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와자키촌 (오카야마현)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가시와자키 촌은 과거 오카야마현에 존재했던 촌으로, 현재는 구라시키시에 속해 있다. 고대에는 섬이었으며, 에도 시대에는 간척 사업을 통해 육지와 연결되었다. 메이지 시대에 가시와지마 촌과 유자키 촌이 합병과 분리를 반복하다가, 1889년에 재합병하여 가시와자키 촌이 되었다. 1902년 다마시마 정에 편입되었고, 이후 다마시마 시를 거쳐 구라시키 시에 편입되었다. 현재는 구라시키 시의 다마시마 가시와지마와 다마시마 유자키 지역으로 남아 있으며, 일부 지역은 다마시마 가시와다이로 불린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아사쿠치군 - 사토쇼정
오카야마현 남서부에 위치한 사토쇼정은 1905년 두 마을의 합병으로 탄생한 곳으로, 농업과 식품 가공업이 발달했으며 물리학자와 싱어송라이터를 배출한 지역이다. - 아사쿠치군 - 곤코정
곤코정은 오카야마현 아사쿠치군에 위치했던 정으로, 농업과 임업이 활발했으며 쇼와 천황이 방문하기도 했으나, 2006년 합병으로 아사쿠치시가 되면서 폐지되었고, 현재는 아사쿠치시에 속해 금광교 본부 등의 관광 명소가 남아 있다. - 구라시키시의 역사 - 구라시키 티볼리 공원
1997년 개장하여 2008년 폐원한 구라시키 티볼리 공원은 오카야마현 구라시키시에 위치한 테마파크로, 덴마크의 티볼리 공원을 모델로 조성되었으나 경영난으로 폐원 후 재개발되었다. - 구라시키시의 역사 - 오카다번
오카다 번은 1615년 이토 나가자네가 빗추국을 중심으로 세운 도자마 다이묘 번으로, 이토 가문이 폐번치현 때까지 다스리며 신폰 의민 소동, 간세이 개혁, 보신 전쟁 등의 역사를 거쳐 폐번치현 후 오카다현이 되었고 이토 가문은 자작의 작위를 받았다. - 오카야마현의 폐지된 시정촌 - 다케베정
다케베정은 오카야마현에 있던 정으로, 여러 촌의 합병과 추가 합병을 거쳐 2007년 오카야마시에 편입되었으며, 아사히 강 주변의 평야와 다양한 관광 자원을 가진 오카야마시 기타구의 지역이다. - 오카야마현의 폐지된 시정촌 - 아카사카정 (오카야마현)
아카사카정은 오카야마현에 위치했던 정으로, 1953년에 3개의 촌이 합병되어 성립되었고, 복숭아와 포도 재배가 활발했으며, 2005년 주변 정과 합병하여 소멸되었다.
가시와자키촌 (오카야마현) - [옛 지명]에 관한 문서 | |
---|---|
개요 | |
폐지일 | 1902년 9월 30일 |
폐지 이유 | 신설 합병 |
폐지 상세 | 다마시마정, 가시와자키촌, 오토시마촌 → 다마시마정 |
현재의 자치체 | 구라시키시 |
요미가나 | 가시와자키손 |
자치체 종류 | 촌 |
도도부현 | 오카야마현 |
군 | 아사쿠치군 |
인접 자치체 | 아사쿠치군 구로사키촌, 다마시마정, 오토시마촌 |
2. 역사
고대에는 『와묘초』에 기록된 아사쿠치군 '''하시히토고'''(또는 마무도고)의 일부로 여겨진다.[1] 에도 시대까지 이 지역은 섬이었으나, 간척 사업을 통해 육지와 연결되었다. 이 시기에는 빗추국 마쓰야마번 영지였다가 막부 직할령이 되는 등 행정적 변화를 겪었다.[1]
근대에 들어 메이지 시대에는 가시와지마 촌과 유자키 촌이 합병과 분리를 반복하다가, 1889년 정촌제 시행으로 '''가시와자키 촌'''이 되었다.[1] 1902년에는 다마시마 촌에 편입되어 다마시마 정이 되었고, 이후 다마시마시를 거쳐 현재의 구라시키시에 속하게 되었다.[1] 1980년에는 일부 지역에 주거 표시가 실시되어 새로운 행정 구역(다마시마카시와다이)이 설정되었다.[1]
2. 1. 고대
고대에는 『와묘초』에 실린 아사쿠치군 '''하시히토고'''(또는 마무도고)의 일부로 여겨진다.[1]에도 시대 전반까지 이 지역은 섬이었으며, 주변은 '''메노우미'''(또는 모타이노우미) 또는 '''타마노우라'''라고 불리는 해역이었다. 당시에는 동쪽과 서쪽 양면까지 바다가 들어왔고, 북쪽에는 간조 시에 갯벌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1]
2. 2. 에도 시대
에도 시대 전반까지 이 지역은 섬이었으며, 주변은 메노우미(모타이노우미) 또는 타마노우라라고 불리는 해역이었다. 동쪽과 서쪽까지 바다가 들어왔고 북쪽에는 간조 시 갯벌이 펼쳐져 있었다.[1]에도 시대에 가시와지마는 가시와지마 촌으로 불렸으며, 빗추국 마쓰야마번주 미즈타니 씨의 영지였다. 그러나 겐로쿠 6년(1693년)에 영지가 막부 직할령(구라시키 대관소)으로 편입되었다. 그 후, 일부 지역은 다시 마쓰야마번(이타쿠라 씨)의 영지가 되었다.[1]
칸분 시대(1661년~1673년)에는 당시 빗추국 마쓰야마번주에 의해 가시와지마 북부에서 대규모 간척 사업이 이루어져 아가사키 신덴이 개발되었다. 이 간척 사업으로 가시와지마는 본토와 육지로 이어지게 되었다.[1]
간에이 시대(1624년~1644년)부터 칸분 시대에 걸쳐, 가시와지마 서쪽에 있던 남북으로 긴 만입 해역도 간척되어 유자키 신덴이 조성되었다. 이로 인해 맞은편의 구로사키 촌과 육지로 연결되었다. 이후 유자키 신덴은 가시와지마에서 독립하여 유자키 촌이 되었다. 현재의 유자키 지역에는 소토하마(아다하마), 니시우라, 히가시모토하마, 니시모토하마, 토센 등의 소자(小字)가 남아 당시 간척의 흔적을 보여준다. 이 중 모토하마는 처음에는 염전으로 개발되었는데, 겐로쿠 시대(1688년~1704년)의 검지 지도에는 가시와지마 촌의 지촌(枝村)인 오시야마 염전으로 기록되어 있다.[1]
2. 3. 근대
메이지 시대에 들어서, 1877년(메이지 10년)에 가시와지마 촌과 유자키 촌이 합병하여 가시와지마 촌을 새로 만들었으나, 불과 2년 뒤인 1879년(메이지 12년)에 다시 원래의 두 촌으로 분리되었다.[1] 1889년(메이지 22년) 6월 1일에 정촌제가 시행되면서 두 촌은 다시 합병하여 가시와자키 촌(柏崎村)을 신설하였다. 이때 기존의 가시와지마와 유자키는 각각 가시와자키 촌의 오아자(大字, 큰 마을 단위)가 되었다.[1]이후 1902년(메이지 35년) 9월 30일, 가시와자키 촌은 다마시마 촌에 편입되었고, 다마시마 촌은 정(町)으로 승격하여 다마시마 정이 되었다. 다마시마 정은 이후 다마시마시로 승격되었으며, 최종적으로 새로운 구라시키시의 일부로 통합되었다. 이에 따라 옛 가시와자키 촌의 오아자였던 가시와지마와 유자키는 현재 구라시키시 다마시마카시와지마(玉島柏島)와 다마시마유자키(玉島勇崎)라는 행정 구역으로 이어지고 있다.[1]
쇼와 시대인 1980년(쇼와 55년) 4월 1일에는 다마시마카시와지마와 다마시마유자키의 일부 지역에 주거 표시가 실시되어 다마시마카시와다이(玉島柏台) 1초메부터 5초메까지의 새로운 주소가 설정되었다.[1]
2. 4. 현대
1980년 (쇼와 55년) 4월 1일, 타마시마 카시와지마와 타마시마 유자키 지역 일부에 주거 표시 제도가 시행되었다. 이 조치로 인해 해당 지역은 새롭게 '''타마시마 카시와다이''' 1초메부터 5초메까지의 행정 구역으로 성립되었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