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쿠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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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라쿠와정은 태평양으로 돌출된 암석 반도에 위치했던 일본 미야기현의 옛 정이다. 지진과 쓰나미의 위험이 있는 지역으로, 산리쿠 해안의 일부를 차지하며, 화강암과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해안선을 따라 16개의 어항이 있었다. 주요 산업은 원양 어업과 관광업이며, 오가마-한조, 오사키 신사, 이사리비 공원 등 관광 명소가 있다. 2006년 게센누마시와 합병되어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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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쿠와정 - [옛 지명]에 관한 문서 | |
---|---|
일반 정보 | |
![]() | |
공식 명칭 | 唐桑町 (가라쿠와초) |
유형 | 폐지된 자치체 |
폐지일 | 2006년 3월 31일 (게센누마시에 합병) |
위치 | 일본 미야기현 |
상징 | |
나무 | 소나무 |
꽃 | 동백나무 |
지리 | |
면적 | 42.29km² |
인구 | |
인구 (2005년) | 8,463명 |
인구 밀도 | 200명/km² |
행정 | |
폐지 당시 시장 | 알 수 없음 |
시청 주소 | 본길군 가라쿠와초 아자 바바 181-1 |
웹사이트 | 게센누마시청 (구 가라쿠와초) 웹사이트 |
기타 정보 | |
우편 번호 | 988-0535 |
지역 번호 | 알 수 없음 |
추가 정보 (일본어) | |
폐지 이유 | 신설 합병 |
폐지 상세 | 게센누마시, 가라쿠와정 → 게센누마시 |
현재 자치체 | 게센누마시 |
군 | 모토요시군 |
코드 | 04604-3 |
이웃 자치체 | 게센누마시,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시 |
강의 새 | 갈매기 |
강의 물고기 | 쏨뱅이 |
2. 지리
가라쿠와정은 산리쿠 해안에 위치하며, 가라쿠와 반도가 마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북쪽으로는 리쿠젠타카타시와 접하고 히로타 만의 서쪽에 위치한다. 남쪽은 가라쿠와 반도의 끝부분으로 게센누마 만으로 이어진다. 서쪽은 게센누마시에 속하는 오시마와 마주보고 있으며, 마을의 서쪽 경계는 오시마와 혼슈 사이의 오시마 해협으로 끝난다.
2. 1. 지형
가라쿠와정의 중심부는 태평양으로 돌출된 바위 반도의 기슭에 위치해 있으며, 이 지역은 남북으로 뻗어 있는 산맥의 작은 연장선이다. 기반암의 대부분은 화강암이지만 대리석도 있다. 이 단단한 바위산들은 이 지역에 날카로운 언덕과 계곡을 풍부하게 만들고, 많은 작은 만을 형성한다. 일부 농경지가 있지만, 언덕 때문에 넓은 들판은 불가능하다.[1]일본의 많은 지역처럼 가라쿠와도 지진이 일어나기 쉽다. 홋카이도 서부 앞바다에서 남쪽 오시카 반도 앞바다까지 바다 중심을 중심으로 한 대형 지진이 이 지역에서 감지되었다. 쓰나미 또한 위험할 수 있다. 최근에는 1896년 지역 지진과 1960년 칠레 지진 후에 큰 파도가 이 지역을 강타했다.[1]
구시가지에서 남동쪽까지의 반도 지역은 길이가 약 3km이고, 너비가 약 1km이다. 정은 해안선을 따라 4km 더 뻗어 고하라기 지역을 포함했고, 오시마 섬과 마주보는 해안을 따라 1km 더 뻗어 있었다. 반도를 따라 작은 물줄기가 몇 개 있는데, 가장 큰 물줄기는 내륙으로 2km 뻗어 사사나가네야마 쪽으로 뻗어 있다.[1]
산리쿠 해안의 가라쿠와 반도가 마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마을 북부는 리쿠젠타카타시에 접해 있으며, 히로타 만의 서쪽에 위치한다. 남부는 가라쿠와 반도의 선단부이며, 게센누마 만으로 이어진다. 서부는 게센누마시에 속하는 오시마의 맞은편이며, 마을의 서쪽 경계는 오시마와 혼슈 사이에 오시마 해협이라고 불리는 해협부로 끝난다.
가라쿠와 반도는 기타카미 산계의 연장선에 있으며,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가늘고 길게 바다로 뻗어 있다. 화강암질이며, 해안부에는 대리석 해변이라고 불리는 부분도 있다. 해안부에서는 산이 바다에 닿아 좁고, 암초와 작은 섬, 곶이 풍부하다. 능선부는 북부에서 점점 해발고도를 낮춰 태평양으로 가라앉아 끝난다. 1964년 6월 1일, 리쿠추 해안 국립공원(현 산리쿠 부흥 국립공원)에 편입되었고, 1971년 1월에는 해중 공원으로도 지정되었다. 마을 내에는 어항 16개가 있다.
오시마를 마주보는 해안부를 구구나키하마(九九鳴浜)라고 칭하며, 230미터에 걸쳐 우는 모래 사장이 펼쳐져 있다. 이것은 화강암질 사암으로 된 석영이 많은 모래가 소리를 내는 것이다.
리아스식 해안이기 때문에 쓰나미의 파고가 높아지기 쉽고, 유래 이래 여러 차례 쓰나미 기록이 있다. 근대의 가라쿠와 촌·가라쿠와 정은, 1896년의 메이지 산리쿠 쓰나미, 1960년의 칠레 지진 쓰나미로 각각 큰 피해를 입었다.
가라쿠와 반도의 중앙에 위치한 곳은 하야마산이다. 마을 내 최고점은 리쿠젠타카타시와의 경계, 해발 520미터의 사사나가네산이다.
2. 2. 자연재해
일본의 많은 지역과 마찬가지로, 가라쿠와정은 지진이 자주 발생한다. 홋카이도 서쪽 해역에서 오시카 반도 남쪽 해역까지의 해상 진원지에서 발생하는 큰 지진이 이 지역에서 감지되었다. 쓰나미 또한 위험할 수 있다. 리아스식 해안이기 때문에 쓰나미의 파고가 높아지기 쉽고, 유래 이래 여러 차례 쓰나미 기록이 있다. 근대 가라쿠와정은 1896년 지역 지진과 1960년 칠레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1]2. 3. 인접 지역
3. 역사
메이지 유신으로 다테 씨에게서 몰수된 이 지역은 다카사키 씨에게 행정권이 이양되었고, 1868년 미야기현 모토요시군에 편입되었다. 이후 여러 현을 거쳐 1876년 4월 18일 최종적으로 미야기현의 일부가 되었다.
1889년, 가라쿠와와 고하라기(小原木) 두 마을이 합병하여 가라쿠와라는 큰 마을이 되었고, 1955년에 정으로 승격되었다.
2004년과 2005년에는 모토요시 및 게센누마시와의 합병 논의가 있었으나, 모토요시는 회담에서 철수하였다. 이후 게센누마시와의 합병이 합의되어 2006년 3월 31일 가라쿠와는 정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였다.
가라쿠와정의 변천 과정은 아래 표와 같다.
날짜 | 사건 |
---|---|
1889년 4월 1일 | 모토요시군 가라쿠와촌 성립 (가라쿠와촌, 오바라기촌 합병) |
1955년 2월 11일 | 가라쿠와촌이 정제 시행으로 가라쿠와정으로 승격 |
2006년 3월 31일 | 게센누마시와 합병하여 게센누마시의 일부가 됨 |
3. 1. 고대-중세
서기 700년경, 에미시가 지역 해산물을 황실에 헌상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이 지역으로의 이주를 장려했을 수 있다. 이 지역은 미나모토 씨의 강력한 영향력으로 나라 시대 동안 평화를 유지했다. 그러나 헤이안 시대에 미나모토 씨는 헤이지의 난에서 다이라노 키요모리에게 패했다. 가사이 씨가 이 지역을 받았지만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말에 후계자가 없었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이 지역은 다테 마사무네의 영토가 되었다.가라쿠와(唐桑)라는 이름은 무쓰국 게센군 가라쿠와(唐桑)로서 고대부터 사용되었다. 전승에 따르면, 이 이름은 당나라에서 온 배가 난파하여 그 짐이었던 상(桑)에 유래한다. 뽕나무가 심어져 널리 퍼졌기 때문이거나, 배가 침몰하여 항해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며, 전승에 이견이 있다. 속일본기에 처음 등장하며, 700년에 에미시가 해산물을 조정에 헌상했다고 전해진다.[1] 나라 시대부터 점차 왜인의 이주가 이루어졌으며, 헤이안 시대에 들어서면서 토착한 스와 겐지(諏訪源氏)에 연유하여 "스와장(諏訪荘)"이라고도 불리게 되었다.[1] 12세기 초 이전, 모노군(桃生郡)의 북부 및 게센군(気仙郡)의 남부를 합쳐 모토요시장(本吉荘, 元良荘)이 성립되었다. 섭관정치 영지 장원으로, 이후 고인령(後院領, 천황 직할령) 장원이 되어 연공 운송을 담당한 오슈 후지와라 씨의 거점 중 하나가 되었고, 후지와라노 히데히라의 넷째 아들 모토요시 관자 타카히라(本吉冠者高衡)의 영지가 되었다.[1] 오슈 후지와라 씨 멸망 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오슈 봉행으로 카사이 사부로 키요시게(葛西三郎清重)를 임명하자, 가라쿠와(唐桑)는 카사이 씨의 낭당 아베 씨(阿部氏)의 영지가 되었고, 북관, 남관의 두 성이 설치되었다. 이후 400년간 아베 씨의 지배가 이어졌지만, 카사이 씨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멸망하면서 끝났다.[1]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다테 마사무네의 센다이 번의 일부가 되었고, 이후 다테 씨를 영주로 막말까지 이르렀다.[1]
3. 2. 근세-근대
700년경, 에미시가 지역 해산물을 황실에 헌상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이 지역으로의 이주를 장려했을 수 있다. 이 지역은 미나모토 씨의 강력한 영향력으로 나라 시대 동안 평화를 유지했다. 그러나 헤이안 시대에 미나모토 씨는 헤이지의 난에서 다이라노 키요모리에게 패했다. 가사이 씨가 이 지역을 받았지만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말에 후계자가 없었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이 지역은 다테 마사무네에게 그의 영토의 일부로 주어졌다.메이지 유신 동안, 이 지역은 다테 씨로부터 빼앗겨 다카사키 씨에게 주어졌으며, 1868년에 모토요시군의 일부가 되었다가, 1876년 4월 18일 미야기현의 일부가 되었다.
1889년, 가라쿠와와 코하라기(小原木, '작고, 원래의 나무'라는 뜻) 두 마을이 합쳐져 더 큰 마을인 가라쿠와를 형성했으며, 1955년에 정으로 승격되었다.
2004년과 2005년에는 더 큰 도시를 만들기 위해 모토요시 및 게센누마시와 합병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모토요시는 회담에서 철수했지만, 게센누마시와 합병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2006년 3월 31일, 가라쿠와는 별개의 정으로서 존재를 멈추었다.
가라쿠와(唐桑)의 이름은 무쓰국 게센군 가라쿠와(唐桑)로서 고대부터 사용되었다. 전승에 따르면, 이 이름은 당나라에서 온 배가 난파하여 그 짐이었던 상(桑)에 유래한다. 속일본기에 처음 등장하며, 700년에 에미시가 해산물을 조정에 헌상했다고 전해진다. 나라 시대부터 점차 왜인의 이주가 이루어졌으며, 헤이안 시대에 들어서면서 "스와장(諏訪荘)"이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12세기 초두 이전: 모노군(桃生郡)의 북부 및 게센군(気仙郡)의 남부를 합쳐 모토요시장(本吉荘, 元良荘)이 성립.오슈 후지와라 씨의 거점 중 하나가 되었고, 후지와라노 히데히라의 넷째 아들 모토요시 관자 타카히라(本吉冠者高衡)의 성(姓)의 땅이 되었다. 오슈 후지와라 씨 멸망 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오슈 봉행으로 카사이 사부로 키요시게(葛西三郎清重)를 임명하자, 가라쿠와(唐桑)는 카사이 씨의 영지가 되었고, 이후 400년간 지배가 이어졌지만, 카사이 씨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멸망하면서 끝났다.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다테 마사무네의 센다이 번의 일부가 되었고, 이후 다테 씨를 영주로 막말까지 이르렀다.
1868년 리쿠젠국 모토요시군(本吉郡)의 일부가 되었다. 센다이 다테 씨는 보신 전쟁의 처벌로 영지를 잃었지만, 가라쿠와(唐桑)는 이에 포함되어 타카사키 번의 통치지가 되었다.
1869년 폐번치현에 의해 모노현에 속했다. 이후 이시노마키현, 토메현, 이치노세키현으로 귀속이 변동되었고, 1871년 12월 13일 미즈사와현의 일부가 되었다. 1874년 11월 23일 이와이현에 속했고, 다음 해 1875년 미야기현이 성립되면서 그 일부가 된다. '''가라쿠와(唐桑)''', '''오바라키(小原木)'''의 두 촌이 있었지만, 1889년의 정촌제 시행에 즈음하여, 두 촌은 합병하여 '''가라쿠와 촌(唐桑村)'''이 되었다. 1955년 2월 11일, 정制가 시행되어 '''가라쿠와 정(唐桑町)'''이 되었다.
2003년 2월부터 게센누마시, 모토요시정(本吉町), 가라쿠와정(唐桑町)은 합병 협의회를 설치하여, 합병을 위한 협의를 계속했다. 2004년 11월까지 결정된 바에 따르면, 합병은 1시 2정을 폐지하고, 새롭게 1시를 설치하는 신설 합병이며, 합병 기일은 2005년 3월 31일이다. 합병 후의 명칭은 이미 공모되었으며, '''게센누마시'''로 내정되었다. 그러나, 그 후 모토요시정 의회에서 합병 관련 의안이 부결되어, 게센누마시와 가라쿠와정(唐桑町)의 1시 1정으로의 합병이 되었다. 합병 기일은 2006년 3월 31일로 결정했다.
- 1889년 4월 1일 - 정촌제 시행에 따라 모토요시군 '''가라쿠와촌'''이 가라쿠와촌, 오바라기촌을 합병하여 성립. 이후 117년 동안 한 번도 합병을 경험하지 않았다.
- 1955년 2월 11일 - 가라쿠와촌이 정제 시행으로 '''가라쿠와정'''이 됨.
- 2006년 3월 31일 - 게센누마시와 합병하여 '''게센누마시'''가 됨.
3. 3. 현대
메이지 유신 당시, 이 지역은 다테 씨로부터 몰수되어 다카사키 씨에게 행정을 위해 주어졌으며, 미야기현 모토요시군의 일부가 되었다. 여러 현을 거쳐, 1876년 4월 18일 미야기현의 일부가 되었다.1889년, 가라쿠와와 고하라기(小原木) 두 마을이 합쳐져 가라쿠와라는 큰 마을이 되었고, 1955년에 정으로 승격되었다.
2004년과 2005년에는 모토요시 및 게센누마시와 합병하여 더 큰 도시를 만드는 것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모토요시는 회담에서 철수했지만, 게센누마시와 합병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2006년 3월 31일, 가라쿠와는 정으로서의 지위를 잃었다.
다음은 가라쿠와정의 변화를 나타낸 표이다.
날짜 | 사건 |
---|---|
1889년 4월 1일 | 정촌제 시행에 따라 모토요시군 가라쿠와촌이 가라쿠와촌, 오바라기촌을 합병하여 성립 |
1955년 2월 11일 | 가라쿠와촌이 정제 시행으로 가라쿠와정이 됨 |
2006년 3월 31일 | 게센누마시와 합병해 게센누마시가 됨 |
4. 경제
가라쿠와정은 농업, 원양 어업, 관광업이 혼합된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원양 어업은 과거부터 중요한 산업이었으며, 어획물을 처리하는 수산 가공업도 발달했다. 해안선의 아름다움은 관광 산업을 촉진하는 요인이다. 과거 원양 참치 어업이 활발했을 때는 "가라쿠와 어전"이라 불리는 웅장한 가옥들이 많이 지어졌다.[1]
마을에는 1984년 미야기현에서 정비하고 2021년에 게센누마시로 이관된 가라쿠와 반도 방문객 센터가 있다.[1] 1896년의 메이지 산리쿠 지진, 1960년 칠레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 피해를 겪은 지역 특성을 살려 일본 유일의 쓰나미 가상 체험관이 있었으나, 노후화로 인해 2022년 6월 26일 폐관되었다.[1]
4. 1. 주요 산업
가라쿠와정의 지역 경제는 일부 사과 과수원을 포함한 혼합 농업을 하고 있지만, 농지보다 소규모 항구를 선호하는 바위가 많은 화강암과 대리석 해안선 때문에 원양 어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어획물을 처리하는 수산 가공업 활동도 있으며, 험준한 해안선의 아름다움은 상당한 관광을 장려한다.가라쿠와정은 원양 어업에 힘을 쏟은 선구자적인 존재이며, 현재도 어업을 산업의 중심으로 삼고 있다. 또한 자연을 활용한 관광업도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 원양 참치 어업이 성황을 이루던 시기에는 "가라쿠와 어전(唐桑御殿)"이라고 불리는 웅장한 입모야 양식의 가옥이 경쟁적으로 건축되었다.
5. 교통
가라쿠와정의 주요 교통 수단은 자동차이며, 인접한 게센누마시와 센다이시로 연결되는 국도 제45호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거에는 게센누마로 가는 길이 험난했지만, 현재는 가라쿠와 터널 개통으로 이동이 편리해졌다.
대중교통은 게센누마역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이용할 수 있으며, 마을 남쪽까지 약 45분이 소요된다.
5. 1. 철도
가라쿠와정에는 철도가 없다. 오후나토선이 가라쿠와 반도의 서쪽을 지나며, 게센누마시에 위치한 시오리토가라쿠와역과 리쿠젠타카타시의 리쿠젠타카타역이 가장 가까운 역이었다.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오후나토선이 운행 중단되었다. 그 후 BRT에 의한 복구 시, 게센누마역 - 사카리역 간의 주요 경로는 경로 변경으로 인해 당정역을 포함한 해안 쪽을 지나게 되었다. 실질적으로는 버스 정류장이지만, 당정 내 최초의 "역"으로서 가라쿠와오사와역이 개업했다.
5. 2. 도로
- 국도 45호선
- * 국도 제45호선은 게센누마시를 경유하여 센다이시로 가는 주요 고속도로이다. 과거에는 게센누마로 가는 길이 고갯길이나 해안을 따라 굽이진 길이었지만, 현재는 국도 45호선의 다다코시 고개 아래에 가라쿠와 터널이 개통되었다.
- 국도 제26호선은 게센누마로 가는 구불구불한 옛 고속도로이다.
- 국도 제239호선은 가라쿠와 반도의 동해안을 따라 국도 제45호선과 국도 제26호선을 연결한다.
- 미야기현도 제26호 게센누마카라쿠와 선
- 미야기현도 제239호 바바타다코시 선
- 자동차는 주요 광역 이동 수단이며, 인접한 두 시로 국도 45호선이 통하고 있다.
- 대중교통으로는 게센누마역에서 버스가 운행하며, 45분 정도 소요되어 마을 남단부로 연결된다.
5. 3. 항만
- 미사키항
6. 지역 문화 및 관광 명소
가라쿠와는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다양한 문화시설을 갖춘 지역이다. 특히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절경과 역사 유적은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끈다.
- 오가마-한조(巨釜ー半造): 가라쿠와 반도 동해안에 있는 공원 지역으로, 검은 대리석 해안선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주요 명소는 바다에서 솟아오른 높이 16m의 대리석 기둥인 오레이시(折石)이다. 오레이시는 1896년 산리쿠 쓰나미로 꼭대기가 부서지기 전에는 2m 더 높았다.[1]
- 오사키 신사(御崎神社): 가라쿠와 반도 최남단에 있는 큰 신사이다. 얽힌 나뭇가지가 있는 길과 바위 해안선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연결된 길을 따라 해안을 올라가면 오가마-한조와 합류한다. 인근에는 가라쿠와 쓰나미 박물관이 있어 쓰나미를 가상으로 체험할 수 있다.
- 이사리비 공원(漁火パーク): 가라쿠와 반도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있는 공원이다. 레스토랑, 기념품점, 놀이터, 고카트 트랙 등이 있으며, 전망대에서는 이와테현까지 조망할 수 있다.
- 9-9 사운드 비치(九九鳴き浜): 해변의 모래가 걸을 때 '큐-큐' 또는 '쿠-쿠' 소리를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구 시가지와 게센누마 사이에 있으며, 해변까지는 약 3km를 걸어야 한다.
가라쿠와의 해안선은 산리쿠 부흥 국립공원(구 리쿠추 해안 국립공원)의 일부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6. 1. 자연
가라쿠와정 중심부는 태평양으로 돌출된 암석 반도의 기슭에 위치하며, 남북으로 뻗은 산맥의 작은 연장선에 자리 잡고 있다. 암석의 대부분은 화강암이지만 대리석도 분포한다. 단단한 바위산들로 인해 날카로운 언덕과 계곡, 작은 만이 발달했다. 일부 농경지가 있으나, 언덕 때문에 넓은 들판은 조성되기 어렵다.일본의 많은 지역과 마찬가지로 가라쿠와는 지진이 자주 발생한다. 홋카이도 서쪽 해역에서 오시카 반도 남쪽 해역까지, 바다를 중심으로 한 대형 지진이 이 지역에서 감지되었다. 쓰나미 또한 위험 요소이다. 최근에는 1896년 지역 지진과 1960년 칠레 지진으로 큰 파도가 이 지역을 덮쳤다.
구시가지에서 남동쪽으로 뻗은 반도 지역은 길이 약 3km, 너비 약 1km이다. 가라쿠와정은 해안선을 따라 4km 더 뻗어 고하라기 지역을 포함하고, 오시마섬을 마주보며 1km 더 뻗어 있다. 반도를 따라 여러 개의 작은 하천이 흐르는데, 가장 큰 하천은 내륙으로 2km 뻗어 사사나가네야마 방향으로 이어진다.
가라쿠와 반도는 기타카미 산맥의 연장선으로,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가늘고 길게 바다로 뻗어 있다. 화강암이 주를 이루며, 해안에는 대리석 해변이라 불리는 곳도 있다. 해안에서는 산과 바다가 맞닿아 좁은 지형을 이루고, 암초, 작은 섬, 곶이 발달했다. 능선은 북쪽에서 점차 낮아져 태평양으로 이어진다. 1964년 6월 1일, 리쿠추 해안 국립공원(현 산리쿠 부흥 국립공원)에 편입되었고, 1971년 1월에는 해중 공원으로도 지정되었다. 마을 내에는 16개의 어항이 있다.[1]
오시마 맞은편 해안은 구구나키하마(九九鳴浜)라 불리며, 230미터에 걸쳐 우는 모래 사장이 펼쳐져 있다. 이는 화강암질 사암에서 유래한 석영 성분이 많은 모래가 소리를 내는 현상이다.[1]
리아스식 해안의 특성상 쓰나미의 파고가 높아지기 쉬워, 예로부터 여러 차례 쓰나미 피해를 입었다. 근대 가라쿠와 촌·가라쿠와 정은 1896년 메이지 산리쿠 쓰나미와 1960년 칠레 지진 쓰나미로 큰 피해를 보았다.[1]
가라쿠와 반도 중앙에는 하야마산이 있다. 마을 최고점은 리쿠젠타카타시와의 경계에 있는 해발 520미터의 사사나가네산이다.[1]
6. 2. 문화/시설
오가마-한조(巨釜ー半造)는 국도 26호선에서 가라쿠와 반도의 동해안에 있는 공원 지역이다. 거친 검은 대리석 해안선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이곳의 주요 명소이자 구 시의 상징인 오레이시(折石)는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대리석 기둥으로 높이 16m, 너비 3m이다. 1896년 산리쿠 쓰나미로 꼭대기가 부서지기 전에는 2m 더 높았다.[1]오사키 신사(御崎神社)는 가라쿠와 반도의 최남단인 국도 26호선 끝에 있다. 큰 신사가 있으며, 위로 얽힌 나뭇가지가 있는 길과 바위 해안선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연결된 길을 따라 해안을 올라가면 오가마-한조와 합류한다. 가라쿠와 쓰나미 박물관도 같은 지역에 있는데, 1984년에 건설된 이곳은 쓰나미를 가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일본 유일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이사리비 공원(漁火パーク)은 국도 26호선에서 떨어져 있다. 가라쿠와 반도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있으며, 레스토랑, 기념품점, 작은 놀이터 및 고카트 트랙이 있다. 짧은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작은 신사와 남쪽의 가라쿠와 반도, 서쪽의 오시마 섬과 게센누마, 북동쪽의 이와테현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9-9 사운드 비치(九九鳴き浜)는 구 시가지와 게센누마 사이의 국도 26호선에서 떨어져 있으며, 접근 지점에서 해변까지 약 3km를 걸어갈 수 있다. 해변은 자기, 화강암, 사암 혼합물이 걸을 때 '큐-큐' 또는 '쿠-쿠' 소리를 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큐(きゅう)와 쿠(く)는 일본어에서 숫자 9(九)의 두 가지 발음이다.)
다이리세키 해안(大理石海岸)은 미야기현-이와테현 경계 근처의 국도 45호선에서 떨어져 있다. 이 지역의 해안선은 어두운 색상과 대조되는 흰색 대리석을 특징으로 한다.
가라쿠와의 전체 해안선은 리쿠추 해안 국립공원의 일부이다.(陸中海岸国立公園)
- 대리석 해안 - 게센누마시 가라쿠와정
- 어화 공원 - 게센누마시 가라쿠와정, 하야마산 중턱
- 거부 반조 (리쿠추 해안 국립공원)
- 오사키 (리쿠추 해안 국립공원)
- 하야마 신사 - 게센누마시 가라쿠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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