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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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산향교는 고려 공양왕 2년(1390)에 처음 건립되었으며,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여러 차례 재건되었다. 조선 숙종 7년(1681)에 현재 위치로 이전되었으며, 1911년 경산공립보통학교 설립으로 건물들이 해체되는 등 변화를 겪었다. 현재는 대성전, 명륜당, 동·서재 등이 있으며, 매년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낸다. 임진왜란 당시 향교의 종 강개명이 위패를 성암산 동굴로 옮겨 보존한 일화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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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향교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명칭 | 경산향교 대성전, 삼문 |
한자 명칭 | 慶山鄕校大成殿三門 |
유형 |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
지정 번호 | 469 |
지정일 | 2013년 4월 8일 |
주소 | 경상북도 경산시 중방동 760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대한민국 문화재청, 유림회 경산지부 |
면적 | 8,732m² |
상세 정보 (과거 문화재자료 정보) | |
명칭 (과거) | 경산향교대성전삼문 |
한자 명칭 (과거) | 慶山鄕校大成殿三門 |
유형 (과거) | 경상북도의 문화재자료 |
지정 번호 (과거) | 105 |
지정일 (과거) | 1985년 8월 5일 |
해제일 (과거) | 2013년 4월 8일 |
2. 역사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경산향교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을 앞에 두고 교육 공간인 명륜당을 뒤쪽에 둔 전묘후학의 배치 형태를 따르고 있다.
2. 1. 건립과 이전
경산향교는 고려 공양왕 2년(1390) 옥곡동에 처음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져 여러 차례 다시 세워졌다. 조선 숙종 7년(1681) 신교동을 거쳐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1] 1911년에 경산공립보통학교 설립으로 향교의 여러 건물들이 해체되었고, 1997년 도로확장 공사로 대성전만이 현 위치에 다시 옮겨졌으나, 2000년에 명륜당, 동·서재를 신축하였다.[1]임진왜란 당시 향교에 모시던 위패가 위험해지자 향교의 종이었던 강개명이 성암산 동굴로 옮겨 놓아 무사했다고 한다.[1]
2. 2. 임진왜란과 강개명의 충의
임진왜란 당시 경산향교에 모시던 위패가 위험해지자 향교의 종이었던 강개명이 성암산 동굴로 옮겨 놓아 무사했다고 한다. 당시 관에서는 강개명의 공로를 찬양하여 공복과 부제를 면하게 하였다.[1]3. 구조
경산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고려 공양왕 2년(1390) 옥곡동에 처음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져 여러 차례 다시 세웠다. 조선 숙종 7년(1681) 신교동을 거쳐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향교에 모시던 위패가 위험해지자 향교의 종이었던 강개명이 성암산 동굴로 옮겨 놓아 무사했다고 한다.
제사 공간인 대성전을 앞에 두고 교육 공간인 명륜당을 뒤쪽에 둔 전묘후학의 배치 형태를 따르고 있다. 1911년에 경산공립보통학교 설립으로 향교의 여러 건물들이 해체되었고, 1997년 도로확장 공사로 대성전만이 현 위치에 다시 옮기게 되었으나, 2000년에 명륜당, 동·서재를 신축하였다.[1]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경산향교에서는 매년 봄·가을 음력 2월과 6월 상정일에 5성 22현을 봉향하고 있다.[1]
3. 1. 대성전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형태를 하고 있으며, 큼지막한 자연석을 세 벌로 쌓아 기단을 조성하였다.[1] 1997년 도로 확장 공사로 대성전만이 현재 위치로 옮겨졌으나, 2000년에 명륜당, 동·서재를 신축하였다.[1]3. 2. 삼문
경산향교의 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작은 규모이다. 임진왜란 때 향교에 모셔진 위패가 소실될 위기에 처했을 때, 당시 향교의 종이었던 강개명이 이 위패를 성암산 석굴로 피난시켜 무사히 보존하였다. 당시 관에서는 강개명의 공로를 찬양하여 공복과 부제를 면하게 하였다.[1]4. 기능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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