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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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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강호순은 1969년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태어나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여성 8명을 납치해 살해한 연쇄 살인범이다. 그는 1992년부터 2005년까지 네 번 결혼하여 세 아들을 두었으며, 2005년에는 네 번째 부인과 장모가 방화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후 연쇄 살인 혐의로 체포되어 10건의 살인을 자백했으며, 2009년 사형이 확정되었다. 그의 범행은 2009년 언론의 얼굴 공개 논란을 일으켰고, 대한민국 사회에 흉악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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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순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강호순
원어 이름강호순 (姜浩順)
국적대한민국
출생일1969년 10월 10일
출생지충청남도 서천군
혈액형AB형
신장172 cm
체중72 kg
범죄 정보
죄명살인·현주건조물방화치사, 사체손괴
형량서울고법에서 사형 확정 (집행되지 않음)
범행 동기쾌락살인
현황교도소
피해자 수10 (방화로 사망한 본처, 장모 2명 포함)
사망자 수10
범행 시작2004년 5월 2일
범행 종료2008년 12월 19일
체포 일자2009년 1월 27일
개인 정보
직업불명
171 cm
국적불명
배우자불명
범죄 행위
범행 기간2005년 - 2008년
표적불명
체포 일자2009년 1월 27일
형벌사형
수감 장소서울구치소
범행 장소경기도
피해자 수10
흉기불명
범행 동기lust murder (성욕 살인)
유죄 판결살인 (10건)
강간
방화

2. 생애

강호순은 1969년 10월 10일 충청남도 서천군 시초면 시골마을에서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9] 당시엔 출생신고를 늦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고, 강호순 역시 출생신고가 늦어져 주민등록 상으론 1970년 3월 1일생이다.[9] 서천에서 초·중등학교를 다닌 뒤, 1989년 충청남도 부여군의 모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강의 고교 생활기록부에는 "용모가 단정하고 성실하다"고 적혀 있었다. 학업 성적은 중상위권이었다. 부사관으로 군에 입대했던 그는 휴가 기간에 소를 훔치다 붙잡혀 불명예 제대했다.[9]

강호순은 1992년부터 2005년까지 결혼 네 번을 해서 아들 셋이 있다. 22살 때 결혼한 첫째 부인과의 사이에 16살과 14살 난 두 아들을 얻었고, 두 번째 부인이 낳은 막내(8살)가 있다.[9]

1998년경 첫째 부인과 헤어진 강호순은 두 아들을 데리고 화성시 비봉면 양노2리로 이사왔다. 1년 뒤에는 둘째 부인과 재혼하였으며, 2년여를 더 살다가 둘째 부인이 임신할 무렵 다른 곳으로 이사를 떠났다. 그가 살던 곳은 첫번째 살해 피해자가 암매장된 곳에서 2km가량 떨어진 곳이다.[10]

2005년 10월 30일에는 자신의 집에 화재가 나 네 번째 부인과 장모가 숨졌다. 당시 경찰은 3일간의 수사 끝에 단순화재로 결론냈다. 그러나 유가족의 재수사 의뢰로 6개월간 재수사를 하였지만, 특별히 새로운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수사를 종결하였다. 2009년의 수사본부는 이 사건 역시 강호순의 방화사건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원점에서 재수사하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일부 언론들도 사건 당시 강호순의 행동에 의심점이 많음을 지적하고 있다.[11]

2. 1. 초기 생애

강호순은 1969년 10월 10일 충청남도 서천군 시골마을에서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9] 출생신고가 늦어져 주민등록 상으로는 1970년 3월 1일생이다.[9] 서천에서 초·중등학교를 다닌 뒤, 1989년 충청남도 부여군의 모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9] 고교 생활기록부에는 "용모가 단정하고 성실하다"고 적혀 있었고, 학업 성적은 중상위권이었다.[9] 부사관으로 군에 입대했으나, 휴가 기간에 소를 훔치다 붙잡혀 불명예 제대했다.[9]

강호순은 1992년부터 2005년까지 네 번 결혼하여 아들 셋을 두었다.[9] 22살 때 결혼한 첫째 부인과의 사이에 두 아들을 얻었고, 두 번째 부인이 낳은 막내아들이 있었다.[9] 1998년경 첫째 부인과 헤어진 후 두 아들을 데리고 화성시 비봉면 양노2리로 이사왔다.[10] 1년 뒤 둘째 부인과 재혼하였으며, 2년여를 더 살다가 둘째 부인이 임신할 무렵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10]

2005년 10월 30일에는 자신의 집에 화재가 나 네 번째 부인과 장모가 숨졌다.[11] 당시 경찰은 단순화재로 결론냈으나, 유가족의 재수사 의뢰로 6개월간 재수사를 하였지만, 새로운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수사를 종결하였다.[11] 2009년의 수사본부는 이 사건 역시 강호순의 방화사건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재수사를 결정하였다.[11]

2. 2. 방화 사건

2005년 10월 30일 강호순의 집에 화재가 발생하여 네 번째 부인과 장모가 사망했다.[11] 당시 경찰은 3일간의 수사 끝에 단순 화재로 결론 내렸으나, 유가족의 재수사 의뢰로 6개월간 재수사를 진행했지만 새로운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수사를 종결하였다.[11] 2009년의 수사본부는 이 사건이 강호순의 방화 사건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재수사를 결정했으며, 일부 언론들도 사건 당시 강호순의 행동에 의심점이 많음을 지적했다.[11]

3. 범행 및 수사

강호순은 초기에는 범행을 부인했으나, DNA 증거 등 명확한 증거들이 제시되자 범행을 자백했다. 강호순 본인은 이 사건이 자신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한편, 네 번째 부인과 장모의 사망으로 연쇄 살인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검찰은 2009년 2월 22일 강호순이 보험금을 노리고 장모 집에 불을 질러 장모와 부인을 살해한 혐의(=방화 살인 혐의)를 추가로 확인했다고 밝혔지만 강호순은 계속 혐의를 부인했다.[12]

한편, 2008년 11월 충청북도 옥천군에서도 이와 비슷한 범죄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연쇄 살인범 '''김종무'''(당시 43세)는 2006년 6월 10일 새벽 1시에 재산을 빼앗을 목적으로 옥천군 옥천읍 자신의 집에 불을 질러 아버지(당시 85세)와 어머니(당시 75세)를 불태워 살해하고, 2년 뒤인 2008년 11월 27일 낭비벽이 심하다는 이유로 아내(당시 35세)를 흉기로 무참히 찔러 살해한 뒤 이를 목격한 두살배기 딸의 목을 꺾어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2009년 4월 8일 청주지법 영동지원으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9월 17일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3. 1. 연쇄 살인

강호순은 2006년 9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경기도 서남부 지역에서 여성 8명을 납치하여 살해했다.[2] 피해자들은 주로 노래방 도우미나 회사원, 학생 등이었다. 강호순의 살인 사건은 수도권의 교외 지역인 안산시경기도에서 발생했다.[2]

2006년 9월 7일에는 윤정현(23세)이, 12월 14일에는 군포의 노래방 종업원 배경미(45세)가, 12월 24일에는 수원 노래방 종업원 박성아(37세)가 희생되었다.[2] 2007년 1월 3일에는 화성의 회사원 박정자(52세)가, 1월 6일에는 안양의 노래방 종업원 김해영(37세)이, 1월 7일에는 수원 대학교 학생 연미영(21세)이 희생되었다.[2]

2008년에는 11월 9일 수원 주부 김수희(48세)가, 12월 19일 안산 대학교 학생 안영옥(19세)이 희생되었다.[2] 희생자들의 시신은 숲에서 발견되었다.[2]

강호순은 2009년에 체포되었고, 이틀간의 심문 끝에 10건의 살인을 자백했다.[3] 희생자들의 유해가 더 발견되었고, DNA 증거를 사용하여 신원이 확인되었다. 희생자 가족들은 강호순을 상대로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4] 그의 범죄는 2022년 대한민국 TV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 묘사되었다.

3. 2. 수사 과정

경찰은 피해자들의 연관성을 파악하고 수사를 진행하던 중, 강호순을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하고 체포했다. 강호순은 초기에는 범행을 부인했으나, DNA 증거 등 명확한 증거들이 제시되자 범행을 자백했다. 강호순 본인은 이 사건이 자신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한편, 네 번째 부인과 장모의 사망으로 연쇄 살인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검찰은 2009년 2월 22일 강호순이 보험금을 노리고 장모 집에 불을 질러 장모와 부인을 살해한 혐의를 추가로 확인했다고 밝혔지만 강호순은 계속 혐의를 부인했다.[12]

한편, 2008년 11월 충청북도 옥천군에서도 이와 비슷한 범죄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연쇄 살인범 김종무(당시 43세)는 2006년 6월 10일 새벽 1시에 재산을 빼앗을 목적으로 옥천군 옥천읍 자신의 집에 불을 질러 아버지(당시 85세)와 어머니(당시 75세)를 불태워 살해하고, 2년 뒤인 2008년 11월 27일 낭비벽이 심하다는 이유로 아내(당시 35세)를 흉기로 무참히 찔러 살해한 뒤 이를 목격한 두살배기 딸의 목을 꺾어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2009년 4월 8일 청주지법 영동지원으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9월 17일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3. 3. 얼굴 공개 논란

조선일보[9]중앙일보[13]는 2009년 1월 31일 지면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강호순의 얼굴을 전격 공개하였다. 강호순은 취재 카메라 등에 직접 노출될 시 극도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행동을 취하였다.[14] 경찰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사항을 존중하여 기자들에게 공개될 때나 현장검증 당시 강호순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있었다.[15]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강호순의 얼굴 공개에 대해 공익을 위한 적절한 조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2월 2일 만평을 통해 인권위가 피의자의 인권침해를 우려하는 것을 비꼬는 만평을 실었다.[15] 이에 대해 인권위 관계자는 "일반적인 범죄 피의자의 인권이 보호돼야 한다는 취지의 결정은 여러 차례 했지만 이번처럼 흉악범의 경우 얼굴을 공개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결정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16] 이후 경찰은 법 개정을 통해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하는 법안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4. 재판

2009년 4월 8일 결심공판에서 수원지검 안산지청 검사 한승헌은 강호순에게 살인, 현주건조물 방화치사, 존속살해죄 등을 적용해 사형을 구형했다.[17] 2009년 4월 22일 수원지법 안산지원 재판부는 강호순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2005년 장모와 전처 존속살인 방화 사건과 2006년 강원도 정선군청 윤모양 살인 추가 자백을 포함한 범행 사실과 동기를 볼 때 강호순의 반사회성 범죄 성향과 재범 위험성을 고려하여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17] 강호순은 1심에 불복하여 항소장을 냈다. 강호순은 여성 10명을 살해했다고 자백한 후, 강간, 살인, 방화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5]

서울고등법원 형사3부(부장판사 이성호)는 2009년 7월 23일 강호순에 대해 살인·현주건조물 방화치사·존속살해·성폭력범죄처벌법 위반 및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등의 혐의를 적용해 항소를 기각하고 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강호순이 부인하고 있는 장모와 아내에 대한 방화살인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로 판단하였다. 재판부는 강호순이 자신의 생명만큼 다른 사람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10명의 생명을 빼앗았고, 자신이 검거된 이유에 대해 운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등 재범의 위험성이 큰 만큼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켜야 한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이 범행으로 대다수 국민이 큰 충격을 받았고 사회불안과 불신 풍조를 야기했다는 점, 그리고 사회적 해악이 큰 만큼 극형선고가 불가피하다는 점도 덧붙였다. 강호순은 상고 포기서를 제출하여 사형이 확정되었다. 강호순은 여성 10명을 살해했다고 자백한 후, 강간, 살인, 방화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2009년 4월 22일 안산 법원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5] 교수형을 통한 사형 집행이 여전히 대한민국의 법률에 남아 있지만, 1997년부터 사형에 대한 사실상의 유예가 시행되어 왔다.[5][6]

4. 1. 1심

2009년 4월 8일 결심공판에서 수원지검 안산지청 검사 한승헌은 강호순에게 살인, 현주건조물 방화치사, 존속살해죄 등을 적용해 사형을 구형했다.[17] 2009년 4월 22일 수원지법 안산지원 재판부는 강호순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2005년 장모와 전처 존속살인 방화 사건과 2006년 강원도 정선군청 윤모양 살인 추가 자백을 포함한 범행 사실과 동기를 볼 때 강호순의 반사회성 범죄 성향과 재범 위험성을 고려하여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17] 강호순은 1심에 불복하여 항소장을 냈다. 강호순은 여성 10명을 살해했다고 자백한 후, 강간, 살인, 방화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5]

4. 2. 항소심 및 상고심

서울고등법원 형사3부(부장판사 이성호)는 2009년 7월 23일 강호순에 대해 살인·현주건조물 방화치사·존속살해·성폭력범죄처벌법 위반 및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등의 혐의를 적용해 항소를 기각하고 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강호순이 부인하고 있는 장모와 아내에 대한 방화살인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로 판단하였다. 재판부는 강호순이 자신의 생명만큼 다른 사람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10명의 생명을 빼앗았고, 자신이 검거된 이유에 대해 운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등 재범의 위험성이 큰 만큼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켜야 한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이 범행으로 대다수 국민이 큰 충격을 받았고 사회불안과 불신 풍조를 야기했다는 점, 그리고 사회적 해악이 큰 만큼 극형선고가 불가피하다는 점도 덧붙였다. 강호순은 상고 포기서를 제출하여 사형이 확정되었다. 강호순은 여성 10명을 살해했다고 자백한 후, 강간, 살인, 방화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2009년 4월 22일 안산 법원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5] 교수형을 통한 사형 집행이 여전히 대한민국의 법률에 남아 있지만, 1997년부터 사형에 대한 사실상의 유예가 시행되어 왔다.[5][6]

5. 복역

강호순은 경찰에 체포된 이후, 심지어는 사형이 확정된 이후에조차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이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18] 수감 초기에는 동료 재소자들을 노예처럼 부려먹으며 왕처럼 생활하여 담당 형사와 교도관들을 놀라게 했다.[18] 또한 교도관에 따르면 사과하거나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7]

그러나 사형 집행에 대한 불안감으로 정남규가 자살한 사건을 접한 후, 강호순은 자신의 처지를 깨달은 것으로 전해진다.[7]

6. 기타

6. 1. 유사 범죄

6. 2. 대중 매체

7. 논란과 사회적 영향

조선일보[9]중앙일보[13]는 2009년 1월 31일 지면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강호순의 얼굴을 전격 공개하였다. 강호순은 취재 카메라 등에 직접 노출될 시 극도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행동을 취하였다.[14] 경찰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사항을 존중하여 기자들에게 공개될 때나 현장검증 당시 강호순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있었다.[15] 이후 경찰은 법 개정을 통해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하는 법안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이후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강호순의 얼굴 공개에 대해 공익을 위한 적절한 조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경우 2009년 2월 2일 만평을 통해 인권위가 피의자의 인권침해를 우려하는 것을 비꼬는 만평을 실었다.[15] 이에 대해 인권위 관계자는 "일반적인 범죄 피의자의 인권이 보호돼야 한다는 취지의 결정은 여러 차례 했지만 이번처럼 흉악범의 경우 얼굴을 공개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결정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16]

강호순 사건은 대한민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흉악범의 얼굴 공개와 사형 제도 존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흉악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고, 더불어민주당은 이 사건을 계기로 흉악범죄 예방 및 처벌 강화에 대한 논의를 주도했다.

참조

[1] 웹사이트 Death sentence for South Korean serial killer http://www.thestanda[...] The Standard 2013-11-09
[1] 웹사이트 Serial Killer Sentenced to Death https://www.koreatim[...] The Korea Times 2013-11-09
[1] 웹사이트 The Chosun Ilbo (English Edition): Daily News from Korea - Prevention Better than Cure for Victims of Child Sex Crimes http://english.chosu[...] The Chosun Ilbo 2013-11-09
[1] 웹사이트 Asia-Pacific | Korean man 'admits seven murders' http://news.bbc.co.u[...] BBC News 2013-11-09
[1] 웹사이트 Serial killer ordered to pay victims' families-프린트화면 http://www.koreahera[...] The Korea Herald 2013-11-09
[1] 웹사이트 South Korean Serial Killer Sentenced to Death https://www.foxnews.[...] Fox News 2013-11-09
[1] 웹사이트 The Chosun Ilbo (English Edition): Daily News from Korea - One in 60 Koreans Want to Change Their Names http://english.chosu[...] The Chosun Ilbo 2013-11-09
[2] 웹사이트 donga.com[English donga] http://english.donga[...] English.donga.com 2013-11-09
[3] 웹사이트 Brutal crimes shake nation-프린트화면 http://www.koreahera[...] The Korea Herald 2013-11-09
[4] 웹사이트 Serial Killer Kang Tried to Commit More Crimes https://www.koreatim[...] The Korea Times 2013-11-09
[5] 웹사이트 Korean serial killer Kang Ho-Sun sentenced to death http://www.watoday.c[...] Watoday.com.au 2013-11-09
[6] 웹사이트 South Korea must not resume use of the death penalty | Amnesty International https://www.amnesty.[...] Amnesty.org 2013-11-09
[7] 웹사이트 https://www.chosun.c[...] 2009-12-11
[8] 웹인용 보관된 사본 http://www.chosun.co[...] 2015-09-30
[9] 뉴스 그도 영혼이 있을까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09-01-31
[10] 뉴스 강, 10년 전 첫 희생자 매장지 옆 마을서 살아 http://news.joins.co[...] 중앙일보 2009-02-01
[11] 뉴스 "강호순, 재해보험에 집착" 짙어지는 방화 혐의 http://news.hankooki[...] 한국일보 2009-02-01
[12] 뉴스 강호순 보험금 노려 부인·장모 방화살인 http://news.hankooki[...] 한국일보 2009-02-22
[13] 뉴스 중앙일보, 공익 위해 연쇄살인범 강호순 이름·얼굴 공개 중앙일보 2009-01-31
[14] 웹인용 수감된 강호순 이틀째 검찰 소환 http://www.chosun.co[...] 2015-10-11
[15] 뉴스 강씨가 소송 걸면 언론사가 배상해야 하는 이유 오마이뉴스 2009-02-03
[16] 뉴스 인권위 관계자 “흉악범 경우 얼굴 공개 결정한적 없어아니다 동아일보 2009-02-03
[17] 뉴스 검찰,연쇄살인범 강호순 사형 구형(종합2보)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09-04-09
[18] 뉴스 오늘의 세상 "2009 그사건 그사람 그 후" (3) 그는 아직도 아무에게도 미안해하지 않는다.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1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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