어 개량을 거듭하며 1970년대 초까지 양산되었다. 이후에도 장갑 및 화력 통제 장치 개량이 이루어졌으며, 챌린저 1이 등장할 때까지 NATO 군의 최전선에서 운용되었다.
3. 2. 세부 사양 (Mk. 5 기준)
항목 | 내용 |
---|---|
승무원 | 4명 (전차장, 포수, 탄약수, 조종수) |
전투 중량 | 55톤 |
전체 길이 | 주포 전방 10.8m |
차체 길이 | 7.5m |
높이 | 2.9m |
너비 | 3.5m |
동력 장치 | 대향 피스톤 엔진 레이랜드 L60 (디젤, 다중 연료 압축 점화) 750bhp |
항속 거리 | 500km |
최대 도로 속도 | 43km/h |
야지 속도 | 30km/h |
장갑 | 포탑 전면, RHA (60°) |
무장 | |
장비 |
3. 3. 무장
치프틴의 주무장은 120mm L11A5 강선포였다. 이 포는 대부분의 동시대 전차포와 달리 포탄과 장약을 별도로 장전하는 분리 장전 방식을 사용했다. 액체 추진제 포탄 개발이 실패한 후, 가연성 자루에 장약을 담는 방식이 채택되었다.[11] 가연성 자루는 물/글리콜 혼합물로 둘러싸인 36개의 움푹 들어간 곳에 보관되어, 피격 시 장약을 적셔 폭발을 방지하는 "습식 저장" 방식을 사용했다. 포탄 케이스가 없어, 장약 발사는 포구의 10발들이 탄창에서 자동으로 장전되는 통풍관을 통해 이루어졌다.[3]이 포는 고폭탄, 철갑 분리철갑탄 (APDS) 등 다양한 탄약을 발사할 수 있었으며, 최대 64발의 발사체를 저장할 수 있었다 (APDS 탄의 경우 최대 36개의 장약).[19] 포는 완전히 전산화된 통합 제어 시스템으로 안정화되었다. 보조 무장은 동축 L8A1 7.62 mm 기관총과 지휘관 큐폴라에 장착된 또 다른 7.62 mm 기관총으로 구성되었다.[19] 분리 장전 방식은 장전수가 다음 탄을 준비하는 동안 포수가 표적을 획득하고 발사할 수 있게 하여 발사 속도를 높였다.[21]
초기 사격 통제 시스템(FCS)은 Marconi FV/GCE Mk 4였다. .50인치 (12.7 mm) 사격 조준포가 주포 위에 장착되어 사격 조준탄을 발사했다.[19] 전차 지휘관은 9개의 시야 블록이 있는 회전식 큐폴라를 통해 전방위 시야를 확보하고, 기관총과 적외선(IR) 프로젝터를 조작했다. 조준 시스템은 포수와 지휘관 모두에게 제공되었으며, 배율은 1배, 10배(Mk5 이후 15배)였고, 야간에는 IR 시야 시스템(3배)으로 교체 가능했다.[19]
포탑 왼쪽에는 전기 제어식 적외선 필터가 있는 대형 탐조등이 장착되었다.[22]
1970년대 초부터 Mk 3/3 버전은 사격 조준포 대신 바 & 스트라우드 LF-2 레이저 거리 측정기를 장착하여 교전 거리와 속도를 향상시켰다.[19] 후기 모델은 디지털 탄도 컴퓨터를 사용하는 Marconi IFCS (개선된 사격 통제 시스템)를 탑재했다. 1980년 말에는 IR 탐조등을 TOGS로 교체하는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졌다. 많은 후기 모델에는 스틸브루 장갑이 장착되어 Mk 10, Mk 11 버전이 되었다.[22]
3. 4. 장비
치프틴의 설계에는 매우 경사진 차체와 포탑이 포함되어 정면 장갑의 유효 두께를 크게 증가시켰다. 경사면에서는 120mm의 실제 두께에서 388mm로, 포탑에서는 195mm에서 390mm로 증가했다.[17] 이 전차는 차체를 엎드린 자세에서 최대 10도까지 기울여도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포신 덮개가 없는 포탑을 가지고 있었다.보안상의 이유로 초창기 프로토타입은 포신 덮개를 덮는 캔버스 스크린과 차량의 구성을 위장하기 위해 경사진 경사판 위에 장착된 금속 상자를 가지고 있었다.[18]
운전자는 해치가 닫히면 차체에 반쯤 누워 있었는데, 이는 전방 경사판의 프로파일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전차장, 포수 및 탄약수는 포탑에 위치했다. 포탑 왼쪽에는 장갑 하우징에 적외선 기능을 갖춘 대형 탐조등이 있었다.[19]
주요 무장은 120mm L11A5 강선포였다. 이는 단일 고정 탄 대신 별도로 장전되는 발사체와 장약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동시대 주요 전차 무장과 달랐다. 액체 추진제 포탄 프로젝트가 주입 펌프가 너무 커서 "어떤 전차도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실패한 후 자루형 장약 시스템의 설계가 시작되었다.[11] 장약은 가연성 자루에 넣었다. 가연성 장약은 가압된[3] 물/글리콜 혼합물로 둘러싸인 36개의 움푹 들어간 곳에 보관되었다. 소위 "습식 저장"이다. 전투실을 관통하는 피격이 발생하면 재킷이 파열되어 장약을 적셔 치명적인 추진제 폭발을 방지했다. 포탄 케이스가 없었기 때문에 장약 발사는 포구에서 10발들이 탄창에서 자동으로 장전되는 통풍관에 의해 이루어졌다.[3] 포신의 길이 때문에 균형을 맞추고 저장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포탑은 뒤쪽으로 크게 튀어나왔다. 여기에는 무전기, 탄약 및 사격 통제 장비가 포함되어 있으며 외부에도 추가 수납 공간이 있다.[3]
이 포는 고폭탄, 철갑 분리철갑탄 (APDS) 또는 두 유형 모두에 대한 연습탄 등 다양한 탄약을 발사할 수 있었다. 치프틴은 최대 64발의 발사체를 저장할 수 있었다 (추진제 저장 공간은 APDS 탄에 대해 최대 36개의 장약을 허용했지만). 이 포는 완전히 전산화된 통합 제어 시스템으로 완전히 안정화되었다. 보조 무장은 동축 L8A1 7.62 mm 기관총과 지휘관 큐폴라에 장착된 또 다른 7.62 mm 기관총으로 구성되었다.[19] 2부 탄약을 사용하면 APDS와 같은 불활성 탄의 경우 장전수가 다음 탄을 잡고 포수가 표적을 획득하고 발사하는 동안 장전에 대비하여 무릎에 올려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관행은 발사 속도를 높이지만 1피스 탄약에서는 위험할 수 있다.[21]
치프틴은 센츄리온에는 없는 NBC 방호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19] 보병 전화는 보병과의 통신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전차 후면에 장착되었다.
초기 사격 통제 시스템 (FCS)은 Marconi FV/GCE Mk 4였다. .50인치 (12.7 mm) 사격 조준포는 주포 위에 장착되었다 (300발의 탄약). 이는 최대 약 2377.44m까지 사격 조준탄을 발사했으며, 이 지점에서 사격 조준탄의 추적기가 타버렸지만 고폭탄 팁은 여전히 충돌 시 가시적인 "스플래시"를 생성했다. 전차 지휘관은 9개의 시야 블록이 있는 회전식 큐폴라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전방위 시야와 무기와 동축인 7.62 mm 기관총 및 적외선 (IR) 기능을 갖춘 프로젝터를 제공했다. 조준 시스템은 포수와 전차 지휘관 모두에게 제공되었으며, 1배 또는 10배 선택 가능한 배율을 가지고 있었고, Mk5 이후에는 x15로 증가했으며, 야간 작전을 위해 IR 시야 시스템으로 교체할 수 있었다 (3배 배율). 지휘관은 큐폴라를 회전시켜 시야를 표적으로 가져온 다음 포수가 조준을 완료할 수 있도록 포탑을 정확한 방위로 가져오는 메커니즘을 작동시킬 수 있었다.[19] 지휘관의 제어 장치에는 포수의 제어 장치에 대한 우선 제어 기능이 있었다.[19]
포탑의 왼쪽에는 장갑 상자 내부에 전기적으로 제어되는 적외선 필터가 있는 대형 탐조등이 있었으며, 비교적 긴 사거리(최대 1km 에서 1.5km)를 가졌다.[22]
1970년대 초부터 Mk 3/3 버전은 사격 조준포를 10km 사거리의 바 & 스트라우드 LF-2 레이저 거리 측정기로 대체했다. 이를 통해 훨씬 더 먼 거리에서 교전이 가능해졌으며, 사격 통제 시스템에 연결하여 교전 및 표적 변경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19]
후기 모델에서는 디지털 탄도 컴퓨터를 사용하는 Marconi IFCS (개선된 사격 통제 시스템)가 사격 통제를 제공했다. 이 업그레이드는 1980년 말에 완료되었으며, 일부 (대부분은 아님)는 IR 탐조등을 TOGS로 교체했다. 많은 후기에는 소련 125 mm 전차포와 대형 대전차 미사일을 격파하기 위한 스틸브루 장갑이 장착되었다. 이것이 Mark 10, 그리고 Mk 11 버전이 되었습니다.[22]
4. 운용
치프틴은 나토(NATO)나 영연방 국가에는 채택되지 않았지만, 다른 유럽 전차들과 마찬가지로 중동에 많이 판매되었다. 1967년에 첫 원형이 도입되었으며, 이란, 쿠웨이트, 오만, 요르단 등 최소 6개국에 공급되었다. 1969년 이스라엘에 대한 판매는 영국 정부에 의해 취소되었다.[25] 이란은 1979년 이란 혁명 전에 1,000대의 Mk5(P)를 구입하여 가장 큰 구매국이었다.
치프틴은 1990년대까지 꾸준히 개선되다가 챌린저 1로 대체되었으며, 영국 육군에서는 1995년까지 사용되었다.
4. 1. 영국
챌린저 1 및 챌린저 2로 1995년에 교체되었다.[49]4. 2. 중동 국가
치프틴은 다른 유럽 전차들과 마찬가지로 중동에서 큰 수출 시장을 찾았지만, 센추리온과는 달리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나 영연방 국가에서는 채택되지 않았다.1967년에 첫 모델이 출시된 치프틴은 이란, 쿠웨이트, 오만, 요르단 등 최소 6개국에 공급되었다. 1969년 이스라엘에 대한 판매 및 현지 생산 계약은 영국 정부에 의해 취소되었는데,[25] 이는 이스라엘이 치프틴 개발에 상당한 기술 및 전술적 투자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졌다. 이스라엘은 두 대의 치프틴을 인도받아 광범위하게 시험했고, 이 경험은 이스라엘 자체 개발 전차인 메르카바 개발에 영향을 주었다.
가장 큰 해외 판매는 이란이었으며, 이란 혁명(1979년) 이전에 707대의 Mk-3P 및 Mk-5P (P는 페르시아를 의미), 187대의 FV4030-1, 41대의 ARV 및 14대의 AVLB를 인도받았다.[26][27][28] 그러나 더 성능이 향상된 FV4030-2 (Shir 1) 및 FV4030-3 (Shir 2) 시리즈의 추가 인도 계획은 취소되었다.
치프틴은 이란-이라크 전쟁(1980-88년)에서 이란에 의해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으며, 전쟁의 가장 큰 전차 전투를 포함한다. 하지만 치프틴 Mk 3/5는 엔진 문제와 낮은 출력 대 중량비로 인해 거친 지형에서 기동성이 떨어지고, 고장이 잦아 적 전차의 표적이 되기 쉬웠다.[29][42] 수상게르드 전투 이후, 포획된 이란군 치프틴은 시험을 위해 바그다드로 옮겨졌다. 이라크 육군 참모총장 알라딘 마키는 전후 인터뷰에서 이라크군의 철갑탄이 치프틴의 전면 장갑을 관통했다고 언급했다. 이라크는 영국과의 무기 판매 제안을 거부했는데, 이는 치프틴의 열악한 성능과 관련이 있었다.[30] 전쟁 초기 894대의 치프틴 전차 중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200대만 남았다.[31]
치프틴은 이란에서 모바레즈 전차라는 현지 개량 버전으로 계속 운용되고 있다.
국가 | 내용 |
---|---|
팔라비 이란fa | 1970년대에 792대의 치프틴을 주문하여 받았으며, 여기에는 707대의 마크 3/3P 및 5P 주력 전차, 71대의 치프틴 ARV, 14대의 AVLBs 및 187대의 FV4030이 포함되었다. |
요르단ar | 1981년과 1985년 사이에 274대의 칼리드와 이라크로부터 노획한 90대의 MK3/5 (이란 전차)를 인도받았다. 보관 중이다. |
이라크ar | 1990년 이라크군에서 50~75대의 전차 (이란에서 노획)를 운용했다. 대부분은 승무원용 에어컨, 강화된 장갑, 야간 투시경을 갖춘 칼리드 수준으로 개조되었다. |
4. 3. 실전 경험
나토(NATO)나 연방국가에는 채택되지 않았던 치프틴은 중동에서 주로 활약했다. 1967년에 첫 모델이 출시되었으며, 이란, 쿠웨이트, 오만, 요르단 등 최소 6개국에 공급되었다. 특히 이란은 1979년 이란 혁명 이전까지 1,000대의 Mk5(P)를 구입하여 가장 큰 수출 시장이었다.치프틴은 1980년부터 1988년까지 벌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란군의 주력 전차로 활약했다. 전쟁의 가장 큰 전차 전투를 포함하여 여러 전투에 투입되었으나, 엔진 문제와 낮은 출력 대 중량비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거친 지형에서 기동성이 떨어지고 고장이 잦아 적 전차의 표적이 되기 쉬웠다.[29][42] 수상게르드에서의 전차전 이후, 포획된 치프틴은 시험을 위해 바그다드로 보내졌다. 이라크 육군 참모총장은 치프틴의 장갑이 이라크 측 철갑탄에 관통되었다고 언급했다.[30] 전쟁 초기 894대였던 이란군 치프틴은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200대만 남았다.[31]
쿠웨이트는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직전 143대의 치프틴을 보유하고 있었다. 쿠웨이트 제35 기갑여단은 교량 전투에서 이라크군에 맞서 싸웠으나, 사우디 국경 너머로 철수해야 했다.[32] 이후 걸프 전쟁에서 ''동부 합동 사령부''의 일부로 참전했다.[33] 쿠웨이트군이 보유했던 나머지 치프틴은 대부분 파괴되거나 이라크군에 노획되었다.[34] 쿠웨이트는 해방 후 치프틴을 유고슬라비아산 M-84로 대체했다.[35]
국가 | 내용 |
---|---|
1965년부터 1995년까지 사용. | |
1970년대에 792대의 치프틴을 주문하여 수령. 707대의 마크 3/3P 및 5P 주력 전차, 71대의 치프틴 ARV, 14대의 AVLBs 및 187대의 FV4030 포함. | |
1981년과 1985년 사이에 274대의 칼리드와 이라크로부터 노획한 90대의 MK3/5 (이란 전차)를 인도받음. | |
1990년 이라크군에서 50~75대의 전차 (이란에서 노획)를 운용. 대부분 칼리드 수준으로 개조. |
5. 개량형
- 치프틴 Mk 1 : 훈련용 차량, 1965 ~ 1966년.
- 치프틴 Mk 2 : 650hp 엔진의 최초 모델
- 치프틴 Mk 3 : 장비 추가
- 치프틴 Mk.5 : 동력장치 개선, 화생방 방어 시스템
- 치프틴 Mk.6 ~ 9 : 성능 개선
- 치프틴 Mk.10 : 스틸 브류(Stillbrew) 승조원 방호 증가장갑을 포탑 전면과 포탑링을 감싸는 형태로 장착한 모델
- 치프틴 Mk.11 : 탐조등이 제거되고 Barr and Stroud에서 제조한 Thermal Observation and Gunnery System (TOGS)로 명명된 열상장비를 장착한 모델.
- 치프틴 Mk.12/13 : 성능 개선이 제안되었으나, 챌린저 2의 등장으로 취소되었다.
- FV4205 AVLB: 교량 설치 차량
- FV4204 ARV/ARRV : 무장 복구·수리 차량
- 치프틴 막스만: 막스만(Marksman) 포탑 장착
- 치프틴 지뢰제거차량 :
- 치프틴 AVRE : 치프틴 전투공병차량(공병전차)
- 치프틴 세이버 : 1쌍의 30 mm AA 포탑
- 칼리드 (Khalid)(4030P2J - P)/Shir 1 : 요르단/이란에서 사용
- 무기수송차량
- 셔2 (Shir 2) : 이란에서 주문하였으나, 이란 혁명으로 수출이 중단된 것이다. 이로 인해 방산업체들이 도산 위기에 처하자 영국 육군이 급히 셔2를 챌린저 1로 채용하게 된다.

6. 파생형
- 치프틴 Mk 1: 1965년부터 1966년까지 운용된 훈련용 차량이다.
- 치프틴 Mk 2: 650 마력 엔진을 장착한 최초 모델이다.
- 치프틴 Mk 3: 추가 장비가 장착되었다.
- 치프틴 Mk.5: 동력 장치가 개선되고 화생방 방어 시스템이 추가되었다.
- 치프틴 Mk.6 ~ 9: 성능이 개선되었다.
- 치프틴 Mk.10: 스틸 브류(Stillbrew) 승무원 방호 증가 장갑이 포탑 전면과 포탑 링을 감싸는 형태로 장착되었다.
- 치프틴 Mk.11: 탐조등이 제거되고, 배르 앤 스트라우드(Barr and Stroud)사에서 제조한 TOGS(Thermal Observation and Gunnery System) 열상 장비가 장착되었다.
- 치프틴 Mk.12/13: 성능 개선이 제안되었으나, 챌린저 2의 등장으로 취소되었다.
- FV4205 AVLB: 교량 설치 차량이다.
- FV4204 ARV/ARRV: 무장 복구·수리 차량이다.
- 치프틴 막스만: 막스만(Marksman) 포탑을 장착했다.
- 치프틴 지뢰제거차량
- 치프틴 AVRE: 치프틴 전투공병차량(공병전차)이다.
- 치프틴 세이버: 1쌍의 30 mm AA 포탑을 장착했다.
- 칼리드 (Khalid)(4030P2J - P)/Shir 1: 요르단/이란에서 사용되었다.
- 무기수송차량
- 셔2 (Shir 2): 이란에서 주문하였으나, 이란 혁명으로 수출이 중단되었다. 이로 인해 방산업체들이 도산 위기에 처하자 영국 육군이 급히 셔2를 챌린저 1로 채용하게 된다.






7. 평가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 등장한 센츄리온 계열 전차는 혁명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영국은 전쟁 기간 동안 자국 전차의 방어력과 화력이 적군에 비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는 당시 우수한 독일 전차와 교전 시 많은 사상자를 내는 결과로 이어졌다.
센츄리온 개발에 참여했던 레일랜드(Leyland)는 1956년 새로운 전차의 설계 원형을 만들고, 국방성 설명서를 제작했다. 이 설계는 1960년대 초반에 채택되었다. 치프틴은 방어력을 극대화하고 강력한 120mm 강선포를 장착했다. 그러나 무거운 장갑은 기동성을 저하시켰으며, 특히 엔진 출력이 제한되어 치프틴의 단점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선택된 엔진은 예상보다 출력이 낮았다.
- Israel영어 : 평가용 프로토타입 2대를 도입했다.[44]
- Netherlandsnl : 1968년 1월 15일부터 3월 22일까지 네덜란드 왕립 육군의 "Detachement ter Beproeving van Voertuigen"(차량 시험 부대)에서 치프틴 1대를 레오파르트와 함께 시험했다. 이 전차는 영국 등록 번호 03 EB 81과 네덜란드 번호 KZ-99-65를 부여받았다.[45][46] 결국 레오파르트가 선택되었는데, 이는 치프틴의 열악한 제작 품질, 특히 엔진 오일 누출로 인한 엔진실 검댕 문제를 지적한 결과였다.[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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