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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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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운사는 신라 신문왕 원년(681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처음에는 고운사(高雲寺)로 불렸으나 최치원이 가허루와 우화루를 건축한 뒤 그의 호를 따서 고운사(孤雲寺)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 시대에는 도선국사가 중창하여 사찰 규모가 확장되었으며, 조선 시대에는 불교 탄압으로 폐사되기도 했으나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현재 건물은 1835년에 재건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 31본산 중 하나로 지정되었고,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이다. 주요 문화재로는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46호), 고운사 가운루(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1호), 고운사 삼층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호), 고운사 연수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44호) 등이 있다. 고운사는 지장보살 영험성지로 해동제일지장도량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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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사
위치 정보
기본 정보
한글 이름고운사
한자 이름孤雲寺
로마자 표기Gounsa
일본어 표기孤雲寺
소재지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 116
종파대한불교 조계종
창건 연도681년 (신라 신문왕 원년)
창건자의상
본존석가모니불, 문수보살, 보현보살
템플릿 종류한국의 절
조계종 교구 본사제16교구 본사
조선 31본산조선 삼십본산 (일제강점기)
역사
창건신라 신문왕 원년 (681년)에 의상에 의해 창건.
초기 종파화엄종
현재 종파조계종
기타
고운사 전경

2. 역사

신라 신문왕 원년(681년)에 의상이 "높이 뜬 구름"이라는 뜻의 고운사(高雲寺)를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치원이 머물며 가허루와 우화루를 건축한 후 그의 호인 고운(孤雲)을 따서 절 이름을 고운사(孤雲寺)로 바꾸었다. 고려시대에는 도선이 크게 중창했고, 공민왕이 가허루의 현판을 가운루(駕雲樓)로 바꾸었다.

조선시대에는 불교 탄압으로 한동안 폐사되었다가 현종 때 중수되었고, 순조와 헌종 때 화재 이후 다시 중창되었다. 영조가 내린 어첩을 보관하던 연수전은 1902년 고종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새로 지어졌다.

일제강점기에는 31본산 중 하나였고, 해방 이후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였으나, 일제 패망 이후 크게 쇠락하였다.

고운사는 지장보살 영험성지로 해동제일지장도량이라 불렸으며, 염라대왕이 고운사에 다녀왔느냐고 묻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운사에는 지장보살 탱화가 있고 명부전에 염라10왕이 봉안되어 있다.

2. 1. 창건과 중창

신라 신문왕 원년(681년)에 의상이 "높이 뜬 구름"이라는 뜻의 고운사(高雲寺)를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치원이 머물며 가허루(駕虛樓)와 우화루를 건축한 이래 그의 호인 고운(孤雲)을 따라 절의 이름을 고운사(孤雲寺)로 바꾸었다.

고려 태조 13년(930년) 운주선사가 중수하였다. 고려 태조의 스승이었던 도선이 크게 중창하여 사찰의 규모를 확장했다. 약사전 불상과 나한전 앞 삼층석탑은 도선이 조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공민왕이 가허루의 현판을 가운루(駕雲樓)로 바꾸었다.

2. 2. 조선시대

조선 태종 7년(1407년) 불교 탄압 때 존속을 허락받은 88개 사찰에 고운사의 이름이 없어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세종 6년(1424년) 불교 탄압 때에도 존속을 허락받은 36개 사찰에 이름이 없어 계속 폐사된 채로 있었던 것 같다.

1668년(현종 9년), 극성, 승묵, 덕종이 중수하였다. 1803년(순조 3년) 화재가 발생하여 이듬해 주지 문찰이 중창하였다. 1835년(헌종 1년) 다시 화재가 발생하여 대웅전과 금당을 재건하였다. 현재 건물은 이때 재건된 것이다. 영조가 내린 어첩을 보관하던 연수전은 1902년 고종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어첩을 내리고 새로 지었다.

2. 3. 일제강점기와 그 이후

1911년 일제강점기 사찰령 시행규칙에 따라 조선 31본산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1924년 이후에도 조선 31본산 지위를 유지하며 경북 지역을 대표하는 대형 사찰 중 하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로 편성되어 경북 지역의 말사를 관할하였다. 그러나 일제 패망 이후 크게 쇠락하여 현재는 본사로는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한다.

3. 주요 전각 및 문화재

고운사에는 다음과 같은 주요 전각 및 문화재가 있다.


  • 보물 제246호 -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1호 - 고운사 가운루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호 - 고운사 삼층석탑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44호 - 고운사 연수전

3. 1. 주요 전각


  • 보물 제246호 -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1호 - 고운사가운루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호 - 고운사삼층석탑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44호 - 고운사연수전

3. 2. 문화재


  • 보물 제246호 -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1호 - 고운사 가운루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호 - 고운사 삼층석탑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44호 - 고운사 연수전

4. 신앙

신라 신문왕 원년(681년)에 의상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창건 당시의 이름은 "높이 뜬 구름"이라는 뜻의 고운사(高雲寺)였으나, 최치원이 머물며 가허루(駕虛樓)와 우화루를 건축한 이래 최치원의 호인 고운(孤雲)을 따라 절의 이름을 개칭했다.

고려 태조의 스승이었던 도선이 크게 중창하여 사찰의 규모가 커졌다. 약사전 불상과 나한전 앞 삼층석탑은 도선이 조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공민왕이 가허루의 현판을 가운루(駕雲樓)로 바꾸었다.

고운사는 지장보살 영험성지라 하여 해동제일지장도량이라 불렸다. 때문에 죽어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에 다녀왔느냐고 묻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고운사에는 지장보살 탱화가 있고 명부전에 염라10왕이 봉안되어 있다.

5. 주변 환경

고운사 입구에는 소나무 숲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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