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골리앗은 블레셋 출신의 거인으로, 성경에 등장하여 다윗과의 대결로 유명하다. 이름은 '망명자' 또는 '유랑자'로 번역되며, "하나님이 거만하도록 만드신 존재"라는 의미를 지닌다. 사무엘상 17장에 따르면, 골리앗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엘라 골짜기 전투에서 이스라엘 군에게 일대일 대결을 제안했으나, 다윗에게 새총으로 이마를 맞아 쓰러지고 다윗에게 죽임을 당한다. 골리앗의 이름과 이야기는 다양한 문화와 종교에서 언급되며, 현대에는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상황을 비유하는 용어로 널리 사용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골리앗 - 다윗 대왕 (영화)
1985년 브루스 베레스포드 감독이 제작하고 리처드 기어가 다윗 역을, 에드워드 우드워드가 사울 왕 역을 맡아 구약성경 다윗 이야기를 그린 영화 《다윗 대왕》은 다윗의 성장과 왕이 되는 과정, 내면적 갈등을 묘사했으나 제작 과정의 어려움, 캐스팅 논란, 비평가들의 혹평으로 흥행에 실패했다. - 골리앗 - 엘하난 (야일의 아들)
엘하난은 사무엘하와 역대기에 나오는 인물로, 가드 사람 골리앗의 형제를 죽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다는 기록과의 모순으로 성경 해석 논쟁을 일으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성경 번역본 수정 및 동일 인물이 아니라는 견해가 있다. - 블레셋인 - 데이르알발라
데이르알발라는 가자 지구 중부에 위치한 도시로, 팔레스타인 데이르알발라주의 주도이며, 1948년 이후 팔레스타인 난민 유입이 많고,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인해 인도주의적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 블레셋인 - 데릴라
데릴라는 구약성경 사사기에 나오는 삼손의 연인으로, 블레셋인에게 매수되어 삼손의 힘의 근원을 알아내 그의 몰락을 초래한 배신과 유혹의 상징이며, 다양한 예술 작품에서 재해석되고 여러 관점에서 해석된다.
골리앗 |
---|
2. 명칭과 어원
골리앗(갈르야트/גָּלְיָ֥תhe)은 '망명자', '유랑자'로 번역되는데, 히브리어 문자대로 해석하면 "하나님이 거만하도록 만드신 존재"라는 뜻이다. 골리앗은 블레셋의 주요 도시 가드(Gath, 가트/גַּ֑תhe)[41]출신이며, 이름 안에도 '가드' 지명이 포함되어 있다.[41]
사무엘상 17장에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있다.
텔 엘사피(Tell es-Safi)는 성경에 나오는 가드 도시이자 골리앗의 고향으로, 이스라엘 바이란 대학교의 발굴 조사 결과 기원전 9세기까지 필리스티아 도시 중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음이 밝혀졌다. 텔 엘사피 비문(Tell es-Safi inscription)에서 발견된 파편에는 'ʾLWT'와 'WLT'라는 두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골리앗(גלית, GLYT)과 어원적으로 관련이 있으며 기원전 10세기 후반에서 9세기 초 필리스티아 문화에 맞는 이름임을 보여준다.[11] "골리앗"이라는 이름은 셈족 계열이 아니며, 리디아의 왕 알리아테스(Alyattes I)와 관련이 있는데, 이는 성경 속 골리앗 이야기의 필리스티아적 맥락과도 부합한다.[11] 카리아어 비문에서도 유사한 이름인 울리아트(Uliat)가 확인되었다.[12] 발굴 책임자 아렌 마이어는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의 맥락에서 성경에 나오는 골리앗이라는 이름이 후대의 문학적 창작물이 아니라는 매우 좋은 증거"라고 말한다.[13]
로저 D. 우드워드는 남서 아나톨리아어 인명 연구를 바탕으로 히브리어 골리앗과 리디아의 알리아테스의 조상 형태를 *Walwatta*로 재구성했다. 이 경우 골리앗 이름의 원래 의미는 "사자 인간"이 된다.[14]
바빌로니아 탈무드는 "가드의 아들 골리앗"이라는 이름을 어머니의 문란함과 연결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이 이름은 영어로 Goliah로 표기되기도 한다.[15]
3. 성경 기록
== 엘라 골짜기 전투 ==
이스라엘 백성과 블레셋 백성은 엘라 골짜기에서 대치하고 있었다.[2] 40일 동안 아침과 저녁으로 하루 두 번, 블레셋의 용사 골리앗이 나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대일 결투로 승부를 결정하자고 도전했지만, 사울은 두려워하며 맞서지 못했다.[2]
다윗은 이 도전을 받아들였다. 사울은 자신의 갑옷을 제안했지만, 다윗은 익숙하지 않다며 거절하고 지팡이, 새총, 시내에서 가져온 다섯 개의 돌만 가지고 갔다.[2]
다윗과 골리앗은 서로 마주했다. 골리앗은 갑옷과 창으로 무장했지만, 다윗은 지팡이와 새총만을 들고 있었다. "블레셋 사람이 그의 신들을 거론하며 다윗을 저주했지만", 다윗은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라고 대답했다.[2]
다윗은 새총으로 돌을 던져 골리앗의 이마를 명중시켰고, 골리앗은 쓰러졌다.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빼앗아 그의 목을 베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도망쳤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갓과 에그론 성문까지 추격했다.[2] 다윗은 골리앗의 갑옷을 자신의 천막에 두고 머리는 예루살렘으로 가져갔으며, 사울은 압넬에게 다윗을 데려오게 했다. 다윗은 자신이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라고 밝혔다.[2]
== 다윗의 등장 ==
사무엘상 17장에 따르면, 사울과 이스라엘 백성은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대치하고 있었다.[2] 40일 동안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번 블레셋의 용사 골리앗이 양측 사이로 나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자신의 용사를 내보내 단일 결투로 승부를 결정하라고 도전했지만, 사울은 두려워하였다.[2]
양치기 소년 다윗은 전쟁에 나간 형들에게 음식을 전달하기 위해 전쟁터에 왔다.[34] 다윗은 골리앗의 도발을 듣고 분노하여 사울 왕에게 자신이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자원한다.[36] 사울은 처음에는 다윗이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반대했지만, 다윗의 용기와 신앙심에 결국 허락한다. 다윗은 사울이 제안한 갑옷을 거절하고, 평소 사용하던 지팡이와 새총, 그리고 시내에서 주워온 다섯 개의 돌만 가지고 전쟁터로 나아갔다.[2][36]
다윗과 골리앗은 서로 마주했다. 골리앗은 갑옷과 창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다윗은 지팡이와 새총을 들고 있었다.[2] "블레셋 사람이 그의 신들을 거론하며 다윗을 저주했지만", 다윗은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치고 네 목을 베어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들짐승에게 주리라 이는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며 또 이 온 무리가 하나님이 칼과 창으로 구원하지 아니하시는 줄 알게 하려 함이라 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라고 대답했다.[2]
다윗은 새총으로 돌을 던져 골리앗의 이마 한가운데를 명중시켰고, 골리앗은 얼굴을 땅에 대고 쓰러졌다.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빼앗아 그의 목을 베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도망쳤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을 "갓과 에그론 성문까지" 추격했다.[2] 다윗은 골리앗의 갑옷을 자신의 천막에 두고 머리는 예루살렘으로 가져갔으며, 사울은 압넬을 보내 그 소년을 데려오게 했다. 왕은 그의 아들이 누구인지 물었고, 다윗은 "나는 당신의 종 이새의 아들입니다. 그는 베들레헴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다.[2]
==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 ==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는 「사무엘상」 제17장에 기록되어 있다.[34] 블레셋 군대는 에섹-다곰에, 이스라엘 군대는 예루살렘 남서쪽 엘라 골짜기(Valley of Elah)에 진을 치고 대치하였다. 블레셋 진영에서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용사가 나타나 “용사를 한 명 내보내 일기토로 승부를 내자. 너희가 이기면 블레셋은 너희의 노예가 될 것이고, 내가 이기면 너희는 블레셋의 노예가 될 것이다.”라고 40일 동안 아침과 저녁 두 번에 걸쳐 이스라엘 군인들을 모욕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군인들은 골리앗에게 두려워하여 그에게 맞설 자가 없었다.
양치기 다윗은 이스라엘 군에 참여하고 있던 형에게 식량을 전달하기 위해 진영을 방문했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분노하여 이스라엘 군을 이끌고 있던 사울에게 골리앗을 물리치겠다고 제안했다. 사울은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다윗의 출전을 허락했다. 사울은 자신의 갑옷과 칼을 다윗에게 주었지만, 다윗은 “익숙하지 않아서 걸어 다닐 수도 없다.”라고 말하며 그것들을 착용하지 않고, 양치기의 무기인 지팡이와, 새총과, 강에서 주워 온 매끄러운 다섯 개의 돌이라는 가벼운 장비로 골리앗에게 도전했다.[2]
골리앗은 “자, 와라. 네 살을 하늘의 새와 들짐승에게 주마.”라고 조롱했지만, 다윗은 “너는 칼과 창에 의지하여 싸우지만, 나는 네가 조롱한 이스라엘 군의 진영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의지하여 싸운다. 전투는 칼과 창의 힘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사람들은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전투이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골리앗은 다윗에게 돌진했다.[36] 다윗은 자루에서 돌 하나를 꺼내 새총으로 힘껏 던졌고, 돌은 골리앗의 이마에 명중하여 그는 엎드러져 쓰러졌다. 다윗은 칼을 소지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쓰러진 골리앗에게 다가가 그의 칼을 빼앗아 목을 베어 죽였다.
블레셋 군대는 골리앗의 예상치 못한 패배로 궤멸되었고, 이스라엘 군대는 다윗의 승리에 환호했다. 이스라엘 군대는 패주하는 블레셋 군대를 쫓아 갓과 에그론까지 추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로 다윗의 명성은 높아졌고, 사울의 신하로 일하게 되었다.
성경의 기록에서 골리앗을 죽인 자는 다윗이라고 되어 있지만(사무엘상 17장 50절), 엘하난이 죽였다고 하는 구절도 있다(사무엘하 21장 19절). 역대기서에도 비슷한 기록[37]이 있으며, 골리앗의 형제 라프미(라미)가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킹 제임스 성경(欽定訳聖書)으로 번역될 때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추가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38]
== 전투의 결과 ==
다윗이 물매로 던진 돌에 맞아 골리앗이 쓰러지자, 블레셋 군대는 사기를 잃고 도망쳤다.[2] 이스라엘 군대는 그들을 추격하여 “가드와 에그론 성문까지” 이르렀고, 큰 승리를 거두었다.[2][34]
다윗은 골리앗의 갑옷을 자기 장막에 두고, 머리는 예루살렘으로 가져갔다.[2] 이 승리로 다윗은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떠올랐으며, 사울 왕의 신하가 되었다.[34] 사울은 압넬을 보내 다윗을 데려오게 하고, 누구의 아들인지 물었다. 다윗은 자신이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라고 대답했다.[2]
3. 1. 엘라 골짜기 전투
이스라엘 백성과 블레셋 백성은 엘라 골짜기에서 대치하고 있었다.[2] 40일 동안 아침과 저녁으로 하루 두 번, 블레셋의 용사 골리앗이 나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대일 결투로 승부를 결정하자고 도전했지만, 사울은 두려워하며 맞서지 못했다.[2]
다윗은 이 도전을 받아들였다. 사울은 자신의 갑옷을 제안했지만, 다윗은 익숙하지 않다며 거절하고 지팡이, 새총, 시내에서 가져온 다섯 개의 돌만 가지고 갔다.[2]
다윗과 골리앗은 서로 마주했다. 골리앗은 갑옷과 창으로 무장했지만, 다윗은 지팡이와 새총만을 들고 있었다. "블레셋 사람이 그의 신들을 거론하며 다윗을 저주했지만", 다윗은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라고 대답했다.[2]
다윗은 새총으로 돌을 던져 골리앗의 이마를 명중시켰고, 골리앗은 쓰러졌다.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빼앗아 그의 목을 베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도망쳤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갓과 에그론 성문까지 추격했다.[2] 다윗은 골리앗의 갑옷을 자신의 천막에 두고 머리는 예루살렘으로 가져갔으며, 사울은 압넬에게 다윗을 데려오게 했다. 다윗은 자신이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라고 밝혔다.[2]
3. 2. 다윗의 등장
사무엘상 17장에 따르면, 사울과 이스라엘 백성은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대치하고 있었다.[2] 40일 동안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번 블레셋의 용사 골리앗이 양측 사이로 나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자신의 용사를 내보내 단일 결투로 승부를 결정하라고 도전했지만, 사울은 두려워하였다.[2]
양치기 소년 다윗은 전쟁에 나간 형들에게 음식을 전달하기 위해 전쟁터에 왔다.[34] 다윗은 골리앗의 도발을 듣고 분노하여 사울 왕에게 자신이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자원한다.[36] 사울은 처음에는 다윗이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반대했지만, 다윗의 용기와 신앙심에 결국 허락한다. 다윗은 사울이 제안한 갑옷을 거절하고, 평소 사용하던 지팡이와 새총, 그리고 시내에서 주워온 다섯 개의 돌만 가지고 전쟁터로 나아갔다.[2][36]
다윗과 골리앗은 서로 마주했다. 골리앗은 갑옷과 창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다윗은 지팡이와 새총을 들고 있었다.[2] "블레셋 사람이 그의 신들을 거론하며 다윗을 저주했지만", 다윗은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치고 네 목을 베어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들짐승에게 주리라 이는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며 또 이 온 무리가 하나님이 칼과 창으로 구원하지 아니하시는 줄 알게 하려 함이라 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라고 대답했다.[2]
다윗은 새총으로 돌을 던져 골리앗의 이마 한가운데를 명중시켰고, 골리앗은 얼굴을 땅에 대고 쓰러졌다.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빼앗아 그의 목을 베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도망쳤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을 "갓과 에그론 성문까지" 추격했다.[2] 다윗은 골리앗의 갑옷을 자신의 천막에 두고 머리는 예루살렘으로 가져갔으며, 사울은 압넬을 보내 그 소년을 데려오게 했다. 왕은 그의 아들이 누구인지 물었고, 다윗은 "나는 당신의 종 이새의 아들입니다. 그는 베들레헴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다.[2]
3. 3.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는 「사무엘상」 제17장에 기록되어 있다.[34] 블레셋 군대는 에섹-다곰에, 이스라엘 군대는 예루살렘 남서쪽 엘라 골짜기(Valley of Elah)에 진을 치고 대치하였다. 블레셋 진영에서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용사가 나타나 “용사를 한 명 내보내 일기토로 승부를 내자. 너희가 이기면 블레셋은 너희의 노예가 될 것이고, 내가 이기면 너희는 블레셋의 노예가 될 것이다.”라고 40일 동안 아침과 저녁 두 번에 걸쳐 이스라엘 군인들을 모욕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군인들은 골리앗에게 두려워하여 그에게 맞설 자가 없었다.
양치기 다윗은 이스라엘 군에 참여하고 있던 형에게 식량을 전달하기 위해 진영을 방문했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분노하여 이스라엘 군을 이끌고 있던 사울에게 골리앗을 물리치겠다고 제안했다. 사울은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다윗의 출전을 허락했다. 사울은 자신의 갑옷과 칼을 다윗에게 주었지만, 다윗은 “익숙하지 않아서 걸어 다닐 수도 없다.”라고 말하며 그것들을 착용하지 않고, 양치기의 무기인 지팡이와, 새총과, 강에서 주워 온 매끄러운 다섯 개의 돌이라는 가벼운 장비로 골리앗에게 도전했다.[2]
골리앗은 “자, 와라. 네 살을 하늘의 새와 들짐승에게 주마.”라고 조롱했지만, 다윗은 “너는 칼과 창에 의지하여 싸우지만, 나는 네가 조롱한 이스라엘 군의 진영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의지하여 싸운다. 전투는 칼과 창의 힘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사람들은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전투이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골리앗은 다윗에게 돌진했다.[36] 다윗은 자루에서 돌 하나를 꺼내 새총으로 힘껏 던졌고, 돌은 골리앗의 이마에 명중하여 그는 엎드러져 쓰러졌다. 다윗은 칼을 소지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쓰러진 골리앗에게 다가가 그의 칼을 빼앗아 목을 베어 죽였다.
블레셋 군대는 골리앗의 예상치 못한 패배로 궤멸되었고, 이스라엘 군대는 다윗의 승리에 환호했다. 이스라엘 군대는 패주하는 블레셋 군대를 쫓아 갓과 에그론까지 추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로 다윗의 명성은 높아졌고, 사울의 신하로 일하게 되었다.
성경의 기록에서 골리앗을 죽인 자는 다윗이라고 되어 있지만(사무엘상 17장 50절), 엘하난이 죽였다고 하는 구절도 있다(사무엘하 21장 19절). 역대기서에도 비슷한 기록[37]이 있으며, 골리앗의 형제 라프미(라미)가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킹 제임스 성경(欽定訳聖書)으로 번역될 때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추가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38]
3. 4. 전투의 결과
다윗이 물매로 던진 돌에 맞아 골리앗이 쓰러지자, 블레셋 군대는 사기를 잃고 도망쳤다.[2] 이스라엘 군대는 그들을 추격하여 “가드와 에그론 성문까지” 이르렀고, 큰 승리를 거두었다.[2][34]
다윗은 골리앗의 갑옷을 자기 장막에 두고, 머리는 예루살렘으로 가져갔다.[2] 이 승리로 다윗은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떠올랐으며, 사울 왕의 신하가 되었다.[34] 사울은 압넬을 보내 다윗을 데려오게 하고, 누구의 아들인지 물었다. 다윗은 자신이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라고 대답했다.[2]
4. 사무엘서의 구성
사무엘서는 여호수아서, 사사기, 열왕기와 함께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한 책으로, '신명기 역사'라고 불린다. 최초의 판본은 기원전 7세기 후반 유다 왕 요시야 시대에 쓰여졌고, 이후 바빌론 유수(기원전 6세기)와 유배 이후 시대에 걸쳐 수정 및 추가되었다.[3]
4. 1.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의 구조
골리앗 이야기는 기본 서사에 바벨론 유배 이후 추가된 부분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원래 이야기'''
- 이스라엘 백성과 블레셋 백성이 서로 대치한다. 골리앗이 단독 결투를 제안한다.
-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자원을 한다.
- 다윗은 시내 바닥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골라 자신의 투석기에 사용한다.
- 다윗의 용기가 다른 이들에게 힘을 주고, 결국 다른 이들이 네 명의 거인(아마도 형제이거나 친척일 가능성이 있다. 사무엘하 21:15-22 참조)을 더 물리친다.
-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고, 블레셋 사람들이 전장에서 도망친다.
'''추가된 부분'''
-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러 갔다가 골리앗의 도전을 듣고, 결투를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다.
- 전투 장면에 대한 세부 묘사가 추가된다.
- 사울이 다윗이 누구인지 묻고, 다윗이 아브넬을 통해 왕에게 소개된다.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는 「사무엘상」 제17장에 기록되어 있다.[34] 블레셋 군대는 에섹-다곰에, 이스라엘 군대는 예루살렘 남서쪽 에라 골짜기(Valley of Elah)에 진을 치고 대치하였다. 블레셋 진영에서 나타난 거대한 전사 골리앗은 40일 동안 아침과 저녁 두 번에 걸쳐 이스라엘 군인들을 모욕하며 일대일 결투를 제안했지만, 이스라엘 군인들은 두려워하며 맞서지 못했다.[36]
양치기 다윗은 이스라엘 군에 있던 형에게 식량을 전달하기 위해 진영을 방문했다가 골리앗의 도전을 듣고 사울에게 골리앗을 물리치겠다고 제안했다. 사울은 다윗에게 갑옷과 칼을 주었지만, 다윗은 “익숙하지 않아서 걸어 다닐 수도 없다.”라며 지팡이와 새총, 강에서 주워 온 매끄러운 다섯 개의 돌을 가지고 골리앗에게 도전했다.
골리앗은 다윗을 조롱했지만, 다윗은 “너는 칼과 창에 의지하여 싸우지만, 나는 네가 조롱한 이스라엘 군의 진영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의지하여 싸운다. 전투는 칼과 창의 힘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사람들은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전투이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골리앗은 다윗에게 돌진했다.[36] 다윗은 돌을 던져 골리앗의 이마에 명중시켰고, 골리앗은 쓰러졌다.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빼앗아 목을 베어 죽였다.
블레셋 군대는 골리앗의 패배로 궤멸되었고, 이스라엘 군대는 가드와 에그론까지 추격하여 승리했다. 이 전투로 다윗은 사울의 신하가 되었다.
성경에는 골리앗을 죽인 자가 다윗(사무엘상 17장 50절)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엘하난이 죽였다는 구절(사무엘하 21장 19절)도 있다. 역대기서에는 골리앗의 형제 라프미(라미)가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37] 킹 제임스 성경(欽定訳聖書) 번역 시 추가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38] 사무엘기에 묘사된 전투에는 이시비베놉, 시파이, 다지증 환자(본명 불명) 등 세 명의 거인이 등장하며, 골리앗과 함께 거인의 후손으로 여겨진다. 이시비베놉은 무게 300세켈의 청동 창을 가지고 있었다.
5. 본문 해석
5. 1. 골리앗의 키
가장 오래된 사본들인 기원전 1세기 후반의 사해 사본 사무엘서 본문, 1세기의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 그리고 주요 칠십인역 사본들은 모두 골리앗의 키를 "네 큐빗과 한 스팬"(약 180cm)으로 제시한다.[4][5] 반면, 마소라 본문은 "여섯 큐빗과 한 스팬"(약 280cm)으로 제시한다.[4][5] 많은 학자들은 작은 수치가 전승 과정에서 커졌다고 제안했으며, 어쩌면 사경사의 눈이 사무엘상 17:7절의 숫자 6에 끌렸을 가능성이 있다.
5. 2. 골리앗과 사울
골리앗 이야기의 근본적인 목적은 사울이 왕이 될 자격이 없다는 것(그러나 다윗은 자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을 적들로부터 이끌도록 선택되었지만, 골리앗과 마주했을 때 그렇게 하기를 거부한다.[5] 사울은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보다 키가 머리 하나만큼 더 컸는데(사무엘상 9:2), 이는 그가 180cm가 넘는 키였고 골리앗에게 도전할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결국 다윗이 그를 무찔렀다.[5] 또한, 사울의 갑옷과 무기는 골리앗의 것보다 나은 점이 없어 보인다.[5] 다윗은 사자나 곰이 와서 아버지의 양을 공격했을 때, 그것과 싸워 죽였지만, 사울은 그의 양(즉, 이스라엘)에 대한 위협에 맞서 일어서서 공격하는 대신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5]사무엘상 17장에 나오는 다윗의 말은 동물을 이용한 비유를 통해 사울과 골리앗 모두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비유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윗은 야생 동물을 조종하는 진정한 왕으로 기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6]
5. 3. 엘하난과 골리앗
사무엘하 21장 19절에는 엘하난이 골리앗을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다.[7] 역대기상 20장 5절에는 엘하난이 골리앗의 형제 라흐미를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7] 이는 성경 기록 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예시 중 하나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역대기 기자가 사무엘서의 기록을 수정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7]6. 골리앗과 그리스 문화
사무엘상 17장에 묘사된 골리앗의 갑옷은 기원전 6세기 그리스 갑옷과 유사하며, 용사들 간의 결투로 전투가 결정되는 서술 방식은 단독 결투와 호메로스 서사시(''일리아드'')의 특징으로 여겨져 왔다.[8] 골리앗을 איש הבינייםhe, "중간의 사람"으로 지칭하는 것은 그리스어 " (μεταίχμιονgrc)", 즉 양쪽 진영 사이의 공간, 용사 결투가 벌어지는 장소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8]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와 매우 유사한 이야기는 기원전 760~710년경에 쓰여진 일리아드에 나오는데, 젊은 네스토르가 거인 에레우탈리온과 싸워 이긴다.[10] 각 거인은 독특한 무기를 사용하는데, 에레우탈리온의 경우 철제 곤봉이고, 골리앗의 경우 거대한 청동 창이다. 각 거인은 갑옷을 입고 적의 대열에서 나와 상대편 군대의 모든 전사들에게 도전한다. 두 경우 모두 노련한 전사들은 두려워하고, 도전은 그의 가족에서 가장 어린 소년(네스토르는 넬레우스의 열두 번째 아들이고, 다윗은 예새의 일곱 번째 또는 여덟 번째 아들이다)이 받아들인다. 각 경우에 더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은 아버지와 같은 인물(네스토르의 아버지, 다윗의 후원자인 사울)은 소년이 너무 어리고 경험이 없다고 말하지만, 각 경우에 젊은 영웅은 신의 도움을 받고 거인은 쓰러진다. 네스토르는 도보로 싸운 후 적의 전차를 차지하고, 다윗은 도보로 싸운 후 골리앗의 칼을 차지한다. 적군은 도망치고, 승자는 추격하여 학살하고 시체를 가지고 돌아오며, 소년 영웅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다.[10]
7. 골리앗의 이름
골리앗(갈르야트/גָּלְיָ֥תhe)은 망명자, 유랑자로 번역되는데, 히브리어 문자대로 해석하면 "하나님이 거만하도록 만드신 존재"라는 뜻이다. 골리앗은 가드(Gath, 가트/גַּ֑תhe)[41]출신이며, 이름 안에도 가드 지명이 들어가 있다.
"골리앗"이라는 이름 자체는 셈족 계열이 아니며, 리디아의 왕 알리아테스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11] 카리아어 비문에서도 유사한 이름인 울리아트(Uliat)가 확인되었다.[12] 로저 D. 우드워드(Roger D. Woodard)는 남서 아나톨리아어 인명 연구를 바탕으로 히브리어 골리앗과 리디아의 알리아테스의 조상 형태를 *Walwatta*로 재구성했다. 이 경우 골리앗 이름의 원래 의미는 "사자 인간"이 된다.[14]
텔 엘사피(Tell es-Safi)에서 발견된 텔 엘사피 비문(Tell es-Safi inscription)은 기원전 10세기에서 9세기 중반 사이로 연대가 측정되었는데, 'ʾLWT'와 'WLT'라는 두 개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이름들은 성경에 나오는 골리앗(גלית, GLYT)과 어원적으로 관련이 있으며 당시 블레셋 문화의 맥락에 맞는 이름임을 보여준다.[11] 발굴 책임자인 아렌 마이어(Aren Maeir)는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의 맥락에서 성경에 나오는 골리앗이라는 이름이 후대의 문학적 창작물이 아니라는 매우 좋은 증거"라고 언급했다.[13]
바빌로니아 탈무드는 아람어 גַּת (gat, 포도주 틀)을 바탕으로 어머니의 문란함을 언급하며 "가드의 아들 골리앗"이라는 이름을 설명한다.
이 이름은 영어로 Goliah로 표기되기도 한다.[15]
8. 후대 유대교 및 이슬람 전통
유대교와 이슬람 전통에서도 골리앗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바빌로니아 탈무드(소타 42b)에 따르면, 골리앗은 다윗의 증조모인 룻의 시누이인 오르바의 아들이었다(룻 → 오벳 → 이새 → 다윗). 룻기에 대한 아가다적이고 설교적인 해석인 룻 랍바는 오르바와 룻이 친자매였다고 하여 혈연관계를 더욱 가깝게 만든다. 오르바는 룻과 함께 가는 척을 했지만 40보 후에 그녀를 떠났다고 한다. 그 후 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예루살렘 탈무드에 따르면, 골리앗은 다정란(polyspermy)으로 태어났고, 약 백 명의 아버지가 있었다.[16]
탈무드는 골리앗의 불경건함을 강조한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자신이 언약궤를 빼앗아 다곤 신전에 가져왔다고 자랑했고,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를 방해하기 위해 아침과 저녁으로 전투를 신청했다. 라비 하니나에 따르면 그의 갑옷은 60톤이었고, 라비 아바 바르 카하나에 따르면 120톤이었다. 그리고 그의 검은 다윗의 검이 되었고,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 그가 죽자 그의 심장에는 다곤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고, 이로써 다곤도 수치스러운 몰락을 맞게 되었다.[17]
기원전 135년과 기원후 70년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여겨지는 의사 필로에 따르면, 다윗은 일곱 개의 돌을 주워 자신의 아버지 이름, 자신의 이름, 하나님의 이름을 각 돌에 하나씩 적었다. 그리고 골리앗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죽기 전에 이 말을 들어라. 너와 내가 태어난 두 여자는 자매가 아니었던가? 네 어머니는 오르바였고 나의 어머니는 룻이었지..." 다윗이 돌로 골리앗을 치자, 골리앗이 죽기 전에 다윗에게 달려가서 "빨리 나를 죽이고 기뻐하라"라고 말한다. 다윗은 "네가 죽기 전에 눈을 뜨고 너를 죽인 자를 보아라"라고 대답한다. 골리앗은 천사를 보고 다윗에게 자신을 죽인 것은 자신이 아니라 천사라고 말한다. 의사 필로는 이어서 주의 천사가 다윗의 모습을 바꾸어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게 했고, 사울이 그의 신분을 묻는다고 말한다.[18]
골리앗은 꾸란 2장 247~252절에 다윗과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과 싸운 이야기에서 등장한다.[19] 아랍어로는 잘룻(جالوت)이라고 불리는데,[20] 꾸란에서 골리앗의 언급은 간결하지만, 히브리어 성경의 기록과 평행을 이룬다. 무슬림 학자들은 골리앗의 기원을 추적하려고 노력했는데, 가장 일반적인 것은 아말렉 사람들과 연관짓는 것이다.[20] 초기 학문적 전통에서 골리앗은 다윗 이전 이스라엘 민족의 압제자들을 가리키는 일종의 속담이나 집합적인 이름이 되었다.[19] 무슬림 전통에서는 골리앗과의 전투를 무함마드의 바드르 전투의 예표로 보고, 골리앗을 무함마드가 직면한 적들과 평행시킨다.[20]
9. 현대적 용법
현대 사회에서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성경 속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고, 약자가 강자를 상대로 승리하는 상황을 비유하는 보편적인 용어로 자리 잡았다.[1][21] 스포츠, 비즈니스, 정치, 사회 정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 표현이 사용된다.[23][24][25][26][27] 예를 들어 스포츠에서는 약팀이 강팀을 이기는 경우("헤이, 니콜라이 발루예프와의 '다윗과 골리앗' 싸움에서 언더독 역할을 즐긴다"—가디언[23]), 비즈니스에서는 신생 기업이 대기업에 맞서는 경우("인터넷에서, 즉석 메시지에 대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뉴욕 타임스[24])를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묘사한다.
레너드 그린스푼 교수는 "스포츠 뉴스에서 다윗 대 골리앗"이라는 에세이에서, 언론이 이 표현을 통해 약자의 승리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지만, 성경 원문에서는 다윗의 승리가 그의 신앙, 즉 하나님의 능력 덕분임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고 지적한다.[22] 즉, 단순한 약자의 승리가 아니라 신앙의 힘을 강조하는 종교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윗과 골리앗" 비유 외에도, 키가 큰 사람을 "골리앗"이라고 부르는 용법도 있다.[28][29] 농구 선수 윌트 체임벌린은 "골리앗"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이 별명을 싫어했다.[30]
참조
[1]
백과사전
David, and Goliath
http://www.oxfordlea[...]
2015-02-11
[2]
성경구절
[3]
웹사이트
1 Samuel, CHAPTER 17 | USCCB
https://bible.usccb.[...]
[4]
논문
Goliath (Person)
Doubleday
[5]
학술지
Reconsidering the Height of Goliath
http://www.etsjets.o[...]
2005-12
[6]
학술지
Snatched from the hand of a bear : a comparative perspective on the bear in David's speech in 1 Sam 17:34–37
https://journals.co.[...]
2020-11-01
[7]
서적
NIVAC Bundle 2: Historical Books
https://books.google[...]
Zondervan Academic
2022-03-04
[8]
학술지
Goliath's Armor and the Israelite Collective Memory
http://berlinarchaeo[...]
2004
[9]
학술지
Reconsidering Goliath: An Iron Age I Philistine Chariot Warrior
https://www.journals[...]
[10]
서적
Iliad
[11]
웹사이트
Tell es-Safi/Gath weblog
http://gath.wordpres[...]
[12]
논문
The etymology of Goliath in the light of Carian Wljat/Wliat: a new proposal
[13]
뉴스
Tall tale of a Philistine: researchers unearth a Goliath cereal bowl
http://www.smh.com.a[...]
2005-11-15
[14]
논문
On Goliath, Alyattes, Indo-European Wolves, and Lydian Lions: A Reexamination of 1 Sam 17:1–11, 32–40
https://www.sbl-site[...]
SBL Press
2022
[15]
서적
Shakespeare's Religious Language: A Dictionary
https://books.google[...]
A&C Black
2023-11-24
[16]
문서
Jerusalem Talmud Yebamoth
[17]
웹사이트
Goliath
http://www.jewishenc[...]
[18]
서적
The Old Testament pseudepigrapha
Doubleday
[19]
백과사전
Djalut
[20]
백과사전
Goliath
[21]
백과사전
David and Goliath
http://www.macmillan[...]
2015-02-11
[22]
웹사이트
David vs. Goliath in the Sports Pages
https://web.archive.[...]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2015-02-12
[23]
웹사이트
Haye relishes underdog role in 'David and Goliath' fight with Nikolai Valuev
https://www.theguard[...]
2009-11-03
[24]
웹사이트
On Internet, David-and-Goliath Battle Over Instant Messages
https://www.nytimes.[...]
2000-06-24
[25]
웹사이트
David and Goliath: How a tiny spider catches much larger prey
https://www.scienced[...]
2014-06-12
[26]
뉴스
Dissent in Cuba: David and Goliath
http://www.economist[...]
2003-01-16
[27]
웹사이트
David-and-Goliath Saga Brings Cable to Skid Row
https://www.latimes.[...]
2001-11-21
[28]
웹사이트
Goliath
https://www.merriam-[...]
2021-03-26
[29]
웹사이트
Goliath
https://dictionary.c[...]
2021-03-26
[30]
웹사이트
Legends profile: Wilt Chamberlain
https://www.nba.com/[...]
2021-03-26
[31]
웹사이트
'Greatest Heroes of the Bible' David & Goliath (TV episode 1978)
https://www.imdb.com[...]
imdb
2011-04-28
[32]
웹사이트
What Would Jesus Watch?
http://www.newsweek.[...]
2009-07-16
[33]
문서
70인역 성경 및 유다 고대사
[34]
웹사이트
첫 번째 사무엘서 17장
https://web.archive.[...]
2010-08-27
[35]
성경구절
[36]
문서
ユダヤ古代誌 第6巻188節
[37]
문서
歴代志上(口語訳)#20:5
s:歴代志上(口語訳)#20:5
[38]
성경
サムエル記下21章
[39]
문서
규빗과 뼘의 길이
[40]
백과사전
David and Goliath
http://www.oxfordlea[...]
2015-02-11
[41]
문서
가드 도시의 위치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