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MS 에스토니아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MS 에스토니아는 1980년에 건조되어 여러 차례 이름을 바꾸며 운항하다가, 1993년 에스토니아 탈린과 스웨덴 스톡홀름을 잇는 노선에 투입되었다. 1994년 9월 28일, 발트 해에서 침몰하여 852명이 사망하는 대형 해난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조사 결과, 선수 바이저의 결함으로 해수가 유입되어 침몰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고는 선박 안전 기준 강화에 영향을 미쳤으며, 대한민국 세월호 침몰 사고에도 교훈을 주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980년 선박 - USS 미시간 (SSGN-727)
    USS 미시간(SSGN-727)은 원래 탄도 미사일 잠수함이었으나 순항 미사일 잠수함으로 개조되어 154발의 토마호크 미사일 탑재 및 특수전 부대 투입 능력을 갖춘 전략 자산으로, 동중국해 무력 시위 및 한반도 긴장 시 대한민국에 기항하는 등 활동을 수행한다.
  • 1980년 선박 - USS 칼 빈슨
    USS 칼 빈슨(CVN-70)은 칼 빈슨 하원 의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명명된 미국의 니미츠급 항공모함으로, 대테러 작전 지원, 오사마 빈 라덴 시신 수장 등 다양한 작전에 투입되어 현대 해군력의 핵심 전력으로 활약하고 있다.
  • 발트해의 침몰선 - 독일 항공모함 그라프 체펠린
    독일 항공모함 그라프 체펠린은 나치 독일 해군이 건조하려 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완공되지 못한 항공모함으로, 해상 항공력 증강 계획의 일환이었으나 건조 중단 후 소련 해군에 노획되어 실험 표적으로 사용 후 침몰, 2006년 잔해가 발견되었고 대중문화에도 등장한다.
  • 발트해의 침몰선 - 프라우 마리아
    프라우 마리아호는 1771년 스톡홀름을 출발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던 중 핀란드 만에서 침몰한 선박으로, 예카테리나 2세의 예술품을 싣고 있었으며, 1999년 발견 후 화물 소유권을 둘러싼 국제적 논쟁을 야기했다.
MS 에스토니아 - [배(Ship)]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MS 에스토니아 모형
MS 에스토니아의 축척 모형
이전 이름1980–1990: 바이킹 샐리 (Viking Sally)
1990–1991: 실리야 스타 (Silja Star)
1991–1993: 바사 킹 (Wasa King)
선주1980–1988: 레데리 Ab 샐리 (Rederi Ab Sally)
1988–1992: 에포아 (Effoa)
1992–1993: 에프도 3 오위 (Effdo 3 Oy)
1993–1994: 에스틀라인 마린 Co Ltd (Estline Marine Co Ltd)
운영사1980–1987: 레데리 Ab 샐리 (Rederi Ab Sally) (바이킹 라인 교통)
1987–1990: 레데리 Ab 슬리테 (Rederi AB Slite) (바이킹 라인 교통)
1990–1991: 실리야 라인 (Silja Line)
1991–1993: 바사 라인 (Wasa Line)
1993–1994: 에스틀라인 (Estline)
선적항1980–1991: 마리에함 (Mariehamn), 핀란드
1991–1993: 바사 (Vaasa), 핀란드
1993–1994: 탈린 (Tallinn), 에스토니아
건조1979년 9월 11일 주문
건조 조선소마이어 베르프트 (Meyer Werft), 파펜부르크 (Papenburg), 서독
야드 번호590
기공1979년 10월 18일
진수1980년 4월 26일
완공1980년 4월 27일
취득1980년 6월 29일
취역1980년 7월 5일
퇴역침몰, 1994년 9월 28일
식별 부호해상 호출 부호: ESTE
이름의 유래에스토니아 (Estonia) (에스토니아로서)
제원
선박 종류크루즈 페리, Ro-Ro선
톤수
길이(건조 시)
(1984년 이후)
갑판9
빙 등급1 A
동력4 × MAN 8L40/45
(합계)
수용량2,000명의 승객
1,190개의 여객 침대
460대의 차량
사고 위치
참고 자료

2. 건조 및 운항

MS 에스토니아호는 1980년 독일 파펜부르크의 마이어 베르프트 조선소에서 건조되었다. 이 조선소는 세계 최고급 크루즈 여객선을 건조하는 3대 조선소 중 하나로, 세계 최고 수준의 선박 건조 기술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4]

원래 이 선박은 노르웨이와 독일 간 운항을 위해 발주되었으나, 건조 막바지에 계약이 바이킹 라인의 레데리 AB 샐리로 넘어가면서 선박의 길이와 상부 구조가 변경되었다. 바이킹 라인은 1980년에 ''바이킹 샐리'', ''바이킹 사가'', ''바이킹 송'' 등을 포함한 총 4척의 신규 선박을 인도받았다.[4]

이후 에스토니아호는 바이킹 라인, 실자 라인, 와사 라인 등 여러 선사에서 운항되었다.

2. 1. 건조 과정

에스토니아호는 원래 노르웨이와 독일 간 운항을 위해 노르웨이 해운 회사가 독일 파펜부르크의 마이어 베르프트 조선소에 발주했다. 그러나 계약이 바이킹 라인의 레데리 AB 샐리로 넘어가면서 선박의 길이가 약 에서 약 로 연장되었고, 상부 구조도 크게 변경되었다.[4]

선수는 위로 열리는 선수 바이저와 차량 램프로 구성되었는데, 이는 자매선인 ''다이아나 II''에도 사용된 구조이다. 마이어 베르프트는 1970년대에 바이킹 라인을 위해 많은 수의 선박을 건조했다.[86][25]

2. 2. 운항 이력

스톡홀름에서의 ''바이킹 샐리''


1980년 6월 29일, ''바이킹 샐리''(Viking Sally)는 핀란드의 레데리 AB 샐리(Rederi Ab Sally)에 인도되어 투르쿠, 마리에함, 스톡홀름 간의 노선에 투입되었다.[4][5] 당시 이 노선에서 운항한 가장 큰 선박이었다. ''바이킹 샐리''는 바이킹 라인(Viking Line) 운항 중 몇 차례 사고를 겪었는데, 1984년 5월에는 올란드 제도에서 좌초되었고, 이듬해 4월에는 프로펠러에 문제가 발생했다. 1985년에는 "덕 테일"로 개조되었다.[4][5] 1986년에는 선상에서 승객이 살해되었고, 1987년에는 또 다른 살인 사건과 살인 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1987년 말, 바이킹 라인의 주요 경쟁사인 실자 라인(Silja Line)의 소유주인 에포아(Effoa)와 존슨 라인(Johnson Line)이 샐리를 인수했다.[7] 그 결과, SF 라인(SF Line)과 레데리 AB 슬리테(Rederi AB Slite)는 샐리가 바이킹 라인에서 철수하도록 강요했다.[4][5][7] ''바이킹 샐리''는 이후 3년 동안 현재의 운항을 계속하기 위해 레데리 AB 슬리테에 용선되었다.[4][5][7]

1991년의 ''실자 스타''


1990년 4월 용선 계약이 종료되면서, ''바이킹 샐리''는 실자 라인(Silja Line)의 도색으로 변경되고, 이름이 ''실자 스타''(Silja Star)로 변경되어 바이킹 라인에서 운항하던 투르쿠-마리에함-스톡홀름 노선에 투입되었다.[4][5] 1990년에는 Effoa, Johnson Line, Rederi Ab Sally가 EffJohn으로 합병되었다.

이듬해 봄, ''실자 스타''는 EffJohn이 소유한 또 다른 회사인 와사 라인(Wasa Line)에서 운항을 시작했다. 이름이 ''와사 킹''(Wasa King)으로 변경되었으며, 핀란드 바사와 스웨덴 우메오순스발을 연결하는 노선에 투입되었다.[4][5] ''와사 킹''은 바사에서 출항하는 선박 중 악천후 속에서 가장 뛰어난 성능을 보이는 선박으로 널리 알려졌다.

1993년 1월, ''와사 킹''은 Nordström & Thulin에 매각되어 Estline의 탈린–스톡홀름 노선에 ''Estonia''라는 이름으로 투입되었다.

MS ''Estonia'', 사람, 자동차, 버스 및 에어버스 A380의 크기 비교


당시 에스토니아 소유 선박 중 가장 큰 선박이었던 ''Estonia''는 소련 붕괴 이후 국명을 되찾은 독립을 상징했다.

3. 선박 구조 및 시설

MS 에스토니아는 총 11개의 갑판으로 구성되었다. 승객 시설은 주로 1, 4, 5, 6 갑판에 위치했고, 2, 3 갑판은 차량 및 화물 적재 공간이었다. 7, 8 갑판은 승무원 구역이었으며, 0 갑판에는 사우나와 수영장 등이 있었다.[15][14][11][12]

1993년 1월, 에프욘(Effjohn)이 바사라인(Viking Line)을 실자 라인(Silja Line)에 합병하기로 결정하면서, 바사 킹은 노르드스트룀 & 툴린(Nordström & Thulin)에 매각되었다. 이후 에스토니아라는 이름으로 에스토라인(EstLine)에 의해 탈린-스톡홀름 간 항로에 사용되었다.[74] 소유권은 복잡했는데, 노르드스트룀 & 툴린이 융자를 받아 에스토니아를 취득했지만, 실제 구매는 이 회사가 했고 등기상으로는 키프로스 니코시아에 등기된 에스토라인 마린(Estline Marine)이었다. 에스토라인 마린은 에스토니아의 E. 리니(E.Liini)에 용선하고, 다시 에스토라인에 재임대하는 형태였다. 그 결과, 선적은 키프로스와 에스토니아 양국에 두어졌다.[23][26]

에스토니아는 소련 붕괴로 독립을 회복한 에스토니아에게 있어서 최대의 선박이었으며, 독립의 상징이 되었다.[31]

3. 1. 갑판 구성

MS 에스토니아는 승객 시설이 주로 1, 4, 5, 6 갑판에 위치했다. 2, 3 갑판은 차량 및 화물 적재 공간이었다. 7, 8 갑판은 승무원 구역이었고, 0 갑판에는 사우나, 수영장 등이 있었다.[15][14][11][12]

MS 에스토니아호의 갑판 구성
번호시설
9함교, 일광욕 데크[11]
8승무원 선실, 일광욕 데크[10][11]
7승무원 선실 및 시설, 일광욕 데크[14]
6레스토랑 데크뷔페 식당, 알라 카르트 레스토랑, 바, 외부 및 내부 선실[15]
5입구 & 카페테리아 데크면세점, 카페테리아, 스낵 바, 디스코 클럽, 항공 좌석, 어린이 놀이방, 외부 및 내부 선실[11][12]
4컨퍼런스 데크 – 컨퍼런스 룸, 나이트클럽, 영화관, 내부 및 외부 선실[12]
3차량 플랫폼[13]
2차량 데크[13]
1내부 선실, 기관실[14]
0사우나, 수영장, 회의실[15]


3. 2. 주요 시설

MS 에스토니아는 승객과 승무원을 위한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승객 시설은 주로 1, 4, 5, 6 갑판에 집중되어 있었다.[11][10][14][15]

6 갑판은 '레스토랑 데크'로, 뷔페식당, 알라 카르트 레스토랑, 등이 위치했다.[15] 5 갑판은 '입구 & 카페테리아 데크'로, 면세점, 카페테리아, 스낵 바, 디스코 클럽 등이 있었다.[11][12] 4 갑판은 '컨퍼런스 데크'로, 회의실과 나이트클럽이 있었다.[12] 0 갑판에는 사우나와 수영장, 회의실이 있었다.[15]

다음은 바사 킹 시절의 시설 내용이다.[68][69][70][71][72][75]

#시설
6레스토랑 데크 – 뷔페, 알라 카르트, , 선실(내측・외측)
5엔트런스&카페테리아 데크 – 면세점, 카페테리아, 스낵바, 디스코, 라운지, 키즈룸, 선실(내측・외측)
4컨퍼런스 데크 - 회의실, 나이트클럽, 영화관, 선실(내측・외측)
0사우나, 수영장, 회의실


4. 침몰 사고

1994년 9월 28일, 에스토니아 탈린을 출발하여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향하던 에스토니아호발트해에서 침몰했다. 이 사고는 20세기의 최악의 해상 사고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16][17]

에스토니아호에는 승객 803명과 승무원 186명, 총 989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선수 출입문이 분리되면서 경사로가 열려 배가 침몰한 것으로 결론 내려졌다.

01시경, 선체 하부에서 '쾅'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센서 확인 결과 이상은 없었다. 그러나 01시 15분, 자동차 화물칸에 물이 들어오면서 선체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01시 22분, 승무원은 메이데이를 발신했고, 01시 50분에 에스토니아호는 인근 선박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배는 핀란드 우퇴 섬으로부터 157도 방향으로 22해리(41 km) 지점, 수심 74–85 m 지점에 가라앉았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승객들은 대피할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었다. 989명 중 138명만이 구조되었고, 그중 1명은 병원에서 사망했다. 선박이 34명, 헬리콥터가 104명을 구조했다. 특히 55세 이상 생존자는 7명, 12세 이하 생존자는 없었으며, 탈출한 사람 중 1/3은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757명의 실종자 중 약 650명의 시신은 침몰한 배 안에서 발견되었다.


4. 1. 사고 경위

1994년 9월 28일 0시 55분(UTC+2), 에스토니아호발트해를 지나던 중 좌초했다. 승객 803명과 승무원 186명, 총 989명이 탑승하고 있었다.[32][85]

최종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기상은 거칠었다. 초속 15-20m의 바람이 불었으며, 파고는 4-6m였다. 이는 발트해의 전형적인 가을 폭풍이었다.[77]

최초의 이상 신호는 1시경에 선수 바이저에 큰 파도가 충돌하면서 발생한 큰 금속 소리였다. 2등 항해사가 확인했지만, 선원은 상태 표시등의 점등만을 확인했을 뿐, 선수 바이저와 램프웨이 양쪽 모두 정상임을 확인했다.[35][33] 이어진 10분 동안, 승무원과 승객이 유사한 소리를 들었다는 보고가 있었다.[33]

1시 15분, 선수 바이저가 탈락하면서 램프 도어가 열리고 차량 갑판으로 해수가 급격히 유입되어, 선체는 오른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처음 15도, 5분 만에 30도를 넘었고, 1시 30분에는 전복되었다.[35][33] 1시 20분경, 에스토니아어로 선내에 일반 경보가 울리고, 이어서 승무원을 위한 경보, 그리고 1분 후에는 퇴선 경보가 이어졌다.

1시 22분에 메이데이가 발신되었지만, 통상적인 형식은 아니었다.[37][35][38] 1시 24분에는 두 번째 메이데이가 발신되었고, 실자 유럽과의 교신에 성공했다. 교신을 통해 위급한 상황을 알릴 수 있었지만, 에스토니아호에서는 정전이 발생하여 즉시 자선 위치를 알릴 수 없었고, 이로 인해 몇 분의 지연이 발생했다.[79]

1시 50분, 주변 선박의 레이더에서 선체가 사라졌고,[33] 핀란드 우퇴 섬으로부터 157도 방향으로 22 해리(41 km) 지점에, 수심 74–85 m 지점에서 침몰했다.

사고 발생 순서는 다음과 같다.

  • 1시: 쇳소리 발생. 이후 10분간 단속적으로 쇳소리가 발생.
  • 1시 15분: 선수 바이저 탈락.
  • 1시 20분: 일반 경보.
  • 1시 22분: 메이데이 발신.
  • 1시 24분: 두 번째 메이데이 발신, 실자 유럽과의 교신.
  • 1시 30분: 전복.
  • 1시 50분: 침몰.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선수 출입문이 선박에서 분리되어 경사로가 열린 것으로 결론 내렸다.

4. 2. 구조 및 수색

에스토니아호는 1994년 9월 28일 발트해에서 침몰했다. 1시 22분에 승무원이 메이데이를 발신했고, 1시 50분에 인근 선박의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핀란드 우퇴 섬으로부터 157도 방향으로 22해리(41 km) 지점, 수심 74–85 m 지점에 침몰했다.[33]

구조 활동은 1979년 해상 수색 구조에 관한 국제 조약에 따라, 사고 해역과 가장 가까운 투르쿠의 구조 조정소가 핀란드의 계획에 따라 조정을 실시했다. 발트해는 세계에서 가장 혼잡한 해역이며, 항상 2,000척 이상의 선박이 항행하고 있어, 조난 선박의 구명정과 인근 선박이 우선 대응하고, 1시간 후에 헬리콥터에 의한 구조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계획이었다.[90]

1시 50분, 투르크의 구조 조정소가 헬싱키의 무선국을 경유하여 수신한 교신 내용은, 메이데이보다 긴급성이 낮은 판-판이었다.[79] 전면적인 비상사태 선언은 2시 30분에 이루어졌다.[79]

최종적으로 29척의 선박과 26대의 헬리콥터가 구조 활동에 참여했다.[82][83]

2시 12분에 마리엘라가 현장 해역에 처음으로 도착했다.[79][20] 마리엘라는 구명 뗏목을 해면에 내려 에스토니아의 구명 뗏목에 타고 있던 13명을 옮겨 태우는 한편, 2명을 구조했다. 3시 5분 이후에 도착한 스웨덴, 핀란드 양국의 헬리콥터에 다른 구명 뗏목의 위치를 전달했다.[82]

실자 유로파는 에스토니아와 교신을 했던 배이며 2시 5분에 투르크에서 현장 지휘를 위임받았지만, 해면을 수색하면서 진행했기 때문에 2시 30분에 도착했다. 실자 유로파는 민간 선박으로는 마지막인 18시 32분까지 현장 해역에 머물면서 구조 활동의 사령탑으로 활동했다.[82]

2시 40분, 실자 심포니가 도착했다. 2시 52분에는 MS Isabelle|이사벨라영어가 도착하여 17명을 구조했다.[79][82] 3시 20분에 GTS Finnjet|핀제트영어가 도착했지만, 파랑으로 인해 이탈했다.[82] 3시 25분에 도착한 RO-RO 페리 M/S Merchant|핀머천트fi는 유해를 발견했지만 생존자를 구조하지는 못했다.[82] 4시 30분에 도착한 M/S Finnhansa|핀한자fi는 직접 구조하지는 않았지만, 생존자가 있는 구명 뗏목을 발견하여 헬리콥터 구조에 기여했다.[82] 화물선 미니스터는 4시 30분에 현장에 도착하여 헬리콥터에 구명 뗏목 위의 생존자를 알리고, 1명이 구조되었다.[82] 핀란드 국경 경비대의 순시선 투르사스는 5시에 도착하여 1명을 구조했다.[82]

핀란드 국경 경비대의 AS 332, OH-HVG기


핀란드의 AS 332 OH-HVG기와 A A/B 412 OH-HVD기는 위험성이 높은 선상 착륙을 선택하여 구조 작업을 수행했다. OH-HVG기는 44명을, OH-HVD기는 7명을 구조했다.[83]

9시까지 발견된 생존자가 마지막 생존자였다.[81] 10시에는 생존자를 발견하지 못하고 시신 수습이 시작되었다.[81] 18시 32분에 수색이 축소되었고, 민간 선박은 현장 해역에서 이탈했다.

989명 중 138명만이 구조되었다. 구조된 사람 중 1명은 병원에서 사망했다. 선박이 34명, 헬리콥터가 104명을 구조했다. 55세 이상은 7명만 구조되었고, 12세 이하는 한 명도 구조되지 못했다. 선박에서 탈출한 사람 중 1/3은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757명의 실종자 중에서 대략 650명의 시신은 침몰한 배 안에서 발견되었다.[33]

국적사망자생존자전체
50151552
28562347
23629
11415
10313
639
538
516
314
202
112
112
112
101
101
101
101
합계852137989


4. 3. 피해 규모

승객 및 승무원 989명 중 852명이 사망했고, 137명이 구조되었다. 구조된 사람 중 1명은 병원에서 사망했다. 선박에 의해 34명, 헬리콥터에 의해 104명이 구조되었다. 55세 이상 생존자는 7명, 12세 이하 생존자는 없었다. 선박에서 탈출한 사람 중 1/3은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실종자 757명 중 약 650명의 시신은 침몰한 배 안에서 발견되었다.[92][20]



이 침몰 사고는 20세기 최악의 해상 사고 중 하나였다.[16][17] RMS ''타이타닉''(1912)과 RMS ''Empress of Ireland'' (1914)에 이어 유럽 선박의 최악의 평화시 침몰 사고 중 하나이며, 유럽 해역에서 발생한 최악의 평화시 난파 사고로 852명이 사망했다.[18] 희생자 중에는 에스토니아 가수 울마스 알렌더가 포함되어 있다.[40]

5. 사고 조사 및 보고서

에스토니아, 핀란드, 스웨덴 정부는 1994년 9월 29일 합동 사고 조사 위원회(JAIC)를 설립하여 사고 원인을 조사했다.[16][17][18][19] 조사위원회는 1997년 12월 최종 보고서를 발간했다.

사고 당시 에스토니아는 발트해를 건너 탈린에서 스톡홀름으로 향하던 중이었으며, 1994년 9월 28일 0시 55분부터 1시 50분(UTC+2) 사이에 침몰했다. 승객 803명, 승무원 186명 등 총 989명이 탑승하고 있었으며,[32][85] 이 중 137명이 구조되었다. 승객 대다수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출신이었고, 승무원 대부분은 에스토니아인이었다.

국적사망자생존자전체
--50151552
--28562347
--23629
--11415
--10313
--639
--538
--516
--314
--202
--112
--112
--112
--101
--101
--101
--101
합계852137989



JAIC의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풍속은 15~20m/초(보퍼트 풍력 계급 7~8), 파고는 4~6m였다.[77] 이는 가을 발트해의 전형적인 폭풍 상황이었다.

5. 1. 공식 조사 결과

에스토니아, 핀란드, 스웨덴 정부가 1994년 9월 29일에 설립한 합동 사고 조사 위원회(JAIC)는 1997년 12월 최종 보고서를 발표했다.[16][17][18][19]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선수 출입문이 선박에서 분리되어 경사로가 열리면서 해수가 차량 갑판으로 유입된 것이 침몰의 주요 원인이라고 결론지었다. 화물 분배가 제대로 되지 않아 배가 이미 기울어진 상태였고, 기울기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갑판과 선실에 물이 찼다. 곧 전원이 완전히 나가면서 수색 및 구조 작업이 방해받았고, 90분 동안 전면적인 비상사태가 선포되지 않았다.[32][85][33]

보고서는 주로 선박의 구조, 물이 차량 갑판에 들어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경보를 늦게 울리고 다리에서 최소한의 지침만 제공한 승무원의 소극적인 태도를 비판했다.[35]

침몰 선박의 조사와 영상 기록 채취는 원격 조작 무인 탐사기를 통해 이루어졌다.[94]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선수(船首) 바이저의 고정부와 경첩부가 파도를 견디지 못하고 탈락했으며, 격납되어 있던 램프웨이가 열렸다.[88][35] 선교에는 선수 바이저 및 램프웨이가 운용 시 개방 상태이거나 잠금 해제 상태임을 나타내는 표시등이 있었지만, 선수 바이저는 선교에서는 사각지대에 있었고, 램프웨이 내부 감시 모니터는 해도실 앞에 위치해 조타를 지휘하는 위치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다.[76][87][35]

최초의 금속음은 선수 바이저 하부의 잠금 장치가 파손된 소리이며, 이어진 소리는 선수 바이저가 움직이면서 다른 부분이 파손된 소리로 추정된다.[41] 램프웨이가 열리면서 해수가 차량 갑판으로 유입되었고, 이로 인한 경사 때문에 전복 및 침몰의 주된 원인이 되었다.[42]

승무원들은 금속음이 들렸을 때 조사 전에 감속하지 않았고, 해수 유입으로 인한 선체의 경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실수를 범했다.[44] 게다가, 경보 지연, 피난 유도 부족도 비판받고 있다.[35]

5. 2. 조사 결과에 대한 비판

에스토니아, 핀란드, 스웨덴 정부가 설립한 합동 사고 조사 위원회(JAIC)의 공식 보고서는 선수 출입문이 분리되어 경사로가 열린 것을 침몰 원인으로 결론 내렸다. 이 보고서는 선박 구조, 승무원의 소극적인 태도, 경보 지연, 피난 유도 부족 등을 비판했다.[16][17]

그러나 이 조사 결과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다. 조선소 주도로 이루어진 조사를 포함한 반론이 제기되었고, 스웨덴 정부는 2006년에 외부 기관에 재조사를 의뢰했지만, 이 역시 결정적인 결과를 얻지 못하고 반론이 제기되었다.[25][45]

일부에서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독일 언론인 유타 라베(Jutta Rabe)는 불법적으로 입수한 에스토니아호 선수 파편에서 폭발 흔적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발트해 연안 국가들과 영국이 에스토니아호 침몰 조사를 거부하는 합의를 한 것은, 러시아 군사 물자를 민간 페리로 밀수입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54] 그러나 JAIC는 이를 부정하며, 파편 손상은 바우 바이저 탈락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독일 연방 재료 시험 연구소의 조사 결과를 인용하여 유타 라베의 시료는 폭발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55]

이러한 음모론의 배경에는 2004년 스웨덴 텔레비전 보도에서 시작된 조사가 있었다. 전직 스웨덴 세관 직원이 에스토니아호가 1994년 9월에 군수 물자 수송에 사용되었다고 주장했고,[56] 스웨덴과 에스토니아 정부는 조사 결과 1994년 9월 14일부터 20일에 걸쳐 폭발물은 아니지만 군수 물자가 적재되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스웨덴 국방부에 따르면 침몰 당일에는 군수 물자가 적재되지 않았고, 세관 검사에서도 이상한 활동은 보고되지 않았다.[57][58]

6. 사고의 영향 및 교훈

에스토니아호 침몰 사고는 선박 안전에 대한 국제적인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사고 원인 조사 결과, 선수(船首) 바이저의 고정 장치와 경첩부가 파도에 의해 파손되어 램프웨이가 열리고, 차량 갑판으로 해수가 유입된 것이 침몰의 주된 원인으로 밝혀졌다.[88][35][42]

사고 당시 승무원들은 금속음을 듣고도 조사를 지체했고, 해수 유입으로 인한 선체 기울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44] 또한, 경보가 늦었고 피난 유도가 부족했던 점도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지적되었다.[35] 이 사고는 Ro-Ro선이 넓은 차량 갑판에 물이 유입될 경우, 무게 중심 변화와 자유 표면 효과로 인해 전복 위험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43]

사고 조사 결과에 대한 비판과 함께, 독일 언론인 유타 라베는 에스토니아호 선수 파편에서 폭발 흔적을 발견했다는 주장을 제기하며 음모론을 제기했다.[54] 그녀는 발트해 연안 국가들과 영국이 에스토니아호 침몰 조사를 거부하는 합의를 통해, 러시아 군사 물자를 민간 페리로 밀수입한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고 주장했다.[54] 그러나 JAIC(에스토니아호 합동 사고 조사 위원회)는 이를 부정하며, 파편 손상은 바우 바이저 탈락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55]

2004년 스웨덴 텔레비전 보도를 통해 전직 세관 직원이 에스토니아호가 1994년 9월 군수 물자 수송에 사용되었다고 증언하면서 음모론은 더욱 확산되었다.[54][56] 스웨덴과 에스토니아 정부 조사 결과, 1994년 9월 14일부터 20일 사이에 폭발물은 아니지만 군수 물자가 적재되었음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침몰 당일에는 군수 물자가 적재되지 않았고, 스웨덴 세관의 사전 검사에서도 이상 징후는 보고되지 않았다.[57][58]

6. 1. 선박 안전 기준 강화

국제해사기구(IMO)는 해상 인명 안전을 위한 국제 협약(SOLAS)을 개정하여 구명정과 구명뗏목에 대한 새로운 규제를 마련했다. 최소 한 척은 거친 바다에서도 운용 가능한 고속 구명정(fast rescue boat)이어야 한다.[46][50]

130m 이상의 Ro-Ro 여객선에는 헬리콥터 갑판 설치가 의무화되었다. Ro-Ro 여객선 외의 선박에도 의무화를 검토했지만 실현되지는 않았다.[51][52]

Ro-Ro 여객선의 복원성 요구 조건도 강화되었다. 이 규정은 스톡홀름 협정에 따라 발트해를 포함한 북유럽에서는 더욱 엄격해져, 차량 갑판에 50cm의 침수에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53][35]

6. 2. 대한민국에 주는 교훈

에스토니아호 침몰 사고는 세월호 침몰 사고와 여러 면에서 유사점을 보이며, 대한민국 사회에 다음과 같은 교훈을 제시한다.

  • 선박 안전 기준 강화의 중요성: 에스토니아호 침몰은 선박 안전 기준과 구명정 설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46] 1999년부터 모든 여객선 승무원은 군중 관리, 위기 관리 및 인간 행동 훈련을 받아야 했으며, 당직 기준도 개정되었다.[47]
  • 자동 조난 신호 시스템 구축: 에스토니아호의 조난 신호와 비상 위치 표시 무선 표지 장치(E-PIRB)는 수동으로 작동해야 했고, 결국 작동되지 않았다. 이 사고를 계기로 비상 위치 표시 무선 표지 장치는 자동식으로 변경되어 선박 침몰 사실과 위치를 신속하게 알릴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항해 데이터 기록 장치 설치도 의무화되었다.[48][49]
  • 구조 역량 강화: 국제해사기구는 해상 인명 안전을 위한 국제 협약을 개정하여 구명뗏목과 구명정에 대한 새로운 규제를 마련했다. 최소 한 척은 거친 바다에서도 운용 가능한 고속 구명정(fast rescue boat)이어야 한다.[46][50] 130m 이상 Ro-Ro 여객선에는 헬리콥터 갑판 장착이 의무화되었다 (Ro-Ro 여객선 외 선박은 의무화되지 않음).[51][52]
  • 선박 복원성 강화: Ro-Ro 여객선의 복원성 요구 조건도 강화되었다. 스톡홀름 협정에 따라 발트해를 포함한 북유럽에서는 더욱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어, 차량 갑판에 50cm 침수에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53][35]
  • 안전 점검 강화: 바우 바이저가 있는 선박은 래치와 힌지 상태를 확인하는 센서를 분리하여 설치하도록 권장된다.[93]

7. 사고 이후

MS 에스토니아는 소련 붕괴 후 독립을 회복한 에스토니아에게 있어 가장 큰 선박이자 독립의 상징이었다.[31] 침몰 이후,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추모 시설이 건립되었다.

7. 1. 침몰 선체 보호

희생자 유족들은 유해 수습 및 매장을 요구했고, 동시에 선체 인양을 통해 사고 원인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59][60] 그러나 해저에서 부패한 유해를 수습하는 것은 윤리적, 기술적 문제가 있었고, 인양에 드는 막대한 비용도 문제였다. 스웨덴 정부는 침몰 지점을 콘크리트로 덮는 방안을 제안했으나,[61][62] 준비 단계로 수천 톤의 쇄석을 현장에 투하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60]

1995년, 스웨덴,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폴란드, 덴마크, 러시아, 영국은 에스토니아 협정(Estonia Agreement 1995)을 체결하여 사고 지점을 성역으로 지정하고, 각국 국민의 침몰 선박 접근을 금지했다.[63] 이 협정은 참여하지 않은 국가를 강제할 수는 없었지만, 스웨덴 해군은 최소 두 차례의 불법 잠수 조사를 적발했다. 현재 사고 해역은 핀란드 해군이 레이더로 감시하고 있다.[64] 2006년 5월 8일, 에스토니아와 스웨덴의 희생자 유족들은 협정 참여국들에 잠수 금지 중단을 청원하며, 새로운 증거를 찾고 독립적인 전문가에 의한 투명한 조사를 요구했다.[65]

7. 2. 새로운 증거 및 재조사

2020년 9월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사고의 공식 견해를 뒤집는 새로운 증거가 제시되었다. "Estonia: The Find That Changes Everything"(Discovery Networks 제작)의 제작팀은 원격 조작 잠수정을 사용하여 선체에 4m나 되는 새로운 구멍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외부에서 강한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이러한 손상은 생기지 않으므로, 사고 당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의문이 깊어졌다. 그러나 핀란드의 우토 섬 주변 해역은 묘지로 지정되어 침몰 선박의 잔해를 찾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2019년 9월 조사 후,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헨리크 에베르트손(Henrik Evertsson) 감독과 촬영 스태프 1명이 체포되었다. 이러한 발견에 대해 에스토니아, 스웨덴, 핀란드의 외무 장관은 새로운 정보를 조사하겠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66]

8. 관련 작품

에스토니아호 침몰은 다큐멘터리로 여러 차례 다루어졌으며, 창작물에도 반영되었다.


  • 발틱 스톰
  • 히스토리 채널: Sinking of the Estonia
  • 제로 아워 (캐나다 및 영국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The Sinking of the Estonia)
  • Canticum Calamitatis Maritimae|해난 사고의 찬가영어: Jaakko Mäntyjärvi|야코 맨티야르비영어의 합창곡.
  • 큰 파도의 마법: 벨리오 톨미스의 합창곡.
  • This Strange Engine|에스토니아영어: 마릴리온의 곡.
  • Vedenalainen maailma:Laura Sippola|라우라 시폴라영어의 곡
  • 프랑스 알프스에서 일어난 일: 영화의 주제와 관련하여 침몰 당시의 에피소드가 언급됨

참조

[1] 웹사이트 M/F Estonia http://www.ferry-sit[...] 2021-10-21
[2] 웹사이트 "Final report on the capsizing on 28 September 1994 in the Baltic Sea of the Ro-Ro passenger vessel MN Estonia" http://onse.fi/eston[...]
[3] Britannica Sinking of the Estonia https://www.britanni[...] 2024-10-03
[4] 웹사이트 Wasa King http://www.vasabatar[...] Vasabåtarna.se 2007-10-29
[5] 웹사이트 M/S Viking Sally http://www.faktaomfa[...] Fakta om Fartyg 2007-10-29
[6] 웹사이트 Viking Sally schedules 1980–1990 http://www.fcbsweb.c[...] FCBS Forum 2007-10-29
[7] 웹사이트 Simplon Postcards: Viking Sally – Wasa King – Silja Star – Estonia http://www.simplonpc[...] 2014-09-28
[8] 웹사이트 MS Wellamo (1986) http://www.faktaomfa[...] Fakta om Fartyg 2007-10-29
[9] 뉴스 The Sinking of the Estonia http://www.bbcactive[...] BBC
[10] 웹사이트 General arrangement https://www.estoniaf[...] 2021-06-21
[11] 웹사이트 "Viking Sally deck plan" http://www.vasabatar[...] Vasabåtarna.se 2008-12-20
[12] 웹사이트 "Viking Sally Conference deck 4 plan" http://www.vasabatar[...] Vasabåtarna.se 2008-12-20
[13] 웹사이트 "Viking Sally cutaway" http://www.vasabatar[...] Vasabåtarna.se 2008-12-20
[14] 웹사이트 "Viking Sally General Arrangement plan" http://www.vasabatar[...] Vasabåtarna.se 2008-12-20
[15] 웹사이트 "Viking Sally Restaurant deck 6 plan" http://www.vasabatar[...] Vasabåtarna.se 2008-12-20
[16] 간행물 Identification of victims from the M/S Estonia
[17] 서적 The M/S Estonia Disaster and the Treatment of Human Remains Bierens, J.J.L.M. (ed.)
[18] 웹사이트 Estonia shipwreck investigator and nautical linguist Captain Uno Laur dies https://news.err.ee/[...] Estonian Public Broadcasting 2019-03-23
[19] 웹사이트 There are memorials to the Estonia in both Tallinn and Stockholm http://sites-of-memo[...] 2021-10-21
[20] 간행물 Identification of victims from the M/S Estonia
[21] 서적 The M/S Estonia Disaster and the Treatment of Human Remains Bierens, J.J.L.M. (ed.)
[22] 문서
[23] 웹사이트 Wasa King http://www.vasabatar[...] Vasabåtarna.se 2007-10-29
[24] 문서
[25] 웹사이트 MV Estonia 海難事故について http://k-senior.saku[...] 日本船舶海洋工学会 関西シニアクラブ 2009-10-06
[26] 웹사이트 M/S Viking Sally http://www.faktaomfa[...] Fakta om Fartyg 2007-10-29
[27] 웹사이트 Viking Sally:n aikataulut vuosilta 1980-1990 http://www.maritimef[...] maritimeforum.fi 2014-04-28
[28] 문서
[29] 웹사이트 Viking Sally – Wasa King – Silja Star – Estonia http://www.simplonpc[...] Simplon Postcards 2007-10-29
[30] 웹사이트 MS Wellamo (1986) http://www.faktaomfa[...] Fakta om Fartyg 2007-10-29
[31] 뉴스 The Sinking of the Estonia http://www.bbcactive[...] BBC
[32] 문서
[33] 문서
[34] 웹사이트 Wave height records in the Baltic Sea http://www.fimr.fi/e[...] 핀란드기상연구소 2014-04-23
[35] 간행물 에스토니아 침몰 사고의 최종 보고서를 읽고 https://doi.org/10.1[...] 일본조선학회 2014-04-23
[36] 웹사이트 船舶電子機器装備工事ハンドブック 7.2 非常警報 https://nippon.zaida[...] 日本船舶電装協会 1999-03-00
[37] 문서 メーデーは、3回繰り返すところを2回であった。
[38] 학술지 chapter 22 the rescue http://www.estoniafe[...] 2014-04-24
[39] 웹사이트 HELCOM reports a noticeable drop in shipping accidents in the Baltic http://helcom.navigo[...] 2007-06-27
[40] 서적 Media & Folklore. Contemporary Folklore IV http://www.folklore.[...] 2014-04-26
[41] 문서 Whittingham, The Blame Machine, pp. 139–40
[42] 문서 Whittingham, The Blame Machine, p. 139
[43] 웹사이트 【特別寄稿】韓国フェリー沈没事故について http://www.cruise-ma[...] 海事プレス 2014-04-25
[44] 문서 Whittingham, The Blame Machine, p. 142
[45] 웹사이트 エストニア号沈没事件の考察 http://www.jasnaoe.o[...] 船舶海洋工学会 関西シニアクラブ 2009-10-06
[46] 웹사이트 The Revised SOLAS Regulations for Ro-Ro Ferries http://www.dsfrdc.go[...] Warsah Maritime Centre 2014-04-27
[47] 웹사이트 Passenger information required on all passenger ships from 1 January 1999 http://www.imo.org/S[...] 국제해사기관 2007-10-21
[48] 웹사이트 Why Choose Float-Free? http://www.kelvinhug[...] Kelvin Hughes 2014-04-28
[49] 웹사이트 国際海事情報シリーズ79 欧州における航海機器のシステム化の現状と動向に関する調査 3.2.3.1 導入の経緯 https://nippon.zaida[...] シップ・アンド・オーシャン財団 2014-04-28
[50] 웹사이트 Resolution A.656(16) FAST RESCUE BOAT http://www.imo.org/b[...] 국제해사기관 2014-04-28
[51] 뉴스 Helicopter landing area regulation to apply to ro-ro passenger ship only http://www.imo.org/M[...] 국제해사기관 2014-04-28
[52] 웹사이트 IMO第71回海上安全委員会(MSC)の結果について(その1) http://www.jsmqa.or.[...] 일본선박품질관리협회 2014-04-28
[53] 뉴스 Herald of sea changes http://www.guardian.[...] 2001-11-30
[54] 뉴스 Death in the Baltic: the MI6 connection http://www.newstates[...] 2013-08-19
[55] 뉴스 Finnish Estonia Commission members still reject explosion theories http://www2.hs.fi/en[...] 헬싱긴・사노맛 2001-02-20
[56] 뉴스 War materials smuggled on Estonia http://svt.se/2.1303[...] 스웨덴・텔레비 2014-04-25
[57] 웹사이트 Utredningen om transport av försvarsmateriel på M/S Estonia http://www.regeringe[...] 스웨덴 국방부 2014-04-24
[58] 웹사이트 Riigikogu Committee of Investigation to Ascertain the Circumstances Related to the Export of Military Equipment from the Territory of the Republic of Estonia on the Ferry Estonia in 1994 – Final Report http://www.riigikogu[...] 리기코구 2014-04-24
[59] 뉴스 Estonian tuho lietsoi salaliittoteorioita http://yle.fi/uutise[...] 핀란드국영방송 2014-04-28
[60] 문서 Whittingham, The Blame Machine, p. 140
[61] 웹사이트 Justitieutskottets betänkande 1994/95: JuU23 Gravfrid över m/s Estonia http://www.riksdagen[...] 리크스다겐 2014-04-24
[62] 서적 En granskning av Estoniakatastrofen och dess följder http://data.riksdage[...] 스웨덴정부공식보고
[63] 웹사이트 Agreement between the Republic of Estonia, the Republic of Finland and the Kingdom of Sweden regarding the M/S Estonia http://www.regeringe[...] 스웨덴외무성 2014-04-24
[64] 뉴스 Sjöfartsverket höll tyst om stoppade Estonia-dykare http://wwwc.aftonbla[...] 아프톤블라데트 1998-05-18
[65] 문서 Joint letter from M/S Estonia organizations in Estonia and Sweden http://estonia.kajen[...] 2006-05-08
[66] 웹사이트 ドキュメンタリー番組で新事実発見か バルト海フェリー沈没事故 https://www.afpbb.co[...] AFP통신 2020-09-30
[67] 웹사이트 M/S Wasa King http://www.vasabatar[...] 에프존 2014-04-28
[68] 웹사이트 Viking Sally deck plan http://www.vasabatar[...] Vasabåtarna.se 2008-12-20
[69] 웹사이트 Viking Sally Conference deck 4 plan http://www.vasabatar[...] Vasabåtarna.se 2008-12-20
[70] 웹사이트 Viking Sally cutaway http://www.vasabatar[...] Vasabåtarna.se 2008-12-20
[71] 웹사이트 "Viking Sally'' General Arrangement plan" http://www.vasabatar[...] Vasabåtarna.se 2008-12-20
[72] 웹사이트 "Viking Sally'' Restaurant deck 6 plan" http://www.vasabatar[...] Vasabåtarna.se 2008-12-20
[73] 간행물 Chapter 1 The Accident http://www.onnettomu[...] 2014-04-23
[74] 간행물 Chapter 2.2 Under Estonian flag http://www.onnettomu[...] 2014-04-28
[75] 간행물 Chapter 3 The Vessel http://www.onnettomu[...] 2014-04-28
[76] 간행물 Chapter 3.2.7 Bridge layout - Figure 3.4 Approximate field of vision from the bridge. http://www.onnettomu[...] 2014-04-23
[77] 간행물 Chapter 5.4 Meteorological conditions http://www.onnettomu[...] 2014-04-24
[78] 간행물 Chapter 5.5 Speed http://www.onnettomu[...] 2014-04-24
[79] 간행물 Chapter 7.1 Summary of the operation http://www.onnettomu[...] 2014-04-24
[80] 간행물 Chapter 7.3 The maritime radio distress and safety systems and the distress traffic http://www.onnettomu[...] 2014-04-24
[81] 간행물 Chapter 7.4 Initiation of rescue actions http://www.onnettomu[...] 2014-04-24
[82] 간행물 Chapter 7.5 The rescue operation http://www.onnettomu[...] 2014-04-24
[83] 간행물 Chapter 7.5.4 General considerations, helicopters http://www.onnettomu[...] 2014-04-24
[84] 간행물 Chapter 7.5.6 Action taken by fixed-wing aircraft http://www.onnettomu[...] 2014-04-24
[85] 간행물 Chapter 7.6 The human outcome http://www.onnettomu[...] 2014-04-24
[86] 간행물 Chapter 11.3 The DIANA II incident http://www.onnettomu[...] 2014-04-26
[87] 간행물 Chapter 13.4 Advance indications and alarms from the bow area http://www.onnettomu[...] 2014-04-26
[88] 간행물 Chapter 13.5 Failure sequence of bow visor and ramp http://www.onnettomu[...] 2014-04-26
[89] 간행물 Chapter 16.7 The limits for evacuation and the outcome http://www.onnettomu[...] 2014-04-24
[90] 간행물 Chapter 17.1 Introduction http://www.onnettomu[...] 2014-04-24
[91] 간행물 Chapter 17.6 Action at the accident site http://www.onnettomu[...] 2014-04-24
[92] 간행물 Chapter 20 Findings http://www.onnettomu[...] 2014-04-26
[93] 간행물 Chapter 22 Recommendations http://www.onnettomu[...] 2014-04-24
[94] 보고서 'Condition Survey of the Vessel "Estonia" for the Swedish National Maritime Administration. Survey Report. (Supplement No. 503)' http://www.onnettomu[...] Rockwater A/S 2014-04-26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