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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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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라우 마리아는 1771년 러시아 예카테리나 2세 소유의 예술품 등 귀중품을 싣고 암스테르담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던 중 핀란드 유르모 섬 근처에서 침몰한 배이다. 침몰 당시 선원들은 생존했지만, 화물의 극히 일부만 구조되었다. 난파선은 1999년 발견되었으며, 네덜란드, 러시아, 핀란드가 소유권을 주장하며 분쟁 중에 있다. 주요 화물로는 설탕, 섬유, 염료와 더불어 렘브란트를 비롯한 네덜란드 거장들의 그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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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 마리아
기본 정보
프라우 마리아 호의 그림
프라우 마리아 호의 그림
종류상선
건조네덜란드
소유주암스테르담의 상인
선장힐데르트 폰 캄펜
진수1771년
침몰1771년 가을
침몰 위치핀란드 해안, 오보 섬 근처
화물예술품, 보석, 외교 문서
역사적 맥락
배경당시 러시아 제국예카테리나 2세는 유럽 각지에서 예술품을 대량으로 구매하고 있었다.
화물의 목적지상트페테르부르크
침몰 원인악천후, 항해 오류
인양 시도 및 발견
인양 노력침몰 직후 즉시 시도되었으나 실패했다.
재발견1999년, 핀란드 탐험가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보존 상태뛰어난 보존 상태로 발견됨, 발트해의 낮은 염도와 나무를 갉아먹는 벌레의 부재 덕분
논쟁 및 영향
소유권 논쟁선박과 화물의 소유권을 둘러싼 국제적인 논쟁이 존재한다.
문화적 중요성"발트해의 보물"이라고 불리며, 18세기 예술과 무역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한다.
추가 조사선박의 추가 조사 및 화물 인양 계획이 논의 중이다.

2. 역사적 배경

''프라우 마리아''(Vrouw Maria)는 러시아예카테리나 2세 소유의 예술 작품을 포함한 귀중한 유물들을 싣고 있었다. 이 배는 1771년 9월 5일 암스테르담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출항했다. 한 달 뒤인 10월 3일, 배는 폭풍우를 만나 핀란드 유르모 섬 근처에서 좌초되었다. 바위에 부딪혀 경미한 손상만 입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배는 다시 좌초되어 방향타를 잃었다. 큰 파도에 의해 배가 물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선원들은 배에 물이 빠르게 새는 것을 발견했다. 닻을 내리고 선원들은 펌프를 작동시켰지만, 배는 계속해서 물이 들어왔다.

10월 4일 새벽, 배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선원들은 배의 보트를 이용하여 근처 바위에 안전하게 도착했고, 거기서 지나가는 배를 불렀다. 다음 날 도움의 손길이 도착했지만, 며칠 동안 배를 안정시키려는 시도는 진전을 보지 못했다. 배의 펌프가 화물의 커피 콩으로 막혔기 때문이다. 10월 5일 아침, ''프라우 마리아''는 파도 아래로 가라앉았다. 모든 선원은 생존했지만, 화물의 극히 일부만 구조되었다.

프라우 마리아 난파선에서 인양된 점토 담배 파이프

2. 1. 출항과 항해

1771년 9월 5일, 프라우 마리아 호는 예카테리나 2세 소유의 예술 작품을 포함한 귀중한 유물들을 싣고 암스테르담을 출발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했다. 9월 23일, 덴마크 헬싱외르에서 화물 신고를 마쳤으며, 예카테리나 2세가 구매한 예술품은 덴마크 국왕의 허가 하에 사운드 관세를 면제받았다.

한 달 뒤인 10월 3일, 배는 폭풍우를 만나 핀란드 유르모 섬 근처에서 좌초되었다. 바위에 부딪혀 경미한 손상을 입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배는 다시 좌초되어 방향타를 잃었다. 큰 파도에 의해 배가 물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선원들은 배에 물이 빠르게 새는 것을 발견했다. 닻을 내리고 펌프를 작동시켰지만, 배는 계속해서 물이 들어왔다.

10월 4일 새벽, 배를 포기하기로 결정했고, 선원들은 배의 보트를 이용하여 근처 바위에 안전하게 도착한 후 지나가는 배를 불렀다. 다음 날 도움을 받았지만, 며칠 동안 배를 안정시키려는 시도는 배의 펌프가 화물의 커피 콩으로 막혀 진전을 보지 못했다. 10월 5일 아침, 프라우 마리아는 파도 아래로 가라앉았다. 모든 선원은 생존했지만, 화물의 극히 일부만 구조되었다.

2. 2. 침몰 과정

1771년 9월 5일 암스테르담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출항한 프라우 마리아 호는, 러시아예카테리나 2세 소유의 예술 작품을 포함한 귀중한 유물들을 싣고 있었다. 10월 3일, 배는 유르모 섬 근처에서 폭풍우를 만나 좌초되었는데, 초기에는 바위에 부딪혀 경미한 손상만 입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좌초되어 방향타를 잃었다. 큰 파도에 의해 배가 물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선원들은 배에 물이 빠르게 새는 것을 발견하고 닻을 내린 뒤 펌프를 작동시켰다.

10월 4일 새벽, 선원들은 배를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배의 보트를 이용하여 근처 바위에 안전하게 도착했고, 거기서 지나가는 배를 불렀다. 다음 날 도움의 손길이 도착했지만, 배를 안정시키려는 시도는 진전을 보지 못했는데, 배의 펌프가 화물의 커피 콩으로 막혔기 때문이다. 10월 5일 아침, 프라우 마리아 호는 파도 아래로 가라앉았다. 모든 선원은 생존했지만, 화물의 극히 일부만 구조되었다.

3. 침몰 이후

렘브란트와 같은 네덜란드 거장들의 유명 명화를 구매한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가 이 명화를 설탕, 커피 등과 함께 발트해를 거쳐 러시아 제국으로 운송하는 중 당시 핀란드의 수도 투르쿠에서 폭풍을 만나 수많은 예술적 걸작들이 바다에 묻히면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이후 보물선이라는 이름의 소설에 나오는 배의 모델이 되었다. 최근 핀란드에서 배가 발견되었으나 네덜란드, 핀란드, 러시아 이 3나라가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아직까지도 주인이 판가름 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이 배를 다시 밖으로 올렸을 경우 그 내부에 있는 명화들이 모두 실존할 것인가가 관심거리로 남아있다.

여러 사람들이 난파선의 위치를 찾으려 했지만, 1999년 프로 프라우 마리아가 발견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1970년대에 크리스티안 알스트룀이 핀란드 국립 문서 보관소에서 이 사건과 관련된 문서를 발견하면서 이 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는 1979년 "침몰한 배"라는 책에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네덜란드의 주장'''

네덜란드는 애초에 프라우 마리아 호는 네덜란드 소유의 상선이었으며 그 안에 있는 예술품들 또한 네덜란드의 거장들이 그린 그림이므로 네덜란드에서 마땅히 프라우 마리아 호를 소유할 수 있으며 예술품 역시 네덜란드 측에서 보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의 주장'''

러시아는 과거 러시아 제국의 여왕인 예카테리나 2세가 구입한 예술품이기 때문에 러시아 측에서 문화유산으로서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이 예술품들이 경매로 나왔을 때 러시아가 가장 많은 돈을 냈고 이 돈은 예카테리나 2세의 황실자금이었다. 그러므로 러시아는 그들이 그 명화를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핀란드의 주장'''

핀란드는 수백 년간 본국의 영해에 있었던 프라우 마리아 호의 소유권은 당연히 핀란드 당국이 가지고 있으며 다른 잠수부들이 만일의 경우 영해에 침범하여 프라우 마리아 호에 접근한다면 무력 충돌도 감수할 수 있다는 비교적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3. 1. 난파선 수색과 발견

프라우 마리아의 난파선 위치를 찾기 위한 여러 차례의 시도가 있었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1970년대, 크리스티안 알스트룀이 핀란드 국립 문서 보관소에서 관련 문서를 발견하면서 이 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는 1979년 "침몰한 배"라는 책에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1999년, 프로 프라우 마리아 팀에 의해 난파선이 발견되었다.

3. 2. 소유권 분쟁

여러 사람들이 난파선의 위치를 찾으려 했지만, 1999년 프로 프라우 마리아가 발견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1970년대에 크리스티안 알스트룀이 핀란드 국립 문서 보관소에서 이 사건과 관련된 문서를 발견하면서 이 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는 1979년 "침몰한 배"라는 책에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네덜란드의 주장네덜란드는 애초에 프라우 마리아 호는 네덜란드 소유의 상선이었으며 그 안에 있는 예술품들 또한 네덜란드의 거장들이 그린 그림이므로 네덜란드에서 마땅히 프라우 마리아 호를 소유할 수 있으며 예술품 역시 네덜란드 측에서 보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의 주장러시아는 과거 러시아 제국의 여왕인 예카테리나 2세가 구입한 예술품이기 때문에 러시아 측에서 문화유산으로서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이 예술품들이 경매로 나왔을 때 러시아가 가장 많은 돈을 냈고 이 돈은 예카테리나 2세의 황실자금이었다. 그러므로 러시아는 그들이 그 명화를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핀란드의 주장핀란드는 수백 년간 본국의 영해에 있었던 프라우 마리아 호의 소유권은 당연히 핀란드 당국이 가지고 있으며 다른 잠수부들이 만일의 경우 영해에 침범하여 프라우 마리아 호에 접근한다면 무력 충돌도 감수할 수 있다는 비교적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3. 2. 1. 네덜란드의 주장

네덜란드는 애초에 프라우 마리아 호는 네덜란드 소유의 상선이었으며 그 안에 있는 예술품들 또한 네덜란드의 거장들이 그린 그림이므로 네덜란드에서 마땅히 프라우 마리아 호를 소유할 수 있으며 예술품 역시 네덜란드 측에서 보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3. 2. 2. 러시아의 주장

러시아는 과거 러시아 제국의 여왕인 예카테리나 2세가 구입한 예술품이기 때문에 러시아 측에서 문화유산으로서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이 예술품들이 경매로 나왔을 때 러시아가 가장 많은 돈을 냈고 이 돈은 예카테리나 2세의 황실자금이었다. 그러므로 러시아는 그들이 그 명화를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3. 2. 3. 핀란드의 주장

핀란드는 수백 년간 본국의 영해에 있었던 프라우 마리아 호의 소유권은 당연히 핀란드 당국이 가지고 있으며 다른 잠수부들이 만일의 경우 영해에 침범하여 프라우 마리아 호에 접근한다면 무력 충돌도 감수할 수 있다는 비교적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4. 화물 목록

프라우 마리아의 화물은 1771년 9월 23일 덴마크 헬싱외르에서 신고되었으며, 설탕, 섬유염료를 포함했다. 이 배는 또한 예카테리나 2세가 1771년 7월 31일 암스테르담에서 경매를 통해 구매한 예술 작품을 운송했는데, 이 작품들은 이전에는 네덜란드 미술 수집가인 게릿 브람캠프의 소유였다. 덴마크 국왕은 그들이 어떠한 신고도 없이 사운드 관세를 통과하도록 허락했다.

침몰 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재 스웨덴 대사 칼 리빙, 투르쿠와 포리 지역 영주인 크리스토퍼 라페 남작, 그리고 러시아 외무 장관인 니키타 파닌은 사라진 화물에 대해 논의했지만, 이를 구하기 위한 추가적인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예카테리나 2세가 구매한 그림에는 파울루스 포터의 9050 플로린에 구매한 ''거대한 소떼''와 헤라르트 테르 보르흐의 1870 플로린에 구매한 ''화장하는 여인'', 그리고 코르넬리스 코에디크, 가브리엘 메추, 헤라르트 다우의 ''보육원''(14,100 플로린에 구매한 풍속화 삼면화), 필립스 아우에르만, 그리고 반 오스타데 형제 중 한 명(아드리안 판 오스타데 또는 이삭 판 오스타데)의 작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1. 일반 화물

프라우 마리아의 화물은 1771년 9월 23일 덴마크 헬싱외르에서 신고되었으며, 설탕, 섬유염료를 포함한 일반적인 상품들이었다. 이 배는 또한 예카테리나 2세가 1771년 7월 31일 암스테르담에서 경매를 통해 구매한 예술 작품을 운송했는데, 이 작품들은 이전에는 네덜란드 미술 수집가인 게릿 브람캠프의 소유였다. 덴마크 국왕은 어떠한 신고도 없이 사운드 관세를 통과하도록 허락했다.

침몰 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재 스웨덴 대사 칼 리빙, 투르쿠와 포리 지역 영주인 크리스토퍼 라페 남작, 그리고 러시아 외무 장관인 니키타 파닌은 사라진 화물에 대해 논의했지만, 이를 구하기 위한 추가적인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예카테리나 2세가 구매한 그림에는 파울루스 포터의 9050 플로린에 구매한 ''거대한 소떼''와 헤라르트 테르 보르흐의 1870 플로린에 구매한 ''화장하는 여인'', 그리고 코르넬리스 코에디크, 가브리엘 메추, 헤라르트 다우의 ''보육원''(14,100 플로린에 구매한 풍속화 삼면화), 필립스 아우에르만, 그리고 반 오스타데 형제 중 한 명의 작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2. 예술품

프라우 마리아 호에는 1771년 7월 암스테르담 경매에서 예카테리나 2세가 구매한 예술품들이 실려 있었다. 이 작품들은 네덜란드 미술 수집가 게릿 브람캠프의 소장품이었다. 덴마크 국왕은 이 작품들이 사운드 관세를 내지 않고 통과하도록 특별 허가를 내렸다.

예카테리나 2세가 구매한 그림에는 파울루스 포터의 ''거대한 소떼'', 헤라르트 테르 보르흐의 ''화장하는 여인'', 헤라르트 다우의 ''보육원'' 등이 포함되었다. 이 외에도 코르넬리스 코에디크, 가브리엘 메추, 필립스 아우에르만, 반 오스타데 형제(이삭 판 오스타데) 등의 작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5. 국제법과 문화유산 보호

5. 1. 유네스코 수중문화유산보호협약

5. 2. 문화재 반환 문제

5. 3. 핀란드, 네덜란드, 러시아의 입장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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